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천은 묵묵히 진화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자신이 원래 대화를 이렇게 좋아했던가, 싶긴 하지만 생각해보니 들어주는 건 그렇게 싫어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가디언넷의 청월고교생들이 그렇게 학교 부심이 쩔었던 것에는 청월의 실력주의 분위기도 한 몫 한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입을 열까 하다가 진화가 머리아파하는 걸 보고는 그냥 잠자코 듣습니다. 역시 청월고 이야기는 진화 앞에선 적당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싶었으니까요.
"나름대로 복습도 하고 실전도 뛰어보고 했는데요...음, 저도 시험 공부는 아직...."
시험 준비 잘 되어가냐는 질문에. 청천은 약간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돌립니다.
"그래도 제 기억에 입학 시험은 '아는 대로 전부 쓰시오'같은 것도 있었으니까요. 실기 비중도 그럭저럭 있으니까...대놓고 포기하시지만 않으신다면 나쁘지 않을지도 몰라요."
입학 시험 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합니다. 그러고보니 의뢰 준비 이야기가 나왔었죠?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지훈주는 모드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도 지훈이는 몰랐으니... 어떤 것이 뒤집히고, 조절되고.. 하는 건지 전혀 감이 안 잡혔으려나.
" 상해를 입히는 건 그만둬야겠네. "
다른 사람에게 들키면 정말로 곤란하니까... 같은 생각을 했으려나? 상해를 입히는 종류는 너무 명확했으니까. 접촉 종류라면 몰라도..? 다림 목에 있는 자국을 손끝으로 가볍게 두드렸으려나. 자연스레 끌어안기자 잠시동안 꽉 끌어안다가 이내 숨 막힐지도 모른다는 말에 놔주고는
" 숨 막히면 곤란하니까... "
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답답하게 하려는 거였지 숨이 막히는 건 상정 외기도 하고... 애초에 괴롭히려는게 아니었으니.
" 사람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좋았으려나. "
"무슨 생각하는지 대신 봐줄 수 있잖아." 라는 말을 하며 목에 매달리듯 안기자 잠시 고개를 휘청거리다가도 곧 안정적으로 안고있는 자세를 했겠지.
머리를 짚던 도중 배려심 있는 시선에, 아차 싶었다. 불쌍하고 궁상스러운 과거를 가진 선배와 그걸 고려해서 화제를 배려해준 후배라니. 눈물나게 고맙지만, 그 상냥함이 조금 아프다. 도대체 누가 선배인거지. 선배로써의 위엄은 어디에 간걸까. 그러나 이걸로 또 쭈그라들면 그 배려를 걷어차고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 뿐이다. 한숨을 내쉬곤 다음 화제에 집중하자.
"헤에, 복습과 실전? 상당히 열심히 하는편이구나. 대단해! 어떤 내용들이었어?"
개인적으론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물어보았다. 이 학교의 분위기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르고.
"으그극, .대놓고 포기...할까 싶은 생각도 아주 없지는 않은데. 차라리 실기를 노린다던가......하아. 실은 친한 친구는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아서. 그래도 조금은 해두는게 나을까 싶기도 하고. 어렵네. 해야되는게 너무 많아."
어렵다! 몸이 두개였으면 좋겠어! 아아, 1학년때 난 도대체 뭘 한거야! 어디 농구만화의 인물이라도 된 것 같다. 후우.. 나는 그렇게 후회 섞인 푸념을 후배에게 털어놓았다. 이미 선배의 위엄이고 자시고는 어디에도 없었다.
휴식은 상관없지만 괜히 설렁설렁한다던가... 하는 건 곤란하다. 그러지 않도록 같이 공부하는 거니까.
"떨어트리는 건 높은 랭크의 의념사를 이용하면 회수할 수 있을 것 같고, 파손이 생긴 경우엔 확실히 전투를 이어나가기 어렵겠네. 장비 정비를 배운 서포터가 있으면 좋을 텐데. 방패가 주는 영역을 파고들 수 있는 적이 있다면... 확실히 방패로는 대처할 수가 없을 것 같아. 랜스나 서포터가 도와주길 기다리는 것 외엔."
이것저것 길게 생각...
"방패를 가지고 있어도 막을 수 없는 공격을 상대로 할 때는 그렇게 하고, 상대가 방패로 막을 수 있는 공격을 한다면 막아내면서 카운터를 날리는 느낌으로 하면 어떠려나. 아니, 맨손은 범위가 너무 짧아서 맨손으로 공격을 하려면 초근거리여야 하구나. 자칫하면 방패의 영역 안으로 적을 끌어들이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렵다...
"상성이 안 맞는 거구나."
하긴 신속이 느려지니깐.
"나도 기쁘지만 이렇게 느리게 먹고있잖아?"
