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7 ㅋㅋ 관계란 정리할거 벌써부터 고민되는건 나만 그래? ㅋㅋㅋㅋㅋㅋ 사실 쭈주라면 살짝 노리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썰풀이 제안한 거라구~~ 후후 내가 그저 관계만을 위해 제안했을거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볼따구에 손대는 건 꼭 일상에서 해보는 걸루 하자구~~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친구인 너를 위해서 내가 한 발 물러나주도록 할게~ 그리고 나는 너가 어떤 반응을 보여주던지 만족한다구? 그래도 역시 감정 기복이 너무 없으면 조금 심심하지 않을까나~?"
비록 재미는 반감될지라도 사람마다 보이는 반응들이 마냥 한결같다면 그건 이렇게 무기력한 반응을 보이는것보다도 훨씬 재미가 없을 것이다. 컨트롤 C+V로 복사 붙여넣기를 한것같은 반응은 주양 역시도 사양이었다. 다만, 역시 조금은 사상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생기고 그로 인한 의문점 역시 생기기 마련이었다. 자신은 짜릿한 감정 기복과 그때그때 시시각각 다른 반응을 선호하는 반면 당신은 그 반대였다고 느꼈으니. 그나마 직설적으로 팍팍 꽂아넣지 않은 것은, 서로 친해지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반영된 결과였다.
"어머나~ 좋아. 그렇게 해 주겠어? 그 재판에서 나한테 유죄를 선포하고 죗값을 톡톡히 치르게 할 수 있도록! 아아. 분명 그것도 장난 아니게 짜릿할거야. 후흐흣.."
괘씸죄. 비열한 사람. 그 어떤 달콤하고 부드러운 수식어보다도 자신에게 찰떡마냥 잘 들어맞는 수식어. 자신의 타고난 성질머리를 잘 표현해줄수 있는 단어들. 주양의 입꼬리는 다시 한 없이 올라가 비열한 미소를 내걸었다. 아아.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친해지고 싶다. 친해진다면 지금의 이 수식어를 두 번 다시는 듣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부디 자신의 예상을 깨고 그때도 자신에게 이런 수식어들을 잔뜩 내걸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역시 이래서, 평소 대화 교류가 적었던 상대와의 본격적인 대화는 상당히 즐거울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물론 그 다음 과정은 그 업보를 청산이라도 하듯 보기 좋게 바닥에 풀썩 자빠져버리는 것이기는 했지만. 으윽, 하며 주양은 땅과 맞닿아버린 손에 힘을 주었다. 먼저 꼼수를 허락한 것. 자신의 특기를 내어준 것이 분했다. 그렇지만 재미있다. 자신에게 거리낌없이 도발을 걸며 설교를 하는 상대가. 방금 자신과 같은 역경을 겪었던 사람이라는 사실이 더더욱 주양을 짜릿하게 만들었다. 이거지. 바로 이거지. 이 맛에 내기를 걸고 도박을 하는 거지. 이런 다채로운 반응을 보이는 상대라면. 그 무엇이라도 내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자신의 마법이 명중한 것을 확인하고 몸을 툭툭 털고 일어나며, 주양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치만, 이기기 위해서는 원래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게 맞잖아? 이 세상은 정정당당만으로는 살아가기 힘들기도 하고~ 뭐랄까, 일단 이기기만 하면 그걸로 그만이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게 당신에게 이야기하면서도 슬쩍 고개를 갸웃일수밖에 없었다. 잘못된 사람이 아니다. 내가? 그럴 리가. 잘못된 사람이 아니었다면 분명 인생을 이렇게 살지 않았겠지. 조금 더 보람찬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다. 주양이 그 생각에 빠져들어버려 잠시 망각하고 있는 것은 지금의 내기에는 청을 걸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가벼운 걸 걸었음에도 진심으로 이기려 드는 것은 주양의 천성이요 평소 걸던 내기에서 들인 몹쓸 버릇이기도 했다. 물론 얍삽이를 사용하면 승부 그 자체에서 오는 재미. 즉 건 사감과의 동전 내기에서 느꼈던 상상 이상의 아찔함은 느끼지 못하지만, 아찔함을 느끼는 것 만큼 자신의 승리에 진심이었기에. 그런 방법들을 쓸 수 있을땐 최대한 사용하는 것. 그것이 주양의 내기였다.
