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강하게 죽이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레오는 그 말을 들었다. 간지럽게 속삭이는 소리. 조용하고 나긋한, 그러면서도 어딘가 차갑고 촉촉한 목소리. 선배의 주문대로 레오는 그 마음을 더 강하게 담았다.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있었지만 정말 미물에 불과한 존재였기에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채널링이 끊어지고 뒤이어 버니의 지팡이에서 초록색 스파크가 튀기고 즉사주문을 쓰는 것을 보았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이 죽은게 확실했다. 저런것도 가능하구나. 레오는 미소를 지었다.
" 해,해냈다.. 해냈어 버니! "
저주를 성공시켰다. 그리고 그걸 기뻐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구역질이 올라올 뻔 했다.
대체 뭘 기뻐하고 있는건지. 비행술이나 애니마구스가 되는 법 따위가 아니다. 온전히 상대방을 조종하고 고통을 주고 죽이는 것에 초점을 맞춘 그야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저주를 성공시킨 것이다. 깨서는 안돼는 금기를 깨버렸고 성공시켜서는 안되는 것을 성공시켰다. 또 구역질이 올라와 두어번 정도 헛구역질을 한 레오는 쓰흡.. 하고 숨을 삼켰다.
" 더 큰 동물들이면.. 혹시나해서 물어보는건데. 사람도 포함이야? "
레오는 침을 꿀꺽 삼켰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공기가 낮게 가라앉고 바람이 기분나쁘게 부는 순간. 귀곡탑에 들어와있다는 사실이 더욱 더 긴장되게, 그리고 음산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어주었다. 처음으로 강한 증오를 느껴 그 증오를 마법으로 치환시켰다. 순전히 다른이를 고통받게 하기 위한 마법을, 성공시켰다.어쩌면 썩 괜찮은 기분이었을지도.
민은 소리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어깨가 작게 들썩이기를 반복한다. 인기까지는 몰라도 인지도는 꽤 생겼을텐데. 적어도 신입생 학생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민은 어렴풋이 선물을 챙겨주겠다고 자랑하던 제 후배를 기억해냈다. 아직 완성은 못했던 것 같은데. 민이 힐끗 리안을 훑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뛰어남지 않겠어요? 모든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나약해지잖아요."
민은 그래서 여유로울 수 있었다.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리는 낯짝이 미묘하게 권태로워보였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는 듯이 고개를 바로했다. "그렇지만, 전성기의 아버지를 넘어서고 싶다면 노력하는 이해가 되네요. 전성기가 지나면 목표가 영영 없어지는 거잖아요." ...보통은 바로 이쪽을 생각할텐데 깨달음이 늦다.
"아하, 저번에도 했던 거요? 안타깝네요. 곧 제 후배가 선물을 주겠다고, 이런. 이건 비밀로 해줘요."
민은 기억을 더듬는듯 입술 부분을 두드렸다. 민이 들었던 방송은 루인의 차례였던 것 같다. 제법 감동적인 이야기가 오갔던 걸로 기억한다. 잠자기 직전에 틀어 놓았던 터라 모든 기억이 확실치는 못했다. 민망한 기류가 잠시 흘렀지만, 민은 빙그레 웃으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MC대작 맞죠?"
민이 검지손가락을 보이며 말했다. "떠보는 건 그만합시다. 정말로 방송을 들었으니까요." 잘 만들어진 도자기 같은 웃음을 남긴채, 손가락을 내린다.
중은 사탕을 줄까 물어보면 도망친다는 언급을 듣자하니, 유일한 정상인일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이 든다. 다만 그 또한 추종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희망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어떻게 해도 당신처럼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이다. 지성인임은 확실하나 설득으로 빼돌릴 사람이 아니다. 그는 단언했다. 가문이 쌓아온 세월이 증명했다. 말과 사랑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건 동화 속의 이야기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죽음이 도사리고, 누군가는 꼭 피를 봐야만 평화가 찾아온다.
그는 이 일련의 생각에서 한가지 의문을 표한다. 그러면 어째서 매구는 굳이 추종자에게 명령해 '동화학원의 학생'을 공격하려는 것인가.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인가? 혹은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것인가? 부네라고 불렸던 여자가 이 학교 출신이라고는 하던데. 그 대단하다는 어둠의 마법사가 단지 그 치졸하고 어줍잖은 이유로 이곳을 목표로 잡았을 것 같진 않다. 그는 한가지 결론을 내린다.
무언가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숨기는 사실이 있을 것이다. 그는 미소를 짓는다. 참 우스운 일이다. 이젠 교수마저 신뢰할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는 것 아닌가. 원래부터 신뢰라는 것이 그에게 존재했냐만은, 공적인 신뢰마저 깨지게 생겼다. 그가 당신에게 나지막히 얘기한다. 목의 핏대는 가라앉고 다시 목소리는 속삭이는 어조로 변한다.
"가벼운 건 어쩔 수 없지. 아가, 내 가볍단 뜻을 이해하기엔 네가 참 순진하구나."
겉치레의 예의. 그 속에 담기지도 않는 의미. 그는 천천히 눈을 내리감는다. "아예 처음인 것보단 낫지 않은가." 그 말을 이후로 정적이 흐른다. 사탕을 넘겨주듯 그때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가 먼저 끌어 안았다는 사실이다. 당신을 안은 팔은 그대로이나 몸은 가볍게 뒤로 젖힌다. 쿠키를 물고 있었기 때문에, 입에 묻어있는 부스러기를 혀로 가볍게 훑으며 내리감긴 속눈썹 사이로 그의 분홍색 시선이 드러난다. 어스름한 새벽빛을 받은 선명한 분홍빛 눈동자가 속절없이 떨린다.
