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이분법이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 정체 모를 소년의 손이라도 붙잡아야만 했다. 살기 위해선 이 소년의 발이라도 붙잡아야 했다. 나는, 영웅이라는 꿈을 꾸었을 뿐이다. 분명 그것이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더라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존경을 받는 그런 영웅이 말이다. 소년은 키득거리며 날 바라봤다. 마치 즐거운 장난감을 만났다는 표정이었다. 그래. 저런 눈이라도 괜찮다. 나는 소년에게 손을 뻗었다. 좋아. 내 소원을 이루어다오.
나름대로 웃으며 말했다. 뛰어난 화가가 그린 그림과 내 그림.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자신을 선택해준다는 말이 제법 쑥스럽게 느껴졌다. 난 이런 칭찬을 원했다고! 칭찬을 안 해주니까 자존감이 낮아지는거야! 아무튼, 그게 나에게 있어선 큰 의미니까. 기억해줬으면 하는 사람이,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보고 감동받는 것. 그것이 좋은거니까. 그리고, 여기엔 내가 바라는 꿈이 담겨져 있으니까.
그리고 그가 하는 말을 들었다. 나에게 하는 말이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 진 모르지만, 나를 위해,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임은 틀림없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킥킥 웃으며 답한다.
"저랑 나이도 별로 차이 안 나면서, 저는 되고 본인은 안된다고 말하지 마세요. 하지만, 조언은 감사하게 들을게요. 그런데!! 저는 아직 그렇게 자존감 떨어진 거 아니거든요~?! 단지 칭찬을 안 해줘서 툴툴 거렸을 뿐이고요."
손가락으로 그림의 잘못된 부분을 가리킨다. 여기! 저기! 요기! 조기!
"그림쟁이로서 이런 부분은 마음에 안드니까 말한 거라구요! 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하는 그런 후회? 그런거!"
화현의 이야길 듣고 고갤 끄덕이다가 잠시 생각하던 차에 에릭은 한 학생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 이건 아는 사람이야기인데. "
결코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티는 내지만 누구라도 그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는 헛웃음이 나오는 이야기였다.
" 검성을 닮고싶어서 가디언이 되고싶었던 학생이 있었어. 친화력이 그렇게 나쁘지 않던 학생은 막 입학하고 워리어 포지션으로 자신의 길을 택하고 나아가며 친구도 사귀고 동아리도 들어갔어. 그런데 하면 할수록 자신이 가진 재능의 한계가 보이는거야. "
이미 다른 친구들은 저 멀리 나아가는데 자신은 재자리이니 조급해졌다.
" 친구들에게 민폐가 될까 걱정했고,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학생은 포지션을 바꿨어. 자연적으로 서포터로 다시 시작하느라 원점회귀에 친구들보다 뒤쳐졌지. 그 때 느낀거야.. 친구들은 나와 달리 재능을 가지고있다고. 그래서 학생은 친구들을 멀리하고 동아리도 그만뒀어."
지독한이야기다. 누구라도 쓴맛에 인상을 찌푸릴
" 내가 이야기를 해주는 이유는, 예전에 내가 한 가진바탕을 활용해야된다는 이야기 기억해? 결국 가디언에게 인연도 바탕이야. 내가 해준 이야기의 어리석은 애 처럼 가진인연을 밀어내지말고 새 친구를 많이 많이 사귀어봐. 분명 그 친구들은 니가 바라는 그림에 대한 칭찬을 엄청 많이 해줄거야. "
이야기를 끝낸 에릭은 쓰게 웃었다. 아.. 대답해줘야겠지
" 음 내가 워리어나 랜스가 아닌 이유는.. 워리어는 예전에 해봤는데.. 재능이 없더라고. "
아는 사람의 이야기. 자신의 이야기다. 자신의 이야기를 뭐가 부끄러운지 아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말하는 그를 가만 바라본다. 이게 츤데레 라는 건가? 아는 사람의 심리까지 묘사하다니, 거짓말에 재능 없으시구나. 친구를 걱정해서,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포지션을 바꿨다는 이야기. 0부터 새로 시작하려니 남들보다 두배는 더 노력해야 하지만, 재능이 없는 사람은 그보다 수십배는 더 노력해야 한다. 결국 가디언도 재능의 차이. 왜 이렇게 내 주변에는 행복한 사람이 없는 건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의 이야기에 한숨을 내쉰 것도 있지만, 내가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것에도 한숨을 내쉬었다.
