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그렇게 했지만 레오는 잠시동안 매를 노려보았다. 길게 베인 흉터가 있는 눈으로 노려보는 레오는 두 눈으로 '한 번만 더 설치면 쳐죽여버릴거야' 하고 이야기하는 듯 했다. 알아들을지 말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한참이나 노려보던 레오는 건네주는 초콜릿을 받았다. 맛있는 걸 주는 사람은 대개 좋은사람이니까, 교수님도 호감포인트 1점.
" 예? "
레오는 친해진것 같다는 말을 들은 후에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순간 본능적으로 그렇게 해버린것인데 의외로 잘 안겨있는구나. 이렇게 보니까 제법 귀여울지도..? 레오는 잠시동안 크날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뻗어 쓰다듬으려 해보았다. 다들 이래서 패밀리어를 키우는걸까 싶기도 하네.
애석하게도 그녀는 상대가 누구인지를 몰랐다. 잠깐 켜진 빛으로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을 때 떠올린 건 버니의 습격 당시 그녀와 같이 육탄전을 시도했던 사람이란 것 뿐이었다. 크루시오를 맞은 후엔 거의 리타이어였던 걸로 기억한다. 작게 웅크리고 비명을 지르던 모습이 시야 한켠에 들었었지.
"다행이네요."
일단 그녀도 그렇고 상대도 그렇고 다치거나 해를 입은게 없으니 다행이었다. 어둠에 눈이 익자 검은 머리칼 다음으로 그녀와 비슷한 금빛 눈동자가 보인다. 싸우자고는 안 할거라는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다는 건 평소엔 아무나 붙잡고 싸우자고 하는 사람인 걸까. 그렇게 되면 곤란하겠지만 그러지 않겠다니 그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버니 같은 상대가 아니라면 일방적으로 맞거나, 도망치기 밖에 못 하니까.
서로 오해도 없겠다 이대로 가면 되는걸까 싶었는데 그건 또 아닌가보다. 갑작스런 통성명이라니. 음. 요즘 이런 경우가 많네. 벌써 세번째인가. 신입생 때도 안 하던 자기소개를 새 학기 들어서 벌써 세번째다. 미묘한 기분을 느끼며 그녀도 이름을 댔다.
"펠리체, 스피델리에요. 백궁 4학년이구요."
청궁과 현궁 다음은 주궁인가. 와. 어쩌다보니 각 기숙사마다 아는 얼굴이 생길 판이다. 이미 그렇게 되고 있지만. 올해는 정말 보통이 아니겠구나 생각하며 늘 하던 말을 덧붙였다.
"같은 일을 겪기도 했고 이것도 인연이니, 잘 부탁해요."
말만 그렇게 할 뿐 악수나 다른 제스쳐는 없다. 굳이 말하자면 고개를 다시금 살짝 까딱인게 다였다.
레오는 짧고 담백하게 인사를 마쳤다. 잘 부탁한다는 말. 가만 생각해보니 이미 현궁에 친구가 생긴 마당에 백궁에도 친구하나 만들어두면 좋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통성명을 한 것이었다. 각 기숙사에 아는 얼굴 하나씩 만들어두면 제 얘기를 해줄지도 모르고 그러면 괜히 시비를 거는 사람이 줄어들지도 모르니까. 모든것은 그것에서 출발했다.
" 뭐.. 편하게 레오라고 불러. 레오파르트는 너무 기니까. "
그렇게 말하며 레오는 손을 뻗었다. 악수라도 하자는 의미였다. 솔직히 지난 번의 그 녀석이 거리감이 너무 이상했던 것이고 이 정도 거리감이 맞는 것이겠지. 같은 일을 겪었다- 라는 것은 지난 번의 그 저주였겠지. 레오는 크루시오,라는 것을 떠올리자마자 몸이 조금 부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본 고통. 그것이 있기 전까지 중 제일 아팠던 것이라고 해봐야 퀴디치 경기 도중 떨어져 팔이 부러진 정도였을까.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
" 같은 일을 겪었다는건 그거지? 그 저주. "
생각하기도 싫은 그것. 레오는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잠깐 눈을 감은 사이에 지난 일이 영화처럼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그 탈을 쓴 자들 중 하나, 버니와 만나서 하루를 같이 보냈다는 것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지. 계속 서있는 것도 뭐하니 레오는 '잠깐 걸을래?' 하고 먼저 제안했다. 자기전 잠깐 산책하는 정도라면 더 깊은 숙면을 취하는데 도움이 될테니.
" 크날은.. 먹을걸로.. 고슴도치랑.. 구분할 수 있다.. 끽끽거리는 울음소리를 내고.. 위협을 느끼면 몸을 숨긴다.. "
레오는 중얼중얼 하면서 자신이 알아낸 점을 양피지에 적어내려갔다. 애니마구스나 마법부에 관한 내용도 적을까 했지만 그것은 크날에 대해 알아낸 점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적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단순히 손이 아팠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한 장을 꽉 채우진 못했지만 반 정도 채우고 나서 레오는 우측 상단에 기숙사와 자신의 이름 그리고 학년을 적어 제출했다.
"호오.. 자세히 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이구. 그렇게 부끄러웠으면 말을 하지 동생!"
