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웃음이 나오는 걸까. 사실은 릴리도 그 이유를 잘 몰랐다. 웃음은 기적의 부산물이라는데, 무슨 기적이 일어난 것인지 감도 잡지 못하고 있었으니까다. 아니면, 마치 읽던 중에 덮어 놓은 책처럼, 지금은 대답을 멈추기로 한 것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숨을 고르는 데도 꽤나 시간이 걸릴 만했지만, 강가에 부는 산들바람 덕분에 몇 호흡 거치지 않고도 숨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손등으로 자기 눈가에 맺힌 눈물을 찍는 그를 올려다보면서, 릴리는 의아한 눈빛으로 있다가,
“…… 복수?”
그런 다음에 아, 하고 짤막하게 소리를 낸다. 설마했지만 그것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다니, 릴리는 이제야 깨달았다. 평소라면 명석한 두뇌를 이용해서 이 순간에도 가쉬의 심사를 뒤틀리게 할 만한 일을 떠올리려고 애썼겠으나, 지금은 기분이 좋으니 그저 상냥한 손길을 받는 것으로 만족해 두기로 했다.
뭐랄까, 굉장히 기품 있는 여인 같은걸! 에스코트를 받는다니 말이야! 자신감에 찬 헤헹─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영문 모를 조바심까지 느껴지는 가쉬의 태도와 정반대로 릴리는 완전히 여유를 회복한 모양새였다.
“응. 기억해 둘게, 가쉬 씨.”
그 말은 사실이었다. 기억력이 몹시 좋은 릴리는, 절대 잊지 않을 테니까. 절대.
오버히트 직전의 기계처럼 묘하게 오작동하고 있는 가쉬를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며 눈웃음지었다. 그리고 서코트의 옷매무새를 단단히 여미면서, 바람을 모로 맞으며 선 채, 그를 향해 시선을 살짝 비껴 돌리고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언젠가는 나를 꼭 이겨 줘. 기억하고 있잖아? 승부의 내용.”
가쉬가 회복할 시간을 주려는 듯 주위를 사뿐사뿐 어슬렁대다가, 큰 나무 쪽으로 다가가 나무껍질에 손을 얹어 그 촉감을 느꼈다. ‘경기장’이라고 부르긴 했지만 역시나 분위기가 좋은 곳이다. 이런 장소를 미리 알아 두었다는 거겠지. 그가 없을 때 몰래 와서 쉬기나 할까, 라고 릴리는 생각한다.
그녀의 기억해두겠다는 말은, 절대 허투로 들리지 않았다. 마치 스스로에게 언령을 거는 것처럼, 절대적인 힘을 가진 약속의 말처럼 들려왔다. 이어 그녀는 나에게 승부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기억하고 있어."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승부의 내용은 잘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나 또한, 계속 지기만 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최후에이기게 되는 것은 나일테니까. 정의는 언제나 마지막엔 이기는 법이다. 이어 그녀가 큰 나무쪽으로 다가가 나무에 손을 대자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대강 눈치챈 나는 입을 열었다.
짓궂고 나쁜 웃음이 릴리의 입가에 맴돌았다. 그 웃음이 언제 사라질지는 릴리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연금술은 결국 운명을 일으키는 힘이 마음에서 나온다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될 거야. 릴리는 시약을 불 위에 올려놓았을 때처럼 경건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있기로 했다.
“그런가. 아무래도, 나도 여기로 오는 길이 잘 기억나지 않는단 말이지. 역시 가이드해 줄 사람이 없으면 안 되─겠─네.”
나무의 질감을 느끼던 손은 드레스를 스쳐 먼지를 닦아 내었다. 푸른 이끼의 내음이 손 틈에 그윽하게 남았다. 식사 권유라. 마침 배가 고픈 차였다. 그야, 그렇게 실컷 웃어 댔으니 당연히 기력이 빠지고 말지. 미꾸라지라도 이렇게 웃고 나면 배가 고파서 뭐든지 먹어야만 할 것이다.
이 정도면, 외식에 대한 구실은 됐겠지?
서두르지는 않는 종종걸음으로 그를 뒤따라간다. 곧 수풀을 빠져나가면 대로가 나온다. 햇살은 강하고,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래도 릴리는 가쉬가 내민 손을 잡았다. 풀내가 흐르는 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