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사오토메다운 행동을 선택하게 되었냐는 말에는 대답을 피하며 저는 계속 웃고만 있었답니다. 그리고 덧붙였지요.
"하지만 말이어요, 때로는 보다 중요한 것을 위해 억눌러야 하는 것도 있답니다. 지훈 군도 이해하시겠지요? "
에미리는 에미리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잃지 않기 위해서라면, 미래가 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면 감정 하나 정도는 죽여놓을 수 있답니다. 증오든 사랑이든 결국엔 하나로 향하고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한 감정만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이쪽에서 싫어하고 있고 저쪽에선 외부인 취급 받고 있긴 하지만 결국엔 저도 사오토메이니까요. 어쩔 수 없는 한 가문의 아가씨이니까요. 구역질나게도, 거부감이 들 만큼, 그렇지만 나 혼자선 놓을수가 없는것. 에미리의 화원을 망가뜨리는 나쁜 꽃들을 나는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체념하기로 했습니다.
“어라🎵 의외이와요, 지훈군. 정말로 의외랍니다…. “
밝게 웃던 얼굴이 서서히 싸늘하게 바뀌어가는 게 보였을 거랍니다. 그리고 그건 어떤 단어가 맘에 걸렸기 때문인 것이 맞았습니다…. 솔직해지기로 결심한 건 좋지만, 너무 솔직해서 문제이랍니다. 이것만은 숨기는 게 좋지 않았을까요.
“지훈군, 친우와 수단이 동등한 위치에 오를 수 있는 단어였는지요? “ 아아, 정말로 눈물이 난답니다. 어찌도 우리는 이렇게 생각이 비슷한 걸까요! 적어도 이 사오토메는, 그대를 수단으로 여기지 않았는데 말이어요.... 말끝을 흐리며 말하는 소리가 떨려왔답니다. 정말로, 저는 당신을 나름 신뢰하고 있었답니다. 그 사고를 입에 담을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한 랜드마크가 있어서 약속장소로 잡기가 좋은 곳이다. 그리고 지훈이 읽었다는 걸 확인하고, 책상을 꽉 채우는 배치로 펼쳐져 있는 여러 책과 공책들을 접어 한쪽에 쌓아놓는다. 적당히 입을 만한 옷이 있으려나... 코디네이트엔 익숙하지 않아서. 적당히 괜찮겠다 하는 옷으로 입었다. 의념을 각성하기 전이었다면 3월에 입기엔 추워서 한두 겹 더 걸쳐야 하겠지만 지금은 비키니를 입고 나가도 감기에 안 걸릴 테니 상관없겠지. ...비키니를 입겠단 뜻은 아니다.
"이쪽이야."
그리고 약속장소에 나온 지훈을 보고 가볍게 팔을 흔들었다. (아마 네가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오는 타입이었다면 정시에 맞춰 온 나를 조금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랜만이라고 해야 할까?" 라며 가벼운 인사를 했다.
"목적지가 없다고 하긴 했지만... 불린 사람한테 어디로 갈지 묻는 건 예의가 아니니. 영화라도 한 편 보러 가지 않을래?"
그리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간다. 뭔가 먹으러 가는 것도 좋지만 식사 여부를 묻지 않았으니, 적당히 떠오르는 것 중 한 가지 의견을 냈다. 그리고 "간다면 가격은 내가 낼게. 네가 다른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그쪽도 괜찮지만-" 라고 덧붙인다.
그래도 에미리가 그런 건, 의외였을까. 그의 속에서 에미리는 당당했다. 사오토메라는 가문에 속해있으면서도, 그런 사고를 당했으면서도, 겉으로는 다르게 행동할지언정 속에는 아직 자신만의 무언가가 남아있었으니까. 무언가를 정확히 표현하기는 어렵다. 올곧음, 자신감, 확고함, 고집... 자신을 자신으로서 존재하게 하는 것이, 에미리 속에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일부를 죽인 에미리가 정말로 의외였던가. 그리고 의외였던 건, 아마도 그건 너 역시 마찬가지였나보다.
" 내겐 동등해. 수단과, 친구는. "
에미리의 표정이 서서히 싸늘하게 바뀌어가고 마침내 무표정이 되었을 때, 말 끝을 흐리는 소리를 간신히 들었다. "미안. 난 널 처음부터 수단으로 여기고 있었어." 그는 애석한 표정으로 에미리를 바라보았을까. 미안한 감정이 묻어나온 것 치고는, 그의 어조는 놀랄만큼 냉정했지만.
" 다른 친구들이 그랬듯, 이제 너 역시 내겐 단순히 수단으로 소모하기엔 어렵게 되었고, 그렇기에 이걸 말해주고 있어. "
더이상 다른 이들처럼 단순히 소모할 수 없다. 이미 몇명 그랬던 것처럼. 그렇기에 더이상 이렇게 애매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진심으로 부딪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아무런 가감없이 모든 것을 에미리에게 털어놓았다.
" 갑작스럽겠지. 미안해. 하지만 지금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네. " " 선택해 에미리. 내가 널 수단으로 보고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친구로서 남아줄지, 아니면 내게 환멸하고 그대로 떠날지. "
비아의 메시지를 보고는 바로 출발했다. 별로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으니까. 이미 준비는 다 해둔 상태였기도 하고?
" 아, 안녕- "
가볍게 팔을 흔들며 다가오는 비아를 향해, 지훈도 작게 손을 흔들어줬겠지. 비아와 마찬가지로 지훈은 후드티에 검은색 슬랙스라는, 3월에 입기에 적당한 옷으로 입고 나온 모양이었다. 가볍게 인사를 하자 "오랜만이네. 저번에 대련 이후로 처음이기도 하고." 라며 고개를 끄덕였겠지.
" 영화... "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표정이 희미하게 밝아진 것을 보면 나름 가고싶어 하는 모양이었던가. "혹시 미리 정해둔 영화 있어? 아니면 보고싶은 장르라거나." 라고 물으며 어떤 영화를 볼 건지 흥미를 드러냈지. 가격은 내준다는 말에 그래도 되나? 싶은 표정을 짓다가도, "그럼 이따가 간식이나 식사는 내가 내는 걸로." 라며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일단 영화를 보러 가는 건 확정되었기에 비아에게 맞춰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