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땅땅- 쇠 두드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뜨거운 화로의 열기가 식을 날이 없는 곳, 제노시아의 공방이었습니다. 한쪽에 마련된 휴식용 테이블에는, 제작자들의 땀을 식혀줄 작은 선풍기가 몇 대 마련되어 있습니다. 스툴(등받이와 팔걸이가 없는 의자)에 앉아 선풍기에 얼굴을 가까이하고, 멍한 표정으로 입을 헤- 벌리고 있던 춘심이는, 저를 부르는 소리에 느리게 고개를 돌렸습니다. 춘심이를 부른 이는, 같은 2학년이자 옆 반 친구인 정훈이네요!
"안-녕."
춘심이는 손을 들어 올릴 기운도 없었는지, 기우뚱, 고개만 옆으로 기울이며 말을 잔뜩 늘려놓습니다. 빠르게 걸어오는 정훈이를 따라서 춘심이의 시선이 점점 위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다리를 쭉 뻗어서, 스툴 하나를 발등으로 제 앞까지 끌어당깁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선은 여전히 정훈의 얼굴에 향해있던 춘심이는, 그에게 앉으라는 듯이 고갯짓으로 의자를 가리킵니다.
방금까지 화로 앞에서 쇠를 두들겨서 온몸이 달고 힘이 쭉 빠지긴 했지만, 이러는 건 일상이니까요. 선풍기 앞에만 있으면 괜스레 몸이 늘어지게 됩니다.
"그치."
춘심이는, 선풍기의 방향을 슬쩍 틀어놓는 정훈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느직한 손길로 바람이 아예 정훈이를 바라보도록 선풍기를 돌려놓습니다. 저는 더위에 익숙하지만, 정훈이는 그렇지 않을 테니까요.
"별로 구경할 건 없는데."
무심한 투로 중얼이며 주위를 슥- 둘러보는 시늉을 합니다. 생각보다 넓은 공방에는 군데군데 화로와 작업대가 자리해 있고, 조금은 어수선해 보이지만 저마다의 작업 공간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조용히 눈으로 보는 건 괜찮아도 여기저기 다니면서 구경할 곳은 못 되는 것 같습니다.
"..."
그리고 아까부터 무언가 들어있는 듯이 우물거리고 있는 입. 춘심이는 주머니를 뒤적여 은박으로 싸인 사탕을 하나를 꺼내 정훈이에게 내밀어 보입니다. 목이 시원해지는 캔디네요! 정훈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 이거 먹고, 궁금한 게 있으면 얼마든 물어보라는 눈치입니다.
괜찮다는 서희의 대답에 그-런가 라고 말을 늘어뜨리면서 대답하다가, 서희가 선풍기 방향을 자신에게 돌리자 잠깐 고민합니다. 고맙긴 하지만.. 서희도 더울텐데 자신만 바람을 쐬고 있을수는 없죠! 정훈은 선풍기 몸체의 버튼을 눌러 선풍기가 회전하도록 바꾼 뒤 다시 서희를 바라봅니다.
" 구경할 게 없다니, 이것 저것 다 신기한데! "
물론.. 모르는 사람의 작업 공간을 막 찾아가는건 실례니까 멀찍이서 눈으로만 슬쩍 봐야하겠지만요. 혹시 눈으로만 보는것도 실례일까요? 장인의 비전이라거나.. 그런 느낌으로요
" 앗, 고마워. "
그런 생각을 하다가 서희가 목이 시원해지는 캔디를 주자 정훈은 감사를 표하며 받은 뒤 바로 포장지를 벗겨 입 안에 넣고 우물거립니다. 어릴 때 국궁장 어르신들이 주셔서 많이 먹었었는데 학원도에 온 뒤에는 오랜만이네요!
" 음음. 갑자기 왜 찾아왔는지 말해야겠네! 얼마전에 궁도부에 가입했는데 거기 선배들이 신기한 도구들을 이용하시면서 수련하는걸 봤거든! 그래서 그런 도구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건지 궁금해서 찾아왔어 "
용건을 밝힌 정훈은 이어서 자신이 궁도부에서 봤던 신기한 도구들에 대해 설명합니다. 활시위와 활촉을 쥐는 과정을 생략하게 해주는 도구라던가, 시위에 장착되어 화살을 쏘아낸 다음 새로운 화살이 활대를 타고 올라오게 하는 등. 물론 가장 멋진건 부장의 변신장갑(?)이었다던가 하는 설명이요
자신만의 기술이나 작업 방식을 공개하고 싶지 않아 하는 이도 있지만, 반대로 자신이 작업물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의뢰자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이도 분명 있을 거예요. 보는 이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신뢰를 심어주는 가장 투명하고 떳떳한 방법이니까요. 보편적으로는 제작물의 품질과 성능으로 그 가치를 증명하곤 하지만요. 정훈이 걱정하는 것이라면, 그런 이들이라면 이렇게 공개된 곳이 아니라 개인적인 공간에서 몰래몰래 작업하지 않을까요? 눈으로 보는 것은 괜찮으니, 공방의 분위기에 괜히 위축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예요.
춘심이는 가끔씩 고개를 끄덕이면서 정훈이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신이 보았던 도구들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는 것이 어쩐지 들떠 보입니다. 그리고 가만히 귀를 열고 있는 춘심이도 조금은 기분이 들뜨는 것 같습니다. 춘심이는 이런 이야기를 나눌 때가 제일 즐거워요.
"사용자에게 어떤 부분에서 보조가 필요한지,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아이디어만 충분하다면, 만드는 것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아. 구상한 것을 짜임새 있게 설계하는 게 어려울 뿐이지."
설계도만 있으면 어느 물건이든 못 만들 것도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느긋한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던 춘심이는, 몸을 앞으로 약간 기울여서 턱을 괴고 정훈이를 바라봅니다.
>>86 좋다!!! 원하는 상황 있는가?! 딱히 없다면 http://threadiki.80port.net/wiki/wiki.php/%EC%98%A4%EB%A0%90%EB%A6%AC%20%EC%83%A4%EB%A5%B4%ED%8B%B0%EC%97%90/%EA%B8%B0%EB%A1%9D%EC%8B%A4 여기서 하나 골라도 되고!
청천이 괴도라서인지 볼 때마다 이 노래가 생각난다 → https://www.youtube.com/watch?v=1DPldNasDgY
>>115 아! 그건 그냥.. 어떤 바보가 연애 시작하자말자 대놓고 다른 여자에게 치근덕대겠어~ 하는 어른스러운 생각이라서..! 솔직하게 말해주니까 조금 꽁해도 이해해줄거라는 얘기였어요 ㅋㅋㅋ 뭔가 중요하게 풀고 그럴건 아니었구..! 암튼 진화 만나면 할얘기는 참 많을 것 같아요~
"죄송하지만 아르바이트에는 조금 부적합할 것 같네요." 저희는 이런 조건이 좀 더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라는 말을 세 번 정도 들으면 기운이 쭉 빠집니다. 뭐가 문제였죠.. 라고 생각해보지만. 사실 별로 문제될 만한 건 없었습니다. 옷도 단정하게 입었고, 선크림도 바르는 등의 적절한 화장도 곁들여졌지만.. 그들은 미묘한 그런 걸 알아봤던 걸지도. 그렇게 하늘을 보며 걷다가 갑작스러운 그림자와 충돌합니다.
"..." "...! 죄송합니다.." 부딪힌 사람(진화)를 보면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꾸물꾸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괜찮으신가요.. 같은 물음을 말하는 다림입니다.
"조금 생각할 게 많았어서 그러다가 못 봤어요.." 라고 말합니다. 물론 진화 또한 약간 못 봤으니 쌍방 부딪힘이지 않았을까. 하는 건 다림이 생각 못한 무언가.
나는 요즘 기분이 좋았다. 지난번에도 이 얘기 한거 같은데? 어쨌거나 선물용으로 살 곰돌이도 구매했고, 동아리로 돌아가기전에 가볍게 길을 걷다보니 툭! 누군가와 부딫혔다. 이크, 너무 정신을 팔았던걸까?
"죄, 죄송합니다."
나는 미안함을 담아 고개를 꾸벅 숙이며 사과했다. 어쨌거나 워리어로써 방어에 집중한 나는 겉보기에 비해 상당히 단단한 편이다. 근육은 제대로 붙지도 않는데 튼튼함만은 착실히 오르는건 의념의 덕일까. 따라서 대체로의 경우 부딫힌 사람쪽이 더 아팠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방금의 감각에서 보건데 아마도 여성일테고....다치진 않았겠지?
"응? 다림씨?"
그렇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던 나는 뒤늦게 눈 앞의 상대방을 보았다. 얼마전 같이 쇼핑했던 다림씨가 아닌가. 반가워서 웃으며 아는체 하려다가, 어쩐지 그 때의 여유로움에 비해 기운이 없었기에 나는 걱정하며 묻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툭 쾅 데구르르르 굴러가진 않았다는 것.. 다림이 신체 A고..(그 가녀림에서 신체 A가 매우 이질적인 것 같지만 뭐 가디언이 다 그렇지)(?) 사과하는 것에 자신도 사과하고.. 그러다보니.. 사과가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던가..
"아.. 안녕하세요 진화 씨." 기운이 없어 보인다는 것에 그정도로 내가 티를 냈나? 싶은 생각부터 들어서.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고 말하려 합니다. 금방 괜찮아진 듯한 표정을 짓고는 진화 씨도 뭔가 못 볼 만한 일이 있어서 그런가요? 라고 웃는 표정으로 살짝 놀리듯 말을 잇습니다.
"네에?" 이렇게 화제를 돌리려 하다니.
//참새를 주웠어! 보드랍고.. 따뜻해.. 똘망똘망..(사진 찍기도 전에 금방 날아가버렸지만. 3개..
나는 잠깐 고민하면서 다림을 보았다. 언뜻 봐도 기운 없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고, 화제 돌리기도 아주 노골적이다. 정말 친한 관계였다면 그래도 더 깊이 물어봤을지도 모르지만....본인에게도 사정이 있을텐데, 그리 가깝지 않은 사이가 캐물으면 오히려 불편할지도 모르지. 결국 나는 그 화제 돌리기에 모른체 넘어가주기로 했다.
"그냥, 누군가 생각하느라요."
선물을 줄 때 뭐라고 얘기하면서 줄까,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흔히들 자연스럽게 주면 된다고 하지만, 나한텐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니까 고민되는걸 어쩌겠는가. 그러나 이후로 돈이 나갈 요소가 많을지도 모른단걸 생각하면, 아르바이트도 생각해보는게 좋을지도.
릴리 샤르티에. 프랑스인 어머니와 프랑스인 아버지의 사이에서 자라나서, 프랑스 요리를 먹으며 자라난 아이. 편식이 건강 측면에서나 사회적으로나 하등 쓸모가 없는 습관임을 알았기 때문에 티를 내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엄연히 발달한 미적 감각을 지닌 꼬장꼬장한 미식가였다.
« Il n'y en a pas… »
마음 속 블랙리스트의 여집합과, 예산이 허용하는 식당이라는 집합의 교집합은 점점 작아져만 갔다. 꽤나 괜찮아 보이는 구성을 하고 있는 오트 퀴진이나 파인 다이닝 식당은, 1학년이 자비로 부담해 먹기에는 어리석을 정도로 비쌌고, 적당한 가성비의 식당은 성에 안 차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가장 저렴한 도시락으로 영양소를 획득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합리적인데……! 합리적이지만 릴리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것이다!!!
“괜찮은 식당이 없어……!”
사료만 먹고 사람이 살아갈 수 있으면 진작 그렇게 살아갔겠지! 릴리의 짧은 인생사를 통틀어 전례가 없는 혹독한 식사 환경에 미뢰가 프랑스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걸 도대체 어떡하라고ㅡ!
점심시간이 한창인데 식당가의 거리 벤치에 얼굴을 감싸쥔 채 절망하고 있는 릴리 샤르티에가 있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어수룩함이 수요가 있다니. 마치 속이기 쉬운 호구처럼 받아들여지는거 아니야? 칭찬인지 아닌지 모를 얘기에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다림씨는 지난번에도 그렇고 상당히 스트레이트한 표현을 쓰는구나. 악의는 없어 보이니 상처라던가 되지는 않지만.
"잘 되길 바랄게요! 같이 가기로 한 사람 있어요?"
평소라면 내가 같이 가주겠다고 권유라도 했을지 모르지만, 지난번에 얘기했을 때 다림씨의 반응이 그리 탐탁치않았던 것도 있고. 무엇보다 후배와의 선약이 있었다. 같이 의뢰 가고 싶은 서포터는 꽤 많은데. 일단 청천이와 다녀오고 나서 생각하자.
"음~....."
추천 받는 카페를 들어보며 잠깐 생각에 잠긴다. 거기에 내가 알고 싶은 곳이 있을까? 사실 그 땐 열받긴 했지만, 나는 별로 싸우거나 시비걸러 가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저 직접 확인하고 싶을 뿐이니까. 뭐, 그래서 나는 고민하다가 조금 더 직접적으로 물어보기로 한 것이다.
>>182 헉 라볶이 하니까 떡볶이 먹고 싶어졌어요.... 양배추 왕창 들어간 즉석떡볶이....ㅠㅠ
>188 (그냥 불닭도 소스 4분의 1만 넣어먹는 참치) (도주!!!)
