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조아. 그가 나열하는 감정에 어울리는 색들을 하나하나 찍어준다. 물론, 한 곳에다 찍은 다음 다른 곳에다 각각 하나씩 찍어 어떤 감정이 합쳐졌는지 알 수 있도록 한다. 그가 가진 감정 대부분이 부정적인 것에 "요즘 젊은 것들은..." 하는 말이 튀어나올뻔 어이쿠 튀어나왔네... 아무튼, 그렇게 색들을 하나로 모으니 얼추, 비슷한 색이 나왔다. 맨 처음 찍은 혼탁한 검은색과 비슷한.
"보세요."
스케치북을 그의 눈에 쉽게 들어오도록 들어올린다. 스케치북에 잔뜩 찍힌 각기 다른 색들의 점.
"이것이 지훈 씨가 느끼거나 가지고 계신 감정이에요. 이것들이 모두 하나가 되면, 그 감정을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따로 나열하니 알기 쉽죠? 어떤 감정이 뭉쳐졌는지."
깊은 한숨.
"지훈 씨 스스로 감정을 표출하는 법을 모른다. 감정을 잘 모른다. 그렇게 이야기 해도, 이렇게나 많은 감정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잘 모르고 계신 거 뿐이에요."
다림은 이런저런 일이 있었습니다. 태양왕 게이트라던가.. 그런 것만으로도 괜찮았던 걸까요?
"마치 멀게만 느껴지네요." "가까우면 그게 더 이상하지만." 딱 달라붙는 타이트한 미니원피스를 입고는 아무렇게나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가만히 해가 진 저녁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옅은 보랏빛마저도 남색에 잡아먹힌 하늘. 더 있다가 가도 되겠지.
데이트였던가요.. 같은 생각을 하다가. 당신은 화살촉(분리함)을 들고는 옅은 가로등빛에 비춰봅니다. 딱히 해를 가할 생각은 없지만. 화살촉을 목걸이처럼 걸었습니다. 이대로 누워 있으면 어른어른거리는그런 이들에 의해서 밤바다 괴담 같은 거 하나 나타나지 않을까요..?시험공부하다 머리를 식히러 산책을 하는데... 로 시작하는?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알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릴까요? 는 약속의 대상입니다. 오락가락하는 것은 잠깐은 외면합시다. 녹아내리면 글쎄요?
"이제 어떤 감정이 있는지 알았으면, 그것을 이해 해야 해요. 아직 감정을 다스리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표출해요?"
대부분이 부정적인 감정이지만, 이것들을 어떻게 고쳐나갈지는 본인이 할 것이기 때문에... 그 부분은 스킵. 하지만, 왜 이렇게 성미가 급하시지... 명상도 단계가 있는 것처럼, 이것도 단계가 있는데. 어느새 해가 져가니 빨리 끝내야겠네... 하는 생각만 든다. 아니면 다음에 할까...
"사실, 이 단계가 제일 어렵긴 해요. 어릴 땐 뭐 하고 싶으면 이거 하고 싶다. 뭐가 필요하면 그게 필요하다 당달하게 말할 수 있었지만, 자라오면서 우리들은 내가 필요하다고 그 필요를 바로 말하면 안된다. 같이.. 막, 그렇게 생각하게 됐으니까요. 음, 전문적으로 설명하자면.. 더 이상 세상의 중심이 '나'가 아닌 걸 깨닫게 됐고, 그렇게 본인의 욕구를 조절하고 욕망을 참아내고 그러면서 본인의 감정마저 절제하게 됐으니까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자신의 현재 감정은 어떤지 깨닫고, 그것을 표현해봅시다. 기쁘면 기쁘다. 왜 기쁘지? 뭐뭐해서 기쁘구나. 나는 슬프다. 왜 슬프지? 이렇게 돼서 슬프다. 이런 것들을 알아차리고 말로써 표현을 해봐요.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지훈 씨는 감정을 표출할 수 있을 거예요."
"오랜만은 아니지만.. 어쩐지 오랜만인 기분이에요." 드러난 어깨에 내려앉고 간질거리는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빗어내리면 어깨를 덮게 될까요? 평소랑은 다른 느낌일지도.라는 말을 하는 지훈을 보고는 조금 다른 느낌의 옷이긴 해요. 라고 답하나요? 평소대로 입고 나온다고 해도 패션 테러리스트 같은 것만 아니라면 다 괜찮지 않을까요?
"그러게요.. 데이트..라면" 손깍지를 끼려는 지훈을 바라보면서 순순히 끼려 합니다. 반장갑을 끼고는 있네요. 다행일까요? 그리고는 일어나서는 다른 쪽 손으로 옅게 묻은 모래를 털어낸 다음 손깍지를 풀려 시도합니다. 그 다음에 행하려 하는 행동은.. 지훈과 팔짱을 끼려 하는 걸까요? 몸을 밀착합니다. 조금 추운 느낌이 들어서였을지도? 눈을 살짝 내리는 걸 보면 데이트니까. 그렇게 행동하는 걸 봐서 그런 것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지훈이 걸아간다면 비교적 종종걸음입니다. 보폭이 넓긴 힘들겠죠.
그가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을 보니 휴우! 이제야 한 발자국 뗐군! 하는 개운함이 느껴져 만족의 한숨! 이렇게 잘 표출할 수 있으면서! 역시 사람은 뭐든 시도해야 해. 킥킥 웃는다.
"거봐요. 잘 할 수 있죠? 자기 감정이 어떤지 깨닫고, 그 감정을 표출하는 거. ....음..... 말하는 방법은 좀 단순하긴 하지만, 점점 나아지겠죠."
오늘은 여기까지! 깜깜해졌어~
"그렇게 자기 감정을 알아차리면, 감정에 휩쓸리지 말아야 할 때 휩쓸리지 않을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감정을 표출하는 방법에는 행동도 있으니까, 감정을 실어서 더 행동할 수 있겠죠. 의념을 쏟듯이. 자신을 이해할 수도 있을 거고... 더 나아가선 자신이 바라는 게 뭔지도 알 수 있을 거예요. 음, 시간 되시면 명상을 한 번 해보세요. 명상이... 뭐... 거창한 게 아니고, 눈을 감고... 차분하게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여 마음을 비우는 거니까... 하루에 10분만 하더라도 큰 효과를 보실 수 있을 거예요. 더 나아가선 명경지수도 가능할지도?"
드러난 어깨를 살짝 보다가 다른 곳으로 휙 눈을 돌렸을까. 뭐랄까, 평소보다 노출이 심한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으음. 잠시 얼굴을 쓸어내리고는 신경쓰지 않기로 한다. 하나하나에 신경쓰다보면 다림이 쪽에 끌려다닐 것만 같은 느낌이었을지도.
" 조금 추워? "
손깍지를 끼자 반장갑의 감촉이 느껴졌을까. 이질적인 감촉과 손가락 끝의 감촉이 동시에 느껴지자 묘한 기분이었겠지. 그 기분도 잠시, 팔짱을 끼자 지훈이 다림을 향해 물었던가. 확실히 밤바다에 아직 3월인데다 저런 옷이었으니... 지훈 쪽에서도 몸을 더 가까이 밀착하고는, 일부러 속도를 늦춰 다림과 보폭을 맞추려고 했겠지.
" 정말 그 이유 하나 뿐이려나. "
다림의 말에 잠시 고민하듯 갸웃거리다가 짓궂게 웃어보이며 속삭였다. 그 이유 뿐만은 아닐텐데- 같이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을지도? 하여튼 간에, 다림과 팔짱을 끼고 살짝 이끌듯 하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