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태연하게 또 하나를 먹는 그녀의 모습에 소년은 애써 웃으려고 했지만 표정은 웃지 않았다. 이제 확률은 50%가 되었고 걸리냐 마느냐만 남겨둔 상황이었다. 자신이 걸리면 그녀가 사는 거고, 자신이 살면 그녀가 걸리는 것이었다. 뭘 먹을지 고민하다 왼쪽 것을 입에 쏙 집어넣은 소년은 눈을 꽉 감고 천천히 이빨을 움직였다.
허나 매운 맛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확률 50%에서 승리한 덕인지 특별히 더 맛있게 느끼며 소년은 일부로 장난치듯 너무나 맛잇게 타코야키를 먹었다. 그리고 가볍게 내용물을 꿀꺽 삼킨 후에 남은 하나를 바라봤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고 이것을 먹으면 무조건 걸리겠네. 하지만 이러면 재미가 없잖아? 미쿠모 양에게 살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줄게."
이어 소년은 핸드폰을 켠 후에 스토어로 들어갔고 그 중에 앱 하나를 설치했다. 이어 보이는 것은 주사위를 돌리는 화면이었다.
"여기서 짝수가 걸리면 내가 이것을 먹고 내가 진 것으로 할게. 하지만 홀수가 나오면 미쿠모 양이 먹고 미쿠모 양이 지는 것으로 하고 소원 하나를 더 들어주는거야. 어때? 마지막 원찬스. 한번 걸어볼래?"
어쨌든 자신이 먼저 시작을 했고 여기까지 온 이상 그녀에게도 한 번의 기회 정도는 주어줘야한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어쩔거냐는 듯이 그녀를 바라봤다. 받아들여도 좋고,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았다.
일부러인지, 지금까지 중에서 제일 맛있다는 얼굴로 타코야키를 먹는 유키를 보며 나기는 그저 고장난 라디오처럼 으윽 하는 소리만을 반복했다.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거야, 아사기리 씨의 운은!!! 너무 좋잖아! 성능 너무 좋잖아?! 나기 완전 패배잖아?! 나기에게 남은 건 볼 것 없이 뻔한 패배와 아마 매울 것이 뻔한 이 타코야키 하나뿐… 참담한 심정이다. 기분 탓인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타코야키를 집으려다… 기회를 한 번 준다는 말에 번뜩 고개를 들었다.
“저, 정말로? 좋아!! 반드시 짝수를 내주겠어!! 마지막 원찬스, 나기가 멋지게 잡아보일테니까!!”
주사위 어플을 보여주며 하는 제안은 실로 달콤한 것이었다. 하지 않아도 어차피 먹어야 하는 매운맛… 그렇다면 차라리 기회를 잡는 것이 좋지 않을까? 사실 남은 하나를 먹지 않고 그냥 소원만 들어주겠다고 제안을 해도 나쁘지 않겠지만 순박한 건지 이 엄청난 상황에서 당황한 건지 나기의 머리속에서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눈 앞에 놓인 또 한 번의 기회에 매달리겠다는 생각뿐. 이래서 도박이 무서운 것이다. 혼자 이겨내기 힘든 도박의 늪, 도박문제관리센터에서 도와드립니다. 도박문제 전문 상담은 국번없이 1336. 아아, 어째서인지 공익광고가, 그것도 옆나라의 것이 머리 속을 잠시 스쳐지나간다.
“…좋아, 갑니다!!”
유키의 핸드폰, 거기에 표시된 주사위 어플을 향해 뻗은 손으로 주사위를 굴린다. 그렇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후…후후후… 아하하핫☆ 보셨나요! 이것이 바로 나기의 전력!! 나기가 진심으로 나오면 이 정도 운은 당연히 따라주는 거라구요☆”
마지막 기회를 잡으려고 번뜩이는 눈으로 고개를 들던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운도 실력이니까! 결국 나기가 굉장한 거 맞는거지☆ 우쭐한 표정으로 유키가 타코야키를 먹는 것을 그야말로 여유롭게, 승자의 여유를 가지고 구경한다. 아하핫☆ 아사기리 씨 엄청 웃긴 얼굴!! 엄청 떨고 있어!! 대단해!! 대체 뭘 넣은거야 가게 녀석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들바들 떠는 유키를 보며 나기는 아하하☆하고 웃고 있었다. 그야말로 팝콘각이었다.
“아하하하! 진짜 매운맛이었네요! 먹었으면 큰일날 뻔했다☆ 입은 괜찮아요? 부은 것 같은데요?”
생긋생긋…보다는 히죽히죽에 가까운 느낌으로 웃으면서 탄산을 받아들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탄산음료를 챙겨주다니, 아사기리 씨 대단하네. 연상의 여유라는 건가. 어쨌든 받은 건 감사히 먹겠습니다.