>>195 에릭, 카사, 지훈 서사에서 언급된 키워드들이에요. 카사가 펜릴. 북유럽 신화의 커다란 늑대. 티르가 지훈. 펜릴의 친구였지만 신화상에서는 결국 펜릴을 끊어지지 않는 밧줄에 묶어버려요. 오딘은 에릭. 북유럽 신화의 주신이자...펜릴을 묶어버리자!는 의견을 주도한 그런?
"그럴 지도 모르죠?" 좀 사근사근한 타입을 원하는 걸지도 몰라요. 같은 말을 하는 다림입니다. 스트레이트한 한편으로는 매우 어렵게 말하곤 하지요. 다림주는 다림이가 생경한 타입이라구. 오락가락 할 수 밖에...는 변명이다!
"아. 카사 양이랑.. 랜스 분만 구하면 갈 수 있어요." 라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쩐지 지금 카사 양은 전혀 모를 것 같다는 감은 있나요?
"...." 진화가 직접적으로 물어보자. 잠깐 말을 멈추고 그를 바라봅니다. 표정은 차갑긴 하지만.. 그게 디폴트라서 그런거지. 실제로 가라앉은 건 아닙니다. 진짜에요. 모르지 않죠. 유니폼을 제작했는걸요. 그런데. 말해줘도 될까. 라는 것에는 답이 잘 나오지 않는 모양입니다.
나도 잘 안다. 하루한테 이야기 듣고 있으니까. 개인적으로 친분도 있다. 왠진 모르지만 덤벼왔고.... 평소라면 반가웠을 이름의 울림이 어쩐지 묘하다. 지금 그녀는 왠지 모를 논란에 휩쌓여있으니까 말이야. 카사는 밝고 착한애다. 그런 그녀는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끼리 다투는걸 알까? 알게 되면, 무슨 생각을 할까.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은 광경이다. 왜 그녀를 위한다면서 그녀에게 상처되는 싸움이 벌어지는거지.
"...."
차가운 시선에 평소라면 움츠라들면서 말을 회수했을지도 모르지만, 진지한 생각에 잠기기 시작한 나는 그럴 마음이 없어졌다. 유약하던 눈빛은 굳게 변하고, 조금 움츠라들던 어깨는 당당히 펴진다. 용무를 물어보는 그녀의 말에 적당히 둘러댈까 생각도 했지만, 그건 별로 나 답지 않았다. 그냥 솔직히 털어놓자.
"분쟁이 일어나려고 하고 있어. 그런데, 나는 조금 위화감을 느끼거든."
나는 하루를 위해 싸울 것이다. 그러나 계속 느껴지는 위화감을 그저 방치할 정도로 나는 어리석지 않다.
"하지만 겉으로만 그런 거랑 실제로 말하는 건 다르니까요" 진화 씨도 겉이랑 속이랑 다를 거라 생각해요. 라고 답합니다.
"네.. 같이 가준다고 말한 적 있었거든요. 그리고.. 의뢰 조건도 있고요" 고갤 끄덕이며 다림은 진화를 바라봅니다. 겉으로는 유약해보이지만.. 이라고 생각하지만 속을 모르는 입장에선 함부로 판단하기 어렵다. 하물며 소녀소녀한 모습이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게 가디언이니까.. 같은 생각이니까.
진화의 말을 듣고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런가요..." 에릭 씨가 일하는 카페는 알아요. 라고 말하면서 카페의 이런저런 건 차치하더라도 너구리 씨의 음식은 꽤 괜찮았어요. 라고 말합니다. 그럼 그 곳에 대해서 말해드리면 되나요? 라고 묻다가..
여태 손도 안 대고 있던 치즈케이크를 포크로 조심스럽게, 입에 넣기 좋은 크기로 잘라 입에 넣으면서 은후는 동그란 눈으로 에릭을 바라보았다.
"단순하고도 당연한 이야기네요. 아, 서비스 주신다고 하셨죠? 딸기 케이크도 하나."
태연한 목소리로 그리 말하고 손짓으로 춘덕이를 불러 점장 대리가 저에게 딸기 케이크 하나 사주신대요! 같은 실없는 소리를 하는 청년의 모습에 상대는 어이가 없을지도 모르겠으나….
"언젠가 영웅이 죽거나 사라지면 혼란에 빠질 거다, 라…. 마치 자신의 추론처럼 이야기하시고 있으시네요. 전 굳이 그렇게 쿠션을 넣어서 말씀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13 영웅 중 한 명, 붉은 곰이 실종된 지금의 러시아의 상황을 보면 그건 엄연한 사실이니까요. 아무리 자신을 `붉은 곰의 자식`이라고 칭하고 있는 러시아 소속의 가디언들도, 예카르 비토보르비츠와 버금가고 13 영웅과 나란히 어깨를 마주할 수 있는 새로운 영웅이 다시 러시아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그들이, 러시아가 기다리고 있는 미래는 약속된 죽음이라는 사실을 마음속으론 부정할 수 없을 터이니."
거의 다 빈 유리잔 끝 부분을 손에 쥐고 가볍게 흔든다….
"가디언 아카데미에 처음 들어왔을 때, 당신도 이사장님의 훈화 말씀을 들으셨겠죠. 이곳은 새로운 영웅을 만들기 위한 곳. 기원전 2000년경에 쓰인 세계 최초의 서사시에 나오는 길가메시부터 시작해서, 인류에게 의념이란 힘이 생긴 이후 나타난 13명의 영웅까지. 허구와 현실을 가리지 않고 영웅은 영웅이란 칭호를 얻는 시점까지 크고 작은 고난을 겪잖아요? 당신의 사상이 뭐가 잘못된 거죠?"
다만,
"그렇기에, 왜 당신의 말을 듣고 상대가 화를 냈다는 건지 저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네요. 실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하지만 청년의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지나친 오지랖이라는 판단에 그 스스로가 중간에 말을 끊고 못 들은 것으로 해달라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팔을 들어 올려 손바닥을 상대에게 보였기 때문이다.
절규가 입 밖으로 새어나오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눈치챘다. 릴리는 입을 두 손으로 가리고 맑은 푸른빛 머리의 소년을 본다. 소년의 시선이 이상한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었다면 릴리의 멘탈은 갓 구운 바게트처럼 바삭해졌겠지. 하지만 릴리는 자신과 소년이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그렇ㅡ지이?”
손에 가려진 입꼬리가 히죽하고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
“당신도 이해하는구나! ‘Ça alors ! 왜 세상은 미식가들에게 가혹한 거야, 항상!’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아무 거나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은 문제 없지만 나 같은 학자들은 어떡하라는 거야ㅡ! 같은 생각이지?”
릴리는 벤치에서 일어나 소년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어느 쪽도 그렇게 키가 큰 편은 아님에도 머리 하나는 차이가 나는 키높이 때문에, 턱을 올리고 까치발을 들어 눈을 맞춘다. 반짝반짝거리는 눈동자는 동의와 인정을 잔뜩 갈구하는 듯이 빛나고 있다. 그야말로 막무가내였다.
“그렇지, 오늘은 큰맘 먹고 돈을 부어서 맛있는 걸 먹으러 나왔는데 말이야…… 혼자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것들 뿐이었다구! 그러니까 둘이서 뭔가 먹으러 갈래? 괜찮은 음식점을 찾아 보자구!”
>>238 " ...진화 넌 정말 좋은 아버지가 될 것 같아. " " 미래의 자식들이 부럽네... " 잠시 아버지의 요리를 떠올리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평범하게 만들면 맛있는데 어머니 말을 듣는 바람에... " ...진화 너는 아내분이 요리에 뭐 이상한 거 넣으라 해도 절대 들으면 안돼. " 라고, 아마 그 아내분 특성을 보아 일어날 일 없는 일이지만 그런 말을 무심코 해버리게 된다...
>>235 "예전에 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행동할지 물어봤죠." "내 대답은 언제나 간단 명료해요."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내 방패는 그걸 위해 존재합니다."
>>237 "나는 수단이었을 뿐이라....그게 네가 생각하는 최악의 인물이야?" "한가지 말해줄게. 진심으로 수단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그런걸로 죄책감이나 고민 같은거 안한단다." "답변이 되었으면 앞을 봐. 후배. 내가 막고, 네가 쓰러트린다. 이해 했겠지. 잘써봐. 나라는 방패를."
눈 앞의 대상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상당히..예리했다. 은후는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완벽한 주관을 가지고 있었고, 현 상황과 나의 생각에 대해 그렇게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거기다 한 발 더 나아가, 내가 숨기고 있는게 있다는 것 마저 파악했다. 지금은 그저 딸기 케이크 서비스에 해실거릴 뿐이었지만, 영성이 깃든 저 눈동자에 엿보이는 통찰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 ..... 그럼 사실대로 말할게. "
나는 하루,카사와 있었던 이야기를.. 그리고 내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카사를 억압하려는 건지를.. 그리고 그것에 왜 하루가 분노했는지를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영웅을 만들어내기 위해 한 사람의 인생을 연출된 무대로 이끌어 올리는 것은 정당한가. 개인의 자유와 의사를 묵살하고 대의를 위하여 라는 말로 억누르는 것은 유의미한 과정인가. 물론 이런 의문에 전부. 그렇다 그것은 유의미하고 정당하다 라고 대답할 수 있는 나였기에 거짓말 하나 없이 사실대로 전달했다.
" 그래서, 하루는 카페에서 메스를 이용해 자해했다. 자신의 편이 되어줄 사람을 늘리고, 날 몰아넣기 위해서겠지..? "
나는 조금 놀랐다. 다림씨도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구나.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귀엽다. 여태 본 표정중 제일 솔직하고 인간미있다고 생각한다. 평소에도 자주 저러면 인기가 더 많을텐데.
"....알려줘서 고마워요."
카페의 위치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들었다. 조만간 찾아가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걸로 내 위화감은 더욱 늘었다. 그는 정말로 내가 들은 것 마냥 오만방자한 악인인가? 눈 앞의 다림씨가 내게 경계하듯 이러저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이유는, 그에 대한 일종의 방어선을 펼쳐주는 것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그녀가....정말 단순한 악인에게 그 정도로 신경을 써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왜?
"그럼, 거기서 아르바이트 해보죠, 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생각해보면 내가 거기서 그에게 시비를 걸면, 그를 알려준 그녀에 대한 배신이 될지도 모르지. 응. 원래부터 난동 피울 생각은 없었지만, 가서 좀 더 정중하게 얘기하자. 그리고 그녀가 불안하지 않도록 말한다.
"소개해준 다림씨가 무안하지 않도록, 민폐를 끼치지 않을게요.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다보면 자연스레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한숨을 내쉬곤 진지한 태도를 풀고 그녀에게 미소지으며 얘기했다.
"나는 원래부터 누군가를 싫어하는게 무서워요. 누가 날 싫어하는 것도 무섭구요."
나는 겁쟁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나는 그녀와의 관계를 망칠 생각이 없었다.
에릭이 전혀 짧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여전히 웃는 얼굴로 춘덕이에게서 딸기 케이크를 받아든 은후는 장식으로 올려진 딸기를 포크로 푹, 하고 내려찍었다.
"어제였나? 점심쯤에 가디언 넷에서 무슨 이야기가 있었다는 글을 보긴 했어요. 사진도 글도 대충 읽어서 그땐 무슨 일인진 잘 몰랐지만…."
과연.
"공교롭게도 지금은 이 세 학교가 모두 시험 기간. 학생들이 시험에 집중한다고 가디언 넷의 화력도 평소에 비해선 낮은 편이고, 가디언 넷을 보는 학생들이라 하더라도 굳이 이런 사진을 집중해서 보진 않겠죠. 그렇기에, 사진을 분석하지 않은 학생들, 특히 당신을 포함해서 이 사건의 중심인 세 사람과 안면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하루`라는 사람의 편을 들겠죠."
냠. 딸기를 입에 집어넣고 우물우물 잘 씹어서 삼킨 그는 포크로 케이크의 윗부분을 아주 살짝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당신은 분명 저에게 해답을 내려주길 원한다고 말했어요. 그 해답이라는 건, 당신의 사상에 대한 것은 전 아니었을 거로 생각해요. 누군가가 당신의 사상을 논파하길 원했다면, 굳이 그런 말을 해서 상대의 분노를 사지 않았을 거니까. 그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니까."
"당신이 지금 진짜로 원하는 건 뭐죠? 당신의 무대를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 주고, 극이 진행되는 동안, 감독이자 배우인 당신이 절대로 후회하지 않도록 잡아줄 스텝?"
"그..그게.. 제가 그 카페.. 유니폼을 만들었고... 저도.. 거기서 아르바이트를 하는걸요.." 조금 부끄러워서 그랬어요. 라고 말하는 다림입니다.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 다행이지요? 그러다가 어깨에 손을 짚으면 조금 놀랍니다. 하지만 탁 털어내려 하는 건 아니네요. 다행이야 진화군. 물어보는 진화를 바라보면서 어쩔 수 없다는 웃음을 짓습니다.
"저는 그다지 좋은 쪽은 아니라서요..." 말하면 안돼요. 라고 말하면서 어깨를 짚은 손을 조심스럽게 떼어내려 시도합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품고 있는 건. 일종의 ...감정인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왜 할 수 없는가 같은 것을 생각해봅니다. 할 수 없다는 것과 별개로 원할 수 밖에 없긴 하다. 불명확하고 애매모호한 말들로 교묘히 회피하면서 그럼 그 카페 전경까지는 보고 가실래요? 라고 물어보려 합니다.
