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양은 애교 섞인 목소리를 들으며 경박하게 웃어댔다. 아, 맙소사. 역시 청궁 사람들은 하나하나 전부 호감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사감님 역시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쾌활하고, 장난기 넘치며, 팔팔한 느낌. 감정 기복이 확실하게 잘 드러나는 그 모습. 어찌 자신이 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까! 사람 살아가는게 이런 맛이지 또 어떤 맛이겠나 싶었다.
"그럼요. 저는 진심 아니면 이야기 안 한답니다? 아아. 이렇게까지 감동해주시니 언제 한번 마법약을 같이 만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후폭풍은 오롯이 둘이서 감당해내야 할 것이었지만 뭐 어떤가 싶었다. 나중의 일은 나중에 자신이 어떻게든 해결할 것이고, 지금은 그저 지금을 즐기면 된다. 미래를 걱정하며 나아가지 않는 건 있을수 없는 일이다.
받기로 했던 1 갈레온을 손에 올려놓고서 한참동안 그것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물질적인 것을 얻는다는 것은, 어제처럼 호칭을 얻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미묘함이었으나 일단 어느 쪽이든 아직은 주양에게 꽤 낯설게 느껴졌다. 돈을 가져갈 생각이라. 내기를 걸 때만 해도 뭔가 얻어갈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는데.
"음~ 삘 탄 김에 지금의 이 감을 이어가도 좋겠지만, 너무 판이 커지는 건 저도 부담스러우니까요! 이렇게 소소한 유흥거리로 즐기는 내기도 좋죠!"
이런 아찔한 승부가 계속되는 것도 좋았으나 승부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필히 자신이 실패하게 되는 경우의 수도 생길 것이다. 자신이 이겼고 얻어갈 것도 얻어갔으니, 이득을 보고 빼는것이 가장 현명한 수라는 당연한 답을 내리고 또 혼자 잘 생각한 것 같다며 우쭐해졌다. 그리고. 다음 질문에 주양은 청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가족같은 존재. 어쩌면, 가족 이상일지도 모를 존재. 나도 그것을 알고 있듯, 청 너 역시 그것을 알고 있겠지.
"가족 이상의.. 내깃돈이예요. 절대 잃을수 없는 그런 내깃돈 말이죠."
허나 그럼에도 내기에 아낌없이 던질 수 있는. 그렇게 위기감과 스릴을 느끼며, 자신에게 계속 그때의 기억과 그때 다짐했던 복수심을 불태울 수 있게 해주는. 가족 이상의 존재. 남들은 쉽게 이해할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어딘가 어긋난 주양 자신만의 애정표현은 이번 역시 엇나가지 않은 채 청을 향했다. 늘 그랬듯 말이 이어진 이후로 짧은 투닥거림이 지속되었으나 그것도 오래 지나지는 않았다.
"듣고 나니까 조금 궁금하네요. 패밀리어가 필수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사감님들은 따로 동물을 안 키우시는 이유라도 있나요? 신수.. 들이 사감님의 패밀리어는 아닐 것 같은데 말이예요."
그 대목에서 잠깐 멈칫했던 건 자신 못지 않게, 다른 의미로 엄청난 캐미를 선보이는 리 사감님과 백호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정말 그럴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비현실적인 추측이 한층 스쳐 지나가고서 주양은 고개를 저었다. 역시 아무리 그래도 그럴 리가 있겠는가.
그들이 그렇게 지낼 수 있는 이유라면 역시 그것 아닐까.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눈을 굴리며 곰곰히 생각하던 추론을 내어보았다. 사감들의 특권, 들으면 들을수록 내력 깊은 이야기다. 그들이 가진 특이점에 수백 년을 살고, 신수와 소통하고, 그것 외의 나머지로는 뭐가 있었더라. 무기와 대화하고 있으려니 자신이 새삼스럽게 아는 게 별로 없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평소에 많이 궁금해하고 살 걸 그랬다는 뒤늦은 후회가 들었다.
"연을 버린다는 건… 종교적인 탈속과는 다른 의미겠죠? 음, 기린궁 학생이 아닌 제가 너무 많이 듣는 건 아닐까 싶네요."
