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6은 입술을 햝으며 하루를 천천히 바라봅니다. 그 눈빛에는 상당히 기괴하면서도, 알 수 없는 불안함이 담겨 있습니다. 마치 사람을 바닥 아래로 끌어내리는 듯한 눈빛은 매혹적이면서도, 또한 도발적이며, 또한 빠져들게 하고, 마침내 무너지게 할 것만 같습니다. 저항합니다.
저는... 진짜 신캐 처음 등장할 때부터 했던 사람이라 어느 정도 플레이 이해도 하고 영상 한 번만 봐도 ㅇㅇ 이렇게하면 되는구나. 같은 게 이해되고 따라주긴 하는데... 팀원이... 팀원이... 너무... 별서폿토마스로 3장 2모 0티 게임 터질 때까지 코인 모으다가 수호자 털리니까 호다다닥 렙업하고 항복 버튼 안 누르는 놈... (겜 끝나고 검색해보니까 100급 넘은 녀석)
어째서 사오토메다운 행동을 선택하게 되었냐는 말에는 대답을 피하며 저는 계속 웃고만 있었답니다. 그리고 덧붙였지요.
"하지만 말이어요, 때로는 보다 중요한 것을 위해 억눌러야 하는 것도 있답니다. 지훈 군도 이해하시겠지요? "
에미리는 에미리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잃지 않기 위해서라면, 미래가 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면 감정 하나 정도는 죽여놓을 수 있답니다. 증오든 사랑이든 결국엔 하나로 향하고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한 감정만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이쪽에서 싫어하고 있고 저쪽에선 외부인 취급 받고 있긴 하지만 결국엔 저도 사오토메이니까요. 어쩔 수 없는 한 가문의 아가씨이니까요. 구역질나게도, 거부감이 들 만큼, 그렇지만 나 혼자선 놓을수가 없는것. 에미리의 화원을 망가뜨리는 나쁜 꽃들을 나는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체념하기로 했습니다.
“어라🎵 의외이와요, 지훈군. 정말로 의외랍니다…. “
밝게 웃던 얼굴이 서서히 싸늘하게 바뀌어가는 게 보였을 거랍니다. 그리고 그건 어떤 단어가 맘에 걸렸기 때문인 것이 맞았습니다…. 솔직해지기로 결심한 건 좋지만, 너무 솔직해서 문제이랍니다. 이것만은 숨기는 게 좋지 않았을까요.
“지훈군, 친우와 수단이 동등한 위치에 오를 수 있는 단어였는지요? “ 아아, 정말로 눈물이 난답니다. 어찌도 우리는 이렇게 생각이 비슷한 걸까요! 적어도 이 사오토메는, 그대를 수단으로 여기지 않았는데 말이어요.... 말끝을 흐리며 말하는 소리가 떨려왔답니다. 정말로, 저는 당신을 나름 신뢰하고 있었답니다. 그 사고를 입에 담을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한 랜드마크가 있어서 약속장소로 잡기가 좋은 곳이다. 그리고 지훈이 읽었다는 걸 확인하고, 책상을 꽉 채우는 배치로 펼쳐져 있는 여러 책과 공책들을 접어 한쪽에 쌓아놓는다. 적당히 입을 만한 옷이 있으려나... 코디네이트엔 익숙하지 않아서. 적당히 괜찮겠다 하는 옷으로 입었다. 의념을 각성하기 전이었다면 3월에 입기엔 추워서 한두 겹 더 걸쳐야 하겠지만 지금은 비키니를 입고 나가도 감기에 안 걸릴 테니 상관없겠지. ...비키니를 입겠단 뜻은 아니다.
"이쪽이야."
그리고 약속장소에 나온 지훈을 보고 가볍게 팔을 흔들었다. (아마 네가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오는 타입이었다면 정시에 맞춰 온 나를 조금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랜만이라고 해야 할까?" 라며 가벼운 인사를 했다.
"목적지가 없다고 하긴 했지만... 불린 사람한테 어디로 갈지 묻는 건 예의가 아니니. 영화라도 한 편 보러 가지 않을래?"
그리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간다. 뭔가 먹으러 가는 것도 좋지만 식사 여부를 묻지 않았으니, 적당히 떠오르는 것 중 한 가지 의견을 냈다. 그리고 "간다면 가격은 내가 낼게. 네가 다른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그쪽도 괜찮지만-" 라고 덧붙인다.
그래도 에미리가 그런 건, 의외였을까. 그의 속에서 에미리는 당당했다. 사오토메라는 가문에 속해있으면서도, 그런 사고를 당했으면서도, 겉으로는 다르게 행동할지언정 속에는 아직 자신만의 무언가가 남아있었으니까. 무언가를 정확히 표현하기는 어렵다. 올곧음, 자신감, 확고함, 고집... 자신을 자신으로서 존재하게 하는 것이, 에미리 속에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일부를 죽인 에미리가 정말로 의외였던가. 그리고 의외였던 건, 아마도 그건 너 역시 마찬가지였나보다.
" 내겐 동등해. 수단과, 친구는. "
에미리의 표정이 서서히 싸늘하게 바뀌어가고 마침내 무표정이 되었을 때, 말 끝을 흐리는 소리를 간신히 들었다. "미안. 난 널 처음부터 수단으로 여기고 있었어." 그는 애석한 표정으로 에미리를 바라보았을까. 미안한 감정이 묻어나온 것 치고는, 그의 어조는 놀랄만큼 냉정했지만.
" 다른 친구들이 그랬듯, 이제 너 역시 내겐 단순히 수단으로 소모하기엔 어렵게 되었고, 그렇기에 이걸 말해주고 있어. "
더이상 다른 이들처럼 단순히 소모할 수 없다. 이미 몇명 그랬던 것처럼. 그렇기에 더이상 이렇게 애매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진심으로 부딪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아무런 가감없이 모든 것을 에미리에게 털어놓았다.
" 갑작스럽겠지. 미안해. 하지만 지금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네. " " 선택해 에미리. 내가 널 수단으로 보고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친구로서 남아줄지, 아니면 내게 환멸하고 그대로 떠날지. "
비아의 메시지를 보고는 바로 출발했다. 별로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으니까. 이미 준비는 다 해둔 상태였기도 하고?
" 아, 안녕- "
가볍게 팔을 흔들며 다가오는 비아를 향해, 지훈도 작게 손을 흔들어줬겠지. 비아와 마찬가지로 지훈은 후드티에 검은색 슬랙스라는, 3월에 입기에 적당한 옷으로 입고 나온 모양이었다. 가볍게 인사를 하자 "오랜만이네. 저번에 대련 이후로 처음이기도 하고." 라며 고개를 끄덕였겠지.
" 영화... "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표정이 희미하게 밝아진 것을 보면 나름 가고싶어 하는 모양이었던가. "혹시 미리 정해둔 영화 있어? 아니면 보고싶은 장르라거나." 라고 물으며 어떤 영화를 볼 건지 흥미를 드러냈지. 가격은 내준다는 말에 그래도 되나? 싶은 표정을 짓다가도, "그럼 이따가 간식이나 식사는 내가 내는 걸로." 라며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일단 영화를 보러 가는 건 확정되었기에 비아에게 맞춰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을지도?
"아하하. 그게 뭐에요. 그치만 그런 이름 건 세트는 보통 사장님 이름을 걸거나. 정직원 이름을 걸게 마련인데.." 정말로 여기 취직하실 건가 했다고요? 라고 농담하고는 서비스조의음료를 보고는 고마워요~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사장님께 굉장히 맛있네요. 우동 실력이 좋아요. 라고 칭찬하려 합니다.
"중식당이요? 그러고보니 중식당도 수타면 같은 걸 하니까 면이 맛있을 수 밖에 없네요.." 물론 다림주는 중식당에서 튀김류를 좋아하긴 하지만. 다림이는 학원도 오기 전까지는 웬만해서는 중식당에서 짜장면 한그릇이전부였을 듯.
"어쩐지 오늘 와나 환타같은 게 느껴지네요.." 지금은 손님이 없이 한산하지만 다림이 나가는 순간 손님으로 드글거릴 것을 예감한 말이었을지도.
"그때가 마지막이었나... 너와의 대련은 생각할 게 많은 편이라 좋다고 생각하지만, 대련만 하고 살 순 없으니까."
(확실한 내용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 단언할 수는 없지만, 네가 절단 의념으로 방패를 절단하려 하거나 의념기로 공간을 뛰어넘어서 공격하거나 했으면 꽤나 놀랐을 것이다. 그냥 맞아주기만 하려 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덤덤하게 대련의 기억을 회상하다가 당장 눈앞에 있는 당사자가 더 중요하단 생각에 그만둔다.
"정해둔 영화는 없지만 장르는 생각하고 있던 게 있어. 마음편히 볼 수 있는 코미디라던가, 액션 같은 거 어떨까? ... ."
지훈의 표정이 희미하게 밝아지는 걸 간신히 캐치하고, 네가 덜 웃는 만큼 내가 더 웃는 것처럼 환한 미소를 돌려주려 했다. 표정 변화가 부족하단 말이야... 그리고 호러 영화를 말할 땐 글자 크기만큼은 아니더라도 자신감이 좀 덜어졌다. 근데 글자 크기가 뭐지.
"그러면 나도 고맙지."
간식이나 식사를 내겠다는 말에 대한 대답이다. 이걸로 주고받은 건가. 지훈이 따라오는 걸 확인하면서 한 걸음이나 한 걸음 반 앞서, 유흥가에 발을 딛는다. ...길을 잃어버리는 건 아니겠지. 못 찾는 건 아니겠지. 친구들과 (끌려)가본 적 있는 영화관 이름을 스캔하다가, 드디어 발견했다. 고마워 친구들아... 한국에서도 잘 있기를... 나는 옛 친구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내듯 목걸이를 쥐다가, 지훈을 이끌고 영화관에 들어가려고 했다.
다림의 오늘 풀 해시는 자캐를_안으면_어떤_향이_나는가 달콤한 향+포근한 향..이 아주 옅게 나는데 사람을 끄는 듯한 그런 향? 샴푸향도 가끔 나기는 하는데.. 달콤한 꽃 같기도 하고.. 과일류의 달콤한 향에 비누향으로 대표되는 부드러운 향이 섞인 그런 향. 음.. 향수 두 개를 레이어드 한 걸로 표현하자면 에끌라 아르페쥬+나르시소 퓨어 머스크?
자캐의_이미지컬러는 음... 의외로 파란색 쪽보다는 하얀색이려나. 약간 차가운 분홍색이 아주 옅게 섞인 하얀색?
자캐의_생일을_보내는_방식은 분명 풀었는데 또 나오네.. 다시 말한다 다림쟝은 본인의 등록된 생일에 등록된 거고.. 진짜 생일은 모르니까 기본적으로 생일에 무심하다. 그렇기에 그 날 누구랑 만나도 자기 등록된 생일이라고 말 안할 것임다. 평범한 하루를 보낼 듯. https://kr.shindanmaker.com/977489
수단과 친우는 결코 동등해질 수 없습니다. 적어도 내게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왔답니다. 내가 어떠한 나인 채로 옆에 있을 수 있는,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한 것을 고작 수단이란 단어로 부르기엔 너무나도 사랑스럽지 않나요? 그렇기에 이 두가지가 동등하다 말하는 그를 보며 속으로 웃음이 나오려는 걸 애써 참았습니다. 결국엔 그저 친구라는 이름의 탈을 썼을 뿐인 표면상의 관계에 불과한 것을 이 소년은 동등하다 말하고 있습니다. 뭐가 됐던 결국엔 수단인 것은 변함이 없지 않을까요? 언제든지 원할 때에 이용할 수 있는. 그런…. 처음부터 수단으로 여겨왔었단 말에 저는 그저 웃으며 이렇게 말씀드렸을 따름이랍니다. 보시어요, 지훈군. 우리는 어찌도 이렇게 생각이 다르면서 비슷한 걸까요? “좋아요……지훈 군. 딱 한가지만 대답해주셨으면 한답니다. “
말을 잇는 데에 뜸을 꽤 들였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꺼낸 말이었습니다.
