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림의 손목도 꽤 가늘었고, 잡아채이자 약간의 당혹감에 조금 빼려고 했지만. 많이 지친 상태였기 때문에 손에 잡힌 힘 빠진 참새같이 옅은 파드득거림이 반응의 전부였습니다. 자칫 잘못했으면 꼴사납게 침대 위로 엎어질 뻔했다고요? 하루를 보면서 갈라지는 목소리에 무..물 드릴게요. 라고 말했지만. 물을 마신다고 한다면 조심스럽게 도망갈 것만 같았을지도 모릅니다. 여기 있어달라고 부탁한다면야... 도망은 못 가겠지만요.
"...쉬려고 노력했어요.." 하루의 질문에 조심스럽게 대답하려 합니다. 쉬려고 노력한 거지. 쉰 게 아니지요. 기숙사 가서는 쉬려고 했지만. 지금시점에서는 아니기 때문에 노력했다는 두루뭉술한 말로 끝내는 겁니다.
"....시..싫은 게 아니라요... 잘못했으니까... 하루 양에게도... 죄송하다 해야 하고.." 더듬더듬 말을 이어나가면서 덜덜 떠는 다림입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으려 합니다.(무릎 아주 싸구나..) 격하게 행동한 게 역시 무리였던 걸까. 읏. 하는 소리를 내지만 다시 일어나지는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하루는 다림의 손을 잡는 순간, 다림도 그다지 좋은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녀 역시 다른 이들을 치료해주는 쪽이 훨씬 익숙한 사람이었으니, 다림의 애처로운 파닥거림을 보아하니, 자신과 별반 차이없이 일어난 듯 했기에 작게 숨을 뱉어낼 수 밖에 없었다.
" 물은 괜찮아요. "
물을 주겠다는 다림에게 무리해서 움직일 필요없다는 듯 살며시 고개를 저어보이며 차분한 대답을 돌려준다. 왠지 이대로 손을 놓아버리면 도망가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 듯 했다.
" 노력은 한거군요? 쉬지는 않고. "
하루는 눈웃음을 지어보이며 잔잔한 목소리로 다림의 정곡을 찌른다. 분명 미안함에, 서둘러 눈에 띄지 않고 기숙사로 돌아가려던 것이리라. 하루는 그런 다림을 바라보다, 무릎을 꿇으려 하는 것을 보곤 한숨을 내쉽니다.
" 저는 친구한테 무릎 꿇게 만드는 취미 같은 건 없는걸요. 그리고 그 자세, 무리가 많이 가니까 하지 말고 여기 의자에 앉아요. "
하루는 고개를 숙인 체로 무릎을 꿇은 다림에게 그럴 필요 없다는 듯, 조금은 잔소리를 하는듯한 어조로 말을 이어간다.
" 손은 일단 놓아줄테니까 저 두고 가지 말아요. 다림 때문에 다친 것보다 저 내버려두고 가는게 더 상처니까. 알았죠? "
다림이라면 제 말을 들어줄거라 생각해요, 라고 가볍게 말을 덧붙인 하루는 그녀 역시 손을 뻗고 있던 것이 쉽지는 않았는지 힘이 빠진 손을 거둬들이며 숨을 고른다.
" ... 지금의 다림을 보면 원래대로 다림을 돌릴 수 있었던 모양이네요. 후후, 다행이에요. 혹여나 다림을 원래대로 못 돌린건 아니었나 했거든요. "
"그러니까, 춘덕아... 디저트가 아무리 불맛이라지만, 화재 경보기 작동 안 시키게 조심하고... 무슨 일 있으면 저짝 소화기 있으니까 사용하고..." "알았다구리. 내가 그런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어리숙하지 않다구리." "그리고 저쪽에 CCTV있으니까 출퇴근 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으면 저 CCTV에 찎히도록 해, 알았지? 급료 밀린다 싶어서 법적으로 갈 땐 CCTV증거가 중요하니까 꼭 기억하고...'
흑흑, 내가 이 카페를 떠나게 되는구나... 기쁘다. 여기에서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내가 춘덕이도 꼬셔오고.. 급료까지 협상하고... 대체 이 가게 사장은 누구야! 싶지만, 이젠 됐어... 마지막으로 후임 매니저.. 그러니까, 다림 씨에게 인수인계만 하면 되네...
"다림씨, 일단 매니저 라곤 하지만 대체로 거의 모든 업무를 하는 서포터랑 같다고 보시면 돼요... 약점 안 잡히게 사소한 거 하나하나 기록해두시고..."
사실 따지고 보면 춘덕이가 에릭보다 쎈 게 아닐까.. 라는 농담을 생각하는 다림은 화현에게 인수인계를 받고 있었습니다.
