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아. 그러니까 후회없이 지낼거야. 나중에 후회하긴 싫어."
• 이름: 아사기리 유키 (朝霧 祐希) • 나이: 17세 • 성별: 남성 • 출신: 치바 • 학년: 2학년
• 외모: 177cm 정도 되는 키의 소년의 입가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어디 입 뿐이랴. 탱글탱글한 반원형 눈매에 눈동자까지. 그의 얼굴에서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것은 당당함과 자신감이었다. 다른 이들보다 살짝 위쪽에 위치한 연한 눈썹은 정말로 곱게 위쪽으로 곡선을 그렸고 가까운 거리에서 보이는 속눈썹은 곱게 위로 뻗어나왔다. 눈가와 코 윗부분을 살며시 가리는 머리카락은 곱고 연한 검은색으로 반짝였고 선 하나하나를 곱게 그려내린 형태였다. 마냥 직모라고 하기엔 뒷머리카락이 조금 곱슬적인 면이 있었기에 전체적으로 보면 소년의 머리카락은 반곱슬에 가까웠다. 자신감 가득한 눈동자는 밝은 갈색을 띠었으며 코가 약간 뭉툭한 면이 있었다. 입술은 건강미가 가득하다 못해 넘치는 연한 분홍색이며 그 끝이 거의 언제나 살짝 위로 솟아 미소상을 보였다. 소년의 귀의 일부와 목 전체를 가리는 조금 긴 길이의 머리카락의 끝은 지저분함과는 거리가 멀게 깔끔하게 곡선을 타고 내려왔으며 머릿결 역시 거칠다기보단 부드러웠다. 소년의 목은 다른 이들보다 조금 얇은 편이었으나 목젖이나 선만큼은 확실하게 성장기 소년의 것을 지니고 있었고 살구색 피부 역시 거칠지 않고 부드러웠다. 전체적으로 체형은 마른 편이었으나 그렇다고 연약한 면이 돋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직접 만져보면 단단하긴 하나 옷을 입은채 보면 꽤 말라 보였다. 유행하는 옷보다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선호하기 때문에 밝은 형광색 계열의 사복을 입는 편이어서 눈에 잘 띄는 편이다. ( https://picrew.me/share?cd=YSF3vKf7lb )
• 성격: 매사 후회없이 살고 싶어하기에 자신이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일은 반드시 하려고 하며 진짜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아니라면 일을 미루지도 않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구분이 확실하며 힘들겠다고 생각되는 일은 절대 무책임하게 약속하지 않았다. 거절해야 할 일은 확실하게 거절하기 때문에 때로는 매정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무책임하게 돕겠다고 했다가 아무 것도 아니게 되는 것보다는 낫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책임감이 강하기에 자기가 할 수 있고 도울 수 있는 일만 명확하게 돕는 타입이다.
• 기타: *아와나미 지역의 명소인 노천온천을 운영하는 집안의 친척이며 방학 동안 일을 돕기 위해 아와나미에 찾아왔다. 매년은 아니지만 방학 때 가끔 아와나미에 찾아왔기 때문에 완전히 낯선 지방은 아니나 그렇다고 해서 자세하게 많은 것을 아는 건 아니다.
*운동신경이 매우 좋다. 가장 잘하는 운동은 수영. 그래서인지 딱히 일이 없으면 바닷가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을 때가 많다.
*매일매일 자기 전에 일기를 쓰고 있다. 나중에 나이를 먹고 이땐 이랬지 라고 추억을 떠올리고 싶다는게 큰 이유이다.
*나중에 후회하는 것을 싫어하기에 결과가 어찌 되었건 지금 자신이 해야겠다고 믿는 것에 대한 추진력이 강하다. 그 결과는 좋건 나쁘건 모두 자신이 감당하고 있다.
*SNS도 자주 사용하며 멋진 순간이 있으면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해서 기록으로 남긴다. 이 또한 나중에 추억으로 떠올리고 싶기 때문이다.
“도쿄엔 분명 귀여운 게 많겠지? 나기도 도쿄 가고 싶어~☆” "뭐... 어차피 못 가겠지. 평생..."
• 이름: 미쿠모 나기 三雲 凪 • 나이: 15세 • 성별: 여 • 소속: 동고 1학년
• 외모: 그녀를 봤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연분홍색 머리카락일 것이다. 탈색과 염색을 거쳐 나온 색이 분명한 그 빛은 의외로 푸석하거나 갈라지지 않고 매끄럽게 햇빛을 반사하는 것이 주인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서 관리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이다. 주로 양갈래로 묶는 트윈테일을 하고 다니는데 특이하게도 양쪽의 머리끈을 다른 것을 쓰거나 온갖 장식을 붙여 '귀엽게' 꾸미고 다닌다. 아주 가끔 뿌리께에 갈색빛이 감도는 일이 있지만 다음날이면 말끔히 사라지곤 한다. 나기 왈 '나기's MAGIC'이라고. 앞머리 중 몇 가닥은 조금 짧고 잘 휘어져 마치 바보털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위로 솟지 않는 것은 나기의 심혈을 기울인 드라이 덕분. 머리카락보다 조금 진한 분홍색 눈은 동글동글 순한 눈꼬리로 감싸여 있고 귀여운 것을 보면 반짝거린다는 말이 어울리다 못해 가끔은 희번득(?)하게 빛날 때도 있다. 성격을 나타내듯 밝게 웃는 일이 많으며 입꼬리에 거의 항상 웃음이 걸려있다. 때때로 죽은 생선같은 눈을 곁들인 무표정을 하고 있을 때가 있지만 본 사람은 극히 드물다. 손목에는 항상 예비 머리끈을 팔찌처럼 차고 다닌다. 사복도 소품도 실용보다 귀여움을 우선해서 고르는 편이다. 153cm의 작은 체구 덕에 귀여운 느낌의 옷이 잘 어울리는 편.
• 성격: #밝다. 대충 10000루멘 정도로. 참 밝다. 나기를 만나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서 나기를 '밝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나기 자신부터가 귀엽고 발랄하게 구는 것을 의식하며 지내기 때문인지, 일단 첫대면에서는 그런 평가를 받곤 한다.
#포지티브인 척 하는 네거티브 사람이 늘 밝은 면만 있을 수는 없다지만 나기를 보면 어쩌면 한없이 밝기만 한 사람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기에게도 어두운 면은 존재한다. 그것도 상당히 크게. 단지 그것을 타인 앞에서 드러내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할 뿐. 인적이 드문 해안가, 자신의 방 등등... 밝은 빛에 가려져 있던 그림자는 타인의 눈이 적은 곳에서 불쑥 나타나 나기를 삼켜버리곤 한다.
#사실 컨셉이다 귀여운 걸 좋아하는 건 맞지만 스스로를 '나기'라고 3인칭화 한다던가 머리를 물들인다거나 귀엽고 눈에 띄는 장식이나 옷을 입는 것, 그리고 한없이 밝게 구는 것들 모두가 일부러 하는 것들이다. 일단 사리분별은 할 수 있고 공과 사는 가리기에 공적인 자리나 진지한 순간에는 3인칭도 헤실헤실한 표정도 싹 사라지는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그쪽이 진짜 나기일지도 모른다.
• 기타: *귀여운 거 정말 좋아☆ 옷이나 헤어스타일, 각종 소품, 동물, 디저트 등등... 귀여운 거라면 사족을 못 쓴다. 심지어 마음에 드는 것을 '귀엽다!'라고 평하기도 한다. 나기가 귀엽다고 평한 것들은 대체로 타인의 기준에서도 귀여운 것들이지만 때때로 '어디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의외인 대상을 가리켜 귀엽다고 하기도 한다. 나기가 말하는 '귀여워'는 통상적인 '귀여움'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냥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가리키는 걸지도...
