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 시치미 뚝 떼며 주홍색 조개 껍데기를 손에 올렸다. 모래성 외벽 아랫 부분에 조개 껍질을 박아넣는 손길이 유려하다. 손끝으로 작은 창문 하나하나 세기고픈 마음으로 움직이는 태도가 조심스럽다 못해 치밀했다. 모래 위 누각이라 곧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은데, 민은 그것에 큰 공을 들이고 있었다. 그러다 불연듯 생각났다는 듯이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는다. 민이 단태를 물끄러미 보았다. 무언가 불만이 생겼을 때 예의 짓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질문을 몇가지 하려고 해요."
멀티 테스킹이 도무지 되지 않는 민은, 그래서 잠시 모래성 꾸미기를 멈추고 있었다. 동시에 일을 진행하려던 것은 온전히 민의 욕심이었고, 그 대가로 단태가 조개를 고르는 동시에 대답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민이 몹시 느릿한 어조로 덧붙였다. "거짓을 고하실 거면 저를 깜빡 속이셔야할 거예요." 민은 무언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혀로 입 내부 점막을 훑었지만, 지금 당장 할 말은 아니라 여긴 모양이다. 민이 조개 껍질 몇 개를 추린다. 하나를 모래 바닥에 박아넣었다. 절묘하게도 모래사장 정문을 단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일을 하느라 또 다시 말을 멈추어야만 했다.
"음, 그래, 우선 제일 중요한 거. 일단 괜찮은지."
민은 말을 고르고 있었다. 하고픈 질문은 많았지만 그 질문의 끝이 향하는 지점은 같았다. 민은 단태를 걱정하고 있었다. 저번 사건으로 민의 마음은 꽤나 어수선했다. 고민이 들끓고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 어째서 학생들이 그토록 자연스레 저주 마법을 사용하는지, 그들은 괜찮은건지, 앞으로 학원이 안전한게 맞는지 봄날 새싹처럼 의문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우선 그들은 남이지 않은가. 단태는 아니었다. 봄날 새싹은 짓밟으면 되는 일이지만 2년 지나 튼튼해진 초목을 미련 없이 자를 순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저번 탈옥범이 학교에 찾아왔을때, 평소답지 않았어요. 뭐라 설명하면 좋을까... 그래, 지나치게 과격했고 넋 놓은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우선 그거, 괜찮아요? 생각해보면 보름달 뜰 때마다 아슬아슬해보이던데."
그녀가 그의 정체를 알고나서 인식이 가장 크게 바뀐 부분은 그의 얼굴이었다. 정확히는 표정이다. 그 전, 알기 전에도 잘 웃는 사람이긴 했지만 지금은 웃는 얼굴이 기본이 되어버린 거 같다. 원래 이런가? 아니면 그녀와 같이 있어서? 내심은 후자였으면 하지만 진상은 모른다. 물어서 대답을 듣는다 해도 모를 것이다. 그녀가 그를 보며 끝없이 물음표를 띄우는 동안은, 무엇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 할 것이었다.
"그냥 다른 사람이 아니면 뭐일려나요?"
그렇지 않다는 듯한 말에, 내내 혼자 속에 담아두었던 물음표가 하나 툭 튀어나갔다. 이마에 닿은 감촉에 눈이 깜빡 접히다가도 금새 눈커풀을 올려 그를 시야에 담는다. 태양빛을 옅게 물들인 금안에 붉은 머리칼이 담긴다. 사뭇 진지하다가도, 변덕을 부리듯 무르는 그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입술을 톡 내밀고 종알대었다.
"그렇게 말하면 제가 거절 안 할 거 알면서 그러는거죠? 오늘은 당연하구, 매일 찾아갈거니까 투덜대면 안 돼요. 먼저 말한거니까."
