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 되어라. 그 말이 얼마나 잔혹한 단어인지 아직 여기 대부분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영웅이 되기 위해선 우리는 수많은 고통과, 위협과, 희생을 감수하고 일어나야만 한다. 그러나 그 일어나는 것을 할 수 없어 쓰러진 채, 눈을 감는 이들도 많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같은 눈이었달까. 하지만 딱히 말로 설명할 수 없었기에 나이젤은 그냥 넘기기로 했다.
"그러면 화현 씨라고 부를게요."
화현 후배님이라고 부르는 건 두 글자 정도 기니까(?) 나이젤은 평소 다른 사람에게도 쓰는 씨 호칭을 그냥 쓰기로 했다. 그리고 화현이 같은 곳을 봐도 되냐는 것에 긍정하자 나이젤은 적당히 풀이 자란 곳에 앉았다. 스케치북 같은 건 안 가져왔으니까 눈으로만 보는 수밖에.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저는 장비제작 전공이에요. 만드는 거라면 이것저것 하고 있지만요."
그러면서 동아리는 장비제작부가 아니라 채집부지만.
"그러면 화현 씨는 이 나무를 보면서 뭘 느끼고 있어요? 말해주지 않으면 다른지 아닌지 모르는걸요."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아까보다 더 가늘어진 눈매... 하지만, 곧바로 원래대로 돌아오고서는 "그럼 저도... 나이젤 씨 라고... 사실, 선배라고 부르는 거 좀 부끄러웠거든요." 하고 시시콜콜한 잡담을 한다. 뭐 됐어. 하고는 다시 자연으로... 눈을 돌리고.. 흐음...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나 나뭇잎등을 관찰하며 어떻게 하면 더 생동감 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 것을 고민하며 스케치북에 스케치한다. 빠르게 그리고 대충 효과음이나 의태어 등을 써놓아도.. 흔들린다는 느낌은 잘 안 받는 단 말이야. 마커펜을 손으로 돌리며 멍하니 있다가 그의 물음에 답한다.
"장비제작이요? 대장장이? 헤에~ 효울 좋은 전공이네요. 약간, 졸업하고 취직 걱정 없는 그런.. 아, 이런 쪽은 오히려 경쟁자가 더 많아서 안 좋나..."
곰곰 생각하다가
"저요? 제가 느끼는 건.. 음... 그냥, 평범해요. 나무의 형태, 나뭇잎, 바람이나 충격에 흔들리는 모습을 그림으로 나타내었을 때 어떻게 하면 생동감있게 나타낼 수 있는가.. 막 그런 것들? 사실 느낌이 아니라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효과음만 두둥~ 하고 써서 나타낼 수 있으면 편하겠지만... 그것도 힘들고~"
또 그런 눈이 됐던 것 같은데... 기분탓이라고 생각하자. "하지만, 이름을 불리는 쪽이 더 '저'를 부르는 것 같아서 좋네요."라고 대답하며 잡담을 교환할 때마다 나무를 향하던 시선을 돌려 화현을 보고, 또 나무를 보고를 반복한다. 뭔가 떠오를 것도 같은데.
"직업 대장장이 말이죠.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전 졸업하고 나서도 가디언로 남아있을 생각이라서요."
직접 싸우고, 인맥을 늘려나가고, 더 많은 것을 본다... 나이젤은 그런 방침으로 줄곧 살아가고 있었다. 앞으로도 변동이 없으면 그럴 것이다. 모든 것은 나이젤의 목표, '더 나아지는 것'을 위한 것이기에.
"살아있는 모습 그대로 종이 위에 옮겨심는 걸 바란다는 걸까요?"
상대가 긍정했던 아니던 그 감상에서 뭔가 떠오른 나이젤이 마침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살짝 노려보듯이 쳐다봤다. 아, 텄다. 다시 머리가 아파서 떠오를 것 같았는데 놓쳐 버렸어... 순서를 되짚어 다시 화현의 대답을 되새기던 나이젤이 고민하다가 결국 딱히 쓸모있진 않은 대답을 말했다.
"조금 방향을 과장되게 표현한다던가? 아니, 그러면 생동감과는 좀 다를까요? 그림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섣불리 말하긴 그렇네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을 때가 세상에서 선택하기 제일 힘들다고 했던가? 딱 그 상황에 처해있구만. 물론, 본인은 이제 나이젤 씨 라고 부를 예정이지만. 졸업하고 나서도 가디언으로 남아있겠다는 그를 보고는 음.. 하고 짧게 신음을 흘리더니
"대장장이이자 가디언이면 되잖아요."
라는 심플한 답을 내놓는다. 가디언 일을 하면서도 대장장이 일을 한다. 심플 이즈 베스트! 아앗!! 심플... 이즈.. 베스트...? 그래.. 생각해보면, 이런저런 고민하며 시간을 잡아먹는 것보단, 내식대로 심플하게 표현하는 게 더 낫겠어... 이것이 깨달음? 적당히 강조선을 추가하고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도 몇 개 그려주고, 거기에 휘잉~ 하고 바람 소리를 적는다. 음, 역시 이런 게 편하다니까. 전문가에 비하면 한 참 모자른 연출이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게 나와서 기뻐서 싱글벙글.
"살아있는 그대로를 옮겨 그릴 수 있기를 바랐는데, 이제 됐어요. 뭐, 그림은 그림이지! 그냥 제 식대로 표현하기로 했어요. 음.. 어찌보면 나이젤 씨에게서 답을 얻은 거니까... 고마워요? 답례로 바라는 거 있으세요?"
흠... 곰곰... 부담스러운데... 괜히 마커펜의 뒷부분으로 제 입술을 톡톡 두들긴다. 그려줄까 말까 고민하는 표정. 결론이 났는지 어깨를 으쓱이고는 ok 사인을 보낸다. 간단하게 그리자. 간단하게. 얼굴의 형태, 이목구비, 눈코입. 얼굴의 대략적인 특징도 살려주고... 아까부터 뭔가를 쓰는 듯한 행동을 하셨는데.. 모자? 후드? 후드 같은 거 즐겨 입으시나? 흠... 마지막으로 후드를 그림에서나마 입혀줬다. 스케치북을 드드득 뜯어가지고 그에게 건네준다.
"그렇죠. 그림쟁이들이 그리고 싶어하는 외모면 몰라.. 그게 아닌 경우가 태반이니까요. 아, 이번에는 그 뭐냐... 그리고 싶어 하지 않는 외모라는 건 아니고, 보답 차원이니까.. 보답."
왠지 모르게 상대방에게 데미지를 주는 것 같은 발언이기에 황급히 말을 바꿨다. 크흠! 아무튼, 나중에 뭐 부탁? 흠... 잉크가 영원히 마르지 않는 마커펜 같은거 만들어 달라고 하면 될려나? 어쨌든, 선의와 호의이기에 "후회하게 만들어드리죠..." 같은 살벌한 말을 하며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러고는 이제 돌아갈까 싶어서 스케치북과 마커펜을 가방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음? 어... 연락처요? 잠깐만요..."
연락처 교환? 그러니까... 내 연락처가 뭐였지.. 자신의 가디언 칩을 이래저래 한 1분간 조작하더니만 겨우 알아낸 연락처를 그에게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