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가볍게 산책을 하는 겸, 산뜻한 옷차림 – 밝은 하늘색 원피스와 새하얀 샌들 - 을 한 체 길을 나선다. 얼마전의 레이드에서 카사를 지키느라, 그녀에게 혼날 일이 생겼던 것을 잊지 않은 하루는 그녀의 기분을 풀어줄 수 있을만한 간식을 살 생각인 듯 했다. 평소의 코스대로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던 하루는 지난번 카사에게 반응이 좋았던 육포가게에 들려 든든하게 구매를 마치곤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나온다.
“ 이거면 또 좋아하겠지. 후후. 귀여웠는데.” 육포를 보고 좋아하던 카사의 모습이 떠올랐는지 하루는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종이백 안에 들어있는 봉투 속 육포를 잘 가져다 둬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그렇게 도로 기숙사로 돌아가려던 하루는 왠지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한 것 같은, 아니 익숙한 모습인데 어딘가 다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비틀거리는 그 뒷모습에 다급하게 달려간 하루는 뒤에서부터 카사를 감싸안는다.
“ 무슨 일이 있었던거에요, 카사..!? ”
이미 카사를 감싸안는 손에선 새하얀 빛이 흘러나오는 것으로 보아 바로 치료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앞뒤 생각할 것 없이 치료부터 우선시 하는 것은 직업병이나, 천성일지도 몰랐다.
수상한 텐트에 수상한 사람이 있고, 어디선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라는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항구. 나이젤은 느긋하게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우며 햇볕을 쬐고 있었다. 바다 한가운데에 있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학원도는,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만 나와도 꽤 기분전환이 되는 편이었다. 어쩌면 이것도 어떤 방법으로 바다를 구현해놨을 뿐 실은 육지인 것 아닌가, 하는 착각도 들 수 있을 법했다.
배가 들어오고 나갈 때면 배가 바닷물을 가르며 작은 파도를 그린다. 한가롭게 노니던 찌가 파도에 밀려 살짝 오르내리고 발밑에 물이 튄다. 오늘은 잘 잡히지 않는 날인가. 다른 쪽을 흘깃거리던 나이젤은 얼굴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바닷물에 들어가면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은하수 같은 머리카락. 낚싯대는 한쪽 팔로 고정하고 나머지 한 손을 흔들어 아는 척을 한다.
"다림 씨, 안녕하세요."
산책이라도 나온 걸까, 아니면 낚시? 생각하던 나이젤은 갑자기 낚싯대가 엄청나게 당겨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이에에에?! 낚싯대?! 낚싯대 왜?! 보통 잡는 물고기 수준이 아니라 어딘가 끼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무게다. 나이젤은 일단 낚싯대에 있는 대로 의념을 때려박아 강화한 다음 신체 S의 힘으로 당겼다.
한순간 붕 떠오르는 몸, 그리고 세계가 반전하는 것을 하루는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아슬아슬하게 카사의 손을 붙잡은 하루는 치료를 멈추지 않으면서 그대로 충격을 등으로 받아낸다. 새하얀 원피스 자락이 바람에 흩날렸고, 하루의 새하얀 머리카락도 허공에 흐트러진다. 분명 누가 들어도 엄청 아프겠다 싶을 소리가 울려퍼졌지만 하루는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윽... 이렇게 부상을 입은 체로 격하게 움직이면 안된다구요, 카사... "
통증이 분명 없을리가 없기에 아주 조금 찌푸려진 하루의 얼굴이었지만, 그런 얼굴에도 여전히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카사가 무엇을 하든 다 받아줄 수 있다는 것처럼 카사의 한손을 잡은 체, 빛을 내며 조금 작아진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하는 하루였다. 분명 카사도 피가 서서히 멎는 것이 느껴졌을 것이다.
" 무슨 일이 있던거에요... 누가 카사를 공격한거에요...? "
걱정스럽게 카사를 올려다보던 하루는 일단 이대로 누워있어선 안되겠다 생각했는지, 여전히 손을 맞잡은 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카사의 앞에서 서선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 긴장할 것 없어요, 걱정할 것도 없어요. 저는 당신 편이에요. 정말루요. 상처, 이젠 아프지 않을거에요. "
바닷가와 항구에서 다림은 괜찮았습니다. 가장 잘 어울리는 거라면 하얀 원피스겠지만 다림의 오늘 옷은 좀 편하고 잘 늘어나는 타입이었습니다. 그렇게..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우지는...않습니다. 다림은 바다의 환상을 보았기 때문에 낚싯대를 드리우기 영 그랬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였나요? 얼굴을 본 사람을 발견한 것은 그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나이젤 씨?" 얼굴을 본 적 있지만 미묘했던 그거는 일부러 언급을 하지 않으며(당연하죠. 어떻게 내 꺼라고 했겠다는 걸 말할 수 있겠나요. 사실 그것도 가물가물하다가 가끔 생각난 것에 불과합니다.) 인사하면서 뭔가 걸렸는가 싶어서 가까이 다가가려 합니다.
