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자기의 가족이 어떤 스타일인지 너무 잘 알 것 같은데. 적어도 나는 자기 가족보다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타입. 단태가 아는 사람들 선에서 딱 한사람이 떠올랐다. 여행지 숙소에서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된 한정 룸메이트가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타입이었다. 아니 따지자면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타입이라기보다는, 그냥 행동이 더 편한 걸지도 모르지.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하지 않다보니 틀릴수도 있는 추측이다. 말수가 적은 건 그 반증인가.
펠리체가 손을 빼지 않고 내버려뒀기에 단태는 펠리체의 이상적인 모양새에 단련이 되어 있는 단단한 손바닥을 잡은 손으로 조물조물거릴 수 있었다. 미지근한 체온을 차가운 체온이 야금야금 삼켜대고 있었다. 단단한 손바닥의 감촉과 곧게 뻗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던 단태는 펠리체의 시선을 느끼고 헤죽- 웃어보였다.
"에스코트를 하는 게 아니라 에스코트를 받을 줄은 몰랐네. 그것도 이렇게 예쁜 자기한테 말이야~"
잘 잡고 있으라는 펠리체의 말에 단태는 느물느물하게 퍼진 목소리로 능청스럽게 중얼거리고는 어깨를 붙잡고 이끄는대로 물결을 헤치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배려가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행동이 더 몸에 익은 사람이 할 법한 자연스러운 배려. 착각일지도 모르지. 혹여 떨어지거나 처지지 않도록 간간히 자신의 손을 어깨에 대고 나아가는 그 뒷모습을 보며 단태가 샐쭉-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게 나아가다보니 수심의 높이가 낮아져서 발이 닿는 지점까지 꽤 빠르게 다다를 수 있었다.
"내가 아까 말했던가? 자기 말이야. 엄청 예쁘다고."
게다가 굉장히 스윗하기까지해서 사랑에 빠져버릴 것 같아~ 하고 자신을 모래사장으로 이끌어주는 펠리체의 손을 맞잡고 있던 손에 힘을 줘서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해변 위로 몸을 쭉 빼냈다. 자연스럽게 단태는 펠리체를 끌어안는 자세가 되었다.
다시 시작된 느물한 말투에 그녀는 반사적으로 한숨이 나올 뻔 했다. 잠깐은 저 말투가 나오지 않아 많이 피곤하거나 힘든 줄 알았는데. 그냥 잠깐 쉬면 되는 거였나보다. 저렇게 떠들 만큼 기운이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려나. 추위를 잘 타는 듯한 것과 다르게 체력은 좋은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저도 받는게 아니라 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이걸 에스코트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가는 중 들린 단태의 말에 적당한 대답을 돌려주고 손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둥 하며 나아가 이윽고 해변에 도착한다. 앞서 말했듯 그녀는 단태를 해변까지 아끌어주고 손을 놓으려고 했는데, 단태가 굉장히 뜬금없는 말을 해 그 타이밍을 놓쳤다.
"아."
하는 사이 그녀의 몸이 휙 끌려가더니 이끌리듯 단태의 품에 안착한다. 무슨 춤이라도 추는 줄 알았네. 머릿속으론 그렇게 생각하면서 겉으론 얼떨떨함을 감추지 못해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깜빡였다. 한껏 과장한 듯한 단태의 인사가 들려오고, 겨우 상황 파악이 되자, 그때서야 표정을 담담하게 바꾼다. 그리고 이번에도 적당히 대꾸하고 빠져나가려다가, 문득 이대로 지나가긴 좀 아쉽지 않나 하는 생각에 슬그머니 팔을 들어 단태의 목을 감싼다. 그대로 끌어안듯이 움직여 단태의 귓가로 다가가 부드러운 미성으로 속삭인다.
"You're welcome. young lady. (천만에요. 아가씨.)"
