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258303> [1:1/HL/현판] 초여름, 구닥다리 옛날 이야기였으면 했던: 1쪽 :: 343

소녀는 어쩌다 여우의 꿈을 꾸게 되었나 ◆lh92e4yUdY

2021-06-04 00:27:04 - 2021-08-19 18:28:54

0 소녀는 어쩌다 여우의 꿈을 꾸게 되었나 ◆lh92e4yUdY (SLWUcGFu8s)

2021-06-04 (불탄다..!) 00:27:04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한강, 서시 中>

53 단랑주 ◆lh92e4yUdY (13ImPs.Vrc)

2021-06-05 (파란날) 23:38:04

괴이가 방송까지 지배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을 우리가 하지 못했군요.. 진행은 빨라질 것 같지만요 uu

54 어라, 여기가 아닌가? ◆iT6uJ.OZKU (dxFltpUoMc)

2021-06-05 (파란날) 23:48:51

한 걸음씩 나아갈 수록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자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혼자가 아니라 의지가 됐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걱정이 되기도 했다. 혼자 길을 잃은 채 헤매는 것과 함께, 더군다나 제가 먼저 이끌어 따라오게 된 아이와 함께 헤매는 건 마음에 얹히는 무게 자체가 달랐다.
그나저나 안내 센터에 가까워질 수록 손에 쥔 것의 온도가 올라가는 것 같았다. 이전의 예시라도 있었다면 파악하기 쉬웠을 텐데. 처음 겪어보는 일인 탓에 이게 옳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판단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일단 아무것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길을 안내해준 건 방송뿐이니까.

“어, 그게, 아까 방송에서는 그렇다고 했는데......”

아이가 묻자 조금 자신감이 떨어진 목소리로 우리가 답했다. 우리와 아이는 손을 꼭 잡은 채로 안내센터 앞에 서 있다.

55 우리주 ◆iT6uJ.OZKU (dxFltpUoMc)

2021-06-05 (파란날) 23:51:23

아악 속았다 x-x....!!

56 어느 초여름, 이상한 귀갓길 ◆lh92e4yUdY (AURjxs/NCw)

2021-06-06 (내일 월요일) 00:01:38

모든 건물이 다 셔터가 내려가 있는데, 이상하게도 안내센터만큼은 셔터가 내려가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상하다. 안내센터의 안이 전혀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보통 투명해서 안이 다 들여다보일 안내센터인데, 마치 유리창 뒷면에 새하얀 종이를 빈틈없이 붙여놓은 것마냥 안내센터의 문이며, 유리창이 새하얗게 보일 뿐이다. 공기가 마치 차가운 족쇄처럼, 당신의 피부에 차갑게 처덕처덕 달라붙어 얼어붙고 있는 것 같다.

아이는 느릿느릿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당신의 손을 잡아끌고 있다. 아까 방송에서는 그렇다고 했는데... 하는 당신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문득 새하얀 유리창 위로 -_____- 같인 모양의 자국이 아래에서부터 슬라이드되듯 스멀스멀 올라온다. ...눈과, 입?

그리고 그 세 갈래 금 중에서, 가운데 아래쪽에 나 있는 길다란 금이 슬몃 벌어진다. 새까만 진흙 같은 그 입안에서, 스피커같은 게 슬쩍 고개를 내밀고 삐져나왔다.

지지직 지지직.

하얀 잡음이 그 괴물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딩동댕동. 운정지하상가 안내센터에서 안내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미아를 찾고 있습니다. 미아를 찾고 있습니다. 나이 17세. 홍림고 하복을 입은 고우리 학생을 찾고 있습니다. 다시 안내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빠지직, 하고 안내센터의 유리창이 금이 가는가 싶더니,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와르르르 무너진다. 그것의 눈이 떠진다. 새하얀 눈알에, 점 같은 동공이 섬뜩한 악의를 품고 당신과 소년을 쳐다보고 있다.

그 새하얀 것은 그것의 몸뚱아리였던 모양이다. 눈과 입만 달린 새하얗고 거대한 애벌레같은 몸뚱아리가 안내센터 정문을 부수고 스멀스멀 기어나오고 있다. 이제 손 안에 쥐어져 있는 부적은 뜨거울 정도다...

57 너무 느려! ◆iT6uJ.OZKU (SeqomaQUyo)

2021-06-06 (내일 월요일) 00:18:02

부적이 따뜻해지는 건 좋은 징조가 아니었구나. 끔찍한 입이 벌어지는 걸 보고 한 번, 거기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한 번 생각했다.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던 우리가 유리창에 금이 가기 시작하자 아이를 덥석 안아들었다.

“미안!”

그리고 정문이 부서졌을 땐 냅다 뛰기 시작했다.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뛰었는데... ...나 짱 느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서러웠다. 왜 내 다리는 이 정도에서 성장을 멈춰서, 왜 내 달리기는 50m를 간신히 9초 대에 뛰는 게 다라서....... 그래도 전부 포기하는 것보다는 뛰는 게 나았기에, 목이 따끔하고 팔이 후들거렸음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달렸다.

