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고 예절바르게 인사하며 아무 일 없이 데면데면하게 스쳐지나가는 것만 같던 성헌의 18세의 여름이, 문득 갑자기 너무도 극적으로 뒤통수를 후려치는 바람에 성헌은 조금 어안이벙벙한 기분이 되었다.
문득 당장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세 사람을 끌고 나와서 일출 구경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굳이 곤히 잠든 애들을 깨우고 싶진 않았기에(그리고 설이 궁시렁대는 소리가 귀에 선했기에) 그는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물론 오늘 점심이나 저녁쯤에 '오늘 새벽에 아침 로드워크를 나갔는데 일출이 죽여주더라' 라는 말을 한 번 이상은 하게 될 것 같았지만, 이것 말고도 이 여행에서 볼 수 있을 멋진 경치가 많을 테니까.
그리고 이건 여기서 맞이하는 마지막 아침이 아니라 첫 아침이 아닌가. 다음 아침에 보여줘도 충분할 거라고 성헌은 생각했고, 마당 출입문으로 나서서는... 매일 아침마다 그랬던 것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18세의 여름을 내딛기 시작했다.
필름에 담긴 것은 하진의 뒷모습, 파랗게 산란하는 당신의 뒷모습이었습니다. 여름의 계절감과 바다의 냄새를 담뿍 녹여 만든 물감으로 찍어 그린 듯한 사진은 당신의 손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고맙다는 인사에 눈을 한 번 깜박인 보름은 카메라를 다시 들어올려 하진에게로 향했습니다. 찍는 시늉을 했을 뿐이었지만요.
ㅤ“그럼 바다가 도망가버려.”
바다에 도착한 오늘의 것이 아니면 안 되었습니다. 내일의 바다는 내일의 것, 여행이 시작된 날의 바다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든지 기다려주겠다는 말에 보름은 자리에 무릎을 굽혀 쭈그려 앉나 싶더니, 이내 곧 자리에 앉아버립니다. 옷이 더러워지는 것을 신경썼다면 신발도 구겨신지 않았겠지요.
ㅤ“예술.”
신발을 고쳐 신던 보름의 얼굴 위 표정에 묘한 장난기가 어렸습니다. 살풋 웃는 듯이 휘어진 눈매에 그것이 걸려 있었습니다. 보름은 자신을 제외한 세 사람을 전부 모래 사장에 묻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인어, 문어, 해파리, 해마, 말고도 만들 수 있는 것은 많았습니다. 모래 놀이말고도, 보름은 손에 들려있는 폴라로이드의 필름을 다 써버려야 했으니 바쁠 예정입니다. 여분 필름도 짐 안에 들어있으니까요. 구겨졌던 신발을 바로 신은 보름은 자리에서 툭 털고 일어났습니다.
ㅤ”왼쪽, 오른쪽?”
바다는 끝없이 넓고, 바닷가도 넓었습니다. 어느쪽으로 가도 바닷가일텐데, 펜션을 기준으로 왼쪽으로 갈지 오른쪽으로 갈지 물어봅니다.
장난기를 담고 있는 그녀의 표정에 그는 고개를 살며시 갸웃했다. 물론 예술의 범위는 광범휘했으니 어쩌면 그림이 아니라 사진일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그녀가 생각하는 부분은 조금도 떠올리지 못한채 하진은 열심히 즐겨보라고 웃으면서 응원할 뿐이었다. 때마침 모습을 보이는 사진을 바라보면서 이런 사진이라면 확실히 예술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아무런 말 없이 엄지손가락을 위로 치켜세웠다.
"아무튼 옷 살짝 터는게 좋지 않겠어? 손수건 빌려줄까?"
방금 전 바닥에 앉았으니 옷에 뭔가가 묻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는 주머니에서 푸른색 손수건을 꺼낸 후에 그녀에게 내밀었다. 만약 쓴다면 빌려줄 생각이었고 거절한다면 그대로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을 생각이었다. 아무튼 그녀의 물음에 그는 살며시 양쪽을 둘러보다가 왼쪽을 가리켰다.
