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곽을 뜯고 들어와 심장을 갈가리 찢어먹는 사랑스러운 파괴자 H, 당신의 소원대로 나는 미쳐가고 있어. 부디, 나의 불면이, 당신에게 위로가 되기를. 악마의 유전자를 가진 당신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
2017년 봄 김개미
김개미,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 중
◆ 센티넬버스 기반의 1:1 스레입니다. ◆ 상황극판의 규칙을 준수합니다. ◆ !!!TRIGGER WARNING!!! 이 스레는 피폐한 플레이를 지향하며, 등장인물 및 배경의 특성상 플레이 중에 흡연 및 음주, 범죄행위 등이 묘사될 수 있고, 잔인한 장면이 묘사될 수 있습니다.
아이작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미리엄에게 있어 확실한 것 하나는, 이 길만이 지옥에서 벗어나는 길이라는 것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하나 모르는 길이지만 무엇이든 지금보다는 나을 테다. 원하지도 않는 상처를 달고 매일 밤 울음과 분노를 삭이는 것보다는 나을 테다. 이 앞에 있는 것이 지옥도보다 더한 미래라도 괜찮았다. 미리엄은 타인의 의지로 당하느니 자신의 의지로 불 속으로 발을 디딜 인간이었다.
미리엄에게 있어, 아이작을 택하는 건 최선의 선택이었다.
...아. 미리엄은 작게 침음을 흘렸다. 무슨 말인지 늦게나마 알아들은 탓이다. 아마 부작용의 이야기겠지 싶었다. 만들어낸 것에 진심이 섞이기 시작했다. 원체 연민이나 동정이란 무책임하고 가벼운 감정 아니던가.
"지금도 그래요?"
아직도 가이딩의 감각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아이작에게 가이딩이 닿고 있는지 아닌지 제대로 알기가 어려웠다. 주위에 가이딩을 질질 흘리고 다닌다 해도 지금 당장의 상태로는 알아채기 어려울 것이다. 확실히, 빠른 시일 내에 감각을 익혀야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아이작의 말을 들으며, 미리엄은 마치 웃음을 빼앗기고 있는 사람처럼 표정이 옅어졌다. 아예 표정이 없지는 않았으나 전처럼 환한 미소는 분명 아니었다. 아니, 그 정도 말로도 부족했다. 그건 어딘가 음습했으며 무엇인가를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그 자신이든 이 세상이든. 미리엄이 잔을 내려놓자 작은 소리가 울렸다.
"...신이란 것이 있다면, 참- 불공평해요."
미리엄은 살풋 웃었다. 음울한 기운은 빠르게 사라지고 연분홍 꽃잎을 닮은 엷은 미소만이 남아있었다. 그래, 세상은 불공평했다. 누군가는 지옥에 처박아져 있는 반면에 누군가는 정말 평탄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 신이란 것이 있다면, 미리엄은 분명 그것을 죽이고 싶어질 게 틀림 없었다.
센티넬들은 능력의 부작용으로 오감과 신경이 과하게 민감해지는 과민감증을 겪는다고 하는데, 아마 그는 청각에 있어서 극도로 예민해지는 걸까. 그는 무엇에 그렇게 고통받아온 걸까. 어디서 받았는지 모를 핍박과 고뇌가 검게 말라붙은 눈에도 한 줄기 안식이 찾아든다. 아주 이상할 정도로 뻔한 방식이었지만, 당신은 누군가에게, 적어도 모두에게 미움받는 이 사내에게 그런 안식을 안겨줄 수 있는 모양이다. 그는 눈을 감았다. 겨울 숲 한가운데에 있는 것 같은데, 낯섬이라던가 두려움이라던가 추위 같은 부정적인 느낌은 없고 차분한 안식만이 남아있는 듯한 그런 느낌에 그는 자신이 무방비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
당신이 쏟아놓는 탄식에, 아이작은 감고 있던 눈을 뜨고 당신을 가만히 주시했다. 무언가 살펴보는 눈길도 아니었고, 동정하는 눈길도 아니었다. 씁쓸한 공감의 눈길이었다. 당신과 마찬가지의 구렁에 떨어져있기에 뭐라 위로도 던질 수 없고 희망찬 말도 던질 수 없는.
공감합니다, 같은 무의미한 진심을 꺼낼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 대신에 말을 돌리기를 선택했다.
"-그래, 진작에 했어야 하는 말이었는데, 참. 고맙습니다."
아이작은 그렇게 말하고는 쑥스러웠는지 괜히 커피잔을 들여다보았다. 물론 커피는 진작에 다 마셔버렸기에, 안에 뭔가 있을 리가 없다. 그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시인했다.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본 것도 참 오랜만인 것 같네요."
# 월요일에 답레 받아서 토요일에 주는 텀 실화...?? 마리주가 텀이 길 수도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내가 이렇게 텀이 길어질 줄은 몰랐네. 미안해 88
평생을 고요함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미리엄은 시선을 내리깔고는 가만히 눈을 깜박였다.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애초에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당신의 그 생은 충분히 고통스러웠을까? 당신의 고통이, 지옥이 뼈에 사무치게 괴로웠을 수록 제가 줄 안식이 구원으로 다가올 텐데.
"제가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네요."
제 힘이 아이작에게 있어 구원으로 다가오기를, 미리엄은 간절히 바랐다. 동시에 누군가의 고통을 연민이 아니라 수단으로 받아들이는 저 자신이 경멸스러웠다. 그러나 미리엄은 이렇게 살아가는 방법 이외의 것을 몰랐다. 다른 방법을 배운 적 없었다. 제가 있던 밑바닥에서 올라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짓밟아야 했다. 언제나, 그랬다.
