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왜 이런, 이런 것이 된 것인지 모르겠다. 왜 여기로 데려왔지? 왜 저 애늙은 꼬맹이 앞에서 세 곡이나.. 그것도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맞아. 단순한 승부욕이다. 저런 작은 꼬맹이에게 놀림받았다는 사실이 - 사실은 스스로 기댄거지만 - 너무 분하고 나 자신을 남득할 수 없어 이번엔 이기려고 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솔직히. 그냥, 감정을 전달하려는 내가 있었다. 어떤 특정한 감정을 전달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내가 그 곡을 들으며 느꼈던 것. 생각했던 것. 그리고 그것을 연주하며, 노래부르며 내가 느꼈던 것. 그것들을, 저 꼬맹이에게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공감받고 싶었다고, 해야할까. 아무래도 처절하게 실패한 것 같지만.
눈을 질끈 감은채로 연주와 노래를 끝까지 해내지 못한 나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눈 앞의 릴리의 얼굴을 살폈다. 그녀의 얼굴은, 음. 한마디로 이상한 얼굴이었다. 입꼬리는 움찔거리면서, 얼굴은 잔뜩 벌개져 있고, 감정을 억누르려고 하는 것 같이 보이는게, 웃음을 참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웃음참기대회에 나온 참가자의 표정? 왜? 그렇게 웃겼나?
"아아! 너 웃었지! 지금 웃음 참으려고 했잖아! 내가 아무리 목소리가 좀 갈라지고 음이탈을 했다고 한들 비웃다니!!!"
젠장, 저런 꼬맹이를 앞에 두고 진지하게 연주하고 노래한 내가 바보였다. 완전히 졌다. 내 연주란 그런 것인가. 뭐 애초에 전문가 수준도 아니고 심심풀이로 하는 아마추어 수준이니 누군가 비웃는다 해도 별 할 수 있는 말은 없지만..
"으극...."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이대로 쥐어박을까, 아니면 머리를 잔뜩 헝크러트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결국 내 실력이 부족하단 뜻이니까. 하고 납득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공감을 바란 내가 바보다. 아니, 그랬으면 승부를 걸질 말던가. 아니, 그렇지만 승부도 없이.. 그냥 연주를 들려주기엔.. 부.. 아냐!!!!!!!!
"난 이런데에 있어선 진지한 남자야. 그냥 2:0으로 해. 뭐, 마지막 곡은 끝까지 제대로 부르지도 못했고."
나는 그녀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엔."
나는 잠시 말을 끊고 숨을 골랐다. 별로, 그런게 아니라.
"제대로 들려줄 테니까. 승부 없이."
승부는 다른 것으로 이기면 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러니까, 굳이 저 꼬맹이를 이기는데 내 연주를 쓸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하고? 애초에 이번에 진건 내가 끝까지 연주해내지 못핸 탓이니까.. 그런데 왜 다시 연주해준다고 나는 말 했을까. 아니, 그 이유는 알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 납득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의식하지 말자. 의식하지 말자. 의식하지 말자. - 하고 생각하는 와중에 이미 의식해버려 얼굴은 철판에 달궈진 아스팔트마냥 점점 달아오르고 있었다. -
"오해하지 마! 뮤지션으로서의 자존심인거니까! 내 연주를 납득시키겠다는, 그, 그래. 그런 뮤지션으로서의 자존심이란거다!"
릴리는 웃으려고 했냐는 말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싱긋 미소지었다. 글쎄, 따지고 보면 울기보다는 웃을 뻔했다는 것에 더 가깝기야 하겠지. 이건 비밀이지만, 릴리는 가쉬가 바라는 대로 그의 감정을 나누어 받아 느끼고 있었다. 단지 그걸 표현해 주지 않을 정도로만 딱 짓궂었을 뿐이다. 자, 여기서 오렐리 샤르티에 씨의 자기변호를 들어 보자.
‘나는 원래 이만큼 장난기가 심하지는 않지만…… 가쉬 씨가 먼저 장난 걸었으니까.’