*생일은 10월 19일. 혈액형은 B형. 별자리는 천칭자리. 매일 아침 TV 방송에서 해주는 별자리 운세 순위를 보는 걸로 하루의 길흉(?)을 정한다. 운세가 좋은 날은 귀여운 날. 안 좋은 날은 안 귀여운 날이라고 한다.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나기 세 사람으로 나기는 아빠(파파), 엄마(마마) 라고 부른다. 집은 아와나미 해안가에서 숙박업소를 운영중이다. 총 2층 건물로 1층은 나기네 집, 2층은 숙소이며 가끔 1층에 간소하게 차려놓은 기념품가게에서 부모님을 대신해 카운터를 보기도 한다.
*좋아하는 음식은 귀엽게 꾸며진 디저트류 전반. 싫어하는 음식은 우메보시. 먹으면 얼굴이 안 귀엽게 되니까 싫어한다.
*대도시에 대한 엄청난 동경을 안고 있고 가고싶다 가고싶다 노래를 부르곤 하지만 실제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잠은 잘 잤니? 나기주? 어서 와! 안녕! 일단 어디서부터 시작을 하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반가운건 변함없으니 그대로 가겠어! 아무튼 일댈을 받아줘서 고맙다는 인사부터 전할게! 사실 나도 유키를 그다지 돌려보질 못해서 이대로 묻게 하기엔 아쉬워서 제안한거라서 받아줄줄은 몰랐거든.
장을 보러 가는 거 귀찮지. 그래서 결국 많이 사오게 되고 그러면 또 남아서 버리게 되는 것이 있어서 곤란해. 역시 귀차니즘을 해결하는 것이 유일한 답일거야. 그런 의미에서 나기는 카레를 달게 먹는 편이야? 맵게 먹는 편이야? 유키는 둘 다 좋아하지만 매운 카레 쪽을 조금 더 좋아해.
매운 쪽을 좋아한다고 해도 불닭볶음면 같은 것은 유키도 먹지 못하고 바로 도망쳐버릴거야. 먹어봐야 후회가 남지 않으니 후회가 남지 않도록 도망간다! 라는 느낌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네. 아무튼 나기는 매운 것에 약하구나. 불닭볶음면 같은 것은 절대로 권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어. (메모메모)
유키도 불닭볶음면은 무리...(메모 하지만 나기는 남이 먹고 괴로워하는 모습은 재미있게 구경(?)할 것 같다... 러시안 타코야키처럼 랜덤으로 와사비라던가 겨자라던가 들어있는 걸 사와서 먹이고 구경하려고 한다거나~ 하지만 그런 건 보통 사온 사람이 걸리기 마련이라 자기가 먹고 울상이 되겠지 크큭(?
이미 합동축제를 하루 즐기긴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소년이 축제를 둘러보는 것을 멈출 생각은 없었다. 아직 볼거리는 많았고 이전에 이곳에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와의 약속도 있었으니까. 바로 전날엔 다른 이와 둘러봤지만 오늘은 약속한 것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한 소년은 라인을 켠 후에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은 시간 될 것 같은데 괜찮아? 미쿠모 양?
어제 이것저것 둘러보았으나 그럼에도 흥미로운 것이 많았기에 소년은 오늘은 오늘대로 다양하게 구경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핸드폰을 들어올렸다. 이어 카메라 모드를 켠 후 근처에 있는 금붕어잡기를 화면에 담으며 SNS에 #축제_이틀째 #여전히_활기참 등의 해시태그를 함께 올렸다.
그 후 라인으로 다시 들어온 소년은 잠시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살며시 자리를 옮기면서 메시지를 다시 전송했다.
-시간 되면 얘기해줘. 교문 앞에서 시간 보내고 있을게.
만약 시간이 된다면 그곳에서 그대로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바쁘다고 한다면 오늘은 적당히 다른 곳에 가서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이곳저곳 둘러봐야 할 곳은 매우 많았다.
답장을 보내고서 한번 더, 귀여운 스티커를 골라 보낸 후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오늘은 동고와 서고의 합동축제 그 두번째 날. 자신이 안내해주겠다 약속했던 유키가 보낸 라인대로 교문을 향해 걸었다. 나기는 첫번째 날에 열심히 했으니까, 그리고 두번째 날인 오늘도 조금 전까지 열심히 했으니까 이제 놀거지롱!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제대로 인수인계도 하고 나왔고, 아무튼 이제 남은 것은 오늘을 즐기는 일뿐이다. 한 손에는 반에서 팔던 야키소바를 1인분 포장한 걸 들고 이리저리 둘러보고 구경하다 교문 쪽에 도착했다.
교문 앞에 있던 유키를 향해 손을 흔들며 다가가 인사와 함께 야키소바를 건넸다. 서비스 서비스! 그렇게 건네준 다음 슬쩍 주변을 돌아봤다. 활기차고, 두 학교가 동시에 여는만큼 사람도 분위기도 북적거리기는 하지만, 도시의 학교였다면 좀 더 대단했겠지. 슬쩍 떠오르는 그런 생각을 옆으로 치워버리고, 유키를 보며 다시 말을 꺼냈다.
“자, 그럼 이제 어디부터 볼까요? 서고 쪽에서 귀신의 집을 만들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사기리 씨 무서운 거에 강한 편인가요? 아! 아니면 타코야키 먹을까요? 이번에 엄청 특이한 타코야키 가게가 있다고 하더라구요☆”
금방 간다는 말에 소년은 알았다는 메시지를 전송하며 교문 벽에 등을 기댔다. 어제도 느낀 거지만 작은 마을 치고는 상당히 활기찬 축제였다. 역시 학생들이 모여있는 곳은 변함이 없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문뜩 치바에 있을 수영부 친구들을 떠올렸다. 돌아가면 이런저런 이야기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와중 저 편에서 낯익은 이의 얼굴이 보였다. 일전에 온천에서 본 적이 있었던 미쿠모 나기, 바로 그녀의 모습이었다.
"아. 안녕! 별로 안 기다렸어! 애초에 내가 메시지 보내고 그렇게 시간이 오래 흐른 것도 아니잖아? 아무튼 고마워! 어제 노점에서 파는 것을 먹긴 했는데 미쿠모 양네 반에서 파는 것은 어떤 맛일지 궁금하네."
자신에게 인사하며 야키소바를 건네는 그녀에게 소년은 감사인사를 보내며 야키소바를 받았다. 역시 축제하면 야키소바라고 생각하니 절로 소년의 목구멍 속으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허나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먹기에는 조금 애매한 감이 있었기에 먹는 것을 미루면서 소년은 등을 살며시 벽에서 떼어내며 제대로 섰다.
"귀신의 집? 얼마나 무섭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래도 가벼운 거라면 그냥 깜짝 놀라고 말아. 물론 전문적인 곳은 좀 약해. 그러니까 가끔 영화에 나올법한 좀비 서바이벌 같은 곳은 무서워서 제대로 못 다니겠더라구. 그런 곳만 아니라면 그냥 나름 즐기는 편이야. 미쿠모 양이 시간이 널널하면 다 둘러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내 입장에선 여기까지 왔는데 못 즐긴게 있으면 아쉬울 것 같거든."
이어 소년은 자신이 들고 있는 야키소바를 바라보다 다시 그녀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이어 말했다.
"그러면 타코야키부터 가자. 야키소바도 들고 있겠다. 일단 가볍게 배를 채우고 노는게 좋을 것 같거든. 안내 부탁해도 될까?"
