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려오는 반문에 답을 돌려준 보름은 카메라를 바다로 향했습니다. 하늘 바다 나눌 것 없이 파란 것이 잉크를 쏟아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곳에 하얗게 툭 떨어진 구름과, 반짝이며 깔려있는 모래사장이 있었습니다. 포토북에서 이번 여행의 첫 사진으로 장식하기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바닷물로 가기 전, 아직 따스한 모래사장 위에 서 있는 친구들을 빛내줄 배경으로도 만족스러운 풍경이었습니다.
ㅤ”내가 못 나와.”
하진을 올려다보는 보름의 목소리에서 조금 의아함이 묻어났습니다. 지금도 당신을 보기 위해 고개를 뒤로 젖히는 보름은 자신의 손 한 뼘을 발 끝에 더한다 해도 고개는 뒤로 젖혀져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 자신이 당신을 깊게 묻을 정도로 팠다가는 아마 스스로를 묻어버리게 될 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단순한 모래놀이 삽이 아니라 땅을 파기 위한 삽이 있다고 해도 힘들 것 같기도 했습니다.
ㅤ”너희들은 좋아해.”
물을 싫어합니다. 변하지 않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만큼, 그것보다 더 뚜렷한 사실이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보름이 마음을 내고 들인 친구들입니다. 같이 물에 들어가지는 못 하지만 옆에 친구들이 있는 것으로 좋았습니다. 그래서 하진의 말이 고마웠고, 기뻤으며, 반가웠습니다. 얼마나 그러했느냐 하면, 보통 앙 다물려있기만 하던 보름의 입 모양이 하트 모양을 그린 것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보름이 웃을 때 드러나고는 하던 모양입니다. 보름은 당신의 제안에 고개를 한 번 끄덕였습니다.
사실 혼자가 아니라 다른 이와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지만 굳이 장난을 당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하진이었기에 그 부분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성헌과 설. 둘 중 한 명하고만 손을 잡아도 엄청난 일을 당할지도 모르니 절대 그쪽으로는 생각이 닿지 않게 거론조차도 하지 않으려고 하며 하진은 가만히 두 손을 깍지 낀 후에 쭈욱 위로 뻗었다가 아래로 내렸다.
"넌 갑자기 그렇게 훅 들어오는 것 같더라. 내 기분 탓인가. 뭐, 나도 너희들 다 좋아하니까 차이는 없겠지만."
물론 그녀와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를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어린 시절, 집에 혼자 있던 시기가 많았던 자신과 함께 놀았던 친구였던 세 명은 특히 더 소중했고, 지금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보물과도 같은 존재였기에 자신 역시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고, 그는 그것을 밝혔다. 괜히 쑥스러운지 시선을 돌리며, 브릿지를 넣은 자신의 머리카락 한 줌만 괜히 손으로 만지면서 정리를 하던 그는 푸른 파도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발을 담글 수도 있겠지만 조금 미루기로 마음 먹으며 조금 아쉬운 발걸음을 떼면서 그는 다시 앞으로 천천히 걸었다.
"그러고 보니 넌 이번 성적 잘 나왔어? 나는 어떻게든 늘 나오던대로 나온 것 같은데. 진짜 내년이 되면 고3이고, 다들 바빠지겠구나 싶어서 묘해. 설이는 우리가 다 끝나면 대입 시작이고. 올해가 지나면 앞으로 2년간은 각자 바쁘겠구나 싶어. ...아. 그 이후는 성헌이는 모르겠지만 난 또 군대로구나."
어느 순간 점점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적어진다고 느끼며 그는 괜히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허나 그 또한 결국 받아들여야하는 것이기에 그는 미소를 지었다.
고작 하루 우유 마시고 잔다고 키가 클 리는 없겠지요. 단지 못 나올 정도의 깊이에 들어가는 장난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말에 할려면 할 수는 있다는 장난의 긴장감을 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물론, 보름이 모래찜질을 해주겠다고 나선 것은 예술을 위한 것이지만요. 한마디를 조곤조곤 흘린 보름은 바다를 담고 있던 카메라를 내립니다. 출력되는 필름을 손에 쥐고 바다로 팔을 쭉 뻗어보았습니다. 다 마르거든 분명 저 풍경이 그대로 이 작은 필름 안에 그려질 것입니다.
ㅤ“갑자기 아냐.”
계속 좋아하고 있었으니, 갑자기 좋아한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는 부정입니다. 시선을 돌리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소리내어버린 후라 다시 담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이야기를 맺는 것이 나았을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가 흩어질 뿐입니다. 단지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하진보다 한 발자국 걸음을 늦게 떼었습니다.
ㅤ“썰매 탔어.”
얼어붙은 빙판 위에서 썰매는 앞으로 쭈욱 미끄러집니다. 저번 성적보다 딱히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았다는 뜻이었습니다. 작은 한숨 소리를 들은 보름은 걸음을 우뚝 멈춰 세우면서, 다시금 앞에 있는 하진의 옷을 붙잡으려고 했습니다.