대체 뭐지? 뭐가 들어있던 거지? 아, 봉투가 빨간 색이었던건 그걸 암시하는 거였나?! 유키의 설명을 듣던 나기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다행이다. 짝수가 나와서. 저런 건 절대로 먹고 싶지 않아…! 먹었다면 분명 울고 땀나고 하면서 귀엽지 않은 모습이 한가득 나왔을 테니까. 얼마나 매우면 아직도 저렇게 발음도 덜 돌아오고, 입을 계속 식히려고 하는 걸까… 궁금하지만 절대 먹고싶지 않다. 아마 앞으로 살면서 만나고 싶지 않은 그런 매움이겠지…
“아, 나기는 괜찮아요☆ 반에서 파는 거라 맛보기라는 명목으로 엄청나게 집어먹었으니까요☆”
처음에야 자의로 먹었던 거지만 나중에 맛보기라고 계속 먹게 되면 그건 좀 힘들어져서… 앞으로 한 달 정도는 야키소바 필요없어…같은 상태니까. 생긋 웃으면서, 하지만 약간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야키소바, 지금은 조금 식었을 테니까 매운 걸 먹은 직후의 입안을 달래기엔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참, 소원은 아껴놨다가 나중에 말해도 돼요? 당장은 떠오르는게 없어서. 오늘은 아사기리 씨가 매운 걸 먹은 모습을 본 걸로 충분히 만족이기도 하니까요☆”
괜찮다고 하는데 굳이 억지로 먹게 할 순 없었다. 그렇기에 소년은 더 이상 권하지 않고 젓가락을 이용해 면을 떠서 입에 담았다. 방금 전 먹었던 붉은 용암이 떠오르는 야키소바와는 비교도 안되게 부드럽고 맛있는 소스 맛이 일품이라고 생각하며 소년은 괜히 뭐가 들어갔는지 맞춰보려 했지만 만화도 아니고, 하물며 일류 요리사도 아니었기에 바로 포기하며 그 맛을 느꼈다.
"단백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정말 좋은 것 같아. 조금 아쉬운 면도 있지만 이 정도면 많이 팔릴 것 같은데? 아. 이것도 SNS로 올려야겠다."
이어 소년은 핸드폰을 꺼낸 후에 타코야키가 있었던 봉투와 지금 자신이 먹고 있는 야키소바가 들어있는 곽이 잘 살도록 사진을 찍은 후에 바로 업로드했다. #러시안_타코야키 #매운맛 #용암 #부드러움 등등의 해시태그를 단 후에 올린 후, 소년은 바로 핸드폰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물론 괜찮아. 그대로 잊어버리고 내가 돌아갈때까지 아무런 말도 안해도 오케이야. 물론 미쿠모 양은 그러진 않을 것 같지만 말이지. 아무튼 시간이 빠르긴 빠르네. 이대로 쭉 가면 여름방학도 끝나고 다시 돌아가게 되려나."
물론 아직 돌아가려면 시간이 좀 더 남긴 했지만 그 시간조차도 어느 순간 훅훅 지나갈 것을 생각하니 소년은 괜히 아쉬운 표정을 짓지만 곧 마저 야키소바를 먹고 내용물을 비운 후에 웃으면서 곽을 닫았다.
“은근슬쩍 마지막 날까지 아무 소원도 안 빌기를 바라는 건가요? 유감이지만 그럴 일은 없을거라구요! 아마도!”
은근슬쩍 피해가려는 것 같지만 히히 못 가! 그 와중에 부지런히 사진을 찍는 모습에 새삼 감탄했다. 정말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구나. 하긴, 나기에게는 그냥 평범한 일상이지만 여행객에겐 신선한 이벤트라는 느낌이겠지. 돌아가기 전까지 추억을 사진으로 남기는 건 여행을 온 사람들에겐 자주 있는 일이니까.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빠르다는 말에 대한 대답이었다.
“방학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니까요☆ 너무 빨리 끝나는 건 싫지만… 그렇다고 계속 여름방학인 것도 별로… 쭉 여름이면 너무 덥잖아요? 끈적거리고, 습하고.”
여름방학만, 여름만 계속된다니. 그건 너무 싫어! 이 덥고 습한 날씨가 계속된다면 아마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야키소바를 다 먹은 것을 확인하고, 슬슬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다음은 귀신의 집인가?
“음~ 딱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네요. 귀신은 별로 귀엽지 않으니까… 아, 그치만 이번 귀신의 집은 별로 안 무서워할 자신이 있다구요☆ 준비하면서 왔다갔다하면서 자주 봤으니까, 이제 익숙해졌다고 할까?”
제대로 된, 유명한 놀이공원의 귀신의 집은… 완전 무리…지만… 학교 축제에서 하는 귀신의 집, 그것도 준비하면서 왔다갔다하며 슬쩍슬쩍 보거나, 분장한 학생들이 돌아다니는 걸 미리 본 입장에서는 괜찮지 않을까? 괜찮을 것 같아! 그런 생각으로 호언장담하며 가슴을 폈다. …미리 말해두지만 전혀 근거없는 자신감이다.
“귀신의 집… 이쪽으로 가서 2층으로 올라가면 돼요! 자, 가죠!”
