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시원스럽게 인정하네. 놀라는 한편, 왠지 그럴 것 같았다. 별로 본인이 악행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없는 태도. 그러나 그게 단순히 뻔뻔해서 그런걸까? 나는 여기까지 와서도 그에게선 무언가...악의를 느끼지 못했다.
"가게가 더러워질만한 일을 할 생각은 없으니 안심하세요."
나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면서 근처에 있던 의자를 하나 끌어와, 그의 맞은 편에 앉곤 조신하게 앉았다. 다림씨에게도 말했지만 난 '너 왜그랬어!! 이 나쁜 녀석!! 당장 취소해!!!'라고 드잡이질을 하러 온게 아니다. 내가 느끼고 있던 위화감은, 그와 만나 얘기를 나눌 수록 강해지고 있었다. 따라서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보고, 나는 내 목적을 말하는 것이다.
침묵. 그저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 해가 저무는 소리. 새가 울고, 날아오르고, 벌레가 울 뿐인 소리. 그런 소리가 이어졌다. 먼저 해가 저무는 소리가 멈추고, 새의 날갯짓이, 그 다음은 벌레 우는 소리가 침묵했다. 쏟아지는 소리에 다른 것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그와 나는 참으로 이상한 부분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젠 있었던 사실만 남아버렸다. 이전부터 고민해오던 것이 있었으며, 그 고민이 해결된 것도 큰 사건을 겪은 뒤였다는 것.
카사 씨를 대상으로 삼아 그녀를 영웅으로 만들 속셈인가. 그녀의 의견은 들어봤을까? ... 하,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다른 사람의 의견도 듣지 않고 멋대로 의념기의 대상으로 삼아 영웅으로 표현하던 내가 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녀의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 가다듬기만 하면 윤곽이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이미 세상에 우리보다 재능이 뛰어난, 씨앗부터가 다른 자들이 즐비해있다.
머릿속으로는 온갖 생각이 다 떠올라 그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나는 잠자코 들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날 때 즈음... 입을 열었다.
"동의해요."
먼저 동의. 너무 먼 미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영웅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한 동의다. 당장 러시아로 고개를 돌려봐라. 러시아는 그저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수복이라는 것이 먼 꿈이지 않는가. 하지만, 그 뒤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학생이다. 학생이 다른 한 명을 지목하여 누군가를 위한 무대를 만들 정도로 여유있는 존재인가? 학업에 열중하며 스스로를 단련시키고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단계에서? 심지어 우리에게 영웅을 만들만한 재능이 있는가? 지금의 우리는 예전보다 강해졌다고 한들, 그저 학생에 불과하다. 누군가 보면 소꿉장난에 불과할 이 모습이... 참...
"잠깐, 제 이야기를 하자면... 저도... 여러 고민을 했었어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어나간다.
"저는 말이죠... 제가 영웅을 보고자 하는 것은 말이죠... 떠오르는 태양에 지지 않을 정도로 빛을 발한 뒤, 태양빛에 가려져 존재하지 않게 된 그 별을 영웅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생존 본능.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지 못해도 좋아. 생존 본능을 거슬러 누군가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여 살고 싶다는 욕망마저도 꾸욱 집어 삼킨 채 눈물을 흘리며 최후를 맞이하는 그런... '영웅'이 저는 보고 싶었어요. 의미 없는 희생을 한 자가 아니라... 의미 있는 희생을 선택한 자를."
"그런 영웅을 저는 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볼 수 없었죠. 저 같은 소시민이 그런 영웅을 본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아마, 초대형 게이트에 휘말려서 부상하나 안 입고 살아남는 정도의 확률이겠죠. 그래서, 저는... 영웅을 그리기로 결심했어요. 의념도 거기에 반응했을지도 몰라요. 어쩌면, 제가 처음으로 본 그 영웅 덕분에 의념이 각성하게 된 걸지도 몰라요. 볼 수 없다면, 그려서라도 봐라. 같은 심정으로... 그래서 제 의념기도 영웅을 그리는 게 됐죠."