당신을 한참동안 빤히 바라보던 주양이 곧 웃으며 이야기를 되받아쳤다. 역시 대화의 핑퐁이라는 것은 꽤 재미있는 일이었다. 청을 걸고 하는 내기만큼은 아니었지만, 대화 역시 즐길 가치가 있었다. 사람은 대화 없이는 살아가지 못할거라는 생각이 커졌다. 지금 당장이라도 말문이 막혀버린다면 답답해서 죽어버릴 것이었다.
이내 주양은 실없이 웃었다. 옳은 이야기다. 물건 의견이야 어쨌든 제 값을 치르고 사온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었다. 물론 납득하고 넘어가는 것보다는, 이렇다 할 태클이 떠오르지 않아 넘어가는 것에 가까웠다. 지금만큼은 자신의 상상력이 조금 얄미웠다. 조금 더 깊었더라면 분명 되도 않는 이유를 떠올려내고 태클을 걸 수 있었을텐데. 신기하게 자신은 시비를 걸 때에만 그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어럽쇼. 진짜? 진짜야? 내가 제대로 못 봐서 그러는데 말이야. 어디한번 다시 봐볼까나~!"
자신보다 높이. 잠깐만. 높이? 그 단어를 한번 더 곱씹어 말하던 주양의 입가에는 장난스러운 미소가 번져나갔다. 조금 무례할지도 모를 행동이었지만 그것을 걱정하고 행동을 가렸다면 주양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무례하다면 당신이 언제든지 이야기해주길 바라면서, 주양은 살짝 자세를 낮추는 듯 하다가 당신의 허리를 양 팔로 감싸고서 번쩍 안아올렸다.
"그러게! 확실히 나보다 크네! 언니야, 내 목소리는 제대로 잘 들려요~? 윗공기는 어때. 좀 상쾌하신가!"
안아든 상태로 당신을 올려다보며 주양이 사악하게 웃었다. 어째 동생같은 말투가 아니라 특유의 호탕함을 감추지 못할 말투였으나 개의치 않았다. 이것까지는 예상 못 했겠지 싶어서, 괜히 바로 내려주지 않고 조금 더 그러고 있다가 다시 내려주었다. 오래 그러고 있는다면 분명 불편할 것이다. 기숙사까지 걸어서 가야하는것도 있으니. 당신을 내려주면서, 가끔은 이런 장난도 쳐 줘야 삶이 조금 더 윤택해지며 친구간의 사이도 조금 더 돈독해지는게 아닐까 싶었다. 자신은 어딘가 어긋난 사람이었다. 허나 그것을 스스로 깨닫기에는 조금 무심했다. 윗동네 구경은 좀 어땠어? 하고 물어보는 모습은 더더욱 그래보였다.
"좋아! 역시 너라면 받아줄 줄 알았다니까~ 근데 괜찮겠어? 나 그렇게 가볍지는 않아서 금방 힘들어질지도 몰라?"
아무리 길의 끝까지 가는 것일 뿐이라고 해도, 당신에게는 조금 버거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도 자신이 조금 더 크고 무겁기도 할 테니까. 주양은 잠시 고민하다가 팔짱을 풀고 당신과 어깨동무를 했다.
"아무리 그래도 업히는건 내 양심이 많이 아야하니까, 그냥 적당히 만취해버린 못돼먹은 친구의 술주정에 어울려주는 역할이면 될 것 같아! 어때. 이 정도면 너도 괜찮지 않아?"
타인과의 접촉을 꺼리는 편은 아니라서 레오가 손을 내밀었을 때 그녀는 그다지 주저하지 않고 그 손을 잡았다. 먼저 내밀어주는데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기도 하고. 그녀의 손이 레오의 손을 잡고서 작게 두어번 흔든 다음 놓는다. 지극히 평범하고 평범한 악수였을 것이다.
"알았어요. 레오."
레오파르트, 레오. 야성적인 이름만큼이나 성격도 그래보인다. 좀전에 한 말로 유추하자면, 성격이 나오는 건 상대가 무례하게 굴었을 때 한정인가보다. 오해나 착각으로라도 그렇게 마주하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녀 역시 싸움은 좋아하지 않으니까.
"저주도 포함해서, 겠네요. 레오의 얼굴을 보고 그 때 달려들었던 사람이라는 걸 기억해냈거든요."
요컨데 같은 상황을 겪었다는 의미 되시겠다. 공격도 저주도 모두 포함해서 말이다. 레오에게는 저주가 유독 기억에 남았던 모양이라고 생각만 했다. 뻔히 보이는 걸 캐묻는 건 못된 일일 뿐이고 그러는 건 그녀 답지도 않았다.
"그래요."
먼저 손을 내밀어줬던 것처럼, 레오가 잠깐 걸을 것을 권해오기에 그녀는 짧은 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답했다. 어차피 걸으러 나온거 일행이 생긴다고 해서 큰 문제는 없다. 모처럼의 기회라는 생각까지 든다. 그녀가 살짝 자리를 옮겨 레오의 옆에 섰다. 그리고 걸음을 맞춰 걷기 시작하자, 머리에서 드문드문 떨어지는 물방울이 걸어온 길 위에 떨어져 자국을 남긴다. 그녀가 지나갔음을 표시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