“당신의 눈에 비친 저는 사오토메인가요, 에미리인가요? “ 이용하기 좋은 존재인가요, 증명하기 위한 수단인가요. 그도 아니라면 나는 어느 쪽인가요. 덧붙이는 눈빛이 어딘가 슬퍼보인 건 분명했습니다. 입매만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으나 눈은 그렇지 못했답니다. 자아, 말해주시와요. 선택은 그 이후이어요. 당신의 눈에 비치는 나는 누구인가요?
// (대충....갈고 갈고 나온 레스란 애옹.......)(진짜 어찌 될지 모르겠단 애옹.....)
생각할게 많은 상대만큼 재미있는 대련 상대가 없다. 지훈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마따나 사비아와 마냥 대련만 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친분은 대련만으로 쌓아지는 것이 아니었으니.
" 좋아. 그러면 호러로 보러가자. "
자신이 부족한 웃음을 채워주려는 듯 환한 미소를 돌려주자 지훈은 고맙다는 듯 인위적일지라도 미소를 지어보였지.
그것과는 별개로 사비아가 알아야 하는 것 이 있다. 이미 대련을 하며 알았을지도 모르지만, 그의 성격 속에는 미약하지만 가학심을 품고 있었을까. 좋게 말하면 짓궂음이라는 단어로 포장될 수준의. 하여튼, 대련 때는 자주 내비쳤던 그의 가학심은, 사비아가 약한 모습을 보이자마자 짓궂음이라는 포장을 두르고선 그녀를 놀리려는 목적성을 띠고 다시한번 드러났던가.
" 생각보다 유흥가에 자주 오게되네... "
생경한 느낌이라는 듯 사비아를 뒤따라가며 중얼거렸다. 그녀에게 이끌려 영화관에 들어가서는, 다른 영화로 바꾸지 못 하도록 서둘러 영화 예매를 하러 사비아를 이끌고 갔지. 만약 사비아가 보기 싫다고 거부했어도 지훈이 혼자서 예매부터 결제까지 전부 하고선 사비아에게 표를 한장 건네주었을 것이다.
>>270 하지만 내년 배경으로 어장이 돌아갈지는 모르겠으니 이번 생일을 챙겨주는 걸로...(?) 서프라이즈 파티... 평범하게 일상 보내고선 기숙사로 바래다줬더니 기숙사 앞에 도착하자 친구들이 다같이 나오며 생일 축하한다고 해주고... 기숙사 안으로 끌려가니 이미 파티 준비는 다 끝나있었고...
지훈은 에미리의 답을 차분히 기다렸다. 어떠한 독촉도 하지 않기 위해서 눈마저 감고 있었다. 그 순간은, 온전히 에미리의 판단으로, 에미리의 결정을 내려주기를 원했다. 이윽고 나온 대답은 사실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었지만.
그는 그 질문을 듣고선, 어떤 감정의 변화도 없이, 그저 느릿하게 즉답할 뿐이었다.
" 에미리. "
눈을 떠서 눈 앞의 에미리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무표정했다. 평소대로였긴 하지만, 지금의 무표정은, 마치 하늘이 푸른가? 라고 물었을 때 그렇지. 라고 답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잔잔했다.
" 처음부터 내가 원한 건 에미리였으니까. "
그는 덧붙였다. 처음 만나서 인사하던 그 순간부터, 자신이 원하던 것은 에미리였다고. 사오토메가 아닌 에미리 본인이었다고.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원하는 것은 친구였다. 수단인 동시에 친구를, 자신의 존재를 확립시켜줄 친구를 원했다. 사오토메 가문이니 뭐니 하는 것은 뒷배경일 뿐이었고, 그걸 원해봤자 자신의 존재에는 하등 영향을 끼치지 못 했기에, 그는 처음부터 에미리를 원했다.
>>304 이게... 추정만 할 뿐입니다. 병원 기록상 태어난지 n개월 정도로 추정되어서 이 월일 가능성이 높다 정도...는 있는데 그걸 알기도 전에 보호자들을 타는 바람에..
근데 신한국 주민등록 그게 어떤 느낌인지 잘은 모르겠는데 일단 대한민국 기준으로 삼고.. 대한민국에서도 출생신고나 뭐 그런 게 안 된 사례를 본 적 있다 보니.. 보호자가 자주 바뀌는데 사실 출생신고 안 됨 그런 거가 걸리면 보호자간의 링크가 끊기니까 애들 몇 살인지 말해도 생일까지 잘 말하진 않으니까 자기가 몇 살인지는 알아도 정확한 생일을 모르는 그런 느낌이 되고..
어떤 보호자가 그걸 인지하고 어찌어찌 등록하게 되었을 때.. 생일도 정하긴 하겠지만 아마 처음 만난 날. 머 그렇게 되겠져..
1학년한테 밀리는 상황이 되고 싶진 않았으니까. 넘겨주지 않으려는 사람과 넘으려는 사람의 싸움이었다.
"...내 얘기 들은 거 맞지?"
만들어진 미소에 위화감을 느낄 틈도 없이, 호러 영화를 보러 가자는 말에 수각황망하며 좀 불안한 눈으로 지훈을 빠안히 쳐다봤다. 대련 중에 내비쳤을 가학심은 전투를 즐긴다는 면에 가려질 수 있었기에, 방패와 창의 싸움에서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한 의도에 불과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좋은 동료이며 대련상대여도 ‘후배’니까. 그 방심이 처음으로 사적인 만남을 가진 지금, 짓궂음의 대상이 된 지금도 톡톡히 위력을 발휘했기에, 단지 농담이겠거니 하는 생각을 했을까.
"떠들썩하니, 다들 즐거워 보여서 기분이 나쁘진 않은 곳이야."
길을 잃을 것 같다는 점 때문에 다소 마이너스지만. 그렇게 영화관에 들어가서는 갑자기 폭풍같이 돌변한 지훈이에게 후다닥 이끌려가고 말았다. 뭔가 잘못된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훈이 예매하려는 영화 제목의 큰 포스터가 눈에 들어오고 나선 설마 했고, 예매부터 결제까지 혼자 해버린 지훈이 표를 내밀었을 땐 '미어캣은 속았습니다' 같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그대로 드러냈다.
"...나는 내가 내겠다고 했는데." "호러 영화는 힘들겠다고 말했는데."
조금 실망했다는 듯 지훈을 바라보며 뚝뚝 끊어 발음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말을 무시하고 행동하는 건 좋지 않다는 걸 단호하게 말해줄까 생각했지만, (이 캐릭터는 靑-고지식걸이다) 놀러 온 거니만큼 그렇게 엄격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나중에 따로 말할 생각으로 표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나지막히 "...식사와 간식은 내가 낼게."라고 중얼거린다.
"근데 이건 어떤 영화야?"
호러 영화라곤 해도 그냥 비슷한 분위기의 게이트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싸우는 게 나오면 괜찮을 텐데. 갑자기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놀래키거나 음산하고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를 조장해서 심장 떨리게 만드는 건 사활의 문제다. 친구(절친)와 보러 온 거면 좌석 옆으로 손이라도 꽉 잡을텐데 지훈이랑은 손 잡을 만큼 친한 사이도 아니다! (이 캐릭터는 靑-유교걸이다) 포스터의 사진과 캐치프레이즈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이 표의 원흉인 지훈에게 슬쩍 물었다.
느릿하게 답하고는 불안한 눈으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비아의 시선을 일부러 회피했다. 속으로도 너무한 거 아닌가 싶었지만... 그래도 이럴 기회가 얼마마다 있겠어.
" 다들 즐거워하는 분위기는 좋지. 나까지 감화되어서 기분 좋아지니까. "
비아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주변이 우울하면 덩달아 우울해지고, 주변이 떠들썩하면 덩달아 즐거워지는게 사람 심리였다. 그렇기에 그 역시 즐거워하는 분위기를 더 선호했지. 그리고 사비아가 재미있는 표정을 짓자, 자신도 모르게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는 속으로 만족스러워하며 웃었을까.
" 그치만 나, 친구랑 호러 영화 한번쯤은 보러 와보고 싶어서..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은데 부탁하면 거절할 것 같아서... "
"역시 안 되는 걸까..." 라고 중얼거리며 일부러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자신의 표를 빤히 바라본다. 비아의 성격상 후배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받아줄 것 같았으니 그걸 이용하는 거였을까... 사실 비아의 반응이 보고싶어서, 라는 이유였지만, 자신이 말하지 않는 이상 모를테니 얌전히 시무룩한 기색을 내비치며 연기하기로 했다.
" 사람들이 폐 정신병원에 갔는데 귀신들의 장난으로 갇혀서 빠져나오지 못 하고 계속 도망다닌다는 내용? "
한마디로 말하면 갑툭튀도 잔뜩 나오고 영화 내내 음산한 분위기를 내고 심리적인 공포와 함께 사운드도 빵빵하게 틀어서 하여튼 엄청나게 무서운 영화라는 평가를 비아에게 그대로 말해준다. 포스터를 보고있는 비아의 옆에서 슬쩍 리뷰들을 읊어주며, 비아의 안색과 반응을 살피려고 했던가.
그 미소를 봤더라면 몇 마디는 해줬겠지만, 아무리 나라도 시무룩한 모습을 보고도 설교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3cm 차이 나는 후배의 눈높이에 맞춰 살짝 까치발을 들고 시선을 높인 다음 팔을 뻗어 머리를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로 쓰다듬으려 했다. 그 다음엔 "이번만 넘어갈게."라고 속삭이려 했다. 가끔은 알면서도 속아줘야 할 때가 있다. 그래도, 영악해...
" ... ..."
마침 시선을 돌리다가 발견한 화면에 나오는 영화 예고편까지 확인하고 나는 필사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주친 청월 시험지(1학년)만큼 무섭다. ...그 정돈 아닌가? 아무튼 무섭다. 창문으로 밤의 어둠이 내리쬐는 폐병원의 복도를 드문드문 비추는 전등이 부딪치듯 불규칙하게 깜빡이고, 스크린의 시야가 빼앗겼다 돌아오는 반복에 맞춰 조금씩 변하는 풍경이 시점에 맞춰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걸음마다 다른 세상으로 끌려들어가는 듯한 연출을 한다. 그리고 예고편이 끝나며 무거운 효과음과 함께 내리찍히듯 나타나는 영화 제목에 퍼뜩 놀랐다가 뻣뻣하게 고개를 돌렸다.
"...간식 사러 가자."