"하지만, 영웅을 그린다. 만든다. 라는 것은 꽤 잔인한 일이에요. 제가 보고 싶어하는 영웅은 결국 희생이 필요하니까. 누군가에게 영웅이라는 형상을 덧씌워 그를 절벽으로 밀어버릴 수 있는가? 라는 것으로 저는 엄청 고민했어요. 그 사람이 과연 이런 영웅을 바랐을까? 내가 생각하는 영웅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이 잘한 것인가? 난 내 욕망을 위해 움직이는 이기주의자가 아닌가? 하면서... ...그런데, 그런 고민도 해결이 되더라구요. 저 자신은 이기주의자가 맞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위해 움직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했으니까요. 인정하고 나니까.. 속 편하더라구요. 내 행동에 브레이크가 없어진 기분이었어요."
자기가 말해놓고 어이가 없는지 살짝 웃었다.
"걸림돌이 사라졌으니, 행동은 좀 거 거침없이 변했고.. 약간의 후회가 있을 지언정 즐거웠어요. 그런 행동을 하는 게. 드디어 나의 색을 찾았다. 같은 느낌이라... 그래서 그런 그림을 그릴 수도 있었구요. ...그거 아세요? 그 그림에 그런 감정을 담는 것은, 제가 당신의 추억을 만들어 언제든 회상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당신은 어때요? 그런 행동이 즐겁나요? 누군가를 영웅으로 만드는 행동에 망설임이 없다고 할 수 있어요?"
"...만약, 후회하지 않는다. 망설임은 없다. 카사 씨께서 영웅이 되어준다면, 나는 그걸로 기쁘다. 라고 한다면! ...뭐, 제가 도와들릴게요."
“말했지, 나는 편식은 안 한다구. 분식이든 초식이든 맛만 있으면 되는 거야. 나한테는 mam…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시는 그라탕이야말로 절대적인 진리고, 그 아래에 맛있는 음식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거지.”
미식의 요건 그 첫 번째, 절대적인 진리를 애먼 곳에서 찾아 헤매지 말 것. 마망표 그라탕과 전혀 딴판인 중국의 행인두부 같은 디저트라도 충분히 맛있을 수 있다. 그라탕과 맛이 닮지 않았다고 해서 화낼 일이 아니다. 따라서 식도락의 중점은 깊이가 아닌 넓이인 것이다.
“요컨대 ‘셀프 바’라는 것이군. 가마솥 앞에서 지지고 볶고 하는 게 내 평소 일과니까 익숙해.”
아무래도 이국적인 자기 모습에 도리어 입맛을 걱정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릴리는 생각한다. 가벼운 목소리로 자기 식성을 이야기해 주며 돌아선다.
“나는 어릴 적에 프랑스에서 신 한국으로 이주해서, 어느 나라 입맛이냐면 이도저도 아니야. 외식 하면 파인 다이닝보다도 중국집이랑 뿌링클이 생각나지만, 비 오는 날에 집에서는 파전 말고 타르트 플람베(* 알자스 지방의 씬크러스트 피자 같은 전통 요리)를 먹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매운 것도 어느 정도는 먹을 줄 알고.”
어디까지나 ‘어느 정도’라는 단서를 붙여 놓았다는 것에 스스로 안도한다.
“…… 가 볼까.”
옆머리를 우아하게 사락 튕기며 지도가 나타내는 쪽으로 앞장서 걸어가는 릴리의 모습은 위엄이 전혀 없다.
후후, 웃으면서 옆에서 긴장하면서 보고 있는 너구리씨에게 나도 커피 한잔 받을 수 있겠냐고 물어본다. 솔직히 정말로 그다지 싸울 생각은 없다. 괜한 긴장감을 조성해서, 귀여운 너구리를 위협하는건 불쌍하다. 그러니 나는 어디까지나 부드러운 태도로 얘기하는 것이다.