"맙소사. 스투페파이를 쓰려 한거야? 나는 폭파 마법 쓰려다 말았는데! 역시 우리 뭔가 통하는게 있나봐. 응? 그냥 내기가 아니라 모의전이었다면.. 분명 더 재미있었을텐데. 아쉬워라~"
꼼수를 쓰고. 서로 그 꼼수에 넘어가고. 그럼에도 서로 분하다고 생각하며, 예상하지 못한 변수까지 두는 상대라면. 분명 모의전에서 더욱 재밌게 겨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러지 못하는 것이 꽤 아쉬웠다. 나중에 서로 겨룰 기회가 찾아온다면, 실력 발휘좀 해 볼까. 주양은 살짝 떨어진 거리에서 느릿느릿한 당신을 바라보며 그저 늘 짓는 미소를 짓고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다가 다시 지팡이를 당신에게 겨누었다. '피니테.' 하고, 당신에게 걸린 마법 주문을 풀어주며.
"그래도 나. 먼저 앞서가지는 않았다? 친구가 정정당당을 원하는 데 한번쯤은 그렇게 해 줘야 더 재미있는 법이겠지. 자. 여기서부터 다시 내기 시작하는거야~?"
이번엔 마치 동일선상에서 출발하겠다는 것처럼 조금 뒤로 물러서서 자기 자신에게 핸디캡을 주었다.
오늘도 평화로운 니플러 집단, 오늘도 수확이 괜찮았다는 듯이 그들은 자신의 물건들을 펼쳐두고 낄낄대며 즐거움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 수상한 남자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라라랄라~ 라랄라라~~"
콧노래를 부르면서 다가오는 그의 모습은 악마나 다름 없었다. 분명 보기에는 평범한 양복같았으나 전신에 구멍이 숭숭뚫려 맨살이 보였고, 분명히 안감을 덧대고 있을 셔츠는 찾아볼수도 없었다. 거기에 매단 넥타이는 말그대로 언밸런스의 극치, 거기에 화룡점정으로 어디서 났는지도 왜 쓰고 있는지도 모를 머글 사회의 소방관 모자까지, 그 두려운 패션에 니플러들이 움찔 거리며 도망갈 채비를 하기 시작한다!!
"어딜 도망가!!"
알수없는 괴성과 함께 순식간에 광기가 니플러 하나를 덮쳤고, 그 온몸 구석구석을 덮치는 광기에 가까운 손놀림에 니플리는 웃음과 비명의 중간 사이의 새된 소리를 내면서 있는 물건을 죄다 뱉어낼 수 밖에 없었다. 그 끔찍한 광경을 목도한 그들의 시선과 광기의 눈빛이 마주친다.
악몽이었다. 분명히 아까전까지만 하더라도 재밌게 그 상황을 즐기고 있던 자기들이 아니던가, 그 소박한 즐거움은 갑자기 장내에 나타난 한 마법사로 인해 모든게 깨져 버렸다. 지금 이 니플러는 그저 그 공포가 지나가기만을 빌면서, 숨을 죽인채 나무 뒤에 웅크리고 있었다.
"킁킁, 냄새가 나는데, 도둑놈 냄새가....." 순간적으로 목구멍 너머로 목소리가 튀어나올뻔 했다. 초인적인 참을성을 내며 니플러는 지금 이 지옥같은 시간이 지나가길 빌었고, 마침내 신이 그 기도를 들어주기라도 한 듯이 아무런 인기척도 나지 않았다. 그 순간에 안도, 다음부터는 착하게 도둑질을 하겠다 마음 먹고 신에게 감사를 표하며 천천히 일어날려는 찰나,
"찾 았 다."