그리고는 또 다시 앞장서서 안내했다. 2층 복도 끝에 위치한 교실. 이미 복도에서부터 오싹한 느낌이 들게 꾸며둔 모양이다. 군데군데 불이 꺼진 형광등과 창문에 붙은… 붉은 색으로 뭔가를 빼곡히 적고 칠해둔 신문지로 한낮이지만 어두컴컴한, 그야말로 폐교(…)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으아아... 슬슬 애옹이 수발과 저녁 준비를 해야하는 시간...! 여기서 킵해도 될까 유키주? 그리구 내가 내일은 약속때문에 나가야해서 아마 못 들어올 것 같아... ;ㅅ;
"하기사 치바도 여름엔 엄청 더우니까. 열섬 현상이라고 했던가? 그것 때문에 엄청나게 덥거든. 여기는 그나마 조금 시원한 것 같아. 아. 물론 조금 습한 것은 있긴 하지만 그건 바다가 근처라서 어쩔 수 없나."
과학적인 이론으로 설명을 하기엔 소년이 그렇게까지 이과 감성이 아니었기에 자세하게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도시보다는 조금 덜 더운 것 같은 것은 사실이었기에 괜히 신기하다고 느끼며 소년은 주변을 잠시 둘러보았다. 치바에서 보이는 거대한 건물은 보이지 않고 그렇게 소란스러운 분위기도 아니었다. 이런 풍경을 계속 보고 살면 확실히 그녀처럼 도시를 동경할 수도 있겠다고 소년은 괜히 생각했다.
"좋아. 그럼 가보자! 미쿠모 양이 놀라지 않으면 내가 놀라게 될까? 그래도 안 놀라도록 노력해야겠어."
자리에서 일어선 후에 소년은 그녀의 뒤를 뒤따랐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2층으로 향한 후에 복도 끝까지 가자 확실히 분위기가 있어보이는 귀신의 집이 있었다. 전문 스태프가 있는 것은 아닐테고 그래봐야 학생들이 분장한 것일테니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며 소년은 태연하게 안으로 들어서려고 했다.
"그래도 무서우면 얼마든지 뒤에 숨어도 괜찮아. 의외로 준비하는 과정과 완성품은 다를 때가 많거든."
안으로 들어서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눈에 들어왔고 소년은 꽤 흥미롭게 느끼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뭔가가 나오는 것 같진 않았지만 그런 분위기였기에 소년은 괜히 장난끼가 스물스물 올라와 능글맞게 웃으면서 그녀에게 얘기했다.
"그러고 보니 이런 귀신의 집은 가끔 진짜 귀신들이 자신들의 친구가 사는 곳인 줄 알고 찾아올 때도 있다나봐. 이를테면 아무 것도 없어야 하는 곳에서 갑자기 등을 톡톡 치는 진짜 귀신이라던가 말이야. 뒤에 아무도 없어야 하는데 인기척이 느껴지고 뒤돌아보면 왁!!"
이어 소년은 일부러 소리를 크게 내면서 그녀를 홱 돌아봤다. 과연 그녀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고 느끼면서 그는 괜히 키득거렸다.
생각보다 태연한 모습으로 들어가는 유키를 보고 잠시 멈칫했다. 엣… 지금 복도부터 분위기 장난 아닌데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어째서? 도시 사람이라서?(근거 없습니다)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봤었지만 막상 완성품을 보고 나니 은근히 오싹하다고 할까… 아니 겁나는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굉장하다고 할까? 아무튼 약간 그, 거시기한 기분인데 왜 저쪽은 아무렇지도 않은 거지? 하지만… 질 수 없다(?). 얼마든지 뒤에 숨어도 좋다고 여유부리는 유키에게 질 수는 없었다. 이쪽도 최선을 다해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지만…
“그, 그, 그렇네요☆ 그치만 괜찮다구요?! 이런 건 어둡기만 하고, 나, 나기는 아무렇지도 않거든요?”
아뇨. 사실 아무렇지도 않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 어둠이잖아? 자연스럽게 멈추려고 하는 발을 어떻게든 떼어놓으면서 들어서지만, 걸음이 느려진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이, 이런 분위기에서 그런 분장을 한 학생들이 튀어나온다고? 하지만 분장 전의 모습과 분장 후의 모습까지 봤으니, 그 점은 문제없을지도! 누가 누구인지 다 아니까 괜찮아!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연신 두리번거리다가 들려온 유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실 기울이고 싶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어둠인 지금 청각이 예민해져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게 된 것에 가깝지만.
“아, 아니이… 그럴 리가 없잖아요… 진짜 귀신이라니, 그런 건, 익, 지, 지금 나기가 제일 뒤잖아요! 그런 말을 하면 꼭 뒤에—”
아니 맨 뒤가 지금 자신인데 그런 말을 하면 꼭 뒤에 있을 것 같지 않은가! 그렇게 항의하려고 하던 나기였지만 그 항의는 큰 소리와 함께 돌아보는 유키의 행동에 쏙 들어가버렸다. 그 뿐인가. 정말로 뒤에서 등을 쿡 찌르는 듯한 느낌에 쏙 들어간 항의 대신 비명이 튀어나와버렸다.
“—으아아아아아아?! 뒤에! 뒤!!! 악!!! 으아아아아!!!”