58 어느 초여름, 이상한 귀갓길 ◆lh92e4yUdY (AURjxs/NCw)

2021-06-06 (내일 월요일) 00:37:48

더욱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당신의 다리도 느린데... 이 아이는 아예 뛰지도 못했던 것이다. 굳어버린 무릎을 최대한 움직이려고 해보지만, 달리지를 못해서 그만 당신의 손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진 아이는 당신에게로 손을 뻗다가, 손을 툭 떨어뜨린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다.

아이의 등 뒤로, 눈을 치켜뜬 괴물이 입을 쩍 벌린다. 징그러운 이빨이 드러나는가... 싶더니... 더 징그러운 게 입안에서 드러났다. 입이 끝도 없이 찢어지면서 윗입술이 머리 위로까지 휙 들려올라가면서, 얼굴 가죽이 통째로 들려올라가서는 새빨간 근육으로 뒤덮인 해골 같은 그 괴물의 본모습이 입술 아래에서 드러난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도망갈 수는 없다.
아이를 이대로 두면 아이는 잡아먹힌다.

...도망가야만 할까. 그렇지만 도망가지 않는다고 해도 저 괴물을 상대로 맞설 수 있는 것이 있을까?

----------

아래의 셋 중에서 우리가 지금 이 순간, 괴물을 물리치는 상상을 하며 떠올릴 만한 것이 있나요?

1. 불꽃
2. 물리적인 힘
3. 환상

아니면 다른 것이 있습니까?

59 우리주 ◆iT6uJ.OZKU (ybVWt8gA2s)

2021-06-06 (내일 월요일) 00:41:30

제가 지금 졸음이 와서 ㅋㅋㅋ큐ㅠㅠㅠㅠ 일단 불꽃으로 고르고 이만 자야할 것 같아요.... 내일은 조금 더 일찍 올게요! 괴물 녀석 가만 안 둬 ㅠ-ㅠ~~
오늘도 재밌었습니다! 담랑주 평안한 밤 되세요~!

60 단랑주 ◆lh92e4yUdY (AURjxs/NCw)

2021-06-06 (내일 월요일) 00:43:03

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저도 사실 언제쯤 주무시러 가시나 말씀을 드리려 했던 참이거든요. 오늘 하루도 즐거웠어요. 내일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우리주도 평안한 밤 보내시기 바랍니다.

61 어느 초여름, 이상한 귀갓길 ◆lh92e4yUdY (AURjxs/NCw)

2021-06-06 (내일 월요일) 00:48:47

>>58에 덧붙여

어느샌가, 손은 정말로 불이라도 쥐고 있는 것만큼 뜨거웠다... 아니, 그 뜨거움마저도 마치 익숙해지기라도 한 것 같아. 평소에 접할 수 있는 온도보다 훨씬 뜨거운데도 전혀 고통스럽지 않다.

손을 돌려보면, 주머니를 쥐고 있었던 당신의 손 안에는... 정말로 새빨갛다 못해 보라색인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화염구가 하나, 손아귀 가운데에 둥실 떠올라 있다.

62 불이야! ◆iT6uJ.OZKU (ybVWt8gA2s)

2021-06-06 (내일 월요일) 13:54:37

역시 아이를 들고 뛰는 건 무리수였던 모양이다. 후들거리는 손으로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같이 뛰려는데, 잡고 있던 손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이상하다 싶어 뒤를 돌았더니 아이와 그 뒤에 입을 벌린 괴물이 보였다. 입을 벌렸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것 같은데, 아무튼.
우리는 징그러운 것을 보았을 때 자연히 찌푸려지는 얼굴을 했다가 곤란한 얼굴을 했다가 결국엔 울상이 됐다. 다가가기엔 괴물이 너무 가깝고, 이대로 도망가면 저 괴물이 아이를 다치게 할 것이다. 찰나의 순간 뜨거울 정도로 온도가 높아진 손이 눈에 띄었다. 화염구까지도.
–어차피 그만한 힘도 없지만–일반적인 힘으로는 괴이를 물리칠 수 없을 테니까, 답은 지금 보이는 이 불꽃이었다. 우리가 괴이가 있는 방향을 향해 손을 뻗더니 그대로 탈탈 털었다. 조금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아직 제대로 쓰는 방법을 모르는 우리에겐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63 어느 초여름, 이상한 귀갓길 ◆lh92e4yUdY (AURjxs/NCw)

2021-06-06 (내일 월요일) 16:21:39

손을 탈탈 털어제끼자, 손 안에 맺혀있던 화염구가 이지러지며 불똥이 돼서 새빨간 해골 얼굴에게로 후드득 쏟아져내려갔다. 예상치 못한 반격에 괴물은 화들짝 놀라 몸을 비틀며 주춤주춤 물러섰다. 쩍 솟구쳐올라갔던 허연 가죽을 다시 얼굴로 덮어내리며, 몸을 뒤틀며 뒤로 물러서는 것이 분명 어떤 효과가 있는 듯했다. 그러나 잠깐 물러서게만 할 뿐으로, 괴물은 다시금 허연 가죽을 제치고 벌겋고 흉물스런 얼굴을 드러내며 도롱뇽같은 팔로 땅을 짚고는 다시 다가오기 시작했다.