아이작과 눈을 마주친 미리엄은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미세한 움직임만으로도 음울한 미소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으로 바뀌었다. 미리엄은 자신에게 닿은 눈빛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연민이나 동정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수단으로써의 가치를 따지자면 나쁘지 않을지 몰라도.
아이작이 건넨 말이 의외였는지, 미리엄은 에이드를 마시려던 것도 멈추고 당신을 바라보았다. 고맙다니, 무엇이? 미약한 당혹감이 서린 채로 눈을 깜박였다.
"...그런 말을 들을 정도의 일은, 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당황이 섞여들어간 말은 일견 딱딱해 보였다. 그것을 그 자신도 알아차렸는지 미리엄은 더듬거렸다.
"그, 아, 으, 그게 아니라..."
볼은 붉은색으로 물들어갔고, 시선은 형평없이 떨렸다. 두 손을 맞잡고 꾹꾹 누르던 미리엄은 조금 진정했는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별로 해드린 게 없는 것 같아서요."
#괜찮아, 괜찮아! 애초에 구할 때부터 느긋하게 돌렸으면 좋겠다고 했는걸. 게다가 나도 요즘에는 정신이 도망가려고 하고 있고 하니까...한마디로 미안해할 필요는 전혀 없다!
당신이 고통과 구원의 무게를 느긋하게 저울에 달아보는 동안, 남자는 감정을 표현하기엔 너무 지쳐버린 얼굴을 내세우고는 당신이 당신도 모르게 흘린 그 작은 것들에도 갈사 직전에 물을 입에 담는 아이처럼 구원을 맛보고 있었다. -물론, 수분이 지나치게 결핍되어 있던 사람에게 한꺼번에 너무 많은 물을 먹이면 오히려 물에 체해 죽기 마련이다. 한 방울씩 한 방울씩, 당신의 손끝에 묻혀서 떨어뜨려주는 것. 조금씩 축여나가는 것. 충분히 그를 당신에게 적응시켜야 하지 않겠나. 마약성 진통제처럼. 하루라도 없으면 살아가지 못할 때까지. 아니, 어쩌면 이미 그 정도는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뭐, 짐승 길들이기는 거기서부터 시작이니까.
별로 해드린 게 없는 것 같아서요, 하는 당신의 말에, 아이작은 눈을 깜빡이다 문득 자신의 흉물스러운 손을 들어보았다. 관절이 지나치게 두드러진 거미와 같은 손- 그러나 그는 당신이 '그가 당신에게서 주의를 엉뚱한 데로 돌렸다' 는 생각이 들기 전에, 다시 당신에게로 눈을 들었다. 당황한 듯 붉어진 얼굴에, 그는 머쓱하게 웃었다. 처음 웃어보는 웃음이라 조금 어색했다.
"그러고 보면, 제가 무엇에서 자유로워졌는지도 설명하지 않고 감탄만 하고 있었으니 꼴이 우스웠겠습니다."
아이작은 검지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관자놀이를 툭툭 쳤다.
"제가 바이러스를 부린다고는 말씀드렸죠. 조그만 세포들로 이루어진 바이러스 군집을, 수백 조- 수천 조 마리씩."
"부작용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체감되는 것은... 그것들이 떠드는 소리입니다. 배고프다. 피냄새를 맡고 싶다. 지키고 싶다. 오늘 기분이 너무 꿀꿀하다. 계획에 동참하라. 이 곳은 너무 갑갑하다. 우리는 진작 너에게 힘을 주었는데 너는 뭐가 아쉬워서 사냥개 놀이나 하고 있느냐. 보아라, 저들은 너를 성가신 가축 취급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풍족한 과수원들과 아름다운 정원을 세울 것이다..."
"지칠 생각을 하지 않고, 떠들어대니까."
"그뿐만 아니라, 제가 흡ㅅ─"
"확실히 그것들을 제어할 수 있긴 하지만, 그것들의 의식까지 어쩌지는 못하니까요. 그런데 당신이 나타난 이후부터... 그것들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해졌어요."
"별로 한 것이 없다고 느끼실 수 있겠지만, 제 입장에선 저 같은 괴물에게 가까이 와주시기로 결정해주신 것만 해도 충분히 고마운 일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아주 많은 것을 해주었지만... 그들은 항상 저를 언제 사고를 칠지 모를 통제불능의 괴물 취급하고 있으니까요. 틀린 말도 아니지만."
# 고마워 88 그래도 오늘부터는 좀 많이 여유로워져서, 전보다 훨씬 자주 체크하고 답레도 좀더 빨리 줄 수 있게 될 것 같아.
그런데 아이작이 한 익숙치 않은 말이, 마리도 그런 말 듣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홍당무 되는 게 너무 귀엽다... 아이작이 집적거리려던 거 목줄 잡았어. 아직 그만큼 감정의 거리가 가깝지 않은 것도 있고, 아이작은 지금 마리와의 만남이 어떤 기적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와 별개로 업무의 연장선이고, 마리와 나누는 이런 이야기 하나하나 상호작용 하나하나도 아직 기관의 눈치를 보고 있으니까...