"cctv는 백업 잘 해놔야겠네요.. 언제 삭제하려 할 지 모른다고요?" 웃으며 말하다가 하실 수 있을까요. 라고 중얼거립니다. 카페 몽블랑의 정식 매니저 인수인계...에 가깝다는 걸 아는 건지. 사실 하는 일이야 별로 달라지는 건 없을 겁니다. 하지만 cctv 기록이나 약점 안 잡히게라는 말은 생소한 것처럼 경청합니다.
"화현 씨가 해오신 것을 기반으로 카페에서 열심히 일할게요." "재무재표도 깔끔하게 정리하니 보기 좋네요." 그런데 비상연락망에... 화현씨의 연락처는 남겨둬도 되나요? 라고 가볍게 물어봅니다. 에릭에게 돈 뜯는 법이라는 말을 듣고는 미묘한 웃음을 짓네요.
"물론 일한 만큼 받아내기는 하겠지만..." 저는 일한 것보다 조금 덜 받아도 될 거에요. 라고 자신감없이 말하다가 춘덕이나 맥스에게 좀 주는 게 좋으려나. 라고 생각해봅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라는 말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 앞에 하루가 있었다는 말이었을 것이라 생각한 하루는 희미한 미소를 유지합니다. 그것을 보고 겁을 먹었다고 생각하니 눈 앞의 친구가 그렇게 살벌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사람과 동일인물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기에 그다지 신경쓸 것은 아니지만요.
" 잘못하긴요, 다림은 떠나지 않았는걸요? 그럼 잘못한 것도 없죠. "
울먹거리듯 속삭이곤 물을 가지고 오려고 하는 다림의 등뒤로, 다림의 말을 부정하듯 잔잔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다림이 자신에게 잘못했어요 라고 말할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는 듯, 차분하기 그지 없는 목소리였습니다.
" 그렇구나.. 다른분들도 힘을 내주셨던 모양이네요. "
다림이 가져다 준 물을 한모금 마신 하루는 옆에 잔을 올려두곤 차분하게 말을 이어간다. 자신을 걱정하는 듯한 말을 던지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다림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하루는 새하얗고 가느다란, 그 위에 반장갑을 낀 다림의 손을 살며시 잡아 끌어당깁니다. 끌어당겨진 다림이 엎어질 곳은 하루의 품이 되도록 가볍게 끌어당긴 하루는 상냥하게 말을 이어갑니다.
" 전 괜찮아요, 괜찮구 말구요. 소중한 다림을 눈 앞에서 잃지 않았잖아요. 그거면 충분하고 만족해요. 제 소중한 친구를 잃지 않았다는 것. 그것만큼 절 기쁘게 해줄 일이 있을까요? "
아마도 다림이 하루의 힘에 저항하지 않고 끌려와 품에 엎어졌다면, 그런 다림의 등을 토닥여주며 자장가를 부르는 듯한 잔잔한 어조로 귓가에 대답을 들려주었을 것이다.
" 잠깐 몸이 아픈 건 괜찮아요. 아프지 않게 만드는 것은 제 주특기이기도 하구요. 그러니까, 다림은 걱정할 것도, 미안해 할 것도 없어요. 오히려 제가 감사하단 말을 돌려줄게요. 여전히 제 소중한 친구로 남아있어줘서 고마워요, 다림. "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튼 팔리긴 하니까 만들어졌던 거겠지. 누군가는 그걸 필요로 했다는 이야기고. 내가 굳이 생각하거나 비난할 문제는 아니다.
" 심각한 일은 아니니까. "
갸웃거리는 은후를 보며 작게 미소짓고, 앞서가는 은후를 뒤따랐다. 그리고 말하려다 마는 듯한 모습을 보며 무슨 말을 하려던 걸까 의문이 들었지만 캐묻지는 않았다. 말하지 않는 건 이유가 있겠지...
" 괜찮네. "
하고 뿌듯한 얼굴을 하는 은후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웃었다. 오늘따라 더 귀엽네. 후배들은 원래 귀엽지만. 언제나 귀엽지만. 손톱 무는 습관이 있다는 건 같이 걷고 있기에 보이긴 하지만, 위생상 안 좋을텐데─이상의 생각은 들지 않았다. 뭐 이런저런 안 좋은 점이 있다지만 의념각성자한텐 무의미할 테고, 보이는 게 안 좋을 뿐이니까. 그랬기에 피가 맺힐 정도로 물고 있다는 걸 볼 만큼 자세히 보지는 않았던가.