후훗. 짧은 웃음을 더한 대꾸를 하곤 물 흐르듯 품에서 빠져나가는 그녀의 얼굴엔 엷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이제 돌아가죠. 선배. 지금부터 가서 씻고 해야 저녁 시간에 안 늦을거에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태연히 말한 그녀가 단태에게 튀지 않을 방향으로 긴 머리채를 한번 털어내었다. 그리고 어서 가자고 말하듯이 단태를 바라보았다.
아, 아. 이를 어쩜 좋을까. 이 못되먹었지만 차마 떨어질 수가 없는 사람을. 그녀는 저를 가지고 놀기로 작정한 듯한 그를 보고 어쩌면 울고 싶은 기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기분이 그렇다는거지 진짜 울진 않겠지만. 그런 얼굴로 싫은 건 아니지, 라고 물으면 어느 누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대답을 다 알면서 떠보는 듯한 그의 태도가 얄밉다. 하지만 그것마저 좋다. 그러는 그가 오히려 예전보다 좋아서, 당장이라도 전부를 파내어 제 것으로 만들고 싶다. 아, 차라리 부숴버린다면.
"그 룸메는 무슨 잘못이래요. 본인 묵는 방에 들어왔을 뿐인.... 에?"
애써 마음을 다잡고 태연한 척 대꾸를 하며 걸어가려는데 또다시 치고 들어온다. 룸메이트가 없다는 목소리가 참...간지럽기도 하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찔거리고 눈을 굴려 그를 보았다. 들킬 염려 이전에, 룸메가 없다니. 당연히 아까 그 친구라는 사람하고 한 방일 줄 알았다. 백설이도 있을거고. 하지만 백설이는 아까 그 사람이 데려갔고 그는 룸메가 없단다. 없대. 없대! 그 사실 하나가 머릿속을 꽉 채웠다가 한순간에 포르르 날아가버린다.
잠깐을 멍해져 있던 사이, 몸을 기울인 그의 얼굴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와 저도 모르게 얼굴을 확 붉혔다. 조금 가라앉으려던 얼굴이 다시 붉어지는게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감정이 그리로 이끌려 가버린다.
아, 안 돼. 이대로 계속 끌려다니기만 할 순 없어. 혼란한 와중 이상한 오기가 그녀의 안에서 고개를 든다. 그에게 휘둘리기만 해선 옆에 있을 수 없을거란 생각도 오기를 한층 자극한다. 그 덕분인지, 얼굴의 홍조가 어느 정도 진정되어간다. 적당히 물든 얼굴이 되자 그녀는 입을 한번 꾹 다물었다가, 표정을 풀어 세상 예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살짝 몸을 숙여 그의 귓가에 대고 아주 작지만 숨결이 고스란히 담긴 간드러진 목소리로 속살거렸다.
"전부를 주겠다고 이미 말했는데도 그렇게 애태우면, 지금 자기 방에 가는 건 고사하고, 휴가 내내 얼굴도 못 보게 해버릴거에요?"
자신 있게 말하긴 했지만 일종의 도박이었다. 그가 그 말에 흔들릴지 아닐지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도 그에게 마냥 휘둘리지만은 않을 거라고, 간접적으로마나 표현한 셈은 될까. 떨리는 내심을 요령 좋게 감추며 숙인 몸을 든 그녀는 잡은 손을 깍지 끼우고 그의 팔을 꼬옥 안으며 옆에 착 붙었다. 그리고 다시 그를 보며 생긋, 웃었다.
아무리 봐도 여자쪽에서 장난치고 있는 중이고, 지금 눈앞의 퇴폐미를 자랑하고 있는 미남 선배님께선 거기에 완전히 휘둘리고 있다. 물론 원인은 -코스믹 호러가 되었지만 자신은 그런거 모르는 중인- 자신이겠지만 리안의 눈에선 완전히 두 명이 완벽히 잘 어울리는 커플이 아니던가? 음, 그래. 마음속으로 무엇이 결심이 섰는지 그는 그대로 입을 열었다.