"전혀 충분하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앉은 자세에서 다리를 꼰 체로 무릎에 손을 올려 턱을 받쳤다. 그의 몸을 본다. 그의 손을 본다. 나는 '막아내는 사람' 즉, 상대의 공격을 봐오고, 판단하는 사람. 거기에 방금 그의 말에는 그걸 증명하는 힌트가 있었다. 나는 그를 마주보곤 침묵하다가 묻는다.
"워리어라고 하셨죠? 확실히 몸을 보면 알 것 같아요. 나도 워리어니까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단련하고 있는 근육, 내게 살짝 경계심을 품었을 때의 반응. 확실히 워리어다.
"그런데 메스가 워리어란 포지션에 어울리는 무기인지는 의아하네요. 특히나, 점장님의 손에 굳은 살을 보면 더더욱이요."
나는 그의 손을 가볍게 가리켰다. 거기엔 분명, 노력의 흔적이 있었다. 무기를 쥐고 필사적으로 휘둘러온 흔적들이. 그는 결코 천재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나도 결코 천재가 아니었다. 울부짖으면서 무기를 쥐고 훈련한 사람끼리는, 알아볼 수 있는 법이다.
"그럼 제 생각이 맞다면, 점장님은 서로 점잖게 앉은 자세에서 자신을 열받게한 서포터를 자신의 무기도 아닌 메스를 이용해, 전신을 베어가른 것도 아니고 팔의 안쪽 부분을 그어냈어요. 허리를 들지 않았으니까, 팔을 길~게 뻗었어야 겠네요. 좀 웃긴 자세였겠죠?"
나는 내가 생각한 위화감을 그에게 얘기했다. 하루는 믿고 있다. 그녀와 카사는 지켜주고 싶다. 그러나 제대로 지키기 위해선, 나 같은 모자란 녀석은, 이런 위화감을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드디어 허리를 숙여 점장에게 얼굴을 가까이 한다.
[오렐리 양의 천재성으론 누구인지 알겠지만...] 으로 시작되는데. 우연과 운명으로 인한 행운의 작용으로 정말 모르게 되어버리고 말지도 내용은 대충 if로 친다면 오렐리의 고향에 들렀는데. 인형을 사러 들렀다는 그런 내용일지도. 그게 디재스터(다림주가 생각해본 if)라면 곤란해지려나.
>>426 #자캐가_멘션캐에게_익명으로_편지를_쓴다면
[청첩장은 잘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갈 수 없겠군요. 하지만..] 으로 시작하는데.. 내용은 대충.. 청첩장을 받아버려서 가고는 싶지만 갈 수 없다는 그런 내용. 아쉽다는 말을 하는데. 축의금은 동봉한다고 한 다음. 다음번에는 꼭 참석할 수 있기흫 바란다고 하면 어떤 일로 인해 결혼식이 파토남.. 그리고 다음번에는 참여하려ㅏ..
" 응, 난 무슨 수를 사용해서라도 재능있는 소수를 영웅으로 만들거다, 누군가 그게 죄라고 손가락질하면 그냥 감수 해야지. 어쩌겠어. "
러시아의 상황이 남 일이 아니다. 어쩌면 당장 내일 일어날지도 모른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게이트가 나타나고 있고,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영웅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어쩔 수 없다. 다수의 기대와 압박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영웅이라 불리는 자의 업이니까.
" 네 이야기 재밌었어. 그렇구나, 그래서.... 하아. "
이런 이야기를 들은 것은 처음이라 상당히 놀랐다. 근육이나 헛소리만 하는 녀석인 줄 알았더니... 적어도 이 녀석이 내 편이라면. 할만 하다. 단편적으로 보는게 아니라 길게 볼 수 있다. 이 녀석이 붙으면 이길 수 있으니까.
" 그렇다면 도와줘, 네 힘이 필요해. 사실 능력과 재능이 있는데 의무를 지기 싫어하는 기만자를 하나 알고 있었는데, 그 녀석이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궁금했었거든. 그런데..이렇게 불러주기도 하고, 생각을 말해주니... 편해졌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