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심약한 편에 들지 않는 사람이다. 시체를 대하는 직업 특성상 부검에도 여러번 참관했고, 현장에서 죽은 시체의 조각을 수습하기도 했으며, 직접 시체를 닦는 등의 일련의 과정을 걸쳐 관에 안치하는 일이 학생이 아닐 때의 본업이기도 하다. 가문 자체가 장의사 일에서 그치지 않고 요컨대 죽음과 가장 밀접한 가문이다 이 말이었다. 머글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을 지 모르지만 일단 머글보다 기술 발달이 늦고 여러 인식이 중세에 머무른 것 같은 마법사 사회에서 가장 강심장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은 난생 처음인지라, 그는 놀라 발을 헛디뎌 뒤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달링도 깍깍 소리를 지르며 경계한다. 그의 가문에 애니마구스가 있을 리가. 신경질적인 눈으로 올려다 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혀를 차며 아직 물기가 남은 머리를 쓸어넘긴다.
"그래. 자네는 아가라고 부를 입장이 전혀..아니군 그래."
그는 일단 젤리를 낚아채듯 하며 자리에서 느릿하게 일어섰다. 포장을 뜯기 전 힐끔 쳐다보는 것이 당신이 여기 왜 있는 지 모르겠다는 눈치다. 교정 안에 메구의 추종자가 있다. 그것도 그의 방 안에. 교수님께 말씀을 드리면 되는 일인가 싶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렇지도 않다. 괜히 귀찮아질 일이 생길 지도 모른다. 차라리 적당히 어울려주고 보내주는 것이 낫겠지. 저번처럼 했다간 이번에도 어머니께서 사람을 보내 입을 죄 꼬맬 지도 모르고.
그는 긴 손톱으로 능숙하게 포장을 뜯는다. 힘이 조금 들긴 했는지 드러난 앙상한 손등에서 힘줄이 잠깐 불거진다. 젤리의 포장을 여는 것조차 힘이 들 일인가 싶긴 하지만. 그가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속삭이듯 당신에게 면박을 주듯 입을 연다.
분위기는 풀렸으니 굳이 그것을 이끌고 갈 이유는 없었다. 분위기를 바꾸거나, 진실을 가리는 건 익숙했다. 주양의 말에 헤죽- 미소를 지으면서 단태는 느물느물한 목소리로 몇가지의 호칭을 더 덧붙혔다. "호박 아가씨라고 부르면 그건 자기에 대한 칭찬이 아니잖아?" 하고 느물하게 덧붙히는 것이 뻔뻔하다. 아주 뻔뻔하다. 주단태의 낯에는 분명 철판 하나가 씌워져 있는 게 분명하다.
"자기야~ 그게 자기의 수만가지 매력적인 장점 중 하나잖아? 나는 충분히 이해해. 내가 이해하지 않으면 누가 자기를 이해해주겠어, 안그래?"
이래저래 고생했다는 말에 단태는 주양의 얼굴, 정확히는 뺨과 턱 사이에 손을 대고 자연스럽게-혹은 뻔뻔하게- 이리저리 돌려서 관찰했다. 비행술 수업에서 고생했다면 혹시나 다쳤을 가능성이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다치지는 않은 것 같네. 다행이야. 달링~" 자연스러운 관찰과 뻔뻔스럽게 이어지는 느물느물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단태가 능청스레 히죽, 미소를 머금었다.
"반지를 끼고 오셨길래 물어봤지~ 말씀하시는 걸 보니 교수님들 중 한분인 것 같은데~ 오! 그럴까. 자기? 나도 거기까지는 물어보지 못했거든. 너무너무 궁금하지?"
이럴 때 보면 현궁이 아니라 청궁에 가는 게 맞지 않나 싶을지도 모르겠다. 알아낸다고 해도 여기저기 알릴 생각은 없었다. 에반스 교수님이 당황스러워하는 건 보고 싶었지만 울어버리시는 건 좀 여러모로 곤란했다. 안그래서 불성실하고 경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교수님을 울린 학생이라는 이미지까지 얹어지면 곤란했다. 단태는 걸음을 옮기면서 루모스로 불이 밝혀진 자신의 지팡이를 마치, 지휘봉이라도 휘두르는 것처럼 허공으로 흔들었다. 유연성이 없는 지팡이는 둔탁한 소음만 들려온다.
"일단 에반스 교수님이 금지된 저주를 사용하시지는 않아서 이론 위주로 하기는 했지만- 고문, 조종, 살인 저주 중에 저항할 수 있는 건 조종이야. 고문 저주와 살인 저주는 막을 방법은 없다~ 그리고 고문 저주는 시전자의 역량에 따라 그 위력이 증가하고~ 죽이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다~ 정도?"
고통은 익숙했지만, 크루시오를 맞았을 때의 고통은 이제껏 경험했었던 고통과 비견되지 않는 고통이였다. 그 무자비한 고통. 가늘어진 눈매에서 암적색 눈동자가 슬그머니 암암리에 가라앉았다.
"아니. 그. 우리 여보야가 써주는 거니까 전혀 싫은 건 아니지! 그렇고 말고! 작은 호박 아가씨나, 키.. 키티나, 그.. 음. 작은 토끼 아가씨도 괜찮아. 정말 다 괜찮아!"
괜찮다는 말은 진심이기는 했다. 단지 자신의 당당함이 괜찮지 않을 뿐이었다. 양심 따위야 이미 쓰레기통에 내던져버린 지 오래였기에 별로 개의치 않았으나 부끄러움은 양심과는 너무나도 다른 개념이었다. 한번 들었던 호칭을 다시 이야기할때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였으나, 다시 자신에게 쓴 적 없는 호칭이 돌아왔을 때는 주양답지 않게 한참 뜸을 들였다는 것이 꽤 볼만했을 것이다. 익숙해졌다고 한껏 당당해져 있던 자신이 한스러웠다. 당당함과 자신감은 충분히 준비가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역으로 그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오는 양날의 검과도 같은 것이었다.