그러나 결국 미리엄이 당신, 아이작의 구원자 행세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반대로 당신이 미리엄에게 줄 것 또한 일종의 구원이 될 테다. 누군가를 물들이는 과정에서 그 자신이 물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법이다. 과거의 자신으로 남아있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지금의 미리엄은 이를 간과하고 있으나 언젠가는, 뼈저리게 느끼게 될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미리엄은 아이작의 말을 끊고 질문을 던지거나 하는 대신 조용히 잔을 매만졌다. 아이작이 건네주는 정보를 잊어버리지 않으려는 것처럼 여러번 곱씹고 생각하며. 당신이 말하는 것을 토대로 생각해보자면ㅡ 그래, 그랬다. 그 바이러스는 차라리 군체지성에 가까워 보였다. 그것에 단순한 환청이 아니라면, 그럴지도 모른다. 단순한 헛소리를 지나쳐 무언가를 말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아직은 속단할 수 없었다. 아이작이 말해주는 말은 축소되어있으며 한 편으로 과장된 면모도 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인간의 기억력은 영원하지 않으므로.
"저, 저는..."
목소리가 볼품없이 흩어졌다. 미리엄은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적어도 그렇게 하려 노력했다. 오갈 데를 잃은 시선이 제가 쥐고 있는 잔을 향했다.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미리엄은 고개를 저었다. 입가에 걸린 미소가 씁쓸했다.
"정말로, 고맙다고 할 필요는 전혀 없어요. 애초에 제가 있는 선택지가 몇 없어서요."
무언가를 생각하듯 말의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물론...제가 아이작의 가이드가 되기로 한 건 제가 아이작을 직접 만나고 내린, 온전한 제 결정이지만요..."
미리엄은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숙였다. 왼쪽 손으로 오른쪽의 팔목 가를 지그시 내리눌렀다. 힘을 실었는지 손이 가늘게 떨렸다. 무의식 중에 하는 행동에 가까워 보였다. 미리엄은 살포시 웃었다. 거센 빗속에서 여린 꽃잎이 모조리 떨어지고 만 꽃이 겹쳐 보였다.
"...거부했다면, 아마..."
목소리가 흐려지다 끝내 끊어졌다. 미리엄은 마치 정신이 막 들은 사람처럼 파드득 몸을 떨었다.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뒤늦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양 환하게 웃었다.
"뭐, 부모님이 절 죽일지도 모른달까요? 확실히 주위에서 성화였겠죠, 정부도 포함해서."
농담으로 얼버무리려는 것처럼 가벼운 목소리였다. 미리엄은 잔을 들어 입가를 가렸다. 차가운 액체가 선득한 감각을 남기며 목 뒤로 넘어갔다.
"여하간에- 당신이 마음에 안 들었다면 어떻게든 피하려 했을 거예요. 지금처럼 이야기하는 대신."
다시 말하자면 외부의 압박이 아예 없었다곤 말하지 못해도, 아이작의 가이드가 되기로 선택한 건 자의라는 말이다. 미리엄은 타의로 길을 걷느니 어떻게든 통로를 만들어 도망갈 사람이었다 그 통로 끝에 존재하는 것이 죽음이라 하여도. 이 선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리엄은 아이작이 마음에 들었고, 아이작의 가이드가 되기로 결정했다. 단지 그 뿐이었다.
집적거리는 아이작은 매우매우 보고 싶지만(사심 100%) 일단 마리가 아직은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어서 포기.... 사실 지금도 보면 마리가 마음을 연 것처럼 이것저것 다 이야기하는 걸로 보일 수도 있지만, 아직은 문을 꼭 닫은 채로 얕게 흘려보는 중이니까 말이야. 마리가 아이닥을 받아들이는 건...시간이 좀 지나야 하지 않으려나? 고로 그건 미루는 걸로!
조금이라도 여유로워졌다니까 다행이다. 많이 바쁜 것 같아서 좀 걱정되었거든. 그리고 요즘에 감기 걸리기 딱 좋은 것 같던데 감기 조심하고, 코로나도 조심하고!
당신이 신중하게 말을 고른-적어도 그러려 한 만큼이나, 아이작은 당신이 조심스레 풀어놓는 이야기 한 마디 한 마디를 주의깊게 경청했다. 흐리고 구슬픈 미소를 띈 당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환한 미소로 얼버무려서 꺼내어놓는 부모님이 저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말이, 비유적 표현으로는 들리지 않았다. 그 미소로 가리는 말이 왠지 자신이 Absorb에서 Absolute로 황급히 말을 꺾어버린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아서, 아이작은 그것을 굳이 들추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자신도 농담 한 마디를 한다는 듯이, 얼굴에 미소를 띄고는-그러나 웃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의 얼굴에는 시니컬한 웃음이 걸릴 뿐이었다-당신의 말에 대답해주었다.
"오, 당신의 부모님이 당신을 죽이려 한다면 제게 말씀하세요. 제가 한 번 말씀을 나눠볼 테니까."
물론 그 말씀을 나눈다는 동사에는 사용한 표현 이상의 뉘앙스가 담겨 있었지만, 당신에겐 별 상관없지 않은가? 진짜 부모도 아니고, 부모다운 부모 노릇을 해주지도 않은 이들이었으니. 당신이 음료수를 마시곤 내놓은 말에, 아이작은 웃음을 거두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점입니다. 당신이 정했다는 것."
아이작은 눈을 감았다. 당신이 어떤 방식으로 아이작을 마음에 들여놓았는지 아이작은 모르고, 당신과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도 아이작은 모르지만, 명목상의 선택지만 있을 뿐 사실상의 선택지는 없는 당신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도 선택지가 없었다. 명목상의 선택지마저 없다는 것은 사소한 차이에 불과했다.
