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음.. 슬슬 양심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이런 건 못 들었는데... 대충 머리를 굴려보면 답은 나온다. 이 사람이 왜 그런 짓을 했는가?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 에릭 선배와는 무슨 관계인가? 같은 것을... 이걸 삼각형으로 이해하면.. 참 쉽죠. 인 격. 흐음.. 소중한 사람은 카사 씨구나.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음, 답례.. 라고 하긴 뭐하지만, 제가 그림을 그려드려도 괜찮을까요?"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물어본다. 내 양심도 참... 이기주의자! 라고 선언한 사람 주제에 참 이상하다. ...사실, 내가 바라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데에 집중하는 사람이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적이 아니지만. 난 어디까지나 관객이지만...
청천은 릴리의 말을 들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약간 의아해하지만 흥미로워하는 것 같습니다. 제노시아라면 이것저것 상상이 가능하겠는데, 청월고교생이라서 더 모르겠네요.
"아무튼, 그렇다니 안심이네요. 그러면 저야 좋지요."
청천 또한, 우아한 케이프와 세미정장 차림으로 고개를 숙이더니...촐랑촐랑 앞서나가는 모습이, 마찬가지로 그다지 위엄이 없네요. 안 신난 척 하려고 해도 약간 신나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청천은 떡볶이를 좋아하니까요. 자신도 모르게 신속 스탯이 드러날 뻔 했지만...다행히 릴리와 동행 중이라는 사실을 잊진 않았기에, 다시 릴리가 따라오기에 무리가 없는 속도로 돌아옵니다.
"여기에요."
다림이와 갔었던 즉석 떡볶이집으로 릴리를 안내한 청천은... 점원에게 말해서 2인 입장금액을 선결제하고(릴리에게는 "나중에 송금 부탁드려요."라고 눈을 찡긋해보입니다.), 점원의 안내를 따라 냄비에 떡볶이 재료를 담는 코너로 이동하겠지요.
"자, 골라보시죠."
여러 종류의 떡이며, 채소, 부재료, 해물 등등의 다양한 재료들이 통에 담겨서 쭉 늘어져 있습니다.
"양배추...조금 많이 넣어도 되죠? 다 먹을 수 있으니까요."
청천은 헤실헤실 웃으며 조각난 양배추를 냄비 바닥에 깔려고 합니다. 헤헤 양배추다. 릴리가 원하는 재료를 말해준다면...그것도 담아주겠지요. 손에 들고 있는 건 또 다시 3~4인분용 냄비입니다. 혹자가 말하길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지만...어떻게든 되겠지요!
우리는 원래 딱히 대립 스레는 아니었잖아? 학원에서 친구 사귀고 성장하고 몬스터 잡는거 좋아해서 온 사람들이면 캐릭끼리의 갈등 여론이나 대립이 장기화 되었을 때 충분히 불편할 수 있다고 봐. 그리고 몇번 말했지만, 난 솔직히 혐관? 이란거 그다지 선호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길어져서 감정의 골이 심해지면 일단 내가 불편할 것 같은 불안은 있어...
그녀가 문을 열아주자 꾸벅. 고개를 숙이고 안으로 들어간다. 흠... 난 어디까지나... 구경하는 입장이지만, 할 말은 해야겠어... 그녀의 안내를 받으며 집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어떻게 이 사태를 그나마 괜찮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멈추지 않은 채로. 응접실 소파에 앉아 개끗한 페이지로 넘긴다. "차는 괜찮아요. 물 한 잔이면 돼요." 집에 들어오기 전에 그녀가 한 말에 대답하고는 곰곰... 가볍게 운을 떼는 게 좋겠지.
"제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그... 소중한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말씀하시기 곤란하시다면 안 하셔도 돼요... 하지만, 혼자서 끙끙 앓는 것보단... 그 사람이랑 같이 고민하고 생각하는게 더 나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저도... 그래서... 어떻게든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 보고 싶어서... 에릭에게는 영웅을 만드는 데 꼭 무대가 필요한 건 아니다... 힘 없는 학생인 우리가 생각하기엔 너무 먼 미래다. 라는 것을 에릭과의 일상에서 말했고... 차라리, 에릭의 의념속성인 연단을 이용해서 사람을 단련시키되, 스스로 악역이 될 필요 없는 방향을 선택지에 넣고 싶어서... 에릭과 일상을 했어요...