다시, 충분히 이해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서로가 서로의 이해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야만 하는 이 역할극은 결코 끝맺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의 끝을 마무리짓고 주양은 웃었다. 겉돌더라도, 그 겉도는 과정이 충분히 흥미있고 감정 기복을 줄만한 것이라면 그것마저도 평생 즐기며 살아갈 수 있을테니.
"그럼! 역시 우리 여보야는 믿음직하다니까. 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건 여보야가 유일할걸? .. 어머. 그렇게 여기저기 살피면 나는 조금 부끄러워진단 말이야~"
다칠 뻔 하긴 했으나 사감님의 환상적인 디펜스로 크게 다치는 상황까지는 면할 수 있었다. 겸사겸사 아직 자신이 배워가야 할 점이 많을 모습까지 확인했으니 그 정도면 충분한 등가교환이지 싶었다. 자신은 다칠 리 없다며,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곁들이고서 주양 역시 다음 이야기에 흥미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반지까지 끼고 오셨단 말이지? 게다가 교수님 중 한 분이라고? 세상에 마상에, 놀라워라! 좋아. 여보야랑 같이 알아본다면 정보력이나 행동력에서 절대 꿇릴 일 없을테니까, 알아내는건 시간 문제겠어!"
교수님 중 한 분이라니, 더더욱 예측하지 못한 점이다. 다음 수업에 들어갈 때는 필히 여기저기 다 돌아보면서, 교수님들의 손가락을 한번씩 체크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겸사겸사 사감님의 손가락도 확인해보고. 혹시 아는가?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의외로 그 대상이 가까이 있을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르니까. 물론 아니겠지만, 그것을 알 턱이 없는 주양은 수색 범위를 더욱 넓혀 나가기로 다짐했다. 간만에 목청 좀 쓰겠다 싶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주양은 당신의 설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놓친 과목이니만큼 잘 들어두는 것이 자신에게는 이득일 것이다. 이론 위주의 수업이라도 거기서 건져갈만한 것들은 충분히 있다. 수업이니까 당연하겠지만, 주양은 자신이 그렇게 판단했다는 것이 엄청나게 현명하고 지적으로 보일 거라는 오해를 하고 있었다.
"역시 위험한 저주니까 막을 방법이 딱히 없었구나. 조종 마법도 막지 못할 거 같았는데 조금 의외인걸? .. 오호라. 그래. 그렇단 말이지."
고문 저주에 대한 세세한 내용들이 귀에 쏙쏙 잘 들어왔다. 시전자의 역량에 따라 위력이 증가하고, 죽일 마음을 먹지 않는다면 통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면 그들은 정말 죽일 생각으로 임하고 있었던 것일까. 역량에 따라 위력이 증가한다면 얼마나 강한 자들이었던 것일까. 주양의 입꼬리에는 서서히 미소가 번져나가고 있었다. 역시 자신이 질만한 상대들이다. 허나 그렇다고 강자들이 두렵느냐면 또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더욱 자신의 심장을 쫄리게 만들 근사한 싸움을 선사해줄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기뻤다. 그 싸움에서 자신에게 주어질 방대한 감정 기복은 상상만 해도 짜릿했다.
"여보야가 생생하게 잘 설명해줘서 진짜 수업 듣는것처럼 집중이 잘 되는걸? 고마워! 이제 이걸로 못 들었던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은 다 들은거나 마찬가지네!"
그러면서 또 한켠으로는 궁금해졌다. 역량에 따라 강해지는 마법만큼 지금 자신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하기는 딱 좋을 테니까. 물론 어느 마법이 안 그러겠느냐만은, 예시를 든 것이 크루시오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기억에 강렬하게 꽂혀버렸기 때문일까. 만약 자신이 그것을 쓴다면 대체 어느 정도일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호기심은 얼른 그쳐버렸다. 정말 잘못된 길을 간다면, 두번 다신 돌아오지 못할테니까.
아. 당신의 눈빛이 살며시 가라앉았다. 역시 누구에게나 끔찍하게 눌어붙었을 그 기억은, 절대 지워지지 않겠지. 아무리 싹싹 문질러도, 긁어내려고 하더라도 긁어지지 않은 채. 더 큰 흉을 남길 뿐일테니. 슬쩍 당신과의 거리를 좁혀 어깨동무를 하며 당신의 어깨에 얹혀진 손을 가볍게 토닥여주기 시작했다.
"여보야, 괜찮아. 그땐 내가 맨 처음 당해버려서 이도저도 못 했지만, 다음엔 아닐테니까! 그땐 내가 보란듯이 꺾어버리겠어. 진심으로."
아무리 만들어진 관계라고 한들 단짝이 가라앉아있는 건 보기 힘들었다.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며 주양은 무해하게 웃었다.
>>566 아닛..? 첼주 나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는거 아니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정식 루트를 타는것보단 또 다른 서브 루트를 타는것도 하나의 재미지. 그렇고 말고!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막내 놀리는건 재밌기는 하니까.. 내가 첫째라서 그런가, 묘하게 공감이 가려 하는걸? (더 나쁨)
>>569 우리 캡틴이 귀엽지 않다구? 둥가둥가 하면 금방 풀리는 우리 뽀짝이 동캡이 안 귀엽다구??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해 캡틴~! (부둥기둥기)(쓰다다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