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저 험상궂은 도련님께서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시고 계시는진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저 어깨만 부딪혔을 뿐이고! 돈까지 보내주실 정도로 옷에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그 정도는 내가 직접 낼 수 있는데 어째서 얘기가 이쪽으로 흘러가는 것일까??? 진심으로 거짓 하나도 안 보태고 지금 굉장히 당황스럽다. 내가 고상한 아가씨들만 계속 봐 와서 그런 게 아닐까??? 헛소리고 지금까지 봐온 사내들 중에서도 심지어 전남친들 중에서도 이 정도로 굽혀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딱 봐도 선배님인듯 보이신데 도대체 이걸….이걸 정말 어찌하면 좋담?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단은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 조용히 옆머리를 넘기며 말을 시작했다.
“저어🎵 이름 모를 도련님~? 저희는 그저 길 가다 조금 부딪혔을 뿐이지요~? 제 원피스는 멀쩡하고! 도련님의 옷도 멀쩡하지요? 전혀 더러워진 부분이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지 않은지요~? “
제 너무나도 멀쩡한 검은 원피스와 사내의 말끔한 가죽자켓을 가리키곤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너무 숙이지 마시구! 에미리는 그렇게 무서운 사람 아니어요~! 그도 그럴게 이제 1학년이와요? 파릇파릇한 신입생이와요~? 그러니 이 새내기를 봐서라도 조금은 진정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선배님~? “
자! 이정도면…이정도면 끝난 거겠지? 더 이상 자책하지 않으시겠지 그렇지?? 한참을 말해서 그런지 목이 타는 것 같다. 조용히 제 성대가 있는 부분을 쥐듯 쓸며 숨을 고르다 물음에 대답했다.
“으음~🎵 그렇지요~? 잠시 구경을 하러 왔사와요~ 제가 이 학교의 구조에 익숙하지 않아서 파악차 온 것도 있구요~ 선배님은요? “
딱 봐도…딱 봐도 나처럼 구경하러 오신 것 같아 보이진 않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하고…상황 수습이 먼저다. 이 분위기를 어떻게 환기라도 시켜보자 좀!!
강찬혁은 그렇게 대답한다. 신입생이었구나, 1학년이었구나... 하지만 강찬혁은 알고 있었다. 여기서는 학년이 중요한게 아니라 얼마나 강하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뭐, 그래도 강찬혁의 이런 반응이 부담스러운 모양이니 그만 집어치우기로 했다. 강찬혁은 비생산적인 인사치레는 그만두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 제가 고블린 소굴 게이트에서, 불구자가 된 오크랑 싸웠거든요. 그래서 이 전투를 여기서 재생하고, 최소 한명 이상이랑 전투에 대해 논의를 하라는 과제를 받아서..."
한번, 봐주실 수 있을까요? 그렇게 물었다. 하필 과제를 낸 선생도 미친 싸이코여서 가라도 불가했다.
해냈다...해냈다! 어쨌든간에 해냈다...! 분위기도 전환됐고, 한결 가벼이 얘기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전투를 재생해? 아~ 저어 홀로그램 말씀하시는 것일까, 어느정도 이해는 갔다. 굉장히 곤란한 과제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완전 조별과제나 다름없지 않은가. 확실히 혼자 하기엔 굉장히 힘든 과제이긴 하다....
"으음~? 과제인가요? 지켜보는 거라면 에미리는 얼마든지 OK이와요? "
아무튼 논의드리는 정도야 얼마든지 가능하다! 봐줄 수 있냐는 물음에 두말않고 좋다는 사인을 보냈다. 1학년의 의견이지만 도움이 될 수 있다면야!
"잘은 모르겠지만 오크와의 전투라니 뭔가 굉장했을 것 같사와요~ 저는 조금 떨어져서 봐드리면 되련지요? "
살짝 벽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홀로그램이 어디에 펼쳐질지 잘 모르겠으니 일단은 최대한 벽쪽에 있는 게 좋을 거 같았다.
다행히도 첫인상에 비해 마음은 따뜻한 사람 같다. 강찬혁은 그렇게 평가했다. 상대방이 어디의 누군지는 모르겠지만(에미리는 성학교 신입생이었지만, 강찬혁은 그녀를 청월고교의 무시무시한 엘리트집단이나 이너서클의 일원일 것이라 생각했다.) 뭐 어떠랴. 현수막 좀 찢어서 쓸 수 있는거 가지고 시비 거는 샌님만 아니면 된다.
"그럼..."