하루랑 일상 하는 것도... 어떤 그림을 그려줄까요! 하고 묻는 것도 있지만, 카사를 혼자서 지킬 필요는 없다. 그리고, 꼭 자신이 카사를 지키지 않아도 카사는 스스로 강하다! 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어요..
울망이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그는 쓴 웃음을 내쉬었을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당장은 안심시키는 것 뿐. 그리고 그것이 충분하리라 믿는 것 뿐이었다.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하려면... 판을 뒤집어 엎거나, 아니면 에릭의 마음을 고쳐먹게 만들거나, 둘 중 하나니까. 그리고 지금 당장은 둘 다 하기 어렵다.
" 에릭이 누군가를 포섭하기는 어렵겠지. 누군가의 의사를 배제한 채로 무언가를 결정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반감을 살 만한 일이니까 말야. 적어도 자유를 중시하는 성학교에 다니는 이들은 그런 말에 동조해주진 않을 걸. "
다만 문제는 그런 말에 동조해줄 사람이 없지는 않다는 것....이려나. 극단적인 사상을 가진 자, 아니면 과거의 사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자... 하지만 그 수가 이제 많지는 않을테니, 구태여 말하지는 않기로 했다.
" 가장 간단한 건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거려나. 적당히 거짓과 진실을 섞어서 말하면 되겠지. 옛날에 에릭은 카사에게 치한이라고 불린 적도 있다면서? 에릭이라는 청월 학생이 카사에게 불순한 의도로 계속해서 집착하고 접근한다고 말하면 아마 선생님들이 무시하지는 못 하겠지. "
"이런 해결을 바란다면 선생님께 말하는 방법이 있고, 그 다음은..." 이라며 고개를 살짝 갸웃인다.
" 판돈을 걸기 싫은 도박이라면 차라리 판을 엎어버리면 된다. 카사를 아카데미에서 이탈시키는 거지. 물론 이탈시키겠다고 협박만 해도 충분할 걸. 그녀석은 카사가 싫어서 그런 짓을 하는게 아니라, 나름의 비뚤어진 애정일테니. "
고개를 끄덕였다. 판을 엎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카사를 죽이거나, 아카데미에서 쫓겨나게 만들겠다고 협박하면 된다. 에릭은 아카데미에서 카사가 이탈하거나, 죽는 것을 원치는 않을테니.
" ...둘 다 싫으면 단순히 에릭을 설득하는 방법이 있겠네. 물리적으로 때려눕혀서 포기시키거나, 말로 설득하거나, 아니면 그녀석의 소중한 것을 쥐고 협박해도 되겠지. "
"예를 들면 가까운 지인, 친구, 애완동물 같은 것들?" 이라며 고민하듯 말을 했을까.
" 아마 하나쯤은 손이 안 닿는 곳이 있을 거야. 그런 놈들은 대게 가진 것이 많고, 가진 것이 많을수록 전부 지키는 것은 어려운 법일테니. "
이 모든 사건의 흐름은 에릭이 굽히느냐 아니냐... 로 결정되는 거죠? 이제 와서 카사가 모든 걸 알고 하기 싫다고 해도 에릭은 안 굽히려 할 거 같고. 에릭한테 하고 싶은 말을 솔직히 말해보자면... "너 철혈 의념에서 연단으로 바뀐 거 맞아?"에요. 아무리 봐도 철혈에 더 어울리는 것 같아서... 굽어지지 않는 철을 어떻게 연단하겠어요.
진화가 이번에 카페 가서 캐물은건 사실 하루가 아니라 에릭을 위해서거든. 자신은 정과 인연 때문에 하루를 돕긴 도울 것 같지만, 그게 에릭의 위악 연기에 넘어가서 그를 성장의 발판용 악당으로 보는거랑은 별개인거야. 진화가 직접 보기에 에릭은 꽤 상냥한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이 악당연기하면서 자기 희생하는건 올바른 일은 아니지.
사실 그래서 진화는 이후에 더욱 트롤링(?) 할 수도 있긴 해. 구체적인건 아직 생각 안해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