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안이 천천히 두 사람의 행동을 보며 가볍게 웃어보인다. 확실히 그가 날카로운 분위기를 낼 것이라는 건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어느정도 의도한 사실이기도 했지만 이정도의 결과를 낼줄은 몰랐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내심을 다지고 천천히 사신을 바라보았다. 용과 사신이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에 그는 수많은 인파속에서도 그 둘만이 있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그를 바라보았다.
"하해와 같은 아량에 감사드립니다."
음산한 분위기와 완전히 반대되는, 천지를 날아오르려 하는 용의 모습이었다. 아직은 어리고 미숙하지만, 그것은 등룡문(登龍門)을 오르기 직전의 용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무엇도 숨기지 않고, 정당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앞길에 대해 피하지 않으며, 어두운 과거가 있었다면 그 모든 것을 살라먹고, 대지를 날아오르려는 용과 같은 기상의 모습이었다. 용의 아들은 용이라는 반증에 걸맞게 그는 날카로운 기세를 거스르되 거스르지 않으며 가만히 발렌타인을 바라보았다. 걸어가는 길은 다르고 분위기는 다르나, 그릇만큼은 둘이 비슷했다.
"허어, 이거 오히려 한방 먹어버렸는걸요? 날카로운 일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하고 부드럽던 분위기가 천천히 바뀌어간다. 천하를 날며 세상을 유유자적하던 모습과 다른 진정으로 비를 기다리는 용의 모습.
"하지만 저는 피하지 않고 답변해드리도록 하지요. 진로는 없지만 목표는 있습니다."
간판에 연연하지 않고, 돈에도 욕심을 가지지 아니하며, 그렇다고 권력을 탐하는 것도 아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 그가 이렇게 진지하게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저 저는, 아버지를 뛰어넘는 용이 되고 싶을뿐입니다."
그렇게 말을 마친 그의 표정이 다시 확 풀려버린다. 완전히 경직되어 있던 분위기가 다시 풀리고 그의 미소가 다시 입가에 맴돈다. 잠시간이지만 그것이 바로 그의 본래 모습이 아닐까, 라는 건 착각이 아닐것이다.
"랄까나~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아주시고! 그럼 제가 질문을 할 차례인가요! 두분의 관계, 생각보다 학원내에 많이 소문 나있는거 아시죠? 사실 찌라시도 많아서 저는 거르고 있는데, 혹여나 대답해주실수 있으신가요? 마찬가지로, 어려우시다면 대답하지 않아 주셔도 됩니다!"
그가 방을 혼자 쓰는게 백설이 때문인 줄만 알았는데, 그냥 그가 타인과 한 방을 쓰는게 싫었나보다. 그렇다는 건 기숙사도 그래서겠지. 그녀는 저를 놀리고 웃는 그를 보며 짧게나마 생각했다. 도대체가 알면 알수록 모를 사람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더 알고 싶기도 하고, 조금은 망설여지기도 한다. 그녀가 가진 의문들을 해소하는 것이.
어쨌든 그녀의 협박 아닌 협박이 통하긴 했나보다. 표정까지 바꿔가며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그녀는 속삭였을 때의 반응을 머릿속 한켠에 넣어두며 그의 팔에 톡 기댔다. 그런 표정 지으면서 그렇게 말하면 못 이긴다니까. 정말로 한번만 더 놀리면 휴가 내내 숨어있기라도 하려던 마음이 그의 표정, 말 한마디에 녹아 흘러내린다.
"그 말이 얼마나 진심일지는 모르겠지만, 뭐, 그런가보다 해줄게요. 그러니까 오늘은 더 놀리지 마요."
짐짓 무게 없는 엄포를 놓고 저택을 향해 그와 함께 걷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놀리는게 그렇게 싫지만은 않지만, 같이 있는 시간을 좀더 기억에 남게 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딱히 뭘 하고 싶은 것도 아니긴 한데. 어쨌든 휘둘리기만 하는 것보단 나은게 더 있지 않겠는가.
"그.. 다른 사람이랑 자는거 싫다면서요. 그래놓고 뭘 안 될 거 같으니까 같은 소릴 해요. 괜히 실망하게."