비명과 함께 몸이 반사적으로 움츠러들어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마음같아선 뒤돌아서 뛰쳐나가거나, 단숨에 앞으로 뛰어나가고 싶었지만 불행하게도 다리가 풀려버린 것 같았다. 아아, 뭐야 이거. 싫어. 귀엽지 않아…
/귀가! 그리고 답레를 올리고... 흐물흐물해지러 가볼게에... 유키주도 좋은 주말 보냈길 :)
제 자리에 풀쑥 주저앉는 그녀의 모습에 소년은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지만 웃음소리는 조금도 없애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우습다는 듯이 키득키득 소리를 내면서 그녀를 향해 손을 살며시 내밀었다. 잡고 일어서라는 나름대로의 행동이었다. 웃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미안한 감정은 사실이었다. 설마 저렇게까지 놀랄 줄은 몰랐기에 소년은 다시 한 번 사과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놀랄 줄은 몰랐어. 정말 미안해. 괜찮아. 괜찮아. 그냥 꾸며낸 이야기니까. 애초에 진짜 귀신이 있을리 없잖아?"
물론 신을 모시는 신사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귀신을 믿는 것은 또 별개였다. 애초에 귀신과 신은 다른 존재였기에 소년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주변을 가만히 둘러보았다. 이대로 조금 더 앞으로 걸어가면 슬슬 뭐가 튀어나올 것 같긴 했지만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까진 예상할 수 없었다.
"힘들면 잠깐만 쉬었다가 갈까? 어차피 우리 뒤로 따라 들어오는 사람들도 없는 것 같으니까. 아마 내 생각이지만 여기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뭔가가 훅 하고 튀어나올걸? 아니면 BGM이 재생되거나."
아마 전자가 아닐까 생각을 하며 소년은 우선 그녀가 진정하는 것을 기다렸다. 이대로 앞으로 걸어가게 되면 자연히 떨어지게 될테고 그렇게 되면 정말로 원망의 목소리를 들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하루 수고 많았어! 나기주! 나는 그냥 푹 쉬는 하루였어! 나기주도 남은 시간 잘 쉬게나!
미안하다는 말과는 달리 웃음소리가 가득합니다만…? 그 와중에 눈 앞에 내밀어진 손에 흠칫 놀라버렸다. 으, 어쩔 수 없잖아! 나기는 지금 엄청 무서웠으니까!! 아무런 분장도 없는 손이라는 걸 확인하고 잡고 일어선 후 투덜대듯 말을 이었다. 다만 목소리가 떨리는 건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아, 아사기리 씨 때문에!! 진짜로 누가 등을 찔렀다구요! 그런 얘기를 하니까!! 그야 당연히 귀신은 없겠지만요?! 없는 게 당연하겠지만요?! 그치만!”
괜히 그런 얘기를 꺼낸 쪽을 탓하다가 조금 더 걸어가면 뭔가 훅 튀어나올 것 같다는 말에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아, 아니. 그치만 쉬었다가 간다고? 이 어둠 속에서? 뭐가 나올지 모르는 어둠 속에서? 또 등을 찔리면 진짜 진심으로 심장 바로 멈춰버릴 자신이 있는데? 잡고 일어섰던, 지금은 놓아버린지 오래인 손을 다시 찾으려는듯 허공을 더듬었다.
“그, 근데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여기서 쉬면, 무, 무섭… 아니, 뭔가 나올 것 같지 않아요…? 여기는 그, 한 번에 팍 튀어나가는 쪽이 나, 낫지, 낫지 않을까요? 빨리… 빨리 나가자구요…”
누가 등을 찔렀다는 그 말에 소년은 가만히 뒤쪽을 바라봤다. 하지만 어두컴컴한 어둠 속에서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괜히 의아한 표정을 짓던 소년은 살며시 더 깊게 뒤쪽을 바라보려다가 긴장한 듯한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괜히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냥 무섭다고 해도 상관없어. 무섭다고 느끼는게 나쁜 것도 아니잖아? 그럼 미쿠모 양이 무섭다고 하니 튀어나가볼까? 하지만 조심해. 어두컴컴하니까 괜히 부딪치면 다칠 수도 있잖아? 일단 내가 앞장서서 갈테니까 잘 따라와."
일단은 교실 안이니까 어쩌면 책상이나 서랍장, 혹은 창틀 같은 장애물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며 소년은 조금은 조심스럽게 앞으로 향했다. 당연하지만 실제로 뛰어가거나 하진 않았다. 누군가와 충돌했다가 다치면 즐거운 축제 분위기가 망가질지도 모르고 아주 약간은 이 분위기를 조금 더 즐기고 싶은 장난끼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미쿠모 양. 전에도 말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 항상 일기를 쓰고 자거든. 지금 이 일은 쓰지 않는게 미쿠모 양에게는 마음이 편할까?"
괜히 짓궂게 웃는 웃음소리를 내면서 장난을 치는 소년은 아직 여유가 넘쳐보였다. 허나 갑자기 움찔하며 소년은 발걸음을 멈췄고 힉! 하는 소리를 내면서 오른발을 들어올리려고 애썼다.
"누, 누가 다리를 잡은 것 같은데? 뭐, 뭐야. 이거? 갑자기 이렇게 하기 있어?!"