이미... 넘어가준다고 약속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카라멜 팝콘에 콜라 정도면 괜찮을까. 줄을 서고 나서는 줄이 빠질 때마다 긴장감을 느끼면서도 내 차례가 왔을 때 선수를 빼앗기지 않도록 먼저 칩을 내밀었을 것이다. 참고로 나는 호러 영화에 당했다고 해서 후배한테 민트초코팝콘과 펩시를 산다던가 하는 장난은 치지 않는다. 그리고 입장을 기다릴 때면 쿠션 의자 위에 앉아 목걸이를 쥐고 가만히 기도하듯 눈을 감고 있었을 것이다. 누구한테 기도하느냐 하면, 결국 나 자신? 딱히 신을 믿지는 않으니까.
한 손으로 적 머리를 친 뒤에 발로 권총을 차 올려서 연사를 마치고 남은 권총을 상대에게 던져 폭발시키고 나서 어깨에 차둔 소총을 꺼낸 뒤 한 손에는 단검을 들고 대형 몬스터의 목 위로 올라가서 소총을 연사한 뒤 생긴 상처에 단검을 후벼파고 발로 차서 밀어버린 뒤에 넘어진 적을 폭발시키고 나서 혼자 걸어나올 실력은 돼. 참고로 의념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저 짓을 한거지..
이미 자신의 본심을 들킨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이제와서 반색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으니. 지훈은 비아를 향해 시무룩한 채로 중얼거리다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그 손에 부빗거리려고 하였을까? 이번만 넘어갈게. 라는 말에는 속으로 환호성을 터트리고는 "고마워." 라며 가볍게 미소지었을까.
비아의 반응에 지훈은 만족스러운지 얼굴이 안 보이는 각도로 미소짓고 있었다. 정말 무서워하는구나... 싶기도 했고? 게이트를 닫을 때라던가 대련할 때라던가 당당하고 의지되는 모습을 보여준 그녀였기에, 이런 면모는 꽤나 의외였을까.
" 간식은 그거 두개면 충분하려나? "
비아를 향해 물었을까. 자신은 그 두개로 충분했지만, 혹시 비아가 아닐 수도 있었으니까. 그래봤자 계산은 그녀가 하는 거였지만... 그리고 만약 민트초코팝콘과 펩시를 선물했다면 안색이 파래졌지 않을까...
이윽고 비아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입장할 때라고 알려주었다. 누군가에게 기도하는 듯한 모습이라 종교가 있나? 하고 생각하기도 하고?
" 후우. 기대되네... "
티켓을 검사하고 상영관 내로 들어가 자리에 앉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지훈은 나란히 앉은 비아를 살짝 보며 "혹시 정말로 무리시라면 나가도 괜찮아요..?" 라고 고개를 갸웃거렸지. 이 이상 강요하는 건 장난의 수위를 넘었으니, 그래도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무섭다면 나가자고 말해두었던 걸까.
situplay>1596249177>271 그리고 이거...뒷북인 건 알지만 그냥 넘기기엔 꽤 재밌는 떡밥 같아서 생각해봤는데요 ㅇ0ㅇ 이거 하나의 의념기에 셋의 속성을 담는 거잖아요? 거기까지만 적혀 있고 그걸로 일격을 날린다든가 하는 말은 없잖아요?
성현이의 투쟁본능을 베이스로 하면 굉장한 버프기가 될 지도 몰라요? 아군이 받는 대미지 경감(투쟁본능)+아군 공격에 상대 혼란 또는 디버프 효과 부여됨(분실)+상대 방어력 하락(보석)이라든가여!
혹은...성현이가 성학교생이 아니라서 곤란하다면 청천이 걸 베이스로 해서... 이쪽에 어그로 쏠리는 걸 배제하고(달의 뒷면), 전투의 본래 목적을 '잃어버린' 적들이(분실) 서로 자기들끼리 싸우게 만듦(투+보석=저 보석을 원하는 자 서로 싸워라!!)이라는 특이한 형태로 발동될지도요!
물론 일단 청천이가 약점 간파와 디스트로이어를 얻어야 되겠지만여...ㅋㅋㅋ 상세한 조건도 또 그때 가서 따로 문의해봐야 할 것 같지만, 이거 잘하면 이런 식으로 흠터레스팅한 조합이 많이 나올 것 같아요!
손바닥에 부벼지는 검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렇게 비비면 헝클어지지 않게 하려 하도 흐트러지겠는데. 검지손가락으로 이마를 툭 건드린 다음 머리카락을 결대로 쓸어내려 정리해 주고 손을 뗐다. 고맙다는 말엔 역시 같이 웃어주면서.
"영화엔 팝콘과 음료수면 충분해."
그리고 지훈도 괜찮은 듯하니 두 사람 몫의 카라멜 팝콘과 콜라를 결제하고 받아들었다. 역시 일반 팝콘보단 카라멜이 맛있지.
"벌써 입장할 때야...?"
그 말에 눈을 뜨자 정말로 입장시간 직전이었다. 아니,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 타임을 외치고 싶은 마음이지만, 늦게 들어가서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으니 혼란스러운 속은 미뤄두고 몸만 움직여 상영관으로 입장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티켓 검사가 끝나고 정해진 자리에 앉아있었다. 아직 영화가 나오지 않는 스크린인데도 곧 호러영화가 나올 스크린이라고 생각하니 무서워지는 건 왤까...
"영화 도중에 자리를 나서는 건 몰입을 깰 수 있으니까. 평생 이런 걸 못 보며 살 수도 없으니, 익숙해져야지."
그리고 정말 무리라면 나가도 좋다는 말엔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했다. 유령이 나오는 게이트 같은 걸 갈 때도 있을 테니까. 물론 그런 게이트에 갔을 때 나오는 건 나나 랜스가 마음껏 뚝배기를 깰 수 있는 유령일 거라는 점은 넘어가도록 하자. 이래서 조금 준비시간이 있으면 좋았을 텐데. 광고시간이 시작되서부터는 곧게 앉은 자세로 팝콘에 손을 대지 않고 광고에 집중했다. 광고도 영화를 보는 것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다. 진짜 영화가 시작한 게 아니니만큼 팝콘은 아끼고 있지만.
그리고 영화가 시작됐다. 다섯 남녀가 한 차에 타서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시작이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신나지만 다소 올드한 취향의 노래를 조수석의 여자가 타박하고,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남자가 그러면 네가 운전하라면서 질겅질겅 껌을 씹었다. 제법 닮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걸 봐선 남매였을까. 결국 조수석의 여자가 말다툼에서 승리해 라디오의 내용은 클래식과 함께 잔잔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송으로 바뀌었지만, 평화로운 음악과 달리 남매의 말다툼은 멈추지 않았다. 코믹한 분위기 속에서 긴장이 점점 풀어지고 있을 때 상영관을 뒤흔드는 큰 소음과 함께 스크린 속 화면이 덜컹 움직였다. 차가 뭔가에 걸린 것이다.
"악...!"
손으로 바로 입을 틀어막아 비명이 새어나가진 않았지만 깜짝 놀랐다. 이렇게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갑자기 사람을 놀래키다니... 조수석의 여자가 운전 제대로 안 하냐면서 운전하는 남자를 갈구고, 남자는 아무것도 안 보였다며 항의의 말을 내뱉었다. 다른 사람들한테 아무 관심도 없이 보조배터리를 연결한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또 다른 여자와, 너무 싸우지 말라며 물병을 꺼내서 갈구는 여자에게 내미는 서글서글한 외모의 남성. 그리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또 한 명의 여자가 불연듯 몸을 돌려 차의 뒷창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차가 달리고 있었던 고속도로의 아스팔트에 가로로 긴 금이 가 있었다. 차가 지나면서 뒷창을 보는 여자의 시선도 뒤쪽으로 끌려가고, 그 바닥의 금도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간다. 이미 넘어버린 선이, 점점 멀어져 가는 것처럼. 의도적인 듯 창밖을 비추지 않았던 카메라가 적극적으로 창밖을 비추기 시작하면서 희멀건한 안개가 멀리 끼어 있는 축축한 도로 풍경이 스크린을 채웠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라디오가 잠시 음소거되고, 고요함 속에서 문득 창밖을 보던 여자가 입을 열었다.
-명아. 우리 어디 가기로 했지? -있잖아, 그 거기. 무슨 정신병원? -월선정신병원. -그렇구나...
마치 홀린 것처럼 높낮음 없는 숨소리 섞인 나른한 목소리가, 창밖을 보는 여자의 목소리가, 흰 안개가 금을 완전히 삼켜버림과 동시에 흩어져 사라졌다. 다시 라디오가 켜졌지만 더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말다툼하는 목소리도 흐려진다. 말리는 목소리도 흐려진다. 작품의 세계와 관객의 단절. 그 침묵을 끊어놓듯 무겁게 쿵 내리찍는 효과음과 동시에 페이드아웃 없이 화면이 암전되고, 잠시 후 어두운 스크린 뒤로 차이코프스키의 <사계> 중 <10월: 가을의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종일 새가 날아와서 종일 너를 놓쳤다 저게 새야, 가는 비 오는 날 먼 산 위에 낀 흰 안개를 자꾸 새라고 하던 너는 옆에 있어도
권현형 / 안과 밖
(잘 모르겠음)
사비아: 196 죽음에 대한 생각은? 나한테든 다른 사람한테든 찾아오지 말았으면 하는 것.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죽길 바라진 않는다. 막을 수 있을 동안 막아내야 하는 것. 하지만 너무 불연듯 찾아올 수 있는 것. 그래서 슬픈 것. 298 본인이 재미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는지? 자신은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사비아한테 놀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봐를 시전해보는 건 어떨까요? 202 캐릭터의 이름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뜻, 호불호,지어준사람 등) 시트에 있듯이 맡을 사司, 비유할 비譬, 맑을 아雅를 씁니다. 성은 온(溫)입니다. 독특한 이름이긴 하지만 이상한 이름은 아니기도 하고, 뜻도 정성들여 지어준 것인 만큼 자기 이름을 좋아합니다. 지어준 사람은 당연히 부모님! 다만 4글자면 이름이 좀 복잡해지기도 하고 이름 세 글자만 대면 성이 사고 이름이 비아인 평범한 이름 같아 보여서 평소엔 사비아란 이름만 대고 다닙니다. 비아라고 불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기분.
" 이미 믿고는 있어. 다만 이런 부분에선, 어느정도 짓궂음이 느껴지는 부탁이었으니까... "
지훈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자신의 이마를 톡 건드리자 그대로 얼어붙듯이 부빗거리는 것을 멈추었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는 것은 기분 좋게 받아들였겠지만, 아마 손을 뗐을 땐 아쉽다는 듯이 비아를 바라보았겠지. 머리카락을 정리해줄때만 해도 골골거리기 직전이었으니.. 하지만 더 해달라고 조르거나 하진 않았던가?
팝콘과 콜라면 충분하다는 말에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긴 하지- 라는 듯이. 나쵸라던가 더 살 수 있기는 하지만 딱히 즐기는 타입은 아니었고, 비아 역시 그런 듯 했으니까.
" 시간이 꽤 지났어. 눈 감고 있느라 잘 모르겠지만. "
비아의 생각보다도 시간이 꽤 많이 지난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긴장한 마음에 시간이 빨리 간 것처럼 느낀 것이려나. 조금 당황한 듯한 모습이 의외이면서 재미있었는지, 자신도 모르게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비아를 바라보았다.
" 굳이 싫어하는 것에 익숙해질 필요는 없으니까. 정 힘들면 꼭 말해줘야 해. "
비아의 눈을 빤히 쳐다보려고 하다가,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정말로 무섭다면 말을 걸 거라고 생각했을까. 물론 성격상 말을 안 할 가능성이 높으니 어느정도는 게속 살피면서 영화를 봐야겠지만.
