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왜 주중에 답을 했다고 생각한 걸까. 꿈 꿨나? 미안해, 레아주. 직장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는 바람에... 좀 바빴어. 이제야 주말이네. 그동안 잘 지냈을까? 나는 백신 2차 접종까지 마무리 했는데 머리가 좀 무거운 것 빼고 아직 별 이상은 없는 것 같아서 걱정을 좀 덜었어. 레아주는 별일 없을까.
어제 감기 기운 비스무리한 게 조금 있길래 걱정했는데 크게 아프진 않았어. 좀 길게 잔 정도? 피로가 쌓이기는 했나봐. 아직도 목이 좀 칼칼하다. 다음 주도 거의 똑같기는 한데... 나도 자가격리 들어가고 싶다. 혼자 살았으면 진짜 자가격리 하고 싶네. 다음 주야? 레아주도 아마 별일 없을 거야. 오히려 아픈 사람 보다 멀쩡한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더라.
그래도 약 먹고 쉬니까 나아지더라. 무사히 넘긴 것 같아서 다행이야. 이제 완전히 방심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코로나에 대해서 마음 좀 놔도 좋지 않을까? 사람 만나는 것도 여유 좀 생기려나. 어차피 그럴 일 자체가 별로 없긴 해도. 레아주도 무사히 넘어갔음 해. 마스크... 평생 쓰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긴 하는데, 얼른 전부 나아졌으면. 또다시 평일의 시작이야. 괴롭다. 이번 달에는 이런저런 행사가 많아서 벌써 돈도 모자르고 정신력도 모자르고. 주말은 잘 보냈었어? 답레 하나 더 주기로 해놓고서 이렇게 또 미뤄지게 되네... 짤막하게 적어서라도 얼른 주도록 할게. 바람은 기분 좋게 부는데 날벌레나 모기가 아직도 보이는 것 같아서 의아한 새벽이야. 오늘도 좋은 밤 보내구, 내일 보자.
약 먹고 괜찮아졌다니 다행이네. 너무 코로나에 대해 스트레스 받지 않는 것도 좋지. 그게 맘처럼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나도 아마 별일 없이 넘어가지 않을까 싶긴 해. 물론 아직은 지켜보ㅓ야 하겠지만. 나는 잘 보냈어. 그러니까 에바주도 잘 보내길 바래. 답레는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으니까 괜찮아. 맞다!아무래도 우리 수위가 좀 올라갔던 느낌인가봐. 사실 그렇게 중요한 부분은.아니니까 앞으로는 좀 조심하는게 좋을 것 같아. 나도 신경써서 일상을 돌리도록 할게.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자.
내가 없는 사이에 일이 있었구나. 저도 죄송하단 말씀 드릴게요. 더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레아주에게도 미안해. 혼자서 해결하도록 둬버렸네. 요새 다른 일에 신경 쓰기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계속 못 들리고 있어. 이러면 안 되는데. 정말 이러면 곤란한데. 미안... 이번 주는 잘 보냈을까.
스레를 지켜주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나한테 너무 과분할 정도로 잘해주고 있는 거지. 그래서 미안해. 좀 더 자주 들여다봤으면 혼자 사과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기준이 좀 애매했나. 아슬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앞으로는 내가 좀 더 주의를 기울이도록 할게. 항상 열심히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일이 터지는 것 같아. 내일이면 직장에 터졌던 코로나 폭탄 문제가 좀 진정될 참이야. 어쩜 이렇게 뭐가 꼬이는지. 뭘 해야겠다고 마음 먹으면 생각치도 않았던 일이 툭 튀어나와서 가로막는 기분이야. 좀 지칠 정도로. 잘 지내고 있을까, 레아주. 미안해서 이런 인사 전하는 것도 조심스럽게 돼. 백신은 괜찮았어? 부디 별 일 없었기를 바라. 잘 지내고 있었으면 좋겠다. 나 금방 또 올게. 잘 자.
새로운 날이 밝았다. 어제와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었지만, 에반젤린에게 있어서는 새로 태어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달라진 날이기도 했다. 더이상 망설이지 않기로 했으니까. 에반젤린은 예복을 갖춰 입고 회의실로 들어서는 순간까지도 간밤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제국의 찬란한 태양, 에반젤린 셀린느 황제 폐하 드십니다.