손 안에는 다음 번의 불꽃이 다시 떠올라 있다.

64 단랑주 ◆lh92e4yUdY (AURjxs/NCw)

2021-06-06 (내일 월요일) 16:23:18

일찍 오신다고 했더니 엄청 일찍 오셨네요😭 전 틈내서 응답 하나 겨우 올려놓고 다시 또 나가봐야 하는데 어째.. 여섯-일곱 시쯤에 돌아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65 우리주 ◆iT6uJ.OZKU (Ruj5WlW9FA)

2021-06-06 (내일 월요일) 19:41:30

앗 저도 지금 밖이라 ㅠ-ㅠ.. 부담없이 다녀오세요!

66 단랑주 ◆lh92e4yUdY (57V0nb99So)

2021-06-06 (내일 월요일) 19:45:59

우리주도 천천히 다녀오세요 uu 이시국에 몸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되세요!

67 우리주 ◆iT6uJ.OZKU (eb13.jKQIE)

2021-06-06 (내일 월요일) 21:06:55

다녀와서 갱신할게요! 단랑주 좋은 주말 보내셨길 바라요 ㅎ-ㅎ)9

68 단랑주 ◆lh92e4yUdY (Zr3qsh6ylg)

2021-06-06 (내일 월요일) 21:54:34

느긋하게 다녀오세요. uu 텀은 개의치 않으니 즐겁고 긴 플레이가 되면 좋겠어요.

69 우리주 ◆iT6uJ.OZKU (m2S5t0A8QE)

2021-06-06 (내일 월요일) 21:55:44

앗 다녀왔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위의 진행레스를 놓쳤었네요 ㅋㅋㅋ큐ㅠㅠㅠㅠ 이어올게요!

70 사람 살려! ◆iT6uJ.OZKU (m2S5t0A8QE)

2021-06-06 (내일 월요일) 22:06:34

“와아! ...악!”

우리가 물러난 괴물을 보고 환호를 질렀다가 다시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일단 좀 많이 물러나게 해서 아이만 구한 다음에... 다음에...? 우리가 고개를 저었다. 생각을 길게 할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손을 더 크게 휘적였다. 방금 전보다 더 큰 불길이 일어나 괴물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기를 바라며.

71 단랑주 ◆lh92e4yUdY (Zr3qsh6ylg)

2021-06-06 (내일 월요일) 22:11:10

>>69 yy!!!!!!!!! 1시간이나 기다리게 해드리고 말았네요......

돌멩이 던지듯 던졌으면 좋았을 테지만... 별 상관없겠네요. 금방 써올게요.

72 어느 초여름, 이상한 귀갓길 ◆lh92e4yUdY (Zr3qsh6ylg)

2021-06-06 (내일 월요일) 22:20:01

푸드득푸드득. 손을 힘차게 흩뿌리듯이 턴 보람이 있는지 이번에는 불똥이 아니라 불 붙은 휘발유라도 내다뿌린 마냥 불꽃의 조그만 파도가 일어 괴물의 얼굴을 덮쳤다. 당신은 왜인지 몇 시간 연달아 공부한 것처럼 머리가 찌뿌둥해지는 것을 느꼈다. 괴물은 괴성을 지르며 비틀비틀 물러섰다. 불꽃이 얼굴에 달라붙어 괴물의 얼굴을 태우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아이의 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괴물은 황급히 허연 가죽을 얼굴 위에 덮어씌웠고,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가죽 아래에서 역겨운 고기 타는 냄새가 나는 증기가 솟구쳤다. 이번에는 괴물은 얼굴가죽을 벗지 않았다. 얼굴에 덮어씌워진 하얀 가죽에 난 눈구멍이 벌어진다. 소름끼치는 점같은 동공이 가죽 사이로 드러난다. 괴물이 다시 전진해오기 시작했다.

73 단랑주 ◆lh92e4yUdY (Zr3qsh6ylg)

2021-06-06 (내일 월요일) 22:20:31

우리는 리 108식 대사치를 배웠...다?

74 단랑주 ◆lh92e4yUdY (Zr3qsh6ylg)

2021-06-06 (내일 월요일) 22:26:01

옛날옛적 컴퓨터 운영체제가 XP였을 때, 집의 호적메이트가 컴퓨터에 깔아서 아버지와 종종 즐겨하던 게임에서 우리의 동작을 연상케 하는 기술이 나왔던 것 같아서 찾아봤는데, 스트리트 파이터였네요.. 이게 왜 진짜 있지

75 이제 어디로 가야 해? ◆iT6uJ.OZKU (m2S5t0A8QE)

2021-06-06 (내일 월요일) 22:27:13

아까보다 열심히 움직인 덕인지 불꽃은 훨씬 커졌다. 더 큰 타격을 준 것도 맞는 것 같았다. 문제가 있다면 머리가 아팠다는 걸까. 가능성이야 많았다. 추워서 그럴 수도 있고, 그제야 공포심이 몰려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 불꽃이 원인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말곤 저 괴물에 대응할 방법이 없으니까.
우리가 재빠르게 달려가 아이의 손을 붙잡고 일으켰다.