“아하하☆ 그건 그렇네요! 음, 그냥 학교 축제에서 학생들이 만든 거니까! 맛이 그저 그래도 양해해주세요☆”
그야 전문점에서 파는 거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조악하겠지만… 야키소바라는 음식 자체가 그렇게 고급스러운 이미지도 아니고, 괜찮지 않나? 하지만 혹시 모르니 미리 말은 해둔다는 느낌. 아무튼 그럼… 귀신에 집도 타코야키도 모두 둘러보는 걸로 해도 되겠다. 시간이야 넉넉하고 놀 생각도 한가득이니 말이다. 유키의 말대로 여기까지 왔는데 즐기지 못한다면 아쉽겠지. 게다가 자신과 다르게 유키는 여행객이니 더더욱. 유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좋아요, 그럼 타코야키 가게부터 갈까요☆ 아마 이 근처일텐데~”
이쪽이에요☆ 하면서 먼저 앞장서서, 하지만 사람이 많은 만큼 유키에게서 너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간격을 유지하면서 길을 안내했다. 기억하던대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타코야키 가게가 있었고, 생각보다 제법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간판에 내걸린 ‘러시안 타코야키’라는 글자 옆에 그려진 리볼버가 의외로 현실적으로 그려져 있어서 살벌한 느낌도 들었다.
“아하☆ 엄청나게 본격적인 간판이네요. 매년 러시안 타코야키라고, 8개 중에서 딱 하나만 엄청난 맛을 넣어서 파는 거래요. 합동축제의 명물 같은 느낌? 직접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요☆”
그렇게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줄을 선다. 그리 긴 줄은 아닌데다 앞의 사람들이 빠르게 빠져나가 순식간에 차례가 돌아왔다. 메뉴는 딱 하나. 러시안 타코야키 8개들이 한 팩. 심플한 주문을 하고 돈을 건네고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들 정도로 붉은 색의 봉투에 들어간 타코야키를 건네받았다. 아하… 이번에는 엄청나게 매운 쪽으로 간 건가? 와사비? 겨자? 어느 쪽이든 잘못 먹어서 얼굴이 일그러지는 건 귀엽지 않은데!
“의외로 빠르게 받았네요! 그럼 저쪽으로 가서 먹을까요? 마침 벤치도 하나 비어있는 것 같고☆”
"축제에서 파는 거라면 난 이런 게 더 좋아. 축제에서만 맛 볼 수 있는 그런 맛이잖아?"
물론 전문점에서 파는 것이 좀 더 맛있을지도 모르나 축제에서 파는 것은 전문점에서 파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이 있어서 소년은 축제장에선 이런 것을 더 좋아했다. 서투를지도 모르나, 그 서투른 맛이 또 하나의 별미였으니까. 나중에 자랑할 것이 또 생겼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괜히 싱글벙글 웃었다.
그녀의 안내를 받아 타코야키 가게에 도착하자 자연히 소년의 눈동자가 빠르게 데굴데굴 움직였다. 꽤 전문적인 느낌이긴 하지만 과연 맛이 어떨런지. 그보다 러시안 타코야키라니. 여기서 이런 것을 보게 될 줄은 몰랐기에 괜히 흥미롭게 생각하며 소년은 그녀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8개 중에 하나 말이지? 좋아. 그렇다면 도전해봐야지! 이런 것이 또 축제의 재미거리거든! 과연 어떤 엄청난 맛이려나. 아. 참고로 난 이런 거 승부욕 강해."
반드시 걸리지 않으리라고 다짐을 하나 하늘이 그것을 허락할진 소년도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그녀가 타코야키를 받고 비어있는 벤치도 하나 있었으니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비어있는 벤치로 향했다. 우선 들고 있는 야키소바를 옆에 내려놓고 소년은 가장 먼저 타코야키를 바라보며 그 중 하나를 빠르게 이쑤시개로 콕 찝어서 입에 넣어 우물우물 씹었다.
"와. 이거 생각보다 맛있는데? 물론 걸리지 않은 것 같지만 역시 안 걸리는게 최고지! 자! 그럼 이번엔 미쿠모 양 차례! 내 개인적으로는 내가 먹은 것의 오른쪽이 안전해보이는데 미쿠모 양이 편한대로 해."
나름대로 추천을 해주긴 하나 당연히 소년도 그냥 감으로 찍어본 것일 뿐, 확신은 없었다. 불안하면 다른 것을 먹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소년은 마저 천천히 타코야키를 씹으면서 꿀꺽 삼켰다.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유키가 덥썩, 재빠르게 타코야키 하나를 먹는다. 아, 아니 그렇게 거리낌없이?! 그러다 걸리면 어떡하려고?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유키를 가만히 보지만 어라, 생각보다 멀쩡해 보인다. 생각보다 맛있다는 말까지. 흐음, 한번에 걸리지는 않는다는 건가? 과연. 승부욕이 강한거군.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쑤시개를 손에 들었다.
“추천은 감사하지만, 역시 이건 자신의 감으로 고르는 게 중요하죠☆ 그런 고로 이걸로 간다!”
믿는다! 나기의 감! 손을 뻗어 제일 가까운 위치의 타코야키를 입에 넣고 조금 긴장한 기색으로 씹었다. 천천히 씹어보지만… 응! 맛있다! 속이 알찬 맛있는 타코야키라는 것만 느껴진다! 뭐야~ 괜히 긴장했네~ 금새 다시 웃는 얼굴이 된다. 흐흥~ 나기도 이런 건 강하다구~
"좋아. 내기해볼까? 걸리는 사람이 이긴 사람의 소원을 하나 들어준다가 역시 가장 무난하겠지?"
내기를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말에 소년은 상관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그렇게 제안했다. 물론 자신이 걸리더라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건 이기고 지는 것보다는 재밌게 노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래도 기왕이면 이기고 싶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그녀가 타코야키를 먹는 것을 것을 바라보며 걸리기를 기도했다.
허나 바로 걸리진 않았는지 태연하게 먹는 것을 바라보며 소년은 괜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런만큼 더 흥미진진하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방금 전 자신이 찝어준 것을 손으로 찝었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골라준 이것을 먹겠어!"
설마 여기서 걸리겠어? 그 정도로 안일한 생각을 하며 소년은 타코야키를 천천히 씹어 삼켰다. 이번에도 매운 맛이 아니었고 안이 튼실하게 정말로 맛있다고 생각하며 괜히 소년은 방금 전 가게를 바라봤다. 러시안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것으로만 해서 산 후에 고모와 고모부에게 선물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절대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두번째 타코야키를 입에 넣은 유키를 지켜본다. 이번에는 걸릴까? 하지만 이번에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으윽, 너무 잘 고르는 거 아니야? 아사기리 씨? 아니, 내가 잘못 샀나? 분명 러시안 타코야키로 주문했는데?? 가게측의 착오로 매운맛이 빠진 건 아닌지,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기도 다시 타코야키로 손을 뻗었다.
“흐응~ 운이 좋으시네요, 아사기리 씨. 하지만 나기도 운은 좋은 편이라구요!!”
과감하게 간다! 하나를 덥썩 찍어서 조심스럽게 입으로 가져간다. 천천히 씹자… 음. 다행히 일반적인 타코야키의 맛이다. 속이 꽉 찬, 탱글탱글한 문어가 쫄깃쫄깃한 타코야키! 그나저나, 이번에도 둘 다 정상적인 걸 먹다니. 혹시 이렇게 가다간 마지막에 매운맛만 남는 게 아닐까? 그, 그럼 순서 상으로 나기가 지게 되는 게 아닌지… 살짝 위기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상대가 걸리겠거니 했지만 또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소년은 살짝 당황하며 네 개 남아있는 타코야키를 바라봤다. 그렇게 양이 많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 잘 피해간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어 소년은 머릿속으로 확률을 계산했다. 이제 걸릴 확률은 25%. 생각보다 상당히 높아졌기에 방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오른쪽으로 계속 먹겠어. 설마 여기서 걸리겠어?"