"황금 천칭의 이름을 걸고."
음? 갑자기 왜 에스카마리 가문의 맹세를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는 동시에 발렌타인과 타니아에게만 보이게 입을 움직여 보인다. 확실하게 입모양은
[두분 잘 어울리니, 비밀로 하겠습니다.]
였다. 완벽히 오해하기로 결정한 것일까. 우스꽝스러운걸 넘어서 공포 그자체의 복장이 되었지만 살짝 그 광기어린 눈빛이 누그러지고 그 자리에 조금은 진지하고 선량한 눈빛이 자리 잡으니 아주 조금, 바닷물에 커피 탄거 마냥 살짝 분위기가 전환 된다. 그러다가 이러한 복장으로는 유명인을 인터뷰하는건 아무래도 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일까? 멋쩍게 웃으면서 안전모를 벗자 검은색 머리카락이 윤기있게 드러난다. 야키소바가 묻은줄 알았지만, 안전모가 철통같이 방어해준 덕에 대참사는 안 일어난듯 싶었다.
"이 옷이 이쁘긴 하지만, 인터뷰에 어울리는 복장은 아니니까, 잠깐만 기다려주시겠어요?"
그렇게 두 사람의 소개를 듣자마자 잠깐 화장실에 가서 순식간에 복장을 갈아입고 오는 그였다. 보나마나 아시오로 불러왔으리라. 그렇게 바뀐 복장은 루인이 이미 작업을 쳐놓은 것인지 와인색 단팔 셔츠에 회색 조끼와 검은색 반바지였다. 확실히 이런 여름철에 어울리는 복장이라 보기엔 조금 애매했지만 그래도 이제 코스믹호러에 당할 일은 없으리라.
"오래 기다리셨습니다아! 자기 소개가 늦어졌네요!! 알고계시겠지만 역시 자기소개를 하는게 맞겠죠? 청궁 4학년 리안 다이사쿠 에스카마리입니다아!"
그렇게 말하고서 우아하게 인사를 한번 해보이고는 두 사람에게 입을 열었다.
"시간을 방해해서 죄송하지만, 아무래도 가던 길이 있으셨을테니, 같이 걸으면서 로드 인터뷰를 하는걸로 괜찮을까요?"
거절하면 다시 그복장을 입고 거리를 활개칠거다. 청궁은 그런 놈들 투성이었으니까.(......)
벽에 주먹질을 하면서 연신 욕을 내뱉지만 마음은 쉽사리 진정이 되지 않는다. 처음으로 이러한 감정을 알게 되었을때서야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허망함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날이 어둑어둑해져 더이상 보이지 않는 그 감각에 케인은 난생 처음으로 무거움을 느꼈다.
"뭘 어떻게 해야...."
그 순간 처음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떠올렸을때가 떠오른다. 잠시간 멍하니 있자니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무기력하게 1년을 보내고 남들과 다투기만 하던 그때가, 부장인 리안을 처음으로 만났던 그때가 말이다. 그 순간 그의 머리가 깨끗해진듯 미소가 지어진다.
"..... 생각보다 간단했던거잖아."
그의 입가로 상쾌한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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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 쓰이나요? 아현양?" "네."
소녀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방송부의 부장은 딱히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이 천천히 그녀의 잔에 로즈마리 허브티를 한잔 더 따라주며 입을 열었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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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장님."
밤거리를 헤메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린다. 근 1년간 열심히 달려왔다고 생각했다. 많은것을 해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손에 쥐어진건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그 허탈감에 그가 잠시간 눈을 질끈 감았다. 이대로 허망하게 돌아가는걸까, 그 시절로 말이다. 최초로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을 지금 이 가슴에 품고 있.
"원래 있었던 자리로...."