잠시간의 광고 시간이 지나고, 영화가 시작된다. 내용은 생각보다도 클래식한 공포영화였다. 초반부터 긴장감을 주는 연출과 함께 제목이 크게 나오더니, 중반부와 후반부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놀래켰다. 갑툭튀나 징그러운 귀신 디자인은 물론이고, 시간차로 갑툭튀를 하거나, 등장인물이 빠진 공포를 생생하게 묘사하거나, 아예 의자가 흔들리거나 하는 등 관객을 직접 놀래켰다. 생각해보니 이 영화, 4D였다..!
지훈은 멍하니 영화를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비아가 걱정되는지 살짝 몸을 기울여 비아의 표정을 살피려고 했다. 너무 무서워하는 듯 하면 상영관 밖으로 이끌 생각이었을까.
>>711 (피폐뇌 풀가동) 지훈이가 진심으로 사랑한 대상은 욕심쟁이었기에 지훈이가 자신에게만 관심을 쏟도록 만들어, 자신을 제외하면 고립되어버리게 만들고... 정작 자신은 거기에서 더 욕심을 내서 아예 영원히 자신을 쫓고 원하고 사랑하도록 일부러 지훈이 곁에서 떠나버린 전개라거나? 지훈이는 사랑하는 이가 떠난 이유를 알면서도 그 사람을 보고싶어 하기에 계속해서 쫓고...
>>713 시가 거참 모의고사에서 나오기 좋게 생겼...(이거아님) 사비아가 얼마나 재미있는 친구인데요 놀리고 싶고(?)
평소 연애적 감정과 거리가 먼 카사였지만, 비슷한 상황은 한번쯤은 상상해본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학교에 테러리스트가 침범하면?! 같은 수업 중 따사로운 햇살 아래 하는 상상말이다. 할멈의 소설처럼 누가 내게 고백하면 어쩌지?? 같은 생각말이다. (아니, 여기는 황궁이 아니니까 소설은 아니고, 할멈의 만화책을 기반으로 삼아야겠다. 락커안 러브레터... 음? 여기 아카데미는 락커가 없는데? 뭐, 사소한 것은 신경쓰지 말자.)
카사는 흐흥, 고개를 엄중이 끄덕였다. 아주 타당하고 가능성 높은 생각이었다! 그야 카사는 멋지고 강하고 똑똑하고 착하니까! 그 누구도 반려자로 삼고 싶을 테다!
그러니 카사를 잘 모른다면, 분명 서둘러 고백하고 싶어 질테다. 아주 현명한 판단일테다! 원래 사냥감은 누가 채어가기 전에 일빠로 들고 튀는 게 옳은 판단이니 말이다. (이런 김칫국카사는 흠흠, 하며 상상의 얼굴 모를자를 칭찬하였다. )
그러니 카사는 그냥 그 점을 칭찬하며 잘 차버리면 되는 거였다! 자신의 신중함을 잘 설명하고, 자신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대충 미래에 다른 좋은 녀석 찾아라! 나보다 좋은 녀석은 찾기 힘들겠지만! 와하하! 하고 웃으며 보내주면 되는 거였다!
완벽한 행동지시법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카사는 그리 만족하고 그 생각을 깨끗히 치워버렸다. 그 '해결법'의 근본적인 문제는 생각도 안한채.
첫번째. 어째서 카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어야 고백을 할 것이라는 전제가 있는가?
두번째. 카사를 알고, 카사의 생각을 알고, 그를 존중하는 사람이 고백한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그리고 세번째.
카사 본인의 감정은?
=================================
아니야, 아니야.
오해가 풀어진다. 간단명료한 해답이었다. 카사는 질문을 하였고, 하루는 진실된 대답을 하였다. 생명의 본질인 붉은 피를 그대로 내보이며 진실을 말했고, 카사의 기민한 귀는 그것을 똑똑히 들었다.
굳게 다문 꽃봉오리에서 어여쁜 꽃잎이 터져나오는 것처럼, 작은 기쁨이 카사의 가슴에서 피어나온다.
하루는 나를 불쌍히 여기는 게 아니다. 하루가 사랑하는 것은 나의 불행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루는 나를 제대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하루의 사랑을 받기 위해 나는 불행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 둘은 같이 행복을-
무엇을? 같이서?
꼬리를 물고 늘어지던 생각이 멈춰섰다. 카사 속의 무언가가 카사를 멈춰세웠다. 본능에도 가까운 관념이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쓸쓸히 권해왔다. 카사는 이런 자기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아, 잠시 멈춰섰다. 복잡한 것은 싫었다. 하지만 지금 복잡한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어라? 나는 —
아니 잠깐.
카사의 혼란속에서도 하루의 말에서 무시하면 안되는 게 나왔다. 아니, 이것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자식이 왜 내 오빠야!!!!!!"
버럭, 상황에 맞지 않게 왈왈 짖는 카사. 에릭???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지???? 에에에리이익???? 그 밥맛 할멈성애자 꼰대가아??? 내 오빠??????? 하아???????? 난 오빠(특: 늑대) 따로 있거든!!! 훠어어얼씬 근사하고 멋진 오빠가 멀쩡히.... 있지는 않지만!!! (특: 이미 노사함) 하여튼 에릭 녀석이 왜 내 오빠냐!!!! 기분 더러워!!! (특: 이것은 현실남매의 반응과 일치하기도 한다.)
먼곳(천국?)에 있는 부모님같은 분(엄마 늑대?)은 머리속으로 끼워맞춰도 이 부분은 흘러 들을수 없는 거 같은 모습이다. 아브엘라가 안 다면 또 다시 피눈물을 흘릴 이야기다.
순간적으로 분위기를 잊어버려 씩씨거리는 카사. 상황에도 불구하고 평소의 모습이 생각나는 모습이다. 아니, 이런 무거운 상황이 이례적이니까 당연할 테지만 말이다. 얀하루의 에릭 납치감금(?) 사건에 대해 들으면 할 반응이 궁금해지지만, 제정신을 돌려 받았는지, 상기된 얼굴로 크흠, 헛기침을 한다.
"하, 하여튼! 그 녀석은 내 오빠 아니고,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하루 아래 깔려 있는 상태에서는 별로 신뢰감이 올라가는 일이 없지만, 그래도 눈을 슬며시 피한 채, 중얼거리듯 말을 지속하는 카사.
"이거 말하려고 왔어. 난, 나는."
네가 좋아하는 게 나의 불행이라 생각했어.
죄를 고하는 듯 말을 내뱉고선 침묵으로 다시 돌아간다. 여전히 하루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는 카사는, 깊은 생각에 빠진 얼굴이었다. 상념에 빠진 표정 무색하게 지속되는 말은 횡설수설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 밖에 있는 동안 생각했는데. 그러니까, 깨닫고 말았어. 나, 사실 말이야. 네가... 나를 불쌍하게 생각해서 좋아한다고 해도, 상관없었어. 상관없던거야."
댐이 터지듯, 말이 계속 나온다. 하루에게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전하고 싶은 말을,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번에는 폭력이라는 본능의 언어가 아니라, 새로히 배워간 인간의 언어로. 사랑과 노력과 가까워지고 싶다는 일념으로 노력해 배워낸 인간의 언어로.
말한다. 불쌍함의 의미를 얘기한다. 나는 내 삶이 자랑이야. 내 삶의 모든 것 - 그 모든 고통도 기쁨도 시련도 성공도 모두 나의 자랑이야. 내게 동정은 그 의미를 퇴색하는 거였어.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어. 별빛 가득한 봄하늘 아래에서 생각했어. 아니, 깨달아버렸어. 그 깨달음을 대놓고 고백하기에는 용기가 약간 부족해, 카사는 눈을 감는다.
"난 그냥 네가 나를 계속 좋아하게 해주기만 된다고 깨달은거야..."
애초에 치료를 거부하고 여기까지 온것. 조금은. 약간 더 불쌍해 보이기 위한 영약한 전략일지도 모른다.
덫을 피해 멀리 멀리 도망을 간다는 생각을 해도 이미 늦었다. 아니, 그런 생각 자체가 이미 늦었다. 늑대는 이미 덫에 걸려버린 것이다. 그 감정은 체념이자 해방이었다.
하지만 말이야. 카사는 눈을 떳다. 깊은 주홍색의 호박빛 눈동자. 야생의 짐승과도 같은 그 눈은 하루의 찬란한 금빛의 눈을 올려다 보았다.
"...그래서. 그,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속삭임에 가까운 혼잣말. 소녀가 그런 게 아니라고 했다. 나의 고통은 그녀의 사랑에 불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나를 덫에서 풀어주었다. 그녀가 한 말은 그런 의미였다.
하루의 얼굴이 다시 한번 가까워진다. 피와 눈물로 얼룩진 입술이 다시 한번 부드럽히 닿는다. 최근 익숙해진 거친 타격감과 쓰린 움직임과는 상반되었다.
예전에 하루는, 이런 입맞춤이 '기도'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조금 더... 은밀하고, 개인적이고, 소중하고...
그 입술이 맞닿은 순간에는, 카사는 자신이 그런 소중하고 부드러히 다뤄야하는 무언가가 된 것이라는 착각에 빠질 것같아, 몸을 비틀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카사는 용맹한 산속의 포식자였으니까! 선두에 서는 대장은 이렇게 조심히 다루는 게 아니었다. 이리 던지고 저리 방치해도 씩씩하게 자라는 게 카사였다. 날카로운 칼날, 둔탁한 주먹, 관통하는 총알도 다 문제없고 끄덕없는 녀석, 그게 카사였다!
그러니 하루의 부드러운 손길, 말랑한 입술, 축축히 뺨에 떨어지는 눈물같은 것에는, 그러니까.
익숙치가 않아서.
내성이 없어서.
그 어느때보다도 연약한 느낌이었다.
숨이 가빠 이미 붉은 볼에 혈색이 돌았다. 피투성이 몰골과는 별로 어울리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어두운 기숙사방. 사람이 드나들지 않은 지 오래되어 옅게 쌓여있던 먼지가 흐트려져, 허공에 빛을 반사하며 떠 다녔다. 개인물품이 없어 공허해보이던 방은, 두 소녀의 존재로 꽉 들어찬 느낌이었다. 바닥 위 두 소녀의 실루엣. 그 사이의 공간은 한숨하나로 들어 찰것 같았다. 딱딱한 방바닥이 카사의 뜨거운 등을 식혀주었다.
카사는 앞의 소녀를 생각했다. '하루'라는 이름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새하얀 머리카락이 늘어져 카사의 뺨을 간지럽힌다. 군데군데 붉은 피가 묻은 게, 새하얀 바탕에 너무나도 잘 드러났다. 상처와 긴 전투의 흔적, 그리고 피로함. 이 모든 것을 지니고도 하루는. 물기 어려 반짝이는 눈동자. 체액에 젖어 축축한 연분홍빛 입술. 하루는 아름다웠다.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처음 만났을 때는 언제였더라. 그렇게 가까운 데도 너무나 먼 기억 같았다. 아는 게 몇달밖에 되지 않는 데 평생을 약속하는 자신의 특성을 알고도 좋아한다고 하다니. 정년 진심인가?
의심을 하루의 절절한 말이 짓눌렀다. 날것없는 진심. 거짓말을 하지 않는 카사에게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 진심. 카사의 머리가 핑핑 돌았다. 왜 나지? 이유를 찾고 싶었다. 찾아야만 했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이유 없이 카사를 좋아할, 아니. 사랑할 이유가 없으니까.