고개를 돌아보자마자 바로 마주친 광기의 습격에 니플러는 그저 구슬픈 비명을 내며, 탈곡기 마냥 탈탈탈 털리고, 행해질수 있는 온갖 간지러움의 향현 앞에 있는 것을 다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후, 그자리에는 나무위에 걸린, 털이 듬성듬성 빠져버린 니플러 한마리만 걸려있을 뿐이었다.
니들러의 새됀 소리가 하늘 높이 울려퍼진다. 광기가 습격해오고나서 벌써 30분의 가량의 시간이 흘렀다. 도망칠 동료들은 다 도망쳤고 도망치지 못한 자신을 포함, 총 3마리의 동료들이 숨어 있었다. 하지만 진즉에 들킨것인지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울려퍼졌고, 토끼굴 속에 숨은 자신만이 이 공간에 남아 홀로 외로이 버티고 있었다. 제발 들키지 마라라고 빌면서 어떻게든 조용히 지키고 있었지만, 갑자기 우악스러운 손길이 그 자그마한 몸뚱이를 훑기 시작한다
-"ㅃ....."
비명이 나오려는걸 억지로 참고 견디자 계속 자신을 잡으려던 손길은 그대로 빠져 나갔다.
"뭐야, 토끼였나?"
그 말 한마디가 들리고 니플러는 천천히 눈을 뜬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천천히 굴밖으로 나온다, 하지만 현실은 잔혹한 법, 그 해괘망측한 공포가 자신을 내려다 보며 싱긋 웃었다.
"히얼스 쟈니~"
그와 동시에 우악스러운 손길이 가여운 니플러의 자그마한 몸뚱이를 덮쳤고, 비명이 되지 못한 새된 소리와 함께 그 니플러의 몸을 샅샅이 훝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니플러 또한, 그의 동료들과 같은 운명을 맞이한 것이러라...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부족한 체력과 지쳐빠진 정신은 민을 재미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누가 마법사 아니랄까봐 운동을 멀리하더니 그 업보를 그대로 받은 까닭이었다. 민은 고개를 한 번 까닥이고 만다. "주궁 사람이라 모르려나? 나는 그 반대에 가깝거든요. 기숙사를 추릴때 주궁을 먼저 제외했고 그 다음은 청궁이었거든요. 봄이랑 여름은 저에게 너무 버거워서말이에요." 당신의 기대치도 나에게 버거울까요? 장난스러운 민의 목소리가 주양의 귀에 닿았다.
"짜릿하다고요? 그 끔찍한 곳이? 나참, 제가 말했지만 그쪽도 참... 이상한 소리하지 마세요. 그 곳에 가면 일상을 송두리채 빼앗기게 되는 거라고요. 자, 불 쫓는 부나방처럼 구는 짓은 그만합시다. 당신은 나방이 아니라 사람이에요. 때로는 돌아갈 줄 알아야지요."
민이 과장된 목소리로 답한다. 평범한 반응에서 벗어났다고 바로 훈계질하는 모양새가 학생이 아니라 어디 서당에 고집센 훈장님처럼 보였다. 좀 더 속된 표현으로는 꼰대같다라고 말할 수 있다. 민은 주양의 어깨를 붙잡고 몸을 틀어 파도치는 푸른 바다를 향하게 했다. 민은 바다의 지평선 끝과 하늘에 맞닿아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가 보더라도 퍽 아름다운 정경이었다. "당신이 쫓을 건 여기 있네요?" 웃음을 흘리며 주양으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민은 주양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는데, 정말로 대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기보다는 느려터진 몸이 답답했기 때문이었다. 대신 눈을 가늘게 뜨고 팔짱을 낀 모습이 모래에 자리잡은 질긴 초목처럼 느껴졌다. 마법주문을 풀자마자 좋은 나무 만난 딱다구리처럼 쪼아될지 모를 일이었다. 실로, 민은 주양의 말이 옳지 않다 여겼는데, 그건 민의 오래된 딜레마이기도 했다. 마법이 푸리자 민이 숨을 토해냈다. 주양이 다가오자 불쑥 검지를 내밀며 못한 대답을 몰아붙인다.