나는 솔직한 마음으로 칭찬했다. 지난번 같이 다닐 때의 그녀의 패션 감각은 감탄했을 정도니까. 이런 복잡한 일과 별개로 거기서 아르바이트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깨에 손을 짚어 그녀가 놀란 것 같자, 나도 일단 조심스럽게 떼어줬다. 이런. 확실히 놀라게 했을지도 모르겠네.
"......"
그리고 으음....그녀에게서도 어쩐지, 최근 지훈이랑 대화할 때 느꼈던 감각이 느껴지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낮다고 해야되나, 아니면 결함이 있다고 여기는 부분. 요즘 아이들 트렌드인가? 실은 나조차도 그런 고통을 앓고 있으니까. 나는 고민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굳이 캐묻진 않을게요. 그러나 하나만 말하게 해주세요."
"나도 그리 좋은 쪽은 아닙니다. 한심하고 소심하고, 잔뜩 도망도 쳤거든요. 그래도....무언가를 꿈꾸고 바라는 것이 잘못 되었다곤 생각하지 않아요. 누구에게나, 그럴 권리는 있잖아요. 꿈꾸고 바라는 것 만은, 당당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나는 그녀를 보며, 활짝 웃는다.
"그러니까 다림씨가 무언가 감정을 품고 있다면. 나는 응원할게요. 언젠간 도움이 필요할 땐, 불러주세요."
그렇게 말을 마무리 지은 나는, 기지개를 쭈욱 폈다. 지금은 이 정도로 충분하겠지. 나는 그녀에게 네, 안내 부탁드려요. 라는 말로 대답하곤 따라 걷는 것이었다.
"멋진 유니폼이라기엔 많이 부족하지만요." 그냥 검은 바지에 흰 상의에 앞치마 뿐이라고 말합니다. 거기에 뭔가 개성을 덧붙이긴 했지만 본인이 스스로 말하면 자기자랑밖에 더 되겠나요? 그러면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 낫습니다. 고민하다가 한숨쉬는 진화를 잠깐 봅니다.
'....그런 꿈꾸는 것.. 언제나.. 높이 올렸다가 추락시키던가.. 같은 생각을 하지만. 그런 것에 반박하기에는.. 아니다. 그만하자. 응원한다는 말에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그러면 불러달라니. 너무 기한이 긴 말 같은데요. 같은 말을 하며 살짝 놀리려고 시도합니까?
"아. 여기네요." 지금은 문이 닫혀 있으려나. 아니면 의외로 성황리일까. 그것도 아니면, 춘덕이가 요리하는 게 매우 인기리일지도? 가리킵니다.
다림씨의 말에 나는 그냥 싱글벙글 웃었을 뿐이다. 일단 괴상한 복장이 아닌게 어디야. 설명을 듣기론 충분히 단정하고 예쁘다.
"꿈은 크게 잡는 법이니까요. 기한도 길게 잡는게 좋겠죠?"
다림씨가 내 말에 별로 납득했는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어쨌건 난 진심을 전했어. 따라서 이후엔, 그녀가 던지는 짗궃은 농담에 웃으며 적당히 되돌려줄 뿐이었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우리는 카페 앞에 도착했다. 그녀는 앞까지만 바래다준다고 했던가.
"오늘은 정말 고마웠어요."
나는 그녀에게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인사하곤,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삿말을 남겼다. 그리곤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마치 던전의 문을 여는 것 마냥, 카페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언제나 사람으로 가득 차 활기가 넘치던 공원. 지금은 조금 늦은 시간이라 오가는 이가 적으며, 날아드는 새나 부스럭 거리는 소동물의 움직임만이 정적을 깨주는 유일한 소음이었다. 가디언넷을 툭툭 두들기고 그 사람에게 연락을 한지 얼마나 지났는지 확인따위를 하며 벤치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들려오는 여러 소리들. 대부분 헛소리에 불과하거나 관심 없는 소리였지만, 유독 한가지는 마음에 걸렸다. 으음, 가디언넷에 올라온 어느 사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소리의 근원이 되는 사람이 공연이라도 하는 것인지 꽤 인상이 찌푸려졌다. 소음 때문에...
"하아..."
신한국엔 이런 말이 있었지.. 한숨 쉬면 복 날아간다. 진짠가? 진짜 내가 한숨을 많이 쉬어서 난 이 지경이 된 걸까... 으음... 됐어. 가볍게 기지개를 켜고는 다시 그 사람에게 문자를 보낸다.
[@@공원에 진입하여 제가 남겨둔 표식(빵조각)을 따라 걸으면 제가 있는 곳이 나올 테니까 빨리 와요.]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당장 돈이 급해서 온 건 아니었으니까, 어느정돈 괜찮다. 에릭은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서 점원복 하나를 내오곤 다시 기타를 집었다. 기타...그렇게 좋아하는건가. 뭔가 인간미가 느껴지네.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점원복을 받은 나는,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오자마자 하는 소리가 장부조작과 의념발화예요? 연약한 서포터에게 못하는 짓이 없어요... 조작 같은 거 한 적 없고, 그것은 춘덕이의 간식 장부라고요."
물론, 조작했어도 들키지 않게 했겠지만. 아무튼, 그가 건네주는 캔커피를 받아 가방에 넣었다. 지금 당장 마시기엔 목도 별로 안 마르고.. 커피는 내가 마시고 싶을 때 마시는 성격이라. 텐션이 낮다는 말에 "제가 묘한 소리를 들어서 말이죠." 라고 대꾸 해주다가 고개를 돌려 그의 눈을 마주보고는
"요즘 수상한 짓을 꾸미고 있다고 해서, 답을 듣기 위해 연락했어요."
이런 건 직설적으로!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유를 듣고 싶어서 말이죠... 원래라면 흥미 없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겠지만... 알잖아요? 저희 은근 가까운 거."
청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릴리의 말을 듣습니다. 여자 이름...이라는 건 눈치 못 챈 것 같네요....역시 때로는 아는 게 병이요 모르는 게 약입니다. (?)
"아, 오시기 전에는 집밥을 드셨다고요...? 집밥의 퀄리티가 높았나 보네요."
이리저리 화면을 돌리고, 지도에 뜬 음식점들을 살피면서...가디언칩 화면을 옆에서 같이 보는 릴리에게 말합니다.
"국물요리, 좋네요. 너무 매운 것만 아니라면 좋겠어요."
다소곳이 말하는 릴리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하긴 3월이고 봄이니까. 건조하긴 하네요... 체면 때문이라기보다는, 목이 아파서 그런가?라고 생각한 듯 합니다. 화면이 한 점에서 잠시 멈췄습니다만...
"...이런 곳은 안 좋아하시겠죠?"
그렇게 말하면서 잠깐 릴리의 눈치를 봅니다. 태양왕 게이트 이전에, 다림이랑 갔던 분식뷔페점이네요. 뜬금없이 국물떡볶이가 먹고 싶어졌지만, 국물떡볶이는 국물을 먹는 게 아니잖아, 기각!이라고 청천은 스스로에게 반박합니다. 그리고 화면을 곧 다른 곳으로 넘기려 합니다...
그거..봐버린건가 하긴 직장에서 상해 사건이 일어났어요 하는 사진이 돌아다닌다면 놀라겠지. 그걸 뭐라고 설명해야하나, 아니..설명할 필욘 없겠지. 지금 듣고싶어하는건 아무래도.......
" 그래...? 너랑 비슷해, 조금 다른건 너는 네 개인적인 의사로 영웅을 보고싶은거고, 나는 대의를 위해서 영웅을 만들어내고 싶은거야 "
어느날 갑자기 태양왕 보다 더 큰 게이트가 튀어나올지도 모르니까 ...
" 13영웅이라는 존재를 두고있다고 안일하게 살아간다면 인간은 죽어나갈거야, 그러니..그들을 뛰어넘을만한 재능을 지닌 녀석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이야 말로 대의를 위한 것 이지... 너도 알고있잖아? 러시아의 일과, 마도일본의 사례..그리고 태양왕 까지. 영웅이 없으면, 다른 이들은 죽어나갈 뿐이야 "
또 복 날아가는 스택 +1. 즉, 한숨 나왔다... 하지만, 그의 의도를 들을 수 있었으니... 나름대로의 만족. 대의를 위해 영웅을 만들어낸다고? ...뭐야, 자기가 히어로 메이커 같은 거란 말이야? 어째 생각하니까 어이가 없어져 웃음이 나왔다. 실소에 가까운 웃음이.
"맞아요... 저랑은 다르죠... 저는 어디까지나 영웅이 반짝 빛났다 저무는 그걸 보고 싶은 거니까요... 영웅을 만드는 거랑은 다르죠. 대의를 위해 그러는 것도 아니고..."
음.. 얼레? 이거 어디서 봤지 않았나? 붉은 곰을 기리며 어느 기자가 작성한 기사...가 생각나는데 말이지. 지금은 사라져버린 옛 영웅이 아니라, 새로이 떠오르는 영웅을 원한다. 였던가.. 결론이.. 후우...
"맞는 말이에요. 13영웅과 수 많은 준영웅이 있다고 한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안전한 건 아니며, 지금도 누군가는 고통받고, 누군가는 나름대로 안락한 삶을 사는 생활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일상을 보내다가도 어느 순간 짠! 하고 나타난 게이트에 의해 한 순간에 파괴되는 일상... 새로운 영웅의 출현은 모두가 원하는 것이 될 수 밖에 없겠죠... 하지만, 너무 미래를 생각하고 계신 거 아니예요? 그걸? 굳이? 지금? 당신이?"
"분명 이걸 말씀드렸을 텐데요. 저는 신 한국의 백작이자, 3명의 건 마스터 중 한 명인 문 시현의 아들이라고. 그런 제가 치즈 케이크랑 딸기 스무디값이 아까워서 그런 일을 할까요? 서로에게 이득이 된다면 그것이 좋은 제안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당신의 제안은 저에게 이득이 될 것이 하나도 없어요."
념념…. 그렇게 딱 잘라 말하고선, 그는 마치 상대보고 약오르라는 듯 느긋하게 딸기 케이크를 먹었다. 잠시의 침묵.
"당신의 계획이 싫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단지 그걸 제가 하기엔 몇 개의 문제가 있다는 거죠. 하나, 저와 당신의 사상은 큰 줄기가 일치하지만, 단순히 사상의 일치로 그런 일을 맡기엔 보수가 너무 적다. 둘, 저는 스파이같은 일은 전문이 아니에요. 기획안을 짜는 게 전문인 사람에게 메이크업 스텝을 맡길 수는 없지 않나요? 셋, 큰 대의를 가지고 새로운 영웅의 탄생이란 무대를 계획하고 있는 것은 좋으나, 그러기엔 당신은 너무 어설퍼."
"이런 무대를 계획하면서, 단 한 번이라도 영웅의 삶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수집한 적이 있나요? 만일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적어도 10명의 영웅이, 각자 어떤 시기에 어떤 고난을 겪었고, 그 고난을 동료와 어떻게 헤쳐나갔는지, 그리고 반대로 10명의 쓰러져간 영웅이 어떻게 고난 앞에 무릎을 꿇었는지, 단 하나도 틀리지 않고 상세하게 말할 수 있나요?
자료 조사와 인풋은 창작의 첫 시작이죠. 잔인하게도, 이 두 가지가 없으면 지금의 소비자에게, 그 안에 담긴 신념과 대의를 전하기도 전에 작품은 외면당하고 버려지고 말아요…. 13영웅을 뛰어넘을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다루는 무대가, 그래서는 안 되는 법이잖아요?"
"…아무튼, 이쪽에서 제안을 다시 하죠. 신 은후는 에릭 하르트만의 동업자로서,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자신의 방식대로 당신의 무대를 도운다. 제 방식대로 하는 거이기에 보수는 필요 없어요."
딱히 프랑스어로 말하려던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뭔가 사진이 본래 알던 뷔페의 느낌하고는 많이 다르다. 뷔페라고 하면 적당한 저품질의 식재료로 대량생산한 음식들이 반쯤 식은 채로 한가득 쌓여 있는 일종의 요리 공동주택이다.
“저기, 클로디. 저거 분식, 뷔페라고 쓰여 있는 거 맞아……?”
분식과 뷔페라니. 신 한국에서 제법 오래 산 릴리니까 당연히 분식점이 무엇인지는 안다. 그리고 먼 옛날, 신 한국이 두 개의 나라로 나뉘었을 때, 남쪽 한국의 어느 지도자가 경제 발전을 위해 분식을 장려했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분식 뷔페라는 건 처음 듣는 말이거늘…….
‘생각해 보니 그렇게 생뚱맞은 조합도 아닌가? 고기 뷔페, 해물 뷔페, 바베큐 뷔페…… 분식이라고 없으라는 법도 없으니.’
릴리는 어감이 어떤 느낌이 드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직접 그 말을 외쳐 본다.
“분식뷔페! 분식뷔페!”
으으음. 뭔가 『바다사자』나 『산갈치』 같은 단어라고 받아들여도 되는 정도의 단어 조합인가.
“분식뷔페, 가 보자! 요리가 그 정도로 많으면 그 중 하나는 마음에 들겠지. 게다가 원래 분식은 재료의 질 따위 신경도 안 쓰니까. 좋은 생각 같지 않아?”
너무 먼 미래를 보고 있지 않느냐는 화현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손 발을 너무 오래 맞춘건가? 너는 내가 이 일을 그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건가. 괜히 캔커피를 만지작 거리며 고민하다가 말을 이어갔다.