[Q. 질문. 그 첫번째. 어째서 카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어야 고백을 할 것이라는 전제가 있는가?] [A. 카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카사를 반려로 삼고 싶지 않을 것이다.]
[Q. 두번째. 카사를 알고, 카사의 생각을 알고, 그를 존중하는 사람이 고백한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A. 그럴리 없다. 전제가 모순적이다. 아마 그런 일이 생긴다면 카사를 놀리려는 것이 틀림없다. ]
[Q. 그리고 세번째.] [Q. 카사 본인의 감정은?] [A. ...]
[Q. 답해야지.] [A. ...]
[A. 모르겠다. ]
[A. 카사는.]
[A. 머리가 나쁘다. ]
좋아한다와 사랑한다의 차이. 우정과 사랑. 스토르게, 필리아, 에로스, 아가페... 질투심? 애증? 갈망? 욕망? 평소의 좋아한다와 지금의 좋아한다의 의미는 다르다는 것은 알거 같다. 하지만 그래도 잘 모르겠다.
하루가 설명해준다. 하루는 똑똑하다. 내가 모르는 것을 많이 알고 있다. 모르는 것이 무서운 나는, 하루와 함께 있으면 덜 무섭다. 조금 더 용기가 나는 것 같다. 모르는 것. 귀신. 수학. 존댓말. 대화. 인간. 마음.
지금도 용기를 내고 있어. 나를 붙잡고 용기를 내고 있어. 많이 아플텐데.
그래도 잘 모르겠다. 애정은 쉽다. 증오는 쉽다. 이것은 모르겠다. 일어날리 없는 것을 보는 느낌이다. 서쪽에서 뜨는 태양. 날개달린 돼지. 의념의 발현.
[Q. 그래서. 싫어?] [A. ...아니.]
[Q. 좋은 거 잖아. ] [A. 그렇게 간단한게 아니야.]
[Q. 사람들은 너무 복잡하게 산다고 불평하던 네가 그런 말을 하니 웃기네. 그렇게 자기애가 넘쳤으면서 뭐가 그렇게 무서워?]
[Q. 네가 그런 것을 전혀 원하지 않는다면. 싫었거나, 아니면 전혀 그런 마음이 든 적이 없었다면. 그냥 거절했겠지. 거절은 너에게 쉬우니까 말이야.]
[Q.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것 자체가 증명이야. 네가 정의하지 못하는 마음은 — ] [A. 난 그냥.]
[A. 하루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A. 다른 건 다 필요없어. 그렇게 깨닫고 온거야.]
카사는 한참 멀었다.
먹이 사슬 꼭대기의 최강의 포식가가 되어야 했고. 친구도 많이 만들어야 했고. 최강의 워리어가 되어야했다. 공부도 열심히 해서 머리도 좋아져야 했고, 키도 여기서 더 커야 했고, 인간이 되어서 인간의 마음을 완전히 받아들여야 했다.
적어도, 앞의 절절하게 우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의 눈물정도는 그칠수 있어야 했다. 인간이 덜 된 소녀에게는 그것이 부족했다. 짐승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만큼 잔혹해질수 있었지만, 그 본질이 악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소중한 소녀를 같이 덫에 끌어 들어버릴 만큼 악하고 잔인하지는 않았다. 카사는 악한 인간은 못되어도 착한 짐승은 될수 있었다.
[Q.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 지 알아?]
손쉽게 스러지는 생명. 도망치듯이 와 같이 할 생명을, 오래오래 살수 있는 생명을 찾았다. 그래도 생명인 이상, 본질이 가디언인 이상, 죽음에서, 영원한 이별에서 도피할수 있는 자는 영영 없지 않을까.
카사는 손을 뻗었다. 거친 손이 하루의 부드러운 뺨에 닿았다. 손 아래 온기에, 한순간 이름모를 욕망에 삼켜지는 느낌에 제정신을 잃는다.
친구랑 한 번쯤 보고 싶었는데 이 한번뿐인 기회에 부탁하면 거절할 것 같아서-같은 이유를 댔으면서, 부탁 자체를 짓궂음으로 생각한다는 건 처음부터 놀릴 의도였단 걸 인정해버리는 거잖아. 쓰다듬던 손을 떼고 살짝 쏘아보다가 표정을 풀었다.
- 정 힘들면 꼭 말해달란 말에 대답하지 않고 지긋이 눈을 감았다. 약속하면 지켜야 하니까.
그리고 공포와 긴장감과 이완의 반복과 조절로 관객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며 긴장을 놓으려 하면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튀어나오고 엄청난 메소드 연기로 '영'의 유혹에 정신이 나가버리는 '명'과 그 광기를 모른 상태로 의지하려다 멘탈이 산산조각나며 유리창을 깨고 떨어져내리는 '연'과 누나를 부르며 오열하는 '결'을 이끌고 끝나지 않는 복도를 뛰어가는 '과'. 아무튼 절망적인 상황... 의념각성자도 즐길 만한 기준으로 만들어져서 그런지 정말 사정없이 관객을 흔들어대는 4D 연출... . . . 인터넷에서 아주 유명한 소설이 있다. 판타지 소설 중에도 게임물 장르가 범람할 때 나왔던 수많은 소설 중 하나였다. 회귀물 테이스트가 첨가되어 있는, 비참한 삶의 주인공이 게임의 히든피스를 모두 알고 과거로 회귀해 성공을 거둔다는 소설. 이 소설이 유명한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도 결말 때문이었다. "형님, 이 새끼 웃고 있는뎁쇼?" "냅둬. 기분 좋은 꿈이라도 꾸나보지" 실제로 이런 대사는 없지만, 아무튼 비슷한 결말이다. 사실 회귀해서 행복한 삶을 거두는 건 꿈이고, 꿈에서 결혼한 여동생은 이미 자살해 있는 현실이고, 최후의 결말에서 주인공은 불법 장기매매 수술을 진행하던 중 과다출혈로 의식이 희미한 상태에서 웃으며 숨을 거두는 것이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왜 꺼내느냐면... 사비아는 웃고 있었다. 아주 평온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앉은 채로... 기절했어...! 굳이 데려가지 말고 내버려둬. 기분 좋은 꿈을 꾸는 것 같으니까... 라고 지훈에게 알리는 듯, 정말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난기택(난 기절을 택하겠다는 뜻)
몸을 일으키며 자신을 받쳐주는 카사의 말에, 하루는 천천히 고개를 저어보인다. 아까까지도 쉼없이 흔들리던 것과는 거리가 먼 또렷한 목소리. 하루는 올곧은 눈으로 미소를 지어보이는 카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야, 내 마음은 단순한 육체와 정신의 피로로 인한 혼란도, 착각도 아니야. 고작해야 그런 걸로 내 진심을 덮으려 하지마. 하루는 입술을 깨물고는 자신을 안아든 카사를 밀어낸다. 있는 힘, 없는 힘 모두 끌어모아 카사를 밀어내곤 바다에 나뒹군다. 큰 충격이 덮쳐왔지만, 하루는 그런 것 쯤은 더이상 아랑곳 하지 않는다.
" .... 그렇게 말하지마.... "
하루는 비틀거리며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팔을 써서 몸을 일으키며 이를 악 물고 말한다. 방금 전까지 이어진, 진심을 담은 자신의 마음을 고작해야 착각이라고, 그냥 방금 전까지 생과 사를 오고가는 곳에 있다 와서 피곤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걸까. 저 아이가 순수하고, 어린 아이 같은 부분이 있다는 것 정도는 하루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자기 나름대로 고민하고, 고뇌하고, 답을 내려 애를 쓰는 아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저 말만큼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
" ..... 내 마음을 고작해야 그따위 피로 때문에 너한테 털어놨다고 말하지마!! "
하루는 처음으로 카사에게 사나운 목소리를 내며 소리쳤다. 며칠밤을 지새우며 고민하고, 고뇌하고, 이것이 맞는 행동일까, 이건 어쩌면 좋지 못한 행동이 아닐까, 고민하던 나날 속에서 내놓은 결론이었다. 자신은 카사를 사랑하고 있다. 그래서 솔직하기로 했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이하루라는 존재에서, 카사 앞에서는 이기적으로 사랑을 추구하고자 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진심은 그저 피로에 의한 착각이라는 말로 치부되어졌다. 아아, 왜? 왜, 그렇게 생각하는거야? 내 결의가 부족한거야? 아니면 내 말의 어딘가가 이상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던거야?
하루는 거칠게 자신의 시야를 가리는 새하얀 머리카락, 아니 지금은 어둠에 잠식되어 검은색으로만 보이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겨 카사를 바라본다.
" 아아, 그렇구나... 늑대처럼 자라온 카사에게는 내 결의가 한 없이 부족했던거지? "
하루는 무표정한 얼굴로, 카사를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방금전까지 날카롭게 외치던 목소리와는 다른, 여태까지 카사에게 다정다감하게 흘러나오던 잔잔한 호수 같던 목소리와는 다른, 냉랭하기 그지 없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녀의 금빛 눈동자에는 이상할 정도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열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 너를 향한, 방금 전에 네게 속삭였던 내 마음은... 고작해야 피로 때문에 헷갈릴 정도로 가벼운 마음이 아니야, 카사야. 네가 서툰 아이라는 것도 알고, 분명 사랑이란 어려운 감정이란 것도 알지만...역시 그런 말을 들으면 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아. "
천천히 그렇게 속삭이듯 이야기를 하며 카사를 지나쳐 창문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이 방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하루가 지금만큼은 한치도 흔들림 없이 천천히 창가로 다가간다. 창가에 도착한 하루는 천천히 손을 내밀어 창문을 열었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차가운 공기가 방으로 흘러들어온다. 잠시 입을 다물고 창 밖을 바라보던 하루는 천천히 창을 등진 체로 카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 나, 열심히 찾아봤는데... 역시 나 혼자의 노력으론 늑대의 문화를, 늑대의 습성을 온전히 알기 어렵더라.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나름대로 네게 마음을 전했어. 하지만 그것이...그것이 부족해서..카사가 그렇게 말했다면... 좀 더 확실하게 내 마음을 보여줘야 하는걸까. 이렇게라도 하면 네 마음에 내가 들어갈 수 있는걸까. "
눈을 천천히 감고선 속삭이듯 말을 이어간 하루가 천천히 품으로 손을 밀어넣는다. 손에 쥐어져서 나온 것은 새하얀 은빛 메스, 그것을 역수로 쥔 하루는 천천히 창문의 틀 위로 올라간다. 창문의 틀 위에 아슬아슬하게 선 하루는 천천히 메스를 쥐지 않은 손을 카사에게로 내민다.
" ...잘 봐줘, 그리고 기억해줘 - 늑대의 문화는 잘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이렇게라면 내 진심이 네게 전해지겠지. 그리고 네가 기억해줄거야. 아마도 오래도록 기억해주겠지. "
희미한 미소, 무표정했던 하루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서리기 시작한다. 이것으로 자신이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것 정도는 안다. 하지만, 자신의 진심이, 자신의 각오가 올곧게 카사에게 전해질 수 있다면. 자신의 마음이, 고작해야 착각이라는 단어로 덮여질 것이 아니라는 것을 카사가 이해한다면 자신을 기억해줄 것이다. 오래도록, 오래도록 기억해주지 않을까.
