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아예 멱살을 틀어잡으려 하며 다시 한 번 주먹을 올렸다. 주문을 맞은 쪽은 그가 아닌데도, 전투 상황의 긴박감이 자제력을 낮췄다. 하지만 생사 확인을 할 여유도 거기까지였다. 난전이 휘말린 사람들의 편의를 보아줄 리 없다. 크루시오, 또다시 주문이 이곳으로 쇄도하고 그 대상은 이번에도 그 곁의…….
참고 참았던 욕지거리가 튀어나온다. 이미 한발은 늦었지만 뒤늦게 보호 마법을 펼쳤다. 그러면서도 한쪽 손은 단태를 꽉 붙들어두려 하고 있었다.
기절하는 혜향 교수를 그래도 교수라고 잡아서 바닥에 나뒹구는 것만은 막아준다. 잡았다고 하나 옷의 목덜미를 잡았기 때문에 그리 친절하지는 않다. 그냥 나뒹구는 것보다 조금 나은 정도일까. 적당히 외야로 끌어 데려다놓다가 자신을 뚫을 듯한 시선에 뒤를 돌아 각시탈을 본다.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정확히 노려보는 시선에 그녀는 약올리듯 히죽 웃었다. 각시탈이 내지르는 고성에 그녀의 미소는 더더욱 짙어진다.
"누굴 노리는거야. 너 눈은 장식이야?"
분노로 눈이 멀었는지 어쨌는지, 때마침 크루시오에 걸린 레오에게 거듭 공격을 가하는 각시탈을 보며 하핫! 소리내어 웃는다. 눈가는 일그러뜨리고 한쪽 입꼬리만 올린, 기묘한 미소를 지은 채 머리를 고정하던 지팡이를 스륵 뽑는다. 요령 좋게 뭉쳐 있던 은빛 머리칼이 출렁이며 흘러내리고 그녀의 손이 각시탈을 향한다.
무시하고 지나가려고 했는데 목이 잡혔다. 뱀 모양 팔찌, 예쁘네. 그런 잡생각이 지나갈때까지 레오는 주먹을 들지 않았다. 한 방 먹이려면 먹일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너는 나한테 처음으로 살갑게 대해줬으니 제압하는것도 다른 사람이 했으면 좋겠어. 레오가 한 것이라곤 가만히 째려보는 것 뿐이었다. 주먹이 날아들고 풀려났다. 잡혔던 목을 문지르다가 다시 탈에게 다가서려고 했다.
머리르 쓸어넘기고 어떻게 하려고 했더라. 지팡이를 들어서 공격을 하려고 했었지. 봄바르다를 쓸까, 인센디오를 쓸까. 아니면 리덕토를 먹여줄 수도 있고 스투페파이를 날려서 기절시킬수도 있었지. 아, 아니야. 버니가 가르쳐줬잖아. 상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가득차면 쓸 수 있는 주문. 오직 너를 괴롭히고 소리지르는 꼴을 보고 죽이고 상처입히고 바닥에서 구르고 살려달라고 비는 꼴을 보고 싶을때 쓰는 마법. 그 마법의 이름은.
" 아, 아!!!!!!!!!!!!!!! 이 개년아!!!!!!!!! 죽여버린다!!!!!!!!!!!!!!! 그만, 그만해!!!!!!!!!!!!!!!!!!"
생각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어. 다시 느껴진다.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불타는 느낌. 쥐고있던 지팡이도 놓아버리고 그대로 무너져내려버렸다. 소리를 지르는 것도 잠깐이었고 숨이 막혀 소리가 질러지지도 않았다고나 할까. 여전히 감당안되는 고통이다.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기분. 분노도 증오도 화도 전부 사라지고 살고싶다는 절망감이 남는 기분. 바닥의 풀을 쥐어뜯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는 무력한 상황.