그 순간 그의 마음 한구석으로 고개가 돌려진다. 진짜로 네가 돌아갈 곳이, 그 구속과 한계가 분명했던 곳이야? 마음 한구석의 그가 입을 연다. 상처투성이의 잭이 소리를 지른다. 아니야, 네가 있을 곳은 그곳이 아니야!! 그러니까 네가 가고 싶은 길로 가!! 그의 눈이 다시 떠지자 밤하늘의 북극성이 천천히 눈에 들어온다.
"될대로 대라지. 나는 그저...."
도전자(challager)일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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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할 필요 없다는 말씀은...." "그들은 그들의 상처를 직시할 용기가 있으니까요." "..... 상처?" "그들은 전부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현양 못지 않은 상처를 말이죠."
로즈마리 허브티를 입에 머금으니 부드러운 향기가 그대로 자신의 목구멍 너머로 울려퍼진다. 이 감각이 너무나 기분 좋아서 그는 잠시간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보인뒤 천천히 자그마한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그들하고 지낸게 거의 1년이 넘어가던가? 처음으로 그들에게 길을 제시했던 그가, 드디어 뒤를 돌아본 것이다.
"그들은 답을 찾을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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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귀모양 후드티를 꾹 눌러쓴뒤 그녀가 손가락을 입에 물고 질겅거린다. 초조할때마다 하는 습관이었다. 부모님의 싸움도, 친구들의 수다도 전부 시끄러워서 짜증났던, 그 시절의 모습이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올려본 하늘의 그 기분이었다.
"..... 부장."
감정을 감추고 자기가 하고 싶은걸 하지 못한채 억눌린채 1년을 보냈다. 우연히 그렸던 옷 도안을 보고 자신에게 손을 뻗었던 3명의 남자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세계는 전부 회색빛일 뿐이었다. 그런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었고 손수 능력을 보여줄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그 순간에 그녀는 머릿속 노이즈가 점점 지워져 나가는 걸 느꼈다.
"설마 일부러.... 핫....."
그 순간 그녀의 입가로 비틀린 미소가 지어진다. 그러면 화려하게 저질러주마, 자신이 머글 사회에서 지냈을때 가장 흥미를 느꼈던 물건으로 말이다. 그녀는 천천히 도안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기능은 만들지 못하겠지만 그건 마법으로 어떻게든 해결해보는걸로 하고, 화려하게 저지를 그 물건을 위해서 말이다.
"정수리를 텅 비울 정도로, 멋진 한방을 보여주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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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시간이 되었군요." "아!! 네!!" "이번 라이브는, 아현양의 데뷔이자 제 후임 발표회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망치지 않도록 합시다."
두 남녀가 조용히 미소를 지어보인다. 남매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미소를 나누고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정중한 신사가 숙녀를 에스코트를 하기라도 하듯, 그들은 아무도 없는 옥상으로 올라가 천천히 조율을 시작하였다. 그렇게 그들의 순환이 다시 연결되어간다.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는 흐트러진 머리를 다시 묶듯 팔을 위로 올려 머리카락을 움켜쥔다. 황금 천칭의 이름을 건다느니 하는 가문을 거는 것 같은 기묘한 단어의 나열 사이로 당신의 입모양을 본 그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이후 쯧. 하는 혀차는 소리가 들렸다. 타니아는 애써 웃으며 고맙다고 하며 그의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시선을 무마시키려 했다.
그는 당신의 광기가 누그러지는 걸 목도한다. 머리를 다시 헐겁게 틀어내리며 진작 이럴 걸 그랬나 생각하지만, 다시금 생각하면 미지의 공포에 직면하고 순순히 인터뷰를 하겠다고 말할 위인은 아니었다. 아까 전에도 도망치지 않았나. 안전모를 벗자 타니아가 감탄했다. "훨씬 낫네요!"