"뭔가 걸렸나요?" 참치같은 거라도 낚이면 손질해준다는 일식집이 있긴 할 것 같은데요. 라고 말하면서 뭐가 낚일지 보려 했지만. 거기에서 뭐가 나타날지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쿵! 묵직하게 느껴지는 인간의 무게감, 손에 잡히는 보드라운 살! 새하얀 원피스의 천이 팔랑인가 - 여인인가?! 내 적은 여인 포함이었던가?! 이럴수가, 나는 진정으로 치청극에 목숨이 위험한 것인가?!
후에 어떻게 해야하지? 머리를 바쁘게 굴린다. 이 자를 제압하고, 정보를 뽑아야 한다! 일단 얼굴을-
.....!
그리고 생각이 먿었다.
이럴수가. 신선한 충격이 낫-카사의 얼굴에 싸다구를 때렸다. 다리의 힘이 풀려 쿵, 하고 무릎을 꿇어 주저앉는다. 알싸한 고통이 찌잉- 하고 무릎으로부터 울리지만, 그런 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싸늘했던 낫-카사의 얼굴이 충격으로 굳는다.
내, 내가...
내가 살아있는 여신을 엎어쳤어어어어ㅓ어어ㅓ!!!!!!!!!!!!!!!!
이 사람. 얼굴에 빛이 난다. 그대로 빛이 난다. 이 존재 자체로 세상이 환해진다. 눈은 어찌나 청량한 황금빛이고 머릿칼은 비단 뺨치게 고왔다. 새하얀 피부는 보드랍지만 않았다면 인형인 줄 알테고 새하얀 속눈썹은 어찌나 우와하게 뻗는 지!!! 미친, 이런 얼굴이 존재 가능했던 것인가?! 그리고 그 얼굴을 제 손으로 망칠 뻔 했다는 것인가?!! 죄 많다고 하소연 했는데 '죄'같은 알량한 말에서 끝날게 아니었다!!! 사형당해도 할 말 없었다!!!!! 미모를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황홀해 멍하니 쳐다보다가, 자기가 이 국보급 보물을 손상시킬 뻔했다는 사실에 괴로워 하다가, 다시 얼굴에 넋이 나가는 것을 반복한다! 어찌다 인간외급 미모인가, 가까이서 그 빛을 쫴는 것 만으로도 머리에서 피 흘리던 상처가 아무는 느낌이 들었다!!! 봐바라, 눈 부셔시지 않는가!? (반은 오해다.)
"제, 제가 이런... 시, 시, 시, 실례를...."
내가 하는 것이 말인가? 이것은 환각인가? 이미 나는 닌자에게 죽어서 천국에 있는 게 아닐까????
미묘했던 그거... 는 다행히 기억 못 하고 있다. 기억나는 거라곤 아직 취하지 않았을 때, 그리고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더 달콤했던 술의 맛이었을까? 그래서 다림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힘줘 당기는 와중에도 가까이 다가온 다림의 뭔가 걸렸냐는 질문에 끄덕, 고개를 끄덕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낚일 것에 대해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서!
"...??"
...???
"아, 네. 안녕하세요."
우선 인사를 돌려주긴 하는데 머리가 안 돌아간다. 해수면의 물결 같은 다림의 머리카락과 달리 어두울 때 바닷속을 한 자락 잘라낸 듯한 진청색은 도대체 뭘 낚은 건지 구분도 되지 않았지만, 낚싯바늘이 걸린 사슴 같은 뿔을 보고 떠올랐다. 아는 사람, 나이젤의 연락처에도 기록되어 있는 바로 그 잉간이 아닌 학생! 연 바 다 !!
"아니, 이게 아니라. 왜 바다에?"
바다가 바다에... 레벨 7의 바다가 둘! 온다 다림! 필드의 95%가 바다로 바뀌었당께! ...같은 드립을 실제로 치고 있진 않았지만 그만큼 혼란한 상태였다.
왜 그런지 몰라도 몹시도 당황하는 카사를 보며, 하루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 같았으면 '하루~!!' 하면서 온몸으로 덮쳐왔을 카사가 어딘가 인텔리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안 어울린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루의 눈에는 어딘가 어색하기도 했고, 아쉽기도 했다. 하루는 하루 나름대로 품 안에 뛰어드는 카사를 좋아했으니까.
