회심의 일격, 까진 아니었지만 기껏 쓴 마법이 빗나가자 그럼 그렇지 하듯 어깨를 으쓱인다. 이놈의 지팡이는 주인만 가리는게 아니라 노리는 사람까지 가리는지 평소 멀쩡하다가도 막상 실전에서 쓰려고 하면 말썽이다. 됐다, 됐어. 기대 안 할거야. 그녀는 별 기대 안 했다는 듯 지팡이를 허리춤에 꽂아넣었다.
자. 이제 그와 함께 뒤로 빠져서 전황을 구경이나 할까 아니면 뭘 더 해볼까 싶을 쯤. 기묘한 울음소리를 내며 숲 안쪽으로 가는 짐승과 그 뒤를 따르는 행렬을 목격한다. 이거 귀찮게 흘러가네. 마음 같아선 그냥 빠지고 싶었지만 여기서 그런 행동을 했다간 그 뒤가 더 귀찮을 거 같다. 눈 앞의 귀찮음을 피하기 위해 다른 귀찮음을 감안한다, 라. 최근 이런 사람을 봤던거 같다는 생각을 하며 각시탈 쪽으로 걸어간다.
"도와줄 어른들이라고 해도 솔직히 학생들이 더 많아서 도와줘야 하나 싶어서 말이에요."
느긋하게 중얼거리며 거리를 좁히는가 싶더니 마법도 쓰지 않은 도약으로 빠르게 가까워진다. 아마 레오가 다가갔던 거리만큼 가까이 다가가 예의 그 비웃음을 띄운 채,
주먹이 오가고 금지된 마법이 오간다. 지팡이는 부러졌고 학생과 교수를 유인한다. 주변을 맴돌다 어깨에 앉으려는 백정을 눈길로 훑고 입술을 자근 깨문다. 내쳐야 하는데. 나는 널 내치고 차라리 도망치고 싶은데. 깨진 것 같은 신뢰가 있는데. 그는 잠시 몸을 바르르 떨고는 손을 뻗는다. 매가 된 백정을 달링을 어르고 안듯이 품에 안아주려 한 것이다. 그리고는 잘게 몸을 떨며 입술을 달싹였으리라.
"미안하네."
오만한 것이 고개를 숙였다.
"내 심상이 좁은 자라 속상해서 그러하였어. 돌아가면 조금, 대화를 해봅세. 하고픈 말이 있어."
그리고 온화해졌다. 아마 심경의 변화가 서서히 생기는 것이리라. 그는 고개를 들어 학교 사람들이 흐느적거리며 걷는 것을 본다. 크루시오의 비명소리는 귀를 쟁쟁하게 울렸고, 두 탈은 여유롭다. 그는 느릿히 눈을 감았다 뜬다. 분홍빛 시선이 기묘하게 휜다. 품에 백정을 안고 가볍게 손톱으로 배쪽의 깃털을 살살 긁어주며, 각시탈을 쓴 여성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런, 마노. 사랑스러운 내 피앙세. 아는 사람이더니?"
모르는 척 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운지 손으로 가볍게 머리를 쓸어주려 한다. 도발을 한 것이며, 달링을 대하는 모습 그 자체였다. 그는 기어이 부리에 입을 맞춘다. "참으로 예쁘지. 우리 아가가 탐이 나는 겐가? 남의 사랑스러운 아이를 왜이리 탐을 내는지..그 탐욕스러운 성정을 보아하니 추종자의 마음 됨됨이가 어때야 하는 지 대충 알 것 같군 그래." 하면서, 슬며시 웃던 그는 둘을 공격하지 않는다. 발을 돌려 다가간 것은.
"레오파르트 로아나. 괜찮은가?"
지팡이는 없지만 6학년이 되면 어느정도는 엉거주춤 할 수 있다. 수년간 갈고닦은 지혈과 마법이다.
"숲으로 가는 결정은 접어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자기야. 지금- 호랑이가 눈 앞에 나타났거든."