ㅤ“롤러코스터잖아.”
막을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같이 있는 시간이 적어질 때가 있다면, 오르락 내리락하는 롤러코스터처럼 다시 많아지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보름이 그 시간이 계속 적어지게만 둘 생각이 없기도 했습니다.
장난에는 장난으로 대응하며 하진은 정말로 가볍게 응수했다. 애초에 우유를 먹는다고 갑자기 키가 클리가 없었으니 그저 장난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기에 목소리 역시 상당히 가벼운 편이었다. 아무튼 모래찜질은 정말로 맡겨야겠다고 생각하며 내일은 몇시쯤 바다에 나오는 것이 좋을까 그는 고민했다.
썰매를 탔다는 그 말에 무슨 말을 하는건가 싶어 하진은 살며시 고개를 기울였다. 적어도 떨어졌다는 것은 아니라는걸까. 그렇다면 좋은게 좋은거지. 결국 그가 낸 결론은 그랬다. 성적은 떨어지지만 않으면 좋은 것이었으니. 자신도, 그녀도 앞으로 성적이 떨어지지만 않길 속으로 바라던 와중, 자신의 옷이 살며시 잡히자 그의 시선이 다시 그녀에게 향했다.
"롤러코스터? 음. 그러게. 롤러코스터 같긴 하다. 그거."
그녀가 말하는 의도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같을진 그도 알 길이 없었다. 허나, 적어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진 알 것 같았기에 그 의미만 캐치를 하려고 하면서 그는 두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럼 지금은 그 롤러코스터를 제대로 즐겨야겠네. 좋아! 이대로 조금 더 걸어보자. 아. 맞아. 맞아. 설이와 전에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혹시 나중에 게임 같이 하지 않을래? 그러니까... 꽤 유행하던건데, 그러니까... 단순히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을 하는... 아무튼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그런 게임이래!"
적어도 자신은 거짓말은 하지 않았기에 그의 목소리는 상당히 뻔뻔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가. 운동게임으로 유명한 그 게임인 링피트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고들 하니까.
성헌이를 섭외하겠다는 하진의 목소리에 그를 떠올려 보니 절로 나오는 말이었습니다. 장난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성헌을 편으로 둔 하진을 깊게 묻어버리기라니. 그렇게 어려워 보이는 것도 또 없을 것 같았습니다.
고개가 기울어진 하진을 보고는 무슨 연유인가 싶어 눈을 깜빡이다가, 자신이 붙잡아서 시선을 마주친 하진을 바라봅니다. 롤러코스터 같다는 답변이 돌아오자 한숨은 더 이상 쉬지 않으려나 생각하고, 붙잡았던 옷 끝을 놓았습니다.
ㅤ“5분.”
3분이라고 할 걸 그랬나 바로 작은 후회가 밀려 들어왔습니다. 손에 쥐어진 푸른 사진을 포토북으로 데려가고 싶었습니다. 더 걸었다가는 굴러다니고 싶다 말했던 것이 이루어질 지도 모를 성 싶었습니다. 왔던 만큼 돌아가야하는 것이니, 부드러운 모래사장과 눈이 시리는 푸른 하늘과 바다를 사진으로 담겠다는 목표를 달성한 이상 제한 시간을 내거는 것입니다.
ㅤ“곰은... 사람을 찢어.”
단순히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을 한다는 말에 보름은 좋지 않은 예감을 느꼈습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동작 이상의 움직임이 동반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보름은 자신의 머리 위에 있는 머리 모양을 톡톡 건들였습니다. 곰돌이 귀 모양으로 땋아서 고정해둔 머리카락 모양이 조금 흔들거립니다. 곰은 더 건강해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봐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5분이라는 시간을 거는 것으로 보아 다시 펜션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그는 추측했다. 하긴, 막 바다에 왔고 펜션에 도착했으니 피곤할 수밖에 없을테니 다시 펜션으로 가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는 것도 좋겠다 싶어 그는 살며시 몸을 옆으로 돌려 펜션이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발을 옮겼다.
아무튼 이상한 것을 감지했는지 곰을 거론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는 오른손으로 입을 막은 후에 소리없이 웃으면서 고개를 살며시 도리도리 저었다.
"하지만 보름이는 곰이 아니잖아? 괜찮아. 괜찮아. 나도 하고 성헌이도 하고 설이도 할거야."
물론 설은 자신은 안하겠다고 했지만 자신이 시키고 말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하진은 곧 어깨를 으쓱했다. 결국 모두가 다 하고 불타버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더 그 관련으로 말을 잇지는 않았다. 물론 강제로 시킬 생각은 없었으나, 그래도 일단 한번씩은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모래밭 밖으로 천천히 나온 그는 주변을 가만히 바라봤다.
"근처에 가게도 많네. 따로 뭐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나와서 먹어도 좋겠어. 좀 더 둘려봐야 알 것 같지만."
>>681 매력넘치게 봐준다면 (그랜절) 응응 일상에서 느껴진 훈훈함은 99.9%가 하진이 덕이었지! 설주 잘 가! 볼일 잘 보고 오늘 하루 잘 보내!!
