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이분법이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 정체 모를 소년의 손이라도 붙잡아야만 했다. 살기 위해선 이 소년의 발이라도 붙잡아야 했다. 나는, 영웅이라는 꿈을 꾸었을 뿐이다. 분명 그것이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더라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존경을 받는 그런 영웅이 말이다. 소년은 키득거리며 날 바라봤다. 마치 즐거운 장난감을 만났다는 표정이었다. 그래. 저런 눈이라도 괜찮다. 나는 소년에게 손을 뻗었다. 좋아. 내 소원을 이루어다오.
강찬혁은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알아채자, 바로 검지손가락을 입에 갖다대며 조용히 해줄 것을 요구한다. 정말로 중요했다. 의념 파편이 이제 막 보이려는 차였다. 계속 눈을 뜨고 있는 탓에 눈이 말라서 눈물이 나오려는 참이었다. 이제 막 보이는데 집중이 깨지면 얼마나 슬프겠는가. 강찬혁은 뭘 하냐는 질문에 짧게 대답했다. 그 급박하고 진지한 목소리에 강찬혁이 매우 진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왠지 모르게 화가 나는거 같은데 왜 화가 나지...? 강찬혁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일단 참기로 했다. 강찬혁이 경찰에 끌려갈 뻔한 사건도 딱히 화날 말이 아니었는데 왠지 모르게 화가 난다고 주먹을 휘둘렀다가 사달이 난 사례였다. 강찬혁은 후우,후우, 하면서 이를 악물고 보았다... 그리고... 어? 보인다, 뭔가 보인다. 의념의 파편이! 살고자 하는 의념이, 두려워하는 그 의념이! 그 의념이 모여서, 어떤 부위에 "지킨다" "두렵다"라는 느낌의 의념 파편을 내뿜고 있었다.
"찾았다!"
강찬혁은 주저 없이 달려들어 허수아비의 가랑이에 플라잉니킥을 꽂았고, 그것은 2021년 포브스 선정 강찬혁 인생 제일 후회되는 선택 100에 당당히 들어갈 만한 수준이 되었다.
쾅!
멀찍이 떨어져 있던 한지훈도 뒤로 나동그라질 정도의 엄청난 폭발과 함께 허수아비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강찬혁은 폭발에 휘말려 저 멀리 굴러갔다.
이게 왜 진짜..? 라고 말하려던 찰나, 지훈은 갑작스레 불어오는 폭발에 의해 중심을 잃고 주저앉는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머릿속으로 돌이켜본다.
찬혁이 허수아비를 노려보다가, 갑자기 무언가를 찾았다며 외치고, 허수아비게 니킥을 꽂더니 그대로 저 멀리로 날아갔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상식적으로. 워리어 포지션이 저정도로 딜을 넣을 수 있던가. 서포터라기엔 방금 저 움직임은 서포터의 그것과는 거리가 먼데.
지훈은 자리에 가볍게 일어나고는 몸 곳곳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더니, 저 멀리 굴러간 찬혁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강찬혁의 온몸은 말이 아니었다. 가슴팍에는 허수아비가 폭발하면서 나온 파편들이 가득 박혔고, 배터리가 폭발 직전 만들어낸 스파크 때문에 온몸이 전기자극을 넣은 개구리마냥 벌벌 떨렸다. 게다가 폭발에 의해 옷도 좀 타서, 바지는 구멍이 송송 뚤렸고 윗옷은 검게 탔고 나머지는 아예 불타서 사라져있었다. 강찬혁은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러다가 한지훈이 진지하게 사망했나 의심할 때쯤, 쿨럭거리면서 겨우 일어났을 것이다.
<최후의 1초까지>
"진짜 죽을 뻔했네..."
강찬혁은 그렇게 대답한다. 죽을 뻔했다, 즉 죽지 않았다는 것이요, 살아있다는 뜻이었다. 강찬혁은 몸을 툭툭 털고 일어나서 검댕이 잔뜩 묻은 얼굴로 씨익 웃어보인다.
강찬혁은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자기가 어떻게 이 기술을 얻었는지, 이 기술의 원리가 어떤지 그의 말을 이용해서 나름대로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참으로 단어선택이 천박했지만, 그렇기에 강찬혁은 상대방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천박한 단어선택은 강찬혁이 보기에는 "토속적"이고 "서민적"인 것이라고도 부를 수 있었기에.
"전투연구부 부장 누나가 말씀하셨거든. 의념의 눈을 힘에 담아서 상대방을 보면, 그 사람이 어딘가를 지키고자 하는 그 의념이 보인다고. 예를 들어서 사람은 거시기랑 머리통, 심장이 약점이니까 그쪽에 의념의 파편이 보이겠지? 그런 식이래. 진짜 잘 가르치시더라. 깜짝 놀랐어. 내 머리뚜껑을 뜯어서 정보를 쏟아부어도 그것만 못할걸?"
강찬혁은 낄낄 웃으면서 가보라고 한다. 오늘은 강찬혁도 푹 쉬어야 할 거 같다. 최후의 1초까지가 발동된 몸 상태로 어떻게 싸운단 밀인가.강찬혁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손을 흔들어본다. 꽤 괜찮은 친구란 말이지. 서로 뭐 해준건 없지만서도. 강찬혁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