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이분법이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 정체 모를 소년의 손이라도 붙잡아야만 했다. 살기 위해선 이 소년의 발이라도 붙잡아야 했다. 나는, 영웅이라는 꿈을 꾸었을 뿐이다. 분명 그것이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더라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존경을 받는 그런 영웅이 말이다. 소년은 키득거리며 날 바라봤다. 마치 즐거운 장난감을 만났다는 표정이었다. 그래. 저런 눈이라도 괜찮다. 나는 소년에게 손을 뻗었다. 좋아. 내 소원을 이루어다오.
>>703 지아는 바람을 마주합니다. 세상은 이렇게도 평화롭고, 또한 조용합니다. 지아가 바라보고 있는 하늘에는 하나 둘, 작은 별들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눈에 담아도 아프지 않을 만큼 반짝이는 별들이요. 지아는 고민합니다. 내 길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 해야만 좋을까? 지아는 길을 잃어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왜 강해져야 하는지 모르지만 무턱대고 강해지고 싶어! 하고 이야기를 하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만으론 모자랐습니다.
지아는 흐릿한 기억을 찢어봅니다.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그 기억의 일부를 찢어냅니다.
- 어서오세요 어서오세요. 당신의 환상. 당신의 행복. - 여기는 하멜른, 여기는 사랑의 땅. 여기는 행복의 종착역. 여기선 모든 것을 잊어도 좋아요. - 반가워요. 아픈 마음을 지닌 모두들. 하지만 하멜른은 행복의 땅이기에~ - 행복하지 않은 것들은 - 모두 - 죽어줘야 - 겠어요♬
눈을 뜨고 있었다. 세상은 연분홍빛이었다. 나는 손을 들어올렸다. 고양감, 충만감. 그리고 그 이상을 뒤엎는 절망감이 있었다. 친구의 배에는 연붉은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 꽃은 내가 아무리 막으려 하더라도 한정 없이 피어나, 마침내 친구가 누운 땅마저 붉은 꽃으로 피워내려 하고 있었다. 손을 들어 아무리 틀어막으려 하더라도, 온 몸을 뒤엎어 피를 막으려 하더라도, 꽃은 하나 둘 피어나.. 마침내 땅을 뒤엎었다.
" 지아야. 가스나야. 니 와 우노. "
친구는 여전히 해맑았다. 우연으로 휘말려, 필연으로 죽는다. 나는 얼마 전 보았던 만화영화를 떠올렸다. 주인공의 친구는, 언제나 주인공을 위해 헌신하고 그렇게 죽었다. 나는 그런 헌신하는 친구보다, 그렇게 강해진 주인공을 더더욱 기대했다.
" 지아야. "
친구는 방긋 웃었다. 지아의 볼에 손을 올렸다. 붉은 꽃잎이 지아의 볼에 묻어났다. 나는 숨을 몰아 쉬며 친구에게 눈물을 흘렸다. 입에서 나오는 문장이 인간의 언어였던가? 아니면 비탄에 찬 어린 아이의 눈물콧물 섞인 절망이었는가는 몰렀다. 지금만큼 나는 스스로가 원망스런 일이 없었다. 영웅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부모님, 영웅이란 이름을 부러워하고, 자신도 그런 영웅이 되겠다고 말하던 친구. 그런 친구에게 손뼉을 치며, 그럼 나도 너와 같은 영웅이 될거야! 우리 듀오 이름은 뭐라고 할까? 하는 말에 친구는 답했다.
" 부산의 바람이 이런 일로 불어서 되겠나? "
이제 땅이 붉은 꽃으로 가득할 때에, 나는 울고 있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저 언어로 규정되지 않을 울음소리를 내며 친구에게 물었다. 아아, 아아아. 아아아아!!!!
" 울지 마라 가스나야. 머리 아프다. "
빠져가는 힘으로 억지로 주먹을 말아 쥐고, 친구는 천천히 내 이마에 주먹을 대었다.
" 부산의 바람 윤 지아. 니는 절대 혼자가 아니다. 내가.. 부산의 뱃고동이.. 부산의 하늘이.. 부산의 모든 것에.. 내가 있을 거데이. 그니까.. 지아야. "
친구는 말했다.
" 영웅이 되래이. 더 이상 나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사라지는 희망들을 무시하지 말고.. 밝고, 당당한 지아가 되래이. "
구슬픈 바람이, 게이트를 뚫고 불어왔다. 붉은 꽃 사이에 숨어있던 하얀 나비가,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 내가 지켜볼거다. 알았나 가스나야. "
...... .. .
명분. 명분이란 것이 중요한가요? 강해질 이유라는 것이 필요한가요? 지아는 지아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묻어둔 기억의 일부를 억지로 헤집어, 상처를 입어 가면서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나는!! 친구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 했던 바보같이 여린 소녀인데! 아직 제대로 어른조차 되지 못한 청소년인데! 내가, 내가! 무슨 이유로! 어떤 이유로! 강해져야만 하는데!
바람. 바람! 바람아, 바람아!
부산의 바람아! 부산의 파도야! 부산의 뱃고동아! 부산의 갈매기들아!
내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니. 내가 무엇을 통해 나아갈 수 있겠니.
지아는 하늘을 바라봅니다. 저 밝은 별 속, 유난히 마음이 깊어지는 밤에. 우연히 날아가는 것처럼, 한 마리 하얀 나비가 날아갑니다.
전혀 망념이 증가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강찬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칩을 바라보다가, 전투연구부장을 보고 멋쩍게 웃습니다./
"누나가 잘 가르친 덕분에... 잘 끝낸 거 같아요. 그럼 저는 이만... 으악!"
나흘간 움직이지 않고 공부만 매달렸다. 특히 전투연구부장이 친절한 누나에서 언제든지 그 싸이코로 돌변할까봐 한눈도 빠지지 않고 글자와 싸웠다. 그 사이 다리는 소외되었고,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강찬혁은 일어나려다가 주저앉았다. 후우... 강찬혁은 한숨을 쉬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