“뛸 수 있어? ...아님 업힐래?”

으아아—. 다시금 다가오는 괴물을 향해 힘껏 손을 휘두른 우리가 아이를 데리고 다시 도망치기 시작했다.

76 우리주 ◆iT6uJ.OZKU (m2S5t0A8QE)

2021-06-06 (내일 월요일) 22:28:24

>>73-74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손 휘두르면 불꽃 나오는 게 비슷하네요... 강해져라 우리...!!

77 단랑 - 우리 ◆lh92e4yUdY (Zr3qsh6ylg)

2021-06-06 (내일 월요일) 22:53:15

한번 더 불길을 휘두르자 이젠 경미한 빈혈이 오는 듯한 어지러움까지 느껴진다. 아이는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움직이려 했고, 삐걱거리는 걸음으로나마 우리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아까보다는 확실히 도망칠 수 있다... 는 느낌이지만, 역시 느리다.

그러나 이번에는 참 보람없게도, 괴물의 얼굴가죽에 닿은 불은 효과적으로 괴물에게 피해를 주지 못하고 얼굴가죽을 조금 그슬러버린 정도에 불과한 모양이다. 괴물은 잠깐 움찔한 것을 끝으로 점점 가속도를 붙여가면서 우리와 아이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얼마 가지 못해, 추격전의 양상이 당신에게 아주 나쁜 방향으로 바뀌었다... 갑자기 온 지하상가의 불이 꺼지더니, 붉은색의 비상등이 점등되면서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천장의 스프링쿨러에서 물이 거세게 쏟아지기 시작했고, 복도 저편의 방화셔터가 당신 혼자 전력질주해도 따라잡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빠르게 드르륵 내려와서는 닫혀버린 탓이다.

양옆으로 고개를 돌려봐도, 옆으로 샐 만한 골목에서도 이미 방화셔터가 내려와 닫히고 있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셈이다. 이 지하상가의 그림자 같은 곳은, 이 괴물의 영역... 괴물은 소방수로 축축하게 젖은 새하얀 얼굴가죽을 뒤집어쓴 채로, 가죽에 난 입을 쩌억 벌렸다. 온통 새까만 진액으로 가득찬 입 사이로 날카로운 이빨들이 비어져나온 게 보인다. 속도는 줄어들지 않는다.

그리고 그 순간, 이변이 발생했다.

갑자기 땅에서 엄청난 기세로 날카롭게 부러진 파이프같은 게 튀어나오더니, 괴물의 윗입술을 비스듬하게 꿰뚫어버린 것이다. 그 풀에 괴물의 윗입술이 훌렁 벗어져 천장에 못박히는 바람에 괴물의 새빨간 얼굴이 다시 드러났다. 괴물은 가속도를 잃지 않고 계속 전진해오려 했지만, 파이프를 조금 구부리는 데에 그쳤다. 당신과 겨우 사오 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그 괴물은 저지당해버리고 말았다.

확실히 해두고 싶었던 건지, 천장과 땅바닥에서 몇 가닥의 굵은 파이프가 더 튀어나와서 괴물의 가죽을 무두질 선반에 걸어놓듯이 꿰면서 감옥 창살처럼 괴물을 옭아맸다. 괴물은 입을 벌려 분노와 고통에 가득찬... 말로 형용하기 불쾌한 소리의 고함을 질러댔다.

그때 당신은 방화셔터의 한구석이 무슨 꽃송이라도 된 것처럼 자연스레 벌어지며 갈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 틈새로 들어오는 것은... 당신이 언젠가 본 적이 있던, 그러나 그때 봤던 것보다 훨씬 커다란... 황소만한 체구의, 꼬리 여섯 개 달린 새하얀 여우였다. 여섯 갈래의 꼬리 끄트머리마다 자주색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여우는 당신과 소년에게로 고개를 돌려서는 꼬리를 흔들었다. 여우의 입은 벌어지지 않는데 당신의 머릿속에 말소리가 들린다.

-우리야. 손에 있는 불, 있는 힘껏 꽉 쥐어. 눈송이 쥐어짜는 느낌으로.

-그리고 눈싸움하는 것처럼 던져.

78 단랑주 ◆lh92e4yUdY (Zr3qsh6ylg)

2021-06-06 (내일 월요일) 22:54:01

진행을 빠르게 가져가려고 했는데 오히려 답레 쓰는 시간이 늘어나는 참사가.......
응답은 짧게짧게 주셔도 좋아요.