그렇지 않고서야 최종 과정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를 설명하기는 힘들 테니. 과연 자신이라면 서슴없이 절세할 수 있을지를 상상해봤지만 고민할 필요도 없이 즉답할 수 있었다. 그를 덩그러니 남겨두고 간 이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 자리에 없는 얄미운 패밀리어를 떠올려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라쉬는 유일하다 할 수 있을 만큼 그가 온전한 신뢰를 줄 수 있는 상대였다. 순진하기에 약고, 그럼에도 영원히 악의 없을 친구. 속세에 묶인 '인간'관계라면 고민 없이 버릴 수 있을 테지만, 그 역시도 결국은 어떤 식으로든 인연에 묶여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비킬게요."
아, 이번에는 제 쪽에서 속편하게 말실수를 해버렸다. 그런데 미안하다거나 죄송스럽다는 태도보다는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싫으면 비켜줘야지'라는 직관적인 발상이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무기에게서 슬쩍 몸을 물리고는 그가 뒤늦게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아, 이건 좀 아닌가. 이어지는 말을 들으니 물러가야 할 정도까지는 아닌 듯해 그는 벌떡 일어나려 엉거주춤해 있던 몸을 다시 앉혔다. 인간이 싫지만 죽지는 않게 보호해야 하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적극적으로 지켜주지는 않을 것…이라. 그는 불현듯 어떤 직감을 떠올린다. 근거 있는 추측은 아니었다. 추론은 되지 못하고 그저 짐작에 불과할 어떠한 예감. 무기는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알았던 것만 같다. 그것은 통찰인가, 아니면 선견?
누군가가 질문을 던진다. 공포란 감정이니 만큼 여러가지 해석이 존재하지만 가장 유명한 말이라면 머글 소설 [러브 크래프트]에서 내린 정의, "가장 강력한 공포란, 미지에 대한 공포다."라는 견해가 제일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오랫만에 한가하구만."
공포의 정체가 입을 연다. 그는 다름아닌 동화학원 방송부의 부장이자 해적방송의 MC, 리안이었다. 물론 항상 얼굴을 잘 까고 다니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들은 아는것일까, 다들 그의 모습을 보고 쑥덕거린다. 그런 그들의 시선에는 경탄 반, 공포 반이 대다수,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휘파람을 불으며 입을 열었다.
"잔소리 하는 루인도 없고, 오늘은 내 마음대로 입는다!! 기분 최고구만!"
서서히 공포어린 시선들의 원인이 드러난다. 위에는 원래 정상이었을, 촌티나는 성조기 문양의 하와이안 셔츠가 가슴팍에 하트무늬로 파여져 있었고, 그마저도 반바지는 핫핑크에 파란색 줄무늬가 수놓여져 있었다. 거기에 화룡점정을 더하는 노오란색 안전모,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그 안전모가 공포에 아스트랄함까지 더해줌으로서 미지에 대한 공포가 무엇인지 시각적으로 확연히 박아넣어주고 있었다.
물에서 고개를 내밀자마자 팔찌부터 챙긴 단태와 다르게, 그녀가 소지품의 유무를 확인한 건 제법 이후였다. 몸을 부력에 맡기고 둥둥 떠있다가 뒤늦게서야 가디건을 더듬거려 지팡이의 존재를 확인한다. 적당히 끼워놓았던 지팡이는 용케도 제자리에 잘 있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지난 숱한 날들 동안 한번도 떨어뜨린 적이 없었지. 이보다 더한 조류에 휩쓸렸을 때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선배 잘못은 아니니까요."
어처구니없다는게 분명한 단태의 웃음을 들으며 그녀는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할 것도 없이 이 상황에 단태의 잘못은 일절 없다. 전부 그녀가 잘못한거다. 막아서는데도 관두지 않고, 동의를 구하지 않고 붙잡고 뛰어든 것도. 참으로 멋들어지게 비상식적인 행동이다. 그녀는 그 점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즐거웠다.
"1mm 차이로 위험한 지대에서는 하지 않아요. 죽으려고 하는게 아닌걸요."
행동만 놓고 보면 그저 자신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 단태를 끌어들인 것 같겠지만, 사실은 제대로 보고 행했다는 의미다. 이 밑의 지형도 깊이도 조류도 올라오기 전부터 파악하고 저 위를 골랐다. 마구잡이로 첨벙거리며 놀고 있었던 것 같던게 사실, 여기를 찾기 위해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뭐, 그딴 사실쯤 말 한마디면 뒤짚히겠지만.