수많은 허례허식과 불필요한 관례들을 없애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공적인 자리에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온갖 수식언과 왕림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붙여 표현하는 것 또한 그랬다. 이게 최소한의 예식이라는 시종장을 말을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에반젤린도 포기한 부분이었다. 문이 열린 넓은 틈 사이로 들어선 에반젤린의 걸음은 거칠 것이 없다는 듯 빠르고 곧게 옥좌를 향해 나아갔다. 황궁 내부와 각종 부서를 담당하는 관료들과 귀족들이 모두 모인 곳이었다. 그러나 대전 안에 자리한 귀족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깊게 숙인 채여서 에반젤린의 시야에 걸리는 것은 그들의 정수리 뿐이었다. 에반젤린이 옥좌에 엉덩이를 걸치고 문이 닫힐 때까지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장내를 훑듯이 둘러본 에반젤린이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톡톡 두들겼다.
고개들 들지.
모두가 일제히 고개를 들고 허리를 펴는 모습은 마치 그들에게 걸려있던 마법이 풀리는 것처럼 보이는 광경이었다. 에반젤린의 말 한 마디면 저들은 다시 주문에 걸린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그 자세 그대로 몸을 굳히리라. 그리고 자신의 숨소리가 지나치게 크지는 않은지 걱정하겠지. 이게 바로 권력이었다. 만인의 위에 군림하는 하나의 존재란 이다지도 커다란 것이었다. 그리고 에반젤린은 그런 것에 휘둘리지도, 짓눌리지도 않을 정도의 강단을 갖춘 사람이었다. 초연해 보이기까지 하는 눈빛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것이 귀족들에게 더한 압박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반젤린은 덤덤한 투로 말을 꺼냈다.
오늘부로 황궁에 내린 경계령을 해제한다.
근위기사단장의 피습에 대한 처분이 내려진지 3일도 채 지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연루된 자는 황궁으로 끌려들어왔고, 주동자인 백작과 그의 일가는 황궁의 지하 감옥에 투옥되어 있었다. 조만간 그들의 목이 잘려 성앞에 내걸릴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대귀족들은 황제의 숨겨진 힘인 그림자들이 끊임없이 정보를 모으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고, 남들보다 권력에 한 발짝이라도 가까운 이들 또한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아마 지나치게 경직된 현재의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해소한 후에 그 빈틈을 노리려는 것일 테지. 누군가는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얼굴에서 자연스럽게 표정을 지워내는 가운데, 에반젤린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수확제를 대신할 축제를 열지. 기간은 일주일 뒤부터 한 달간 진행하는 걸로 하겠다.
이 또한 갑작스러운 이야기였으나 받아들이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장내를 짓누르던 공기의 무게가 한층 가벼워진 것처럼 몇몇 관료들과 귀족들이 숨을 토해냈다가 급히 입을 다물었다. 황궁에서의 일이 제국 전체에 퍼져나가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경직된 분위기와 긴장은 자세한 사정 보다도 빠르게 알려지는 법이다. 신민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었고, 적절한 조치였다. 물론 황제의 본심이 어떤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대전에 자리한 대다수는 안도하고 있었다.
준비하도록. 보고는 관련 청의 대신들에게 받는 걸로 하겠다. 이상.
받들겠습니다. 합창하듯 이어진 귀족들의 화답과 다시금 숙여진 고개를 내려다 본 에반젤린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처음과 같은 걸음걸이로 대전을 벗어났다. 그 뒷모습조차 눈에 담기 어렵다는듯 떨어진 시선들은 에반젤린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올라오는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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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생각해 축제를 다시 열겠다고 말은 했으나 에반젤린의 속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였다. 기사단장의 직위는 해지되지 않았지만, 축제의 시작에 맞춰 건재함을 드러낼만한 공적인 자리에 설 정도로 레아의 몸이 멀쩡하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병상에 누워 있을 레아의 모습을 떠올리는 에반젤린의 눈빛이 새파랗게 빛났다. 백작 일가의 심문은 이안 슈펠리드가 직접 맡고 있었다. 그 휘하의 일원은 필요하다면 고문쯤이야 눈빛 하나 바꾸지 않은 채로 해치울 정도로 단단한 이들이었으니 머지 않아 결과가 나올 터였다. 하지만 에반젤린은 그들에게서 얻어낼 사실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혹시 또 모르지. 의외의 순간에 커다란 것을 얻어낼 수 있을지도. 심증이야 잔뜩 있었지만 그런 것으로 모든 일을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제국은 녹록치 않았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권력을 손에 쥐고 있지만, 어떤 순간에 어떤 일로 잃어버리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분명 이번 일을 저지른 배후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 만약에 그 꼬리라도 잡아챌 수 있다면 에반젤린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반드시 대가를 치루게 하리라. 그리고 그 다음에는, 아슐레아와.
'결혼할까.'