79 우리주 ◆iT6uJ.OZKU (m2S5t0A8QE)

2021-06-06 (내일 월요일) 23:18:49

앗.. 제가 잠깐만 자리 비워야 할 상황이 생겨서요 ㅠ-ㅠ 12시반 정도쯤 다시 올게요. 피곤하면 먼저 주무세요! 죄송합니다..!!

80 단랑주 ◆lh92e4yUdY (Zr3qsh6ylg)

2021-06-06 (내일 월요일) 23:30:21

천천히 다녀오세요. uu 어느 쪽이든 상관없답니다.

81 맞아라! ◆iT6uJ.OZKU (UZ07j491NU)

2021-06-07 (모두 수고..) 00:24:20

조금 느리지만 천천히 움직이는 아이와 발 맞춰 걷던 우리가 갑자기 쏟아지는 물에 깜짝 놀라 짧은 비명을 질렀다. 머리도, 교복도 축축하게 젖었지만 일단은 도망치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움직였다.

“잠깐만, 안 돼!”

우리가 빠르게 내려가는 방화 셔터를 보며 외쳤다. 당연히 괴물이 우리의 말을 들어줄 리 없으니 상황이 나아지는 일은 없었다. 아이의 앞에 서서 천천히 뒷걸음질치던 우리가 눈을 질끔 감았다가, 괴상한 소리에 눈을 떴다. 괴물을 공격한 파이프를 멀뚱히 보던 우리는 저 끔찍한 광경을 아이가 볼 수 없도록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 탓에 닫힌 셔터를 밀어내고 들어오는 흰 여우를 조금 늦게 발견하고 말았다.

“그렇게 세게 쥐어도 되는 거야? 응, 어. 그럴게!”

우리가 불꽃을 꽉 쥐었다. 아까부터 느낀 거지만 하나도 뜨겁지 않다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선 아주 힘껏, 온 힘을 다해 괴물을 향해 던졌다.

82 단랑주 ◆lh92e4yUdY (1CodgeW5Y6)

2021-06-07 (모두 수고..) 00:33:11

반응을 쓰던 중에 이제 여쭈어볼 시기가 된 것 같아 여쭤보려 합니다만.. 우리와 단랑이는 같은 반일까요?

83 우리주 ◆iT6uJ.OZKU (UZ07j491NU)

2021-06-07 (모두 수고..) 00:37:05

저는 같은 반으로 생각하긴 했어요! 같은 반이고 그래서 이름은 알지만, 인사도 몇 번 했지만.. 그 이상의 진전은 없던 서먹한 반 친구 정도의 관계로요!

84 단랑주 ◆lh92e4yUdY (1CodgeW5Y6)

2021-06-07 (모두 수고..) 00:44:13

얼떨결에 가까워지기 딱 좋은 관계네요. u.u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85 단랑 - 우리 ◆lh92e4yUdY (1CodgeW5Y6)

2021-06-07 (모두 수고..) 00:52:24

불꽃을 거머쥐자, 그것은 손 안에서 마치 스펀지나 종이뭉치를 구기는 것처럼 쪼그라들었다. 손을 펴봤을 때에는 조그만 살구씨만한 불잉걸 덩어리 같은 게 손에 들려 있었다. 한 번 손을 뒤로 잦히고, 휙 던지자 그것은 마치 유성처럼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 괴물의 입 안으로 빨려들어갔고... 괴물은 그걸 덥석 삼켰다.

그리고 괴물의 몸이 들썩하면서 괴물의 눈과 입, 콧구멍을 통해 벌건 섬광이 한번 번쩍 비치는가 싶더니, 그것은 이내 입을 떡 벌리곤 완전히 뻗어버리고 말았다. 눈, 코, 입, 구멍이라는 구멍에서 연기가 풀풀 나오는 몰골로 보아, 이로 보나 모로 보나 확실히 "잡았다".

여섯 꼬리 여우는 꼬리를 살랑 흔들며, 폴짝 뛰어서는 재주를 한 번 넘었다. 뛰어오를 때는 여우의 발이었는데 도로 내릴 때는 단화를 신은 발이 되어 있다. 단화를 신고, 하복 셔츠와 바지 차림에, 크로스백을 메고 있는 고운 소년이 그 자리에 있었다. 몇 번인가 눈인사 정도나 하고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인, 별나고 이상한 반 친구. 분명 단랑, 이라는, 조금 별난 이름이었지.

소년은 크로스백에서 길다란 공책과 빨간 색연필 같은 것을 꺼냈다. 공책을 펼치자 노르스름한 종이가 드러났고, 소년은 그 위에 익숙한 손길로 뭔가를 휙휙 그린 뒤에 책장을 북 뜯어서는 그것을 연기를 뿜는 괴물의 이마에 착 붙였다. 괴물은 서서히 쪼그라들었다.