>>682 고마워! 쿨 느낌은 이번에 피곤한 보름이었으니까 그랬을거야 @@ 아무리 그래도 소꿉친구들한테까지 쌀쌀맞게 굴리는 없으니까, 말수적고 엉뚱하게 말할 뿐인 @@ 개성이라고 느껴줘서 고마워! 하진이도 시트에 적힌 성격 부분 와닿았어. 잔잔하게 따스한 봄바람 같은 느낌... 마망이라는 말도 엄청 와닿고 마망.
>>684 캔버스가 타비가 있다는 것에 놀라서 검색해봤는데 가격보고 놀라서 창 닫았어 ^.^ 보름아...... 취업하면 사렴...... 성헌이 이전 독백들에서 본 모습 때문에 보름이는 성헌이 보게 되면 볼이든 어디든 쭉 꼬집어 버릴 생각이 있었는데 성헌이를 언제 만나냐에 따라 이거 못할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든다 @@ 누어있으시다니 참으로 옳습니다. 전적으로 저를 믿으셔야 (믿으면 안됨 2시 다 되어가는데 깨어있는 것을 보라) 매력적으로 봐줘서 고마워! 엉뚱한 대답을 하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생각하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
>>685 맞아!! (딩동댕) 안 피곤한 보름이를 언제 보여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응응 하진주도 잘 자고 목요일 화이팅이야! 굿나잇!!
>>686 그러나 성헌이는 생각보다 용돈을 많이 받는 편이고, 아마추어 활동하면서 파이트머니도 나오기에 성헌이랑 같이 갔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구. 비슷한 맥락에서 설이랑 가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거야! 오.. 그럼 일찍 만나야겠는걸. 뺨꼬집이라니 업계에서는 포ㅅ.........
>>687 n십만원 단위던데 보름이가 바바바받을 수 이이이있을까?? (덜덜) 성헌이든 설이든 아무리 소꿉친구라지만 보름이 얼탄다 @@ 보름이네가 경제적으로 부족한 가정은 아니지만 오남매 대가족이라 용돈은 좀 적게 타는 편일 거 같고 @@ 업계 포상이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성헌이도 동의하나요? 성헌이가 허락...해줄까....? 높이 차이 때문에 성헌이가 앉아있을 때를 노리거나 아예 손등 같은데를 꼬집을 계획인 문보름(18, 소꿉친구)
>>688 여기서 짤막하게 리액션을 보여주고 싶지만 그것은 보름이에게 중요한 행동일 것 같으니 일상에서 직접 만나서 해보자구! 성헌이는 소꿉친구들에겐 관대하고 그래서 소꿉친구들에게 선물을 해주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지. 무엇보다 보름이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알아챈다면 성헌이는 더 뭐라 저항할 수가 없을 것... 쭈굴탱이가 될 것
>>691 사실 성헌이가 했던 경기랑 가까운 시점에 보름이가 만날 기회가 있었다면 "나한테도 똑같이 해 봐." 같은 K-마라붉닭볶음맛 대사를 날렸을 것 같단 생각도 있고 @@ 지금이야 좀 시간이 지난 후 같으니 꼬집기인거고 @@@@ 성헌아..... 아니다. 이건 아버님을. 한번. 오은영박사님 모셔와야.
>>692 코끼리마취총 필요없겠는데? (둥둥 떠있음) 하긴 땡깡을 부린답시고 선을 넘었으니, 마찬가지로 선 넘는 반응이 돌아올 것은 감안해야겠지만 성헌이가 정말로 그 말을 들었으면 ㅓㅜ... (VERDICT 엔딩 힐끔) 시간이 지나서 여러 가지로 다행이네.. 성헌이네 아버님은.. 성헌이를 불완전한 캐릭터로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된 완전한 빌런이므로 어쩔 수가 없어 그건 (절레)
>>693 영...혼? 마취총이 아니라 실탄으로 맞은 거 같은데 @@ 육신으로 돌아와!! @@@@@ 보름이 성격 좋다 소리 들을 애는 아니니까. 성헌이 속을 팍 긁었을지도 몰라. 선도 아주 줄넘기마냥 넘어다니고...... 나도 보름이 내고서 전 스레 읽어보며 그 생각했어. 빈자리 났단 걸 늦게 알아서 다행인가라는 ^.^ 아버님...............
>>694 의외로 매운맛 의외로 사이다, 그 이름 문보름... (기립박수) 만사 태평한 캐릭터는 굴리다 보면 쉽게 질려서 시트를 내리게 되는 병이 있어서, 성헌이는 이래저래 '이야깃거리' 를 만들 수 있게끔 반짝이는 부분만큼이나 깨진 자국이 선명한 캐릭터로 만들고 싶었거든. situplay>1596259288>591같은 독백도 많이 썼고, 어쩌면 앞으로도 종종 쓸 것 같고. 그런 관계로...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소꿉친구님!! 그리고 소꿉친구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