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사람으로 가득 차 활기가 넘치던 공원. 지금은 조금 늦은 시간이라 오가는 이가 적으며, 날아드는 새나 부스럭 거리는 소동물의 움직임만이 정적을 깨주는 유일한 소음이었다. 가디언넷을 툭툭 두들기고 그 사람에게 연락을 한지 얼마나 지났는지 확인따위를 하며 벤치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들려오는 여러 소리들. 대부분 헛소리에 불과하거나 관심 없는 소리였지만, 유독 한가지는 마음에 걸렸다. 으음, 가디언넷에 올라온 어느 사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소리의 근원이 되는 사람이 공연이라도 하는 것인지 꽤 인상이 찌푸려졌다. 소음 때문에...
"하아..."
신한국엔 이런 말이 있었지.. 한숨 쉬면 복 날아간다. 진짠가? 진짜 내가 한숨을 많이 쉬어서 난 이 지경이 된 걸까... 으음... 됐어. 가볍게 기지개를 켜고는 다시 그 사람에게 문자를 보낸다.
[@@공원에 진입하여 제가 남겨둔 표식(빵조각)을 따라 걸으면 제가 있는 곳이 나올 테니까 빨리 와요.]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당장 돈이 급해서 온 건 아니었으니까, 어느정돈 괜찮다. 에릭은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서 점원복 하나를 내오곤 다시 기타를 집었다. 기타...그렇게 좋아하는건가. 뭔가 인간미가 느껴지네.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점원복을 받은 나는,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오자마자 하는 소리가 장부조작과 의념발화예요? 연약한 서포터에게 못하는 짓이 없어요... 조작 같은 거 한 적 없고, 그것은 춘덕이의 간식 장부라고요."
물론, 조작했어도 들키지 않게 했겠지만. 아무튼, 그가 건네주는 캔커피를 받아 가방에 넣었다. 지금 당장 마시기엔 목도 별로 안 마르고.. 커피는 내가 마시고 싶을 때 마시는 성격이라. 텐션이 낮다는 말에 "제가 묘한 소리를 들어서 말이죠." 라고 대꾸 해주다가 고개를 돌려 그의 눈을 마주보고는
"요즘 수상한 짓을 꾸미고 있다고 해서, 답을 듣기 위해 연락했어요."
이런 건 직설적으로!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유를 듣고 싶어서 말이죠... 원래라면 흥미 없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겠지만... 알잖아요? 저희 은근 가까운 거."
청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릴리의 말을 듣습니다. 여자 이름...이라는 건 눈치 못 챈 것 같네요....역시 때로는 아는 게 병이요 모르는 게 약입니다. (?)
"아, 오시기 전에는 집밥을 드셨다고요...? 집밥의 퀄리티가 높았나 보네요."
이리저리 화면을 돌리고, 지도에 뜬 음식점들을 살피면서...가디언칩 화면을 옆에서 같이 보는 릴리에게 말합니다.
"국물요리, 좋네요. 너무 매운 것만 아니라면 좋겠어요."
다소곳이 말하는 릴리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하긴 3월이고 봄이니까. 건조하긴 하네요... 체면 때문이라기보다는, 목이 아파서 그런가?라고 생각한 듯 합니다. 화면이 한 점에서 잠시 멈췄습니다만...
"...이런 곳은 안 좋아하시겠죠?"
그렇게 말하면서 잠깐 릴리의 눈치를 봅니다. 태양왕 게이트 이전에, 다림이랑 갔던 분식뷔페점이네요. 뜬금없이 국물떡볶이가 먹고 싶어졌지만, 국물떡볶이는 국물을 먹는 게 아니잖아, 기각!이라고 청천은 스스로에게 반박합니다. 그리고 화면을 곧 다른 곳으로 넘기려 합니다...
그거..봐버린건가 하긴 직장에서 상해 사건이 일어났어요 하는 사진이 돌아다닌다면 놀라겠지. 그걸 뭐라고 설명해야하나, 아니..설명할 필욘 없겠지. 지금 듣고싶어하는건 아무래도.......
" 그래...? 너랑 비슷해, 조금 다른건 너는 네 개인적인 의사로 영웅을 보고싶은거고, 나는 대의를 위해서 영웅을 만들어내고 싶은거야 "
어느날 갑자기 태양왕 보다 더 큰 게이트가 튀어나올지도 모르니까 ...