/나도 답레를 올리면서 갱신이야! 나기주 엄청 바빴구나. 나도 이것저것 한다고 엄청 바쁜 하루였던 것 같아서 공감되네.
이렇게 어두운데 그냥 본다고 보일리가 없잖아요! 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이미 오늘은 꼴사나운 모습을 많이 보였다. 또 뭔가가 나오기 전에 그냥 빠르게 나가고 싶었다. 그래. 따지더라도 일단 이 장소를 벗어나서! 쓸데없이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일단은 저 장난스러운 웃음도 오늘 일은 일기에 쓰지 않는게 좋겠냐는 짓궂은 소리도 꾹 참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서두르던 발걸음은 앞 사람이 멈춰선 탓에 막혀버리고 말았다.
“힉! 뭐, 뭐야뭐야?! 무슨 일?! 다리? 다리?! 다리 가져갔어!?”
앞에서 힉!하는 소리가 나오기 무섭게 나기의 입에서도 똑같이 히익!하는 소리가 나왔다. 그 뿐이랴, 또 뭔가 나왔다는 생각에 공포에 질려 말이 마구 튀어나와 어쩌다보니 유키의 다리 한 짝이 뺏겼다는 식의 결론까지 내버렸다. 아마 이곳의 조명이 밝았다면 새하얗게 질린 얼굴이 아주 잘 보였으리라.
“으으으… 기분 탓 아니라구요오오오… 내가, 나도, 나 등도 찔렸단 말이야아아아….”
반쯤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따진다기보단 하소연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이 엄청나게 무서우니까. 대체 누구야, 이런 본격적인 귀신의 집을 만든게!!
/역시 평일은 자비없구나... 그리고 유키주 뒤꿈치... ;ㅁ; 어서 밴드.. 밴드를 붙여...!
다리를 가져갔다는 말에 소년은 크게 당황하며 무슨 소릴 하냐는 듯이 목소리를 살짝 높였다. 물론 화를 내는 것은 아니었고 상당히 당황한 어투였다. 그러다가 괜히 정말로 자신의 다리를 뺏긴 것이 아닌가 싶어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지만 붙잡고 있는 것만 느껴질 뿐, 다리가 온전히 붙어있는 것을 느끼며 소년은 괜히 안도를 내쉬었지만 곧 울음이 섞인 목소리에 소년은 당황하며 힘을 주며 자신의 다리를 잡은 손아귀에서 다리를 떼어냈다.
"아, 알았어! 어쩌면 정말로 연기를 잘하는 귀신일지도 모르겠네. 좋아. 그럼 빨리 나가자."
지금 이 상태에서 귀신으로 분장한 다른 학생들이 오지 못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소년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양팔을 활짝 옆으로 벌렸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붕붕 팔을 돌리면서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면서 앞으로 걸어나갔다.
다리는 안 뺏겼구나! 다행이다!라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지금은 여길 빨리 나가고 싶다는 생각과, 움직이기 무섭다는 생각만이 들고 있었으니까. 나가고 싶어! 그런데 움직이기엔 너무 무서워! 그야말로 진퇴양난 그 자체다. 괜히 들어왔다. 괜히 아사기리 씨가 놀라는 모습을 보겠다고, 그런 나쁜 마음을 먹고 귀신의 집을 소개해서 이런 꼴이 된 거야. 천벌을 받은 건가! 그냥 약간의 장난기였을 뿐인데 너무 과한 벌이 아닌가요 신이시여!! 참회인지 투덜거림인지 모를 것을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다 보니 어느 새 앞서가던 유키가 뭘 하고 있는지 바람이 붕붕 불어오고 있었다. 뭐지?! 풍차돌리기?!(아니다)
“으, 으으으!! 빨리! 빨리…”
앞으로 나아가는데도 아무 일도 없잖아? 아사기리 씨가 뭔가 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스탭들이 우리를 가엽게 여겨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가. …아마 후자겠지? 놀이공원과 다르게 이곳은 100% 분장한 학생들이 나와서 놀래키는 구조니까. 응, 밖에 나가면 좀 부끄럽긴 하겠지만, 여기에 계속 있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응!!
그리고 이곳에서 계속 지내는 자신과 다르게, 아사기리 씨는 여행객. 즉, 부끄러운 짓을 해도 어차피 떠날 사람이니 나보다 타격이 적어! 그러니 여기서는 아사기리 씨에게 맡기면 되겠지!!
그런 얍삽한 생각도 하며, 아니, 거의 그 생각만 하면서 나기는 하염없이 유키의 뒤를 따라 걸었다. 원래라면 놀라고 진이 빠지느라 길게 느껴지도록 설계된 길을 유키 덕분에 상당히 빠르게 클리어 할 수 있었다. 두 사람 앞으로 출구 표지판과, 가림막 너머로 살랑거리는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빨리 나가자는 듯이 재촉하는 그녀의 말에 소년은 일단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팔을 붕붕 돌리고 있었기에 다른 귀신 분장을 한 이들이 다가오진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귀신의 집이라고 해도 팔에 맞고 싶진 않을테니 결국 마지막 출구까지 둘의 안전은 확실하게 보장되었고 빛이 보이자 소년은 팔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부러 상쾌한 미소를 비치면서 뒤돌아 그녀를 바라봤다.