그리고는 이번엔 괴이라기엔 좀 이상한 게 나왔는데... 그는 핸드폰을 꺼내들어서는 뜬금없이 그 괴물의 사진을 한 장 찍더니 어디론가 보내는 것이다. 그러고서야 자기 일을 마쳤는지, 괴물(의 시체인지 아니면 빈사상태인지)을 내버려두고 당신에게로 돌아섰다.

"...늦게 와서 미안해. 많이 놀랐지."

처음으로 꺼내는 말은 그것이다. 방화셔터는 언제 내려갔냐는 듯 사라져 있고, 쇼핑몰은 아직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제외하면 어두침침하거나 싸늘한 기색은 모두 사라져 있는... 점포 문만 전부 닫혀있지 않았던들 평소의 지하상가와 별다를 게 없어보이는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나가자."

단랑은 손을 내밀었다.

86 단랑주 ◆lh92e4yUdY (1CodgeW5Y6)

2021-06-07 (모두 수고..) 00:53:09

벌써 1시가 가까웠네요. 슬슬 주무시러 가시나요? (이부자리 부시럭)

87 우리 - 단랑 ◆iT6uJ.OZKU (UZ07j491NU)

2021-06-07 (모두 수고..) 01:02:30

우리는 비록 제가 던졌지만 아무리 봐도 불덩어리인 것–이미 알고 있어 그렇게 보이니?–을 삼키는 괴물의 행동에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불안불안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우리가 번쩍이는 섬광에 눈을 꼭 감았다. 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터질 줄 알았는데. 연기가 나는 괴물을 본 우리가 잠깐 표정을 찌푸렸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단랑이 무언가 붙이자 쪼그라드는 괴물의 모습이 썩 유쾌한 장면은 아니었지만 그보다는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사실에 더 안심이 됐다.

“아니야, 이렇게 된 게 네 잘못도 아니구... 오히려 와줘서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겨우 긴장이 풀린 얼굴을 한 우리가 다시 안도의 한숨을 뱉는다. 계속 괴롭히던 추위도 가시고, 아까보단 덜 으스스한 느낌이 드는 걸 보니 정말로 끝난 모양이다. 우리가 제게 내밀어진 손을 보다가 조심스레 제 손을 뻗어 그 손을 쥐었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듯 아, 하고 짧은 소리를 냈다.

“나가기 전에 이 애 엄마 찾아주고 싶은데...”

계속 제 뒤에 숨겨두었던 아이를 보여주기 위해 살짝 비켜서며 말했다. 잘못된 곳에 가서 놀라게 한 것에 책임이 있으니 부탁을 꼭 들어주고 싶었다. 우리가 간절한 표정으로 단랑을 바라봤다.

88 우리주 ◆iT6uJ.OZKU (UZ07j491NU)

2021-06-07 (모두 수고..) 01:03:29

슬슬 자러 갈 시간이깅 한데 마무리 짓고 자러 가고 싶기도 하구요 ㅋㅋㅋㅋㅋㅋ 아 체력이 좀만 더 좋았으면 좋겠다 ㅠ-ㅠ~~

89 단랑주 ◆lh92e4yUdY (1CodgeW5Y6)

2021-06-07 (모두 수고..) 01:09:48

무리하지 않으시는 게 좋아요. 3.3 답레는 써서 놓을게요. 사실 내일부터 시작될 엄마 찾아주기가 2부라는 느낌이지만, 엄마 찾기는 짧게 하게 될 것 같아요.. 너무 늘어지면 지루할 수도 있구.

오늘도 함께 있어주셔서 고마웠어요.

90 우리주 ◆iT6uJ.OZKU (UZ07j491NU)

2021-06-07 (모두 수고..) 01:11:27

앗앗 저도 기다려주시고 놀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덕분에 재밌게 주말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내일 또 뵈어요 ㅎ-ㅎ 오늘도 평온한 밤 보내세요~

91 단랑 - 우리 ◆lh92e4yUdY (1CodgeW5Y6)

2021-06-07 (모두 수고..) 01:15:01

정확히는, 괴물이 그걸 받아먹었다기보단 당신이 그걸 괴물의 입 안에 던져넣는 데에 성공했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 끝없이 커다랗고 탐욕스러운 주둥아리는, 괴물의 얼굴을 노리고 뭔가를 던지면 아무리 마구 던진다 해도 세 번 중에 한 번쯤은 괴물의 입 안에 집어넣는 데 성공할 수 있을 만큼 컸으니까.

"단숨에 부적을 붙일 수 있을 만큼 뻗어버릴 줄은 몰랐는데."

괴물의 이마에 무언가를 붙으며 단랑은 무심코 중얼거렸다.

그는 당신의 말에 당신이 손을 잡고 있는 아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말라붙은 동사체 같던 끔찍한 몰골은 어디 가고, 어느새 그 아이도 비록 조금 창백할지언정 살아생전의 모습을 되찾은 것처럼 또랑또랑한 여덟 살짜리 아이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비록... 아까 전에 비해 너무 가벼워졌고, 그림자도 없었지만. 그래도 손만은 우리의 손을 쥔 채로, 조금 불안한 표정으로 그 어린아이는 단랑을 올려다보았다.