아주 살짝 긴장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과감하게 입에 넣으니 또 다시 매운 맛이 아니라 평범한 맛이 느껴졌기에 소년은 두근두근 뛰는 가슴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고작 타코야키도 이런데 실제 권총을 들고 목숨을 걸고 하는 러시안 룰렛은 과연 얼마나 조마조마할지. 하지만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진 않았기에 소년은 이 타코야키로 대신하기로 했다.
"좋아. 이번에도 걸리지 않았어. 남은 것은 3개 뿐이야. 괜찮겠어? 미쿠모 양?"
확률은 33%. 25%보다 훨씬 커졌기에 이번에야말로 게임이 끝날 거라고 생각하며 소년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만약 여기서도 걸리지 않는다면? 그때부턴 정말로 지옥의 순간이었다.
제발 이번에는 걸리게 해주세요…! 아와나미 신사(자주 안 감)의 신님에게 빌면서 유키의 안색을 살피지만… 아니 대체 왜 아직까지 안 걸리는거지? 그런 의문이 들 정도로 이번에도 맛있게 타코야키를 먹는 모습이 보인다. 으그그, 이러다간 진짜로 나기가 걸릴지도 모르겠어…!!
“엄청 조마조마하네요… 하지만 나기는 물러서지 않아요! 으으으!”
별까지 빼먹을 정도로 긴장되는 순간… 세 개의 타코야키 위를 잠시 방황하던 손이 이윽고 하나를 노리고 내려간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입에 넣은 타코야키를 천천히 먹자…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번에도 맛있는 타코야키였다. 이, 일단 지금은 넘겼다…인가.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걸로 남은 타코야키는 두 개… 아사기리 씨, 괜찮나요? 계속하실래요?”
아까 전에 유키가 지었던 여유로운 표정을 따라하듯 웃으며 말한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제 남은 건 두 개. 확률은 50%. 그야말로 러시안 룰렛이 되어버렸다. 저쪽이 걸려준다면, 아니, 걸리겠지. 이젠 걸릴 때도 됐지! 이번에는 피해갈 수 없을 거야!
아주 태연하게 또 하나를 먹는 그녀의 모습에 소년은 애써 웃으려고 했지만 표정은 웃지 않았다. 이제 확률은 50%가 되었고 걸리냐 마느냐만 남겨둔 상황이었다. 자신이 걸리면 그녀가 사는 거고, 자신이 살면 그녀가 걸리는 것이었다. 뭘 먹을지 고민하다 왼쪽 것을 입에 쏙 집어넣은 소년은 눈을 꽉 감고 천천히 이빨을 움직였다.
허나 매운 맛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확률 50%에서 승리한 덕인지 특별히 더 맛있게 느끼며 소년은 일부로 장난치듯 너무나 맛잇게 타코야키를 먹었다. 그리고 가볍게 내용물을 꿀꺽 삼킨 후에 남은 하나를 바라봤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고 이것을 먹으면 무조건 걸리겠네. 하지만 이러면 재미가 없잖아? 미쿠모 양에게 살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줄게."
이어 소년은 핸드폰을 켠 후에 스토어로 들어갔고 그 중에 앱 하나를 설치했다. 이어 보이는 것은 주사위를 돌리는 화면이었다.
"여기서 짝수가 걸리면 내가 이것을 먹고 내가 진 것으로 할게. 하지만 홀수가 나오면 미쿠모 양이 먹고 미쿠모 양이 지는 것으로 하고 소원 하나를 더 들어주는거야. 어때? 마지막 원찬스. 한번 걸어볼래?"
어쨌든 자신이 먼저 시작을 했고 여기까지 온 이상 그녀에게도 한 번의 기회 정도는 주어줘야한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어쩔거냐는 듯이 그녀를 바라봤다. 받아들여도 좋고,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았다.
일부러인지, 지금까지 중에서 제일 맛있다는 얼굴로 타코야키를 먹는 유키를 보며 나기는 그저 고장난 라디오처럼 으윽 하는 소리만을 반복했다.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거야, 아사기리 씨의 운은!!! 너무 좋잖아! 성능 너무 좋잖아?! 나기 완전 패배잖아?! 나기에게 남은 건 볼 것 없이 뻔한 패배와 아마 매울 것이 뻔한 이 타코야키 하나뿐… 참담한 심정이다. 기분 탓인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타코야키를 집으려다… 기회를 한 번 준다는 말에 번뜩 고개를 들었다.
“저, 정말로? 좋아!! 반드시 짝수를 내주겠어!! 마지막 원찬스, 나기가 멋지게 잡아보일테니까!!”
주사위 어플을 보여주며 하는 제안은 실로 달콤한 것이었다. 하지 않아도 어차피 먹어야 하는 매운맛… 그렇다면 차라리 기회를 잡는 것이 좋지 않을까? 사실 남은 하나를 먹지 않고 그냥 소원만 들어주겠다고 제안을 해도 나쁘지 않겠지만 순박한 건지 이 엄청난 상황에서 당황한 건지 나기의 머리속에서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눈 앞에 놓인 또 한 번의 기회에 매달리겠다는 생각뿐. 이래서 도박이 무서운 것이다. 혼자 이겨내기 힘든 도박의 늪, 도박문제관리센터에서 도와드립니다. 도박문제 전문 상담은 국번없이 1336. 아아, 어째서인지 공익광고가, 그것도 옆나라의 것이 머리 속을 잠시 스쳐지나간다.
“…좋아, 갑니다!!”
유키의 핸드폰, 거기에 표시된 주사위 어플을 향해 뻗은 손으로 주사위를 굴린다. 그렇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후…후후후… 아하하핫☆ 보셨나요! 이것이 바로 나기의 전력!! 나기가 진심으로 나오면 이 정도 운은 당연히 따라주는 거라구요☆”
마지막 기회를 잡으려고 번뜩이는 눈으로 고개를 들던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운도 실력이니까! 결국 나기가 굉장한 거 맞는거지☆ 우쭐한 표정으로 유키가 타코야키를 먹는 것을 그야말로 여유롭게, 승자의 여유를 가지고 구경한다. 아하핫☆ 아사기리 씨 엄청 웃긴 얼굴!! 엄청 떨고 있어!! 대단해!! 대체 뭘 넣은거야 가게 녀석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들바들 떠는 유키를 보며 나기는 아하하☆하고 웃고 있었다. 그야말로 팝콘각이었다.
“아하하하! 진짜 매운맛이었네요! 먹었으면 큰일날 뻔했다☆ 입은 괜찮아요? 부은 것 같은데요?”
생긋생긋…보다는 히죽히죽에 가까운 느낌으로 웃으면서 탄산을 받아들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탄산음료를 챙겨주다니, 아사기리 씨 대단하네. 연상의 여유라는 건가. 어쨌든 받은 건 감사히 먹겠습니다.