당신도, 여기 있는 이 핼쑥한 남자도.
신에게서 버림받은 이들이었다.
그러나 신에게서 버림받고 모든 것에게서 버림받았어도, 그럼에도 그 그늘진 황무지에서 극적으로 마주친 당신만큼은 그를 버리지 않기로 했다. 처음으로 그는 자신을 버리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를 만났다. 그는 조용히, 당신에게 말을 건넨다기보단 한번 되새겨보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아이작의 말에 미리엄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가 힘없이 흐트러졌다. 미리엄은 습관처럼 두 손을 힘을 주어 맞잡았다. 무언가를 억누르듯,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리도록 힘을 주었다. 고개를 떨궜다. 이야기라, 그게 표면적인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음은 알았다. 미리엄은 잠시 아이작을 만난 부모의 얼굴을 상상해 보았다. 당황할까? 혹은, 공포스러워 하기라도 할까.
"말씀만이라도 고맙네요."
미리엄은, 뭐라고 해야 할까. 일종의 내어놓은 자식이었다. 감정의 쓰레기통이기도 했고. 입양온 다른 아이들은 모두 센티넬이나 가이드로 발현되었다. 미리엄은 아니었다. 19살, 가망이 없다고 생각되기 충분한 나이였다. 투자한 것이 사실은 원석이 아니라 돌멩이였다는 것은 분노할만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모든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었다.
미리엄은 그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다.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도...온건한 표현이었다. 미리엄은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을 향한 악의를 날카롭고 섬세하게 갈았다. 언젠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당신의 말이 유쾌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이작이 되뇌이는 말을 들으며 미리엄은 생긋 웃었다. 다행히도 전하고자 한 바가 당신에게 닿은 모양이었다.
>>149 음.. 그런가!? 그러면 친밀도가 올라가면(적어도 아이작이 느끼기에 그런 상황이라고 생각되면) 팍팍 집적대기로..(?) 응, 가늘어도 좋으니 길게 가자!
문제는 너무 일찍 잠들어서 새벽 2~3시에 깬다는 사실이야... 으윽 (역으로 와장창나는 중) 물론 잔병치레는 안 하도록 조심하고 있어! 요즘은 조그만 몸살기가 있어도 조마조마한 시국이니까...
사실, 이대로 아이작이 센터까지 바래다주고 아이작과는 헤어지지만, 센터에서 정식으로 가이드 등록하는 과정에서 아이작의 처우에 부당함을 느끼고 있던 간부가 마리에게 면담 신청해서 아이작에 대한 기관 측 기록을 미주알고주알 다 털어주는 부분까지 돌려보고 싶긴 했어. 이 부분까지 돌려보고 싶은지는 마리주에게 맡길게! 우선 아이작이 센터로 돌아갈 것을 권하는 내용의 답레를 써둘게.
이 세상에 정당한 증오는 없다. 정당함을 입증받아야만 하는 증오도 없다. 그들이 당신에게 그랬듯이 당신이 그들에게 그러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복수에 그를 이용하고자 한다면 신중해야 할 것이다. 당신이 최고의 순간을 기다려 최대의 복수를 하고 싶다면, 아이작은 너무 지나치게 예리한 면도날일 테니까.
그리고 그 예리한 면도날은 당신에게 너무도 쉽게 그 자루를 내어주고 있다. 상황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가이드로 정식 등록을 하시려면 센터로 다시 돌아가셔야 되는 거였죠."
아이작은 감았던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켰다. 매칭 절차와 각인 절차를 제쳐둔다 하더라도, 가이드 등록은 오늘 센터에 방문한 김에 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잔은 그대로 두시면 바텐더가 치울 겁니다." 하는 말을 덧붙이며, 그는 당신에게 손을 내밀었다.
롸? 이제 보니 바리스타를 바텐더라고 적었어... 카페 들어올 때부터 헷갈리더라니.. 사고 한 번 칠 것 같더라니... 마리주도 중간고사 고생 많았어. 여유롭게 천천히 돌리자! 나도 지금 조금씩 생활패턴을 고치고 있는 중이야. 중간고사 시즌도 지나갔으니 다시 원상복구해야지 으윽..
하긴 센티넬 가이드는 그러라고(?) 있는 관계니까. 마리주 좋을 대로 아이작을 구워삶아줘^u^!
답레를 써오지 않고 저걸 막레로 해도 좋고, 마리주가 더 이어서 써오고 싶다면 찐막레를 써줘도 돼! (다만 찐막레를 쓰겠다면, 아이작주는 실수를 했지만 아이작은 바텐더가 아니라 바리스타라고 제대로 말했다고 쳐줘 8ㅁ8...) 토막글은 천천히 써보고 있을게.
본디 복수를 하려면 무덤을 두 개 파놓으라 한다. 하나는 그 사람의 것, 하나는 본인의 것. 미리엄은 결심이 선 그 순간부터 그 칼날로 인해 자신이 다친다고 해도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다치지 않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미리엄은 자신이 휘두룰 수 있는 힘이 그토록 많지 않음을 알았다.
"아, 네."
미리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올 때 들었던 말은 여즉 기억하고 있었다. 정식으로 등록하기 위해서라도 돌아오라고. 미리엄은 잠시 제게 다가온 손을 바라보다, 손바닥이 맞닿도록 손을 잡았다.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아이작의 손을 붙잡는 모양이 퍽 익숙해졌다. 미리엄은 당신의 손가락에 제 것을 엮었다.
"네, 돌아가요."
