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이분법이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 정체 모를 소년의 손이라도 붙잡아야만 했다. 살기 위해선 이 소년의 발이라도 붙잡아야 했다. 나는, 영웅이라는 꿈을 꾸었을 뿐이다. 분명 그것이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더라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존경을 받는 그런 영웅이 말이다. 소년은 키득거리며 날 바라봤다. 마치 즐거운 장난감을 만났다는 표정이었다. 그래. 저런 눈이라도 괜찮다. 나는 소년에게 손을 뻗었다. 좋아. 내 소원을 이루어다오.
적절한 관용구를 말하긴 했지만, 운만으로 작은 동전 투입구에 골인시킬 순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결론은 조금 돌려 말한 칭찬이었다. 그리고 긴장이 풀린 건지 주저앉은 은후를 보고, 거부하지 않는다면 격려의 의미로 어깨라도 툭툭 쳐줄 생각을 하며 손을 뻗었을까.
"저는 나이젤 그람, 19살이에요. 동갑이었네요. 저도 서포터란 건 아까 말했었죠?"
얼굴을 보려 했다면, 긴 앞머리의 소년이 눈을 찌르는 갈색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녹색 눈으로 미소짓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적당히 봐줄만한 정도는 되지만 매력은 은후에게 한참 못 미치는 C. 도망치느라 바빠서 보지도 못했던 당신의 얼굴을 보고 살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짓다가 원래의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온다. 은후의 과거는 모르니까 순수하게 외모에 놀란 것이었겠지.
"...아무튼, 이런 걸 만드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런 짓을 하는 건 아니에요. 평범한 사람, 자기 길에만 묵묵히 매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요."
굳이 이런 말을 한 건... 제노시아가 1학년 학생에게 마굴로 인식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마굴이 아닌 건 아닌 거 같긴 한데... 아무튼 아주 나쁜 곳은 아니란 것이다. 즉 뒤늦은 수습? 이미 늦어버린 거 아닐까?
"이번은 운이 나빴다고 생각해도 돼요. 평소엔 살인 자판기가 나타나도 지나가는 학생들이 처리하기도 하는데, 하필 사람이 없을 때여서..."
평소에 살인 자판기가 나타나는 학교에 들어온 것 자체가 이번이 아니라 그냥 운이 나쁜 것 아닌가? 라는 정론을 들으면 할 말은 없지만... 아니, 이 학교엔 행운아도 있으니까!
"이건 직접 옮기긴 힘들테니 선생님께 말해서 처리하는 게 좋겠네요."
청소거리가 생긴 걸 어떻게 알았는지 와서 바닥을 닦으려 하는 미어캣과 캔을 버리려고 하는 미어캣과 벽의 칼자국을 보고 (미어캣은 속았습니다)짤의 표정을 짓는 미어캣을 보며 나이젤은 가볍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미어캣 씨 안녕하세요.
강찬혁은 뭔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서 껄껄 웃으면서 손을 흔든다. 글쎄, 아무리 카사가 그새 강해졌다고 해도 그건 아닐 거 같다. 적어도 한손가락에 죽지는 않을 거다. 그때 싸워봤을 때, 야수화된 카사를 상대로 꽤나 오래 버틴 걸 생각해보면 진짜로 대련을 해도 살아있을 수 있으리라. 그때는, 강찬혁이 거의 다 죽어가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공격당한 특수한 상황이었고. 강찬혁은 2년을 겨우겨우 날로 먹은 터라 레벨 7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제 들어온 1학년이 벌써 강찬혁을 죽일 수 있을까. 강찬혁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 감사하실 건 없는걸요.. 그..친구랑 시간을 보내고 싶던 건 저 또한 마찬가지구요.. "
이런 말을 자신의 입으로 꺼내기는 부끄러웠는지, 기쁜 듯 말해오는 에미리에게 하루는 다시금 얼굴이 붉어져선 우물쭈물 답하는 하루였다. 그녀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녀가 자신에게 향한 칭찬이나 감사에는 몹시 약하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부끄러워 했다.
" 그, 그리고 오해하실까봐 말하자면... 전, 친구랑 공부하는 것만 좋아하는건 아니니까요.. "
하루는 부끄러움에 눈이 빙글빙글 도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으며 (예시표정 @_@), 자그마한 두손을 꼼지락거렸다. 아무래도 고아원에선 친구라고 부를 존재들보단 동생들만 가득했던 환경이었고, 학교를 다닐 때에도 고아원 출신이라는 점과, 자신이 자처해서 고아원의 일을 도왔기 때문에 의외로 친구들과 노는 경험이 적은 하루였다. 물론 그런 것과는 별개로 자라오는 동안 그녀를 좋아해준 사람들은 많았지만, 하루는 알 수 있을리 없었다.
강찬혁은 보통 수련장에 오면 둘 중 한가지를 했다. 허수아비가 박살나서 뭉개질 때까지 몽둥이로 마구 내리치거나, 아니면 강찬혁의 머리가 깨지기 직전까지 박치기를 해서 의념기 연습을 하거나. 하지만 오늘 강찬혁이 하는 것은 달랐다. 오늘은 뇌에 힘을 주고, 의념이 주입된 허수아비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뇌에 힘을 주고 눈을 부릅뜬다.
그리고 허수아비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는 그 모습이 누가 보면 참 이상하게, 어쩌면 우습게도 보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