대체 뭐지? 뭐가 들어있던 거지? 아, 봉투가 빨간 색이었던건 그걸 암시하는 거였나?! 유키의 설명을 듣던 나기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다행이다. 짝수가 나와서. 저런 건 절대로 먹고 싶지 않아…! 먹었다면 분명 울고 땀나고 하면서 귀엽지 않은 모습이 한가득 나왔을 테니까. 얼마나 매우면 아직도 저렇게 발음도 덜 돌아오고, 입을 계속 식히려고 하는 걸까… 궁금하지만 절대 먹고싶지 않다. 아마 앞으로 살면서 만나고 싶지 않은 그런 매움이겠지…
“아, 나기는 괜찮아요☆ 반에서 파는 거라 맛보기라는 명목으로 엄청나게 집어먹었으니까요☆”
처음에야 자의로 먹었던 거지만 나중에 맛보기라고 계속 먹게 되면 그건 좀 힘들어져서… 앞으로 한 달 정도는 야키소바 필요없어…같은 상태니까. 생긋 웃으면서, 하지만 약간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야키소바, 지금은 조금 식었을 테니까 매운 걸 먹은 직후의 입안을 달래기엔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참, 소원은 아껴놨다가 나중에 말해도 돼요? 당장은 떠오르는게 없어서. 오늘은 아사기리 씨가 매운 걸 먹은 모습을 본 걸로 충분히 만족이기도 하니까요☆”
괜찮다고 하는데 굳이 억지로 먹게 할 순 없었다. 그렇기에 소년은 더 이상 권하지 않고 젓가락을 이용해 면을 떠서 입에 담았다. 방금 전 먹었던 붉은 용암이 떠오르는 야키소바와는 비교도 안되게 부드럽고 맛있는 소스 맛이 일품이라고 생각하며 소년은 괜히 뭐가 들어갔는지 맞춰보려 했지만 만화도 아니고, 하물며 일류 요리사도 아니었기에 바로 포기하며 그 맛을 느꼈다.
"단백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정말 좋은 것 같아. 조금 아쉬운 면도 있지만 이 정도면 많이 팔릴 것 같은데? 아. 이것도 SNS로 올려야겠다."
이어 소년은 핸드폰을 꺼낸 후에 타코야키가 있었던 봉투와 지금 자신이 먹고 있는 야키소바가 들어있는 곽이 잘 살도록 사진을 찍은 후에 바로 업로드했다. #러시안_타코야키 #매운맛 #용암 #부드러움 등등의 해시태그를 단 후에 올린 후, 소년은 바로 핸드폰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물론 괜찮아. 그대로 잊어버리고 내가 돌아갈때까지 아무런 말도 안해도 오케이야. 물론 미쿠모 양은 그러진 않을 것 같지만 말이지. 아무튼 시간이 빠르긴 빠르네. 이대로 쭉 가면 여름방학도 끝나고 다시 돌아가게 되려나."
물론 아직 돌아가려면 시간이 좀 더 남긴 했지만 그 시간조차도 어느 순간 훅훅 지나갈 것을 생각하니 소년은 괜히 아쉬운 표정을 짓지만 곧 마저 야키소바를 먹고 내용물을 비운 후에 웃으면서 곽을 닫았다.
“은근슬쩍 마지막 날까지 아무 소원도 안 빌기를 바라는 건가요? 유감이지만 그럴 일은 없을거라구요! 아마도!”
은근슬쩍 피해가려는 것 같지만 히히 못 가! 그 와중에 부지런히 사진을 찍는 모습에 새삼 감탄했다. 정말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구나. 하긴, 나기에게는 그냥 평범한 일상이지만 여행객에겐 신선한 이벤트라는 느낌이겠지. 돌아가기 전까지 추억을 사진으로 남기는 건 여행을 온 사람들에겐 자주 있는 일이니까.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빠르다는 말에 대한 대답이었다.
“방학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니까요☆ 너무 빨리 끝나는 건 싫지만… 그렇다고 계속 여름방학인 것도 별로… 쭉 여름이면 너무 덥잖아요? 끈적거리고, 습하고.”
여름방학만, 여름만 계속된다니. 그건 너무 싫어! 이 덥고 습한 날씨가 계속된다면 아마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야키소바를 다 먹은 것을 확인하고, 슬슬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다음은 귀신의 집인가?
“음~ 딱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네요. 귀신은 별로 귀엽지 않으니까… 아, 그치만 이번 귀신의 집은 별로 안 무서워할 자신이 있다구요☆ 준비하면서 왔다갔다하면서 자주 봤으니까, 이제 익숙해졌다고 할까?”
제대로 된, 유명한 놀이공원의 귀신의 집은… 완전 무리…지만… 학교 축제에서 하는 귀신의 집, 그것도 준비하면서 왔다갔다하며 슬쩍슬쩍 보거나, 분장한 학생들이 돌아다니는 걸 미리 본 입장에서는 괜찮지 않을까? 괜찮을 것 같아! 그런 생각으로 호언장담하며 가슴을 폈다. …미리 말해두지만 전혀 근거없는 자신감이다.
“귀신의 집… 이쪽으로 가서 2층으로 올라가면 돼요! 자, 가죠!”
그리고는 또 다시 앞장서서 안내했다. 2층 복도 끝에 위치한 교실. 이미 복도에서부터 오싹한 느낌이 들게 꾸며둔 모양이다. 군데군데 불이 꺼진 형광등과 창문에 붙은… 붉은 색으로 뭔가를 빼곡히 적고 칠해둔 신문지로 한낮이지만 어두컴컴한, 그야말로 폐교(…)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으아아... 슬슬 애옹이 수발과 저녁 준비를 해야하는 시간...! 여기서 킵해도 될까 유키주? 그리구 내가 내일은 약속때문에 나가야해서 아마 못 들어올 것 같아... ;ㅅ;
"하기사 치바도 여름엔 엄청 더우니까. 열섬 현상이라고 했던가? 그것 때문에 엄청나게 덥거든. 여기는 그나마 조금 시원한 것 같아. 아. 물론 조금 습한 것은 있긴 하지만 그건 바다가 근처라서 어쩔 수 없나."
과학적인 이론으로 설명을 하기엔 소년이 그렇게까지 이과 감성이 아니었기에 자세하게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도시보다는 조금 덜 더운 것 같은 것은 사실이었기에 괜히 신기하다고 느끼며 소년은 주변을 잠시 둘러보았다. 치바에서 보이는 거대한 건물은 보이지 않고 그렇게 소란스러운 분위기도 아니었다. 이런 풍경을 계속 보고 살면 확실히 그녀처럼 도시를 동경할 수도 있겠다고 소년은 괜히 생각했다.
"좋아. 그럼 가보자! 미쿠모 양이 놀라지 않으면 내가 놀라게 될까? 그래도 안 놀라도록 노력해야겠어."
자리에서 일어선 후에 소년은 그녀의 뒤를 뒤따랐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2층으로 향한 후에 복도 끝까지 가자 확실히 분위기가 있어보이는 귀신의 집이 있었다. 전문 스태프가 있는 것은 아닐테고 그래봐야 학생들이 분장한 것일테니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며 소년은 태연하게 안으로 들어서려고 했다.
"그래도 무서우면 얼마든지 뒤에 숨어도 괜찮아. 의외로 준비하는 과정과 완성품은 다를 때가 많거든."
안으로 들어서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눈에 들어왔고 소년은 꽤 흥미롭게 느끼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뭔가가 나오는 것 같진 않았지만 그런 분위기였기에 소년은 괜히 장난끼가 스물스물 올라와 능글맞게 웃으면서 그녀에게 얘기했다.
"그러고 보니 이런 귀신의 집은 가끔 진짜 귀신들이 자신들의 친구가 사는 곳인 줄 알고 찾아올 때도 있다나봐. 이를테면 아무 것도 없어야 하는 곳에서 갑자기 등을 톡톡 치는 진짜 귀신이라던가 말이야. 뒤에 아무도 없어야 하는데 인기척이 느껴지고 뒤돌아보면 왁!!"
