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알 수 없는 상황에 고개를 돌려 탈들과 학생들을 번갈아보다가 본 적 없는 동물을 하나 발견한다. 그리고 그때서야 주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에 들어온다. 아, 이것 참 난리도 아니네. 앞만 보지 말고 뒤도 봤어야 하나, 싶지만 내가 왜? 라는 생각이 뒤를 잇는다. 일개 개인인 자신이 할 수 있는게 뭐 그리 많겠느냔 말이다. 그러니 이제 슬슬빠져볼까 싶었다. 때마침 이상한 짐승이 이쪽에도 등장했으니 말이다.
"실력에 자신이 없으니까 펫도 데려온 거에요? 오, 이런, 이름값 못 하는 분들."
킥! 강렬한 도발성 어조가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오고 금방이라도 도망갈 듯 몸을 뒤로 물린다. 그러나 그건 페이크였는지 몸을 무른 만큼 앞으로 달려들어 들어 메치기를 시전한다. 대상은 양반탈이었다.
"천인공노할 죄인 씨. 이름이 멜리스셨군요. 멜리스-리델. 잘 기억해드릴게요."
.dice 1 2. = 1
타격의 성공 여부는 따지지 않고 뒤로 훌쩍 뛰어 곡예라도 하듯 탈들에게서 멀어진다. 그대로 사뿐히 뛰어 그의 곁으로 돌아가 그를 끌어안고 흐흥, 하고 웃는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와, 어딜 가도 망하겠네. 그래도 여기가 정신 차린 사람이 많으니까 덜 망할 것 같긴 해."
따지고 보면 나이 성년으로 먹은 범죄자들이 14~19살 청소년들을 금지된 마법과 불법(으로 추정되는) 마법생물을 데리고 진심으로 상대하려는 상황이 더 어이없는 거 아니냐, 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는 아직 제 목숨이 귀했다. 속으로 바득바득 화를 참으며 침착하려 한다. 불안이 속을 차고 올라온다. 눈앞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한 공포와, 동시에 무지로 인한 미지가 모순적인 안도감을 가져다준다. 그나마 가벼이 농이라도 던지려니 조금이나마 기분이 나아진 것만 같다. 이런 건 참 알고 싶지 않았는데.
잠시 뭔가에 세게 얻어맞은 감각과 동시에 어지러운 기운이 감돈다. 그러고보니 저번에 뭐시기랑 이상한 저주 때문에 약을 한사발 들이킨 감각을 느꼈었나. 그는 아직도 얼얼한 머리에 감각에 이를 바드득바드득 갈아제끼면서 지팡이를 집어들었다. 아, 그래도 촉각은 남아있구나? 그런데 주먹을 쓰기에는 내 눈이 지금 좀 뒤집힌 감각이 남아있어서..... 일단은.....
"오푸그노 징크스(Oppugno Jinx)"
이거 맞지? 그는 주변에 있던 아직 잠들지 않은 수리부엉이 3마리를 끌어들이는데 성공한다. 아 그래도 아직 주문정도는 외울수 있다, 이거지? 그래, 그래. 아직은 괜찮아 아직은, 그는 일단은 감각을 어느정도 보완하기 위해 한마리는 자신의 주변을 맴돌게 하는 한편 나머지 두마리는 각시탈을 쓴 사람을 향해 발톱을 휘두르게 하였다.
멜리스. 저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면, 분명히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어디서 보았던 걸까. 혼란한 상황 속에서 기억을 더듬고, 그 끝에서 별장에서 발견한 편지를 뒤늦게 떠올린다. 멜리스. 그리고 교감 선생님의 이름이 적혀있던 그 편지. 방금 전 별장을 언급했던 당신의 말을 생각하면. 설마. 눈가를 잔뜩 구긴 채 양반탈을 바라보다가 지팡이를 든다.
상황을 정리하자. 마법은 실패했고, 엘로프라 불린 학생은 치근덕거리는 단태 학생에게 도움을 받고 있고, 주궁의 학생으로 추정되는 붉은 머리의 여성은 공격을 감행하고 있으며, 펠리체는 눈이 마주쳤다. 그는 눈썹 한쪽을 까딱인다. 네가 독대하였듯 나도 독대하였는지라. 그런 뜻과 함께 손을 뻗어 다시 매를 쓰다듬는다.
자, 마지막으로 레오파르트 학생은..
"로아나 양?"
정중한 말 뒤로 그가 나동그라진다. 주궁 학생들은 자신의 힘이 얼마나 강한 지 모르겠지. 그는 일어난 참상을 보고 조용히 고개를 기울인다. 백정이 다치지 않았는지 한 번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날아간 모노클을 짓밟았다. 일주일 만에 모노클을 세 번이나 교체하다니. 사치도 이런 사치가 없겠군. 그는 잠시 튄 피를 슥 닦는다. 레오파르트를 한 번, 상황을 한 번, 그리고 탈을 한 번.
"그… 자네, 들에게. 조금 미안한? 아, 오. 미안하군. 내가 이런 말까지 해줘야 할 정도로 인지능력이 뒤떨어져서 내 혀에게 미안해질 정도야. 아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