쉽게도 튀어나왔던 말이 다시금 삼키고 나자 묵직하게 자리 잡았다. 정녕 불가능한 일인가? 사건의 배후와 축제, 그 외의 대소사를 생각하는 와중에도 에반젤린의 머릿속 한켠에는 그런 생각이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었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란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거기에서 포기할 성격이었다면 애초에 황제가 되지도 못했을 일이었다. 만약에 결혼식을 올린다고 한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 먼저 후계에 대한 일이 발목을 잡을 것이었다. 입양? 하급 귀족가에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같은 황족의 방계를 데려오는 것조차 문제가 될 여지가 있었다. 에반젤린은 정말로 불가능하다면 따로 씨를 받아 후계자를 잉태할 생각까지도 하고 있었다. 그 후에 외척으로 성장할 여지가 있는 첩의 가문은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 정리하면 되지 않겠나. 지나치게 폭주하는 생각에 에반젤린은 쓰게 웃었다. 아슐레아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여 줄 것이라는 믿음이 바닥에 깔리니 이런 생각조차 쉽게 가지를 치고 자라나게 된다. 또다시 혼자서 생각하고 있었구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하며 에반젤린은 레아가 머물고 있는 별궁을 향해 걸었다.
느리지만 조금씩 풀어지는 분위기를 눈치라도 챈 건지 맑게 개인 날이었다. 이런 날에는 말을 타고 달리면 생각이 쉽게 정리되기도 했다. 제법 매섭게 스치는 바람을 맞다 보면 머릿속의 잡념이 사라지고, 골몰하던 문제의 해답이 그 결을 타고 들어오는 것처럼 여겨진다. 함께 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또다시 가라앉으려는 기분을 애써 잡아채며 에반젤린은 걸음을 재촉했다. 필연적으로 정원을 가로지르게 되어있는 구조의 별궁이었다. 황궁과 이어진 곳임에도 불구하고 넓게 펼쳐진 정원이 마치 어떤 자연 경관 안에 들어선 것처럼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역대 황제들이 그러했듯 에반젤린 또한 특별히 마음에 드는 곳이기도 했다. 허락 받지 않은 이는 근방에 접근조차 할 수 없고, 내부에는 어떤 마법적인 조치가 취해져 있어 특별한 징표를 지니지 않은 이는 별궁에 도달할 수 없는 곳이었지만 에반젤린은 망설임 없이 들어섰다.
궁에 가까워질수록 에반젤린은 조바심이 들었다. 한시라도 빨리 레아를 보고 싶었다. 아니. 가능하다면 한순간도 떨어지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진정해. 에반젤린은 자기 자신에게 속삭이며 정원을 벗어나 궁 앞에 이르는 길에 들어섰다. 그리고 걸음을 늦췄다. 그곳에 레아가 있었다. 혼자서 몸을 일으키기는 어려운지 수행하는 시녀가 끄는 의자차 -휠체어- 에 몸을 기댄 채였다. 에반젤린은 아까와는 다르게 느린 속도로 한 걸음씩 레아에게 다가섰다. 시녀와 그 옆에 함께 하던 기사들이 허리를 숙이는 사이 에반젤린은 레아의 앞에 선 채로 웃었다. 그곳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마주할 수 있는, 눈부시도록 환하게 빛나는 미소였다.
응. 그러면 될 것 같아.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하루야. 괜히 들어간 술 덕분에 졸린데 잠이 안 와. 레아주는 오늘 하루도 잘 마쳤을까. 나도 레아주랑 레아 정말 정말 좋아해. 아슐레아 최고야. 좀 더 많은 걸 보여줘야 하는데... 오늘도 고생 많았어, 레아주. 잘 자.
앗. 나도 모르게 레아주라고 나메에 적고 있었어. 나도 언제나 좋아해. 이제 진짜 코로나 판데믹이 잦아드나봐. 일이 너무 바빠. 솔직히 너무 우울해... 으으, 레아주. 벌써 토요일이 끝이야. 잘 있었어? 잘 지내? 날 추운데 어디 아픈 곳은 없구? 따뜻한 거 잘 챙겨 먹고 겨울 간식도 이제 슬슬 나올 때니까 챙겨 먹구. 좋아하는 거 있어? 아무튼, 레아주. 오늘도 고마워. 답레는 천천히 줘도 괜찮아. 여기까지가 갱신.
실시간 이야기? 언제나 마음속 깊이 교감하고 있다... 오늘은 그렇게 바쁘지 않았는데 잠을 오래 오래 잤어. 쉬는 날 잠을 좀 몰아서 자거든. 지나치게 오래 자나? 그래도 뭔가 다른 걸 하는 것 보다는 컨디션에 도움이 되는 기분이야. 레아주는 뭐 하면서 보냈을까. 지금도 좋은 시간 보내고 있나.