" 아무튼 하려던 말은, 의뢰 한 번 같이 가볼 생각 있냐는 거야. " " 아직 세부사항이 정해진 건 없지만, 조만간 워리어·랜스·서포터 3인 파티로 한 번 의뢰에 가 볼 생각이거든. " " 난 거기에 너를 데려가고 싶어서. " // (도게자)(그랜절)
정확하게는... 조금 다른 말이었습니다. 레이드 중 잠깐 정신을 차렸을 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 반쯤 패닉에 빠져 티아라를 벗어던지기는 커녕 유혹하는 말들과 정신을 찍어누르는 티아라에 다시 빼앗겼다는... 그런 것이었지만, 다림은 그런 말들로 인한 오해 같은 걸 일일히 설명하지 않고 오해한 대로 가지고 가려 하는 성향이었으니까요. 하루가 말한 것처럼. 지난 일입니다.
"...." 무언가를 잘 못한다는 의미였지만 그것 또한 다림은 구태여 설명하진 않고 하루를 쳐다보지는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입니다.
"네...다른 분들께서 힘내주셨어요." 주먹질과 화살과 검과 도끼로 죽을 뻔했으려나. 같은 생각을 하지만 그나마 티아라가 본인을 좀 보호했던 모양입니다. 생각해보니 잘못했으면 효수였잖아? 물론 다림은 효수로 끝나면 다행이다고 생각했을지도. 아니 진짜 목을 쳤으면 어쩌려고..
"그..잇?" 손을 잡아 끌어당겨지자. 품에 끌어안기듯 엎어지자 다림이 뻣뻣하게 굳습니다. 조금 떨리는 몸을 토닥거리면 마치 랙돌같은 고양이를 안으면 인형을 안은 듯 무방비해지는 것처럼 축 늘어지고. 감사하다는 말을 돌려주는 하루에게
"...저...는... 가까이는..." 조금 무리인데.. 라고 생각합니다. 조심스럽게 다치지 않은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고 무게중심도 잘 못 잡는지 조금 불안해보이는 눈입니다.
"이런저런 걸 막 뒤지는 타입...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한 달 단위. 관리자 pc에 암호.. 꼼꼼히 적어놓습니다. 그 외에 알아야 할 것들을 받다가 연락처에 고개를 젓자.
"지워두셨군요..." 고개를 끄덕입니다. 제가 해야 할 게 더 많다. 라는 말을 듣자 웃으면서 앞으로 카페가 엄청 발전했을 때 화현 씨도 같이 일할 수 있으면 좋을까요? 라는 말을 가볍게 인사치레처럼 건넵니다. 그래도 개인적인 연락처 자체는 가질 수도 있으니 상관없는 부분일까요?
"보물찾기요.." 하지만 그런 걸 한다면 걱정되는걸요. 라는 말은 하지 않고, 조심할게요. 라는 말만 합니다. 조심하는 거랑 걱정되는 거랑은 다르니까. 그리고 그래서 숙청여제 레이드가 발생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아. 그러고보니 저랑 춘덕이랑 몇 가지 만들어 본 건 있는데. 가실 때 들고 가실래요?" 케이크나 타르트 종류를 좀 만들어봤는데요. 라고 말해봅니다.
그가 인사치레 건넨 말에 고개를 젓는다. "싫어요~ 주급이 5500GP라면 또 모를까." 라고 대답해준다. 거기다, 앞으로는 예술 활동에 좀 더... 열중하고 싶기도 하고... 강산무진도는 대체 언제 볼까... 흑흑 조심할게요 라고 대답했지만, 과연 얼마나 갈까...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게 딱 맞아들 줄은 본인도 몰랐다. 뭐, 다림 씨 본인이 잘 하시겠지.. 디저트.. 음... 음... 음... 그다지 생각이 없네.
"그다지 생각이 없어서... 찹쌀 모나카나 팬케이크 같은 거라면 환영하겠지만! 그 외에는 그다지..? 아, 맞다. 얼마전에 탄 선생님이랑 대화를 나눴는데 탄 선생님은 단 걸 좋아하시더라구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타인에게 자신이 선정한 무언가를 인정받는 것은 꽤 기분이 좋은 일이다. 그것은 청년에게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같은 필기구 동맹인 그녀의 평을 만족스럽게 받아들이며,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가 시킨 음료는 간단한 아이스티.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카페이다 보니, 사비아가 시킨 음료도 같이 자리에 가져다줄 것이다-.
"의뢰… 요?"
그녀의 말에 은후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그것도 각 포지션별로 한 명뿐인 파티요…?"
왜 하필 자신을? 그런 말은, 곧 쟁반을 들고 다가온 점원에 의해 삼켜졌다. 감사합니다, 하고 아이스티를 받아들고, 빨대로 괜히 내용물을 흔들어놓았다……. 3학년인 선배가 의뢰에 데려갈 정도로 그가 서포터로써의 자질이 뛰어난가? 그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 스스로 그리 생각하였다.
"먼저 왜 하필 저인지 이유를 들어보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1, 2분 정도의 침묵 끝에, 청년은 겨우겨우 다시 입을 뗐다. 어쩌면, 상대의 화를 불러올 수 있는 말이라는 걸 그 자신도 모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