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넓으니까 말이지. 방에서 일어나서 부엌까지가 다섯 걸음인지 열 걸음인지가 큰 차이로 느껴질 경우가 많을 거라고 생각해. 그래도…… 오히려 적응되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풍요로운 생활에 적응되어 버리면 길에 나앉았을 때 절망을 이겨낼 수 없잖아? 당신처럼 겸허한 사람이 오히려 인간적으로는 더욱 훌륭하고…….”
릴리는 찻잔을 입에 가져다대고 향을 코에 머금는다. 콧날을 타고 오르는 연기를 따라 녹아내리는 듯한 부드러운 향이 스며들어 온다.
“금욕적인 생활을 살라는 말은 아니지만. 단지 대단하다는 것뿐이야. 사용인들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겠지.”
여유롭게 차로 목을 축인다.
“그야 걱정하는 게 당연하다! 나는 걱정이 아주 많은 사람이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세상에는 위태위태한 것이 너무 많아……. 너무 짧은 신호, 테이블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머그컵, 고장난 가로등, 화력이 너무 센 알코올 램프…… 기타 등등. 대부분 남의 일에는 관심을 끄면 그만이지만, 하루 씨는 내 기준에서 중요한 사람이라구.”
그야말로 신임이 뚝뚝 묻어나는 말이었다.
“항상 하는 말이긴 하지만…… 무슨 문제나 고민이 있으면 나한테 털어놓으라구. 처음 만났을 때 은혜 아직 안 잊고 있으니까……. 이 오렐리 샤르티에를 현명하게 이용하는 인간이 될 자격이 있는 거야, 당신한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