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지훈이 심심해할 바로 그 시간에 기숙사 침대에서 누워있었다. 누워서, 아무런 생각도 하고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다는 권태로웠고,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아했으며, 또 딱히 할 일이 닥쳐온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고자 한다면 공부나 수련을 할 수 있었을 테지만 그 어떤 학생이 그런 짓을 하던가. 그러던 문득 가디언칩이 울렸다.
그럼에도 세상은 아직 내가 너를 볼 수 있을 만큼 밝으니 그만큼 빛이 많다는 의미일 거야- 라는 괜히 어울리지 않게 희망찬 발언이나, 그래서 세상은 암흑투성이다. 절망하라! 회개하라! 같은 괜히 어울리지 않게 절망찬 발언이 이어질 것 같은 말이지만 나이젤은 딱 거기서 말을 끊었다.
"어차피 1500GP던 10000GP든 사먹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는 건 똑같은걸요..."
그리고 화현의 안타깝고 슬프고 커여운 목소리(*쓰는 사람의 주관적 의견입니다. 캐릭터의 의견이 아니고 어쩌구)를 들은 나이젤은 측은함... 이 들진 않더라도 뭔가 제안해볼 생각이 들었다.
"...밥 한 끼 정도는 사드릴 수 있어요?"
딱히 먹으면서 얘기하잔 것도 아니니까 그냥 말없이 먹고 가기만 해도 괜찮아요. 같은 말을 덧붙이면서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긴 아까우니까 같은.
다림은 상점가를 탐방하기 위해서... 라는 목적을 가지고 상점가에 나왔습니다. 많이 걸어다녀야 할 것 같기 때문에 조금 단정하게 입었지요-라고 말해도 그냥 교복입니다.- 상점가는 시끌벅적하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으음.. 그냥 혼자서 돌아다니며 보는 것도 좋지만, 다른 사람이랑 다녀보아도 좋을 듯할까요?
"그치만 누구랑 같이 다니기에는.." 그 누구도 지금 시간에 쉬고 있지 않았다... 라는 감이 드는 겁니다. 누군가랑 같이 일을 보는데 끼어드는 매너없는 타입은 아닌걸요? 그러나 슬쩍 당신의 눈에 잡힌 것은 하루였습니다. 다니는 것을 보니 일행이 없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건 행운인 걸까요..?
"저.. 하루 씨?" "상점가를 혼자 오셨나요?" 옅은 미소를 올리고, 가벼운 물음과 함께 가까이 다가가서 톡톡 건드리려 시도합니다. 어쩐지 진지해보이는 표정이 살짝 묻어나기에 조금 망설이기는 했어도.. 만나서 이야기를 해본 사이를 매섭게 내치진.. 않을거라고 생각하나요?
뭐지? 의념인가? 명암처리 어케 해요? 빛이 없는데 그림자가 생기면? 나이젤의 희망찬 생각을 받아들이기엔 너무나도 부정적인 세계였다. 뭐, 거서 끝내기도 한 희망절망 고교 이야기. 1500GP와 10000GP의 차이는 0이 하나 더 많다는 것이다. 0이!!! 0 하나의 차이가 얼마나 큰데! 지나가다 명랑발랑 핫도그가 보이면 하나 먹을까? 고민은 해도 지나가다 순금이 보이면 살까? 말까? 를 고민하지 않는 거랑 비슷해! 하지만 논쟁이 싫으니까 묵묵부답.
"아, 정말요? 정말요? 그럼 저... 치킨버거에 패티 추가 2번하고 피클 5번, 양파 2번, 소스 2번 추가해서 먹어도 돼요? 음료는 사이다에 얼음 빼고, 감자튀김은 방금 튀긴 것으로 먹어도 돼요?"
야호~ 바이바이! 옥상! 아... 맞다... 이제 곧 영웅쇼 시작하는데.. 특촬물... 보고 싶었는데.. 뭐 포장해서 오지 뭐~
정말이지 친구끼리 이정도가 보통이라면 세상 모든 커플들은 다 절친이겠습니다! 지아양의 스킨십 기준은 정말 어디까지이신걸까요? 화끈거리는 것을 애써 억누르려고 하지만 부채질을 해도 가라앉지가 않네요! 자리에 앉으면서도 여전히 뺨은 새빨간빛이었습니다. 블러셔를 할 필요도 없었답니다.