" 그거면 된거지. 그치? "
하루는 상냥한 미소를 지은 체 말하곤 메스를 역수로 쥔 손을 카사에게로 내밀었던 팔로 가져가며 천천히 몸을 뒤로 기울인다. 몸 뒤쪽에는 그저 차가운 공기만이 가득한 허공이라는 것을 알면서.
딱히 비난할 생각으로 할 말은 아니었지만, 시선을 피하는 것에 더더 빤히 쳐다봤다. 괜찮지만 사과하려고 한 건 잘한 일이니 웃음을 돌려줬다. 이걸로 사과는 받은 걸로 됐겠지.
- . . .
"...음?"
뭐지. 기숙사가 아니다. 침대도 아니고, 이불도 아니다. 신성 로마 제국 같은 건가. 신성하지도 로마도 제국도 아닌 무언가... 아니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분명 잠들기 전에는... 잠든 게 아니라 기절이었다. 정정한다. 생생하게 눈앞에 닥쳐오던 공포를 떠올리고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한 번 자고x 기절하고o 일어나서 그런지 좀 정리되긴 했지만... 그러고보니 같이 영화를 보러 왔던 사람이 있었다!
"지훈아, 어딨어?"
나는 누워있던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너를 근처에서 발견했다면 안심한 듯 하다가도, 약간 부끄러운 듯한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아무리 무서워도 같이 영화를 보러 가서 잠들어 버리다니... 영화를 만들어준 사람한테도, 같이 보러 간 사람한테도 예의가 아니었다. ...아닌가? 공포영화 감독한테는 기절할 만큼 무서워해주는 게 좋은 일인가?
절망적인 선택과 대비되게 카사의 눈은 잔잔한 희망을 품었다. 하루는 피곤해서 그런 말을 한 것이고. 일단 여기서 눕혀서 상처를 지혈하고 힐킷도 쓰고 한숨 자고 일어나면, 그냥 원래대로 돌아갈테다. 하루는 그런 거 잊어 버리고, 원한다면 다른 괜찮은 사람을 누구나 고를수 있었다. 하루는 예쁘고 똑똑하고 착하고 대단하니, 인간도 짐승도 아닌 것은 잊고! 원하는 사람을 마음대로 선택할수 있을 것이다!
허튼 망상을 품을 필요 없이.
자기애가 강하고, 기본적으로 이기주의자이며, 모든 사고가 자기중심적인 카사. 그런 카사의 결론은 그것이었다.
여기서 말하자면, 카사는 딱히 비관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카사는, 멋지고! 털이 윤기나고, 강하고, 빠르고, 말을 잘 듣는다! 최상의 짐승, 누구든 원하는 짐승상이었다! 그저 자기객관화가 잘 되는 편임이었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인간으로서는....
다시 말하지만 비관적인 생각이 아니다. 그저 완전히 논리적이고 타당한 평가였다! 음, 카사가 논리적이라고 하다니 이상한 느낌이 들긴 해도 말이다. 그래서 하루의 크나큰, 무거운 마음을 '착각'이라는 단어로 덮어버린 카사는 안심했다. 그 것으로 끝일 것이라는 오산을 가지고.
하루의 말이 비수처럼 꽂였다. 단호한 말에 카사는 고개를 들어 하루를 본다. 뭔가 다르다. 카사는 입을 열려는 순간, 닥쳐오는 하루의 몸에 손쉽게 다시 넘어갔다.
"컥! 하, 하루...?"
다시 한번 땅에 뒷머리를 처박힌 충격이 가실 새도 없이 하루가 자신을 노려본다. 카사는 순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두 눈을 동그래 뜨고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소리를 지르는 하루, 그것도 자신에게 소리를 지르는 하루는 처음이다. 벙찐 얼굴로 하루를 바닥에서 부터 바라보는 카사는, 얼핏, 왠지 저번과 포지션이 뒤바뀐 느낌이라고 생각되었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잡생각이었다.
"하, 하지만..."
말보단 웅얼거리는 소리에 가깝다. 화난 듯, 냉정한 듯, 고통스러운 듯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하루를 어리벙벙하게 지켜볼수 밖에 없었다. 그 표정의 서늘함에 몸을 웅크리고 싶다가도, 눈을 보면 그 열기에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변명을 할 생각으로 서두를 띄었지만, 그에 불구하고도 머리속은 텅텅 비어있었다. 하고 싶은 말, 진심이면 안되는 이유, 본심 등이 마구작위로 섞여 그 누구도 나오지 못하는 상태였다. 말문이 막힌 상태의 카사를 뒤로 하고 하루는 천천히 걸어나간다.
"하루...?"
그 행동을 이해하지 못해, 윗몸부터 일으키며 이름을 불러본다. 뛰쳐나가 도망치고 싶은 것일까? 하지만 문은 반댓편인데? 혼란과 의문이 하루가 메스를 꺼내자, 틀위에 서자 점점 위험 신호로 치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사는, 하루의 발이 허공을 딛는 그 순간까지, 하루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머리가 비었다는 지금까지의 소리는 비약이었다. 머리가 새하얗게 비워졌다. 그 무엇도 없는 새하얀 백지의 뇟속. 카메라가 캡쳐하듯 하루의 몸을 따라가는 눈, 그리고 열리는 입과 터져나가는 외침.
"하루!!!!!!!!!!"
뭐라고 외쳤는 지도 모르겠다.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괴물의 정의, 하루의 행복, 사랑의 의미 같은 복잡한 쓰레기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카사의 머리속에는 단 하나의 이미지 밖에 남지 않았다.
하루.
머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늘 그렇듯, 카사를 구원하는 것은 그녀의 본능이었다.
손으로 땅을 디딛고, 몸을 일으킨다. 그 반동을 이용해, 발이 세차게 땅을 박차고 튀어나간다. 의념이 이미 빠른 속도에 가속감을 더 해준다. 창문 틀에 한 발을 딛은 카사는 팔을 뻗어 하루의 손을 잡는다. 이 무슨 행동도 카사는 의식하지 않는다.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이어지는 동작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몸이 여전히 앞으로 쏠린다. 일초 늦었다. 달려나간 속도의 관성에 밀려 카사도 밖에 떨어질 것이다. 상태를 하고, 다음 행동으로 넘어간다. 마찬가지로 의식이 아닌 본능의 영역이었다.
완전히 창문을 딛고 나가는 발. 카사는 떨어지는 하루를 품에 끝어들여 감싸안았다. 꺼낸 메스에 찔리든 말든 상관없다. 아니, 찔린다는 가정 자체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 구역 최고 포식자는 — 」
평소 진심이 담긴 힘찬 외침이 아니다. 저것은 거짓이다. 그 것을 알듯이, 가디언 칩이 삐빅, 올라오는 저항을 해왔다. 불발한 의념기와 치솟는 망념에 입술을 짓씹었다.
바람이 귀를 간지럽힌다. 작은 체구안에 감싼 하루의 뜨거운 몸. 겨울의 꿈을 떠올린다. 움직이는 생명을 품에 가두어 영원히 안전히 지키겠다는 어린 날의 치기어린 꿈을 떠올린다. 결국 허황된 꿈이었다.
하지만 그에 불구하고도, 결국 자신은, 그 꿈의 흔적을 놓치 못해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떨어지는 아찔한 감각을 무시하고 수를 센다. 하나, 둘, 셋 —
쿵 —
강화된 신체, 건강, 그리고 맹수의 의지를 이어받아 두꺼운 가죽의 등이 모든 충격을 흡수한다. 그래도 남은 타격이 만만치 않아 순간 가슴깊이부터 기침이 터져나왔다. 그래도 하루도 저도 있던 상처가 깊어져도 새로 다치지는 않았다. 그러면 된다.
마지막 의념을 다 짜내었다. 가디언 칩은 그에 곧바로 의념 사용을 막는다. 항시 자신을 보호하던 수단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더 이상 위험은 없어도 그 위태로운 감각에 반사적으로 겁을 먹게 된다.
가출했을때 할 수 있는 매 순간 늑대의 모습으로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단지 편해서 뿐만은 아니었다. 그저, 겉이 쎄면, 속도 쎄다는 작은 환상을 놓치 못하는 발악이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수단을 잃은 카사는 몸을 움츠리고 싶었다. 하지만 안되었다. 품에 하루가 있었기 때문이다. 거친 숨을 내뱉는다. 하루의 심장소리를 느낀다.
울컥. 감정이 치민다.
"너는....!"
억누르던, 아니, 있는 지도 몰랐던 감정이 폭팔하듯, 카사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진다.
"너는....! 항상....!"
그리고 터진다. 댐이 터지듯,
눈물. 인간과 여타 짐승을 차이 짓는 것중 하나다. 슬픈 감정에 반응해 눈물을 흘리는 것은 인간밖에 없었다. 늑대 가족중 그 어느 누구가 이러지 않는 것을 알아도 카사는 언제나 울었다. 슬프면 울었고, 분하면 울었다. 참을 이유가 없었다. 어째선인지, 모순적으로도, 카사는 모두가 눈물을 흘릴줄 아는 인간세상에 온 후에야 눈물을 참고 싶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은, 참을 수 있는 경지를 아득히 넘어섰다. 거칠게 윗몸을 일으켜 하루를 노려본다. 오랜만에 카사의 뺨아래로, 폭포수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일그러지고 상기되 붉어진 얼굴이 별로 보기 좋지는 않았다.
"네 목숨이 장난이야!?"
하루의 멱살이 쉽게 잡힌다. 땅에 떨어진 그 둘. 카사는 하루를 향해 소리를 쳤다. 울음으로 얼굴도 목소리도 엉망이었다. 하루를 붙잡는 손이 떨려 왔다.
"왜, 대체 왜...."
손이 떨린다. 목소리가 떨린다. 카사는 넘치는 감정을 순간 주체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너는 행복해야 하는데. 너는 살아야 하는데. 너는, 너는.... 주먹을 얼마나 꽉 쥐었는지, 관절 마디마디가 새하얗다.
"왜 이렇게 까지 진심이야. 왜...."
침을 삼낀다. 목을 넘어가는 맛이 피가 섞인 듯하다. 꾸중하듯 날카로운 말투가 서서히 애원하듯 변한다. 얼굴은 푹 숙여 보이지는 않으나, 턱아래로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이 짐작은 쉽게 한다. 카사는 거친 숨을 삼켰다. 그 누구에게도, 그 자신에게도, 내보인 적없이 꽁꽁 깊숙히 숨긴 생각을, 이제서야 입밖에 내뱉는다.
사비아의 오늘 풀 해시는 자캐가_속상한_사람을_달래는_방법 꼭 안아주고 등을 토닥여주며 위로해준다. 왜 속상해졌는지 말을 들어준다. 뭔가 맛있는 걸 사주거나 같이 놀러가자고 한다. 현실적인 속상함의 해결방법을 제시한다.
자캐가_수업중_딴생각을_한다면_무슨_생각 공부 힘들다. (지금 배우는 내용은 아니지만 연관지어서 기억해둬야 할 내용)
자캐의_주량은 최종보스. 의념 안 쓰면 평범하게 취함.
사비아의 오늘 풀 해시는 자캐가_만약_고양이라면 노르웨이 숲 고양이. 도도하게 굴면서 할퀴는 고양이는 아니지만 사람 사는 데는 잘 안 오고 독립적으로 행동하길 좋아할 듯. 만약 숲이나 도심에서 만나서 은혜를 입혀두면 누가 흘린 오천원짜리를 주워와서 보답할 만큼 영리할지도? 사냥 잘할듯.