"그래서, 그 2학년을 어쩌다 잡아먹었을까." "오호, 호호호! 전 모르는 일이에요. 아직 젖살도 덜빠진 말랑말랑한 애를 제가 어떻게 구워삶겠어요? 사랑의 힘이라고 해야할 지! 그, 그것보다 도련님이야말로 패밀리어가 한마리 더 늘었던데요. 웬 매 한마리를 다 데려오셨대요?" "주웠지." "달링이 질투 안해요?" "전혀." "...반지는요?" "매에게 줬지. 우리 아가는 반지도 잘 어울려서 말일세." "네?" "아, 저기 오는군. 자세히 얘기하긴 어렵겠어, 너처럼." "치사해라."
당신이 옷을 갈아입는 사이 둘은 짤막한 대화를 나눴다. 타니아의 아랫입술이 비죽 나온걸 그가 손가락으로 툭 건드려서 쏙 집어넣는다. 그나마 아까보단 낫다. 그는 두 번이나 기어오는 혼돈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타니아는 와아아, 하고 박수를 짝짝 쳐주곤 방글방글 웃는다. 로드 인터뷰라. 그는 흘끔 타니아를 내려다봤고, 타니아도 그를 흘끔 올려다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그걸 보고 싶진 않으시죠. 라는 뜻이리라.
"너무 긴 시간만 할애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가판대 쪽으로 향하듯 몸을 돌린다. 흡연 장소 계획은 이미 개판난지 오래고, 그러면 안에서 기다릴 백정을 위해서 뭐라도 사가야겠거니 생각한 것이다. 타니아도 그의 옆을 쪼르르 쫓듯 돌았다. "저도 너무 긴 시간만 아니면 괜찮아요!" 라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명색이 청궁 사람이라 기대된다 이거지. 그는 눈을 굴려 작게 한숨을 쉰다.
"아, 저랑 로드 인터뷰 중에는 무엇이든 가능합니다! 담배를 피우셔도 되고 교칙을 어기는 행동을 하셔도 되요! 단 제가 책임을 지지는 않습니다?"
강제 금연을 한지 어언 4년, 지금까지 니코틴 함유 껌 등으로 버텨왔지만 가끔씩 담배를 피고 싶다는 욕구를 참아온 그였다. 실제로도 지금도 초코과자를 입에 물고 있는 이유는 죄다 담배 생각을 줄이기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니던가. 그는 그렇게 웃으면서 가벼운 설명을 덧붙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의외로 갑자기 이뤄진 인터뷰지만 두분 생각보다 침착하신걸요?"
그는 그렇게 질문을 던지면서 생긋 웃어보였다. 생각보다 훤칠한 180cm의 키에 관리를 잘해온 듯 잘 잡힌 매끈한 근육질 몸매, 그리고 흑발이지만 살짝 윤기가 도는것에 더해 밝아보이는 인상까지, 아까전에 그 괴악한 패션으로 기어오는 공포 마냥 거리를 헤집으며 그들을 쫒아오던 사람이랑 동일 '개체'인게 두려울 정도로 믹스 매칭이 안되는 조합이었다. 그렇게 천천히 두사람을 보며 참 잘 어울리는 조합이구나 생각한 그는 조심스럽게 살짝 거리를 벌리되 떨어지지는 않은 거리를 두고 마찬가지로 가판대로 향한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발견한 것일까, 그는 그대로 돈을 꺼내들며 무언가를 가리켰다.
"타피오카 피자 한조각만 주세요!"
...... 입맛도 사람 입맛이 아닌걸로 판정하자.
"의외로 맛있어요. 이거."
내놓은 상품을 입에 베어물며 살짝 미소를 배어 문다. 의외로 고르곤졸라 피자에 식감 좋은 구슬을 박아넣은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그는 맛있게 피자 한조각을 입에 베어물며 두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타겟은 전확히 발렌타인이었다.
"발렌타인 선배, 의외로 인상 좋으신 분인데요? 조금 다듬으면 꽤 괜찮은 물건이 나오실 듯 한데.... 현궁의 사신이라고 생각한 이미지하곤 많이 다르신걸요?"
