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근데 진짜로, 카사는 억울했다. 그냥 인간의 청결의 기준이 너무 높은 것이다!!! 늑대 씻기는 게 인간 씻기는 것보다 어려운 건 당연한게 아닌가!!! 집사도 꼬질해진 자신을 보고 씻기려하다 하수구가 막혀서 엉엉 울었다! ...아니, 진짜로 울것은 아니였지만... 하여튼 그런 절망의 표정은 오랜 만에 보았다.
...물론 이제서야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자신에게도 조금, 아아주 조금 잘못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누가 꼬리 밟았어."
씩씩거리면서 답하는 카사, 얼굴이 잔뜩 구겨진채 궁딩이를 주물럭거린다. 꼬리가 없어져도 얼얼함은 남는다! 하여튼, 빨리 다시 의념기를 쓰고 늑대 상태로 돌아가고 싶다. 인간 모습은 너무 약하다. 특히 지금은 마음이 허허해서, 강한 모습은 꼭 필요하다! 연약한 인간 모습에 연약한 마음이라니, 완전 불안해!!!
"응? 너 기숙ㅅ-"
...... 뒷목이 잡힌 카사는 반사적으로 대롱대롱. 몸에 힘이 주욱, 빠지고 평온한 표정을 짓는다. 본능은 무섭다.
“후후🎵 립은 많으면 좋고~ 정말 많을수록 좋답니다~! 하늘 아래 같은 립스틱 색깔은 존재하지 않사와요….🎵 “
아무리 예쁘게 눈화장을 한다 한들, 아무리 매끄럽게 피부화장을 해낸다 한들 결국 화장의 완성은 립입니다. 립이 깔끔하지 못하면 다른 걸 아무리 잘해보았자 눈에 띄지 않는답니다. 사람은 결국 눈에 가장 띄는 걸 찾아가기 마련이니까요. 물론 사람에 따라 취향은 다르기 때문에 컬러가 있는 립밤을 바르는 것으로도 괜찮겠지만, 괜찮은 립밤은 가격이 거의 쿠션팩트 하나와 똑같기 때문에 시작부터 이런 종류를 추천드리긴 좀 많이 무리가 있었답니다. 그리고… 모처럼 연습을 하는 건데 기왕이면 최대한 연습하기 좋은 종류로 고르는 게 낫지 않을까요? 틴트는 양조절이 힘들고, 립밤은 티가 안나니 결국엔 립스틱이었습니다. 립펜슬은 조금 더 정교함이 필요했기에 결국엔 립스틱이 답이었답니다.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어라🎵 다림양, 제대로 된 도구로 바른다면 색은 뭉개지지 않는답니다! 그래서 이런 베이스립을 깔아줄 때는 면봉이나 립브러쉬 같은 거 있지요, 그걸로 베이스를 깔거나 베이스립 위에 다른 색을 올리는 거랍니다. 이렇게요…🎵 “
저는 그렇게 말하며, 방금 제품을 발랐던 손등 위에 다른 쿨톤 계열의 립제품을 겹쳐 발라보였습니다. 입술에 직접 올리는 것보단 덜 예쁘지만, 이렇게 보여드린 것만으로도 대강 감을 잡으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답니다. 그렇게 겹쳐 발라 보여드린 색은, 너무 짙지도 않고 적당히 어여쁜 장밋빛이었지요.
카사를 바라보더니 중얼거렸을까. 동물 꼬리를 밟은 거면 실수라고는 해도 사과하고 지나가야 하는게 맞을 텐데... 흐음. 누군진 몰라도 참 예의없는 사람이었다. 그건 그렇고, 카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던가. 자신과 옷 사이즈가 크게 다를 것 같지도 않으니 조금 빌려주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 와중에 카사가 뒷덜미를 잡히고 그대로 풀어져있는 모습에 지훈은 기숙사로 돌아가며 카사의 볼을 원하는만큼 조물거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던가.
" 완전히 풀어져 있었구나. 본능이라는 건 무섭네. "
고개를 끄덕이고는 카사를 들고선 자신의 방으로 올라간다. 뭐, 당연히 남자 기숙사랑 여자 기숙사는 달랐을테지. 자신의 기숙사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카사를 바닥에 내려주고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본 적 있어요." 어째서 모든 것이 이기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가. 라고요. 머리카락은 조금 길어져 어깨를 막 넘은 다림은 희미하게 웃었습니다. 분홍빛 감정들은 새어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런데도..
"먼저 말하는데도 다른 느낌은 처음이네요." 그 느낌들은 어둑어둑했던 것을 안다. 예전부터 미련 없이 떠났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그러나 이젠 떠날 수 없어요. 매 번 생각하면서도 매 번 깨졌던 것을 버리고 떠났던 건 이제 없습니다. 깨지면 깨지는 대로겠지요. 그렇게 천천히 쌓인 것을 손으로 떠낼 시간이지요. 당신에게서 받은 것을 마음으로 감싸 만든 것을 말이에요.
"좋아해요." 얼굴이 발갛게 물들면서 그 말을 굴리듯 내뱉습니다. 마치 감정을 쌓고 쌓아서 진주가 된 것 같은 말이었습니다.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서는 정리할 수가 없어요." 받은 것을 다 떠내고, 감싸안은 것을 뽑아내고 그래야만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어요. 참 못됐다고 생각하고 깨뜨리는 게 좋을 거에요. 하지만 담은 것이 이렇게나 많이 떠내져야 하네요.
"그만큼이나 많이 주신 분이 당신이네요." 묻어둠을 선택한다면 빈 곳 한 켠에 남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꺼내기를 선택한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