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때부터 이하루는 자그마한 텔레비전 속의 영웅들을 선망했다. 누군가를 구해낼 수 있는 힘을 가진, 몇 명이고 선택하지 않아도 구해낼 수 있는 저 사람들을 선망했다. 신의 변덕으로 이 세상에 남게 된 자신과는 다른, 신들의 사랑을 받아 세상에 내려와 사람들을 구하고 있는 저 사람들을 몇 번이고 선망했다. 신이시여, 저에게 저들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저에게 저들처럼 이세상에 빛이 내리쬐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자그마한 소녀는 소등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텔레비전이 꺼지면 짧은 다리로 열심히도 달려서 예배당으로 달려가 기도를 올렸다.
‘ 제게도 저렇게 기회를 주세요 ’
세상의 섭리를 알지 못하던 자그마한 소녀는 그렇게 기도를 올리며 자랐고, 결국 신은 그 기도를 들어준 것처럼 소녀에겐 의념이 나타났다. 그렇게 소녀는 고아원에서 벗어나 가디언이 되기 위해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 저는 영웅분들이랑은 다른 존재인 모양이에요. ”
하루는 흙으로 더럽혀진 원피스차림으로 여전히 바닥에 뒹굴며, 하늘을 올려다보곤 작게 중얼거렸다. 결국은 사람들을 구하는 것도 아니라, 단 한명의 아이조차도 설득하지 못하는 자신만이 보일 뿐이었다. 누군가를 구하고, 누군가를 지켜내고, 누군가를 웃게 해줄 수 있는 영웅과 단 한명의 아이마저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고, 증오를 품게 만든 체 사라지게 한 것은 자신은 신의 축복을 받고 내려온 존재들과 다르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만들고 있었다.
“ 알고 있어요. 저는 착한 척,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는 척 하더라도 달라질 수 없다는거. 이 세상에서 사라질 존재였음에도 그저 당신의 변덕에 의해 살아남은 존재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요... ”
하루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지금이라도 카사의 뒤를 쫓아가야 하는데 왠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아, 알고 있다. 이 감각은. 텔레비전 속의 빛나는 사람들과 자신이 다르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을 때 느끼던 좌절감이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알고 있어요, 이미 의념을 얻기 전부터 다르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다시 깨닫게 될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어요. 하루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옷이 더러워진 것 정도는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 .... 하지만 역시 전 포기할 수 없어요. ”
이대로라면 정말로 세상에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마저 부정하게 되버린다. 하루는 자신의 천성이 이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저 뒤틀린 사고방식으로 자신을 극단적으로 이타적으로 만들어, 이세상에 존재하는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내고 싶은 것이니까. 천천히 숨을 뱉어낸다. 아아, 어찌 이리 이기적일까. 어쩌면 카사에게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고 한 것도 이런 이기심의 발현일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지금 이 상황에 이르러서 그것이 무엇이 문제일까.
몸을 일으켜서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낸다. 카사가 짓누르던 부위는 빨갛게 올라와 있었지만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얼굴엔 미소가 지어지지 않는다. 언제부터 자신이 미소를 지었더라. 미소마저도 연기였던가.
“ 카사, 미안해요. 하지만 전 포기할 수 없어요. 당신이 이해하도록 만들고, 결국엔 절 받아들이게 만들거에요. ”
하루는 천천히 미소를 지어보였다. 평소처럼 온화했지만, 어딘가 서글픈 미소. 카사를 지켜주고 싶었다. 카사가 자신을 받아들이게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그로써 세상에 자신이 내려온 이유를 확고하게 하고 싶었다. 물론 카사에 대한 보호욕구나 그런 것이 그저 연기 같은 것은 아니었다. 분명 자신이 품고 있는 욕심이고 욕망이었지만. 결국은 그 욕심과 욕망이 하루의 존재 이유를 더욱 더 확실하게 해줄 것이다.
“ 일단 오해를 푸는게 먼저겠죠.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것도 알려줄 걸 그랬어요. 제가 품고 있는 건 연민이라는 단어가 아닌데 말이에요. ”
포니테일로 묶고 있던 머리카락을 스르륵 풀어내자,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새하얀 하루의 머리카락이 허공에 흩뿌려진다. 얇디 얇은 비단자락처럼 부드럽게 흔들리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긴 하루는 옷을 털어 먼지를 떼어내곤 카사가 달려간 방향을 바라본다.
“ 늑대와 여우가 추는 춤은 어떨까 싶어요, 카사. 서로 노력해보도록 해요. 원래 자기주장이란건...이런거잖아요?”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중얼거리던 하루의 얼굴에선 미소가 사라진다. 아마도 처음 세상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을 알았을 때, 지어보이던 차가운 무표정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이것이 진짜 본모습일지도 몰랐지만. 당장 카사를 쫓을 수 없다는 것도, 당장 저 분노를 식힐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하루는 천천히 몸을 돌려 기숙사로 향했다.
>>279 실패합니다! 하루는 생각했던 것만큼 착한 성격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쩌면 반동 형성으로 인한 이타주의였을수도? 물론 아주 나쁜 성격이란 것도 아닌, 어느 정도 하루의 본성이 섞여 있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앞으로 하루의 행보와 카사와의 관계 변화가 기대될 것 같습니다. 소녀여! 영웅이 되어라!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일반적인 상식으로 나이젤이 알고 있는 회전목마는 이런 건 아니었으니까. 그랬어라는 단호한 답에는 조금 머쓱한 듯 입가를 손등으로 쓸었던가? 엄근진한 물건, 이라는 말엔 늘 짓는 미소에서 조금 더 진한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눈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살짝 정돈하듯 만지작대며.
"음... 실제로 타보니까 더 빠르네요. 멀미 나겠어요."
가볍게 의념을 사용해 건강을 강화하면서 옆에 나와 있는 안전봉을 팔로 안는다. 말에서 떨어져 나뒹굴진 않지만 자세가 불안정하다보니 미칠 듯이 흔들린다. 의념을 안 쓰면 버틸 수가 없다...! 미소짓는 얼굴이 살짝살짝 찡그려지는 걸 쉽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회전목마다 보니 앞사람 말을 추월해서 부딪치거나 할 일은 없나 보네요."
몇 바퀴를 더 돌고 나서도 지훈이 탄 말 바로 뒤쪽까지 가까이 붙었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걸 보고 그렇게 말했다. 아니, 그 정도까지 가면 말 레이스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