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감사합니다 ] -> [ 저도 제 뿔이 참 마음에 들어요 ] -> [ 뿔이 있어서 입을 수 있는 옷이 한정된다는 부분이 걸리지만 ] -> [ 입어본 적이 없으니까 얼마나 편할지는 모르겠네요! ]
어...? 탈착 가능한 게 아니었어? 순간 다른 사람한테 넘기지 않으면 벗을 수 없는 뿔을 가지고 고민하던 얼굴 없는 여성 가디언이 딸내미가 좀 크고 의념을 각성하자 뿔을 떠넘기는 광경 같은 게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아니... 설마. 아무리 그래도 그 전까지 뿔 없이 입을 수 있는 옷을 안 입어봤을리가... 하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뿔을 가지고 태어났다=라는 전개면 어머님이 사슴이셔야 하는데... 용입니다. 결국 결론은 어머님이 참 나쁜 가디언이었다... 라는걸로.
[ 많이 불편하셨겠네요... ]
라는 쪽지를 쓰고 보내려다가 또 온 두 줄의 쪽지를 보고 멈칫했다. 그리고 아래에 덧붙여 보낸다.
착찹한 표정으로 하루를 올려다보는 한 마리의 짐승이자 소녀, 카사. 카사의 단점을 애써 부드러히 포장해 나에게 얘기하는 너는 그 만큼 가증스럽기도 하고, 그 만큼 밝게 빛나 사랑스럽기도 한다.
하루. 그런 네가 밉다. 그런 네가 좋다.
어떠한 감정을 단정하기엔 우리가 얘기하는 몇십년은 내게 상상도 가지 않는 길이의 시간이다. 이미 두 십년을 향해 걸어가는 나에겐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까마득하게 멀고도 긴데, 앞으로 생각할 수십년은 또 어떨까. 누군가가 바다를 생각해도 보통 깊디 깊은 심해까지 상상력이 닿지 않는 것 처럼, 그 앞은 까마득하고도 먼 암흑 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어차피 어둠속에서 길을 헤메 나아갈 것이라면, 너의 상냥한 손에 이끌려 길을 잃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옷깃을 끌어당기는 하루의 손을 바라보며 카사는 그리 생각했다.
"열심히 해야할꺼야. 나에게 네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가르치려면."
가디언 칩 이후로는 내 스스로 목줄을 차게 될줄이야 전혀 생각해본적 없는 데.
하루, 나는 너를 믿지 않아. 너를 믿을 수 있을 만큼 나는 너를 깊이 알지도 않고, 같이 보낸 시간도 길지 않지. 네가 말하는 감정, 그 행동, 그 모든 것을 나는 이해하지 못해. 모르는 환경에서 만난 모르는 너. 그리고 모르는 것은 무서워.
하루, 나는 네가 두려워.
그래도 지금부터 알아갈수는 있겠지. 지금부터 믿어갈수는 있겠지.
나의 목을 옥죄일 너의 손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겠지. 시작이었으면 좋겠어. 그런 작은 소망을 담고서, 카사는 하루에게 배운데로, 작은 '기도'를 올렸다.
자신을 옷깃을 강하게 움켜진 그녀의 손에 머리를 기울여, 입술을 꾸욱, 부드럽히 누르고 떼는 식의 기도.
입술을 떼기 무섭게 하루의 몸이 카사를 따뜻히 감싸안는다. 그 온기에 기대 슬며시 눈을 내리깐다.
"많이 어려울꺼야. 그러니까 힘내, '주인님'."
어울리지 않게 장난을 치며 이가 씨익, 드러난다. 툭툭, 가볍게도 하루의 등을 한두어번 두드리고, 고개를 든다.
"...그럼 이제 보건실 가는 건 어때?"
튼튼한 워리어는! 건물 창문에서 맨몸으로 굴러 떨어져도 괜찮다!(아님) 하지만 연약한(아님) 하루는! 뼈가 몇가지 아작났다 해도 안 놀라!
바다는 가볍게 답장을 써주고는 에릭 하르트만을 모른다는 사실에 안심하였다. 만약 눈 앞의 상대가 에릭과 지인이라면, 수상할 정도로 뿔을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고, 그 둘이 서로 알고 지낸다는 의미가 아닌가. 그리고 방사성 물질은 한번에 다량이 있을 수록 위험도가 제곱이 되는 법이다.
자신에게 강렬한 입맞춤을 남겨주는 카사를 홀린 듯, 바라조고 있던 하루는 자신을 끌어안는 카사의 품에 살며시 기대곤 작게 속삭인다.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고난과 역경도 함께 따라올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젠 그것이 하루의 사랑에 제동을 걸 방해물 따위는 될 수 없었다.
" .... 카사.. "
이렇게 좋은 분위기에 보건실이라니, 하루는 카사를 가늘어진 눈으로 올려다보며 '이게 바로 첫 어려움인가요' 하는 생각을 하면서 넌지시 이름을 부른다. 할말이 많은 듯, 자그마한 하루의 입술이 달싹였지만, 일단 두사람의 꼴이 밖에 있을 몰골은 아니었기에 지금 당장은 입을 다물기로 마음 먹는다.
" 카사랑 제 치료는 제가 할테니꺼 저 좀 안아서 제 방 앞으로 데려다주세요, 카사. "
부탁한다는 듯, 살며시 카사의 목덜미로 파고든 하루가 살며시 입술을 맞춰주곤 나긋하게 속삭인다. 카사와 단둘이 오랜만에 보낼 시간을, 보건실에 낭비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조금 무리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이 치료하고 말겠다는 생각을 하는 하루였다. 자신을 데려다달라는 말을 하는 것도, 이동을 하는 체력까지 긁어모아 치료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 같이 제 방에 가서 치료 하고, 샤워도 하고, 같이 편하게 쉬기로 해요. 주인의 말, 잘 들을거죠? "
다음에 목줄도 사올까 싶네요, 하루는 고혹적인 목소리로 속삭이며 카사가 자신을 안아들기 좋게 팔로 카사의 목을 감싸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