"그럼 왼쪽으로. 방향이 뭔가 이쪽이 더 끌리네. 사실 어느쪽으로 가도 별 차이는 없을 것 같지 않아?"
그저 돌아오는 길이 조금 차이가 날 뿐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바닷가쪽으로 좀 더 이동한 후, 찬란하게 반짝이는 모래밭을 살며시 밟았다. 발자국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정말로 부드럽게 쏟아지는 모래는 신발 위로도 느껴질 정도로 상당히 부드러워 그는 절로 감탄을 내뱉었다.
"와. 여기서 모래찜질 같은 거 하면 장난 아니겠어. 내일 돗자리 깔고 바다에서 논 후에 생각 좀 해봐야겠는걸?"
하진의 말에 보름은 고개를 길게 늘어뜨렸습니다. 검지 손가락 하나가 입술 위로 올라오고, 눈매에 걸려있던 장난기는 그래도 툭 굴러떨어져 입꼬리 끝에 대롱대롱 걸리고 맙니다. 아무것도 모르고서 응원하는 하진에게 딱 한 단어를 들려줍니다.
ㅤ“비밀.”
짧은 비밀입니다. 내일이면 밝혀지고말 비밀이었지만, 보름은 이것이 즐거웠습니다. 비밀을 가리키던 검시 손가락이 있던 손은 다시 아래로 향해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엄지 손가락을 위로 치켜세우는 하진에게, 똑같이 보름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듯 싶더니 두 엄지 손가락을 꼭 맞대 보려했습니다. 하진의 긍정적인 반응에 자신도 긍정적이라는 뜻으로서 나온 행동입니다.
내밀어진 파란 손수건을 내려다보던 보름은 하진의 친절을 손에 쥐었습니다. 살짝 옷을 털어내고서 다시 손수건을 돌려주며 입을 엽니다.
ㅤ“너 닮았다.”
보름의 눈에는 파란 손수건이, 자신이 찍은 사진 속 하진과 닮아보였습니다. 둘 다 파랗다는 점이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ㅤ”밤에는 오른쪽.”
하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걷다 보니 만나게 된 모래밭에 발을 올렸습니다. 신발을 제대로 고쳐신지 않았더라면 신발 속으로 들어왔을 모래들은 보름의 발을 가볍고 부드럽게 한입 삼켰습니다. 이렇게 부드럽게 흩어져서야 물고기 비늘을 그리려면 물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627 신발 신기해...! 나도 처음 봤어 @@ 보름이도 성헌이가 신는 것 말고는 못 봤을 것 같고, 신으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서 신어보려고 할 거 같고! >>631 당연히 만나러 갈테야 @@ 나도 3인 4인 다 상관없지! 시간만 맞는다면 현생만 던진다면 매일매일 매시간 일상을 돌리고 싶은 것 @@
>>628 부모님 버프! @@ 아이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서 간단 것만 생각하다 고등학생이라는 걸 잠깐 망각해버렸나봐... ^.^ 그럼 고속도로 탈테니 휴게소 루트인가! 다들 휴게소 간식 취향 궁금해 @@
>>633 답레 쓰는 사이 설주에게 인사도 못했는데!! 88 응 설주도 오늘 하루 화이팅이야! 나중에 또 보자!!
성헌이가 하진이 깨워준다고 하면 보름이도 깨워달라고 툭 나타날 거 같아 @@ 그래도 바다까지 왔는데... 일출 보는 건 뒤로 하더라도 일출 사진 한 장은 남겨야하는 것 아니겠어 @@ 일출 보는 아이들 사진까지 찍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 그리고 목적 달성 후 칼같이 펜션으로 돌아가 드러눕겠지 ^.^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하진은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자신이 손수건와 닮은 부분이 있었나 생각을 해보지만 막상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이런저런 뒤에서 움직이는 것이 닮은 것일까. 나름대로 어떻게든 추측을 하면서 그는 그저 혼자 납득했다. 그녀의 눈에는 뭔가 닮은 부분이 있었다는 이야기일테니까.