나도 보고 싶었고, 좋아해. 많이 그래. 이제 슬슬 코로나 관련해서 제한되었던 것들이 풀리는 바람에 그나마 조금 느긋했던 것에 적응해버렸던 몸이 과부하가 걸리는 중이야. 코로나... 나쁘지 않았을지도. 이런 말 하면 안 되겠지? 아무튼, 일이 좀 더 바빠져버렸어. 레아주도 바쁘다니까 괜히 안쓰럽고 더 기운 냈으면 좋겠고 그래. 으으. 파이팅이야. 답레는 천천히 적어줘. 주말에 좀 쉬어야 하면 넘어가도 되는 거고. 걱정 마. 오늘도 좋은 하루 보냈으면 해.
언제나 몸을 움직이는데 익숙했던 아슐레아였지만, 휠체어 위의 생활도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좋은 모습일지, 아니면 안 좋은 모습일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 이렇게 지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번 망가진 몸은 지난 날의 고생을 떠올리기라도 한 듯 회복이 더뎠으니까. 아슐레아도 처음엔 조급한 마음을 먹을 뻔 하기도 했지만 지난밤의 에반젤린을 떠올리면 자신이라도 흔들리지 않고 옆에 있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애써 현 상황을 받아들이려 애쓰고 있었다.
수하 기사들의 도움과 에반젤린이 붙여둔 시녀들 덕분에 번거롭거나 한 것은 없었지만, 역시 자신은 이렇게 얌전히 앉아있는 것이 익숙치 않다는 것을 몇번이고 느끼고 있었다. 햇살이 밝은 정원에 나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것도 잠시,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발소리에 입가에 조심스레 미소를 머금는다. 그리곤 그 발소리의 주인이 확실해졌을 때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았다.
" 고생하셨습니다, 폐하. "
몸이 잘따라주지 않아 예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하는 휠체어 위에서의 인사였지만, 에반젤린이라면 그런 것은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기에 차분히 미소를 지어보일 뿐이었다.
" 저도 그러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유난히 날이 화창하니.."
기사들에게 눈짓을 하자 모두 다시 열을 맞춰 정원을 빠져나갔고, 휠체어를 끌어주던 시녀 하나만 남아 두사람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슐레아는 시녀도 내보내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남겨두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황제의 의중이었기에 살며시 눈웃음을 띈 체 에반젤린을 올려다 보았다.
" 폐하, 산책은 둘이 하는 것이 좋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이 아이도 같이 데려가는 것이 좋으시겠습니까?"
자신의 휠체어를 끄는 시녀가 갓 궁에 들어온 신입이라는 것을 에반젤린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가벼운 대화를 나누어 알게 된 아슐레아였기에, 바싹 긴장을 한 시녀를 배려하듯 가볍게 손을 뒤로 움직여 시녀의 손을 매만져주며 상냥하게 에반젤린에게 물음을 던진다. 에반젤린이 보라는 것처럼 대놓고 만진 것은 어쩌면 질투를 유발하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아슐레아만 알 사실임은 틀림없었다.
으응. 미안. 내년에는... 꼭 퇴사해야지. 그럼 더 오히려 더 바쁠려나. 으으. 레아주는 잘 지내고 있어? 나는 자꾸 잠이 모자란 것만 빼면 다 그냥 그래. 조금 답답하지만 언제나와 비슷한 정도. 날이 한순간에 겨울이 되어버렸어. 어디 나가지 말고 집에 틀어박혀 있고 싶지만 그건 무리니까. 레아주도 잘 챙겨입고 다녀. 감기 조심해야 한다?
같이! 막! 이야기! 일 진짜 너무 바빠. 코로나 끝났어? 말도 안 돼. 항상 멍해... 나도 레아주랑 이야기 하고 싶다. 실시간 대화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지만... 이번 주는 어땠어? 별 일 없었어? 잘 보냈는지 모르겠다. 항상 궁금해 하고 있어. 자꾸 늦게 들어오고 하니까 미안해서 답도 못 하고.
자기소개 아니야? 주어가 바뀐 것 같은데. 매번 같은 얘기의 반복이지만 이렇게 늦게 답 줄 때 미안하고 레아주가 지쳐서 떠나버릴까 싶어서 항상 겁 먹어 있으면서도 레아주가 대답해주면 반짝 기분 좋아져. 응, 그래. 못난 상대지만 이렇게 함께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나도 별일은 없어. 감기가 올락말락 하는 것 말고는 다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