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가 열리고 혼란스러웠던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강해져야만 했습니다. 강해진다는 개념에는 물론 의념을 각성한다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게이트의 존재들에게 익숙해져야만 했습니다. 안해찬은 게이트 사건 당시 이제 갓 사회에 나서기 시작한 부검의였습니다. 갓 꿈을 가지고 출근하였던 날, 게이트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 뒤는 살아남기 위한 연속이었습니다. 부상자들을 의료 지식으로 치료하면서도 때때로 죽은 몬스터들의 시체를 연구하기도 하던 그는 대형 게이트의 보스의 시체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의념을 각성하였습니다. '해체'. 의념을 통해 갖가지 몬스터들의 약점을 알아내어 그는 전세계에 자신의 지식들을 풀어내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적에게도 위험을 감수하며 전투를 해야만 했던 의념 각성자들은 강적을 상대하는 것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의념 각성자의 생존률을 증가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면을 보면 그는 서포터 포지션을 맡고 있을 것만 같지만, 놀랍게도 현역 시절 그의 포지션은 랜스였습니다. 한 자루 메스를 들고 적의 약점을 후벼파며 아군의 창이 되었던 그를 아는 가디언들은 '헤체자'라는 이름 대신 '약점 포식자'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물론 지금은 학생들에게 너그러운 선생님이자 가디언시절 가장 친절할 것 같은 선배의 이름을 꼽으라면 세 손가락 안에 들긴 하지만, 전시 시절의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런 학생들의 모습에 껄껄 웃음을 짓곤 합니다.
희미하게 웃자 지훈 역시 안심의 표정을 짓더니, 다림의 손을 잡은 손에 조금 힘을 줘서 꽉 잡으려고 했으려나? 아프지는 않을 정도로 잡았겠지만. 그러길 바란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체했을까. 다림이 자신을 이해해줬다고 믿었겠지.
" 어째서? "
눈을 피하자 살짝 놀란 눈치로 다림을 바라보았다. 다림이, 자신을 싫어할 이유가... 장난친 것 외에 더 있던 건가? 아니면 싫어하지 않기에 오히려..? 잘 모르겠는지 다림에게 묻긴 했지만, 이내 답을 할 거라면 자신의 시선을 피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하고는 별로 답을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작게 한숨을 내쉬었으려나.
" 파라솔... "
잠시 가라앉은 분위기를 내비치다가, 다시 약간 밝아지고는 "그것도 좋네." 라며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괜찮은 파라솔이 꽂혀있는 곳으로 가서, 다림이와 나란히 앉으려고 했을까?
Salvia: [ 음... 유지 못하면... ] Salvia: [ 운영비가 없어서 폐교된다던가... ] Salvia: [ ...그런 일은 없겠지. ]
Salvia: [ 그리 친하지 않은 거였구나. ] Salvia: [ 쌍둥이지만 다르다는 걸까? ] Salvia: [ 그러고보니 사람은 비슷한 걸 볼수록 차이점을 더 많이 찾을 수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아. ] Salvia: [ 예를 들면... ] Salvia: [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차이점을 말할 수 있어? ]
Salvia: [ 후회 없는 시간이란 게 있을까... ] Salvia: [ 그래도, 청천이도 꼭 그랬으면 좋겠어. ]
"싫어하진 않아요." 싫어했다고 해서 그걸 말했을까.. 는 의문이라고 해도, 싫어하지 않았으니 아무런 의미도 없는 가정입니다. 힘을 줘서 꽉 쥐려고 하는 지훈을 바라보면서 혼란에 찬 눈을 가리려는 듯 꾹 감았다 뜹니다. 잔잔한 물처럼 다시 가라앉히고는 어째서? 라는 물음을 묻는 지훈을 바라봅니다.
