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으로 북적이는 라온 거리, 굼뜨지만 경쾌한 걸음으로 거리를 가로지르는 여성이 있었다. 행선지가 이미 정해져 있는지 머뭇거림은 없어보였다. 분주하던 걸음이 멈춘 것은 월식 주막 앞에서였다. 민은 과장된 몸짓으로 주막의 문을 열고 밤색 두루마기 코트 -퓨전 한복으로 추정된다.-벗으려던 차였다.
"이런."
탄식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끔 코트를 추스려야만했다. 월식 주막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듯 해서 이미 남은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민은 난처한 표정으로 기다리겠노라 전했다. 투덜거리며 거리에 다시 나온다. 운이 좋지 않아 자신이 처음 순번인듯 싶었다. 민은 팔짱을 끼고, 주막 앞에 자리잡았다. 웃기에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팔짱을 끼고 우뚝 서있는 민은 오래된 고목처럼 생기 없고 불길해보였다.
민이 뼈가 툭 불거진 손으로 제 팔을 툭툭 치고있었다. 할 일이 없으니 거리의 사람들을 관찰하게 되었다. 민의 얼굴에 노골적인 권태감이 떠올랐다. 지금이라도 다른 집을 가야하나 고민하는 눈치였다. 하다못해 기다리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생겼으면 말이라도 걸었을텐데, 따위의 속 편한 생각을 하고 있다.
#일단 상대가 누군지 모르겠어서 더 길게 못쓰겠어... ㅠㅠ 짧게 선레쓴 만큼 편하게 써서 줘!
레오는 한 걸음 먼저 나아가서 펠리체의 앞을 막아섰다. 왜 그런것인지 보여주겠다는 듯 한 손을 들어 주먹을 말아쥐곤 툭, 하고 펠리체의 어깨에 주먹을 가져다댔다. 미소를 지었고 다시 손을 거뒀다. 아까부터 계속하던 이야기. 자신은 싸움을 피하지않고 의외로 소질이 있는것 같다보니 주변에서 그런 이미지가 씌워졌다. 주궁의 투견이라던가, 건드려서 좋을 것을 못 본다던가, 눈이 상처가 난 표범을 조심하라던가 따위의 이야기들. 레오는 다시 뒷짐을 지고 걷기 시작했다.
" 위선이라.. 뭐, 깊게 묻지는 않을게. "
누구나 다 자기만의 비밀이 있는 법이다. 깊게 캐지는 않을 생각이다. 아직 그런 사이도 아니고 친구하자고 말도 꺼내지 않았으니까. 일단 지난번의 거리감이 이상했던 그 녀석 만큼은 아니지만 같은 기숙사의 항상 마주치면 싸우는 그 녀석 만큼 시비를 거는 사람도 아니니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기분을 받고 있었다. 한 걸음 또 앞서나가서 빙글, 하고 뒤를 돈 레오는 이히히, 하고 웃었다.
"백궁이 뭡니까, 하고 싶은걸 다 하는거죠. 에스카마리 가문의 절대 1원칙, 모든 것은 자유다. 본인의 책임일 뿐."
그래서 어떻게 보면 마법학교인 동화 학원에 입학한 것도 자신의 책임을 진다고 가정하고 이곳에 들어선거나 마찬가지이다. 본인이 책임만 질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아마 그런 가풍에 다이사쿠 가문 특유의 문화적 성향이 들어가 만들어진게 바로 리안이 아닐까. 윤의 불길한 눈빛을 본 것 같지만 그는 일부러 못본척 해줬다. 분명 맹세하지 않았던가.
'윤 형님의 끝은 내가 끝까지 지켜볼거다.'
그렇게 맹세하고 지금까지 달려온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씨익 웃어보였다.
"형님, 다이사쿠 가문의 정통 계승자를 얕보지 마십쇼. 회초리 맞아가며 가문의 각종 서적들을 필사해내려 가고 온갖 교양 서적들에게 파묻혀 지내온 일상들을...."
그 순간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퀭해진다. 자기가 원한 길이었지만 댓가는 참담했다는 것일까, 분명히 상냥했던 어머니인데 어느순간 보면 한냐가 따로 없이 그를 괴롭혔던게 떠올랐다.
"..... 차라리 여기가 낫죠.....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제가 원했던 길이니."
그러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귀곡탑, 그래, 왜 거길 떠올리지 못했지? 마법사계의 슬럼가나 다름 없는 저 공간을 그가 왜 기억하지 못했던거지? 그는 잠시간 고개를 돌렸다. 한번 들어가볼까, 목숨 한번 버리는 셈 치고? 라는 상념이 지나쳐갈 무렵, 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금은 타이밍이 아니라는 것일까, 그는 자신을 이끄는 윤의 목소리에 그를 뒤따라 가기 시작했다.
다행이라고 말하면서 계속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물론 당신이 고작 이 정도로 상처받지 않을 것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이 흐름을 유지하고 싶었다. 평소 느끼던것과는 또 다른 재미에 맛이 들려버린 이상은 지금의 이 느낌을 놓는다는 것은 주양이 아니었다.
"역시 우리 여보는 긍정적이라서 좋다니까! 나도 열심히 본받아서 좋은 생각만 하도록 노력해야지. 아이 참, 축복이라니 그렇게 말해버리면 내가 많이많이 부끄러워진다고?"