이어 소년은 일부러 소리를 크게 내면서 그녀를 홱 돌아봤다. 과연 그녀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고 느끼면서 그는 괜히 키득거렸다.
생각보다 태연한 모습으로 들어가는 유키를 보고 잠시 멈칫했다. 엣… 지금 복도부터 분위기 장난 아닌데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어째서? 도시 사람이라서?(근거 없습니다)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봤었지만 막상 완성품을 보고 나니 은근히 오싹하다고 할까… 아니 겁나는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굉장하다고 할까? 아무튼 약간 그, 거시기한 기분인데 왜 저쪽은 아무렇지도 않은 거지? 하지만… 질 수 없다(?). 얼마든지 뒤에 숨어도 좋다고 여유부리는 유키에게 질 수는 없었다. 이쪽도 최선을 다해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지만…
“그, 그, 그렇네요☆ 그치만 괜찮다구요?! 이런 건 어둡기만 하고, 나, 나기는 아무렇지도 않거든요?”
아뇨. 사실 아무렇지도 않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 어둠이잖아? 자연스럽게 멈추려고 하는 발을 어떻게든 떼어놓으면서 들어서지만, 걸음이 느려진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이, 이런 분위기에서 그런 분장을 한 학생들이 튀어나온다고? 하지만 분장 전의 모습과 분장 후의 모습까지 봤으니, 그 점은 문제없을지도! 누가 누구인지 다 아니까 괜찮아!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연신 두리번거리다가 들려온 유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실 기울이고 싶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어둠인 지금 청각이 예민해져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게 된 것에 가깝지만.
“아, 아니이… 그럴 리가 없잖아요… 진짜 귀신이라니, 그런 건, 익, 지, 지금 나기가 제일 뒤잖아요! 그런 말을 하면 꼭 뒤에—”
아니 맨 뒤가 지금 자신인데 그런 말을 하면 꼭 뒤에 있을 것 같지 않은가! 그렇게 항의하려고 하던 나기였지만 그 항의는 큰 소리와 함께 돌아보는 유키의 행동에 쏙 들어가버렸다. 그 뿐인가. 정말로 뒤에서 등을 쿡 찌르는 듯한 느낌에 쏙 들어간 항의 대신 비명이 튀어나와버렸다.
“—으아아아아아아?! 뒤에! 뒤!!! 악!!! 으아아아아!!!”
비명과 함께 몸이 반사적으로 움츠러들어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마음같아선 뒤돌아서 뛰쳐나가거나, 단숨에 앞으로 뛰어나가고 싶었지만 불행하게도 다리가 풀려버린 것 같았다. 아아, 뭐야 이거. 싫어. 귀엽지 않아…
/귀가! 그리고 답레를 올리고... 흐물흐물해지러 가볼게에... 유키주도 좋은 주말 보냈길 :)
제 자리에 풀쑥 주저앉는 그녀의 모습에 소년은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지만 웃음소리는 조금도 없애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우습다는 듯이 키득키득 소리를 내면서 그녀를 향해 손을 살며시 내밀었다. 잡고 일어서라는 나름대로의 행동이었다. 웃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미안한 감정은 사실이었다. 설마 저렇게까지 놀랄 줄은 몰랐기에 소년은 다시 한 번 사과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놀랄 줄은 몰랐어. 정말 미안해. 괜찮아. 괜찮아. 그냥 꾸며낸 이야기니까. 애초에 진짜 귀신이 있을리 없잖아?"
물론 신을 모시는 신사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귀신을 믿는 것은 또 별개였다. 애초에 귀신과 신은 다른 존재였기에 소년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주변을 가만히 둘러보았다. 이대로 조금 더 앞으로 걸어가면 슬슬 뭐가 튀어나올 것 같긴 했지만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까진 예상할 수 없었다.
"힘들면 잠깐만 쉬었다가 갈까? 어차피 우리 뒤로 따라 들어오는 사람들도 없는 것 같으니까. 아마 내 생각이지만 여기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뭔가가 훅 하고 튀어나올걸? 아니면 BGM이 재생되거나."
아마 전자가 아닐까 생각을 하며 소년은 우선 그녀가 진정하는 것을 기다렸다. 이대로 앞으로 걸어가게 되면 자연히 떨어지게 될테고 그렇게 되면 정말로 원망의 목소리를 들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하루 수고 많았어! 나기주! 나는 그냥 푹 쉬는 하루였어! 나기주도 남은 시간 잘 쉬게나!
미안하다는 말과는 달리 웃음소리가 가득합니다만…? 그 와중에 눈 앞에 내밀어진 손에 흠칫 놀라버렸다. 으, 어쩔 수 없잖아! 나기는 지금 엄청 무서웠으니까!! 아무런 분장도 없는 손이라는 걸 확인하고 잡고 일어선 후 투덜대듯 말을 이었다. 다만 목소리가 떨리는 건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아, 아사기리 씨 때문에!! 진짜로 누가 등을 찔렀다구요! 그런 얘기를 하니까!! 그야 당연히 귀신은 없겠지만요?! 없는 게 당연하겠지만요?! 그치만!”
괜히 그런 얘기를 꺼낸 쪽을 탓하다가 조금 더 걸어가면 뭔가 훅 튀어나올 것 같다는 말에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아, 아니. 그치만 쉬었다가 간다고? 이 어둠 속에서? 뭐가 나올지 모르는 어둠 속에서? 또 등을 찔리면 진짜 진심으로 심장 바로 멈춰버릴 자신이 있는데? 잡고 일어섰던, 지금은 놓아버린지 오래인 손을 다시 찾으려는듯 허공을 더듬었다.
“그, 근데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여기서 쉬면, 무, 무섭… 아니, 뭔가 나올 것 같지 않아요…? 여기는 그, 한 번에 팍 튀어나가는 쪽이 나, 낫지, 낫지 않을까요? 빨리… 빨리 나가자구요…”
누가 등을 찔렀다는 그 말에 소년은 가만히 뒤쪽을 바라봤다. 하지만 어두컴컴한 어둠 속에서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괜히 의아한 표정을 짓던 소년은 살며시 더 깊게 뒤쪽을 바라보려다가 긴장한 듯한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괜히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냥 무섭다고 해도 상관없어. 무섭다고 느끼는게 나쁜 것도 아니잖아? 그럼 미쿠모 양이 무섭다고 하니 튀어나가볼까? 하지만 조심해. 어두컴컴하니까 괜히 부딪치면 다칠 수도 있잖아? 일단 내가 앞장서서 갈테니까 잘 따라와."
일단은 교실 안이니까 어쩌면 책상이나 서랍장, 혹은 창틀 같은 장애물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며 소년은 조금은 조심스럽게 앞으로 향했다. 당연하지만 실제로 뛰어가거나 하진 않았다. 누군가와 충돌했다가 다치면 즐거운 축제 분위기가 망가질지도 모르고 아주 약간은 이 분위기를 조금 더 즐기고 싶은 장난끼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미쿠모 양. 전에도 말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 항상 일기를 쓰고 자거든. 지금 이 일은 쓰지 않는게 미쿠모 양에게는 마음이 편할까?"
괜히 짓궂게 웃는 웃음소리를 내면서 장난을 치는 소년은 아직 여유가 넘쳐보였다. 허나 갑자기 움찔하며 소년은 발걸음을 멈췄고 힉! 하는 소리를 내면서 오른발을 들어올리려고 애썼다.
"누, 누가 다리를 잡은 것 같은데? 뭐, 뭐야. 이거? 갑자기 이렇게 하기 있어?!"
/나도 답레를 올리면서 갱신이야! 나기주 엄청 바빴구나. 나도 이것저것 한다고 엄청 바쁜 하루였던 것 같아서 공감되네.