나도 느린건 아니긴 하지만.. 진화에 비교하면 느리게. 숟가락을 멈춘 진화를 보고 다시 먹으라는 듯 내가 먼저 식기를 움직였다. 양이 많을 정돈 아니다보니까 먹는 데만 집중하면 금방 다 먹을 것 같은데. 진화의 접시가 빈 만큼 따라잡기 위해 먹는 데 속도를 붙이기 시작한다. 빈 접시 앞에 앉아있게 할 순 없으니까.
-> [ 감사합니다 ] -> [ 저도 제 뿔이 참 마음에 들어요 ] -> [ 뿔이 있어서 입을 수 있는 옷이 한정된다는 부분이 걸리지만 ] -> [ 입어본 적이 없으니까 얼마나 편할지는 모르겠네요! ]
어...? 탈착 가능한 게 아니었어? 순간 다른 사람한테 넘기지 않으면 벗을 수 없는 뿔을 가지고 고민하던 얼굴 없는 여성 가디언이 딸내미가 좀 크고 의념을 각성하자 뿔을 떠넘기는 광경 같은 게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아니... 설마. 아무리 그래도 그 전까지 뿔 없이 입을 수 있는 옷을 안 입어봤을리가... 하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뿔을 가지고 태어났다=라는 전개면 어머님이 사슴이셔야 하는데... 용입니다. 결국 결론은 어머님이 참 나쁜 가디언이었다... 라는걸로.
[ 많이 불편하셨겠네요... ]
라는 쪽지를 쓰고 보내려다가 또 온 두 줄의 쪽지를 보고 멈칫했다. 그리고 아래에 덧붙여 보낸다.
착찹한 표정으로 하루를 올려다보는 한 마리의 짐승이자 소녀, 카사. 카사의 단점을 애써 부드러히 포장해 나에게 얘기하는 너는 그 만큼 가증스럽기도 하고, 그 만큼 밝게 빛나 사랑스럽기도 한다.
하루. 그런 네가 밉다. 그런 네가 좋다.
어떠한 감정을 단정하기엔 우리가 얘기하는 몇십년은 내게 상상도 가지 않는 길이의 시간이다. 이미 두 십년을 향해 걸어가는 나에겐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까마득하게 멀고도 긴데, 앞으로 생각할 수십년은 또 어떨까. 누군가가 바다를 생각해도 보통 깊디 깊은 심해까지 상상력이 닿지 않는 것 처럼, 그 앞은 까마득하고도 먼 암흑 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어차피 어둠속에서 길을 헤메 나아갈 것이라면, 너의 상냥한 손에 이끌려 길을 잃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옷깃을 끌어당기는 하루의 손을 바라보며 카사는 그리 생각했다.
"열심히 해야할꺼야. 나에게 네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가르치려면."
가디언 칩 이후로는 내 스스로 목줄을 차게 될줄이야 전혀 생각해본적 없는 데.
하루, 나는 너를 믿지 않아. 너를 믿을 수 있을 만큼 나는 너를 깊이 알지도 않고, 같이 보낸 시간도 길지 않지. 네가 말하는 감정, 그 행동, 그 모든 것을 나는 이해하지 못해. 모르는 환경에서 만난 모르는 너. 그리고 모르는 것은 무서워.
하루, 나는 네가 두려워.
그래도 지금부터 알아갈수는 있겠지. 지금부터 믿어갈수는 있겠지.
나의 목을 옥죄일 너의 손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겠지. 시작이었으면 좋겠어. 그런 작은 소망을 담고서, 카사는 하루에게 배운데로, 작은 '기도'를 올렸다.
자신을 옷깃을 강하게 움켜진 그녀의 손에 머리를 기울여, 입술을 꾸욱, 부드럽히 누르고 떼는 식의 기도.
입술을 떼기 무섭게 하루의 몸이 카사를 따뜻히 감싸안는다. 그 온기에 기대 슬며시 눈을 내리깐다.
"많이 어려울꺼야. 그러니까 힘내, '주인님'."
어울리지 않게 장난을 치며 이가 씨익, 드러난다. 툭툭, 가볍게도 하루의 등을 한두어번 두드리고, 고개를 든다.
"...그럼 이제 보건실 가는 건 어때?"
튼튼한 워리어는! 건물 창문에서 맨몸으로 굴러 떨어져도 괜찮다!(아님) 하지만 연약한(아님) 하루는! 뼈가 몇가지 아작났다 해도 안 놀라!
바다는 가볍게 답장을 써주고는 에릭 하르트만을 모른다는 사실에 안심하였다. 만약 눈 앞의 상대가 에릭과 지인이라면, 수상할 정도로 뿔을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고, 그 둘이 서로 알고 지낸다는 의미가 아닌가. 그리고 방사성 물질은 한번에 다량이 있을 수록 위험도가 제곱이 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