기껍지는 않아도, 곧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미리엄은 참을성 있는 아이였다. 다음이라는 걸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무덤 두 개가 문제가 아니라 복수가 충분한 고통을 안겨주지 못하고 너무 빠르게 끝날 수 있다는 말이었는데, 답레 분량을 줄이다가 그 부분까지 줄여버렸더니 전달이 안 됐었구나 ^q^) 그런 상상의 나래 펼치지 말고 오타려니 해줘yy 토막글은 조금씩 쓰고 있어! 오늘 마리주는 언제쯤 자러 갈 생각이야? 혹시 아직 잠이 안 온다면, 토막글을 올리고 나서 다음 일상 이야기를 해볼까 해서.
앗아.....마리주가 망충했다! 예리하다길래 뭐지 미리엄도 베일 수 있다는 건가...? 해버리고 말았던 마리주........:p 이 부분도 적당히 넘어가줘... 내일 아침부터 나가봐야 해서 슬슬 자러 들어갈 생각이었어! 다음 일상 이야기는 천천히 해보자!! 그리고 너무 늦게 자지 말고 좋은 밤 보내, 아이작주!
"미리엄 양이 가이드로 등록되기 전에 몇 가지 주의해두셨으면 하는 게 있어서요. 아이작이라는 그 사람에 대해서."
"당신이 전담하게 될지도 모를-당신이 아직 매칭 등록 의사를 밝히지 않았으니까요-센티넬이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위험하며 얼마나 불안정한 존재인지... 그리고 그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미리엄 양이 매칭 등록 의사를 정하기 전에 전달해드리는 게, 당신이 올바른 결정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했거든요. 그러니 조금만 시간을 내어주시겠어요?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에요."
"아이작이 당신에게 어디까지 이야기해주던가요? 자기 능력이라던가, 자기 개인사라던가..."
"예상했어요. 그 사람이 그렇게 자기 속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 사람은 아니긴 하죠. ...뭔가 털어놓는 법도 모를 거에요, 그 불쌍한 사람은."
"■■■■■ 마을에 대해 알고 계세요?"
"네, 작은 마을이니까... 알고 있다는 반응보다는 모른다는 반응이 더 정상적이죠. 그 마을에서 일어난 가스 폭발 사건도, 지역 신문에 조그맣게 실리고 마는 정도였고요."
"그렇지만 사실 그 마을은 그렇게 작은 마을이 아니었어요. 거기서 일어난 사고도 가스 폭발이 아니었지요."
"■■■■■ 사건... 국지적 흑색 생물학 재해를 동반한, 센티넬 능력에 의한 대규모 무차별 살인 사건이죠."
"아이작이 자신을 잡으러 온 센티넬들에 맞서 싸웠기 때문에 그것은 살인사건으로 규정됐지만, 제가 보기에 적어도 그것은 아주 불행한 사고였어요."
"이건, ■■■■■ 사건 당시 아이작의 능력으로 침식된 ■■■■■ 마을의 전경이에요."
"...마치 외계 행성의 지옥 같죠?"
"아이작은 이 지구 전체를 이런 꼴로 만들어버리고도 남을 만큼 강한 센티넬이에요. S급의 울타리 안에 두는 것도 말이 안 될 정도의."
"규모로 보자면 지구를 집어삼킬 정도로 거대하고, 위력으로 봐도 끔찍하기 그지없죠. 온 몸이 산산조각나도 멀쩡히 수복하거나 아예 새로운 몸을 만들어버릴 수 있고, 한번 받은 공격에 대해서는 반영구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 있어요. 더군다나 그는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데, 상대방이 충분히 감염됐다면 상대방의 몸도 마음대로 다룰 수 있어요. 심지어는 사람을 흡수해서, 그 사람의 기억이나, 센티넬을 흡수했을 경우 그 능력까지 모방할 수 있고요. 말 그대로, 전례가 없는 완전생물, 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죠."
"그게 우리 기관이 아이작을 두려워하며 예의주시하는 이유들 중 하나고요."
"그런 괴물같은 능력이 평범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만도 공포스러운 일인데, 불안정한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면 그만큼 더 무서운 일이죠..."
"■■■■■ 사건 당시, 아이작이 자리하고 있던 곳은 한 고아원이었어요. 아이작은 마을 전체를 감염체로 뒤덮었지만, 자신이 소속되어 있던 그 고아원은 멀쩡한 상태로 내버려두고 있었죠."
"시간마비 능력을 지닌 센티넬이 아이작을 묶어놓고 있는 동안, 고아원 안에서 우리들은 많은 증거들과 자료들을 찾을 수 있었죠. 고아원의 높은 담장 아래서, 원아들에게 행해지던 비정상적이고 광신적인 온갖 종류의 학대를요. -오, 이젠 다시는 그럴 수 없겠죠. 아이작은 한번 경험한 능력에 완벽히 적응하니까, 시간마비 능력에 대해서도 대책을 세워두었을 거에요."
"원죄라는 이름 아래, 그 뿌리가 되는 종교의 교리에서도 한참 어긋나버린 비틀린 고행이 원아들에게 행해졌죠. 그것은 그들을 끔찍하게도 육체적, 정신적, 간혹 성적인 측면에서까지 핍박했고, 한계로 몰아붙였어요. 원장의 일기며, 교직원들의 근로 일지며, 실험 일지며, 원아들의 일기라던가, CCTV 영상이며... 그 자료들을 맨정신으로 전부 다 볼 수 있는 사람은 드물어요. 그런 잔인한 학대들이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곳에서 행해져오다가, 말도 안 되는 극적인 비극으로 공개된 거죠."