역시 그런 좋은 말들은 자신과 크게 어울리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싫지 않았다. 남들이 해주지 않을 말을 자신에게 스스럼없이 해주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기에. 주양은 살짝 부끄러워하는 듯 하면서도 당신에게 고마움을 조금이나마 더 표현하기 위해서 평소와 같이 계속 치근거리는 모습으로 당신을 대하기로 했다.
간혹 그 한결같은 모습 때문에 주변 인물들에게 오해를 받는 일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주양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과거에는 해명하기 급급했으나 지금은 해명보다는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즐겼다. 이유야 간단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것이 그만큼 재미있으니까. 조금 더 당신에게 착 붙으며, 또 다시 들려오는 낯간지러운 호칭에 예전 기억에서 온 불쾌함은 싹 날려버린듯 다시 에헤헤 하고 웃고 말았다. 허니버니. 자신에게 쓰기엔 뭔가 귀여운 어감이었다.
"흐음. 정말 그 정도면 괜찮겠어? 뭐, 여보가 그렇다면 그런 거니까 반박은 안 할테지만! 그치만 이래뵈도 주궁 학생대표니까 필요하면 언제든 이야기해줘. 여보의 앞을 막는 장애물은 내가 싹 다 날려버릴게?"
이 말만큼은 지금 당장이라도 실천할 수 있다는 듯 기세가 한없이 드높아졌다. 방해되는 걸 저 멀리 치워버리는 건 쉬운 일이다. 이미 그렇게, 졸업 후 방해될만한 사람을 정리하기도 했고. 숨은 붙어있을테지만 앞으로는 자신의 붉은 머리카락만 봐도 겁에 질려 설설 기어다닐테니 만족했다. 그리고 그 기세가 한풀 꺾이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주양. 자신의 이름이지만 매일 달링이나, 자기 같은 호칭으로 부르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이름으로 불러준다는 것의 영향력은 강했다. 숨을 급하게 들이쉬었다. 서 주양, K.O 같은 느낌이었다.
"크, 흡.. 흠. 좋아. 여보와 함께, 밤이라는 이 무대에 한껏 피어나보겠어. 각오하는게 조, 좋을거야!"
훅 치고 들어온 말이 남긴 여운이 가시지 않은 것인가. 그도 아니라면 당신의 이야기에 맞춰주려는 것인가. 어느 쪽이든 주양답지 않게 꽤 여성스러운 몸짓으로 당신의 손을 마주잡았다. 약간은 뻣뻣한 느낌인 게 아무래도 전자에 가까워보이는 모습이었다. 각오하라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까지 하는걸 봐선 더더욱 그랬다. 잠깐동안 그러고 있다가 다시 평소처럼 느글거리며 풀어지기는 했다만.
"에이. 그럴 리가 있을까! 다른 사람들 걱정은 그냥 서브라고? 메인은 어디까지나 우리 여보야, 여보! 그 사실을 잊으면 무지 섭섭해질것 같은데~"
볼이 콕 찔리자 찔린 쪽 볼을 슬쩍 부풀렸다. 그러고는 마냥 웃었다. 아직 다른 기숙사 사람들에게 영향이 가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돌아가고 나서 몇 명이나 다녀갔을진 모르겠지만, 조만간 다시 들러서 살펴보고 아직 게가 남아있다면 확실하게 끝장을 내버릴 생각이었다. 먹기 좋은 크기로 담가버리는게 좋겠지, 역시.
"아무튼 당한 건 없다니까 다행이야. 조금 많이 걱정해버렸는데. 이젠 걱정 안 해도 되는 건 무슨! 앞으로도 계속 걱정할거니까, 조심하라구?"
갑작스럽게 말꼬리를 홱 돌리며 마냥 웃었다. 머글들은 이런걸 보고 태세전환이라 하던가. 아니면 기출변형? 어느 쪽이든간에 생각보다 꽤 재밌는 이야기 방법이었다.
민은 무기의 인상착의를 기억하고 있었다. 민은 평소처럼 한껏 웃으며 인사를 하려 했다. 팔짱을 풀고 고개를 올리자 보이는 그 음습한 기운에 말문이 막혔다.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설프게 올라간 입꼬리가 삐걱거리는 기분에 손가락으로 입꼬리를 만지작거렸다. 뒷걸음치고픈 본능을 꾹 누르고 애써 좋은 얼굴을 한다.
"네, 무기 교수님도 주막 음식을, 즐기나봐요."
민의 시선이 잠시 술잔에 머물렀다. 괜히 질문하는 만용은 부리지 않기로 했다. 이질감 드는 목소리는 말단부분을 꽉 쥐고 흔드는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사바세계의 너절한 것들을 보는 심경으로, 질긴 덩쿨을 꾹 삼키는 기분으로, 고해성사를 하는 신자의 기분으로. 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짓을 고한다면 쉬웠겠지만 어째서인지 그래서 안된다는 기분이 들었다. 감당하지 못할 무언가를 마주할것만 같은 초조함에 휩싸이고 만다.
"딱히 없습니다."
민이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자연스럽게 올라간 흉부가 민의 자세를 보다 떳떳하게 한다. 거짓이 힘들다면, 질문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고보니, 선물은 잘 받으셨는지요? 왜요. 그 학생 한 명이 마법약을 선물 줬었는데, 그게 뭐였더라... 분명 기억하실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