"와. 의외로 귀신들이 안 보였던 것 같아. 신기하지 않아?"
물론 어째서 나오지 않았는진 소년도 짐작가는 것이 있었지만 그것을 굳이 말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소년 역시 방금 자신의 행동이 부끄럽다고 여긴 것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일기에 기록되겠지만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 것이었다. 그렇기에 소년은 일부러 정말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미쿠모 양이 많이 무서워해서 그런가? 아무튼 괜찮아? 미쿠모 양? 무서운 것이 그렇게 싫으면 여기에 올 필요는 없었는데."
괜히 자신 때문인 것 같아 미안하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말을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가 한가지를 떠올리며서 그녀에게 제안했다.
"달콤한 거라도 하나 사줄게. 혹시 안에서 나 때문에 놀란 것 때문에 화났다면 화 풀어주면 안될까?"
/월급루팡이라니! 물로 나도 자주 시도는 하니까 (안됩니다) 할 말은 없다. 그래도 오늘은 통증이 많이 가라앉았어. 밴드 붙이니까 확실히 낫긴 해. 무리 안가게 하면 며칠 있으면 낫겠지! 어제는 운동화 신고 걷기도 힘들더니 오늘은 그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회복된다는 이야기일테니 돈 워리다!
헉 어제 그냥 자버렸다... 미안 유키주...ㅠㅠㅠ 오늘 내일은 좀 정신없을 것 같아서 어제 열심히 하려고 했건만...꺼흐흑 내 체력이 말을 안 들어... 아무튼 그... 나는 오늘하구 내일은 좀 바빠서 잘 못얼 갓 같아...이것도 잠깐 짬내서 들어온거구ㅠㅠ 대신 토요일에는 거의 하루종일 있을 수 있으니까 주말까지 조금만 기다려주라..ㅠㅠ미안해...
진정하라는 말이 들려 일단은 심호흡을 시도해봤지만… 사실 그렇게 진정이 되진 않았다. 적어도 이 장소를 벗어나지 않는 한 진정은 되지 않을 것 같아! 하지만 소리지르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것보다는 조용히 따라가는게 더 빨리 나갈 수 있는 길이 아닐까. 뭘 하고 있는진 몰라도 아무튼 뭔가를 하며 나아가고 있는 유키의 뒤를 따라 조용히, 하지만 결코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속도를 내며 걸어갔다. 그리고 보게 된 것이다. 저 멀리서부터 새어들어오는 빛을. 살았다. 감사합니다 신님. 나중에 새전 넣으러 갈게요!!
“그, 그러게요…? 분장하고 있던 학생들이 제법 많았던 것 같은데…”
오며가며 마주친 것만 한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았는데, 그 많은 학생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설마 진짜로 귀신의 집이라 학생들은 미지의 귀신이나 요괴에게 잡아먹혔다던가… 그런 어이없는 생각을 할 정도로 이번 귀신의 집은 무서웠다. …물론 아무도 등장하지 않은 것은 유키가 혼신의 붕붕붕(…)을 해줬기 때문이었지만 나기는 모르고 있었다.
“으윽, 그, 그치만 아사기리 씨가 그런 얘기를 하니까…! …으, 아니… 그런 얘기를 안 했어도 무서웠을 것 같긴 하네요… 그치만 이제 나왔으니까, 만사 오케이☆인거네요!”
앗, 잠깐. 말하자마자 바로 그렇게… 화가 난 건 아니지만 달콤한 걸 사준다니! 화가 난 척이라도 하고 있을 걸! 약간 후회했지만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대로 받아먹기엔 역시 양심이 찔렸다. 그게, 시작부터 저쪽의 놀란 얼굴같은걸 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한 것이었으니… 오히려 내 쪽에서 사줘야 하는 거 아닌지.
“화나지 않았다구요☆ 물론 저 안에서는 무서우니까 말이 막 나왔지만, 그, 오히려 제가 아사기리 씨한테 사줘야 할 것 같고… 그러니까 그냥 서로한테 사주는 걸로 할래요? 달콤한 거라면 저쪽에 크레이프 가게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 몸 부활!! 주말!! 행복!! 오랜만에 와서 답레 올려둘게~ 편한 시간에 언제든 달라구~
"다음에는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 다음에도 나랑 이렇게 논다면 말이야. 나는 나름 재밌긴 했는데 상대가 재밌지 않으면 아무래도 좀 그렇잖아? 괜히 후회하게 되거든. 난 그런건 별로 안 좋아해서. 미쿠모 양은 미쿠모 양대로 힘들고 나는 나대로 즐겁지 않잖아? 기왕이면 둘 다 즐겁게 있는게 후회도 안되고 추억으로 떠올리기도 좋잖아?"
물론 방금 전 상황이 그렇게 후회될만한 상황이라고는 소년도 생각하지 않았다. 허나 혹시 모를 일이었기에 소년은 일부러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장난스럽고 익살스럽게 키득키득 웃었다. 이것도 나중에 일기장에 써야겠다고 생각을 하나 그녀의 명예를 위해 놀란 부분은 빼야겠다고 소년은 다짐하며 쓸 내용을 정리했다.