" 다들 태연한척 하지만, 몇 주 전만 해도, 우린 전쟁터를 돌아다녔어, 태양왕 게이트에 수 많은 학생들이 죽었지. 그게 너와 내 친구들일지도 모르는 애들이었고, 정말 터무니 없이 많이 죽었어, 현실을 자각하기도 충분한 시간이었지. 사실 일전부터 그런 생각은 하고 있었어. 그저 막연하게 하고 있었지, 그리고 태양왕이 트리거가 되어서 실행에 옮기기로 작정한거고. "
" 이전의 나는 나 자신에게 자신이 없었어, 정말로 내가 이런걸 해도 되나? 싶은 그런 생각만 해왔지. 하지만 화현아..지금의 나는 해도 될 것 같아. "
" 내가 카사를 대상으로 삼은건 간단해, 그 아이가 1학년 중에선 재능으로 압도적이니까야. 조금만 가다듬으면 윤곽이 뚜렷하게 잡힐 것 같지 않아? 너도 봤잖아..그 의뢰에서. "
함께 프랑켄 슈타인에 갔을 때, 너도 분명 확인했다. 카사의 재능을...우리가 그저 멍하니 함정을 보며 손가락만 빨고 있을 때, 직접 함정을 돌파하는 맹수의 모습을..
" 너무 먼 미래가 아니야, 오히려 늦은거야.. 붉은곰이 실종되고 러시아의 꼴을 봐. 아버지가 죽어버린 자식들은 뭐 하고 있으려나. "
고개를 끄덕인 나는 탈의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확실히 심플한 느낌. 그래서 그런가 거울로 돌아보면, 어쩐지 얼마전 정장 입었을 때가 떠오르네. 춘심이에게도 보여주면 좋아하려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머리도 한번 더 정돈하고 나왔다.
"이 정도면 될까요?"
얼굴만 빼꼼 내밀었다가, 조심스럽게 나오면서 묻는다. 내가 보기엔 어색하진 않은 것 같은데. 점장 입장에서 '안어울려!' 하고 탈락시키면 얘기도 뭣도 없다.... 그런 흐름으로 이어지기전에 빠르게 대화를 이어가자. 질문해도 된다고 했었지.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일단은 조심스럽게 언급해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면, 최근 가디언넷에 올라온 사진이랑 점장님....닮으신 것 같은데. 혹시 동일 인물 맞으신가요?"
아이러니 하게도, 별로 의심하고 있진 않다. 왜냐면 맞다는걸 반대로 알고 있으니까. 다만 눈 앞의 이 사람이 정말 그런 짓을 저지르는 인물일까,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걸 알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여기에 온 것이다.
의외로 시원스럽게 인정하네. 놀라는 한편, 왠지 그럴 것 같았다. 별로 본인이 악행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없는 태도. 그러나 그게 단순히 뻔뻔해서 그런걸까? 나는 여기까지 와서도 그에게선 무언가...악의를 느끼지 못했다.
"가게가 더러워질만한 일을 할 생각은 없으니 안심하세요."
나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면서 근처에 있던 의자를 하나 끌어와, 그의 맞은 편에 앉곤 조신하게 앉았다. 다림씨에게도 말했지만 난 '너 왜그랬어!! 이 나쁜 녀석!! 당장 취소해!!!'라고 드잡이질을 하러 온게 아니다. 내가 느끼고 있던 위화감은, 그와 만나 얘기를 나눌 수록 강해지고 있었다. 따라서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보고, 나는 내 목적을 말하는 것이다.
침묵. 그저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 해가 저무는 소리. 새가 울고, 날아오르고, 벌레가 울 뿐인 소리. 그런 소리가 이어졌다. 먼저 해가 저무는 소리가 멈추고, 새의 날갯짓이, 그 다음은 벌레 우는 소리가 침묵했다. 쏟아지는 소리에 다른 것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그와 나는 참으로 이상한 부분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젠 있었던 사실만 남아버렸다. 이전부터 고민해오던 것이 있었으며, 그 고민이 해결된 것도 큰 사건을 겪은 뒤였다는 것.
카사 씨를 대상으로 삼아 그녀를 영웅으로 만들 속셈인가. 그녀의 의견은 들어봤을까? ... 하,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다른 사람의 의견도 듣지 않고 멋대로 의념기의 대상으로 삼아 영웅으로 표현하던 내가 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녀의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 가다듬기만 하면 윤곽이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이미 세상에 우리보다 재능이 뛰어난, 씨앗부터가 다른 자들이 즐비해있다.
머릿속으로는 온갖 생각이 다 떠올라 그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나는 잠자코 들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날 때 즈음... 입을 열었다.
"동의해요."
먼저 동의. 너무 먼 미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영웅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한 동의다. 당장 러시아로 고개를 돌려봐라. 러시아는 그저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수복이라는 것이 먼 꿈이지 않는가. 하지만, 그 뒤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학생이다. 학생이 다른 한 명을 지목하여 누군가를 위한 무대를 만들 정도로 여유있는 존재인가? 학업에 열중하며 스스로를 단련시키고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단계에서? 심지어 우리에게 영웅을 만들만한 재능이 있는가? 지금의 우리는 예전보다 강해졌다고 한들, 그저 학생에 불과하다. 누군가 보면 소꿉장난에 불과할 이 모습이... 참...
"잠깐, 제 이야기를 하자면... 저도... 여러 고민을 했었어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어나간다.
"저는 말이죠... 제가 영웅을 보고자 하는 것은 말이죠... 떠오르는 태양에 지지 않을 정도로 빛을 발한 뒤, 태양빛에 가려져 존재하지 않게 된 그 별을 영웅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생존 본능.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지 못해도 좋아. 생존 본능을 거슬러 누군가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여 살고 싶다는 욕망마저도 꾸욱 집어 삼킨 채 눈물을 흘리며 최후를 맞이하는 그런... '영웅'이 저는 보고 싶었어요. 의미 없는 희생을 한 자가 아니라... 의미 있는 희생을 선택한 자를."
"그런 영웅을 저는 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볼 수 없었죠. 저 같은 소시민이 그런 영웅을 본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아마, 초대형 게이트에 휘말려서 부상하나 안 입고 살아남는 정도의 확률이겠죠. 그래서, 저는... 영웅을 그리기로 결심했어요. 의념도 거기에 반응했을지도 몰라요. 어쩌면, 제가 처음으로 본 그 영웅 덕분에 의념이 각성하게 된 걸지도 몰라요. 볼 수 없다면, 그려서라도 봐라. 같은 심정으로... 그래서 제 의념기도 영웅을 그리는 게 됐죠."
"하지만, 영웅을 그린다. 만든다. 라는 것은 꽤 잔인한 일이에요. 제가 보고 싶어하는 영웅은 결국 희생이 필요하니까. 누군가에게 영웅이라는 형상을 덧씌워 그를 절벽으로 밀어버릴 수 있는가? 라는 것으로 저는 엄청 고민했어요. 그 사람이 과연 이런 영웅을 바랐을까? 내가 생각하는 영웅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이 잘한 것인가? 난 내 욕망을 위해 움직이는 이기주의자가 아닌가? 하면서... ...그런데, 그런 고민도 해결이 되더라구요. 저 자신은 이기주의자가 맞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위해 움직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했으니까요. 인정하고 나니까.. 속 편하더라구요. 내 행동에 브레이크가 없어진 기분이었어요."
자기가 말해놓고 어이가 없는지 살짝 웃었다.
"걸림돌이 사라졌으니, 행동은 좀 거 거침없이 변했고.. 약간의 후회가 있을 지언정 즐거웠어요. 그런 행동을 하는 게. 드디어 나의 색을 찾았다. 같은 느낌이라... 그래서 그런 그림을 그릴 수도 있었구요. ...그거 아세요? 그 그림에 그런 감정을 담는 것은, 제가 당신의 추억을 만들어 언제든 회상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당신은 어때요? 그런 행동이 즐겁나요? 누군가를 영웅으로 만드는 행동에 망설임이 없다고 할 수 있어요?"
"...만약, 후회하지 않는다. 망설임은 없다. 카사 씨께서 영웅이 되어준다면, 나는 그걸로 기쁘다. 라고 한다면! ...뭐, 제가 도와들릴게요."
“말했지, 나는 편식은 안 한다구. 분식이든 초식이든 맛만 있으면 되는 거야. 나한테는 mam…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시는 그라탕이야말로 절대적인 진리고, 그 아래에 맛있는 음식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거지.”
미식의 요건 그 첫 번째, 절대적인 진리를 애먼 곳에서 찾아 헤매지 말 것. 마망표 그라탕과 전혀 딴판인 중국의 행인두부 같은 디저트라도 충분히 맛있을 수 있다. 그라탕과 맛이 닮지 않았다고 해서 화낼 일이 아니다. 따라서 식도락의 중점은 깊이가 아닌 넓이인 것이다.
“요컨대 ‘셀프 바’라는 것이군. 가마솥 앞에서 지지고 볶고 하는 게 내 평소 일과니까 익숙해.”
아무래도 이국적인 자기 모습에 도리어 입맛을 걱정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릴리는 생각한다. 가벼운 목소리로 자기 식성을 이야기해 주며 돌아선다.
“나는 어릴 적에 프랑스에서 신 한국으로 이주해서, 어느 나라 입맛이냐면 이도저도 아니야. 외식 하면 파인 다이닝보다도 중국집이랑 뿌링클이 생각나지만, 비 오는 날에 집에서는 파전 말고 타르트 플람베(* 알자스 지방의 씬크러스트 피자 같은 전통 요리)를 먹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매운 것도 어느 정도는 먹을 줄 알고.”
어디까지나 ‘어느 정도’라는 단서를 붙여 놓았다는 것에 스스로 안도한다.
“…… 가 볼까.”
옆머리를 우아하게 사락 튕기며 지도가 나타내는 쪽으로 앞장서 걸어가는 릴리의 모습은 위엄이 전혀 없다.
후후, 웃으면서 옆에서 긴장하면서 보고 있는 너구리씨에게 나도 커피 한잔 받을 수 있겠냐고 물어본다. 솔직히 정말로 그다지 싸울 생각은 없다. 괜한 긴장감을 조성해서, 귀여운 너구리를 위협하는건 불쌍하다. 그러니 나는 어디까지나 부드러운 태도로 얘기하는 것이다.
"전혀 충분하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앉은 자세에서 다리를 꼰 체로 무릎에 손을 올려 턱을 받쳤다. 그의 몸을 본다. 그의 손을 본다. 나는 '막아내는 사람' 즉, 상대의 공격을 봐오고, 판단하는 사람. 거기에 방금 그의 말에는 그걸 증명하는 힌트가 있었다. 나는 그를 마주보곤 침묵하다가 묻는다.
"워리어라고 하셨죠? 확실히 몸을 보면 알 것 같아요. 나도 워리어니까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단련하고 있는 근육, 내게 살짝 경계심을 품었을 때의 반응. 확실히 워리어다.
"그런데 메스가 워리어란 포지션에 어울리는 무기인지는 의아하네요. 특히나, 점장님의 손에 굳은 살을 보면 더더욱이요."
나는 그의 손을 가볍게 가리켰다. 거기엔 분명, 노력의 흔적이 있었다. 무기를 쥐고 필사적으로 휘둘러온 흔적들이. 그는 결코 천재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나도 결코 천재가 아니었다. 울부짖으면서 무기를 쥐고 훈련한 사람끼리는, 알아볼 수 있는 법이다.
"그럼 제 생각이 맞다면, 점장님은 서로 점잖게 앉은 자세에서 자신을 열받게한 서포터를 자신의 무기도 아닌 메스를 이용해, 전신을 베어가른 것도 아니고 팔의 안쪽 부분을 그어냈어요. 허리를 들지 않았으니까, 팔을 길~게 뻗었어야 겠네요. 좀 웃긴 자세였겠죠?"
나는 내가 생각한 위화감을 그에게 얘기했다. 하루는 믿고 있다. 그녀와 카사는 지켜주고 싶다. 그러나 제대로 지키기 위해선, 나 같은 모자란 녀석은, 이런 위화감을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드디어 허리를 숙여 점장에게 얼굴을 가까이 한다.
[오렐리 양의 천재성으론 누구인지 알겠지만...] 으로 시작되는데. 우연과 운명으로 인한 행운의 작용으로 정말 모르게 되어버리고 말지도 내용은 대충 if로 친다면 오렐리의 고향에 들렀는데. 인형을 사러 들렀다는 그런 내용일지도. 그게 디재스터(다림주가 생각해본 if)라면 곤란해지려나.
>>426 #자캐가_멘션캐에게_익명으로_편지를_쓴다면
[청첩장은 잘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갈 수 없겠군요. 하지만..] 으로 시작하는데.. 내용은 대충.. 청첩장을 받아버려서 가고는 싶지만 갈 수 없다는 그런 내용. 아쉽다는 말을 하는데. 축의금은 동봉한다고 한 다음. 다음번에는 꼭 참석할 수 있기흫 바란다고 하면 어떤 일로 인해 결혼식이 파토남.. 그리고 다음번에는 참여하려ㅏ..
" 응, 난 무슨 수를 사용해서라도 재능있는 소수를 영웅으로 만들거다, 누군가 그게 죄라고 손가락질하면 그냥 감수 해야지. 어쩌겠어. "
러시아의 상황이 남 일이 아니다. 어쩌면 당장 내일 일어날지도 모른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게이트가 나타나고 있고,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영웅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어쩔 수 없다. 다수의 기대와 압박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영웅이라 불리는 자의 업이니까.