"우선, 수단과 방법을 가린다고 필패할 내기라면, 그냥 지세요. 우리가 가진 떳떳함은 정정당당하게 살기 힘들다고 포기할 수 있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이기는 것 자체에 희열을 느끼시나요? 그럼 제가 몇번이고 져드리죠. 선배는 방법과 수단을 가리고 이기세요."
잠시 몸이 마비되었다 풀렸기 때문에 자신의 말이 얼마나 빠른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주목할만한 점은, 민이 빠르다 생각한 자신의 말이 평범한 사람들의 말 속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어느정도 감을 잡은 민의 목소리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평소처럼 굼뜨고 나긋한 음성이었다.
"오, 농담도 싫어요. 지금까지 벌인 모의전의 개수도 손에 꼽을만한데 선배는 아주... 많이 해봤을 것 같네요. 선배랑 맞붙었다가진주 품은 조개꼴 날게 뻔히 보여요. 전 실전에 형편없으니까요. 상상만해도 굴욕적이고 치욕적이에요."
민이 투덜투덜거리며 에둘러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다. 자신은 형편없는 싸움꾼이고 주양의 흥미를 끌만한 부분이 전혀 없음을 어필하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오호, 민이 주양의 행동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봤자 자신은 질 것이다. 처참하게 질지, 아니면 아슬아슬하게 질지의 차이겠지. 그럼에도 이 상황이 제법 기꺼웠다.
결론적으로 주양의 반응은 그로서는 만족할 만했다. 갑작스럽게 숙연해지는 분위기나 과한 친절 같은 것에는 진저리가 났기 때문이다. 어쩌면 상황이 상황인지라 주양에게 닥친 위협이 그런 사소한 문제 따위는 중요하지 않게 만들어버린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와 주양의 심정은 어찌 되었든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지금 이 시각, 이 자리엔 오로지 던져질 사람과 던질 사람만이 존재할 따름이니까.
"늦었어요."
색 옅은 푸른 눈이 번뜩이며 휘어진다. 말투가 묘하게 단호한 한편, 목소리에서 숨길 수 없는 흥이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강력한 묵살이 뒤이어진다. 짧게 숨을 참고, 허리가 돌며, 휘둘러지는 팔을 끝으로 붉은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주양이 저 멀리로 비행했다. 사람이 날아가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인 포물선까지 그리며…… 풍덩. 혹시라도 주양이 다치거나 허우적거릴지도 모르니 가까이 가 확인하려 했었다. 원래 사고란 항상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법이니 주의해서 나쁠 것 없으니까. 본인이 위험한 짓을 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뺀다면 지당한 생각이긴 했다. 하지만 주양이 손을 붙잡고 뗀 첫 마디를 들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해서, 그는 안부를 묻는 것보다 먼저 웃음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솔직하게 말해 보세요, 이러려고 일부러 장난치신 건 아니겠죠?"
오히려 주양은 아까보다도 더 활발해진 기색이다. 이는 기분 탓이 아니리라. 붙잡히기 직전 불안해하는 기색에 깜빡 속아 그대로 속행해버렸는데, 이제 보니 던져지는 걸 즐긴 것 같다……? 짜릿하다, 믿고 있었다, 소문을 자자하게 들었다, 그리고 맨 처음 했던 '던져버리지 않으면 계속하겠다'라는 묘하게 구체적인 요구사항까지. 돌이켜보면 이 모든 게 주양의 익스트림 어뮤즈먼트를 위한 밑밥이 아니었나 싶다. 던지기 전까지 장난칠 거라 말하기도 했으니 알아챘더라도 주양을 던져야만 끝이 났을 테지만. 웃음기 어린 한숨을 짧게 내쉬고는 주양이 휘두르는 속도에 맞춰 팔을 마주 흔들었다.
"네, 저도 좋아요. 그런데 어디 다친 곳이 있으신…… 괜찮은 것 같긴 하네요. 맞죠?"