일단 무릎을 꿇은 체 자신에게 횡설수설 무어라 말을 하는 카사를 진정시켜야 되겠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잽싸게 들고 있던 종이백에서 육포를 하나 꺼내 횡설수설하는 카사의 입에 넣어준다. 그리곤 재빠르게 신속한 움직임으로 주머니에서 손수건 하나를 꺼낸 하루가 정성스럽게 얼굴에 묻은 핏자국을 닦아주기 시작한다.
" 저는 괜찮으니까 카사부터 진정하도록 해요. 저는 정말로 괜찮아요. "
나름대로 몸도 튼튼한 편이라서, 하루는 방긋 눈웃음을 지은 체 말하고는 열심히도 카사의 핏자국을 닦아낸다. 어느정도 깔끔해진 카사를 바라보며 만족스런 끄덕임을 보인 하루가 이젠 익숙해진 것처럼 가볍게 자신의 입술을 카사의 이마에 가져갔다가 떼어낸다.
" 그래서, 여기서 이렇게 다쳐선 뭘 하고 있던거에요? 거기서부터 이야기 해보도록 해요, 우리. "
"반가워요 나이젤 씨." 다림은 흐믈흐믈하게 기억하는 느낌입니다. 그 뒤는 잘 기억 안 나지만. 그래도 그 전까지는 기억이 난다니. 너무하구나.. 다림주는 너무나도 쇼크를 먹었었던가.(사실 비몽사몽이었어)
"큰 걸 낚았나 봐요" 뭐가 끌려나올지 매우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대왕고래 낚은 그런 건 아닐 테니까 천천히 보는데. 보는데...
"어... 바다 씨? 왜 여기에..?" 사실 그때의 그 환상은 진짜 바다 씨가 낚였던 것을 플래시백으로 보여줘야 하는 미래기재였던 것인가? 라는 당혹감을 드러내며 다림은 바다에게 인사합니다. 그러고보니 카페인 먹다가 뭔가 기억이 기묘하게 나는 일을 했던 것 같은 것이 기억나기 시작합니다. 어째 왜이리 부끄러워지는 거죠?
" 저는 수영하는걸 좋아하는 편이라... 음, 내려주실 수 있나요? 아무래도 이 자세는 많이 불편하네요. "
어색한 얼굴로 웃으며 손을 흔들다 보니 자신의 자세도 자각할 정도가 되었다. 뿔 한 쪽만 낚시바늘에 걸려서 목이 45° 정도 꺾인 상황. 그 상태로 몸만 대롱 대롱 흔들리는 중이니, 목과 어깨의 부담이 상당하다. 그 와중에도 바다는 내려가면 저 둘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해양연구부의 일원으로서 해양생태계의 민감성과 불법낚시의 연관성을 알려줘야 하나.
연바다와는 다른 의미로 손이 덜덜 떨린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기도 전에 불쑥, 입에 넣어지는 외물질.
"흡?!!?"
크게 뜨여지는 눈여기서, 이태껏 가장, 사상최고로 캐붕인 일이 일어난다.
>>>>>>> 낫- 카사가 퉷, 하고 반사적으로 육포을 뱉어낸다!! <<<<<<
"윽... 무슨 짓이죠? 갑자기...."
손에 집어 자세히 관찰하니, 육포를 들이민 것에 황당하는 듯이 반응하는 낫-카사. 하루의 예상대로, 카사의 무언가가 이상했다. 이 괴상한 반응! 자연스러운 존댓말! 무엇보다 말 사이사이로 느껴지는 지능! 도플갱어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탁, 자신의 얼굴을 닦고 있는 손에 카사는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손으로 덮어 그 동작을 멈추고, 하루의 눈을 지긋히, 깊히 바라본다. (안에는 으아아아 손수건 너머로 온기가 느껴져!!! 하고 당황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아니, 그, 그것보다, 저를 알고 계십니까? '카사'...가 제 이름입니까?"
얼굴을 가까이 들이미며 다급하게 물어보는 것도 잠시.
눈을 깜박한다. 보드라운 게 제 이마에 닿았다 떨어진다.
"..............................흐어어ㅓㅎㄱ!?!??!?"
딱딱하게 굳는 소녀! 온몸을 스치는 충격! 그리고 열기! 서, 서, 서, 서, 설마..... 펑! 하고 머리카락마냥 붉게 폭팔하는 얼굴!! 잠깐?!?!?!!?! 나 설마!?!??!?! 양다리!?!!??!?!?!??!?!?
삐그덕. 삐그덕. 기름칠을 한치 억조년쯤 된 로봇마냥 딱딱히 대답하는 소녀.
"깨, 깨, 깨어나. 보니. 기, 기억이. 어ㅄ.어.서."
맙소사!!!!!!!!!!!!!!!!!!!!!!!!!!! 난 이 여신에게 무슨 짓을!!!!!!!!!!!!!!!!!!!!!!!!!!! 으아아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