" 13영웅이라는 존재를 두고있다고 안일하게 살아간다면 인간은 죽어나갈거야, 그러니..그들을 뛰어넘을만한 재능을 지닌 녀석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이야 말로 대의를 위한 것 이지... 너도 알고있잖아? 러시아의 일과, 마도일본의 사례..그리고 태양왕 까지. 영웅이 없으면, 다른 이들은 죽어나갈 뿐이야 "
또 복 날아가는 스택 +1. 즉, 한숨 나왔다... 하지만, 그의 의도를 들을 수 있었으니... 나름대로의 만족. 대의를 위해 영웅을 만들어낸다고? ...뭐야, 자기가 히어로 메이커 같은 거란 말이야? 어째 생각하니까 어이가 없어져 웃음이 나왔다. 실소에 가까운 웃음이.
"맞아요... 저랑은 다르죠... 저는 어디까지나 영웅이 반짝 빛났다 저무는 그걸 보고 싶은 거니까요... 영웅을 만드는 거랑은 다르죠. 대의를 위해 그러는 것도 아니고..."
음.. 얼레? 이거 어디서 봤지 않았나? 붉은 곰을 기리며 어느 기자가 작성한 기사...가 생각나는데 말이지. 지금은 사라져버린 옛 영웅이 아니라, 새로이 떠오르는 영웅을 원한다. 였던가.. 결론이.. 후우...
"맞는 말이에요. 13영웅과 수 많은 준영웅이 있다고 한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안전한 건 아니며, 지금도 누군가는 고통받고, 누군가는 나름대로 안락한 삶을 사는 생활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일상을 보내다가도 어느 순간 짠! 하고 나타난 게이트에 의해 한 순간에 파괴되는 일상... 새로운 영웅의 출현은 모두가 원하는 것이 될 수 밖에 없겠죠... 하지만, 너무 미래를 생각하고 계신 거 아니예요? 그걸? 굳이? 지금? 당신이?"
"분명 이걸 말씀드렸을 텐데요. 저는 신 한국의 백작이자, 3명의 건 마스터 중 한 명인 문 시현의 아들이라고. 그런 제가 치즈 케이크랑 딸기 스무디값이 아까워서 그런 일을 할까요? 서로에게 이득이 된다면 그것이 좋은 제안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당신의 제안은 저에게 이득이 될 것이 하나도 없어요."
념념…. 그렇게 딱 잘라 말하고선, 그는 마치 상대보고 약오르라는 듯 느긋하게 딸기 케이크를 먹었다. 잠시의 침묵.
"당신의 계획이 싫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단지 그걸 제가 하기엔 몇 개의 문제가 있다는 거죠. 하나, 저와 당신의 사상은 큰 줄기가 일치하지만, 단순히 사상의 일치로 그런 일을 맡기엔 보수가 너무 적다. 둘, 저는 스파이같은 일은 전문이 아니에요. 기획안을 짜는 게 전문인 사람에게 메이크업 스텝을 맡길 수는 없지 않나요? 셋, 큰 대의를 가지고 새로운 영웅의 탄생이란 무대를 계획하고 있는 것은 좋으나, 그러기엔 당신은 너무 어설퍼."
"이런 무대를 계획하면서, 단 한 번이라도 영웅의 삶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수집한 적이 있나요? 만일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적어도 10명의 영웅이, 각자 어떤 시기에 어떤 고난을 겪었고, 그 고난을 동료와 어떻게 헤쳐나갔는지, 그리고 반대로 10명의 쓰러져간 영웅이 어떻게 고난 앞에 무릎을 꿇었는지, 단 하나도 틀리지 않고 상세하게 말할 수 있나요?
자료 조사와 인풋은 창작의 첫 시작이죠. 잔인하게도, 이 두 가지가 없으면 지금의 소비자에게, 그 안에 담긴 신념과 대의를 전하기도 전에 작품은 외면당하고 버려지고 말아요…. 13영웅을 뛰어넘을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다루는 무대가, 그래서는 안 되는 법이잖아요?"
"…아무튼, 이쪽에서 제안을 다시 하죠. 신 은후는 에릭 하르트만의 동업자로서,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자신의 방식대로 당신의 무대를 도운다. 제 방식대로 하는 거이기에 보수는 필요 없어요."
