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서 용암이라는 말에 다림의 머리카락을 빤히 쳐다봤다. 저 눈에 편한 물 같은 색이 강렬한 색으로 변한다면... 나쁘진 않지만 지금이 더 괜찮은걸. 옷을 거절하는 모습에 다시 겉옷을 걸쳤지만 이번엔 지퍼를 잠그지 않았다.
"나도 시험기간이라 공부해야 하긴 하지만, 너무 하나만 잡으면 잘 안 되니까."
구체적으로는 망념을 안 쌓고 공부하는 건 머리에 안 들어오는 느낌이랄까. 예전에는 없어도 멀쩡히 공부했던 것 같은데.
"...응. 그래서 내 친구들 중에는 다른 학교로 간 아이들도 많아." "다른 학교라고 해서 무조건 쉬울 거라는 보장은 없는데. 분명 어느 학교든 각자의 어려움은 있을 거야."
하고 몇몇 아이들에 대한 실망을 담아 한숨을 내뱉는다. 학교 진도를 따라갈 수 없어서 다른 학교로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안타깝게 여기지만, 그래서 아직 연락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청월 이외의 학교를 무시하면서 다른 학교에 가면 무조건 쉬울 거라고 의기양양해하던 아이들과는 굳이 연락하지 않았다. 그 아이들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게 되겠지. 자신이 무시하던 학교에서.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제노시아는 특성화 쪽인 만큼 다른 학교랑은 다른 걸 배운다고 들었는데. 광물이라던가?"
그런 걸 말하지만 물어보진 않는다. 진행에서 안 풀린 걸 물어볼 순 없으니까... 라는 어른의 사정이 개입되어 있는 걸까.
"응. 그나마 성학교는 그 자체가 좀 널널한 만큼 시험도 쉽다고 하지만, 그 자유에 너무 취해버리면 좋은 결과는 못 낼 거야."
정성을 다하여 할 수 있는 걸 한다면 어딜 가든 못 할 리야 없겠지만, 말이 쉽지 그런 걸 못 하는 아이들이 갔다간... 성학교에서 음주나 불건전한 행위들을 일삼아 학교의 명성을 흠집내는 문제아들 사이에 끼어서 하고 싶은 일도 하지 못하는 채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말겠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파란색인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교복이... 라고 말을 흐리는 다림을 보고 잠깐 생각하다가 머리색에 눈길이 닿고 무슨 말인지 알아차린다. 교복 자체가 아니라 색상 문제였구나.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본인은 다를 수도 있겠지.
"장신구라면, 보석 같은 걸로 만드는 건가?" "다림이는 잘 만들었어?"
하고 순간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봤다. 학원도에 온 것도 조금은... 하고 입을 다무는 다림에게 "조금은?"하고 묻는 듯 운을 떼지만 대답하고 싶지 않아보이는데 캐묻진 않았다.
"그냥 온 거였구나."
하고 조금 어색하게 웃었다. 제노시안이긴 하지만 장인이나 예술인은 아닌가? 좀 편견 같은 생각이지만 제노시아라고 하면 그런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서포터 중에는 날씨를 바꾸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 있다던가-하는 것도 들었지만 다림이 뭔가 하는 걸 본 적은 없는데. 하고 살짝 의구심을 가지다 그러려니 했다. 그냥 바라는 걸수도 있으니까.
"아무리 자유를 강조한다 해도 너무 널널하긴 하지."
조금 빤히 쳐다보는 다림을 보며 미소지었다. 싫었나? 살짝 미안하네.
"사파이어면 몰라도 운석 조각은... 어디서 구하란 거야?"
진짜 운석이 떨어지는 걸 기다리는 게 아니면 관련된 게이트에서 구하거나 비싸게 사야 할 텐데. 그런 재료를 다 주진 않을테니 아마 보기만 하는 수업이었으려나. 아마 탄생석 중 2월 29일을 상징하는 탄생석이 석철운석-팰러사이트...이었겠지만, 자신이 만들 수 있을진 잘 모르겠다. 애초에 탄생석 중엔 진짜 보석의 분류엔 속하지 않지만 끼어있는 것들이 많단 말이야.
"나는 꿈을 이루려고 청월에 왔어."
딱 하루 내 인생에 스쳐 지나간 나의 은사. 이름 모를 '선생님'. 그 사람의 인생에서도 내 인생에서도 짧은 만남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귀한 인연이었다. 작아도 값진 보석처럼, 다른 광물들 사이에 파묻혀 있어 아주 조심스럽게 깎아야 보이는 조그마한 보석처럼.
"원래는 일반인으로, 선생님으로 살아가려고 했어. 하지만 머슴살이도 대감집에서 하라는 말이 있잖아? 그래서 나는, 선생님이 되어 이 학원섬에 다시 돌아오려고."
다른 모든 꿈을 현실과 타협해도 버리지 못할 꿈.
"청월은 최고의 지원을 갖추고 최고의 가디언을 키워내기 위한 학교니까. 이 학원섬에 있는 선생님들과 동등한 자리에 오르려면 시작점부터 높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높은 곳에 닿는다는 걸 몸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운동화를 신은 발로 바닥을 박차고 한 번 뛰어올랐다 가볍게 착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