평소 같았으면 남의 상태를 단정하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 테지만 정말로 주양은 말끔한 것만 같아 솔직한 심정이 나와버렸다. 한편 대화를 하려니 어느새 라쉬가 멀찍이서부터 느릿느릿한 발짓으로 헤엄쳐 왔다. 상황을 관망하자니 물놀이는 잠시 휴전이라 생각해서인가. 아니, 정확히는 수영에 익숙하지 않아 슬슬 혼자서 헤엄치고 있기가 힘들어진 모양이다. 맨 처음 개헤엄을 도와준 데엔 이유가 있었다. 자연스레 다가온 개가 그의 팔뚝에 휙 제 상체를 올리고 매달리자 그는 어르듯이 제 어깨를 짚고 올라앉도록 라쉬를 번쩍 안아 들었다. 안락하게 안착한 커다란 개가 고개를 돌려 주양을 보았다. 혀를 내밀어 바닷물에 젖은 제 코를 낼름 핥고는 목을 쭉 빼 주양에게 고개를 들이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얘는 라쉬예요."
아무리 힘이 좋다지만 사람 하나만 한 덩치를 계속 앞에 안아 들고 있기는 무엇했는지 그는 고개를 숙여 개를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자세를 바꿔 라쉬를 등에 들쳐업었다. 무게가 아니라 부피 큰 애견이 주양의 시야를 가리는 게 문제였던 모양이다. 의기양양하게 주인의 등짝을 밟고 선 라쉬가 정상에서 앞발을 휙휙 흔들며 주양에게 무어라고 발짓을 했다. 아마도 아는 척 내지는 관심 끌기 비슷한 것으로 추정되는 동작이다. 자기소개가 주제인 듯하니 한창 기고만장해진 상태였다.
길은 여러개여도 결국 닿는 답은 하나였다. 받아치고 싶어서, 스스로를 지키고 싶어서, 남을 고통주고 싶어서. 여러가지 길이 있지만 결국은 용서받을 수 없는 저주를 잘 다루고 싶다는 것에 도달한다. 레오는 버니가 가까이 다가오는 만큼 뒤로 조금 물러났다. 무서워하지말고 잊어버리라는 말에 레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지. 귀곡탑의 문이 열리고 레오는 안으로 따라들어갔다.
" 어.. "
살아있는, 그것도 어린 니플러. 삑삑거리는 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여기에 대고 주문을 써보라는 말. 레오는 당황한 표정으로 니플러와 버니를 몇 번이나 번갈아 쳐다보았다. ' 지금? 얘한테? ' 하고 쓸데없는 말을 덧붙이기도 하면서. 거부감이 확 올라왔다. 그럼에도 레오는 꿈지럭 거리며 천천히 지팡이를 들고 니플러를 겨누었다.
살아있는 생명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저주를 쓴다는 것은 꽤나 거부감이 드는 일이다.
여기서 살아있는 생명이라 함은, 조금 오만하고 편파적이지만 어느 정도 크기가 있고 흔하게 볼 수 있으며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것들 따위의 총칭이었다. 다른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는 이미 어느정도 익숙해져있었다. 싸움에 뛰어들고 주먹을 날리고 피를 토하게 만들었었으니까. 다른 점이라면, 그 때는 서로에게 나는 널 때리고 너는 날 때린다는 무언의 합의가 있었다는 것이고 한 쪽만이 고통받는 것이 아닌 일종의 경쟁처럼 서로의 이념이 강하게 부딪히는 것이었고 지금은 아무런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고통을 준다는 걳이었지.
막상 저주를 사용하려고하니 역한 거부감이 잔뜩 올라왔다-는 사정이랄까.
여하튼 레오는 몇 번이나 버니와 니플러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저주를 사용했다. 움찔움찔 거리며 제대로 말을 못하고 몇 번이나 주문을 삼키다가 무언가를 결심한듯 주문을 사용했다. 1초, 3초, 5초.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자니 이 선택은 역시 아니었나 싶고, 이미 끝난 일인데 어째서 자꾸만 생각이 나는 것인지. 약간의 자기혐오와 미안한 감정, 양심의 가책과 해냈다는 뿌듯함과 잘못을 저지른데서 오는 짜릿함이 소용돌이 쳤다.
"오호라.. 그럴 수 있어! 그치만 감정 기복이 없는 게 아니라면 내 기대치는 너한테 전혀 버겁지 않을거야. 안심해도 좋아~?"