원한다면, 이라고 했으니 기꺼이 그렇게 해줘야지 않겠는가. 주지 않을 것을 억지부리진 않지만 준다는 것을 거절할 이유도 없다. 설령 자신이 이러는 것이 그의 단순한 여흥, 놀이라 해도. 지금만큼은. 아직 그가 제 곁에 있을 동안 만큼은 해준다고 하는대로 받아들여도.... 괜찮겠지.
"저 궁금한게 있는데."
좀전까지 재잘대던 목소리가 한순간 음색을 살짝 바꾼다. 조심스럽게, 신중하게. 고개를 들어 그를 보는 눈에 의문을 담고서 묻는다.
"저한테 원하는 건 없어요? 뭐든, 제가 원하는대로 해주겠다고만 하잖아요."
방에 들르는거나 하는 것 말고 다른 건 없는걸까, 싶었다. 어쩌면 그녀가 그의 일에 방해가 될지도 모르는데.
민의 말에 단태는 대답은 하지 않은 채, 눈을 깜빡이다가 뻔뻔스럽게 능청스럽고 능글맞은 웃음을 헤죽- 지어보였다. 자신의 대답에 따라 이 방음마법의 쓸모가 정해진다고 하는 걸로 봐서는 경우에 따라서는 웃어넘길 수 없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했다. 마음의 준비까지는 아니여도 조금은, 긴장해야할 필요성이 보였다. 모래성 외벽에 조개 껍데기를 박아넣는 민을 보던 단태는 곧 자신을 보는 민의 얼굴을 꽤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하게 됐다. 음- 하고 감탄사와 비슷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우리 자기야가 나한테 무슨 질문을 하려는 걸까? 그것도 이렇게 진지한 분위기로 말이야~"
무슨 질문인지 궁금한걸? 주단태의 손이 모래 속에서 조개 껍데기들을 몇개 추슬렀다. 깨지고 부서진 것들은 털어내고 색ㅇㅣ 바랜 것들도 털어낸다. 검은색과 흰색이 점점히 박힌 조개 껍데기를 쥔 단태는 모래성의 외벽에 박힌 주황색 조개 껍데기 옆에 박아넣었다. 유려하지는 않으나 투박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래야하니 그렇게 할 뿐이라는 손길이기도 했다. "거짓말을 할지 안할지는 나도 자기의 질문을 들어봐야할 것 같은데~" 뻔뻔하게도 능청스러운 느물한 목소리였다.
괜찮냐는 질문에 쪼그리고 앉은 자세 그대로, 조개 껍데기를 손에 쥔 채 단태는 민을 바라봤다. 저번에도 그렇고 이 같은 기숙사의 후배는 자신을 유난스럽게 걱정했다. 그 사실이 신기했다. 어차피 자신이 졸업을 하면 더이상 보지 않을 사이일텐데. 바라보던 눈동자가 슬쩍 다른 곳으로 향했다가 결국 단태는 선글라스를 벗어서 모래사장 위에 내려놓기에 이르렀다. 누군가의 걱정은 참 생소한 것이다. 이어지려는 말을 예상할 수 있었고,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달링." 낯간지러운 호칭을 내뱉고 단태는 헤죽- 미소를 띄웠다.
"나는 달링이 나한테 그렇게 관심이 많은 줄 몰랐는걸? 나랑 같은 위치에 있지 않아서 눈치 못챘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괜찮냐고 물어봤지? 정신은 멀쩡했으니 괜찮다고 할 수 있겠네~"
으으음.... 답레 쓰면서 생각난건데..... 동화학원에서도 섹툼셈프라를 따로 배우남?? 해리포터에서는 따로 안배우는 식으로 나와있어서 나는 학교에서 안배우는 완전 무시무시 저주마법 정도로 생각했는데 또 막상 여기 세계관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으니까... 만약 학원에서 배우면 뭐...... (민 : 머쓱 ^^ ㅈㅅ합니다)
그가 교감의 저택에 제일 먼저 와서 한 일은 저택 방 안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본가와 별 다를 바가 없어보이는 느낌에 그는 간만에 그리움을 느꼈다. 물론 본가와 다른 점은 이곳은 바다가 있는 섬이라는 것이고, 그의 집은 숲이 우거졌다는 점이다. 그는 양 팔에 각각 달링과 매로 변한 백정을 안았다. 아직 룸메이트가 보이지 않아 그는 백정에게 경고한다.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거라, 아가."