"오늘은 일기에 쓸 내용이 많겠어.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정말로 화 안 났어? 그럼 다행이야! 응? 나에게? 나에게 사줘야 할 이유가 있어? 잘 모르겠지만 사준다면 거절하진 않을게. 알았어! 그럼 크레이프 두 개 먹자!"
잘 모르겠지만 상대가 그렇게 말을 하니 소년은 태연하고 가볍게 받아들이기로 하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말대로 크레이프 가게가 곧 나왔고 소년은 가만히 고민을 하다가 미소지어 이야기했다.
"난 딸기. 미쿠모 양은?"
말을 마치며 소년은 지갑을 꺼낸 후에 그녀가 바라는 맛을 주문할 준비를 마쳤다. 오랜만에 보는 크레이프라서 그런 것인지 소년은 저도 모르게 슬쩍 침을 꿀꺽 삼켰다.
“엣, 그런 건 아닌데… 애초에 이렇게 본격적인 귀신의 집이라고는 생각 못했고… 아, 아무튼 내년부터는 귀신의 집은 안 갈 거라구요! 응! 그리고 이유라고 할지… 에이☆ 아무튼 가자구요! 자자!”
무리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굳이 표현하자면 상대가 놀라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그랬다가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꼴이니… 화를 내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크레이프를 대접받기에도 양심이 아픈 상황이니까. 어쨌든 서로에게 사주자!라는 말이 잘 먹힌 모양이다! 그제야 속으로 안심하며 크레이프 가게로 향했다.
“딸기 말이죠? 그럼 저는… 바나나로 할게요☆”
가격을 확인하고-축제 음식이라 그리 비싸진 않았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 유키에게 건네려 내밀었다. 음, 그나저나 아사기리 씨, 은근히 기대하는 얼굴인데? 왜지? 도시에서는 더 흔한 음식 아닌가? 적어도 이런 시골보다는 더 자주 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사기리 씨, 엄청 기대하는 얼굴 같네요☆ 치바에서는 더 흔한 음식 아닌가요? 크레이프?”
/유키주 안녕~ 으앗 벌써 1시가 넘어버렸네! 점심은 맛있게 먹었어? 나는 이제 먹어야하지만 귀찮아서 미루게 되는구만... 푹 쉬는 날이니까 누가 밥도 떠먹여주면 좋겠다... 푹 쉬게...(?
그녀의 주문을 들으며 소년은 크레이프를 파는 이에게 방금 받은 돈까지 합쳐 내밀고 딸기 하나와 바나나 하나를 주문했다. 조금 서투른 것 같지만 그래도 꽤 열심히 노력한 것으로 보이는 손놀림을 바라보며 소년은 눈동자를 빠르게 굴렸다. 그러다 들려오는 물음에 소년은 눈동자를 옆으로 굴려 바로 옆에 있는 그녀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응? 당연히 기대하지. 사실 되게 오랜만에 먹는 것이기도 하고 이런 곳에서 먹는 곳은 또 별미잖아? 축제에서 파는 것은 뭔가 다른 것보다 맛있을 것 같고 그렇지 않아? 물론 치바에서 흔하게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일 먹고 그러진 않거든. 그러니까 여기서 흔한 음식이라고 해서 미쿠모 양이 굳이 막 자주 엄청 사먹고 그러진 않을 거 아냐? 그거와 똑같아."
물론 그녀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소년은 자신은 그렇게 많이 사먹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리려고 했다. 물론 그게 그녀에게 전달되었을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곧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크레이프 두 개가 주어졌고 소년은 크레이프를 받은 후 그녀의 몫을 그녀에게 넘겼다.
"그렇다면 먹어볼까? 아무튼 어제도 느낀 거지만 축제, 되게 활기차구나. 솔직히 분위기만 보면 우리 모교와 그리 차이도 없는 것 같아. 그러니까 괜히 보여주고싶은걸. 내가 다니는 학교의 축제 말이야. 난 작년에 카페를 했었어. 정말 열심히 음료와 간식을 전달했던 것 같아."