" 네 이야기 재밌었어. 그렇구나, 그래서.... 하아. "
이런 이야기를 들은 것은 처음이라 상당히 놀랐다. 근육이나 헛소리만 하는 녀석인 줄 알았더니... 적어도 이 녀석이 내 편이라면. 할만 하다. 단편적으로 보는게 아니라 길게 볼 수 있다. 이 녀석이 붙으면 이길 수 있으니까.
" 그렇다면 도와줘, 네 힘이 필요해. 사실 능력과 재능이 있는데 의무를 지기 싫어하는 기만자를 하나 알고 있었는데, 그 녀석이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궁금했었거든. 그런데..이렇게 불러주기도 하고, 생각을 말해주니... 편해졌어 "
꽤나 시원스레 대답하는 모습에 "재미없어." 라고 투덜거린다. 하지만, 오히려 나에겐 호재일지도 모른다. 난 그가 영웅다운 최후를 맞이할 것 같기에, 도와준다고 한 것. 하지만... 지금은 딱히 그게 아니더라도 괜찮아. 의념은 물건을 쥐는 방법. 어떻게 쥘 지는 내가 정해. 어쨌든, 그에게 달라붙어 방향을 천천히 틀어주기만 해도 된다. 누군가 불행해질 필요는 없잖아. 영웅을 만드는 방법은 많아. 그 선택지가 눈에 안 들어온다면, 눈에 들어오게 만들면 돼.
"글세요, 그 기만자는 누굴까요? 전 전혀 모르겠는데. 혹시, 상상속의 친구예요?"
딱 봐도 견적 나오는 말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 얼렁뚱땅 넘어가기 전에 빠르게 조건을 걸어야겠다.
"대신, 도와주기 전에 조건이 있어요. 누군가를 위한 무대를 만들려면, 그 무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과 그에 따른 대처법을 알아야 해요. 지금 같은 경우는... 그래. 당신은 감독으로써 실력이 아직 없으니,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당신이 다룰 배우들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세요. 단순한 협상이나 뇌물로는 의무감이나 충성심을 얻을 수 없어요. 때로는 설득을, 때로는 더 좋은 조건을, 때로는 무력을. 다양한 수단과 방법으로 충성심을 끌어내야 해요."
즉, 결론은 그거다.
많은 사람을 만나, 그들이 원하는 것과 바라는 것. 또, 그들을 다루는 법을 배워라. 다르게 말하면
밝은 햇살이 가득한 성학교의 정원에, 평소처럼 앉아있는 새하얀 머리카락의 소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딘가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언제나 생기가 넘치던 머리카락이 점점 생기를 잃고 있는 듯 했고, 힘없이 가라앉은 눈은 제대로 잠도 못 자는 사람처럼 퀭해서, 그녀를 평상시에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하루가 맞아?' 라고 물을 것 같은 상태엿습니다.
" ...어쩌지,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이시간에도 움직이는게 아닐까...? "
하루는 얼마나 깨물었는지 새하얗고 가느다란 손 끝이 붉어지고 벗겨져 있었는데도, 그것을 다시 입가로 가져간 체로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금방이라도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은지 가디언넷을 보기도 하고,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도 하다가 결국은 두손으로 얼굴을 덮어버립니다.
" 안돼..그치만..잃을 순 없어.. 그아이를 그렇게 멋대로 휘두르게 놔둘 순 없는데... 그치만 내가 할 수 있는게... 그런게... "
하루는 그렇게 홀로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고뇌에 빠진 듯, 홀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지훈은 드물게 풀어진 느낌으로 노곤노곤하게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그의 주위에 고양이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길고양이 한두마리 줄려고 츄르를 사왔는데 어느샌가 길고양이들이 잔뜩 몰려들어버려서.... 그의 주변을 둘러싸다 못해 몇몇 고양이는 자신의 몸 위에 올라타기도 했던가.
" 기분 좋아.... "
냥냥이 천국... 젤리에게 밟혀서 기분 좋았으려나. 말캉말캉 부들부들하고? 만약 다림이 공원의 호수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면, 호수 가까이의 벤치에서 고양이들 무리에게 둘러쌓여 흐물하게 있는 지훈을 발견했을지도 모르겠다.
본인의 얘기가 얼마나 터무니 없는진, 아마 점장 본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애초에 '그냥 그렇게 넘어가줬으면 하는데' 라니. 숨길 생각도 특별히 더 없잖아. 뻔뻔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 정도 까지 왔으면, 나도 어느정도 직감할 수 있다.
이 사람, 위악자구나.
기가 막혀서 나치고는 드물게도 한숨이 나온다. 나는 지금....도대체 무슨 상황에 휘말리고 있고, 무슨 상황에 발을 내딛고 있는걸까. 이런 속쓰린 전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나 같은 소시민에겐 여자친구에게 곰돌이를 어떻게 선물할지 고민하는 정도가 딱 적당한데. 그러나 그 때 불안정한 하루의 모습과, 울먹이던 그녀의 모습이 뇌리를 지나쳐간다. 아~아~....
"오해가 있는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건데. 하루도 카사도 제게는 참 소중한 동생들이에요. 둘 다 밝고 상냥한 아이들이죠. 그 애들이 나에게 뭔가 오해의 소지를 주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실망하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을거에요. 난 그녀들을 돕고싶으니까요."
애초에 나는 옛날부터 누군가에게 속고 이용당한 적이 많으니까. 익숙하다. 심지어 하루에겐 은혜가 있으니, 그녀가 사랑을 위해 필사적이었다고 하면 납득할 수 있다. 나 또한 요즘 연애를 하는 입장으로써, 필사적인 그 마음 자체는 아주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니까.
"다만, 아시겠어요? 나는요. 누굴 싫어하는게 정말 싫어요. 싸움도 싫구요. 하루를 도와주겠지만, 오해란걸 알면서도 나보고 당신을 미워하거나 적대하란 소리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네요. 미안하지만, 그런셈치고 넘어가줄 수 없어요."
나는 드물게도 단호하게 말했다. 아무리 유약한 나라지만 납득할 수 없는 일은 있다.
"말해요. 위악자를 연기하는 점장님. 나는 당신을 이해하러 온겁니다. 내가 그녀를 제대로 납득하고 도울 수 있게 하세요."
그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악당을 연기하고 있다. 그것도 꽤나 필사적으로. 다만 나는 나에게도 고집이 있는거야. 그 악당이 연기란걸 간파한 이상, 덮어놓고 미워하고 적대하고, 그럴 수 있을리가 없잖아. 나는 하루와 카사를 좋아한다. 그녀들을 도울 것이다. 그렇지만, 내 의지로, 제대로 모든걸 알고 납득한 체로 돕겠다. 누군가에게 비틀린 분노와 적의를 표출하는 것은 사양이다. 그건 내가 바라는 영웅의 길이 아니다.
"나는 누군가를 지키고 싶은 영웅이 되고 싶은거지, 오해로 비롯된 폭력을 휘두르는 인간이 되고 싶은게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가볍게 기술을 전개했다.
부동일태세不動鎰態勢.
바닥에 붙이고 있는 발바닥에서부터 상상의 뿌리가 뻗어나와, 이 가게 지반에 복잡하게 얽혀 내려앉는다. 팔짱을 끼고 있는 몸은 그대로 단단하게 굳어 철벽의 요새가 된다. 신체 S 가 압도라도 하지 않는 이상은 쉽게 뽑아내지 못할 걸. 고집이 강한 모양인데, 이런 상황에서의 나도 만만치 않아.
1점급 특성 - 튼튼한 뼈- 부상 확률이 감소한다. 2점급 특성 - 가속 판단 - 판단력이 증가한다. 3점급 특성 - 똑똑한 - 영성 스테이터스의 효율이 증가한다 4점급 특성 - 적당한 재능 - 숙련도가 B등급까지 빠르게 오른다. 5점급 특성 - 영웅적인 - 위험 상황에서 공격력과 방어력이 증가한다.
"현실은 냉정하지만, 아마 당신은 그러지 않을걸요. 왜냐면 확신을 얻고 납득은 못한체 쫓겨난 내가 뭘 할지 모르니까."
점장은 내게 어울릴 가능성이 높다. 왜냐면 나는 지금, 별 관계 없는 3자가 진상을 캐고 다니는 이레귤러가 되었으니까. 사실 아닐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지만. 내 감이 말하고 있다. 위악자는 이 도전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그럴 사람이었다면, 애초부터 자신이 미움을 끌어당기는 연기 같은거 하지 않는다.
"역시 검사였나요. 아주 각오가 확실하시네요."
주섬주섬 검을 꺼내든 그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치켜들어올려진 검에는 붉은 기류가 뭉쳐든다. 이거, 의념기네. 솔직히 말해서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어요' 라는 어필만 하고 싶었을 뿐인데, 의념기를 날려 오다니. 후회하지 말라지만, 속으론 엄청 후회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에휴. 하고 한숨을 내쉰다. 다행히 요즘엔 쇼핑하느라 바빠서 망념에는 여유량이 있다.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미안해요."
가게가 더러워지는건 사양이라고 말한 그에 대해 사과하는걸까, 아니면 다툴 생각은 없어요~ 라고 말했던 다림씨에게 사과하는걸까. 그렇지만 난 정말로 다투고 싶지는 않았어. 맹세해! 의념기까지 날라오는건 예상 밖이었다구!
"뒷청소는 내가 버텨내고 전부 다 해줄테니까, 걱정 마세요."
지금이라도 부동일태세를 풀고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물러나면 상관 없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애초에 그럴 예정이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고, 굳이 캐묻지도 않았다.
【그래도 나는 영웅을 꿈꾼다.】
당신의 그 기술이 어떤 종류인진 모르겠지만 말이야. 이 쪽은 오로지, 견뎌내기 위한 단 한가지에만 모든걸 걸어왔다. 투박하면서도 굳건한 이상의 고집이 현실화 되어, 내 몸을 감싸는 강철의 갑주로 변환된다. 자세는 그저 부동일태세. 덧씌우는 것은 영웅이 되고자 하는 고집의 갑주. 이런 승부는 조금도 좋아 하지 않지만, 필요한 시점에선 피하지 않는다. 해보자고.
하루는 여태껏 누군가를 적대해본 적이 적다. 끽해야 게이트의 존재. 게다가 지금 적대하려는 것은 소중한 친구였던 에릭. -> 여기서 멘탈 어긋남 1차 거기다 에릭이 노리는 건 가장 아끼는 카사, 잘못하면 자신에게서 멀어짐 -> 멘탈 어긋남 2차 자기는 고작해야 힐링하는 서포터, 과연 자신이 에릭에게 제대로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 멘탈 어긋남 3차
카페에 강한 돌품이 불러 일으켜지면서 그의 방패를 향해 붉은색의 참격이 꽂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진화가 자신의 의념기를 써서 갑옷을 이용해 서서히 버티기 시작하자 아무리 자신의 의념기라고 해도...역시 각오의 차이가 달라서 그런가, 그를 밀어내긴 하지만 뚫지는 못한다. 그리고 ...곧 레인메이커가 잠잠해지자.
" ... 하루는 내가 내려둔 메스를 들고 자해했어. 일부러 카메라의 각도까지 계산해서 자신의 팔을 그었다. "
" 니가 이 말을 믿든 안믿는 신경쓰진 않아. 하지만, 나는 내가 본 그대로의 사실을 말해준거다. "
말하면서도 착잡했다. 이걸..내가 말해도 되는건가. ...하지만 저쪽은 자신이 제 3자라고 주장했으니 이젠 ...자신이 알아서 하겠지.
다행히 견뎌내긴 했지만, 온 몸이 비명을 지른다. 이거 방어 무시 효과 있는 기술인가보다. 갑옷과 방패를 관통하듯 찔러오는 충격이 무시무시하게 아프다. 의념기로 맞받지 않았으면 크게 다쳤겠지. 이 사람, 강하구나. 그리고 짐작컨데. 봐주진 않았지만, 정말 죽일 각오로 때린 것도 아니다. 그랬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케훅."
그는 착잡하게 자신이 본 것을 설명했다. 사실, 충격적이진 않았다. 아까 위화감을 그에게 털어놓으면서 따질 때 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메스라니. 그런걸 주무기로 쓰는 사람은 치료 전문가인 서포터 정도잖아. 서로 마주 앉은 자세에서 자신의 팔 안쪽만 베여질 이유도, 자해 정도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니 그다지 놀라진 않았다. 그녀에게 실망하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나 갑주가 해제되자, 식은땀을 흘리는 내 얼굴이 다시 드러나고 만다. 안에서부터 울리는 충격에 왈칵 피라도 토하고 싶지만, 애써 참고, 손을 뻗어 그의 팔을 붙잡는다. 나는 아직 들어야 할 것이 있다. 나는 하루를 의심하러 온게 아니라, 이걸 듣기 위해서 찾아온거니까.
"...하나만 더요. 당신은, 왜 악당을 연기하고 있죠. 그녀와 대립하는 이유가....뭡니까...."
"내가 보기에 당신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데도 그렇게....굴고 있죠. 그 이유를, 말해줘요. 나는 그걸 알고 싶어서, 지금 여기에 이러고 있는....거라구요."
정신이 어질어질 하고, 몸이 고통에 떨리지만, 그래도 나는....대답을 듣고 싶다. 저 진심을 듣고 나서야, 언젠가 그녀들을 도와 방패를 내세울 때 내 자신이 후회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미련한 고집이라고 누군가는 말할지 몰라도, 나는....절대 포기 안해.
