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그가 먹는 모습을 본다. 진짜 말 한 마디도 안 하고 드시는구나. 식사에 열중하는 타입이라는 걸 기억해두자. 자신도 어느 정도 먹지만, 국밥류는 많이 먹지 못한다. 소식을 하는 건 아니지만, 물배를 채워서... 하지만 따뜻한 국물로 채우니 어쨌든 든든한 기분. 먹을 만큼 먹고는 후... 한숨을 내쉰다. 물론 고기와 무는 다 건져먹은지 오래! 깍두기나 한두점 집어먹으며 그가 먹길 기다리다가 요즘 근황은 어떤가~ 싶어 입을 뗐다.
"요즘은 뭐 하고 지내세요? 저는 얼마전에 의뢰 갔다왔어요~ 진짜 대대대대위기! 였었지만.. 어찌어찌 잘 해결됐어요."
정확히 뭘 봤는지, 뭐와 싸웠는지는 식사중인 사람들을 위해서 말하지 않았다. 잘했어, 나!
오독오독... 깍두기를 씹으며 그의 말을 듣는다. 어째 침울해 보이는 분위기. 게이트에 들어갔다. 실패했다. 꼬마가 싫다? 음... 아무 말이나 하는 것보다는... 좀 더 신중하게 말을 하기 위해 가만히.. 침묵을 유지한다. 게이트에 들어가서... 실패했다. 게이트가 붕괴됐다는 말인가? 아니면 임무를 포기했다는 말인가? 그리고 꼬마가 싫다? 게이트에 꼬마가 있었다는 소리겠네... 신경도 안 쓰고 무시할거라는 말로 유추해봐서는... 꼬마와 관련해서 뭔가를 하다가 꼬마 때문에 실패했다. 흠...
"음... 음... 제가... 위로의 말을 한다고 해도.. 그리 큰 영향은 끼치지 않을 것 같네요. 자세한 전후사정을 모르기도 하고요."
그래도, 안타까워 하는 모습이 제법 짠하다. 음식에 몰두하는 이유를 대충 알 것 같다.
"아마, 당신이 상대하기 까다로운 게이트였겠죠? 꼬마라고 하니까.. 어린 아이를 상대하는 거에 힘드셨을 것 같고..."
그런데 게이트는 게이트, 현실의 꼬마는 무시하지 말아줬으면...
"그냥, 게이트가 안 좋았다고 생각하시는 게 편하실 거예요. 그 게이트는 나와 맞지 않는 게이트였어. 다른 게이트였으면 내가 의뢰를 완수할 수 있었어... 이렇게요."
환자를 새로 맡게 되었다. 윤 지아, 부산의 등대의 딸이라는데 그 아이가 아니었으면 하멜른의 피해가 더 커졌을거라고. 조금만 더 일찍 그 아이가 각성했다면, 내 아들이 살아 돌아왔을까?
...
윤지아의 상태는 심각했다. 육체적 상흔은 없었지만 정신이 갈기갈기 찢겨 나간 모습이었다. 자극에 대한 반응이 현저히 느리고, 바다를 보면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억세게 그곳으로 가려고 하며, 어두운 곳에서 심각한 발작반응을 일으켜 윤지아의 병실은 항상 불이 켜져있었다. 진단하기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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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환자가 병원에서 탈출하려 했다는 오전 담당의의 이야기를 들었다. 화를 내지도 않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것 같은 멍한 표정으로 구해야한다며 몸부림치다 제풀에 지쳐 다시 잠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어째서 그 아이는 그렇게 다 무너져갈때에도 자신보다 남을 더 위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이기적인 것일까?
...
환자의 정신이 회복 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이사회의 동의를 얻어 기억을 소거하는 시술을 하거나, 아니면 평생 케어해줄 전담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소견이다. 나는 어느쪽에도 설 수 없었다. 저 아이에게 품었던 한순간의 이기적인 마음때문에.
"그쵸. 게이트죠. 그러니까, 너무 낙담하지 마세요. 그래도 계속 생각난다면, 다음에 잘 하면 되는 거예요. 실패를 이겨내느냐, 실패에 잠식 당하느냐. 세상은, 그런 걸로 판결나더라고요."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는 가, 어둠에 잠식되는가. 결국 세상은 빛 나는 자만 기억하는 곳이니까. 그래도, 죽지만 않으면 다음 기회가 있고,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지 상황을 바꿀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기회가 있는 편이다. 이번 경험으로 중요한 걸 얻었을지도 모르니까. 못 얻었다 하더라도, 기회가 있으니까. 다음에 좀 더 생각할 기회, 더 잘할 기회. ...어디까지나 이건 내 철학이지만.
"많이 드세요. 저기 보니까 육수는 리필도 가능하다고 적혀있는데."
가만히 눈을 감고 있자 솔솔.. 잠이 솔솔라시도... 헛.. 하긴 밤이 늦었어.
"계산은 제가 할테니, 많이 드시고 가세요. 음.. 저~~번에 근육 그리게 해준... 보답? 같은 거니까."
그렇게 말하고선 자신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에서 시킨 것을 계산한다.
/저... 이제 슬립 큌 슬립 타임이라 이만 자러 갈게요.. 다음으로 막레 주시거나, 이걸 막레로 합시다! 고생하셨습니다 후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