" 아!!!!!!!!! 죽여버린다, 죽여버릴거야!!!!!!!!!!!! 이 개새끼들아 그만해!!!!!!!!!!! "
그래도 오감은 살아있었다. 눈이 보였고, 냄새가 맡아졌고, 소리가 들렸으며 입 안에서는 단맛이 느껴졌고 바닥을 기는 피부의 느낌이 느껴졌다. 처음 귀로 들은 것은 '섹튬셈프라' 라는 주문이었고 그 다음으로 본 것은 지팡이 끝이 살짝 빛나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부로 느낀 것은 몸이 베이는 느낌. 빗나가서 맞은 느낌이다. 섹튬셈프라는 절단에 가까운 마법이라 제대로 맞았다면 몸이 두동강 났겠지만 다행인지 베이는 정도에서 끝날 수 있었다. 배에, 가슴께에, 팔에. 날이 선 예리한 칼에 베이는 느낌이 들고 입고있던 옷이 붉게 물드는 것이 마지막으로 보였다. 레오는 입을 열어 이미 거리가 조금 벌어진 자신의 학원 사람들에게, 친구들과 교수들에게 말했다.
손에 쥔 건 누구의 것? 생각을 하기가 싫었다. 구름 위에 앉아있는 것처럼 둥실둥실 떠오르는 고양감이 기분이 좋았다. 이 기분을 엉망으로 만드는 게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날 내버려둬. 단태의 손이 망설이지 않고 레오의 목을 쥐었고 그대로 조르려던 찰나, 들려오는 목소리는 임페리오 저주를 맞은 주단태가 기어코 지팡이를 꺼내게 만들었다. 단태의 손에 들려진 지팡이가 주양에게 향하고 주문을 외우는 소리보다, 단태에게 향하는 공격이 더 빨랐다. 꽤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일까.
엘로프의 주먹이 그대로 꽂혔다. 그러니까, 엘로프가 주단태보다 키가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가 휘두르는 주먹은 필연적으로 단태의 머리 부분을 노리기 마련이였고, 아주 운이 나쁘게도 엘로프의 주먹은 단태의 얼굴을 힘껏 후려쳐서 임페리오에서 강제로 풀려나게 만드는 효과를 주었다. 효과적이였다. 나가떨어지지 않은 건, 무의식적인 움직임이였다.
"- 우리 자기. 다음부터는 조금 상냥하게 대해주지 않을래? 그리고 이거는 좀 놔주라. 달링."
입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고 이가 괜찮은지 확인하는 게 꽤 자연스러웠다. 단태는 자신의 이빨이 멀쩡하게 붙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손을 빼낸 뒤 입안에 잔뜩 고여있는 피섞인 침을 바닥에 뱉으며 엘로프에게 헤죽 - 웃으며 중얼거리고(멱살이 잡혔어도 굉장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는 주양에게 윙크를 해보였다. 하지만, 그 여유도 아주 찰나였다. 단태는 연달아 이어지는 주문이 레오에게 명중하는 걸 보며 웃음기를 거둔다.
아. 빗나갔나. 주양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빌어먹을 지팡이 같으니. 이럴때는 말을 참 안 듣는단 말이지. 그래도 자신이 마로 단태의 주의를 끌기 위해 돌아섰으니 빗맞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적어도. 다음에 이어지는 상황보다. 차라리 주문이 빗나가는 것이 훨씬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 너, 이 빌어쳐먹을.."
생전 처음 느껴보는. 깊은 분노였다. 크루시오, 섹튬셈프라. 기분 나쁜 마법 영창이 향하는 건. 누구? 눈동자를 천천히 돌리고. 검은자를 확 좁히며 각시탈을 쓴 자를 노려보았다. 지금 누가 화를 내고. 누가 이를 갈아야 하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받아들일수도. 용납할수도 없었다. 오늘의 모든 것이. 아니. 탈 비스무리한 무언가를 가진 사람을 만날 때 마다. 그저 이해하지 못하고. 용납하지 못할 일 투성이였다.