오늘도~ 뚜뚠~ 개미는~ 뚜뚠~ 얼레? 여기에... 이런 집이 있었나...? 산보를 하던 도중 눈에 들어온 화려한... 주택. 겉에는 소유하고 싶어지는 이상한 매력을 가진 보석이 박혀 있고, 주택이라기 보다는 작은 성과 같은 외관에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온다. 마치, 해골을 본 것 같은... 느낌. 꽤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과 그의 가족이 살 것 같은 3층 높이의 주택... 이거, 사실 저택이라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나 때는 말이여!! 어!? 하는 생각이 절로 나오지만...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군... 본래라면, 이런 것에 시간을 빼앗길 내가 아니지만.. 흠... 흠... 자료 수집이라는 명목으로 스케치북을 펼쳤다. 어디.. 외관은 이렇고.. 세부적인 디테일은 일단 패스하고... 뭉퉁그려 그리면... 흠흠, 그렇군... 누가 이걸 지었을까...
"흠, 진짜 화려하단 말이야... 손유 선배가 이 집을 보면 좀 좋아할 것 같아... 붉은 색을 잘 쓰시는 분이잖아. 화려함! 고귀함! 그런 거랑 어울리는 사람이고... 진짜 제대로 스케치해서 보여줘?"
집 앞에서 어슬렁어슬렁... 수상한 사람이라 신고하면 어떡해? 라는 생각도 어느새 머릿속에 자리잡은 망상에 사라져간다.
- 간단합니다. 상대방을 고립시키면 됩니다. - 현대 사회는 의념 각성자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어쩔 수 없이 게이트라는 위험요소가 존재하는 한 의념각성자들의 가치는 다를 수밖에 없죠. - 그리고 현재의 노년층은 영웅의 사상과 업적에 크게 영향을 받은 인물들입니다. 거기에 살아남을 정도의 재능 역시 가지고 있죠. 그들은 당신의 사상에 동조할겁니다. - 노년층의 지지는 그 아래에 있는 중장년층의 지지와도 관련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 가디언 넷을 넘어 인터넷에 영상을 올리십시오. 몇일은 뜨겁겠지만 또 몇일이 지나면 조용해질겁니다. 그러고 나면 상대는 영상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 밝혀질겁니다. - 그 뒤론 공론화를 시도한들 이미 거짓을 표현하던 것을 알았는데 사람들이 쉽게 넘어가줄까요? - 거짓말쟁이로 만드십시오. 그게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 승리를 위해선 소수의 희생도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루는 에릭의 이름이 나오자 한순간 눈빛이 변한다. 어딘가 탁한 빛이 번뜩인 금빛 눈동자를 지훈에게 향한 하루는 콜라를 내려놓더니 적대심이 솟아오르는 듯한 모습으로 목소리를 높힌다. 방금 전까지 혼이 나간 것처럼 중얼거리던 것이 아닌, 자신의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려는 듯 발버둥을 치는 듯한 목소리였다.
" 카사는 안되요...! 여기서 자기가 원하는대로 나아가게 할거에요... 돌아가요, 카사는 못 데려가요...! 안그러면...제가..! "
하루는 품에서 메스라도 꺼내려는 듯 손을 넣지만 놓고 나왔는지 아무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 ...왜 하필 카사인거에요... ! "
그냥 그아이랑 행복하고 싶은 거 뿐인데. 하루는 갈라진 목소리로 외치곤 맨손으로라도 지훈을 막을 생각인지 일어서려 합니다.
편의점에 있는 츄르들은 싸그리 싹싹 털어왔으니... 라고 중얼거리며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려나? 그걸 이제서야 깨닫기는. 멍청하긴. 뭐, 이렇게나 고양이가 많이 모였으니 다른 사람들은 상관 없는게 아닐까. 잔뜩 모인 냥냥이 중 하나를 붙잡고는 볼을 마구 부빗거리기 시작했다. 흐와아아아....
" 나쁘지 않은 걸 넘어서, 좋지... "
계속해서 츄르를 쭉쭉 짜주고, 고양이들이 애교를 부리면 더 짜주고, 소식을 어디서 들었는지 냥이들이 더 몰려들고, 애교가 많아지고, 츄르를 짜주고, 애옹이들이 몰려오고...
이러한 선순환(?) 속에서, 지훈은 한가지 이변을 눈치챘을까.
" 그러게... 지금, 움직이기가 어려워. "
지훈이와 다림이 주변에 고양이들이 너무 많이 둘러싸고 있어서, 움직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오늘도 집 안에만 있어선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듯 집을 나서던 하루는 얼굴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집 주변에 머무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집이 생겼음에도, 기뻐하기 보단 불안해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와중에 낯선 이를 보게 되니 경계심이 배로 상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무슨 일로 오신거에요...? 문제라도 있나요..? "
조금 야윈 것 같은, 퀭한 눈으로 화현에게 다가오며 조금은 경계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화현에게 말을 던지는 그녀는 누가 보아도 여유가 없어 보였습니다. 혹시나 에릭이 보낸 사람은 아닐까, 속으로 그런 의심을 하며 언제든지 저택의 침입자 방지 기능에 눈 앞의 상대방을 넣을는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겁니다.
한 참을 집을 관찰하고 스케치북에 그리던 도중,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법 피폐한 목소리. 흠?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음, 그 사람의 외모는...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좋은 편.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현재의 이미지와는 맞지 않은 외모였다. 누군가 본다면 동정심이 들 외모지만, 내 취향은 워낙 확고하고, 집 주인이 누구냐고 묻는 순간에 대답부터 생각하는 것이 사람이니까..
"아, 그게... 산보 도중에 집이 워낙 멋져보여가지고요."
어색하게 웃으며 스케치북을 보여준다.
"그... 아는 사람에게 이런 집이 있드라고요!! 하면서 알려주려고.. .그리고 있었어요. 집을... 혹시, 민폐라면 그만두겠습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꾸벅 숙여 사과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답을 기다리듯 그녀를 바라보면서도, 관찰은 멈추지 않았다. 불안해 보이는 눈동자. 경계하는 목소리. 무언가에 많이 시달렸다는 인상을 받아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자신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며 나긋한 말을 던져오는 지훈을 하루는 의심스러운 듯 바라봅니다. 지훈이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하루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의심하고, 주변을 경계하고, 두려워했을까요. 지훈의 말에도 좀처럼 믿어도 될지 확신이 들지 않는 듯 금빛 눈동자로 응시하는 하루였습니다.
" 에릭은 제멋대로 영웅을 만든답시고 카사를 데려간다고 했어요. 왜 하필 카사인지 저는 자세히 알지 못해요. 분명 그에겐 그 나름대로 생각이 있는거겠죠. 하지만 전 .. 전 납득할 수 없어요. 왜 카사 본인은 상상도 하지 않은 것을 자기 잣대에 맞춰서 그런 일을 벌이려는건지, 그런걸 저 보고 이해라고 들이대는 것도 전 이해 못해요..! "
진정하라는 그의 말에도 차마 진정할 수 없는 듯, 점점 더 악을 쓰듯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 충혈된 눈으로 지훈을 바라봅니다.
" 왜 그런 짓을 하는거죠...? 왜... 꼭 그래야 하는건데요...? 카사가 재능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그 아이도 자기 앞길은 자기가 고를 수 있는 자유가 있는거잖아요..? 왜... 대체.. 지금도 그 사람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움직이고 있을거에요.. 그러니까 제가 막아야 하는데.. 저는 .. 저는.. "
한순간 입을 다문 하루는 숨을 거칠게 몰아쉽니다.
" ....저는 에릭을 막아야 해요... 어떻게 해서든... 카사는 자기가 결정한 미래를 걸어갈 자유가 있는 아이니까요... 영웅이니 뭐니 남에게만 허울 좋은 이야기 따윈 필요없어요. 저도 알아요, 저희 세상엔 영웅이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만들어진 무대위에서, 타의에 의해 영웅이 된 사람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저는 그걸 바라지 않아요.. 그 아이가 영웅이 될 재능이 있는거라면... 자기가 정할 길을 따라가서 영웅이 되는게 맞잖아요. " 안그래요? 하루는 거칠게 말을 내뱉곤 지훈을 응시합니다.
이런 집에? 왜.. 보내지? 보석을 강탈하라! 하는 거라면 또 몰라.. 하지만, 난 그렇게 물욕있는 사람은 아니다. 내 수중에 GP가 있다면 우하하하!! 나는 무적이다! 하는 사람이지만, 굳이 타인의 GP까지 탐내는 이는 아니니까... 그림을 그리는 거라면 상관없다는 말에 짧게 감사인사를 전한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에릭 이라는 이름이 튀어 나오자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기억.. 아, 이 사람이.. 그 가디언넷의... 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졌다. 하지만, 지금은 모르는 척 하는 게 좋겠지...
"그 에릭이란 사람이 뭘 했길래 그러세요?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저는 제 동아리 선배에게 이 집의 외관을 보여주기 위해 여기에 온 거예요. 그리고... 산보중이기도 했고..."
으음.. 슬슬 양심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이런 건 못 들었는데... 대충 머리를 굴려보면 답은 나온다. 이 사람이 왜 그런 짓을 했는가?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 에릭 선배와는 무슨 관계인가? 같은 것을... 이걸 삼각형으로 이해하면.. 참 쉽죠. 인 격. 흐음.. 소중한 사람은 카사 씨구나.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음, 답례.. 라고 하긴 뭐하지만, 제가 그림을 그려드려도 괜찮을까요?"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물어본다. 내 양심도 참... 이기주의자! 라고 선언한 사람 주제에 참 이상하다. ...사실, 내가 바라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데에 집중하는 사람이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적이 아니지만. 난 어디까지나 관객이지만...
청천은 릴리의 말을 들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약간 의아해하지만 흥미로워하는 것 같습니다. 제노시아라면 이것저것 상상이 가능하겠는데, 청월고교생이라서 더 모르겠네요.
"아무튼, 그렇다니 안심이네요. 그러면 저야 좋지요."
청천 또한, 우아한 케이프와 세미정장 차림으로 고개를 숙이더니...촐랑촐랑 앞서나가는 모습이, 마찬가지로 그다지 위엄이 없네요. 안 신난 척 하려고 해도 약간 신나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청천은 떡볶이를 좋아하니까요. 자신도 모르게 신속 스탯이 드러날 뻔 했지만...다행히 릴리와 동행 중이라는 사실을 잊진 않았기에, 다시 릴리가 따라오기에 무리가 없는 속도로 돌아옵니다.
"여기에요."
다림이와 갔었던 즉석 떡볶이집으로 릴리를 안내한 청천은... 점원에게 말해서 2인 입장금액을 선결제하고(릴리에게는 "나중에 송금 부탁드려요."라고 눈을 찡긋해보입니다.), 점원의 안내를 따라 냄비에 떡볶이 재료를 담는 코너로 이동하겠지요.
"자, 골라보시죠."
여러 종류의 떡이며, 채소, 부재료, 해물 등등의 다양한 재료들이 통에 담겨서 쭉 늘어져 있습니다.
"양배추...조금 많이 넣어도 되죠? 다 먹을 수 있으니까요."
청천은 헤실헤실 웃으며 조각난 양배추를 냄비 바닥에 깔려고 합니다. 헤헤 양배추다. 릴리가 원하는 재료를 말해준다면...그것도 담아주겠지요. 손에 들고 있는 건 또 다시 3~4인분용 냄비입니다. 혹자가 말하길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지만...어떻게든 되겠지요!
우리는 원래 딱히 대립 스레는 아니었잖아? 학원에서 친구 사귀고 성장하고 몬스터 잡는거 좋아해서 온 사람들이면 캐릭끼리의 갈등 여론이나 대립이 장기화 되었을 때 충분히 불편할 수 있다고 봐. 그리고 몇번 말했지만, 난 솔직히 혐관? 이란거 그다지 선호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길어져서 감정의 골이 심해지면 일단 내가 불편할 것 같은 불안은 있어...
그녀가 문을 열아주자 꾸벅. 고개를 숙이고 안으로 들어간다. 흠... 난 어디까지나... 구경하는 입장이지만, 할 말은 해야겠어... 그녀의 안내를 받으며 집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어떻게 이 사태를 그나마 괜찮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멈추지 않은 채로. 응접실 소파에 앉아 개끗한 페이지로 넘긴다. "차는 괜찮아요. 물 한 잔이면 돼요." 집에 들어오기 전에 그녀가 한 말에 대답하고는 곰곰... 가볍게 운을 떼는 게 좋겠지.
"제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그... 소중한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말씀하시기 곤란하시다면 안 하셔도 돼요... 하지만, 혼자서 끙끙 앓는 것보단... 그 사람이랑 같이 고민하고 생각하는게 더 나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저도... 그래서... 어떻게든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 보고 싶어서... 에릭에게는 영웅을 만드는 데 꼭 무대가 필요한 건 아니다... 힘 없는 학생인 우리가 생각하기엔 너무 먼 미래다. 라는 것을 에릭과의 일상에서 말했고... 차라리, 에릭의 의념속성인 연단을 이용해서 사람을 단련시키되, 스스로 악역이 될 필요 없는 방향을 선택지에 넣고 싶어서... 에릭과 일상을 했어요...
하루랑 일상 하는 것도... 어떤 그림을 그려줄까요! 하고 묻는 것도 있지만, 카사를 혼자서 지킬 필요는 없다. 그리고, 꼭 자신이 카사를 지키지 않아도 카사는 스스로 강하다! 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어요..
울망이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그는 쓴 웃음을 내쉬었을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당장은 안심시키는 것 뿐. 그리고 그것이 충분하리라 믿는 것 뿐이었다.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하려면... 판을 뒤집어 엎거나, 아니면 에릭의 마음을 고쳐먹게 만들거나, 둘 중 하나니까. 그리고 지금 당장은 둘 다 하기 어렵다.