"그러니까, 신한국 기준으로 보통이와요 지아양.....친구끼리는 이러지 않는답니다....! "
내성이 없긴 뭐가 없긴요, 내가 연애를 몇번이나 했는데 스킨십쪽 내성이 정말 없을까요? 그냥 이건... 그래요, 문화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치는 게 좋겠네요! 메뉴를 많이 시켰기 때문에 아마 조금 늦게 올 것 같았기 때문에, 기다리는 동안 화장이나 조금 고치자는 마음에서 파우치를 꺼냈습니다.
"정말로 말이어요, 마도일본에서는 손 잡는 것 까지가 보통이었사와요? 믿어주셔도 된답니다? "
그리고 말함과 동시에 손거울을 꺼냈습니다만...예상대로 머리가 조금 흐트러졌네요! 앞머리만 조금 고치면 될 것 같습니다. 빗을 꺼내 빗어주도록 합시다.
비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던 하루가 선택한 것은 가볍게 상점가를 둘러보는 일이었다. 싸운 그 날 이후로 기숙사에서 뛰쳐나간 카사가 배가 고프면 상점가에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아주 자그마한 희망도 품고 있긴 했지만, 그다지 큰 희망을 두진 않는 하루였다. 그저 운이 아주 좋다면 볼 수 있을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 같은 것이었으니. 아무튼 홀로 거리에 나온 하루는 어디로 향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마침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 아, 다림양! "
새하얀 블라우스와 핏 좋은 청바지를 걸친 하루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다림을 보곤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반겼다. 애초에 혼자 나왔다가 혼자 시간을 보내고 들어갈 것을 생각하고 나왔던 것인만큼, 갑작스런 아는 사람과의 만남이 그녀로서는 기쁜 일이기도 했다.
" 네, 혼자 나왔어요. 다림양은..... 저랑 비슷하게 혼자 나오신걸까요? "
하루는 잠시 주변을 눈을 빠르게 굴려 확인하곤 부드럽게 미소를 띈 체 말을 이어간다. 주변에는 딱히 다림을 기다리는 일행 같은 것은 보이지 않고, 각자 제갈길을 걸어가는 사람들만 보였기에 적당히 유추해낸 부분이었지만, 아마 그리 틀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하루였다.
혼자 나왔다는 것은, 혹시라도 같이 돌아다닐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니까. 하루는 얼굴을 좀 더 밝게 만들며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거기에 조금은 들뜬 목소리가 더해진 것이, 갑작스레 오늘 하루에 무언가 추가될 것을 반기는 듯 했다.
" 아, 저도 상점가를 돌아다니려고 나왔었는데.. 진짜 우연이네요. "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는 우연이 또 있을 수 있나 싶었지만, 어찌되었든 어울리길 좋아하는 하루의 입장에선 이 맞아떨어지는 우연도 환영할만한 사항이었다. 겸사겸사 나중에는 카사에 대한 건도 물어볼 수 있을테니. 다림이 카사를 알고 있을거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뭐, 그부분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괜찮을 부분이었다.
" 정말요?! 사실 다림양이 먼저 말 안해주셨으면 제가 먼저 물어보려고 했거든요. "
하루는 다림의 제안에 처음에는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이내 환한 미소로 바뀌며 힘껏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묶지 않는 하루의 새하얀 머리카락은 기세 좋게 그녀의 고갯짓에 따라 찰랑거리는 것이, 주인의 기분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 했다.
" 그러면, 같이 돌아다니기로 해요. 자, 첫번째 목적지는 어디로 하는게 좋을까요? 제가 정해도 되긴 하겠지만... 왠지 그랬다간 저번에 만난 것처럼 카페에 들어가버릴 것 같아서.. "
하루는 작고 붉은 입술 사이로 혀를 살짝 빼물며 곤란하다는 듯 웃어보이며 말을 덧붙인다. 디저트를 좋아하는 자신의 고삐를 최대한 붙잡아두고 싶은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