그렇단다.
돌부리에 걸린 문어처럼 배배 꼬여 가는 가쉬를 지켜보며, 엉덩이를 툭툭 털고 폴짝 뛰어 기품 있게 일어났다. 머리를 옆으로 넘겨 튕기자 분홍색 커튼이 팔랑이는 것처럼 빛이 일렁였다. 승리는 언제나 기분이 좋은 것이다. 때로 예외는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 승리는 명예와 품위의 귀중한 자산이니까.
“그래! 2:0. 내가 이긴 거지? 이럴 거면 뭔가 걸 걸 그랬네. 5만 GP라거나, 바이올렛 코스트 한 개 구해다 달라거나. 안 그래?” “하지만 다음엔.”
릴리도 따라서 숨을 죽이고 그의 말을 들었다. 사실, 지금의 기분이라면 승부 따위 어찌 되어도 좋아. 중요한 대발견을 했으니까.
“제대로 들려줄 테니까. 승부 없이.”
바람이 불어서 춤추는 치마폭처럼 릴리의 머릿결이 흔들린다. 릴리는 그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 조금은 놀란 것처럼.
“…… 아하하하하항! 하하항, 하항─ 푸하하항─!”
이내 배를 잡은 릴리에게서 그 특유의 비음 섞인 웃음이 섞여나온다. 그대로 배를 잡은 채 허리를 구부리고, 아까 웃지 못한 웃음까지 모두 웃어 버리려는 듯 한참을 소리내어 웃었다. 고개를 숙인 릴리의 왕관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그러나 그 다음에 온 말은 장난기도 콧소리도 없는 사뭇 진지한 한 마디였다.
나는 고개를 돌린 탓에 그녀가 일어서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일어서서 먼지를 터는 소리가 들릴 뿐. 고개를 돌리고 싶진 않았다. 이 표정을 보이고 싶진 않으니까. 패배자의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을 뿐이다. 거기에 지금 그녀의 모습을 봤다간, 나는.
이어 나의 승부 없이 연주를 들려주겠다는 말에 그녀는 ...엄청난 폭소를 터트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대폭소를 하시는건 마음에 금이 가는데 말이지. 그렇게 웃을만한 것이었나? 내 연주?"
어디까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 셈이냐 저 애늙은 꼬맹이는. 하고 생각하면서도 그대로 웃게 냅둔다. 저렇게 시원하게 웃는 모습이, 솔직히, 단순하게 비웃는 것 만으로는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를 잡고 허리까지 숙이며 끄윽거리면서 웃다니. 저 왕관은 떨어지지도 않나. 아아, 웃어라 웃어. 이제 어찌되든 상관 없게 되어버렸다. 짜증나긴 하는데, 왠지 그렇게 화나는 것도 아니고. 모르겠다. 감정이 복잡하다.
실컷 대폭소를 한 뒤, 그녀는 웃음을 멈추었다. 실컷 웃으셨나, 하고 생각하는 와중에 그녀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게 바뀌었다. 이어 그녀는-
“─기대하고 있을게.”
라며, 지금까지는 본 적 없는, 어른스러움을 가장한 표정이 아닌, 어쩌면.
진심일지도 모르는 그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나는 그 얼굴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누가 날 막은 것도 아니고, 시간이 멈춘 것도 아니었지만 그저 정신을 빼앗긴 채로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대폭소로 인해 눈가에 살짝 눈물이 맺혔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 손등으로 스윽 눈물을 닦아주었다.
"이건 전번의 복수."
복수치곤 소소하지만 말이다. 더이상은 한계다. 침착함을 가장하고 있지만 더 얼굴을 보고 있다간 기계가 과열로 터지는 것 마냥 '푸슈슈' 하는 소리를 내며 머리가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자리에서 몸을 홱 돌린 뒤
"이번 승부는 내 패배지만, 다음엔 지지 않는다고! 오, 오늘은 이정도로 해두마. 기억해두라고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