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해줄까라는 말에 눈을 크게 뜨면서 진화를 바라봤다. 화려한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니까, 평범한 요리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기숙사 식단이라던가 식당가 외식이라던가 있지만, 직접 만든 요리라는 건 묘한 느낌이 있다. 물론 요리사 분들도 직접 만들겠지만... 여럿을 위한 요리와 서툴지만 소수를 위한 요리의 묘한 차이랄까.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며 대답한다.
"그러면 나중에 진화가 차려준 식탁을 받아보고 싶어. 돈 내야 하려나?"
돈 얘기는 반쯤은 농담이다. 보통 이런 분위기에선 돈 내야 하냔 말을 들으면 대부분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대답하겠지만, 얻어먹는 입장에서 아무것도 안 내긴 뭔가 미안해진단 말야... 쿠키 정도라면 몰라도 요리까지 가면 더욱.
"좋아. 이대로 시킬게?"
그렇게 음식을 시켰으면, 기다리는 동안에 조금 얘기를 나눌 수도 있었을 것이고... 시킨 게 나올 만큼 시간이 지났으면 나눠먹기로 했으니 까르보나라 파스타의 3분의 1 정도를 먼저 앞접시에 덜어서 식탁 중간으로 밀어주려 했을 것이다.
>>763 에릭에겐 친구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탈선해도 그나마 그에게 '그래도 넌 할 수 있을거야' 라고 위로해주는 친구가 말이죠. 하지만 에릭은 그를 실망시킨게 미안하여 연락을 하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그의 소식을 들었던 것은 태양왕 게이트 도중 사망했다는 사실 뿐이었습니다. 에릭은 그의 죽음에 대해 알아가던중, 서포터인 그와 같이 움직이던 워리어가 비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듯한 시선으로 다림이를 바라보았을까. 저 위험해보이는 표정... 아까처럼 짓궂게 대하다가는 역으로 당할 것도 같았으니까.
" 감흥이 적어진다면 다른 것에 잠시 눈을 돌리면 되는 거 아닌가. "
예쁜 풍경을 바라보다가, 질린다면 밤하늘을 바라보고, 질리면 인위적인 네온사인을 감상하다가, 질리면 다시 예쁜 풍경으로 되돌아오면 되는 것. 그러면 된다고 그는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다가 "그건 그렇고, 깨무는 일에 다림이도 감흥이 있었구나-" 라며 놀리는 듯한 표정으로 다림이를 향해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 안 해도... 변덕 삼아서 할지도. "
다림이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자 잠시 다림이를 쓰다듬어주었을까. 그것도 잠시, 고개를 기울여 귓가에 대고 짓궂게 속삭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입술이 닿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지훈은 "물거야? 아니면 안 물 거야?" 라며 다림의 선택을 감상하듯이 내려다보았다. 그 와중에 당황하거나 부끄러운 기색은 없다는 것을 보면,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거려나..
" 희생이라고 할까 단순한 모함이지 그거...? "
자신의 손을 잡으며 씨익 웃는 다림을 향해, 잠시만 기달려달라는 듯 중얼거렸다. 독기 서린 눈은 위험하다고 느꼈으려나... 지훈은 다림이 손을 멋대로 하지 못 하게 손에 힘을 주려고 했지만, 다림이 더 힘을 준다면 그래도 끌려갔으려나.
오늘도 와버렸다. 오고 말았다. 도착하고 말았다. 디스 이즈 'The Cafe' 사실 별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공부는 조금만 더 하면 완벽!! 할 것 같고, 사실 1학년이라 조금은 여유부려도 되는 것이 현실. 하지만, 이곳에 온 이유는 아주 큰 이유는!!!!!
"에.릭.선.배.★ 귀여운 제가 왔습니다!"
이 사람을 놀려주기 위해서! 오늘은 또 어떤 곤란한 주문으로 난처하게 만들까~~ 하고 카페 문을 벌컥! 열었더니... 아무도 없네. 카페가 이렇게 장사 안 될 수도 있나? 싶을 정도로 한산하다. 손목을 들어 가디언 칩으로 시계를 확인하니 그렇게 사람들이 없을 시간도 아닌데... 분위기에 압도되어 왠지 추욱 늘어진 상태로 카운터로 간다.
>>772 이건... Deep-Dark.한 분위기가 날 것 같은 선관이군요... '비아가 못 지켜서 죽은 사람이 있다'라는 과거가 있으면 너무 어두워질 것 같아서(로스트된 연락처들에 갖고 있는 죄책감은 '못 지켜줬다'가 아닌 '무관심했다'입니다) 피하고 싶은데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을까요?
생각보다 비아의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나는 다시금 활짝 미소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속에서 의욕이 펑펑 솟는 느낌이다. 조만간 장을 보는게 좋겠다. 집밥이 그립다고 한 비아였으니, 기합을 담아서 요리하되 어디에나 있을법한 가정 요리가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야말로 된장 찌개라던가. 잡채라던가. 조금 더 노력해서 소고기전 같은걸 추가할까.
"됐어. 우리 사이에 뭘. 후후, 굳이 말하자면 자주 만나서 놀자는 얘기가 실현되는 것만으로도 값은 충분해."