단지 누군가와 접촉했다는 이유로 속이 울렁거렸다. 머리가 아팠다. 평생 함께 했으나 신경쓰지 않으려 했던 두통이 점점 심해져간다. 순간 눈앞이 희뿌옇게 변하나 싶더니 그가 잠시 고개를 느릿하게 기울인다. 그의 분홍빛 시선이 호선을 긋는다. 현궁의 사신이 기묘하게도 성자의 미소를 짓는 것이다.
"아가."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메마른 입술이 당신의 입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을 맞춰보려 한다. 당신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머금으며 나지막히 속삭이려 했다.
"조금만 더."
흐트러진 목소리였다. 그의 본심이 드러나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당신은 아무것도 모를 사람이니, 그는 이리 말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을 마주하며 다시금 부른다. 아가, 하고.
"죽음이 머잖은 자에게 자비를 베풀어서라도. 응?"
그는 살아있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살아있는 것은 변한다. 맹목적인 것은 모조리 변한다. 엉클 톰은 아즈카반에 갔고,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믿었던 가문원은 자신을 지하실에 밀어넣고 문을 잠갔다. 살아있는 것의 애정은 모조리 퇴색되며 변한다. 그는 숨을 쉬며 살아가는 자신 또한 증오했다. 그래서 그는 죽어간다. 임종이 머지 않은 자였다. 수많은 인간에 의해 상처입은 눈동자가 속절없이 떨린다.
윤은 그저 픽 웃을 뿐이었습니다. 이런 면은 이매를 닮았다고 생각하기도 했죠. 자신의 얼굴을 감쌀 때도 재미있다는 양, 내려다볼 뿐이었습니다. 서투르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 편한대로 불러도 돼. 여기에 있을 부하들에게는, 미리 말해두지. '
가장 충격 받을 건 이매와 중이 분명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손등으로 펠리체의 얼굴을 한 번 쓸어내렸습니다.
'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 일부러, 1학년 시작부터 이 모습이었고 신중하게 가문도 고르고 친절하게 대했는데. 신탁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그 전의 말도 걸려. ' 진짜 제갈윤도 어느 새, 평소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으며 윤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습니다. 자택의 감옥 안에 있는데.
주양은 잊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주단태라는 현궁 5학년에 재학 중인 이 불성실하고 경박하며 가벼운 언행을 보이는 여학생은 바로 위에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가 있었다. 조카를 제외하면 주씨 가문에서 막둥이라고 봐도 좋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단태는 샐쭉- 눈을 가늘게 뜨고 지그시 바라보다가 헤죽 웃으며 그 손에 머리를 부볐다. 뻔뻔하게도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18살이나 먹고 볼이 꼬집어지는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야. 달링." 자기도 한번 꼬집혀볼거냐며 느물느물한 목소리로 능청스레 중얼거린 단태는 그 말대로 주양의 볼을 가볍게 쥐었다가 놓았다. -주양이 피한다면 잡는 시늉만 했을테고.-
"달링, 달링은 이미 듬-직-한 사람이라서 더이상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데. 얼마나 더 힘내서 듬직해질 생각인거야? 응? 거기서 더 듬직해지면 나 다시 자기한테 반해버릴지도 몰라?"
옆구리를 쿡 찌르는 행동에 능청스럽고 능글맞게 굴던 주단태는 이크- 하는 반응을 보이며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낯간지러운 호칭 레퍼토리는 끊임없다. 자연스럽게 호칭을 바꿨다가도 다시 익숙한 자기야라던가, 달링이라는 호칭으로 바꾸는 건 역시 뻔뻔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싶다는 주양의 말에 단태는 능청스럽게 헤죽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고 굳이 대답을 하지는 않았고 대신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기색을 보이자, 어깨에 부비는 주양의 머리를 휙휙 쓰다듬어준다.
"안그래도 주궁까지 데려다줄 생각이었으니까 상관없지만~"
손을 토닥여준 단태는 주양의 손을 자연스럽게 감싼 뒤에 걸음을 옮기다가 이어지는 말에 낄낄거리며 웃었다. 밤산책을 하는 이유는 딱히 없었기 때문에 주궁까지 가는 것 정도는 어려울 것 없었다. 게다가 어디서 들은 건지 머글 세계에서나 들릴 법한 안내방송을 따라하는 목소리 때문에 결국 웃어버린거나 마찬가지였다. 주궁까지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았으니까 조금만 더 걸으면 금방 도착할 것이다.
스흡, 하고 주먹을 쥐고 입을 닦았다. 이런 작은 미물에 쓰는것마저도 거부감이 들었는데 사람에게 쓰는거라면 어떤 기분일까. 레오는 가만히 버니를 바라보며 하는 말을 곧이 곧대로 듣고있었다. 우선은 저 사람의 마음에 드는 것이 우선이다. 잘하면 정보를 캐낼수도 있고 저주에서 방어하는 방법도 깨달을지도 모르니까. 아는 사람에 쓰게 될것이라는 말에 레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 아는 사람..한테..? ... 뭐, 좋아. 일단은.. 솔직히 말하면 그리 나쁜 경험도 아닌..것 같기도 하고.. "
반은 거짓말이고 반은 진심이었다. 어찌되었든 일단은 이 버니라는 선배의 환심을 사야했고 나는 너의 사람이다 라는 인식을 심어줘야했으니까. 캐내야할 정보가 많았고 배워야할 지식이 많았다. 레오는 스스로의 정신상태가 튼튼하며 선을 잘 지킬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괜찮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전부 내던지면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