또 놀리는 거냐면서 눈을 가늘게 좁히고 그를 흘겨보다가, 금새 표정을 풀고 잡은 팔을 만지작거린다. 앞선 말은 그냥 해본 소리에 불과햇지만 실망한 건 아주 조금은 진심이었다. 그야, 여기 와서 가장 아쉬웠던게 그와 한 방을 쓸 수 없었던 거니까. 원래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알아도 아쉬운게 가끔은 있는 법이다. 그렇게 노닥거리다보니 어느덧 사박거리는 모래사장을 벗어나 저택이 보일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에스코트를 하는게 즐거운 법이라면 장난도 그 마찬가지 아닐까. 장난 역시 상대의 반응과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는거니까. 그런 의미에서 단태의 저런 말투나 행동도 그런 축에 속하는거 아닐까 싶었다. 어쩌면, 그렇게 함으로써 뭔가를 가리려고 하는 걸지도 모르고. 이래저래 일이 있긴 했지만 그녀의 안에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위화감이 남아있었다.
"선배가 너무 차가운거에요."
그 말대로, 단태의 품은 여름의 열기를 한순간 잊을만큼 차가웠다. 물 속에서 잡았던 손이 차가웠으니 몸이라고 안 그럴리가 있나. 혹시 끌어안은게 마냥 장난을 위해서만은 아니었을 것 같단 생각이 짧게 스쳤지만, 굳이 말로 하진 않았다. 위화감의 크기는 커졌지만. 대신 단태의 장난에 버금가는 장난으로 반응을 돌려주고 그 품에서 빠져나오는 걸로 대신했다.
"꼬실 줄 안다기보다, 가진 걸 이용할 줄 아는 거 아닐까요."
고운 목소리도 예쁜 외형도, 그저 이용할 뿐. 가르쳐준대로, 가르침 받은대로. 그저 그렇게 대하지 않는 건 한 사람이면 충분하기도 하니.
그녀는 과장스런 행동을 이어가는 단태를 보며, 자신도 가디건을 툭툭 털었다. 짜내는게 아니라 얼마 털어지지 않는 물기를 보고 터는 걸 관두곤 대신 가볍게 뒷짐을 지고 돌아섰다.
"멀쩡한 두 다리가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어서 걷자구요. 선배."
응당 마법에 의지하는 마법사와는 거리가 먼 말을 담담히 내뱉고 앞서 걷기 시작한다. 참방이는 물 대신 사박이는 모래를 밟으며, 저택을 향해.
으아악 막레 잘 받았다 첼주:D 어서와. 일상 수고했다구!!! 중간에 툭툭 늘어지고 그래서 헐 이거 잇기 힘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첼주가 좋은 일상이였다고 해주니까 내가 더 고마운걸. 땃태랑 돌리는 일상이 즐거웠다면 나도 즐거웠어. 첼도 윤이 못지 않은 여시였다((메모))
그는 살면서 용을 본 적이 없다. 그만큼의 그릇을 가진 사람도, 실제 용도 본 적이 없었다. 죽은 사람들의 흔적을 살펴도 전부 하나같이 비참한 최후였다. 맞서거나 당당히 같이 들어오는 사람은 없다에 가까웠으니까. 그렇지만 당신은 청궁에 가장 잘 맞는 사람일 것 같다 직감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의 신경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건 드문 일이었다. 그는 당신의 진짜 모습을 보았고, 그만큼 겉치레의 예의를 놓지 않기 위해 남은 체력을 끌어올렸다.
지금 흐트러지면 꿰뚫린다. 그런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누군가 자신의 속을 꿰뚫는 것을 싫어했고, 굳이 피를 보고 싶지도 않았다. 타니아는 다른 것 같았지만.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선다. 정확히는 타니아를 제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잠시 실례하지. 대답은 하고 싶지만 제지가 우선인지라."
그는 타니아를 바라본다. 그녀의 두 동공이 미친 개처럼 사납게 좁혀져 있었다. 혹 블랙번에 대해 아는가? 오! 모를 수도 있다. 블랙번은 극단적인 이상주의 가문이다. 전부 죽으면 끝이라는 이상한 사상을 가졌고, 구원은 죽음이면 충분하지 않냐는 것이 가문의 지론이다. 마법부에서도 골머리를 썩는 과격한 진압을 하는 오러를 배출하고, 심지어는 의뢰를 도맡는 용병 생활을 하기로도 유명하다. 언더테이커와 교류하며 그를 숭배하는 건 아무도 모르는, 쇄문한 장의사의 집안 사람들만 아는 사실이다. 하여튼 사회에서도 이곳에서도 과격한 성정은 그대로인지라 별명이 미친개임은 틀림없다.