물론 자신의 기대치를 받아들이느라 힘들 수 있다거나 혹은 자신의 기대치가 너무 과하면 이야기해달라는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쓸데없는 말만 이것 저것 끼얹어봐야 영 바람직스럽지 못하게 될 것이며 주양 자신은 그런 말들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봄과 여름은 자신에게 버겁다는 당신의 말이 저말 그 계절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거라는 것이었다. 청궁. 그리고 주궁. 활동력이나 행동력이나 어디 하나 꿇릴것 없는 쌍두마차와도 같은 기숙사였으니, 당신의 성격에는 충분히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치만! .. 아으으, 알았어, 알겠다구~ 나한테도 아직 해야 할 일이 한 가득 남아있으니까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안 할게. 그러니까~ 훈계는 그만! 멈춰!"
기린궁으로 간 선배 이후로 자신에게 훈계를 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훈계는 언제 들어도 진절머리나는 것이었다. 게다가 더욱 구체적으로 체계화된 훈계를 들으니 아무리 주양이라도 이번만큼은 완전포기선언을 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축하한다. 당신은 주양의 몹쓸 대쉬와 장난을 잠깐이나마 억제하는 것에 성공했다! 물론 질려하는 반응을 보였기는 해도 이후 자신의 시야 가득 들어온 바다 앞에서는 저도 모르게 오오 하며 감탄을 내뱉었다. 뭔가. 그냥 생각 없이 보는 바다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지금 당장의 내기를 쫓으라는 말이기는 하지만 이런 풍경과 어우러지니 더더욱 감격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조금. 이상한 기분이었다.
"으. 지는 건 싫다고! 그치만 무기력하게 져주는것도 싫어. 떳떳함? 상황에 따라서는 버릴 줄 알아야지! 사람이 가진 융통성이라는 건 취할 땐 취하되 버릴땐 가차없이 버릴줄 알아야 비로소 그 빛을 발하는 거라고?"
으.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열심히 자신이 그동안 품고 있던 개똥철학을 남발한다. 그러면서 당신의 말들에 하나하나 반박하고 들기 시작했다. 말하지 않은 이유 중에는, 자신의 반칙으로 화내거나 짜증내는 모습을 즐긴다는 것 또한 존재했다. 그냥 또 다시 임페디멘타를 써서 느릿느릿하게 만들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 주양은 괜히 입맛을 다시면서 지팡이를 만지작거렸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아까처럼 같이 비명 지르며 달려나가던 유쾌한 모습이 그리워졌다. 자신의 고장난 성질머리가 지금의 상황을 초래했다는 것은 새까맣게 망각한 상태였다.
농담도 싫다. 굴욕적이고 치욕적인 것도 싫다. 그렇다면? 주양은 이제야 감이 좀 잡힌다는 듯 아까의 질린다는 표정을 벗어나 다시 환하게 미소지었다. 아하. 하고 괜히 손가락까지 착 튕겨가며 과장되게 알겠다는 몸짓을 하면서.
"그래, 이제 이해했어. 너도 나처럼 지는 거 싫어하는 그런 사람이구나~! 에이. 진작 말하지! 내 말마다 하나하나 반박하길래 엄청 깐깐한 사람인 줄 알아버렸잖아~"
결과적으로, 끊길 뻔한 당신에 대한 흥미는 질기게도 다시 이어져버리고 만 것이다. 전혀 쌩뚱맞은 뜻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며 어깨를 으쓱이는 모습이 마이페이스가 극에 달한 모습이었다. 도대체 이런 사람이 어떻게 학생대표가 된 것인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화룡점정으로, 주양은 그 생각이 옳은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오케이, 좋아~ 이번만큼은 내 친구가 원하는 대로 정정당당하게 붙기로 했으니까! 대신. 결과에 대해 번복하는건 절대 안된다? 그때는 다시 반칙을 써서 내가 이기는 결과로 돌려버릴거니까?"