이렇게 어두운데 그냥 본다고 보일리가 없잖아요! 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이미 오늘은 꼴사나운 모습을 많이 보였다. 또 뭔가가 나오기 전에 그냥 빠르게 나가고 싶었다. 그래. 따지더라도 일단 이 장소를 벗어나서! 쓸데없이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일단은 저 장난스러운 웃음도 오늘 일은 일기에 쓰지 않는게 좋겠냐는 짓궂은 소리도 꾹 참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서두르던 발걸음은 앞 사람이 멈춰선 탓에 막혀버리고 말았다.
“힉! 뭐, 뭐야뭐야?! 무슨 일?! 다리? 다리?! 다리 가져갔어!?”
앞에서 힉!하는 소리가 나오기 무섭게 나기의 입에서도 똑같이 히익!하는 소리가 나왔다. 그 뿐이랴, 또 뭔가 나왔다는 생각에 공포에 질려 말이 마구 튀어나와 어쩌다보니 유키의 다리 한 짝이 뺏겼다는 식의 결론까지 내버렸다. 아마 이곳의 조명이 밝았다면 새하얗게 질린 얼굴이 아주 잘 보였으리라.
“으으으… 기분 탓 아니라구요오오오… 내가, 나도, 나 등도 찔렸단 말이야아아아….”
반쯤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따진다기보단 하소연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이 엄청나게 무서우니까. 대체 누구야, 이런 본격적인 귀신의 집을 만든게!!
/역시 평일은 자비없구나... 그리고 유키주 뒤꿈치... ;ㅁ; 어서 밴드.. 밴드를 붙여...!
다리를 가져갔다는 말에 소년은 크게 당황하며 무슨 소릴 하냐는 듯이 목소리를 살짝 높였다. 물론 화를 내는 것은 아니었고 상당히 당황한 어투였다. 그러다가 괜히 정말로 자신의 다리를 뺏긴 것이 아닌가 싶어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지만 붙잡고 있는 것만 느껴질 뿐, 다리가 온전히 붙어있는 것을 느끼며 소년은 괜히 안도를 내쉬었지만 곧 울음이 섞인 목소리에 소년은 당황하며 힘을 주며 자신의 다리를 잡은 손아귀에서 다리를 떼어냈다.
"아, 알았어! 어쩌면 정말로 연기를 잘하는 귀신일지도 모르겠네. 좋아. 그럼 빨리 나가자."
지금 이 상태에서 귀신으로 분장한 다른 학생들이 오지 못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소년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양팔을 활짝 옆으로 벌렸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붕붕 팔을 돌리면서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면서 앞으로 걸어나갔다.
다리는 안 뺏겼구나! 다행이다!라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지금은 여길 빨리 나가고 싶다는 생각과, 움직이기 무섭다는 생각만이 들고 있었으니까. 나가고 싶어! 그런데 움직이기엔 너무 무서워! 그야말로 진퇴양난 그 자체다. 괜히 들어왔다. 괜히 아사기리 씨가 놀라는 모습을 보겠다고, 그런 나쁜 마음을 먹고 귀신의 집을 소개해서 이런 꼴이 된 거야. 천벌을 받은 건가! 그냥 약간의 장난기였을 뿐인데 너무 과한 벌이 아닌가요 신이시여!! 참회인지 투덜거림인지 모를 것을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다 보니 어느 새 앞서가던 유키가 뭘 하고 있는지 바람이 붕붕 불어오고 있었다. 뭐지?! 풍차돌리기?!(아니다)
“으, 으으으!! 빨리! 빨리…”
앞으로 나아가는데도 아무 일도 없잖아? 아사기리 씨가 뭔가 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스탭들이 우리를 가엽게 여겨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가. …아마 후자겠지? 놀이공원과 다르게 이곳은 100% 분장한 학생들이 나와서 놀래키는 구조니까. 응, 밖에 나가면 좀 부끄럽긴 하겠지만, 여기에 계속 있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응!!
그리고 이곳에서 계속 지내는 자신과 다르게, 아사기리 씨는 여행객. 즉, 부끄러운 짓을 해도 어차피 떠날 사람이니 나보다 타격이 적어! 그러니 여기서는 아사기리 씨에게 맡기면 되겠지!!
그런 얍삽한 생각도 하며, 아니, 거의 그 생각만 하면서 나기는 하염없이 유키의 뒤를 따라 걸었다. 원래라면 놀라고 진이 빠지느라 길게 느껴지도록 설계된 길을 유키 덕분에 상당히 빠르게 클리어 할 수 있었다. 두 사람 앞으로 출구 표지판과, 가림막 너머로 살랑거리는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빨리 나가자는 듯이 재촉하는 그녀의 말에 소년은 일단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팔을 붕붕 돌리고 있었기에 다른 귀신 분장을 한 이들이 다가오진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귀신의 집이라고 해도 팔에 맞고 싶진 않을테니 결국 마지막 출구까지 둘의 안전은 확실하게 보장되었고 빛이 보이자 소년은 팔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부러 상쾌한 미소를 비치면서 뒤돌아 그녀를 바라봤다.
"와. 의외로 귀신들이 안 보였던 것 같아. 신기하지 않아?"
물론 어째서 나오지 않았는진 소년도 짐작가는 것이 있었지만 그것을 굳이 말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소년 역시 방금 자신의 행동이 부끄럽다고 여긴 것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일기에 기록되겠지만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 것이었다. 그렇기에 소년은 일부러 정말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미쿠모 양이 많이 무서워해서 그런가? 아무튼 괜찮아? 미쿠모 양? 무서운 것이 그렇게 싫으면 여기에 올 필요는 없었는데."
괜히 자신 때문인 것 같아 미안하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말을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가 한가지를 떠올리며서 그녀에게 제안했다.
"달콤한 거라도 하나 사줄게. 혹시 안에서 나 때문에 놀란 것 때문에 화났다면 화 풀어주면 안될까?"
/월급루팡이라니! 물로 나도 자주 시도는 하니까 (안됩니다) 할 말은 없다. 그래도 오늘은 통증이 많이 가라앉았어. 밴드 붙이니까 확실히 낫긴 해. 무리 안가게 하면 며칠 있으면 낫겠지! 어제는 운동화 신고 걷기도 힘들더니 오늘은 그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회복된다는 이야기일테니 돈 워리다!
헉 어제 그냥 자버렸다... 미안 유키주...ㅠㅠㅠ 오늘 내일은 좀 정신없을 것 같아서 어제 열심히 하려고 했건만...꺼흐흑 내 체력이 말을 안 들어... 아무튼 그... 나는 오늘하구 내일은 좀 바빠서 잘 못얼 갓 같아...이것도 잠깐 짬내서 들어온거구ㅠㅠ 대신 토요일에는 거의 하루종일 있을 수 있으니까 주말까지 조금만 기다려주라..ㅠㅠ미안해...
진정하라는 말이 들려 일단은 심호흡을 시도해봤지만… 사실 그렇게 진정이 되진 않았다. 적어도 이 장소를 벗어나지 않는 한 진정은 되지 않을 것 같아! 하지만 소리지르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것보다는 조용히 따라가는게 더 빨리 나갈 수 있는 길이 아닐까. 뭘 하고 있는진 몰라도 아무튼 뭔가를 하며 나아가고 있는 유키의 뒤를 따라 조용히, 하지만 결코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속도를 내며 걸어갔다. 그리고 보게 된 것이다. 저 멀리서부터 새어들어오는 빛을. 살았다. 감사합니다 신님. 나중에 새전 넣으러 갈게요!!