의념으로 살아남긴 했는 데 의념을 설명해줄 사람이 없던 시절! 힘을 너무 써서 가족들을 다치게 한 때도 있었을 꺼라 생각한다! 남아도는 힘(ㅋ)을 자랑스러워하긴 하는 데 항시 조심하고 약간은 두려워하고 있는 마음! 가끔 일상에서 사람 만질때 (꾹 껴안거나 할때) 속으로 살살 다치지 않도록 안는다는 묘사가 있는 것은 이 점 때문!
그리고 그리고! 원래 카사의 정체성은 섞여있어도 늑대에 많이 치워져 있었는 데, 마지막 늑대 직가족 (동생)이 노사했는데 멀쩡하다 못해 팔팔한 자신을 발견할때 많이 흔들림! 첫 독백 (sobre mi casa)이 이런 상태의 카사였다! 이런 정체성 위기 때문에 생명에 집착하는 카사가 당시에는 늑대로 남아있기 위해 어떻게 최대한 원하는 방식으로 죽는 게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독백에 보다시피 아브엘라 할멈이 새로운 선택지(가디언 되기)를 제안! 사는 게 좋은 카사는 수락! 아카데미 학생이 된다 와!
세상이 반전된다. 어딘가에도 의지하지 않은 몸은 허공에 떠올랐고, 이내 세상의 법칙을 보여주려는 듯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제 팔을 그으며 떨어지면 좀 더 완벽하게 자신의 마음이 가진 무게를 보여주고 기억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아플까? 죽음이 무섭나? 아니, 지금은 그것은 무섭지 않아. 무서운 건 이러고도 카사가 자신의 마음을 기억해주지 않는다면 어쩌지? 이러고도 자신의 마음이 지닌 무게를 카사가 눈치채지 못 하면 어쩌지? 무서운 것은 그것 뿐이었다.
그때, 뜨거운 무언가가 자신을 감싸는 것을 느끼는 순간 하루는 메스의 날이 그것에게 향하지 않게 기울인다. 갑작스럽지만, 이 감각이 누구의 것인지 그녀는 알고 있었으니까. 눈을 질끈 감고 자신을 감싼 카사와 함께 추락한다. 쿵하고 울려퍼지는 소리와 함께 하루의 몸에도 충격이 전해진다. 카사가 감싸줬지만 세상의 냉혹함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그너의 몸을 관통하는 통증에 좀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 왜냐니.... "
자신에게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냐고 물어오는 카사에게, 충격의 여파로 좀처럼 제대로 쉬어지지 않던 숨을 고르던 하루는 천천히 입을 연다. 조금은 말라붙어 갈라진 목소리로 천천히 속삭인다.
" 사랑하기 때문이지. 널 사랑해서, 자기 자신을 괴물이라며 괴로워하는 아이를 사랑해서. "
하루는 천천히 손을 뻗어, 카사의 눈물이 흐르는 뺨을 매만지며 부드럽게 속삭인다. 한없이 갈라진 목소리지만, 여느때와 다름없이 잔잔하고 고요한 목소리. 하루의 목소리가 천천히 카사를 향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 카사는 괴물이 아니야. 너는.. 네가 자라온 늑대무리의.자랑스러운 늑대이고, 먼 곳에 계신 소중한 분의 제자이기도 하고, 에릭의 사제이기도 하고, 내가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이야. 너는 괴물이 아니야... 왜 널 괴물이라고 말하는거야. "
다정하게 카사의 뺨을 어루만지며 천천히 고개를 젓는 하루는 이내 고통스런 표정을 짓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인 하루는 천천히 몸을 움직인다. 가까워지는 고개,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맞닿는 두사람의 이마와 콧망울. 두사람의 온기가 맞닿아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 너가 [괴물]이여도 상관없어. 너가 고독한 괴물이라면, 나도 괴물이 되어줄거야. 널 혼자 외롭게 만들지 않아. 혼자 고독을 맛보게 하지 않아. 같이 웃기도 하고, 슬피 울기도 하고, 때때로 너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기도 하면서 네 곁에 있을거야. 카사, 너는 혼자가 아니야.. 아니, 혼자가 되게 만들지 않을거야. "
하루는 천천히 다시금 카사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댄다. 짧은 입맞춤, 카사의 혈향이 감도는 자신의 입술을 혀 끝으로 훑은 하루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 그러니까, 나를 너의 무리에 넣어줘. 너와 나의 단 둘 뿐인 무리에.. 들어가게 해줘. 날 사랑해줘, 카사야. 특별한 것을 바라지 않아. 그냥 나를 사랑해주길 바랄 뿐이야. 그거면 충분해. "
하루는 천천히 카사의 목을 감싸안으며 속삭였고, 이내 참고 있었던 듯 작게 기침을 한다. 카사의 목 근처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느껴진 것은 떨어질 때의 충격이, 하루 역시도 컸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다. 하지만 자신이 해야할 말은 했다는 듯 그저 강하게 카사를 끌어안는 하루였다.
지훈이 희미하게 웃어보이고는 벌떡 일어난 비아를 살짝 쓰다듬으려고 시도했다. 꽤나 무서워 한 것 같았으니 안심시키려는 의도였나..? 부끄러운 미소를 지었다면 지훈은 그 얼굴을 빤히 보려고 했지. 뭔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다른 모습도 그렇긴 하지만 이건 정말 처음이었다.
" 그나저나 너무 무서우면 말해달라니까. "
조금 퉁명스러운 듯, 불만스러운 어조로 비아를 향해 중얼거렸다. 비아가 기절하자 처음에는 뭔가 잘못된 줄 알고 조금 당황했으니까. 기절할 정도로 놀란 걸 보면 기절하기 전까지 있던 장면들도 보기 힘들었을텐데. 억지로 비아에게 보여준 듯 해서 기분이 찜찜했지.
보호자요... 음... 음... 꽃흐름계, 달동네, 도박장 잡일용, 막장드라마 가족 비스무레한 곳, 잘 키워서 나랑... 할래?, 얘를 죽은 지 딸로 착각해서 닮도록 강요하는 미친 여자or남자, 빈민굴, 말하고 자기 자리 청소하는 애완동물 들인 느낌, 인형 취급, 평화로운 가정의 불순물 기생충 식모 비슷한 무언가, 행운에 공포를 느끼고 신체적으로 손을 댄...
머리 위로 올라온 지훈의 손을 잡아서 내리면서 그렇게 쑥스러운 사과를 했다. 그리고 빤히 쳐다보는 것에 "왜 그래?"라고 말하면서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얼굴에 뭐 묻었나? 괜히 뺨을 손으로 문질러본다.
"...처음부터 버텨볼 생각이었거든."
따지고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온 사람 탓이라고 몰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러는 사람이 아니지. 고집부리다가 실수했다고 생각하며 살짝 어두운 표정으로 "미안했어."라고 중얼거렸다. 영화 때문에 나 자신에게 후유증이 남았는가 하면, 그렇게 심하진 않다. 그 영화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찝찝함과 무서움과 긴장이 심화되다가 빵 터져버렸을 뿐, 지금은 밝은 밖이니까.
"영화 보면서 팝콘을 남겨본 건 처음인 것 같은데."
하고 살짝 주변을 둘러보지만, 네가 공주님 안기로 들고 나올 때 팝콘봉지까지 챙겨나왔을 리는 없으니 보일 리가 없겠지. 약간 아쉽긴 하지만 더 미련을 가지지 않았다. 그거 가지러 다시 들어갈수도 없고.
"이제... 어떡할까?"
영화를 다 본 건 아니지만 어쨌든 보긴 봤으니 이걸로 잘 놀았다 치고 해산? 아니면 조금 더 다니다가? 갑작스런 변수 때문에 다소 딱딱하게 돌아가는 사고회로에 오류가 생긴 것처럼 잘 생각이 안 난다.
>>906 자기의 소중한 사람을 건드려서! 같은 이유라기보단 그냥 음.. 어... 그냥 스태프에다가 얼음 굳혀서 날카롭게 만든다음 뒤에서 푹 찌르고 피 튄 얼굴로 웃으면서 전부터 거슬렸거든- 라고 할 것 같네용 살린다면 음.. 아군 아니면 안살릴거같은데.. 아군 살리는건 당연한거라 굳이 이유가 필요할것같진않구.. 암튼 그럿슴다
목이 멕힌다. 창문에서 떨어진 그 와중에도, 이렇게 곧게 얘기하는 하루는, 너무나 반짝여서. 그녀를 잡은 손이 떨린다.
"너는 사랑을 얘기해. 나는 그 의미를 몰라."
괴물이니까, 는 손쉬운 변명거리가 되기도 했다. 고독감과 울분을 외면하기 위한꽤나 편리한 생각이었다. 나는 이해하지 못해. 괜찮아, 괴물이니까. 나는 이해받지 못해. 괜찮아, 괴물이니까. 나는 혼자야. 괜찮아, 괴물이니까. 나는 짐승도, 인간도 되지 못한 무언가야. 괜찮아, 괴물이니까.
짐승. 인간. 괴물. 그 차이는 신체적인 것을 얘기하는 게 아니었다. 정신적인 것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그 사이사이의 공허함은 한 사람이 메꾸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소녀는 사랑받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아이가 자연스레 접해야 하는 것이 없었다. 아이가 장난감 블럭을 들을 시기에 소녀는 이름없이 삶을 위해 투쟁하였다. 그래도 그 단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틈과 위화감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래도 잠시 외면해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마주봐야 하는 것이 자기 자신이다.
[Q. 그러니까, 이번에는 진심만을 얘기하는 거야.] [Q. 할수있지?]
카사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 고개를 여전히 땅을 향해 푹, 숙여진 상태였다. 스르르, 주먹이 하루의 멱살을 놓았다.
"하루가 좋아."
손이 땅을 짚는다. 힘이 들어간, 흙투성이 주먹을 쥐게 되었다.
"그래서 하루가 미워."
알수 없는 말을 힘겹게 내뱉고선, 침묵으로 떨어진다. 하루가 가까워져 이마를 맞닿아도, 반응을 하지 않는다.
카사의 입술은 이제, 짭짤한 맛이 강했다. 그 맞다문 입술이 이내 벌어진다.
"나는. 네가 말하는 사랑의 의미를 몰라. 나는 좋아랑 싫어밖에 몰라."
눈을 감고서, 안면을 땅을 향해 푹 숙이고서.
"난 아직도 사족보행이 편해. 날고기가 익숙해. 인간의 다양한 표정을 읽는 것이 힘들어. 얼굴을 구분하는 것이 어려워. 조금이라도 어려운 옷은 못 입어. 전자기기는 어떻게 쓰는 지 전혀 모르겠어. 말재주도, 인내심도 없어. 별로 강하지도, 튼튼하지도, 멋지게 생겼지도 않아. 맵고 쓴 것은 안 먹어."
자기소개아닌 자기소개. 그 어투는 죄를 고백하듯 힘겨웠다. 말이 빨라지면서 점점 더 어두워진다.
"인간의 고민에 공감하기 어려워. 키스가 무슨 의미인지 몰라. 말 하면 되고 안되는 것을 구분 못해. 죽은 사람은 별로 안타깝지 않아. 모르는 사람이 큰일 나는 것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어. 멍청한데다가 고집은 쎄고, 문제가 있으면 일단 폭력으로 해결하고 싶어져. 내가 죽인 생명은 셀수 없을 정도로 많아. 정말로 많아."