째지는 웃음소리를 높여 경박하게 한바탕 웃어재끼고. 후 하고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올려묶었다. 그래. 그렇게 나오시겠다는 거지. 내 앞에서 지금. 두번 연속으로 나의 친애하는 친구들을 그렇게.
".. 당신들은 기본 예절도 없나봐. 응? 최소한의 예의범절은 그 옆에서 퍼덕거리는 닭대가리한테나 던져주셨나."
머리끈을 묶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처음의 임페리오는 정신력을 총동원시켜. 이를 꾹 악무는것 만으로 참았다. 그녀와 나눈 대화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임페리오를 맞은 사람은, 그때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그렇기에 걱정하지만. 적어도 마법을 맞고 고통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기에 인내심을 총동원하여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크루시오랑 섹튬셈프라는 아니지. 이건. 이건 아니지. 한 없이 중얼거리며 다시 입꼬리가 귀에 걸리도록 미소지었다.
"후후후... 너도. 너도 한번 한 없이 데여봐. 그 작열통 속에서. 죽여달라고 싹싹 빌때까지 몸부림쳐봐! 인센디오!"
다시 양반탈에게 한 줄기 업화를 날렸다. 저 아이가 느꼈을 고통을. 그리고. 머나먼 과거에 제 동생이 느꼈을 그 타는 듯한 작열통을. 그대로 선사해줄 수 있기를.
당신의 대답에 침묵이 오간다. 그의 눈동자는 그나마 남아있던 빛을 모조리 잃어버렸다. 당신을 향한 시선은 인형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바람이 불고 머리카락이 모조리 산발이 된다. 지팡이를 물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손을 뻗는다.
"내 너를 신뢰하였단다. 아가. 그래서 난 네게 모든걸 알려주었지. 위험을 감수하고 널 이리 오게 하였어."
그런데 가는 건 있어도 오는 신뢰는 없두나.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모든것이 떠났다. 대체 나는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맹목적인 것이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맹목적인 믿음을 바란 것은 결국 죄란 말인가. 당신을 겹쳐본 것이 죄였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절대 그와 타협할 생각이 없음을 잘 알면서도! 그는 몸을 일으킨다. 당신은 결국 그의 것도 아니었고, 그의 편도 아니었다. 괜한 갱생을 바란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에게 헛된 희망을 품었다.
아. 도망치고 싶다. 버리지 않겠다 맹세까지 했는데. 가주의 자리, 선조의 정신, 그 명예를 모조리 걸었는데. 이렇게 산산조각이 났다. 지금 당장이라도 당신을 버리고 싶었다.
"아가."
당신을 바라보고,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아주 환한 미소와 함께 자리에서 손을 뻗었다. 닿지 않을 당신을 향해.
"거울을 너무 오래 쳐다보지 마렴. 그것은 널 언젠가 필히 파멸시킬 테니. 나는 너를 비추는 거울이고, 너는 나의 거울이란다."
가주의 자리따위, 선조의 정신따위. 모조리 버리면 되는 법이다. 이제 죽은 자의 최후를 명예롭게 지켜주는 언더테이커는 없으리라. 아! 나는 결국 도망치는 것이다. 결국 심연으로! 우리는 쇄문하는 것이 옳았다! 차라리 영영 이곳에 오지 않았어야 했다. 정을 주지 않았어야 했다! 후회, 후회. 나의 지난날의 업보여, 후회여! 아아!
"네 원한다면 멀리 도망쳐도 좋단다. 내 손을 떠나서. 네 원하는 것을 찾으러 가야지. 그게 네 신뢰라면 말이다. 그것이 결국 나와 다른 길일지언정 찾아야지."
그는 더이상 당신을 바라보지 않는다. 쓴 미소를 지으며 난장판이 된, 익숙한 얼굴을 가진 학생들의 싸움을 바라보며 가만히 숨을 고른다. 그는 크루시오와 섹튬셈프라의 향연을 지켜보고, 탈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