아무튼 발걸음을 옮기며 그는 모래밭을 넘어 파랗게 철썩이는 푸른 바다를 바라봤다. 외국의 맑은 바다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눈앞의 바다 역시 하진의 눈에는 맑게 비쳤다. 푸른빛이 정말로 시원해보였고 내일 본격적으로 수영을 하면 정말로 시원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하며, 수영을 좋아하는 성헌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거라고 생각하며 그는 여기로 오길 잘했다고 확신했다.
이어 모래찜질 이야기에 자신이 해주겠다는 그 말에 그는 고개를 돌려 보름을 바라봤다. 확실히 모래찜질은 혼자서 하기에는 힘들었으니 누군가의 도움이 있다면 그로서도 나쁠 것이 없었다.
"그럼 부탁할게. 너무 깊게 파묻기는 없기다. 알았지?"
적어도 혼자서 빠져나올 정도의 깊이로 해달라고 이야기를 하며 그는 바닷가 쪽으로 조금 더 다가갔다. 자연히 모래밭을 적시고 있는 맑은 하얀 파도가 철썩이는 것이 보였고 그는 괜히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 푸른 바다를 눈에 마음껏 담았다.
"그러고 보니 보름이 넌, 물을 좋아하지 않았지? 그럼 내일은 다 같이 나와서 시원한 거라도 먹으면서 바다 구경이라도 좀 하자. 물론 수영할 이는 수영하고 말이야."
>>638-639 그리고 너도 이런 거 하나 살래? 하고 물어보는 성헌이 사실 소꿉친구 4인조가 전부 일출을 보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아니라 밤을 새는 게 더 가능성있을 것 같기도 하고 ㅋㅋㅋㅋ 성헌이는 고속도로 휴게소 간식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본인 말로는 맛에 비해 영양 밸런스가 너무 엉망이라고... 그나마 먹는다면 소시지처럼 튀김옷이 없는 고기류 정도일까?
>>642 뭐야! 생각보다 훨씬 멋져! 최고야!! 물론 난 오토바이는 무서워서 못 타고 앞으로도 탈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디자인이 멋진 것은 좋다!! 밤을 새는 것. ㅋㅋㅋㅋㅋㅋㅋ 확실히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일출을 보고 난 후에 하진이는 아마 기절하듯이 침대로 가서 뻗고 말겠지! 밤을 새는 것은 잘 못 하는 하진이니까 결국 오후에나 눈을 뜰 것 같아. 아무튼 정말로 성헌이는 영양을 많이 따지는구나. 미래의 성헌이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자꾸 추가된다!
들려오는 반문에 답을 돌려준 보름은 카메라를 바다로 향했습니다. 하늘 바다 나눌 것 없이 파란 것이 잉크를 쏟아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곳에 하얗게 툭 떨어진 구름과, 반짝이며 깔려있는 모래사장이 있었습니다. 포토북에서 이번 여행의 첫 사진으로 장식하기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바닷물로 가기 전, 아직 따스한 모래사장 위에 서 있는 친구들을 빛내줄 배경으로도 만족스러운 풍경이었습니다.
ㅤ”내가 못 나와.”
하진을 올려다보는 보름의 목소리에서 조금 의아함이 묻어났습니다. 지금도 당신을 보기 위해 고개를 뒤로 젖히는 보름은 자신의 손 한 뼘을 발 끝에 더한다 해도 고개는 뒤로 젖혀져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 자신이 당신을 깊게 묻을 정도로 팠다가는 아마 스스로를 묻어버리게 될 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단순한 모래놀이 삽이 아니라 땅을 파기 위한 삽이 있다고 해도 힘들 것 같기도 했습니다.