" 에릭이 누군가를 포섭하기는 어렵겠지. 누군가의 의사를 배제한 채로 무언가를 결정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반감을 살 만한 일이니까 말야. 적어도 자유를 중시하는 성학교에 다니는 이들은 그런 말에 동조해주진 않을 걸. "
다만 문제는 그런 말에 동조해줄 사람이 없지는 않다는 것....이려나. 극단적인 사상을 가진 자, 아니면 과거의 사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자... 하지만 그 수가 이제 많지는 않을테니, 구태여 말하지는 않기로 했다.
" 가장 간단한 건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거려나. 적당히 거짓과 진실을 섞어서 말하면 되겠지. 옛날에 에릭은 카사에게 치한이라고 불린 적도 있다면서? 에릭이라는 청월 학생이 카사에게 불순한 의도로 계속해서 집착하고 접근한다고 말하면 아마 선생님들이 무시하지는 못 하겠지. "
"이런 해결을 바란다면 선생님께 말하는 방법이 있고, 그 다음은..." 이라며 고개를 살짝 갸웃인다.
" 판돈을 걸기 싫은 도박이라면 차라리 판을 엎어버리면 된다. 카사를 아카데미에서 이탈시키는 거지. 물론 이탈시키겠다고 협박만 해도 충분할 걸. 그녀석은 카사가 싫어서 그런 짓을 하는게 아니라, 나름의 비뚤어진 애정일테니. "
고개를 끄덕였다. 판을 엎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카사를 죽이거나, 아카데미에서 쫓겨나게 만들겠다고 협박하면 된다. 에릭은 아카데미에서 카사가 이탈하거나, 죽는 것을 원치는 않을테니.
" ...둘 다 싫으면 단순히 에릭을 설득하는 방법이 있겠네. 물리적으로 때려눕혀서 포기시키거나, 말로 설득하거나, 아니면 그녀석의 소중한 것을 쥐고 협박해도 되겠지. "
"예를 들면 가까운 지인, 친구, 애완동물 같은 것들?" 이라며 고민하듯 말을 했을까.
" 아마 하나쯤은 손이 안 닿는 곳이 있을 거야. 그런 놈들은 대게 가진 것이 많고, 가진 것이 많을수록 전부 지키는 것은 어려운 법일테니. "
이 모든 사건의 흐름은 에릭이 굽히느냐 아니냐... 로 결정되는 거죠? 이제 와서 카사가 모든 걸 알고 하기 싫다고 해도 에릭은 안 굽히려 할 거 같고. 에릭한테 하고 싶은 말을 솔직히 말해보자면... "너 철혈 의념에서 연단으로 바뀐 거 맞아?"에요. 아무리 봐도 철혈에 더 어울리는 것 같아서... 굽어지지 않는 철을 어떻게 연단하겠어요.
진화가 이번에 카페 가서 캐물은건 사실 하루가 아니라 에릭을 위해서거든. 자신은 정과 인연 때문에 하루를 돕긴 도울 것 같지만, 그게 에릭의 위악 연기에 넘어가서 그를 성장의 발판용 악당으로 보는거랑은 별개인거야. 진화가 직접 보기에 에릭은 꽤 상냥한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이 악당연기하면서 자기 희생하는건 올바른 일은 아니지.
사실 그래서 진화는 이후에 더욱 트롤링(?) 할 수도 있긴 해. 구체적인건 아직 생각 안해봤어.
차를 준비하려던 하루는 화현의 말에 눈을 느릿하게 깜빡입니다. 어찌되었든 손님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맞으니, 하루는 종종걸음으로 잠시 사라졌다가 시원한 물 한잔을 들고 응접실로 돌아옵니다. 물 한잔을 화현의 앞에 내려놓고 반대편에 자리를 잡고 앉은 하루는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입니다.
"... 아직 그 아이는 몰라서요. 그 아이는 이런 문제는 잘 알지 못하니까.. 그사람이 손을 뻗기 전에 제가 막고 싶은거에요. 팔불출이라고 말하실지도 모르지만 그 아이는 순수한 아이니까요. 이런 뒤에서 벌어지는 싸움 같은건 잘 몰라요. 그래서 이런 걸 알기 전에 제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하루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화현을 향해 눈을 불안한 듯 이리저리 굴리며 말합니다.
".. 전 그냥 그 아이가 이런 것 따위는 모르고,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나아가길 바래요.. 그래서 전 그냥 그아이를 지켜주고 싶은 것 뿐이구요.. "
그것만이 자신의 바램이라는 듯, 힘없이 중얼거린 하루는 자신의 손을 불안한 듯 매만집니다.
뭐 사실 이제와서 에릭이 갑자기 "오케이 미안, 그만둠." 이러긴 또 애매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시빌워가 한번쯤은 터지긴 하는게 맞긴 한 것 같아. 서로 진심을 가지고 부딫혀서 묵은 감정이 남지 않도록 다 털어놓고 결판을 짓는게 깔끔하다고 생각해. 다만 그 전까지의 빌드업이 너무 길어지면, 그 묵은 감정이 지나쳐서 독이 될까봐 걱정되서 하는 이야기.
물이 든 컵을 손에 쥐고... 가만 이야기를 들었다. 그 아이. 라고 말하는 것에서 소중한 사람이 맞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조금. 에릭 선배의 손길이 닿기 전에.. 막고 싶다. 구해낸다... 흠... 흠... 나도, 카사 씨를 안다. 잘 알아? 라고 묻는다면.. 아니... 의뢰 한 번 같이 갔고, 태양왕 게이트에서 만났고.. 그게 끝인 걸. 하지만, 그 사람은 꽤... 강한 사람이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도 알고, 때로는 폭발적인 힘을 내기도 하는 사람이다. 정교한 싸움이 아니라 기습, 저돌적인, 난투... 막 그런 용어가 어울리는 사람이지만, 약하지 않아.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물을 마신다. 원래라면 관련없이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일이지만, 나도 이 사건에 끼게 된 이상... 남일처럼 생각할 수 없는 몸이다. 에릭 선배를 돕겠다~ 고 말은 했지만, 난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 내가 원하는 걸 한다. 즉, 이것도 내가 끼어들어 어떻게 해보고 싶다. 왜냐고???? 내가 하고 싶으니까!
"하루 씨. 관련 없는 사람인 제가 말하는 게... 조금 이상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 그 사람을 너무 감싸는 거 아닐까요?"
물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불안하고 몰린 사람일 수록 뜻을 왜곡하여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까 직설적으로. 오해의 소지가 없게!
"누군가 손을 뻗기 전에 그 사람을 지키고 싶다. 보호하고 싶다. 라는 바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하루 씨께서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 모습을, 그 사람도 알고 계신가요? 그 사람이 안다면 당신을 지켜주지 못한 그 사람이... 더 슬퍼하거나 더 괴로워하지 않을까요? 누군가,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못된 음모를 꾸미고 있으며, 그것을 당신이 안다면... 제일 먼저 소중한 이와 함께 어떻게 할지 상의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하다못해 교사분들에게도 도움을 구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나아가는 것... 그게 정말, 그 사람에게 좋은 걸까요? 그게 지키는 걸까요? 당신의 희생으로 무지에 가까운 순수를 간직한 채, 앞으로 나아가다 문득 뒤를 돌아보는 순간이 오면... 그가 정말로... 뿌듯해 할까요?"
나는 조금 고급진 룸카페에서 앉아 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요 근래 들어서 제일 긴장된다. 어쩌면 태어나서 가장 긴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검귀의 공격을 받아낼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런 평화로운 장소에서 왜 그러고 있냐고?
틀렸어! 이 곳은 조만간 치열한 결투의 승부장이 된다. 바로, 연인끼리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또 어쩌면, 꽁....냥거리기도 하는....승부장. .....긴장한 나머지 스스로의 내면에서 휘몰아치는 헛소리가 자중이 안된다.
간단 명료하게 설명해주자면, 나는 최근에 사귀기 시작한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기엔 나누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았기에, 이렇게 방을 빌리는 형태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몹시 떨린다. 왜냐면 그녀는 귀엽고, 나는 연애 경험이 없기 때문이야. 심지어 그녀에게 면목 없는 일을 하나 설명해야 된다는 핸디캡까지 안고 있다. 후후....
나는 힐끔, 포장되있는 박스를 한번 쳐다본다. 거기엔 커다랗고 귀여운 곰돌이 인형이 있다. 또 한번 힐끔, 내 방패 아래에 넣어둔 낡은 검을 본다. 거기엔 사연이 깊은 코스트가 하나 있다. 거기에 지훈이의 어드바이스를 살리기 위해서, 멋있는 정장차림에 머리도 손질하고 왔다. 이것이 오늘 그녀를 위해 준비한 나의 선물. 이걸로 할 수 있을까....!? 부디 기뻐해줬으면 좋겠다. 테이블 아래에 있는 다리는 벌벌 떨리고 있지만, 이건 불안이 아니라 기댐과 설렘이라고 애써 변명해본다.
하루는 화현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인정을 한다.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일종의 과보호일지도 모른다. 카사를 내버려두면, 순탄치는 않을지라도 혼자서라도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보호하려고 애쓸 수 밖에 없는 것은..
" 그치만 .. 이건 그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할 수 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고, 분명 그 아이에게도 언제까지고 숨길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을 때 알 수 있게 해주는 정도는 할 수 있겠죠. "
하루는 사랑이라는 이유를 꺼내들었다. 카사를 사랑하니까, 적어도 그 아이가 이것에 대처할 수 있게 준비가 된 순간까지는 자기가 어떻게든 해주고 싶었다. 자신이 어떻게 되든, 카사만 괜찮다면 얼마든지 감수할 생각이었다.
" 저도 이 일이 이렇게 좋지 못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바라지 않아요. 저도 에릭과는 오랫동안 친구였으니까, 그와 척을 지는 일을 하고 싶지도 않아요.. 될 수 있다면 그가 마음을 바꿔서 다시 이런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하길 바랄 정도로요. "
그치만 그가 지금 그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요? 오만인지 아니면 자기희생인지 모를 것으로 무장하고 악역이 되려하는 그 사람을 저 혼자서 바꿀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하루는 호소를 하듯 화현을 보며 말하다 이내 천천히 숨을 몰아쉽니다.
" ...다시 모두가 이런 방식을 쓰지 않고 영웅을 꿈꾸던 때로 돌아갔으면 해요. 전 적어도 카사 뿐만 아니라 에릭도, 화현군도, 다른 학생분들도 모두 영웅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
제가 바라는 건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 뿐이에요. 하루는 그렇게 말하며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이것이 자신의 마음이라는 듯.
나는 오랫만에 공원 벤치에 앉아서 메모장을 열심히 보는 중이었다. 전학 올 때 적어뒀던 계획표를 점검하는 것이다. 허선생 챌린지, 성공. 동아리 가입하기, 성공. 친구 사귀기, 성공. 게이트 의뢰, 성공. 응. 꽤 좋지 않은가? 흡족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본다. 얼마전만해도 여기서 체육복을 입고 뒹굴고 혼자 궁상거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왠지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좋아. 이대로만 가자!
"어라?"
그렇게 의기 양양하기 주먹을 쥐며 파이팅 하던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쪼그마한 키. 양갈래 머리. 귀여운 얼굴.....어디서 본 기억이 있다. 그렇지만 밝고 즐거워 보이는 얼굴이 위화감이 있어서, 나는 조금 더 어디서 보았는지 생각에 잠겨야 했다.
아.
떠올랐다. 스스로가 트라우마에 실려 기억속에 쳐박아버렸던 어린 시절, 나는 저 아이를 본적이 있다. 분명히...
사랑. 그 말에 살짝 웃었다. 낭만적인 단어를 듣고, 그 감정에 취해버려서? 아니. 오히려 그 단어가 이해되지 않아서. 누군가를 좋아한다. 라는 감정은 나에게 없는 것 같았으니까. 좋아해! 라는 말도 그저, 호불호의 호 정도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런 내가 사랑이란 말을 들었으니... 그렇기에, 그녀에게 먼저 말했다. 모진 말이라 들어달라고. 상처입히는 말이니, 무시해 달라고.
"저는 사랑을 제대로 알지 못해요. 부모님께 사랑 받지 않았어? 라고 물어본다면... 모성애와 부성애는 받았을지언정, 사람으로써의 사랑은.. 받았을까? 하면서 갸웃거려져요. 그러니까, 당신이 말하는 그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그 사람을 사랑하기에, 그 사람을 위해 고통을 감내한다. 그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을 때, 그 사실을 공개한다? 그동안 당신 스스로가 받을 상처는? 지금도 이렇게 괴로워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한다고요?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라는 것은... 어떻게 아나요? 알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때까지 당신이 받는 상처는요? 남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사랑이라 말하는 것이라면.. 저는 사랑을 하지 않을래요. 스스로를 희생하면서까지 사랑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그 사실을 받아들인 상대가 자신은 지금까지 당신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고통받을 동안에 나는 그저 당신의 품 안에서 살았을 뿐이었다. 라며, 더 큰 상처를 입는다면 어떡해요?"
그건... 사랑이 아니라... 과보호. 아니면, 집착. "그건, 집착에 가까워 보이네요." ...오늘따라 막 나가는 구나.. 나..