슬며시, 눈을 뜨는 카사. 그 수를 세듯이, 땅에서 손을 들어 그 두손을 지긋이 바라본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입.
"내 동생들은 굶어 죽었어. 그리고 시체를 내가 먹었어. 나는 아직도 왜 그러면 안되는 지 이해하지 못해. 그저 하면 안된다는 거라고 하니까. 입밖으로 꺼내지 않아."
살기 위해서는 그 어느 수단도 가리지 않는다. 그게 야생의 단 한 가지의 법칙. 카사는 드디어 고개를 든다. 그리고 위협의 의미로 씨익, 길게 입을 찢듯이 웃어보인다. 이를 보이는 행동은 모든 생물 불변하고 위협의 의미다. 인간만이 이를 보여 기쁨을 표한다.
그 웃음에는 기쁨의 감정이 없었다. 카사는 짐승의 법칙을 따라, 하루를 향해 이를 내보였다. 피칠갑된 얼굴과 서늘하게 빛나는 눈, 그리고 비인간적인 날카로운 송곳니.
"도망가려면. 아마 지금이야, 하루."
그리고 카사는 기다린다. 독버섯이 그 화려함을 강조하듯이, 자신의 존재를 내걸고 멋대로 정한 결말을 기다린다. 서서히, 그 숨이 느껴지게, 가까이 다가서는 카사의 이. 목소리는 속삭이듯, 위협하듯이 내리깔아 스산함을 강조한다.
"난. 나는. 가디언으로서, 워리어로 살기로, 그리고 워리어로서 죽기로 결정했어. 그러니까... 난 언제 죽을 지 몰라. 태어날때부터, 나는 뭐든 것을 죽을 각오로 해왔어."
오히려, 동원령이 내려질때,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과 태도를 보고선 놀랐다. 여기서는 다들 평소에 죽음과 거리가 먼 듯 살고 있었다. 원래 인간들은 이런 생각으로 안 산다길래, 하나씩 설명해주는 거야, 하고 말을 덧붙이고선 고개를 흔든다.
"그리고 너도 마찬가지야. 난 아직 너를 믿지 못하겠어. 끝까지 살아남을 것을 믿지 못하겠어. 이건 신체나 건강의 강함을 얘기하는 게 아니야."
무조건 공격력이 강하다해서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재빠른 토끼, 꿋꿋한 풀, 헤엄을 치는 물고기. 강한 이와 날카로운 발톱은 그저 카사의 가족이 얻은 수많은 방식중 하나일 뿐이다. 순식간에, 그 수법 중 하나 였던 위협하는 얼굴이 사라진다.
"내 반려는 평생가야 만해. 우리 중 누가 먼저 죽을지도 몰라. 남겨지는 것은 더 이상 싫어. 그러니까 - 그러니까 안돼."
온 몸이 떨린다. 용맹한 포식자고 뭐고 여기에는 없었다. 그저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아직 어른이 되지는 못한 겁쟁이 소녀가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괜찮다면."
그 겁쟁이는, 욕심많은 짐승이기도 했기에. 달콤함을 입에 담으면 조금 더, 조금 더 원하기에.
"기다려 줘."
이기적인 인간은, 선택지를 준다. 욕심많은 짐승은, 지금 당장 선택을 요구한다.
"나는 강해질꺼야. 먹이사슬 최상위가 될꺼야. 그리고선, 뭐든 지킬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면. 내가 살수 있고 너도 계속 살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면..."
"청혼할께."
큰 일을 다짐하는 내용과 어울리지 않게, 목소리는 담담하다. 그저 다음날 아침을 정하듯이, 혹은 아침에 태양이 뜬다는, 당연한 사실을 고하듯이. 청혼치고는 무슨 무드도 비장함도 큰 감동도 없는, 약속보다는 통보에 가까운 말.
어느새 카사의 얼굴은 제대로 하루의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속내로 어떠한 결론에 다다른 것일까? 언제 울었냐는 듯 표정은 담담하다. 뺨위의 눈물자국이 반짝인다. 눈허나 그와 달리, 주홍빛 눈동자에는 여러 감정이 휘몰아친다.
"그러니까. 괴물이 되지 말아줘. 두명의 괴물은 두명의 외톨이일 뿐이야. 그런게 괴물인거야. 나는 그저... 그. 할수만 있다면, 그..."
그러다 찬찬히. 태풍이 바다를 조용히 떠나 서서히 잔잔해지듯이.
맹수의 눈이 고요하게, 슬프게, 애절하게, 작은 불씨를 담고 있다.
[Q. 그리고 세번째.] [Q. 카사 본인의 감정은?]
싫다면. 당장 도망쳐줘.
숨을 내쉬듯이. 작디 작은 속삭임. 가까이, 얼굴을 맞대는 이 거리만에서만 들릴테인. 작은 욕망.
>>931 와 노래 엄청 좋아요...! 게다가 가사에 그린다는 내용이 있는 거랑 나밖에 할 수 없는 일... 자신밖에 낼 수 없는 색... 대체할 수 없는 나... 코러스 부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멋지고 뭐라해야할지 모르겠고 제가 주접떨고싶은데 감동이 다 글로 표현이 안되는걸ㅁㄴㄹㅎㅇ
"나도 꽤 다양한 표정을 짓는 편이니까. 이런 표정을 보일 일은 좀처럼 없으면 좋겠지만..."
물론 내가 내 표정을 제 3자의 입장으로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대충 어떤 느낌이었을지는 감이 오는 것 같아서.
"나라고 해도 무조건 한계까지 참고 보는 성격은 아니야."
그건 걱정해 주는 사람들한테도 실례니까. 싸울 때 엉망진창으로 다쳤는데 서포터 기운을 빼고 싶지 않다고 치료를 안 받고 버티거나-이건 극단적인 예시지만, 그런 일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걱정해주는 걸 알기에 묵묵히 그런 말들을 받아들인다. 팝콘 얘기에는 "괜찮아. 그런 걸로 아깝진 않으니까."이라며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피곤하니까 슬슬 돌아가봐도 괜찮을까?"
선택을 맡았기에 돌아가본다는 선택을 한다. 물론 이렇게 말했지만 기숙사로 바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지칠 때까지 가볍게 운동 한 번 하면 잠도 잘 오고 푹 잘 수 있으니까. 마음정리를 할 겸 수련에 집중하는 것도 좋다.
하루는 묵묵히 카사의 고백을 듣는다. 어쩌면 처음으로 카사의 속내를 듣는 것일지도 모를 이 순간, 그저 천천히 숨을 뱉어내며 처음부터 끝까지 카사의 고백에 자신을 묻히지 않고 기다릴 뿐이었다. 조심스럽게 꺼내는 그 수많은 말들을 묵묵히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듣고 있던 하루가 입을 연 것은, 두사람이 얼굴을 가까이 맞대고 속삭인, 카사의 작은 욕망이 흘러나온 후 였다.
" 카사가 아직 온전하게 사랑이란 감정을 알고 있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어. "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하루가 나직히 이야기를 꺼낸다. 하루의 손은 메스를 카사가 다치지 않게 역으로 쥐느라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가느다란 손끝으로 카사의 뺨을 부드럽게 간지럽힌다. 그 손끝에서 전해져오는 온기에 미소를 조금 더 짙게 만들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 사족보행이 편하다는 것도 이해해. 카사는 그렇게 자라왔으니까. 날고기가 익숙하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그래서 앞으로도 내가 더 맛있는 것을 맛보고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할거야. 표정이 읽기 힘든 것은 그저 카사가 자라온 환경이 남들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이야. 그래서 카사가 내 얼굴을 보고 좀 더 익숙해질 수 있게 노력할거야. 얼굴을 구분하는 건, 생각보다 다들 어려워 하는 부분이라 괜찮아. 하지만, 카사가 적어도 내 얼굴 만큼은 확실하게 기어갛게 해줄거야. 어려운 옷을 못 입어도 상관없어. 내가 입혀줘도 되고, 가르쳐주면 되는 일이니까. 전자기기는 나도 어려운 걸? 카사만 그런 것이 아니야. 말재주도, 인내심도 부족할 수 있어. 그건 이상한게 아니야. 카사는 강해, 튼튼해. 지금도 내가 다치지 않게 감싸주고도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잖아. 그리고 카사는 멋지고, 예뻐. 이건 널 사랑하는 내가 보증할게. 맵고 쓴 것은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 그것도 전혀 이상한게 아닌걸? "
하루는 카사가 용기를 내어 고백하는 것들을 하나도 빼먹지 않고 대답을 돌려준다. 하고 싶은 말은 한가지였다. 고작 그런 것들이 카사를 괴물로 만들지 않는다고. 그저 카사의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곳에서 시작이 되었을 뿐이라고. 하루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듯 했다.
" 원래 남의 고민을 공감하는 것은 쉽지 않아.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친해진 사람이라면 언제든 노력하는 것 뿐이야. 나도 마찬가지고, 카사도 노력하고 있잖아. 키스가 무슨 의미인지는 앞으로 알아가면 되는거야. 내가 좀 더 내 마음을 온전히 전할 수 있게 노력할게. 하면 되는 말과 안되는 말은 원래 다른 사람들도 어려워 해. 하지만 무수한 시행착오를 반복한 후에 완성되는 법이야. 그러니까 그것도 이상한게 아니야. 폭력으로 해결하는 건 내가 옆에서 도와줄게. 카사도 참을 수 있게, 내가 옆에서 잡아주고 도와줄거야. 카사가 죽인 생명은 많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게 즐기기 위해 죽인게 아니잖아? 카사가 살아남기 위해 해온 일인 만큼 이세상 그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널 탓하지 않아. 그리고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그 부분도, 내가 알려줄게. 왜 그런 것인지, 어째서 하지 말아야 하는지 며칠, 몇년, 몇십년이 걸리더라도 네 곁에서 알려줄게. "
상냥하기 그지 없는 말이 카사의 품에서 이어진다. 카사의 말을 부정하고 고쳐주려는 것처럼 하나하나 제대로 짚어가며 이어지는 하루의 말은 잠시 숨을 고르듯 멈춰지고, 하루는 잠시 눈을 감는다.
" 그러니까, 네 옆에서 기다릴게. 네가 만족할 때까지 강해지는 것을, 그래서 날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청혼을 해올 때까지 옆에서 바라보고, 밀어주고, 받쳐주고 널 믿어줄게. "
아, 하루의 입에서 무언가를 깜빡했다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짓더니 천천히 카사의 옷을 두손으로 강하게 움켜잡곤 자신에게로 당긴다. 강하게 잡아당긴 그 감각은 어째서인지 목줄이라도 채워진 것 같은 감각을 카사에게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 내가 널 길들이게, 카사. 너를 길들여서, 나만 바라보게 할거야. 나만 사랑하게 할거야. 너라는 짐승을 길들일게. 그러면 되는거지? "
하루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체,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여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이미 카사는 자신에게 목줄이 채워진 것이라는 듯, 카사가 멀리 떨어지지 못하게 그녀의 옷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쥔 체 눈을 맞춘다.
" 너는 나의 늑대야, 카사.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왔지만. "
하루는 그렇게 속삭이곤 다시금 천천히 카사를 끌어당겨 부드럽게 목을 감싸안는다. 지금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이라는 듯, 따스하고 강한 포옹이었다. 적어도 자신의 존재가 카사에게 온전히 전해질 수 있게 하려는 것처럼, 강하고 깊은 포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