모든 소문을 알고 있고 대강의 진실을 유추한 입장인걸 상대가 모를리가 없다. 물론 학생신분인지라 파내는데는 한계가 있지만, 최소한 리안이 보기에는 그는 그저 그런 악명으로 붙일 사람이 아니었다. 최소한, 진짜 선인이거나, 아니라면 진짜 다른 악을 억제하는 거악이거나. 그 둘중 하나라 생각하며 그는 두사람을 바라보았다.
예민한 시선이 당신에게 꽂혔다. 담배는 물론이고 교칙을 어기는 것도 가능하다는 언질 때문이었다. 학생대표 앞에서 그런 말을 해도 되는 건가? 싶은 눈길이었지만 이내 너무나도 쉽게 사그라들었다. 마음 같으면 담배라도 피우고 싶다. 그렇지만 보는 눈도 많았고, 사감의 귀에 들어가면 여간 곤란한 것이 아니니 그는 침묵으로 답변을 대신한다.
"저는 지금 떨려요!" "쫓아오지만 않았다면 조용히 넘어갔겠지."
이제 보니 당신은 꽤 근사한 사람이다. 그와 엇비슷한 키와 근육이 고루 잘 잡힌 몸도 그렇고, 윤기나는 검은 머리카락과 밝은 인상까지. 아까의 모습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리고 그와도 달랐다. 그는 마른 체구에 쪽진 머리도 거의 헐겁다에 가까웠고, 암울한 인상이라 해야할 지, 어딘가 어두운 건 틀림이 없다. 타니아는 당신의 기행스러운 피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는 아랑곳 않는다. 타니아는 활짝 웃었다.
"맛있어보여요. 잠시만요. 저도 한 조각 주세요!"
기어이 타니아도 타피오카 피자를 한조각 구매한다. 타니아가 근사한 미소를 짓는다. 그는 둘이 피자를 먹는 모습을 보며 몸을 잘게 떨었다. 그는 지금 배가 고프긴 커녕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음! 맛있다. 장어젤리랑 비슷한 느낌이네요?" "호불호가 갈린단 말 아닌가." "어차피 벨은 호잖아요." "있으면 먹는 편이지, 즐기지는 않아."
여기에거 리안은 알 수 있으리라. 저 둘은 정어리가 들어간 파이도 아무렇지 않게 집어먹을 영국의 마법사라는 것을. 그는 모노클을 고쳐쓰며 눈을 흘겼다. 인상이 좋다, 다듬으면 괜찮은 물건이 나올 것 같다, 현궁의 사신이라는 이미지와는 다르다. 그는 답을 고르듯 입을 다문다. 혹은 비웃음을 참는 최소한의 예의거나. 느른하고 흥미없는 시선에 타니아는 오물오물 피자를 문 입술을 움직이며 둘의 눈치를 봤다.
"인상이 좋다라. 다듬기엔 나름의 사정이 있는지라 기대에 부응하긴 어렵겠군."
여전히 속삭이는듯한 기묘한 목소리다. 일단 그는 자신이 선인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렇다고 악인도 아니다. 그저 멀리서 학생을 방관하는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그는 발걸음을 옮긴다. 근처의 가판대에서 버터에 구운 새우를 주문한다. 적당히 매콤한 소스를 끼얹은 새우가 종이상자 위로 올라가고, 비닐봉지 안으로 포장된다. 이건 아가의 몫. 그는 당신을 돌아본다.
"그렇지만 생긴걸로 사람을 판단하기는 어렵겠지."
짐승의 눈처럼 예민한, 기울어진 고개 사이로 드러난 색이 다른 양쪽 시선이 제법 사나운 초승달처럼 휘었다. 타니아가 어느새 도우만 남은 피자를 땅에 떨구며 입을 틀어막았다. "히끅."