"아마 이 고아원의 원장이라는 사람은, 절반 정도는 한계까지 몰아붙여진 원아들이 센티넬이나 가이드 능력을 발현하기를 바랐던 것 같고... 나머지 절반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종교적 신념으로 점철되어 있어서, 저희도 정확히는 알 수 없어요. 결과적으로, 그녀는 성공했죠."
"아이작의 능력의 발현은, 극단적으로 몰아붙여져서는 결국에는 '희생 제물' 로 낙인찍혀서 버려진 병동에서 어린 양마냥 갈가리 찢겨나가는 도중에 발생했어요. 폭발적으로. 파괴적으로. 발현 당시의 CCTV 영상이 남아있는 게 기적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차마 입으로 담을 수 없는 학대를 스스로를 자각할 무렵부터 열여덟 살이 되는 날까지 받아왔는데."
"원래 저것보다 더 감정적으로 불안정하고, 이상 증세를 보였어야 하는 사람인데, 이상할 정도로 안정적이고 차분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어요."
"저는 불안해요. 아이작이 그 차분한 표정 아래 감추어놓고 있는 것이 깨어나는 순간이요. 그것이 무엇이건, 결코 사람에게 우호적이진 않겠죠. 그는 명백히 이 세상을 원망하고 있으니까요."
"당시, 마비된 아이작을 두고 기관은 전세계적인 위협을 끼칠 가능성이 있는 센티넬을 기회가 있을 때 제거해야 한다는 파와, 아이작은 이용가치가 충분하다는 파로 갈렸어요. 당시에 역임하셨던 전대 국장님께서는, 아이작을 이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갖고 계셨기에 아이작을 살려두었던 거에요. 아이작을 통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지만, 아이작과 동조율이 높은 가이드가 나타난다면 아이작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요."
"그리고 당신이 나타났어요."
"...솔직히 모두 터놓고 말씀드리자면, 기관은-우리는 당신을 이용해 아이작을 통제할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는 그만큼 위험하고, 엄청난 불안요소를 품은 존재니까요. 물론 기분나쁘시겠죠. 그 점에 대해서는 사과드릴게요. 당신이 고삐가 되지 않겠다면, 우리는 당신을 존중할 테고요."
"그렇지만, 아이작과의 매칭 등록을 거부하신다고 해도... 아이작을 자주 지켜봐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이작에게 감정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이 유일할 거에요. 그에게 고삐를 채울 수 없다면 그에게 입마개라도 채워놓아야만 하는데, 우리에게는 그럴 수단이 없어요. 그러니 이렇게 미리엄 양에게... 무리한 부탁을 드릴 수밖에 없는 거고요."
생각보다 마리한테 자세하게 알려줬구나...아무래도, 저 말을 들은 마리는 입을 다물고 최소한의 대답만 했을 거야. 그것도 회피성이 짙은 것들로. 속으로는 선택을 존중하기는, 하고 비꼬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겉으로는 세상 순하게 눈을 뜬 모습으로 불안한 것처럼 위축된 모습을 보였겠지만.
그리고 물론 아이작의 가이드가 안 되겠다는 생각은 정말 하나도 안하고 있겠지. 고삐가 되라는 것에 대해서는...기관의 통제 도구가 되어주는 게 아니라, 자신이 아이작을 통제할 수 있는, 고삐를 쥔 '사람'이 되겠다는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으려나? 마리도 정상인은 아니니까.
뭐, 여하튼 이제 다음 일상 이야기도 해볼 수 있겠다! 마리가 조건으로 건 다음 만남 쯤의 이야기로 하면 되려나? 아니면 더 뒤쪽? 아이작주는 어떻게 생각해?
오늘은 조금 일찍 갱신했구나..! 나는 오늘 저녁때쯤~ 7시 넘어서부터 있을 것 같아. 매칭이 성사되면 그때부터 동거하게 되는 걸까... 아이작 집안이 너무 휑뎅그렁해서 마리가 당황할지도 모르겠네 ㅋㅋㅋ 최소한 쓰레기는 제때제때 치우지만, 그거랑 기본적인 가구들 외에는 책장도 없이 쌓여 있는 의학서적들뿐일 테니까... 아, 아이작 취미가 독서고 의학서적을 선호한다는 TMI를 내가 말했던가? 센터에선 각인제로 각인할 건지 직접 각인할 건지도 물어볼 텐데 마리는 대답을 어떻게 하려나.
그 외에도 아무래도 기관 측에서도 마리가 아이작의 고삐를 쥐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 마리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려고, '일반적인 절차' 핑계를 대면서 이런저런 심리 테스트로 마리를 프로파일링해보려고 했을 텐데, 마리가 독니를 숨겨놓고 있다는 게 얼마나 들켰을까? 마리가 대응을 잘해서 기관의 수사관들이 마리의 성격에 대해 눈치를 못 챘을까, 아니면 조금 미심쩍어하고 있을까, 아니면 마리를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을까?
아이작: ...안전가옥이 좀 을씨년스럽죠. 아이작: 딱히 인테리어 같은 것에는 큰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아이작: 좀 더 꾸며도 되고... 아니면 아예 집을 옮기는 건 어떻습니까?