딱히 프랑스어로 말하려던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뭔가 사진이 본래 알던 뷔페의 느낌하고는 많이 다르다. 뷔페라고 하면 적당한 저품질의 식재료로 대량생산한 음식들이 반쯤 식은 채로 한가득 쌓여 있는 일종의 요리 공동주택이다.
“저기, 클로디. 저거 분식, 뷔페라고 쓰여 있는 거 맞아……?”
분식과 뷔페라니. 신 한국에서 제법 오래 산 릴리니까 당연히 분식점이 무엇인지는 안다. 그리고 먼 옛날, 신 한국이 두 개의 나라로 나뉘었을 때, 남쪽 한국의 어느 지도자가 경제 발전을 위해 분식을 장려했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분식 뷔페라는 건 처음 듣는 말이거늘…….
‘생각해 보니 그렇게 생뚱맞은 조합도 아닌가? 고기 뷔페, 해물 뷔페, 바베큐 뷔페…… 분식이라고 없으라는 법도 없으니.’
릴리는 어감이 어떤 느낌이 드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직접 그 말을 외쳐 본다.
“분식뷔페! 분식뷔페!”
으으음. 뭔가 『바다사자』나 『산갈치』 같은 단어라고 받아들여도 되는 정도의 단어 조합인가.
“분식뷔페, 가 보자! 요리가 그 정도로 많으면 그 중 하나는 마음에 들겠지. 게다가 원래 분식은 재료의 질 따위 신경도 안 쓰니까. 좋은 생각 같지 않아?”
너무 먼 미래를 보고 있지 않느냐는 화현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손 발을 너무 오래 맞춘건가? 너는 내가 이 일을 그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건가. 괜히 캔커피를 만지작 거리며 고민하다가 말을 이어갔다.
" 다들 태연한척 하지만, 몇 주 전만 해도, 우린 전쟁터를 돌아다녔어, 태양왕 게이트에 수 많은 학생들이 죽었지. 그게 너와 내 친구들일지도 모르는 애들이었고, 정말 터무니 없이 많이 죽었어, 현실을 자각하기도 충분한 시간이었지. 사실 일전부터 그런 생각은 하고 있었어. 그저 막연하게 하고 있었지, 그리고 태양왕이 트리거가 되어서 실행에 옮기기로 작정한거고. "
" 이전의 나는 나 자신에게 자신이 없었어, 정말로 내가 이런걸 해도 되나? 싶은 그런 생각만 해왔지. 하지만 화현아..지금의 나는 해도 될 것 같아. "
" 내가 카사를 대상으로 삼은건 간단해, 그 아이가 1학년 중에선 재능으로 압도적이니까야. 조금만 가다듬으면 윤곽이 뚜렷하게 잡힐 것 같지 않아? 너도 봤잖아..그 의뢰에서. "
함께 프랑켄 슈타인에 갔을 때, 너도 분명 확인했다. 카사의 재능을...우리가 그저 멍하니 함정을 보며 손가락만 빨고 있을 때, 직접 함정을 돌파하는 맹수의 모습을..
" 너무 먼 미래가 아니야, 오히려 늦은거야.. 붉은곰이 실종되고 러시아의 꼴을 봐. 아버지가 죽어버린 자식들은 뭐 하고 있으려나. "
고개를 끄덕인 나는 탈의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확실히 심플한 느낌. 그래서 그런가 거울로 돌아보면, 어쩐지 얼마전 정장 입었을 때가 떠오르네. 춘심이에게도 보여주면 좋아하려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머리도 한번 더 정돈하고 나왔다.
"이 정도면 될까요?"
얼굴만 빼꼼 내밀었다가, 조심스럽게 나오면서 묻는다. 내가 보기엔 어색하진 않은 것 같은데. 점장 입장에서 '안어울려!' 하고 탈락시키면 얘기도 뭣도 없다.... 그런 흐름으로 이어지기전에 빠르게 대화를 이어가자. 질문해도 된다고 했었지.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일단은 조심스럽게 언급해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면, 최근 가디언넷에 올라온 사진이랑 점장님....닮으신 것 같은데. 혹시 동일 인물 맞으신가요?"
아이러니 하게도, 별로 의심하고 있진 않다. 왜냐면 맞다는걸 반대로 알고 있으니까. 다만 눈 앞의 이 사람이 정말 그런 짓을 저지르는 인물일까,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걸 알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여기에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