이 정도 핸디캡이 주어지기는 했어도 충분히 당신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묘한 믿음이 있었기에, 주양은 어깨를 으쓱이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내비쳤다. 물론 그 이면에는 다시 시작된 정정당당함에 대한 짜릿함 역시 남아 있었다. 그것만으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며 부정적인 태도를 내비치기는 했어도, 역시 누가 이길지 모르는 승부 앞에서는 다시 겜블러로써의 본질에 불이 지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전에는 먼저 내기를 제안했던 사감님. 이번에는 자신의 말에 하나하나 반박하며 태클을 거는 재밌는 후배. 그때도 이겻으니 지금도 이길 것이라는 보장이 없긴 했으나. 이왕이면 이겨서 당신에게 뭐라도 한 턱 쏘며 당당한 모습을 내비치고 싶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출발!"
시작 신호가 떨어지고. 주양은 당신이 달릴 때까지 잠깐의 시간을 준 다음에야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잦은 장난과 내기로 청궁 사람이냐는 오해를 받은 적이 많았지만.. 지금만큼은, 자신이 왜 주궁 사람인지 보여주겠다는 듯. 서서히 박차를 가해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던져지기 전 마지막으로 느낀 것은 당신의 목소리에 담긴 숨길 수 없는 흥이었다. 황당해하는 것은 역시 겸손함일 뿐이었을까. 패대기치는 걸 꽤나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조금 과도하게 나가는 건 아닌가 싶었기는 했으나 지금은 그 생각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후였다. 서로 즐거워하고 있다면 그걸로 그만이지 않겠는가.
".. 아하하~ 눈치가 꽤 좋은데! 사실 조금 노린것도 없지는 않았어! 남들이 공인하는 패대기 머신이라면 실력이 대단할거잖아? 뭐랄까. 나도 그 명성, 한번 체험해보고 싶었다고 할까나~"
캡을 벗고 머리에 묻은 물기를 대강 털어내며 다시 씩 웃었다. 어쩌면 너무 그 속이 훤히 드러나는 접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당신의 반응을 보면 그건 아닌 듯 싶어 괜히 마음이 뿌듯해졌다. 역시 처음에 패대기쳐달라고 말하지 않고 이래저래 진심으로 나오게 만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그런 부탁을 받으면 조금 당황해 진심보다는 약하게 나오지 않겠는가. 상대가 진심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 밑밥은 필수다.
물론 자신의 물보라마저도 순식간에 가르고 제 앞에 어마어마한 위용을 선보이며 다가왔던 당신의 행동은 전혀 예상 밖의 일이라 순간 그 기세가 꺾여버리기는 했다만. 지금만큼은 그것도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지금의 상황을 더 짜릿하게 즐길 원동력이 되어주었다고 생각한다면 전혀 자존심 상하거나 하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흑흑, 패대기 당하고 걱정까지 못 받았어... 그래도 너가 말한 것처럼 아주~ 괜찮으니까, 그렇게 해도 상관 없지만! 아. 근데 다음에는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던져줬으면 하는 희망사항이 있어~"
꽤 강했던 패대기의 영향으로 생각보다 깊이 자신이 푹 가라앉았다는 영향이 있다. 그래도 밑바닥에 큰 돌이나 따개비나 굴껍질 같은 위험요소가 없이, 조금 거칠지만 그래도 보드라운 모래가 깔려 있어서 큰 상처는 면했지만. 그대로 확 꽂히는건 역시 조금 아프기는 했다. 이윽고 아까 자신의 물보라를 맞을까 걱정했던 큰 강아지 한 마리가 이리로 서서히 헤엄쳐와 당신에게 매달리자 저도 모르게 눈매가 곱게 휘어졌다. 귀엽기도 해라. 주인과의 평화로운 시간을 방해했던 것이 조금은 무안해질 만큼 훈훈한 모습이었다. 역시 이번에도 다른 상황은 신경쓰지도 않고 자신의 만족감을 위해 시작했던 것이 원인이었다는 생각에 그 무안함이 커졌을지도 몰랐다.
"오호라~ 여기에 이 친구를 데려왔다는 건. 역시 이 큰 친구가 너의 패밀리어일까? 안녕, 라쉬~ 의도치 않게 주인하고 어울려 노는 시간을 방해해버렸네. 양해 바랄게?"
