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서진석. 연령 33세. 자택은 대구광역시 교외 별장지대에 있고... 결혼은 하지 않았어... 직업은 운송업계 기업의 회사원이며 매일 늦어도 밤 8시까지는 퇴근해. 담배는 피우지 않아. 술은 즐기는 정도로만 하고. 밤 11시엔 잠자리에 들며 반드시 8시간은 잠을 취하게끔 하고 있어... 그때 달리고픈 게임이 없는 이상 말이지. 자기 전에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20분 정도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준 뒤 잠자리에 들면 거의 아침까지 숙면에 빠지지... 평소대로라면 아기처럼 피로나 스트레스 하나 남기지 않고 아침에 눈을 뜨게 돼... 건강진단에도 큰 이상없다고 나오더군.
나는 언제나 「마음의 평온」을 바라며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거야... 「승패」 따위에 집착하거나 머리를 싸쥐게 하는 「트러블」이나 밤에도 마음놓고 못 자게 할 「적」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내 회사에 대한 자세인 동시에 그것이 자신의 행복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 싸우는걸 좋아하던 때는 이제 세월의 저편으로 넘어가버렸으니까. 다시 말해 OOO 군... 자네는 내 수면을 방해하는 「트러블」이자 「적」이라는 셈이야. 누구에게 떠벌리기 전에... 「자네를 제거하도록 하지.」 오늘 밤도 편히 잘 수 있도록 말이야."
빙글빙글. 세상은 어째서 이리도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을까요. 에미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헤실 미소를 짓습니다. 붉은 하늘과, 붉은 눈과, 붉은 핏발과, 붉은, 가을을 닮은. 요이치가 눈에 아른거릴 즈음 에미리는 말 대신 손에 쥔 것을 바라봅니다. 과일을 깎는 작은 소도를 오른손에 꼭 쥔 채로 그대로 높게 들어올려 에미리는 자신의 팔을 내려찍습니다. 그러나, 그 시도는 너무나도 간단히 누군가의 손에 막히고 맙니다. 그림자에 의해 두 손을 보호하는 채로, 야마모토는 여전한 무표정으로 에미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에미리는 고개를 들어 야마모토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해맑은 미소를 짓습니다.
" 야마모토 씨. "
에미리의 얼굴에 지어진 미소를 보고 야마모토는 말 대신 손에 쥐었던 과도로 천천히 힘을 옮깁니다. 꾸드드드득, 하며 쇠가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손을 등 뒤로 숨긴 야마모토는 에미리를 향해 말합니다.
" 아가씨. "
그 뒤에 올 말은 무엇일까요. 사오토메다운 체통을 지키라고요? 에미리는 야마모토를 향해 손가락을 천천히 들어올려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가선, 천천히 말합니다.
" 쉿. "
에미리의 눈은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왜냐면 에미리의 마음은 여름에 두고 왔고, 지금은 가을이 왔으니까요. 병실 바깥으로 보이는 붉은 단풍나무가 유난히 에미리의 눈에 밟힙니다. 왜냐면 그 색이 유난히 붉었기 때문입니다. 이젠 타오를 장작조차 없기 때문에, 이제는 누구도 에미리에게 사랑을 논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에미리는 지금이 자신의 가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의 말 중에는 가을은 쓸쓸함의 계절이란 말도 있다고 하잖아요? 에미리는 웃음을 지으며 야마모토를 바라봅니다. 야마모토. 이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 날의 참상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 생각과 함께 자유롭고 싶었다는 자신의 생각을 비웃으며 에미리는 생각합니다.
내가 사오토메가 아니라, 그냥 에미리이고 싶었기 때문에. 내가 사오토메답지 않고, 에미리란 이름으로 사랑받고 싶었기 때문에. 그래서 사오토메 양이 아니라, 에미리란 이름으로 불러준 요이치를 사랑했기 때문에. 요이치의 여름은 영원토록 이어지게 되고, 에미리는 그 벌로 혼자가 된 가을과, 혼자 지낼 겨울을 맡게 되었다고요.
야마모토는 말 대신 가만히 서서 에미리를 바라봅니다. 아주 미미하게 입술이 떨리다 사라지지만, 에미리의 눈에 그런 것들이 들어올리 없습니다. 에미리는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목을 죄입니다. 숨이 막히고, 죽고 싶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고, 차라리 죽고싶단 마음으로 온 몸을 가득 채울 때. 야마모토는 천천히 다가와 에미리의 팔을 풀고 눕힙니다.
" 결국 당신도 사오토메인가요? "
야마모토에게 한탄하듯, 에미리는 말을 내뱉습니다.
" 적어도 야마모토 씨라면 이런 저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줄줄 알았사와요. "
그는 '사오토메'가 아니니까요. 어쩌면 에미리는 이 딱딱한 사람에게서 조금의 호의를 느끼고 싶었을지도 모르니까요.
" 적어도 야마모토 씨라면 저를 이해해주려 할 줄 알았사와요. "
그리고, 볼을 타고 떨어지는 눈물을 가만히 느낀 채 에미리는 눈을 감습니다.
" 쉬고 싶사와요. "
자고 일어나면 이 봄이 끝나길 바란다고, 이 잠이 깨고 나면 다시 여름을 맞아.. 너를 만나, 사랑하고, 불타고, 흐트러지고 싶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운명은 에미리를 가만히 두질 않습니다. 결국, 가을은 이어질 뿐이었습니다.
*
[ 미즈노우치 대학병원 입원자 기록 ]
F그 작은 서류를 바라보며 야마모토는 침묵을 지킵니다. S657, F190. F190으로 인한 입원, S657로 인한 집중 치료. 입원, 집중 치료, 입원, 치료, 입원, 집중 치료. 그 수많은 흔적들을 보며 야마모토는 드디어 입을 엽니다.
" 흉터가 남으면 안 됩니다. "
그 말에 의사는 한숨을 쉬며 말합니다.
" 야마모토 씨.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 환자의 상태는 정상은 커녕.. 당장 정신적으로 무너지더라도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각성하는 것을 불행과 동시에 행운이라고 하죠. 무너지는 정신을 영성의 도움으로 억지로 붙잡고, 죽으려 하는 것을 건강의 보조로 어거지로 살아있는 것 뿐입니다. "
그 말에 야마모토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의사와의 면담이 끝나고 야마모토는 에미리의 병실 문을 천천히 열어봅니다. 에미리는 수면제의 투하로 잠에 들어 있습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야마모토는 웃습니다. 어찌 귀엽지 않을 수 있을까요. 어린 시절부터,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이가 청소년이 되는 모습을 지켜봐온 야마모토인데요. 그러나 그는 그녀에게 조금의 흐트러짐도 보여질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그는 집사니까요. 아무리 연관인이라도 그는 사오토메가 아니니까요. 야마모토의 기억 속에는 그 손짓이 기억을 짓밟고 있습니다. 수척해진 모습으로 손가락을 입술에 댄 에미리는 미소를 지으며 말합니다. 쉿, 하고 웃고 있습니다. 야마모토는 그 말을 철저히 지켰을 뿐입니다. 아마도, 자신과 대화도 하고 싶지 않았을 에미리에게, 대신 침묵으로 옆자리를 수행하는 것으로 빈 자리를 채워주려 했을지도 모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