그녀의 지팡이의 끝에 달린 서슬퍼런 장식도 그렇다. 예쁜 공예같지만 지금껏 청궁에서 모의전이 벌어졌을 때 그 장식으로 자잘하고 많은 생채기를 입히고 주먹을 써 기어이 교수님이 제지하고 마는 것이 타니아였다. 타니아는 지금, 관계라는 단어가 유달리 민감한 것 같았다. 타니아의 침묵과 달리 그는 고개를 돌린다. 속삭이는 어조로 그녀에게 명령하는 듯 싶었다. 분명 그 독특하고 고급진 발음 속에서 Must라고 정확히 표현하는 단어가 들렸으니까. 타니아가 낭랑하고 콧소리가 섞였던 귀여운 목소리와 달리 제법 거친 목소리로 항의했다. "그렇지만!"
그리고 그가 손가락을 들어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지은 이후 자신의 귀 옆을 툭툭 건드린다. 그리고 아까와 같은 미소를 짓자, 타니아는 지팡이를 허리춤에 다시 매곤 눈을 감았다. 그가 다시 당신을 쳐다본다. 타니아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가볍게 쓰다듬는다. 그는 침묵한다. 다만 그녀가 마치 호위처럼 먼저 나선다는 점과 그가 머리를 사람이 아닌 짐승을 쓰다듬듯 하는 모습이었으니, 그것으로도 충분히 답이 되었으리라. 잠깐의 정적. 그는 한결 누그러진 태도로 당신에게 묻는다.
</clr gray> 너는 이제부터 날을 헤아리는 법을 배우고, 신념의 숨겨져 있는 의미를 알게될 것이야. 우리네 가문이 어째서 이리와 뱀의 문양을 쓰는지. 어째서 우리가 우리와 같은 순혈들에게 인식이 좋지 않은지. 그렇게 되면 너는, 우리네 가문에 대해 어찌 생각하게 될 건지 궁금증이 이는구나.</clr>
건조하게 말라붙은 눈동자가 바라보며 똑바로 건네는 히죽이는 웃음에 섞인 건조한 속삭임은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악담보다 더 질이 좋지 못한 악담이었다. "정말 병동에 안가봐도 되겠어? 너 지금 안좋아보여." 걱정스러운 룸메이트의 말에 단태는 답할 기력도 없다는 것처럼 이불 속에서 손만 흔들어보인다. 그 뜻이 괜찮다는 뜻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룸메이트는 기숙사를 나섰지만 무슨 일이 있다면 병동에 꼭 가보라는 당부를 잊지 않고 한번 더 남겨뒀다. 휘적휘적 허공에 흔들던 손이 줄 끊어진 꼭두각시마냥 힘없이 이불 위로 떨어졌다. 그 작은 움직임이 만들어낸 진동마저 통각과 맞닿은 신경다발을 움켜쥐고 흔드는 기분에 그는 베개에 얼굴을 묻어내고 사람의 언어로 해석하기 힘든 신음을 흘렸다.
처음 고통을 느꼈을 때는 그렇게 원망했다. 다들 멀쩡한데 왜 나만 이래야하냐고 그렇게 원망했다. 몸에 흐르는 피를 원망하고 타고난 천성과 본성을 원망하다가 더 시간이 흘렀을 때, 그것이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흔들리는 시야를 부여잡고 들리는 질나쁜 악담을 능청스레 넘겨버릴 수 있었다. 우리네 가문이 다른 순혈 가문들에게 인식이 좋지 못한지 떠들어대는 소리가 귀에 박혔다. 우리네는 교활하기가 뱀과 같았고, 잔혹하기가 이리와 같았다. 우리의 적에게 무자비하라는 신념은 우리네 가문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였고 그 안에 숨겨져서 우리네만 알 수 있는 속 뜻은 누구보다 더 잔혹하고 잔인하게 적을 물어뜯어버릴 저주였다.
늑대인간은 적어도 이성을 잃은 상태였으나 우리는 아니였다. 우리네 가문은 전쟁에서 하나의 무리를 지어 움직였다. 가차없이 물어뜯어버리는 잔혹성에 자비를 바라는 누군가에게도 그렇게 무자비했다고, 언젠가 들었던 누군가의 말이 뇌를 붙잡고 흔드는 기분이었다.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지만 견디지 못할 고통은 아니었다. 수업을 받지 않고 하루를 통째로 제껴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단태는 조금만 쉴 생각이었다.
사람의 탈을 쓴 짐승새끼들이지. 우리네들은. 고고한 늑대와는 달라서 우리네들에게는 우두머리가 없지만 짐승새끼들에게도 규칙은 있단다. 네 눈이 그 규칙이다. 본성과 천성을 아로지르는 피에 새겨진 규칙.
"xx, 언제적에 들은 소리가 지금-.."
본능과 천성, 피에 새겨진 규칙. 방금전까지 떨리던 단태의 손이 근처에 풀어놓은 팔찌를 콱 움켜쥐어서 낚아챘다. 머리가 몽롱하고 어릴 때 들었던 소리들이 왁자지껄하게 뇌를 흔들면서 울려퍼졌지만 움직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약이 없었다면 꼼짝없이 앓아누워버렸겠지만.