필연적으로 단태는 현궁의 키가 큰 남학생 엘로프와 같은 자리에 있었고, 엘로프의 질문에 대해 답을 내려줄 수 있었다. 그의 지팡이가 영 엉뚱한 곳으로 향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암암리에 가라앉은 암적색 눈동자로 각시탈이 짐승의 입마개를 푸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며 예의 느물느물거리는 목소리로 능청스레 중얼거린 단태가 지팡이를 쥔 엘로프의 손 아래에 자신의 손을 받치면서 각시탈과 양반탈이 있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준다. 이쪽- 이라고 알려주는 것처럼. "아마 숲으로 가기 전에 저 호랑이가 자기를 향해 달려들 것 같은걸. 나도 자신은 없지만 방향은 잡아줄게. 달링." 주단태의 목소리가 평소처럼 느물거렸다. 뻔뻔하리만치 능청스럽고 능글맞은 목소리로 속삭이고 단태는 주변을 둘러본다. 내가 아무리 주문을 못 맞춘다고 해도 이건 좀 너무 심하잖아. 이번에도 못맞추면 저 인간을 먹어치우는 저 짐승이랑 같이 뒹굴던지 해야겠다.
"이번에 안맞으면 짐승은 짐승으로 상대해야겠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예쁜 자기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하고 덧붙히는 말 뒤에 낄낄거리는 웃음이 따라붙으며 단태는 지팡이를 각시탈에게 겨냥했다.
말이 막혔다. 무어라고 말을 하고 싶었는데 말이 나오지 않는다. 혀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더 정확하려나.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어 움직이지 않는 답답한 느낌이다. 토할것같아. 몸이 그렇게 된 와중에도 레오의 머리는 제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주변 상황을 확실히 인지하고 확실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일단은 안심되는건 사실이었다. 누군가가 붙어주었으니까. 그리고 눈을 잠깐 감았다 떴을때 레오는 보았다. 자신을 노리고 날아오는 짐승을.
" !!! ...!!!! "
알려줘야하는데. 말이 나오지 않아. 레오는 있는 힘껏 발렌타인을 밀쳐냈다. 나도 나쁜 사람은 못되는걸까. 그리고 두 눈을 뜨고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도망쳐야하는데, 너무 늦은데다가 몸이 제대로 움직이질 않아서. 그래서 레오는 가만히 두 눈을 뜨고 멍청하다면 멍청하게 또 당하고 말았다. 날카로운 발톱에 채이는 느낌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르겠지. 앞판이 갈려나가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크게 한 번을 채이고 뒤로 날아가 몇 번을 굴렀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제야 자기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가까이 왔으니 그 점은 좋은것일지도.
" ...... "
아직도 말이 나오지 않아. 마법의 영향인지, 아니면 말할 힘마저도 남아있지 않은건지 모르겠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힘이 없다.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추웠다. 왜인지 모르게 너무도 추웠다. 레오는 가만히 누워 눈을 내려 자기 몸을 내려다보았다. 난장판이네. 정말 난장판이야. 앞판 뿐만 아니라 등이 따가운 것을 보면 뒷쪽도 제대로 긁힌 모양이다. 레오는 툭, 하고 편하다면 편하게 누웠다. 말도 할 수 없고 몸을 움직일 힘도 없다. 눈물이 난다. 이제 그만두고 싶어.
썩 맘에 들지 않는 상황이다. 빗맞고. 막히고. 지팡이에 마가 끼었나? 그렇다고 가까이서 대들기에는 애매한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왠 이상한 짐승까지 끼어들었다. 놓았던 이성이 어느정도 제자리를 찾고 주양은 입맛을 다셨다. 이대로 간다면 분명 큰 손해인데. 조금이나마 손해를 덜 보려면 피하는게 좋을까?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피하기는 싫었다.
그리고 주양의 시선이 그제서야 양반에게서 벗어나 각시탈을 향했다. 보자. 지금은 저쪽도 만만치 않게 귀찮을 것 같은데. 마냥 한 쪽에만 고정포대마냥 주문을 사격하며 시간을 낭비하는건 비효율적이다. 그렇다면 한번. 지금을 틈타서.
"아비스."
한 마리. 그리고 여러 마리. 마법으로 소환한 새떼를 적당히 모아서 마치 전선 앞 지휘관마냥 정갈한 몸짓으로 양반을 향하려던 지팡이를 각시에게 향하는 페이크를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