그와 같이 며칠간 휴양을 즐길 사람은 엘로프 아델휠드다. 체격이 크고, 체격과 대비되는 아주 온화한 인상의 사람이다. 엘로프는 세상의 참상을 직접 보지 못하지만 살갗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점으로 인해 추종자를 공격할 때 도움을 준 것이 인연이 되어 이렇게 서로간의 편한 사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됐다. 그는 엘로프가 룸메이트가 된 것이 다행으로 다가왔다. 서로 깊게 묻지는 않을 것이고, 각자의 선을 지킬 것이라는 모종의 신뢰도 있지만 백정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저택을 둘러보던 중, 거울을 발견한 그는 천을 집어들어 거울을 가린다. 휫피, 하고 높게 울며 궁금증을 표하는 백정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능수능란하게 긁어주며 그가 나직히 속삭였다.
"조만간 설명해주마. 아가."
그렇게 오늘도 하루가 지났다. 서로간의 아무런 방해도 없는 하루였다. 그가 다음날 저녁이 되어도 엘로프가 돌아오지 않자 창밖을 본다. 걱정되어 그런 것은 아니었다. 혹시라도 공격을 당했나 하는 생각 때문에 그런 것이다. 눈을 좁히자 해변가를 질주하는 익숙한 콩고물이 보인다. 고작 며칠 봤지만 그는 쉽게 알 수 있다. 엘로프의 안내견인 라쉬다. 그럼 저기서 좌절하는 것이 엘로프겠다. 그렇다면 한참 뒤에나 오겠거니 싶다.
"아가, 이리 오거라. 어인 일인지 머리가 다 떴구나. 빗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는 백정을 돌아보며 손을 휘적인다. 손가락을 까딱이자 빗 하나가 날아와 그의 손에 잡혔다. 천에 가려진 화장대의 거울 앞으로 당신이 앉는다. 그는 눈을 낮게 내리깔며 당신의 뒤에 선다. 당신의 뒤에서 앞으로 손을 뻗자 비숍 소매로도 미처 가려지지 않은 앙상한 손목이 눈에 보였다. "잠시 실례하마." 손을 가져다대고 꽃으로 된 장식을 머리에서 떼어낸다. 거칠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또 친절하지는 않은 손길이다. 화장대 위에 올려놓은 장식과 함께 그가 짧은 머리카락 한 터럭을 손바닥 위로 올려둔다. 빗을 가져다대고 조용히 빗는다. 익숙한 손길이다. 이전에도 이런 일을 자주 해보았다는 듯. 그는 어느새 나직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당신의 머리를 빗는다. 이 공간에는 둘 뿐. 채우는 소리는 머리를 빗는 소리와 콧노래였다.
경쾌한 노래면 좋겠지만 그마저도 자장가 같았다. 그가 입을 열고 노래 가사를 흥얼거렸다. 잘 자렴, 아가. 네가 그 먼 곳으로 여행을 가는구나. 좋은 꿈 꾸렴. 너를 두렵게 하는 건 이제 아무것도 없단다. 무엇이라도 되려무나. 너는 바람이 되고, 물이 되고, 나무가 되겠지……. 가사를 듣자하니 어린 나이에 죽은 아이를 위한 장송곡이 틀림 없다. 그는 당신의 머리카락을 다시 한 터럭 올려 빗는다. 그와 대조하면 짧은 머리임에도 하나하나 세심하게 빗질했다.
"거울을 너무 오래 바라보지 마렴, 아가."
