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를 돌아본 청천은 진화가 뒤쳐지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자 잠깐 멈춰섭니다. 이런, 조금 신나서 속도를 내버렸네요. 진화의 감탄한 표정을 보고 그는 또 다시, 후후, 웃습니다. 그러면서도, 멀쩡한 것을 보면 건강 능력치는 과련 그런대로 있는 걸까요, 라고 그는 조용히 추론해봅니다.
"은신 특화라,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의념기도 그 쪽이고요."
진화가 그를 어느정도 따라잡자, 그는 진화를 마주보며 슬슬 뒷걸음을 치다가. 조금 속도를 늦춘 채로, 다시 앞을 보며 걷습니다. 조금 멀리, 건물들 사이에 보랏빛에 둘러싸인 큰 나무가 보입니다.
"다만 은신 자체는 전투에 활용할 곳이 많지 않으니...다양한 상황에 써먹기 좋은 기술들이나, 디버프를 수련해볼까 합니다."
일류무사 마양을 상대할 때는...하필 그녀가 사용하는 식신들이 식신들이라(*) 의념이 의도와는 다르게 반응했었지요. 하지만 그런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것저것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무기는 본래 케인 소드를 썼는데...아쉽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건 아이템화되지 않은 것이라서, 아직까지는 학교에서 지급받은 검을 쓰고 있습니다."
청천은 걸으면서 계속 말합니다. 큰 라일락 나무가 점점 가까워져 옵니다.
//15번째. * 청천이 참가한 파워에이드 파티가 상대한 일류무사 마양은 식신들을 소환해 다루는 주술사였습니다. 청천은 디버프를 걸 목적으로 검에 의념 속성을 싣어 마양의 식신들 중 하나인 마탕귀에게 휘둘렀습니다만, 디버프가 걸리지 않고 대신 마탕귀의 살덩어리 하나가 딸려나오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여러 묘사로 비추어볼 때 마양이 부리는 식신들은 인간의 육체 또는 혼이 변질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그 중 마탕귀는 죄인들을 희생시켜서 그들을 합쳐 만들어진 군집체형 몹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청천의 의념은 자유를 잃은 채 마양의 계약에, 그리고 마탕귀에 매여있던 인간의 혼에 반응했던 것입니다.
워리어도 나름대로 종류가 있다고 들었다. 결국 전선에서 나가 싸우는 이상, 나름대로의 전투력이나 공격력을 갖추는 사람도 적지 않겠지. 그러나 나는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막아내는 가디언'. 오로지 적의 공격에서부터 아군을 지켜내는 방패. 내가 추구하는 것은 결국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보면 이러니 저러니 해도 몸이 튼튼한 점은 다행으로 생각한다.
"헤에, 장소에 도착하면 서로 보여줄까? 추측해보자면....자기 자신의 존재감을 지운다거나?"
여유로우면서도 장난스러운 태도로 말하는 청천이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시야에서 보랏빛 나무가 비췄다. 응. 저 정도 거리라면 전력질주의 페이스로 끝까지 갈 수 있겠다. 지구력 훈련을 하는셈 치고 계속 달려보자.
"그건 그럴지도. 기습을 시작하거나 전투를 피하는덴 유용하지만, 싸우는 도중엔 모습을 감추는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네. 청천이가 랜서 지망이라 기척을 감춘체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수 있다면 조금 다르겠지만, 그건 괴도라기 보단 암살자고."
과연. 어쨌거나 자신의 의념을 살리면서도 이래저래 보충할 방법을 생각하고 있구나. 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대답하며 대화를 이어나가면서, 나는 내심 스스로에 대해 고민했다. 나의 경우엔 뭐라고 설명해야할까? 나 자신도 솔직히 명확하지 않은데. 그나저나 청천이에게도 설명하겠지만, 오로지 방어만을 목표로 하는 워리어에 은신특화 서포터인가....벌써부터 잘 알지 못하는 랜서 친구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들려주는 것만 같다.
앞의 문장은 서로 의념기를 보여주는 것에 대한 수락이고, 뒤는 의념기에 대한 추측이었죠. 청천은 중간중간 뒤를 돌아보며, 열심히 쫓아오는 진화를 지켜봅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의념기에 대한 진화의 평가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합니다.
"음, 그렇죠. 아무래도 그런 용도로 쓰기엔 상당히 애매한 게, 의념기를 쓰는 동안엔 움직일 수 없거든요. 뭐, 어딘가에는 유용하게 쓰이겠지요."
그러리라 믿고서, 청천은 기회가 되면 의념기를 한 번씩 써 보곤 했었지요. 한 번씩 수련삼아 써보기도 하고...언젠가는 제노시아의 교장 선생님 앞에서도 썼었죠.(*)
"그래도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편이 좋겠죠. 제가 한 신속 한다고 말씀드렸던가요?"
라일락 나무에서 5m쯤 떨어진, 공원의 입구 부분에서 청천은 멈춰섭니다.
"전투 중에는 빠른 신속 능력치를 활용해 다른 포지션을 보조하려고 생각 중입니다."
//17번째. (*) 술자리 왕게임 게이트 단체일상을 돌려서 시트캐들 몇몇이 꽐라가 되자...캡틴께서 제노시아의 카즈시 교장선생님을 데려오셨습니다. 순찰 돌다 게이트를 발견하고 들어왔다는 설정으로요. (!) 청천이는 이 때 놀라서 의념기 켜고 숨었지만 레벨 차이로 인해 통하지 않았대요 얼레리꼴레리. 그래도 좋게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