"그 아는 사람은 지금 뭐하고 지내세요? 친구하고 다시 어울렸데요? 아니면 동아리도 그만두고, 친구와도 멀어져서 혼자가 됐데요? 아는 사람이면 에릭 씨께서 좀 친하게 지내주지..."
태평스럽게 말했지만, 결국엔 걱정걱정걱정.
"재능만 보는 세상이 가끔은 너무 미워요... 그래도 저번엔 되게 잘하셨는데. 음... 친구.. 친구라... 솔직하게.. 저는 친구를 못 사귀겠어요. 제 본모습도 보여주기 싫어하는데, 친구를 사귀어도 가식덩어리 모습일 것 같고. 타인에 대한 신뢰가 저는 없거든요..."
머쓱한지 뒤통수를 긁적거린다.
"저는 진짜 엄청나게 끔찍하게 이기주의적인 사람이라... 가진 친구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고, 새로 사귄다고 해도 어떻게 사궈야 하는지 몰라요. 평범하게 대한다고 해도, 제가 생각하는 평범이랑은 조금 다르거든요... 그리고, 제가 친구를 떠밀어버릴까 걱정되기도 하고..."
자신이 내쳐버린것들을 주워가는 이야기는 길다. 아직 진행중이다. 밀어버린것들에게 터놓고 진실을 외치는 것 역시, 거기까지 가는 과정도 너무나 멀고 어렵지만. 선택했고, 그것을 좋아했고, 좋아하고 미련남기에 다시 걷기로 한다.
" 꼭 친구가 내가 좋아하는 걸 좋아해줄 필요는 없어, 반대도 마찬가지고, 서로 안맞고 삐걱거리는 과정을 거치고 상대방을 알아가는 모든 일들이 인연이니까. 저번에 영화관에서 봤어. 퓨어보이 좋아하지? 그럼 네가 그걸 좋아하는 사람과 친해질수도 있고, 니가 친하다 생각하는 사람에게 터놓을수도 있는거야. 그 과정에서 상처도 받겠지.. 어린나이에 의념을 각성했고, 질투받고, 사기당하고, 괴물취급 당한 애들 무리니까 엄청 까칠할꺼야. 하지만. "
그럼에도
" 그래도 그 과정 끝에 만난 친구는 분명 값질거야. 틀림없어. 그러니 너무 자길 숨기고 주변에만 맞출 이윤없어. "
순간의 정색. 그래도 뒤는 열린 결말이니 와아~ 음... 그보다 내 말을 전혀 안 듣는 것 같잖아! 애매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한다. 날 싫어할까 말까는 이미 범위 바깥. 단지 이런 생각을 말을 해도 믿을까 말까? 를 고민중인 것이다. 자신을 숨기고 주변에 맞출 필요는 없다고 하지만, 숨기지 않으면 이상한 취급 받을텐데?! 그건 싫어! 주변에 맞추지 않으면 서포터 실격 아니야!? 그런 생각이 곰팡이가 피어나듯 가슴 한 켠에 피어났다.
"음... 일단 하나는 알겠어요. 아직 속마음은.. 터놓지 못하겠어요... 하지만, 연락처 교환은 OKOK"
그가 내민 손에 가디언 칩으로... 연락처 교환 어떻게 하는 거였지. 이럴수가! 아무튼 여차저차 연락처 교환을 시도...해본다.
"그렇게 소리쳐보세요. 아무리 소리쳐도 여긴 제노시아.. 쿠쿠쿠... 메리 씨는 오지 않아요?"
오해를 불러 일으킬 것 같지만, 근렇지 않다. 어차피 제노시아에선 이런 일이 좀 흔하니까 아무도 도우러 오지 않을 거란 막 그런 이야기다. 용서를 빌어도 늦었다. 부위별 근육 이름 맞추기 같은 퀴즈를 맞추지 않는 한 화현. 아니, 'White string'은 용서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퀴즈 뭐냐고 소고기 부위 맞추는 미식가냐고
"근육을 이해해주는 친구? 당연히 있죠~ 그쵸, 에릭 씨?"
이 말의 뜻은 '당신을 근육 마니아로 만들어서 내 친구로 만들겠어' 라는 뜻이다. 요이!! 근육의 멋짐을 보여주기 위해 그의 흉근을 강화 버프! 이제 당신도 3:5000은 꿈이 아니다! (지속 시간 1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