"응, 지하상가에서 길을 잃었구나."

단랑은 당신의 손을 받아쥔 채로, 그 아이 앞에 잠깐 쭈그려앉아서 다른 손으로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잘했어. 얘를 지키면서 유충과 싸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텐데."

단랑은 쪼그려앉은 채로 당신을 가만히 바라보며 물었다.

"일어설 수 있겠어? 어지럽지는 않고?"

92 단랑주 ◆lh92e4yUdY (1CodgeW5Y6)

2021-06-07 (모두 수고..) 01:15:47

우리주도 평온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uu

93 우리 - 단랑 ◆iT6uJ.OZKU (jV0IUesXSk)

2021-06-07 (모두 수고..) 22:09:13

우리는 단랑의 칭찬에 조금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가 웃었다. 처음 겪어보는 일에 무서웠던 데다 다소 허둥지둥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쑥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로 고맙다는 말을 했다.

“응, 괜찮아.”

단랑이 건넨 손의 도움을 받아 벌떡 일어난 우리가 조금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아까보다 훨씬 어지럽게 느껴졌다.

“어, 음, 좀 어지럽긴 한데... 그래도 괜찮아!”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으니까. 아이의 손을 꼭 잡은 우리가 단랑에게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면 돼?”

94 우리주 ◆iT6uJ.OZKU (jV0IUesXSk)

2021-06-07 (모두 수고..) 22:09:56

아직 진행의 연장 같아서 답레가 짧아지네요 88 혹시 서술이 부족하면 말씀해주세요!

95 단랑주 ◆lh92e4yUdY (1CodgeW5Y6)

2021-06-07 (모두 수고..) 22:23:54

어서 오세요. 날은 더웠지만 좋은 저녁이네요.

답레가 짧다고 고민하거나, 억지로 이런저런 내용을 덧붙이거나 하실 필요는 없어요. 필요한 만큼 쓰는 게 좋은 레스라고 생각하니까요. (간결하면 잇기 쉽기도 하구요)(<-본심)
우리의 행동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거나, 질문사항이 있으면 질문드릴 테니 마음쓰시지 않으셔도 좋아요uu 다른 일과 병행하느라 조금 손이 느릴 듯하지만, 곧 써오겠습니다.

96 우리주 ◆iT6uJ.OZKU (jV0IUesXSk)

2021-06-07 (모두 수고..) 22:29:45

앗 그렇담 다행이에요! 네네 필요하신 거 있으면 편하게 말씀해주시구 답레도 천천히 주세요~ ㅎ-ㅎ

97 단랑 - 우리 ◆lh92e4yUdY (1CodgeW5Y6)

2021-06-07 (모두 수고..) 22:45:59

단랑은 손을 가방에 폭 찔러넣더니 음료수 캔 하나를 톡 따서는 우리에게 내밀었다. "이걸 마시면 훨씬 나아질 거야." 싸늘함과는 다른 청량한 시원함이 남아 표면에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는 청량음료 캔이었다. 시중에 파는 시제품이었지만, 마셔보면 확실히 그의 말대로 시원한 액체가 머릿속에 들어찬 현기증을 씻어주는 듯한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을 바라보며 단랑은 "처음엔 다 그래." 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말이 왠지 뭔가 단념한 것처럼 들리는 건 기분 탓일까.

"잠깐만... 구역 담당 차사님께 뭔가 아시는 게 있나 여쭈어볼게. 일단은 여기서 나가자."

그는 핸드폰을 다시 집어들고는 어딘가에 전화를 걸더니, 전화기를 한쪽 귀에 대고는 눈은 당신을 바라보며 당신에게 손을 내밀어왔다. 한 손에는 아이의 손을, 다른 손에는 단랑의 손을 나란히 잡게 생겼다.

98 우리 - 단랑 ◆iT6uJ.OZKU (jV0IUesXSk)

2021-06-07 (모두 수고..) 22:55:44

“아, 고마워.”

우리는 단랑이 꺼내준 음료를 보며 생각했다. ...나 당 떨어진 건가? 순진한 생각과 함께 한 모금씩 음료수를 마신 우리는 곧 두통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오직 평범한 음료의 효과라고 생각한 우리는 빈 캔을 빤히 쳐다보다가 아이에게 양해를 구하며 손을 놓고선 쓰레기통에 캔을 넣은 뒤 다시 돌아왔다. 처음엔 다 그렇다니. 그럼 이 다음도 있다는 뜻일까?

“응, 그럼 난 그동안...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게.”

돌아온 우리는 다시 아이의 손을 잡고 단랑이 내민 손도 잡았다. 어쩌다보니 중앙에 서서 양쪽에 선 사람–정확히 말하면 하나는 사람이 아니지만–의 손을 잡은 채 서 있게 됐다. 어쩐지 제가 어린애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묘했다. 개인적인 마음은 일단 제쳐두고, 우리는 통화하는 단랑을 바라보다 어느 정도 통화가 진행된 듯 하자 입모양으로 물었다. 천천히 움직이는 걸 읽어본다면 이런 뜻이었다.