그는 나지막히 속삭인다. 당신에게 조언하는 것이 기묘했다. 서로의 나이가 바뀐 것과도 같았다. 그는 차분했고, 당신의 머리를 가만히 빗어줄 뿐이다. 엉킨 부분은 세심하게 빗질해서 풀어주고, 빗질하며 빠진 머리카락은 조심스럽게 빼내 한곳에 모았다.
"그 안에는 아주 무서운 괴물이 살고 있단다. 그것은 네 본질을 꿰뚫고 속삭이겠지. 네 자신을 마주하라고, 그 안의 공포를 명확히 깨달으라고. 만약 그 괴물을 마주하면 어떤 소리도 내서는 안 된단다."
왜? 그는 그 질문에 한걸음 앞으로 다가와 손바닥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둔 당신의 머리카락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다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애정 섞인 행동은 아니었다. 그가 늘 어머니의 머리를 빗어준 이후 하던 의례적인 행동이었다. 그는 거울의 천이 지금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보여주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단다."
그는 어린날의 자신을 떠올린다. 가주의 자리에 올라가는 시험은 꽤나 두려웠다. 총 4개의 시험. 첫 번째는 동물의 사체와 그 가운데에 놓여 평온히 죽음을 맞이한 가문원의 시체와 하루동안 밤을 지새워야 했고, 두 번째는.
"아가, 소리를 내면 안 된단다. 다시금 사람들은 괴물이 되어 네 곁을 둘러싸겠지.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울부짖을 것이란다. 깨달음을 얻지도 못하면서 갈구하고 발목을 붙잡겠지."
그는 눈을 감는 것을 오래 하지 않는다. 거울 앞에서 눈을 감으면 그때의 일이 생각나기 때문에.
"오로지 너만 정상이고 나머지는 미쳤다고 생각되는 기묘한 시간이 지나면 너는 지하실에 갇힐 거란다. 벌레가 기어다니고 무엇이 튀어나올 지 모르는 곳에서 잘린 염소의 목을 들고 거울을 마주보겠지. 그러면 다시 괴물이 속삭인단다."
그는 그런 삶을 살았다. 가주가 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관문이 두개나 남았건만 그 하나가 유독 힘들었다. 그는 어두운 곳에서 거울을 보는 것이 의미가 없다 생각했다. 어머니도 이런식의 계승은 원치 않는다 했지만 블랙번의 생각은 달랐다. 품에 안아 달래면서도 다시 지하실에 던져 넣었다. 수도 없이. 사흘을 물 한모금 먹지 못하고 내리굶으며 그 안에서 버텼다. 그 결과 그는 사람에게 큰 상처를 입었고 도피하게 됐다. 광증을 앓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스물 넷의 시간은 아주 길단다. 괴물은 네가 소리를 내도록 위로를 할 수도 있고, 다리 위로 벌레가 기어 올라올 수도 있지. 다리는 후들거릴 것이고, 배도 고플 것이야. 그렇지만 이겨내야 한단다. 나는 그게 두렵단다. 다시 마주하면 이겨낼 수 있겠지만, 어린 나는 이길 수 없단다. 그래서 천을 덮어 가린게야."
나는 아직도 어린아이고, 자라났기 때문에. 그는 장식을 들어올려 당신의 머리에 곱게 달아준다. 한 걸음 다시 다가와 앙상한 팔을 당신의 어깨 너머로 뻗는다. 온기가 여전히 온 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두렵지만 이겨내야 할 시련이었다. 그는 당신에게 나직히 속삭인다.
"어렵느냐, 그래, 어려운 일이란다. 세상은 원래 어려운 법이지. 그러니 너는 쉬운 길로 가려무나. 내 그 길을 열어줄 터이니."
네가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그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입술만 벙긋거릴 뿐이다. 거울에 덮인 천은 여전히 제 기능을 하고 있어 다행인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