마리는 집에 있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으니까, 아무래도 동거하는 쪽으로 가지 않으려나? 아이작 취미가 의학서적 읽는 거구나...! 멋져!! 마리는...이해를 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조금 당황은 해도 그렇게 크게 놀랄 것 같진 않네. 마리가 지내던 곳도 딱히 뭐가 많이 있던 편은 아니니까. 직접 각인이면...정확히 뭐로 생각하고 있어? 가이드버스 변용이 너무 많아서 헷갈리긴 한데 어 음 그거..려나?
마리는 아무래도 학교에서도 무슨 일이 있다 해도 평범한 아이 흉내를 내면서 지내고 있으니까, 심리검사에서 뭐가 드러나진 않을 것 같아! 조금 쎄한 것 같다 싶다가도 소심하지만 예의바르고 유순하게 행동하고, 잔뜩 긴장해서 허술하게 실수도 연발하는 모습을 보고 누가 뱀이라고 생각하겠어. 오히려 저번의 당돌한 행동이 있는 용기 없는 용기를 전부 쥐어짜낸 거라고 생각하면 모를까. 정리하자면- 조금 미심쩍어 하는 사람들이 조금 있어도 심증 뿐이고, 직접 미리엄을 만나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낯을 많이 가리는 귀여운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어.
마리: 조금 휑하긴 하네요. 마리: 잘 수 있는 침대 정도만 내어주면, 아무래도 상관 없어요. 그렇게 크게 다르지도 않아서요. 마리: ...그러니까, 전에 지내던 방이랑요.
마리: 여하튼ㅡ 아이작은 어떻게 하고 싶어요?
지금도 비가 오는데. 집인데도 영 서늘한 기분이야. 옷이라도 챙겨입고 있는 중이야. 아이작주도 따듯하게 잘 챙겨입어!
의학서적을 읽는 이유는 별것 없어! (아이작: 사람의 몸의 구조를 잘 파악하고 있으면, 사람에게 해볼 수 있는 일이 아주 많아지니까요. (음침한 웃음))
각인의 경우는 마리주 말대로 센티넬-가이드버스에 대한 해석이 플레이마다 다양해서, 각인에 대해서는 마리주가 받아들이기 편한 것으로 생각해줬으면 좋겠어. (각인제를 사용하는 간접 각인의 경우는 서로의 혈장에서 추출한 특정 성분과 촉매를 혼합해서 각각 센티넬과 가이드에게 주사하는 것으로 생각해두고 있음)
평범한 사람들은 거의 모르고, 심리 프로파일러들도 네 명 중에 한두 명이 미심쩍게 여길 정도로만 일코(?)를 잘 하고 있는 거구나. 말해줘서 고마워! 추울지 몰라 담요 꺼내두고 있었는데, 비가 그치지 않고 와서 그런가 아직 그렇게 춥지는 않네. 그냥 눅눅한 정도야. 제습기.. 제습기가 필요하다..
아이작: 음... (철봉으로 된 조악한 프레임에 매트리스 하나 덜렁 올려져 있는 1인용 침대를 물끄러미) 아이작: 거주지에 대해서는 일단 두고 고민해보기로 합시다. 아이작: 침대는 사버리면 그만이기야 한데, 산다고 침대가 우리 집으로 순간이동하진 않으니까 오늘 밤이 문제로군요. 아이작: 저야 바닥에서 자면 그만이지만, 남이 쓰던 침대라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청결하게는 사용했습니다만.
왠지...설마 그런가 생각하기는 했어.... 마리는 그 대답을 들어면 오히려 실용적인 취미라고 해두려나?
각인...아무래도 마리라면 각인제 대신 알아서 각인하겠다고 할 것 같긴 한데 말이지, 그 각인을 뭐로 하면 좋으려나. 마리주는 정말로 음란마귀라던지 그런 게 아니지만(중요) 생각나는 쪽이....(자체검열)(?)
한 다섯명 중에서 한두명 꼴? 운 좋으면 없거나 있다가도 만나보고 의심을 버리기도 하고. 마리는 양 가죽 뒤집어쓰는 것 하나는 정말로 잘 하니까. 아...확실히 비오면 습기가 장난 아니지. 여기도 공기가 좀 눅눅해. 그래도 빗소리는 듣기 좋다.
마리: 그럴까요? 말마따나 집을 사는 것도, 가구를 사는 것도 오늘 당장은 안 될 테니까요. 마리: ...? (침대를 봤다가 다시 아이작을 봄) 마리: ...어, 그, 침대를 쓰는 건 아무래도 상관 없는데요, 그래도 집주인을 바닥에서 자게 하기는 좀.... 마리: 제가 신경쓰여서요.
마리주가 생각하기 편한 대로.. ^ㄱ^ 장면 넘기는 거라면 할 수 있고 불필요한 묘사라고 생각되면 언제건 다른 것으로 바꿔도 되니까.
그런 느낌이구나. 기관에서는 틀림없이 아이작 쪽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착각하겠네. 마리를 일종의 고삐로 사용하려고, 아이작보단 마리 쪽에 컨택을 많이 하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말인즉슨 마리에게 선택권이 많이 주어진다는 뜻) 응, 빗소리.. 그러고 보니 마리가 비 오는 날을 싫어한다고 했었나?
아이작: 저야말로 어디서 자건 괜찮습니다. 소파도 있으니까요. 아이작: 소파야말로 볼썽사납게 헤져 있어서 당신을 눕힐 곳이 못 되고.. 아이작: 일단은 당신도 여기에 사는 셈이니, 사양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작: 한 침대를 쓰긴 좀 그렇지 않겠나요. 아이작: ......(귓가가 빨개짐) 제가 한 농담치고도 형편없군요. 잊으세요.