‘뭐라고 하셔?’

99 단랑주 ◆lh92e4yUdY (1CodgeW5Y6)

2021-06-07 (모두 수고..) 23:00:47

이것은 단랑주의 실책... 우리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는 부분까지 서술했어야 했는데 깜빡했네요.. uu

100 단랑주 ◆lh92e4yUdY (1CodgeW5Y6)

2021-06-07 (모두 수고..) 23:01:51

다음 답레에 해당 서술을 포함시키겠습니다. 괜찮을까요?

101 우리주 ◆iT6uJ.OZKU (jV0IUesXSk)

2021-06-07 (모두 수고..) 23:03:33

네 괜찮아요!

102 단랑 - 우리 ◆lh92e4yUdY (1CodgeW5Y6)

2021-06-07 (모두 수고..) 23:19:47

통화를 걸면서, 단랑은 우리에게 막연히 앞쪽을 눈짓해보이며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원래대로 멀쩡하게 돌아온 표지판에 가장 가까운 입구로 향하는 표시가 찍혀 있었다. 전화는 얼마 안 가 연결됐다. "안녕하세요, 차사님. 단랑입니다." 로 시작된 통화는 중간중간 "네, 운정지하상가에 숨어있다던, 조금 전에 제보드린 외신의 유충이요..." "남겨진 넋이 있는데, 어머니를 찾아주어야..." "네. 아, 그런 제보가 있었다구요?" "공영주차장의 지박령이... 그렇구나. 네. 아, 그렇게 하시게요?" 하는 말이 띄엄띄엄 흘러나온다. 통화가 마무리되어간다는 느낌이 있을 때쯤에는 그와 당신과 아이는 어느덧 지하도 밖으로 나가는 입구에 도달해 있었다. 어느새 뉘엿뉘엿 주황색으로 변하기 시작한 햇살이, 지하로 내려오는 계단의 벽에 비껴드는 것이 보였다.

그는 시선을 당신에게로 두며, 입모양으로 '밖에 있다는 것 같아.' 하고는, "곧 그리로 갈게요. 감사합니다." 하는 인사를 마무리로 전화를 끊었다. 그는 손을 뻗어서 지상으로 나가는 문을 열었다. "두 발이 다 문턱을 넘어설 때까지는 손 꽉 잡고 있어야 돼." 하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렇게나 아찔하게 헤매었던 지하도인데, 나오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문을 열고 나오자, 매암 매암 매암 찌르르르... 하고 아직도 그치지 않은 매미 울음소리와, 차가 다니는 소리 등 생활소음이 와글와글 밀려든다. 그를 따라 아이를 데리고 문턱을 넘어서면, 당신의 뒤로 지하도의 문이 닫힌다. 문이 닫히는 바람이 등을 한번 휘잉, 쓸고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면... 유리로 된 입구 너머로 비치는 지하도는, 평소의 수많은 사람이 오락가락 왕래하면서, 점포가 모두 활짝 열려서는 점원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점포를 관리 중인, 평소의 지하상가의 모습 그대로다.

"이제 손 놔도 돼. -얘네 어머니 찾아주는 건 의외로 간단하게 끝날지도 모르겠는데, 넌 어쩌지..."

단랑은 다소곳한 무표정이었지만, 아무리 봐도 그 무표정에 고민이 한가득 꽃피어 있다.

"뭐, 기왕 걔 손 쥐고 있는 거, 같이 갈래?"

103 우리 - 단랑 ◆iT6uJ.OZKU (jV0IUesXSk)

2021-06-07 (모두 수고..) 23:30:28

단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우리가 손을 꼭 잡았다. 어느 쪽 손을 말하는지를 몰라 양쪽을 다 그렇게 잡은 우리는 어딘가 비장한 얼굴로 문턱을 넘었다. 음산한 몇몇 소리를 빼곤 적막뿐이던 세계에서 다시 일상으로. 뒤를 돌아보자 눈에 들어온 상가는 평소와 같은 모습이라, 아까 제가 발 디뎠던 곳이 평범한 곳은 아니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무사히 나오게 되어 다행이야.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렇구나. 다행이다.”

“엄마 찾아주기로 약속했거든.” 덧붙인 우리가 웃었다. “다행이다, 그치?” 아이를 내려다 보면서도 밝게 웃으며 말했다.

“나? ...혹시 나 뭐 잘못했어?”

하지만 뒤에 붙는 말은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어 금세 시무룩한 얼굴이 되고 말았다. 미루어 짐작컨대, 제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도무지 어떤 지점이 잘못된 건지 감이 오질 않았다. 일단은 일부터 마무리 해야 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저은 우리가 단랑을 보며 답했다.

“이왕 같이 나왔으니까 그렇게 할래.”

엄마 손 잡을 수 있게 해 주고, 가는 길 편안하라 배웅도 해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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