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다림의 말에 재밌다는 듯 웃음을 터트린다. 하지만 적어도 하루는 자신이 그런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림은 알지 어떨지 모를 일이다. 일단 하루는 웃으며 넘기고 있었으니까.
“ 음, 몰랐지만 새롭게 알았다는 걸로 할래요. 흐물흐물 녹은 다림을 보는 것도 즐거울 것 같아서. ”
냠 하고 자신이 내민 팝콘을 받아먹은 다림의 말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인 하루가 짐짓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처럼 태연하게 말을 늘어놓는다. 사실 노렸을지도 모르지만 순순히 말해줄 생각은 없는 것이겠지. 그러다 볼과 볼을 맞대는 인사를 시도하는 다림의 행동에, 처음에는 눈이 동그랗게 커졌던 하루가 이내 기분좋은 눈웃음으로 바뀌어간다.
“ 신성모독이라니, 저는 그렇게까지 특별한 사람이 아니랍니다. 저는 그냥 다림과 같은 사람이에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
너스레를 떠는 다림에게 부드럽게 속삭이듯 말한 하루는 자신을 끌어당겨 눈을 마주하는 다림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예쁜 다림의 하얀 눈을, 하루의 금빛 눈동자가 응시하다가 천천히 까치발을 들어올린다. 하루의 얼굴이 다림에게 가까워지고 살며시 다림의 코 끝에 부드럽게 푹신한, 그러면서도 따스한 온기를 머금은 것이 닿았다가 떨어지게 하려 합니다.
“ 아, 입장 하고 있어요, 다림! 얼른 들어가요! ”
다림이 무엇인지 인지하기도 전해 슬그머니 떨어진 하루가 팝콘을 들지 않은 손으로 입구를 가리키며 해맑게 웃어보입니다. 그리곤 얼른 들어가자는 듯 휘젓던 빈손을 다시금 다림에게 상냥하게 내밉니다.
"정말 광고 찍는 의뢰를 찾아야겠네요.." 분명 광고주는 하루를 보고 명함을 줄 거라 확신하는 다림입니다. 가디언 후보생이라서 안 줄 수도 있지만 그건 넘어갑시다.
"같은 사람이라 해도..." 하루는 너무 귀여운걸요. 아니. 귀여운 걸로 표현이 안 되네요..라고 말합니다. 흐음.. 언제 한 번 머리부터 발끝까지 꾸며보면 어떨까. 생각하네요. 머리카락을 일부는 틀어올리고 일부는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도록 하고, 귀걸이는 의외로 붉은 리본같이 부드러운 타입으로 하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거기에 오늘 산 오프숄더 시스루 원피스에 고운 구두면 음.. 역시 패완얼입니다(?)
코 끝에 살짝 닿았다 떨어진 것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하루는 멀어졌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 감촉에 약하게 동공이 커졌습니다. 가까이서 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었을까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그리고 미약한 당혹이 섞인 미소를 아주 살짝 짓고는 다림 또한 빈 손을 내밀며 조심스럽게 잡으려 합니다.
"그럼요. 빨리 들어가야겠네요. 티비에서 보는 것보다 큰 화면이니까.." 정말로 여담이지만 코 끝에서는 옅은 화장품 향이 났으려나요? 들어가면 손을 잡고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가며 흔들리는 걸 조심하세요. 일까요?
하루는 다림의 말에 다림 역시 자신과 같다는 것을 다시 한번 주장하며, 이번만 자신이 봐주겠다는 듯 귀여운 엄포를 놓습니다. 적어도 지금 그녀의 모습은 자신의 연인이 자신을 낮추는 것을 어떻게 햇든 막아내려는 귀여운 모습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지나가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그런 두사람을 보고는 웃으며 지나간다.
자신의 손을 잡기 위해 내미는 다림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쥔 하루는 헤헤헤, 하는 귀여운 웃음소리를 흘리며 앞장 서서 걷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방금 전의 일을 다림이 알아차리게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다림이 홀로 그 여운을 만끽하길 바라는 것일지 모를 행동이었지만.
" 아, 여기에요! "
조심하라는 다림의 말에 해맑은 목소리로 '네~' 하고 대답한 하루는 어느덧 도착한 커플석에서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하곤 먼저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리곤 자신의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탁탁 두드리며 얼른 앉으라는 듯 바라본다.
분명 다림이 앉았다면 자연스럽게 다림의 한팔을 감싸안고, 어깨에 머리를 기대왔을 것이다.
" 영화관에 오는 것도 생각보다 더 좋은 것 같네요~ 다림이랑 와서 더 좋은걸까요? "
어둠속에서도 반짝이는 하루의 금빛 눈동자는 언제나처럼 다림을 향해 있었다. 그렇게 하루를 바라봤다면 입모양으로 ' 아까꺼 어땠어요? ' 하고 물어보며 개구쟁이같은 미소를 지어보였을 것읻.
자리에 딱 붙어앉아 입모양으로 장난스럽게 물음을 던지던 하루는 자신의 입술을 매만지려는 듯 뻗어오는 다림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 손가락 끝에 입술을 살짝 내밀어 닿게 하고는 키득거리는 웃음소리를 낸 후에 능청스런 대답을 돌려줍니다.
" 죄가 많다니, 하루는 잘 모르겠어요. 혹시 아까의 것으로는 감질맛만 나서 그런거에요? "
영화관이라는 특성상, 서로 가까이 앉은 상태에서야 겨우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어두운 장소에서, 큰 소리를 내선 안된다는 것 때문에 속삭이는 하루의 말투에선 마치 다림을 유혹하는 듯한 느낌이 전해집니다. 그것이 본심일지, 아니면 의도하지 않은 것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런 효과를 줄 것이라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 어쩌지, 제가 다림양을 아쉽게 해버렸나봐요. 어쩌죠? "
살며시 입술을 내밀어, 맞춰주었던 가느다란 다임의 손을 널널한 자리 덕분에 팝콘을 내려놓은 손을 가져가 살며시 잡으려 하며 게슴츠레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어두운 영화관 안에서 그런 눈웃음을 지어보이는 하루는 어떤 느낌일지.
하루의 분홍빛 입술 사이에선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다림에게만 들릴 정도로 새어나오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