"절벽 아래니까 당연히 해변보다 춥죠. 얼른 나가도록 해요. 선배가 물에 빠지기라도 하면 저 진짜 혼날 거 같거든요."
춤다는 단태에게 어서 나가자며 그녀가 몸을 홱 뒤집었다. 그리고 천천히, 멀찍이 보이는 모래사장을 향해 느긋한 헤엄을 치기 시작한다. 뒤를 흘끔 보고 단태가 제대로 따라오는지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고.
건... 쌤....? (동공지진)(눈을 의심하고 다시 긁긁)(경악) 캡틴도 첼주도 다시 안녕~ 50분.. 조금만 더 화이팅! :D
>>341 자연스럽게 괜찮을것 같다고 생각하는거냐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분명 멀쩡할거야.. (???) 헐 좋아 초딩때 하던 컴퓨터부수기 플레시게임 실사판 간다~! 받는 도네에 따라 얼마나 부술지 뭘로 부술지 달라지는 재미! (?????)
그의 말에 그녀는 다시금 떠올렸다. 멀리서도 들리던 서러운 울음소리. 하지만 그렇게 울면서도 그 사람의 손에서 발버둥쳐 나오거나 그 이상의 저항은 하지 않은 거 같은데. 그런 면에서 순순히 간 걸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만 하며 그를 본다.
"궁금하긴 한데, 그냥 누굴까~ 하는 정도라서요. 물어보면 대답은 해주려나."
그녀에게 보이는 그는 안개일 때와 또다른 흐릿함이 있었다. 흐릿함, 애매모호함이라고 할까. 잘 보이지 않아 눈을 가늘게 뜨고 봐야 할 것만 같은 그런 느낌, 일까. 실제로 그렇게 보진 않았지만. 웃음을 터뜨리는 그를 보며 그녀도 싱긋 웃었으면 웃었지 의심하거나 불만스런 표정을 짓진 않는다.
"옆에 있다는 걸 좀더 실감하게 해주면 믿을지도 모르죠?"
물리적으로는 손을 잡을 수 있을만큼 가까웠지만 심리적으로는 아직도 그에게 갈 길이 한참 멀어보였으니까. 그 길을 가는 건 온전히 그녀의 몫이겠지만, 일정부분은 그가 허락을 해줘야만 가까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그인 이상, 좀더 신중해질 필요도 있고. 그녀의 물음에 그가 잠깐이지만 다른 분위기를 보이는 것에 그녀의 눈이 슬쩍 굴러갔다.
"뭐에요 그게. 그렇게 말하는데 옆에 있게 됐다는 걸 어떻게 믿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옆에 있으라면서 곧 떠날 거라고 하고, 저한테 말한게 꼭 그 수족에게 본보기나 위협을 보여주려 하는 거 같은걸요. 수족 길들이기에 이용당하는 느낌이에요."
그런 말투가 맘에 안 든다는 듯 그녀가 볼을 부풀린다. 고개도 슬쩍 반대로 돌리는 걸 보면 이제 대화도 안 해, 이럴 거 같았으나, 결과적으로 고개를 돌린 탓에 그의 행동이 예상 외의 효과를 낼 수 있었을거다. 예를 들면, 귀에 닿는 숨과 속삭임에 힉! 하고 놀라며 귀끝을 붉힌다던가.
"뭐하, 는 거에요, 진짜. 선배."
그를 돌아보며 쏘아붙이는 말이나 살짝 부루퉁한 표정은 방금의 상황이 싫은 듯 보인다. 그러나 선명하게 물든 귀가 좀처럼 식지 않는 걸 보면 그렇게 싫지만도 않았나보다. 되려 꼭 잡는 손도 그렇고. 잠시 입을 내민 채 부-한 태도를 유지하던 그녀. 여전히 불만스럽지만, 그래도 대답은 해야겠는지 투덜대듯이 말한다.
"안 해요. 해봤자 제가 손해인걸요. 선배를 잃을테니까."
그것만은 무엇보다 싫으니까. 라고 대답을 하고 그녀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말없이 걷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