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 손도 안 대고 있던 치즈케이크를 포크로 조심스럽게, 입에 넣기 좋은 크기로 잘라 입에 넣으면서 은후는 동그란 눈으로 에릭을 바라보았다.
"단순하고도 당연한 이야기네요. 아, 서비스 주신다고 하셨죠? 딸기 케이크도 하나."
태연한 목소리로 그리 말하고 손짓으로 춘덕이를 불러 점장 대리가 저에게 딸기 케이크 하나 사주신대요! 같은 실없는 소리를 하는 청년의 모습에 상대는 어이가 없을지도 모르겠으나….
"언젠가 영웅이 죽거나 사라지면 혼란에 빠질 거다, 라…. 마치 자신의 추론처럼 이야기하시고 있으시네요. 전 굳이 그렇게 쿠션을 넣어서 말씀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13 영웅 중 한 명, 붉은 곰이 실종된 지금의 러시아의 상황을 보면 그건 엄연한 사실이니까요. 아무리 자신을 `붉은 곰의 자식`이라고 칭하고 있는 러시아 소속의 가디언들도, 예카르 비토보르비츠와 버금가고 13 영웅과 나란히 어깨를 마주할 수 있는 새로운 영웅이 다시 러시아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그들이, 러시아가 기다리고 있는 미래는 약속된 죽음이라는 사실을 마음속으론 부정할 수 없을 터이니."
거의 다 빈 유리잔 끝 부분을 손에 쥐고 가볍게 흔든다….
"가디언 아카데미에 처음 들어왔을 때, 당신도 이사장님의 훈화 말씀을 들으셨겠죠. 이곳은 새로운 영웅을 만들기 위한 곳. 기원전 2000년경에 쓰인 세계 최초의 서사시에 나오는 길가메시부터 시작해서, 인류에게 의념이란 힘이 생긴 이후 나타난 13명의 영웅까지. 허구와 현실을 가리지 않고 영웅은 영웅이란 칭호를 얻는 시점까지 크고 작은 고난을 겪잖아요? 당신의 사상이 뭐가 잘못된 거죠?"
다만,
"그렇기에, 왜 당신의 말을 듣고 상대가 화를 냈다는 건지 저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네요. 실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하지만 청년의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지나친 오지랖이라는 판단에 그 스스로가 중간에 말을 끊고 못 들은 것으로 해달라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팔을 들어 올려 손바닥을 상대에게 보였기 때문이다.
절규가 입 밖으로 새어나오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눈치챘다. 릴리는 입을 두 손으로 가리고 맑은 푸른빛 머리의 소년을 본다. 소년의 시선이 이상한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었다면 릴리의 멘탈은 갓 구운 바게트처럼 바삭해졌겠지. 하지만 릴리는 자신과 소년이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그렇ㅡ지이?”
손에 가려진 입꼬리가 히죽하고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
“당신도 이해하는구나! ‘Ça alors ! 왜 세상은 미식가들에게 가혹한 거야, 항상!’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아무 거나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은 문제 없지만 나 같은 학자들은 어떡하라는 거야ㅡ! 같은 생각이지?”
릴리는 벤치에서 일어나 소년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어느 쪽도 그렇게 키가 큰 편은 아님에도 머리 하나는 차이가 나는 키높이 때문에, 턱을 올리고 까치발을 들어 눈을 맞춘다. 반짝반짝거리는 눈동자는 동의와 인정을 잔뜩 갈구하는 듯이 빛나고 있다. 그야말로 막무가내였다.
“그렇지, 오늘은 큰맘 먹고 돈을 부어서 맛있는 걸 먹으러 나왔는데 말이야…… 혼자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것들 뿐이었다구! 그러니까 둘이서 뭔가 먹으러 갈래? 괜찮은 음식점을 찾아 보자구!”
>>238 " ...진화 넌 정말 좋은 아버지가 될 것 같아. " " 미래의 자식들이 부럽네... " 잠시 아버지의 요리를 떠올리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평범하게 만들면 맛있는데 어머니 말을 듣는 바람에... " ...진화 너는 아내분이 요리에 뭐 이상한 거 넣으라 해도 절대 들으면 안돼. " 라고, 아마 그 아내분 특성을 보아 일어날 일 없는 일이지만 그런 말을 무심코 해버리게 된다...
>>235 "예전에 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행동할지 물어봤죠." "내 대답은 언제나 간단 명료해요."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내 방패는 그걸 위해 존재합니다."
>>237 "나는 수단이었을 뿐이라....그게 네가 생각하는 최악의 인물이야?" "한가지 말해줄게. 진심으로 수단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그런걸로 죄책감이나 고민 같은거 안한단다." "답변이 되었으면 앞을 봐. 후배. 내가 막고, 네가 쓰러트린다. 이해 했겠지. 잘써봐. 나라는 방패를."
눈 앞의 대상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상당히..예리했다. 은후는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완벽한 주관을 가지고 있었고, 현 상황과 나의 생각에 대해 그렇게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거기다 한 발 더 나아가, 내가 숨기고 있는게 있다는 것 마저 파악했다. 지금은 그저 딸기 케이크 서비스에 해실거릴 뿐이었지만, 영성이 깃든 저 눈동자에 엿보이는 통찰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 ..... 그럼 사실대로 말할게. "
나는 하루,카사와 있었던 이야기를.. 그리고 내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카사를 억압하려는 건지를.. 그리고 그것에 왜 하루가 분노했는지를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영웅을 만들어내기 위해 한 사람의 인생을 연출된 무대로 이끌어 올리는 것은 정당한가. 개인의 자유와 의사를 묵살하고 대의를 위하여 라는 말로 억누르는 것은 유의미한 과정인가. 물론 이런 의문에 전부. 그렇다 그것은 유의미하고 정당하다 라고 대답할 수 있는 나였기에 거짓말 하나 없이 사실대로 전달했다.
" 그래서, 하루는 카페에서 메스를 이용해 자해했다. 자신의 편이 되어줄 사람을 늘리고, 날 몰아넣기 위해서겠지..? "
나는 조금 놀랐다. 다림씨도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구나.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귀엽다. 여태 본 표정중 제일 솔직하고 인간미있다고 생각한다. 평소에도 자주 저러면 인기가 더 많을텐데.
"....알려줘서 고마워요."
카페의 위치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들었다. 조만간 찾아가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걸로 내 위화감은 더욱 늘었다. 그는 정말로 내가 들은 것 마냥 오만방자한 악인인가? 눈 앞의 다림씨가 내게 경계하듯 이러저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이유는, 그에 대한 일종의 방어선을 펼쳐주는 것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그녀가....정말 단순한 악인에게 그 정도로 신경을 써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왜?
"그럼, 거기서 아르바이트 해보죠, 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생각해보면 내가 거기서 그에게 시비를 걸면, 그를 알려준 그녀에 대한 배신이 될지도 모르지. 응. 원래부터 난동 피울 생각은 없었지만, 가서 좀 더 정중하게 얘기하자. 그리고 그녀가 불안하지 않도록 말한다.
"소개해준 다림씨가 무안하지 않도록, 민폐를 끼치지 않을게요.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다보면 자연스레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한숨을 내쉬곤 진지한 태도를 풀고 그녀에게 미소지으며 얘기했다.
"나는 원래부터 누군가를 싫어하는게 무서워요. 누가 날 싫어하는 것도 무섭구요."
나는 겁쟁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나는 그녀와의 관계를 망칠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