"친구..인 건 맞아요. 하지만 지금은.. 혼란이.. 있어요" "...지훈 씨는..." 묶여서 끊을 수 없다고 하셨던가요? 라고 일견 관계없는듯한 말을 입 밖으로 내보내려 합니다. 저는 그런 관계를.. 잘 모르겠어요. 정말로 수단으로 쓰는 것에 만족하시는지. 아니면 그 수단조차도 포장지인지.라고 중얼거립니다. 아니요. 사실 다림은 그런 수단간의 관계를 모르지 않습니다.
"..." 파라솔 아래에서 다림은 고개를 무릎에 파묻고 웅크린 채로 다림은 지훈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뭐. 회피하기 위해서 발악하는 자세지만.. 회피한다고 해서 다 능사가 아닙니다. 애초에.. 그럴 거면 손을 잡지 말았어야 했으니까요.
그리고 그 시각. 아프란시아 성학교에서 역시 학생들에 대한 토의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청월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긴 했습니다. 청월이 학생들에 대한 분석에 가까웠다면 아프란시아는 학생들에 대한 감상에 가까웠으니까요. 해석학의 남궁주하, 가디언 전투학의 서혜찬, 일반 인성론의 인량은 책상 위에 올라온 서류들을 살피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가장 먼저 인량은 손에 잡힌 서류를 보고 말합니다.
" 카사. 이 아이에 대해 아는 게 있는 분 있으십니까? " " 걔가 또 무슨 사고라도 쳤어요? "
혜찬은 혹시 하는 표정으로 인량을 바라보지만, 인량은 고갤 젓습니다.
" 아닙니다. 다만 영성이 D였다가 C로 증가한 것을 확인하여 묻고자 한 것입니다. " " 그거요? 뭐.. 영성이 D에서 C로 증가하는 사례가 적은 거는 아니잖아요? " " 그게.. " " 헌터면 모를까. 가디언 후보생이 D로 어떻게 입학한 거야? "
남궁주하는 모르겠단 표정을 짓습니다.
" 아니.. 그건 대비하고. 워리어인데 신속이 S? 신체는 A? 근데 건강은 B라고? 이 녀석 워리어 맞아? 랜스가 아니라? " " 의념기가 변화지속형이라 그런 것 같긴 합니다. " " 아니. 그건 넘어가고. 일단 기본적인 것부터 따져보자고. 신속 빠르다. 좋지. 근데 이렇게 신속이 빠르고 건강이 낮은 애들로 주로 발생하는 문제가 있어. 뭔지 알아? "
혜찬은 안다는 듯 고갤 끄덕입니다.
" 어그로 관리가 취약하다. 그런데 이 녀석 어그로 계통 기술은 하나도 없고 기술이 기습, 재생, 의념을 이용한 변화. 의념기까지 전부 공격적인 형태. 그냥 랜스가 하고싶었는데 맞는 데 취미 들려서 이런 거 아냐? " " 말이 심하십니다. 남궁주하 선생님. " " 심해? 심한 건 학생 상태야. "
쿵. 하고 안량은 세게 책상을 칩니다.
" 1학년입니다. 학생이고요. "
그 말에 남궁주하는 맘에 들지 않는단 표정을 짓습니다.
" 학생의 발전 방향은 학생이 정합니다. 그리고 교사는 그에 맞는 길을 찾아줘야 합니다. 그게 교사의 역할이니까요. " " 그럼 전.. 이 녀석에게 어울리는 거는 기합과, 실전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의념기의 이해.. 일까요. 이 녀석. 의념기에 대한 이해가 크게 떨어지다 보니 단순히 '변화'에만 집중합니다. 그래서 망념 증가량이 되게 커요. 지금까지는 어지쩌찌 버텼다 치지만. 지금부턴 아니라고 생각해요. " " 아이언 스킨을 배울 필요도 있겠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워리어다운 방어력의 필요성. 이런 타입은 남의 말을 죽어도 안 들으려 해. 자기 좋은 대로 성장방향을 정하지.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생각해. "
그 말을 가만히 듣던 혜찬은 한 마디 흘립니다.
" .. 확실히 청월이었으면, 이 학생도 조금 확실한 지원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군요. " " 뭐. 그런 말은 넘어가자고. 자. 다음 학생 데이터 들고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