ㅤ”너희들은 좋아해.”
물을 싫어합니다. 변하지 않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만큼, 그것보다 더 뚜렷한 사실이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보름이 마음을 내고 들인 친구들입니다. 같이 물에 들어가지는 못 하지만 옆에 친구들이 있는 것으로 좋았습니다. 그래서 하진의 말이 고마웠고, 기뻤으며, 반가웠습니다. 얼마나 그러했느냐 하면, 보통 앙 다물려있기만 하던 보름의 입 모양이 하트 모양을 그린 것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보름이 웃을 때 드러나고는 하던 모양입니다. 보름은 당신의 제안에 고개를 한 번 끄덕였습니다.
사실 혼자가 아니라 다른 이와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지만 굳이 장난을 당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하진이었기에 그 부분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성헌과 설. 둘 중 한 명하고만 손을 잡아도 엄청난 일을 당할지도 모르니 절대 그쪽으로는 생각이 닿지 않게 거론조차도 하지 않으려고 하며 하진은 가만히 두 손을 깍지 낀 후에 쭈욱 위로 뻗었다가 아래로 내렸다.
"넌 갑자기 그렇게 훅 들어오는 것 같더라. 내 기분 탓인가. 뭐, 나도 너희들 다 좋아하니까 차이는 없겠지만."
물론 그녀와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를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어린 시절, 집에 혼자 있던 시기가 많았던 자신과 함께 놀았던 친구였던 세 명은 특히 더 소중했고, 지금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보물과도 같은 존재였기에 자신 역시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고, 그는 그것을 밝혔다. 괜히 쑥스러운지 시선을 돌리며, 브릿지를 넣은 자신의 머리카락 한 줌만 괜히 손으로 만지면서 정리를 하던 그는 푸른 파도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발을 담글 수도 있겠지만 조금 미루기로 마음 먹으며 조금 아쉬운 발걸음을 떼면서 그는 다시 앞으로 천천히 걸었다.
"그러고 보니 넌 이번 성적 잘 나왔어? 나는 어떻게든 늘 나오던대로 나온 것 같은데. 진짜 내년이 되면 고3이고, 다들 바빠지겠구나 싶어서 묘해. 설이는 우리가 다 끝나면 대입 시작이고. 올해가 지나면 앞으로 2년간은 각자 바쁘겠구나 싶어. ...아. 그 이후는 성헌이는 모르겠지만 난 또 군대로구나."
어느 순간 점점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적어진다고 느끼며 그는 괜히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허나 그 또한 결국 받아들여야하는 것이기에 그는 미소를 지었다.
고작 하루 우유 마시고 잔다고 키가 클 리는 없겠지요. 단지 못 나올 정도의 깊이에 들어가는 장난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말에 할려면 할 수는 있다는 장난의 긴장감을 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물론, 보름이 모래찜질을 해주겠다고 나선 것은 예술을 위한 것이지만요. 한마디를 조곤조곤 흘린 보름은 바다를 담고 있던 카메라를 내립니다. 출력되는 필름을 손에 쥐고 바다로 팔을 쭉 뻗어보았습니다. 다 마르거든 분명 저 풍경이 그대로 이 작은 필름 안에 그려질 것입니다.
ㅤ“갑자기 아냐.”
계속 좋아하고 있었으니, 갑자기 좋아한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는 부정입니다. 시선을 돌리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소리내어버린 후라 다시 담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이야기를 맺는 것이 나았을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가 흩어질 뿐입니다. 단지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하진보다 한 발자국 걸음을 늦게 떼었습니다.
ㅤ“썰매 탔어.”