강찬혁은 빈 홀로그램 콘솔로 가서 자신의 손을 대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강찬혁과 고블린들이 드러났다. 그리고, "재생 시작"이라는 음성과 함께 고블린들이 강찬혁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강찬혁은 고블린들을 일방적으로 두들겨팼다. 야구 방망이를 휘둘러 고블린을 저 멀리 쳐내고, 머리를 내리쳐 터뜨렸다. 잔머리 있는 고블린들이 바람총으로 독침을 쐈지만, 강찬혁은 그딴 것에 쓰러지기에는 너무 튼튼했다. 고블린들의 비명소리가 메아리치고, 강찬혁이 허리가 부서진 채 양 팔로 도망치려는 고블린을 잡아서 방패로 쓰려는 모습은, 아무리 게이트 너머의 야만적인 짐승이더라도 심해보였으리라.
"...이 다음이 진짜에요."
동굴 안으로 들어간 강찬혁이 발을 구르며 욕하다가, 한숨을 쉬고 안으로 들어간다. 고블린들을 대학살한 오크 전사가 나가라고 경고하지만, 강찬혁은 거부하고 싸우는 길을 택했으니. 강찬혁은 오크에게 달려드는 척하며 몸을 낮춰 슬라이딩한다. 그의 목을 노리던 오크의 글레이브는 아슬아슬하게 빗나가고, 강찬혁은 그 틈을 노려 오크의 팔을 붙잡는다. 오크는 팔에 붙은 인간놈을 떼어내려고 하다 잘 되지 않자, 벽에다가 쳐박는다. 하지만 강찬혁은 오크가 정신이 팔린 잠깐의 틈도 놓치지 않고, 자신의 몸에 박힌 독침을 뽑아 오크의 눈구멍에 쑤셔버린다. 그리고는 오크의 머리를 마구 두들겨패는데... 오크가 갑자기 광폭화에 걸리더니 강찬혁을 죽도록 두들겨패고, 마지막으로 글레이브로 강찬혁의 왼쪽 어깨를 내리친다.
"으, 기억만 해도 아프네."
그의 의념기가 피해무효였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장애인이 되었으리라. 강찬혁은 오크가 당황한 사이 오크의 팔이 없는 쪽으로 달라붙고, 오크의 몸을 타고 올라가 마구 두들겨팬다. 눈구멍을 찌르고, 코를 때리고, 오크의 어금니를 부러뜨려서 목에 박고, 정말로 더럽고 천박한 싸움의 끝에 오크가 먼저 쓰러지고, 오크를 짓밟고 올라가 승리를 선언한 강찬혁도 이내 쓰러진다.
...그리고 홀로그램이 꺼지자, 강찬혁은 에미리를 돌아보며 물었으리라.
"강평 부탁드려요. 되도록 진솔하게요." //에미리주 죄송한데 답레 주시면 내일 아침 일어나서 이어도 될까요? 잠을 못 견디겠네요 ㅜㅜ
굉장히… 충격적이라면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바로 전 게이트에서 검귀를 상대하고 왔는데도 검귀가 오히려 선녀였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뒷통수를 후려치는 전투 기록이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이성을 잃기 전의 검귀라고 가정해도 선녀였다. 물론 검이 아니라 야구배트이니까 전투방식이 다소 거칠 수 있는 점은 이해할 수 있지만, 오크가 굉장히 거친 전투방식을 추구하는 몬스터이긴 하지만 이건… 이건… 대체 이걸 어떻게 평가한담? 솔직히 말해 말아? 차라리 가라앉기 전의 교토식으로 돌려돌려서 말씀드리는 게 백번 나을 것 같다. 정말이지 난…지금 대체 뭘 본건지 이해가 안 간다…..진짜 내가 뭘 본거지? 이게 소위 말하는 그 더치 파이트란 것인가?
“어머🎵 굉장히 강렬한 전투였네요! 전투적인 부분의 롤모델을 치오랑님으로 잡고 계신가 싶을 정도로 대단히 정열적이셨사와요~! 오크분과 고블린분들이 굉장히 전투를 즐기시는 분이신 거 같아요! 호전적이라고 해야 되려나요~? 죄송해요, 뭔가 오크분의 싸움방식이 조금 즐기고 계시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
애써 웃음을 지우지 않으려 하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나는 여기서 최대한 천박과 야만이란 단어를 쓰지 않고 곱게 말씀드리려 노력했다. 초면에 그것도 윗전인 선배님께 대뜸 이런 단어를 쓰는건 예의가 아니다. 고상하지 못한 짓이다….! 에미리는 그런 예의 없는 아이가 아니어요!!
“전체적으로 음… 조~금 거친 싸움이었지만? 정말 괜찮은 싸움이었사와요? 그래도 급소 부분을 좀 더 집중적으로 친다면 좀더 빨리 전투가 끝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그 외에 흠잡을 부분은 없사와요, 제로이와요~!“
어찌저찌 평을 끝낸 뒤 살짝 입을 가리며 호호 기분좋은 웃음소리를 냈다. 이정도면 나름…나로썬 성격 죽이고 괜찮은 평가를 한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