"바라는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그에 걸맞는 노력을 해주세요. 가령, 카사 라는 분과 대화를 나누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논을 하고, 서로의 감정을 이야기 하고. 또,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에릭이라는 분과 대화를 나누어 설득을 하면 되겠지요. 만약, 그 사람이 대화도 설득도 안되는 상황이라면... 다른 방법을 제시하면 돼요. 영웅을 실현시키는 것에는 악당이 필요 없어요. 가디언 아카데미가 왜 있겠어요? 저마다 훌륭한 가디언을 만들어내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잖아요. 즉, 교육. 교육을 통해 영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 돼요."
내용물은 없지만, 물방울만 또르르륵 굴러 떨어질 뿐인 컵을 쥐었다.
"아무튼, 힘내시라는 의미도 담아서. 그림을 그려드릴게요. 어떤 게 좋나요? 화제전환 화제전환."
"흥. 진-짜 나빴어요." 예전에 진짜 잘못했으면 입술박치기 사고가 날 뻔하고. 같은 말을 투정하듯 말하는데. 생각보다는 덤덤하네요. 그 때 쫓겨났던 수제버거집은 아직도 못 갑니다.. 최소 두 달은 지나야 갈 수 있...는 건 다림은 계속 못 갈지도. 그놈의 머리카락. 너무 눈에 띄잖아.
"아뇨.." 모르겠네요. 라고 말하는 다림은 눈을 내리깔곤 기분이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가볍게도 좋다고 생각하자. 라고 속으로 되뇌는군요.
"그냥.. 고양이에게 편안하게 있는 게 어색한 느낌이네요" 고양이의 배를 쓰다듬으며 냐아거리는 걸 봅니다. 고양이가 어떻게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그 기분하고는.
" 그러네요... 제가 품고 있는 감정은 집착이나 다름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걸요.. 제가 살면서 처음 시작한 사랑이니까..."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것을 잃고 싶지 않고, 그저 행복하게만 해주고 싶다. 그 아이가 자신이 고통받는 것을 알아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만 행복했으면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 아이만은 덧없이 화사하게 미소를 지으며 살아가길 바란다. 분명 그것은 잘못된 마음은 아닐 것은 분명했다.
" 하지만... 고쳐야 한다는 화현군의 말 역시 맞다고 생각해요. 분명 옳은 사랑은 아니니까 고쳐나가야 하는 것이 맞을거에요. "
사랑을 처음 하는 만큼, 실수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화현의 말대로라면, 자신의 사랑이 옳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일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라고 모두 정답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그동안 살아온 것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으니까.
" 저도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게 화현군의 말대로 노력할게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노력하는게 맞으니까요." " 좋은 말씀 감사드려요.. 좀 더 저 자신을 내려놓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요. " " 처음 뵙는 분에게 이렇게까지 도움을 받게 될 줄 몰랐는데... 조금은 일깨워주셔서 감사해요. "
하루는 한순간에 자신이 화현의 말처럼 바뀔 수 있을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보는 시야가 넓어진다면 좀 더 나은 선택지를 고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품을 수는 있었다. 그렇기에 하루는 화현의 말을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받아들였다. 자신을 향한 호의에, 허투루 대할 생각은 예전이고 지금이고 없었으니까.
" 그림 말씀이신가요...? ...사실 여기서 뭔가를 더 받아도 되는건가 싶지만... 혹시 제가 이 아이와 무릎베개를 하고 들판에 앉아있는 그림 같은걸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 그 아이를 데리고 마냥 그렇게 느긋하게 있긴 힘들 것 같지만.. 보고 싶어서요.. "
하루는 조금 망설이는 듯 하더니 수줍은 소녀처럼 몸을 일으켜선 따로 사진을 뽑아둔 카사의 사진 한장을 들고와서 어떨지 모르겠다는 듯 화현을 바라봅니다.
"처음 하는 사랑이기에, 상대방과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고, 더 많은 존중이 필요해요. 더군다나.. 언제 하루 아침에 사랑을 잃을지 몰라요. 그러니까, 너무나 먼 미래는 상상하지 마세요. 하루 하루를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즐기며 나누세요. 고통은 인내해봐야 병만 얻지, 나아지지도 않고, 더 심해질 뿐이니까요."
옳은 사랑이란 뭘까? 일단, 난 모른다. 틀린 사랑은? 난 모른다. 사랑은 저마다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다른 색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색과 모양과 크기. 그것들을 한데 아우러서 사랑이라 부른다. 우리들 가슴 속에 있는 사랑의 크기와 맞는 사랑을 만난다면, 행복해지겠지만... 아니라면? 그러니까, 나는... 서로가 가진 사랑의 크기를 대화를 통해 알아가며, 각자 다르더라도 천천히 맞춰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흠... 좋아요. 그 정도는 그려줄 수 있어요. 어디보자... 더 좋은 디테일을 위해 그 사람을 향한 감정은 어떤지 말씀해주시겠어요? 또, 어떤 추억을 담고 싶은지. 만약, 그림에 감정을 담는다면... 당신께서 말씀하신 그림엔 어떤 감정이 담겨져 있을지 같은 것도요."
" 좋은 말씀이네요... 화현군의 조언, 충분히 담아두고 고민해서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볼게요. "
하루는 화현의 말에 공손히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자신에게 이렇게 조언을 해주는 사람의 말을 무시할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 하나하나 귀담아 들어서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있게 노력할 생각이었다. 조금은 또렷해진 눈으로 화현을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그 의지의 발현일지도 몰랐다. 그녀 역시 조금 흔들리긴 했지만, 한명의 가디언 후보생이었으니까.
" 저는 카사를...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게 생각해요. 원래 저는 그저 신을 모시면서 살아갈 생각이었어요. 고아인 제게 삶을 살아갈 기회를 준 건 신의 뜻이라 생각하고, 그에 대한 감사를 표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 " 그런데 어느날 그 아이가 제 앞에 나타났고, 그 아이를 돌보면서 제가 그 아이에게 품고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아, 나는 이 아이 곁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정말로 행복할 것 같다는 깨달음 말이에요. " " 그래서 그냥 곁에 머무는 걸로 만족하려 했어요, 그거면 족하다, 그거면 충분하다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사람 마음이 그렇게 쉽게 조절되는게 아니더라구요. 어느샌가 저는 좀 더, 좀 더 많이 그아이를 원하게 되었고, 결국 제 마음을 그 아이에게 전했어요. 기특하게도 그 아이, 자기가 좀 더 강해진다면 그때는 제게 청혼을 한다고 해주더라구요. 가슴이 벅찼어요, 저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었구나 하고... "
하루는 잠시 숨을 고르듯 입을 다물곤 먼곳을 바라본다. 분명 카사를 생각하는 것이겠지.
" 제 비루한 삶에서 처음으로 제게 손을 내밀어준 아이에요. 그 아이를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그걸 위해서라면 그 아이에게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마음.. 제가 그 아이에게 그런 마음을 품고 있어요. 분명 들판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그 아이가 충분히 잘 수 있게 다리를 내어줘야 한다면, 저는 그아이를 보듬어주기 위해 얼마든지 제 다리를 내어줄거에요. 얼마든지.. "
하루는 눈을 감고 들판에서 무릎베개를 해주는 자신을 상상하듯 천천히 말을 꺼내놓습니다.
"... 맨 처음 그아이를 만났을 때도 무릎베개를 해줬었거든요. ..아직도 생생해요, 그때가. "
가만 이야기를 들었다. 신을 모시며 살아갈 생각이라는 것에 과연 성학교. 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광신적인 면모가 없잖아 있는 것 같았지만... 신경은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으면서... 면서... 서... 뭔가 찝찝함이 느껴졌다. 이건... 그러니까... 아. 대상이.. 바뀌었구나. 같은 그런 느낌.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신이라는 존재에게 헌신하며 살겠다. 모시며 살겠다. 라는 생각으로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집착했다. 좋게 말하면, 그 존재에게 헌신했다. 그게 삶의 이유였으니까...
그리고 다른 이유가 생겼다. 카사 씨가 생겼다.. 그 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어줬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그래서... 이 사람은 그 사람에게... 헌신하기로 했구나. 끄응!!! 머리가 조금 아파졌다. 이런 감정은 또 처음이란 말이지... 이걸 그림으로 표현해? 그리고 당사자의 리퀘스트가 있어? 으음...
"그렇군요... 알겠어요.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그려서.. 드릴게요."
사랑, 헌신, 믿음, 광신... 이 모든 것들이... 꽤나 얇은 종이 한 장의 경계를 오가는구나...
"도발하기는 했지만. 도발을 받아들이신 건 지훈 군이잖아요?" 사실 다림주는 그 도발을 그렇게 크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고 합니다.. 그냥 안 받아줄 줄 알았어..
"갑작스러운 말이지만. 그림자가 달라붙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언제나 밝은 것 아래에는 그림자가 있는 법이라지만. 과할 정도로 진한 그림자가 있는 기분입니다.
"저한테 그림자가 없어 보인다는 사람은 많지만. 그 대신 보이지 않는 그림자인 걸까요.." 뭐 상관없지요? 라고 키득키득 웃으면서 냥글냥글도 적당해졌고요.. 라는 말을 하고는 조금 있다가 들어가야겠네요. 라고 말합니다. 아마. 그림자가 없어 보이는 것은 외양인 걸까요? 하긴.. 순백과 흰 피부와 머리카락도 어둑한 색이 없으니까..
"사실 고양이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상관없어요" 그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면 제 능력 밖이잖아요? 라고 웃습니다.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 생존 본능, 살고 싶다는 욕구, 공포! 그것들을 이겨내지 못해도 좋아. 이겨내도 좋아. 그런 것을 거스르면서 타인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강렬함... 그야말로 순간 반짝이다 사라지는 별과 같음. 그거예요.
그리고, 화현이는 그런 영웅을 만들어 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를 고민했다구... 결론은 난 이기적인 사람이야!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하겠어. 구현 이라는 의념을 통해서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을 구현해내 볼 것이고, 원하는 것을 구현하여 쟁취하겠어. 라는 타입으로 발전했어요.
릴리의 지식 내에 릴리 주변에 연금술을 업으로 삼은 사람은 없다. 학원도 전체를 뒤져 보면 몇 명 나올지도 모르겠으나, 뒤져 봐야 나온다는 시점에서 이미 많다는 뜻은 아니다.
“좀 특이하지. 나는 전투 중에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를 만들어……. 그걸로 서포터를 해 먹고 있고. 혹시 인력 필요하면 연락하셔. 아, 그러고 보니 당신은 포지션 어디야?”
고풍스러운 고딕 드레스와 우아한 정장 케이프 차림인 두 사람이지만, 어째서인지 그런 행색으로도 떡볶이를 먹으러 가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인포멀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릴리는 저 나름대로 배가 고프기 때문에 서둘러 걷는다.
처음 들어서는 분식뷔페의 풍경. 상상하던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소 생경한 풍경에 릴리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냄비를 바라본다. 『마음껏 먹을 수 있다』라면 보통 분식집에 비해 훨씬 저렴한 듯한 조건. 그러나 입장료로 보통 분식집에서 쓰는 돈의 서너 배를 낸다는 걸 생각하면 있을 법하다.
“종류별로 조금씩! 맛있는 걸 찾으면 그것만 왕창 먹을 거야. 나는, voyons…”
등 뒤쪽의 진열대로 시선이 흘끔 향한다. 튀김이 황색의 불빛을 받으며 가지런히 놓여 있다. 꿀꺽 하고 침을 삼킨다. 따지고 보면 식용유는 왕수와 닮았다. 재료에 흰 튀김옷을 입혀서 끓는 금색의 액체가 적갈색이 될 때까지 넣었다 꺼내면 이내 튀김은 선명한 황금빛이 되어 나오지…….
가는 길에 포지션을 물었다면 청천은 "어? 저도 서포터인데!"라고 했을 것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마 먹으면서 하게 되지 않을까요.
청천이 냄비에 양배추를 담는데 잠깐 한 눈이 팔린 사이에...릴리는 종류별로 조금씩!이라는 말과 있다가 테이블에서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튀김들이 있는 쪽으로 향하고 있네요.
"아, 그럼 릴리 씨는 튀김 가져오실 거에요? 어어? 떡볶이 재료랑 소스 안 고르시면 제 마음대로 고릅니다?!"
떡볶이 재료를 고르러 왔더니 고르라는 떡볶이 재료는 안 고르고 이미 뒤쪽으로 향하고 있는, 릴리에게 외쳐보지만...아무래도 릴리는 이미 튀김에 눈이 돌아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종류별로 조금씩...이랬지만 그러기에는 재료들의 종류가 너무 많으므로, 청천은 나름대로 정석적인 조합 중심으로 냄비를 채워봅니다. 바닥에는 양배추, 그 위에 밀떡 반, 쌀떡 반, 조랭이떡 조금, 어묵이랑 파랑...당근이랑 라면사리도 넣을까요. 으음, 이번에는 크림 소스를 먹을까 했는데 튀김도 같이 먹을거면...역시 이번에도 정석대로 가야겠지요? 고추장 소스 베이스에, 카레 소스도 조금이네요. 릴리가 어머님의 그라탕을 언급한 것이 생각나서, 모짜렐라 치즈도 챙겨갑니다. 이번에는 자제에 성공해서 저번보단 냄비가 덜 채워졌습니다. 그래도 조금 무겁습니다...
"영차."
청천은 결국 의념을 몸에 둘러 체력을 강화해, 냄비를 들고 와서 자리를 잡습니다. 종류별로 두 개씩 담는다면...그리고 중간에 아마 릴리가 많이 고민하지 않는다면, 둘은 아마 비슷한 시각에 테이블에 도착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