약을 먹어도 증세는 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단지 완화를 시켜줄 뿐이죠. 가감없이 말씀드리자면 조금 덜 아프고, 조금 덜 날뛰실 뿐입니다. 그냥 견디게 하는거니까요. 몸이 냉해지는 걸 체감하고 계시죠? 어쩔 수 없습니다. 소가주. 시간이 지나실수록 차라리 이런 부작용이 있다는 게 낫다고 생각하실겁니다.
현궁의 공기는 사시사철 겨울이다. 열이 오르는 걸 감안하자면 현궁의 공기는 제격이지만 부작용이 남아버린 몸에는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 단태는 손목에 채운 팔찌가 차가운 건지, 아니면 자신의 몸이 차가운 건지 판단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비틀거리는 몸으로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평소대로 움직일 뿐이였다. 그냥, 이 시간이 지나가길. 그때 들었던 말대로라고 단태는 기력이 몽땅 빠져나간 무감한 얼굴로 서늘하다못해 얼음장처럼 차가운 자신의 손을 몇번 쥐었다펴보이며 생각하다가 슬그머니 웃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가만히 앉아 있다보면 다양한 소리가 들리고는 했다. 파도와 모래가 부딪히는 파찰음 소리, 여름날 서리처럼 사그드는 거품 소리와 북적이는 사람들 소리까지. 민은 요컨대, 소리를 내는 사람보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에 더 가까웠다. 민은 말없이 바닷물 담긴 통을 마른 모래 위에 끼얹고 삽질을 하고 있었다. 일전에 고백한바가 있듯이 민은 오랜 집중을 요하는 섬세한 작업에 일가견이 있었다. 얼추 윤곽을 잡혀가는 모래성이 얼핏봐도 어린아이 장난 수준이 아닌 걸 알 수 있었다.
"아, 선배! 이쪽이요!"
민의 시야에 단태가 잡히자, 민은 더이상 침묵을 고수하지 않았다. 민이 팔을 크게 흔들며 단태를 불러세웠다. 평소 흐느적거리던 모습과 달리 생기 있고 각이 잡힌 움직임이었다. 현궁의 찬 바람대신 따뜻한 바닷바람을 맞은 효과일까? 활짝 웃는 얼굴은 평소보다 배로 밝아보여서 위화감이 들 지경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민이 어서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파이몬 - 파이. 5남매 중 장남, 첫째. 블리스 - 브리. 5남매 중 차남, 둘째. 헬리아 - 헬리. 5남매 중 장녀, 셋째. 델피니 - 델피. 5남매 중 삼남, 넷째. 펠리체 - 리체. 5남매 중 차녀, 막내. (유년기 한정 애칭 - 쁘띠첼)
이하 썰들은 대략 10년 전 시점입니다.
"식사시간"
파이, 브리 - "아 옆에 앉지 말라고 XX아." / "싫으면 니가 비켜 XX" 누구보다 빠르게 내려와서 앉자마자 서로 신경전을 벌인다. 클로에가 파이용 나이프를 들면 조용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식탁 밑으로 계속 투닥댄다.
헬리 - "마마, 파이랑 브리 발싸움해요~" 제일 늦게 나온다. 오는 길에 위 싸움을 보고 클로에에게 이르는 장본인.
델피 - "오늘 무슨 날이에요? 로스트비프네..." 위에 둘 사이쯤 나와서 자리잡는다. 가장 조용하다. 그리고 존재감이 옅다.
필립, 클로에 - "적당히 해라." / "밥 먹기 싫으니, 응?" 말 대신 행동으로. 필립은 식탁 밑 다리를 걷어차고 클로에는 파이용 나이프 대신 지팡이를 든다. 그럼 모두 조용해진다. 자, 밥 먹자.
"여가시간"
파이 - "야 저기 숲에 흉가 있다는데 거기 가보자. 야 가자고. 야." 야외파. 집에 잘 안 붙어있는다. 뭐 할 때도 시끄러워서 주로 밖에서 논다.
브리 - "아 씨 귀찮게. 진심 영양가 없는 짓만 하네. ...콜." 야외반 실내반. 주로 파이가 야외로 꼬시고 아닐 땐 집안에서 공부를 하거나 책을 본다.
헬리 - "흉가? 나도 갈래~ 쫄보들 튀는거 구경해야지~" 실내파. 재밌어보이는 일이 있으면 꼭 구경간다. 기준이 지극히 개인적이므로 흥미가 없으면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안 간다.