(내적 비명) 일단....묘사 대충 건너뛰는 방법도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각인하게 되어있다던가 음음 고민 좀 해봐야 되려나.
그렇겠지! 저렇게 소심하고 겁많은 아이가 무언가를 해볼 거라고는 잘 생각하지 않겠지. 게다가 마리는 필요할 때가 아니라면 부러 얕보이기를 자주 하는 편이니까. 쉽게 속아넘기기 쉬울 거라고 생각될지도 몰라. 응, 기억하고 있었구나! 마리는 비오는 날이 캄캄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아. 습해서 축축한 것도 그렇고. 아이작은 반대로 비오는 날을 좋아한다고 했지.
마리: 차라리 내가 소파에서 잘까요? 마리: 알긴 하는데...그래도, 아직 좀 불편해서요. 주인 있는 집에 눌러앉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마리: (피식) 마리: 어차피 내 처음도, 끝도 아이작이 될 텐데...겨우 그걸로 부끄러운 거예요?
아이작: 조금 웃기네요. 저도 내내 그런 기분이었거든요. 아이작: 역시, 날이 밝는 대로 거처를 바꾸는 게 좋겠네요. 아이작: ...(공연히 헛기침하며 시선을 피함)그- 심적 거리감이란 게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괜찮지만(자기 무덤 팜) 마리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니까요.
아무래도 두 사람이 가진 공통적인 랜드마크가 거기밖에 없었다. 애초에 두 사람의 접선을 주선하는 곳이 거기이기도 했고,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곳이기도 했다. 그 곳은 아이작과 미리엄 사이에 최소한의 영향력이라도 남겨놓으려 고군분투 중이었으니까.
센티넬-가이드 관리기관 센터.
사실 겉보기로만 보면, 랑데뷔로 삼기에는 꽤 나쁘지 않은 곳이기도 했다. 관리기관 센터는 본질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주선하는 기관이기에 그만큼 치장에 신경을 쓴다. 번듯한 건물과 환히 열린 창구, 개방감이 느껴지는 산뜻한 인테리어 외에도 센터 내에 카페와 멋진 정원까지 차려놓고, 정문에는 정부 소속의 유명한 스타 센티넬들이 한껏 꾸미고 촬영한 포스터들이 붙어 있는 기관 건물은 관공서와 연예인 기획사, 카페를 적당한 비율로 짬뽕해놓은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작이 관리기관 센터를 영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 곳에만 오면 왜인지 모래를 씹는 것 같은 불편한 박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이작에게는 없는, 가끔씩만 불행하며 때로는 행복한 평범한 삶을 살아온 이들의 건강하고 산뜻한 미소가 공기 중에 가득 떠돌고 있었기에. 센터를 오가는 직원들과 센티넬들, 가이드들에게는 아이작에게 없는 것이- 살아있다는 생동감과 활기가 한가득 묻어 있었다. 거기에다 그런 불편한 박탈감을 느낄 때마다 치밀어오르는 스스로에 대한 환멸도 만만찮은 골칫거리였다.
그렇지만 그런 감정들이 함부로 얼굴에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센터의 로비 한켠의 의자에 앉아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있는 아이작은, 그저 낡아빠진 점퍼를 걸친 초췌한 청년 정도로 보일 뿐이었다.
오늘은 두 번째 만남이 있는 날이었다. 아이작은 여유시간이 충분한 것을 선호했기에, 약속 시간보다 10분이 넘게 일찍 나와서는 센터 한켠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야말로 선레가 늦었네 88 마리주가 자주 들르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었는데 늦는 건 자꾸 나네88..
아이작의 근처에 접근하는 가이드면 무조건 위험하다고 설정할 경우 배경 선정이 까다롭고, 아이작이 다른 가이드와 돌발적으로 마주칠 위험이 없는 영역을 구성하느라 수반되는 이런저런 보안절차를 서술하다가 글이 쓸데없이 길어지고 지루해질 것 같아서, <파장이 맞지 않는 가이드가 아이작에게 접근하면 위험하다> 에서 <파장이 맞지 않는 가이드가 아이작에게 가이딩을 시도하면 위험하다> 로 설정을 바꾸기로 했어!
말하자면, 지금 막 건물에 들어선 이 작은 체구의 소녀는 그런 분위기에 걸맞는 사람이었다. 활기 넘치는 거리에 손쉽게 녹아들만한 분위기를 갖추고 있었다. 조금 소심하고 겁많아 보이더라도, 작약만큼이나 수줍고 사랑스레 웃을 수 있는 아이가 독을 품은 뱀이라는 사실을 알아챌 사람은 많지 않다. 차라리 연약한 어린양이라면 모를까.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은 미리엄도 매한가지였다. 익숙해졌다는 것이 괜찮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리엄은 늘 이런 공기가 구역질 난다고 생각했다. 미리엄이라는 소녀는, 차라리 음습한 뒷골목이 편했다. 모두가 평등하게 불행한 지옥에서라면 열등감을 느낄 이유도 없었다. 그것과 별개로, 살기 편한 곳은 역시 이런 곳이었다. 속여넘기기 쉬운 이들이 즐비했으니. 미리엄은 양의 가죽을 걸쳤다.
잠시 누군가를 찾듯 두리번거리던 미리엄은 곧 그 사람을 발견해 곧바로 걸어갔다. 약속 시간보다 3분 가량 이른 시각이었으나 이미 만나려 하는 사람이 도착해 있었다. 걸음걸이가 조금씩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