자그마한 감탄사를 내뱉는 작은 용이었다. 밝은 분위기의 타니아나 자신과는 다른 세계에서 사는 존재가 있다면 그러할까, 하지만 그 또한 만만치 않은 그릇을 가진 인물이라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리안은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렇게 순식간에 자신의 페이스를 찾은 그가 잠시간 너스레를 떠는척 하면서 소름이 돋는 등을 일부러 진정시키며 가볍게 분위기를 환기 시키기 위해 박수를 쳤다.
-짜악!!
박수소리가 터져나감과 동시에 그가 작게 미소를 지어보인다. 자체만으로도 확실히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는 날카로운 분위기를 받아 흘리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 이런 죄송합니다. 방송사고, 방송사고! 제가 실언을 했네요. 역시 간판이란 쉽게 달리는게 아니었군요!"
그의 말대로였다. 그에게 방송부 부장, MC 대작이라는 간판을 달았듯이 그 또한 현궁의 사신이라는 간판을 자연스레 달게 된것이다. 그 사실을 간과한걸 사과하기라도 하듯 그가 자그마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거리를 벌려준다. 그것은 무서워서 벌린것이라기 보다는 벨로 하여금 타니아를 부축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리라.
"사실 방송부를 운영하면서 제일 알기 힘들었던 궁이 바로 현궁이었는데, 오늘 일면을 본거 같아서 기쁘기 한량 없습니다! 오늘 사실 나올까 말까 고민을 정말 많이 했었는데, 나온게 정답이었군요."
순수한 감탄사였다. 밝은 분위기의 그였지만 억지로 상대마저 밝은 기분으로 이끌어낼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그에 유연하게 대처를 하는 모습은 천상 방송인의 그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는 히죽 웃으며 천천히 다음 답변으로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곧 졸업이시잖아요? 혹시 졸업하시고 나서 다음 계획은 있으신가요? 아니라면 저한테 반대로 질문을 던지셔도 됩니다!!"
"자기야~ 원래 에스코트는 받는 것보다 하는 게 더 즐거운 법이야. 왜냐하면 에스코트를 받는 상대가 얼마나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알 수 있기 때문이지~"
펠리체의 적당한 대답을 듣고 단태가 되돌려준 말이었다. 그러니까 뻔뻔하고 능글맞은 어조로 느물느물하게 뱉어낸 말이라는 거다. 방금 전까지 보여주던 모습이랑 사뭇 다른 분위기라는 점도 있다. 그리고 이어서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보여주는 자세까지.
"응~ 역시 따뜻하네. 자기~"
본인이 지나치게 체온이 낮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듯한 말투였다. 빈틈을 노리고 한 행동이였지만 이렇게 자연스럽게 끌려올 줄은 몰랐지만. 자신의 품에 안착한 펠리체를 끌어안으며 단태가 헤죽- 웃음을 흘렸다. 보통 갑자기 그렇게 끌어당기면 누구든지 끌려온다만. 상대의 따뜻한 체온에 단태의 평균보다 낮은 체온이 느리게나마 평균으로 오르고 있었다. 이제 이정도면 됐다, 싶어서 끌어안고 있던 팔을 풀고 펠리체를 놓아주려고 했다. "자기야?" 하고 시작된 주단태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세상에.."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거지? 같이 끌어안는 것 정도야 주단태가 예상한 일이었지만 그 뒤의 것은 예상하지 못한 점이었다. 부드러운 미성으로 속삭이는 말은 분명, 쑥쓰러워질 상황이었다. 그 목소리에 단태는 샐쭉- 눈을 가늘게 뜨고 힐끗 시선을 돌려서 펠리체를 잠깐 바라봤다. 하는 짓이 완전 여운데. 품에서 빠져나가는 펠리체를 보며 단태는 히죽- 능청스럽게 미소를 흘렸다. "자기, 사람을 꼬실 줄 아는구나. 방금 굉장히 두근거렸어." 자신의 심장쪽에 손을 올리는 과장스러운 몸짓을 해보이며 단태의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물에 젖은 하와이안 셔츠에서 느껴지는 축축함이 불쾌하기는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