웃으면서 간단히 손사레를 쳤다. 솔직히 어색해질 단초를 제공해놓고 '우리 사이에' 라는 표현을 언급하는게 스스로가 조금 뻔뻔하기도 했으나,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다만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결사부정을 해버리면 오히려 부담이 될지도 몰라서, 미소지으면서도 이후에도 관계가 이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너무 약삭빠른걸까?
"응, 응."
서로 합의가 마쳤으니 별 불만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음식이 나오는 사이에는 가볍게 근황 얘기를 해보려고 했다. 아마 적응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을 비아에게, 담임 선생님을 만나 격려 받은뒤 '경호부'의 입부 추천서를 받았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러고 보면, 방패는 역시 메이저한 '무기' 는 아니라고 했어. 검의 벤다, 창의 찌른다, 총의 쏜다와 같은 명확한 공격 형태가 없다고 하셨던가. 대신 그걸 중점으로 다른 요소들을 살릴 순 있데."
그녀와 나는 본래부터, 특이하게도 '방패' 를 내세우는 동질감에서 시작된 관계였다. 그러니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즐겁고, 나도 모르게 수다스럽게 되어버린다.
"아, 응. 충분해. 나도 덜어줄게."
그녀가 먼저 앞접시에 음식을 덜어주는걸 보고 나서야, 나도 황급히 절반 정도를 덜어 중앙에 내밀어줬다.
한가한 카페, 손님은 단골 뿐. 사장님에게 이렇게 장사해도 되냐고 물어봐도 '허허 괜찮아' 라고만 대답하시는거 보면 분명 주식으로 한 탕 했거나, 아니면 한량이다. 세상에 꼭 말끔하게 생긴 양반들이 유능한 아내에게 들러붙어서 기둥서방 노릇을 하지. 집안의 기둥이 되었다면 딜도하고 탱도하고 다 해야지, 레이드에서 딜 좀 넣어달라고 징징거리면 게이트 클로징은 언제 하냐고. ...점점 내 가슴이 아프니 그만두자.
아무튼....
" .... 응 화현이구나. "
오늘의 첫손님은 정신나간 제노시안이었다. 가끔보면 똑똑하고 유능한 것 같은데, 평소에 하는 행동을 보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이 녀석, 프랑켄슈타인 의뢰에서 덩쿨이나 방패나 이것 저것으로 활약을 엄청나게 했다. ...어쩌면 저런 행동을 하면서 머리속엔 의념충격상 같은걸 계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 레몬티 한 잔... ? 갑자기 왜 축 늘어지고 그래? 아아...손님이 없어서 그렇구나."
" 원래는 메리에게 웨이트리스복이라도 입고 접객하라고 하려 했는데, 메리가 가출해서 말이야 .... 니가 할래? "
"글쎄요.. 지금도 사실은 봐주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느리게 말하는 다림입니다. 블루 스무디 때문에 입 안이랑 입술이 살짝 파랗게 물들어서 더 창백해보일지도. 어쩔 수 없어요. 블랙 라떼로 검게 물들었으면.. 어. 그게 더 위험한가.
"감흥이란 건.. 잘 모르겠네요." 저는 감흥을 떼내려고 노력하는 타입이었거든요. 잡아뜯는다거나. 같은 생각을 하고는 그저 웃다가. 변덕 삼아서 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경종이 울리지만 그걸 무시하고는, 입술로만 살짝 물려 합니다. 떼고 나서 조금 지나면 사라질 정도겠군요. 살짝 꼬집는 정도? 맥이 있는 자리즈음에 했네요. 다행인가. 불행인가...
"물어뜯어서 피 나면 목에만 몇 번일까요?" 네? 뱀파이어도 아닌데도 그 정도면.. 이라는 농담을 걸고 있었습니다.
"그치만 만지고 감촉을 얘기하시면 그건 진짜가 되겠죠?" "모함이라뇨. 말랑말랑한 걸 만져버린 지훈씨가 나쁜 거에요" 쭉 끌어당겨서 절대영역을 건드리게 하려고 시도합니까? 부드러울까요? 아니면 건드리자마자 떼어져서 모를 수도 있고.. 이런 나아쁜...
"네... 레몬티 한 잔... 그리고 요거트 와플이랑 마카롱 2피스, 레몬 마들렌 2개... 아, 마카롱이랑 마들렌 1개는 에릭 선배 드셔도 돼요."
이렇게 사람이 없다니... 왠지 측은한 마음까지 든다. 나도 알바해봐서 알지... 사람은 없는데 시간은 흐르고 퇴근 시간이 됐을 때 나, 정말 월급 받아도 돼? 같은 마음... 그리고 월급 받고 나면 올 ㅋ 평생 사람 없었으면 좋겠다 ㅎㅎ 하는 그 마음... 나도 알지. 하지만, 카페가 망하는 건 싫어! 여기가 망하면!!! 에릭 선배한테 얻어먹을 수 없어!!!!
"그건 무리. 웨이트리스복을 입은 에릭 선배는 그려드릴 수 있는데, 이참에 그려서 구현한 다음 카페 입구에다 배치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