팔이 너무 아팠다는 듯이 소년은 괜히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왼팔에 힘이 축 빠진 듯이 덜렁거리는 시늉을 하다가 다시 팔에 힘을 주면서 제대로 크레이프를 두 손으로 잡고 한 입 베어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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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나왔더라! 나도 우연히 유튜브 보다가 광고 본거긴 한데 그냥 정말로 딱 톰과 제리였어. ㅋㅋㅋㅋ 재밌더라. 물론 막 개연성 넘치고 스케일이 크고 어마어마한 영화 좋아하면 재미없을지두. 진짜 그냥 어릴 때 보던 톰과 제리 그 느낌이라서! 앗. ㅋㅋㅋㅋㅋ 하지만 최약체라고 해도 원래 최애캐는 뽑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흐응~ 그런가요. 치바는 모르겠지만 아와나미에서 흔한 음식이라면 말린 생선 정도니까, 매일 저녁 밥상에 올라오긴 하죠☆”
농담이지만요☆ 하고 덧붙이긴 했지만 반 정도만 농담이었다. 음, 뭐. 아무튼 치바에서도 크레이프를 자주 먹진 않는다는 건가? 하긴, 이런 디저트를 매일 먹었다간 금방 살이 찔 테니까. 다이어트에는 신경써야지 응. 그리고 축제 음식이 별미라는 점은 공감이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평소보다 비싼 단가로 낮은 퀄리티의 음식을 사 먹는 거나 마찬가지지만, 축제 분위기로 들뜨면 신경 안 쓰게 되어버리고. 어쨌든, 유키가 전하려고 했던 것이 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어쩐지 알 것 같아 나기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관광객이 많이 오는 시기에 열리는 축제니까요. 이제 거의 반쯤은 마을 축제처럼 되었고, 그래서 더 그런 게 아닐까요? 윽, 도시 학교의 축제라니! 보고 싶다아☆ 카페라니! 그거 엄청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팔이 빠진 것처럼 덜렁이는 시늉을 하는 유키를 보고 웃다가 자연스럽게 크레이프를 먹었다. 음, 생크림과 바나나의 조합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니까. 마침 저쪽도 크레이프를 먹고는 축제에서 느낄 수 있다는 맛의 평을 내놓았다. 음… …음? 그건 칭찬일까?
“음~ 확실히 축제에서 먹을만한 맛…이네요☆ 언젠가 도쿄의 유명한 크레이프 가게에서 파는 것도 먹어보고 싶다☆ 분명 잊을 수 없는 맛이겠죠, 그거.”
/앗 요즘은 필사적인 느낌 아니어서 과금 잘 안한다2222... 뭔가 예전엔 지른다!하면 바로 질러버렸는데 요새는 지르고 싶지만 이것저것 생각하게 되니까... 생각하는 사이에 흥이 식어서 그냥 안 하게 되기도 하고 :3 이게 바로 어른이.. 되었다는 것인가...?(아니다
당시에는 고생한 기억뿐이라고 해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추억으로 남는다던가. 그리고 축제라면 고생만 한 건 아닐 테니 추억으로 확실히 남겠지. 고개를 끄덕이다가 도쿄 이야기에 잠시 멈췄다. 가고 싶은 곳에서 먹은 음식과, 평범한 곳에서 먹는 음식의 맛은 다르다… …분명 그렇겠지. 도쿄라. 가보고 싶다. 하지만 갈 수 없을 거야…
“……정말 가고 싶지만, 그렇네요☆ 아사기리 씨도 나기도 수험도 있고, 당장은 무리일거고… 갈 수 없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갈 수 있으면 좋겠네요. 간다면 정말 여기저기 다 다녀보고 싶다구요☆”
하지만 당장은 무리. 그리고… 앞으로도 무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조용히 삼키며 크레이프를 다시 한 입 먹었다. 뭐, 그래도 앞일은 모르는 거니까 언젠가는 가게 될지도 모르지. 한참 나중의 일이 되겠지만. 한 입, 두 입 먹다보니 크레이프는 금방 사라져버렸다. 음, 맛있었다.
“음~ 맛있었다☆ 타코야키에 크레이프까지 먹으니까 엄청 배부르네요☆ 아, 맛보기로 많이 먹었던 야키소바도 있었지 참. 이제 뭐할까요? 아사기리 씨, 뭔가 가보고 싶은 곳이나 하고 싶은 거 있나요?”
/맞아... 돈은 여유가 있어도 막상 과금에 쓰려니 애매하고 아깝고... 다른 데 쓰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때도 있고. 그렇군. 이게 어른이 된다는 것이군... 나는 아직 어른이라고 하기엔 철이 덜 들었지만 :3
갈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말에 소년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나 소년의 귀에 그녀의 말은 마치 자신은 앞으로도 도시에 갈 수 없다는 것처럼 들려왔다. 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었다. 하물며 다른 곳에 가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려운 일이겠는가. 적어도 소년은 그리 생각했다.
크레이프를 다 먹자 정말 배가 부른지 소년은 괜히 자신의 배를 손으로 통통 치면서 장난스럽게 웃었다. 이제 더는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불렀기에 아마 잠시동안은 축제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괜히 두 팔을 쭈욱 올려 기지개를 켠 후에 팔을 아래로 내렸다.
"적어도 먹을 것만 아니면 좋을 것 같아. 이 이상 먹으면 배탈이 날 것 같거든. 그래도 맛있어서 좋았어."
엄지손가락을 위로 척 올린 후, 소년은 잠시 생각을 하면서 어디로 가면 좋을지를 고민했다. 사실 어제 본 것도 있으니 어제 본 것들을 제외하고 새로 갈 곳이라면 어디가 있을까? 잠시 생각을 하다 소년은 그녀에게 물었다.
"캠프파이어. 여기서도 해? 만약 한다면 나중에 거기를 가보고 싶어."
/이미 나기주는 충분히 어른인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시점에서 충분히 어른인 것이야! 생각해보니 내가 다닌 학교의 축제는 항상 수수해서 대학교 축제밖에는 떠오르는게 없네. 물론 거기서도 주막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지만 아무래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