델피 - "ㄴ...난 안 갈 거... 안 가, 안 간다고 했ㅇ으아아아" 실내파지만 주로 파이에 의해 끌려다닌다. 하도 끌려다녀서 생존력과 체력만 높아졌다.
필립, 클로에 - "오늘은 좀 나은가." / "예. 오늘은 그나마 좀 낫네요." 펠리체를 돌보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쓴다. 평소엔 주로 필립이 다른 자식들의 케어를 하고 클로에가 펠리체를 돌본다.
- 그 외 -
"흉가체험 이후"
필립과 클로에 몰래 한밤중 흉가에 다녀온 남매들. 각자 소곤거리며 조용히 집안으로 들어오는데.
"파이 이 등신아 거기서 그걸 왜 밟아...! 갈통인가 눈이 장식인가 왜 뻔히 보이는 걸 못 피하냐고.....!" "내 눈엔 안 보인 걸 어쩌라고 XX 니가 똑바로 안 비춰서 그런거 아냐..!" "푸흐흐... 결국 둘 다 쫄아서 나갔으면서~" "...나, 나는 방에 갈ㄹ....흐이익!"
서로 티격대다가 델피의 비명에 모두가 흠칫한다. 비명의 장본인인 델피가 가리킨 앞을 보자 불 꺼진 거실에 누군가 있다. 남매들 중 한명이 루모스로 빛을 내서 보자 거기 있는 건 애착 인형을 끌어안은 막내, 펠리체(7세)가 오도카니 서서 남매들을 보고 있다.
"아, 막내였어.... 델피 넌 뭐 막내보고 쫄아...!" "그, 그치만 잘 안 보였다고...!" "이 XX 파이보다 더한 쫄보야 진짜..." "우리 쁘띠첼~ 안 자구 여기서 모해~ 자~ 언니랑 자러가자~"
또 투닥대는 형제들을 두고 헬리가 애칭으로 부르며 펠리체에게 다가간다. 방에 데려다주기 위해 손을 잡으려 하자 고개를 까딱까딱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기 싫어서 그런 줄 알고 달래려고 하지만, 펠리체의 시선이 어딘가로 꽂힌 채로 고개만 까딱거린다는 걸 남매들은 금방 눈치챘다.
"......야... 막내 뭐 보고 있냐...?" "그... 파이... 아냐...?" ".......흐어엉........"
까딱...까딱...
"음~ 그러고보니까, 그 흉가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고 했더라~?" "어? 전에 살던 일가족 모두가 목 매달아 죽었다ㄱ..."
목매어 죽은 사람들의 집을 다녀온 남매. 그곳에서 '불길한 것'을 밟은 파이, 를 보고 고개를 양쪽으로 까딱이는 펠리체. 남매의 머릿속에서 천천히 상황파악이 되어간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젠가를 하던 중 아직 어린 펠리체가 블럭을 뽑다가 넘어뜨린다. 그러자 와르르 무너진 젠가 위로 들고있던 블록을 던지며 어설픈 발음으로 욕을 하는 펠리체. 자기 귀를 의심하던 헬리에게 다시 어린 목소리가 욕을 한다. 헬리는 침착하게 심호흡을 하고 펠리체에게 욕의 출처를 묻는다.
"쁘띠첼~ 그런 말은 어디서 들었을까? 누가 쁘띠첼한테 가르쳐 줬을까~" "응? XX?" "ㅇ...응, 그거~ 누가 했어...?" "이거, 파이가 저거 하구, 했어. 막 이렇게." "응 그랬어~ 음...... 이제 델피한테 놀아달라 할까? 델피랑 간식먹자, 응?"
누가 이 작은 아이에게 욕을 가르쳤는지, 조곤조곤 물어서 출처를 알아낸 헬리는 조용히 펠리체를 데리고 델피의 방에 간다.
"델피? 잠깐 막내 좀 보고 있어. 밖에 시끄러워질테니까, 나오지 말고~" "...또 파이야?" "응~ 또야~"
책을 보던 델피와 의미심장한 대화를 주고받은 뒤, 펠리체가 밖에 안 나오도록 하라고 하곤, 그 옆방으로 가 브리에게 파이의 만행을 전달한다.
"이... XXX가.... 내가 그렇게 조심하랬는데..." "파이가 그렇지 뭐~ 난 마마한테 갈게~ 너 먼저 가~"
파이의 만행을 전해들은 브리는 곧장 파이에게 가 1차로 응징을 가하고, 헬리에게 상황을 전해들은 클로에가 2차로 응징을 가하는 것으로 상황은 끝나는 줄 알았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