얼어붙은 빙판 위에서 썰매는 앞으로 쭈욱 미끄러집니다. 저번 성적보다 딱히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았다는 뜻이었습니다. 작은 한숨 소리를 들은 보름은 걸음을 우뚝 멈춰 세우면서, 다시금 앞에 있는 하진의 옷을 붙잡으려고 했습니다.
ㅤ“롤러코스터잖아.”
막을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같이 있는 시간이 적어질 때가 있다면, 오르락 내리락하는 롤러코스터처럼 다시 많아지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보름이 그 시간이 계속 적어지게만 둘 생각이 없기도 했습니다.
장난에는 장난으로 대응하며 하진은 정말로 가볍게 응수했다. 애초에 우유를 먹는다고 갑자기 키가 클리가 없었으니 그저 장난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기에 목소리 역시 상당히 가벼운 편이었다. 아무튼 모래찜질은 정말로 맡겨야겠다고 생각하며 내일은 몇시쯤 바다에 나오는 것이 좋을까 그는 고민했다.
썰매를 탔다는 그 말에 무슨 말을 하는건가 싶어 하진은 살며시 고개를 기울였다. 적어도 떨어졌다는 것은 아니라는걸까. 그렇다면 좋은게 좋은거지. 결국 그가 낸 결론은 그랬다. 성적은 떨어지지만 않으면 좋은 것이었으니. 자신도, 그녀도 앞으로 성적이 떨어지지만 않길 속으로 바라던 와중, 자신의 옷이 살며시 잡히자 그의 시선이 다시 그녀에게 향했다.
"롤러코스터? 음. 그러게. 롤러코스터 같긴 하다. 그거."
그녀가 말하는 의도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같을진 그도 알 길이 없었다. 허나, 적어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진 알 것 같았기에 그 의미만 캐치를 하려고 하면서 그는 두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럼 지금은 그 롤러코스터를 제대로 즐겨야겠네. 좋아! 이대로 조금 더 걸어보자. 아. 맞아. 맞아. 설이와 전에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혹시 나중에 게임 같이 하지 않을래? 그러니까... 꽤 유행하던건데, 그러니까... 단순히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을 하는... 아무튼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그런 게임이래!"
적어도 자신은 거짓말은 하지 않았기에 그의 목소리는 상당히 뻔뻔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가. 운동게임으로 유명한 그 게임인 링피트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고들 하니까.
성헌이를 섭외하겠다는 하진의 목소리에 그를 떠올려 보니 절로 나오는 말이었습니다. 장난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성헌을 편으로 둔 하진을 깊게 묻어버리기라니. 그렇게 어려워 보이는 것도 또 없을 것 같았습니다.
고개가 기울어진 하진을 보고는 무슨 연유인가 싶어 눈을 깜빡이다가, 자신이 붙잡아서 시선을 마주친 하진을 바라봅니다. 롤러코스터 같다는 답변이 돌아오자 한숨은 더 이상 쉬지 않으려나 생각하고, 붙잡았던 옷 끝을 놓았습니다.
ㅤ“5분.”
3분이라고 할 걸 그랬나 바로 작은 후회가 밀려 들어왔습니다. 손에 쥐어진 푸른 사진을 포토북으로 데려가고 싶었습니다. 더 걸었다가는 굴러다니고 싶다 말했던 것이 이루어질 지도 모를 성 싶었습니다. 왔던 만큼 돌아가야하는 것이니, 부드러운 모래사장과 눈이 시리는 푸른 하늘과 바다를 사진으로 담겠다는 목표를 달성한 이상 제한 시간을 내거는 것입니다.
ㅤ“곰은... 사람을 찢어.”
단순히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을 한다는 말에 보름은 좋지 않은 예감을 느꼈습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동작 이상의 움직임이 동반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보름은 자신의 머리 위에 있는 머리 모양을 톡톡 건들였습니다. 곰돌이 귀 모양으로 땋아서 고정해둔 머리카락 모양이 조금 흔들거립니다. 곰은 더 건강해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봐주길 바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