대상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미안하다는 말을 쉬이 못하는 것은 역시 어쩔수 없는 주양의 천성이었다. 자신에게 고개를 내미는 라쉬의 모습을 보며. 정확히는 시야 한가득 차버린 그 모습을 보며 주양은 한차례 경박스럽게 웃어대면서 라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패밀리어는 주인 닮는다고 해야 하나. 덩치가 큰 것 하나만큼은 주인과 굉장히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청이는 어디 갔으려나. 아까 갈매기에게 쫓겨 기숙사 방으로 날아가는 모습은 못 봤기에 주양은 청을 찾느라 한참 주변을 둘러보는 헛짓거리를 하고 어깨를 으쓱였다.
"으음~ 나도 패밀리어를 좀 소개해주고 싶은데 지금은 안 보이네! 저택에 오고 맨날 저쪽 절벽에 있는 갈매기랑 싸움 붙어서 시끄럽게 굴던 애인데.. 너도 알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뭐, 자기 앞가림은 알아서 잘 하고 있을 테지만~"
생김새를 묘사하지 않고 소리만 알려준 것은 당신에 대한 아주 약간의 배려였다. 어차피 생김새를 알려준다고 한들, 금방 떠올리기는 힘들 테니까 그 다음으로는 자신이 생김새 묘사를 잘 못 한다는 점도 한 몫 했다. 앞발을 휙휙 흔들며 발짓을 하는 라쉬의 모습을 보며 주양은 컥 하는 소리를 냈다. 조금. 심장에 유해한 모습이다. 휙휙 내젓는 앞발을 살포시 잡아, 아까 악수하던 것보단 약하게 위아래로 살살 흔들며 순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사람을 대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태도로.
"언니라고 해야 하려나, 누나라고 해야 하려나? 아무튼 너 주인이랑 친해질 예정인 서 주양이야~ 잘 부탁해, 라쉬?"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일단 한번 이야기를 걸어보는 것은 귀여운 생물을 앞에 둔 사람의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 일 것이라고 주양은 믿고 있었다. 괜히 손가락 끝으로 라쉬의 코도 한번 톡 건드려보고.
속을 비워내고 싶다는듯 헛구역질을 하던 레오는 '어으..' 하고 천천히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듯 했지만 자신을 무시하는 소리가 분명히 들렸다. 이해할 수 없다는 말투에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말투. 레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뭔가를 느꼈다. 분명히 가슴속에 느껴지는 감정인데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그런것. 기분이 나쁘다, 기분이 좋다 따위가 아닌 조금 더 고차원적인 어떤 것.
아, 이런거였구나.
" 이히히... "
레오는 조금은 알겠다는 것인지 웃음소리를 흘리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증오라던가, 죽이고싶다던가 하는 마음따위가 아니었다. 왜 싸웠는지를 생각해보면 그 싸움의 발단은 항상 자신을 무시하는 소리와 그 무시에서 비롯된 시비에서 시작되었지. 시작만 다를뿐 끝은 전부 똑같았다. 레오는 뭔가 결심했다는듯 두 어번 정도 심호흡을 하곤 버니의 앞에 섰다.
" 야. 부탁 하나만 하자. "
지팡이를 손에 꼭 쥔 레오는 지팡이를 쥐지 않은 손으로 자기 볼을 톡톡 쳤다.
" 한 대 때려봐. 세게 때려도 괜찮아. 못 때리겠으면.. 그래, 배를 때려도 좋아. 세게 한 방 날려봐. "
필요한것은 증오나 죽이고싶다는 마음의 아니었다. 누구나 감정은 가지고 있고 레오역시 그런 감정을 어딘가에 안고 살았으니까. 필요한것은 액션이었다. 불씨를 던져준다거나, 살짝 밀어주는 킥 정도. 딱 필요한 것은 그 뿐 이었다. 생각해보면 지난번 습격을 당했을때도 패닉이 왔었지만 제 친구들이 고통받거나 자신이 무시당하자 곧바로 뛰쳐나갈 수 있었지. 원동력은,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