“그, 그러게요…? 분장하고 있던 학생들이 제법 많았던 것 같은데…”
오며가며 마주친 것만 한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았는데, 그 많은 학생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설마 진짜로 귀신의 집이라 학생들은 미지의 귀신이나 요괴에게 잡아먹혔다던가… 그런 어이없는 생각을 할 정도로 이번 귀신의 집은 무서웠다. …물론 아무도 등장하지 않은 것은 유키가 혼신의 붕붕붕(…)을 해줬기 때문이었지만 나기는 모르고 있었다.
“으윽, 그, 그치만 아사기리 씨가 그런 얘기를 하니까…! …으, 아니… 그런 얘기를 안 했어도 무서웠을 것 같긴 하네요… 그치만 이제 나왔으니까, 만사 오케이☆인거네요!”
앗, 잠깐. 말하자마자 바로 그렇게… 화가 난 건 아니지만 달콤한 걸 사준다니! 화가 난 척이라도 하고 있을 걸! 약간 후회했지만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대로 받아먹기엔 역시 양심이 찔렸다. 그게, 시작부터 저쪽의 놀란 얼굴같은걸 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한 것이었으니… 오히려 내 쪽에서 사줘야 하는 거 아닌지.
“화나지 않았다구요☆ 물론 저 안에서는 무서우니까 말이 막 나왔지만, 그, 오히려 제가 아사기리 씨한테 사줘야 할 것 같고… 그러니까 그냥 서로한테 사주는 걸로 할래요? 달콤한 거라면 저쪽에 크레이프 가게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 몸 부활!! 주말!! 행복!! 오랜만에 와서 답레 올려둘게~ 편한 시간에 언제든 달라구~
"다음에는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 다음에도 나랑 이렇게 논다면 말이야. 나는 나름 재밌긴 했는데 상대가 재밌지 않으면 아무래도 좀 그렇잖아? 괜히 후회하게 되거든. 난 그런건 별로 안 좋아해서. 미쿠모 양은 미쿠모 양대로 힘들고 나는 나대로 즐겁지 않잖아? 기왕이면 둘 다 즐겁게 있는게 후회도 안되고 추억으로 떠올리기도 좋잖아?"
물론 방금 전 상황이 그렇게 후회될만한 상황이라고는 소년도 생각하지 않았다. 허나 혹시 모를 일이었기에 소년은 일부러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장난스럽고 익살스럽게 키득키득 웃었다. 이것도 나중에 일기장에 써야겠다고 생각을 하나 그녀의 명예를 위해 놀란 부분은 빼야겠다고 소년은 다짐하며 쓸 내용을 정리했다.
"오늘은 일기에 쓸 내용이 많겠어.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정말로 화 안 났어? 그럼 다행이야! 응? 나에게? 나에게 사줘야 할 이유가 있어? 잘 모르겠지만 사준다면 거절하진 않을게. 알았어! 그럼 크레이프 두 개 먹자!"
잘 모르겠지만 상대가 그렇게 말을 하니 소년은 태연하고 가볍게 받아들이기로 하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말대로 크레이프 가게가 곧 나왔고 소년은 가만히 고민을 하다가 미소지어 이야기했다.
"난 딸기. 미쿠모 양은?"
말을 마치며 소년은 지갑을 꺼낸 후에 그녀가 바라는 맛을 주문할 준비를 마쳤다. 오랜만에 보는 크레이프라서 그런 것인지 소년은 저도 모르게 슬쩍 침을 꿀꺽 삼켰다.
“엣, 그런 건 아닌데… 애초에 이렇게 본격적인 귀신의 집이라고는 생각 못했고… 아, 아무튼 내년부터는 귀신의 집은 안 갈 거라구요! 응! 그리고 이유라고 할지… 에이☆ 아무튼 가자구요! 자자!”
무리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굳이 표현하자면 상대가 놀라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그랬다가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꼴이니… 화를 내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크레이프를 대접받기에도 양심이 아픈 상황이니까. 어쨌든 서로에게 사주자!라는 말이 잘 먹힌 모양이다! 그제야 속으로 안심하며 크레이프 가게로 향했다.
“딸기 말이죠? 그럼 저는… 바나나로 할게요☆”
가격을 확인하고-축제 음식이라 그리 비싸진 않았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 유키에게 건네려 내밀었다. 음, 그나저나 아사기리 씨, 은근히 기대하는 얼굴인데? 왜지? 도시에서는 더 흔한 음식 아닌가? 적어도 이런 시골보다는 더 자주 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사기리 씨, 엄청 기대하는 얼굴 같네요☆ 치바에서는 더 흔한 음식 아닌가요? 크레이프?”
/유키주 안녕~ 으앗 벌써 1시가 넘어버렸네! 점심은 맛있게 먹었어? 나는 이제 먹어야하지만 귀찮아서 미루게 되는구만... 푹 쉬는 날이니까 누가 밥도 떠먹여주면 좋겠다... 푹 쉬게...(?
그녀의 주문을 들으며 소년은 크레이프를 파는 이에게 방금 받은 돈까지 합쳐 내밀고 딸기 하나와 바나나 하나를 주문했다. 조금 서투른 것 같지만 그래도 꽤 열심히 노력한 것으로 보이는 손놀림을 바라보며 소년은 눈동자를 빠르게 굴렸다. 그러다 들려오는 물음에 소년은 눈동자를 옆으로 굴려 바로 옆에 있는 그녀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응? 당연히 기대하지. 사실 되게 오랜만에 먹는 것이기도 하고 이런 곳에서 먹는 곳은 또 별미잖아? 축제에서 파는 것은 뭔가 다른 것보다 맛있을 것 같고 그렇지 않아? 물론 치바에서 흔하게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일 먹고 그러진 않거든. 그러니까 여기서 흔한 음식이라고 해서 미쿠모 양이 굳이 막 자주 엄청 사먹고 그러진 않을 거 아냐? 그거와 똑같아."
물론 그녀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소년은 자신은 그렇게 많이 사먹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리려고 했다. 물론 그게 그녀에게 전달되었을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곧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크레이프 두 개가 주어졌고 소년은 크레이프를 받은 후 그녀의 몫을 그녀에게 넘겼다.
"그렇다면 먹어볼까? 아무튼 어제도 느낀 거지만 축제, 되게 활기차구나. 솔직히 분위기만 보면 우리 모교와 그리 차이도 없는 것 같아. 그러니까 괜히 보여주고싶은걸. 내가 다니는 학교의 축제 말이야. 난 작년에 카페를 했었어. 정말 열심히 음료와 간식을 전달했던 것 같아."
팔이 너무 아팠다는 듯이 소년은 괜히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왼팔에 힘이 축 빠진 듯이 덜렁거리는 시늉을 하다가 다시 팔에 힘을 주면서 제대로 크레이프를 두 손으로 잡고 한 입 베어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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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나왔더라! 나도 우연히 유튜브 보다가 광고 본거긴 한데 그냥 정말로 딱 톰과 제리였어. ㅋㅋㅋㅋ 재밌더라. 물론 막 개연성 넘치고 스케일이 크고 어마어마한 영화 좋아하면 재미없을지두. 진짜 그냥 어릴 때 보던 톰과 제리 그 느낌이라서! 앗. ㅋㅋㅋㅋㅋ 하지만 최약체라고 해도 원래 최애캐는 뽑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흐응~ 그런가요. 치바는 모르겠지만 아와나미에서 흔한 음식이라면 말린 생선 정도니까, 매일 저녁 밥상에 올라오긴 하죠☆”
농담이지만요☆ 하고 덧붙이긴 했지만 반 정도만 농담이었다. 음, 뭐. 아무튼 치바에서도 크레이프를 자주 먹진 않는다는 건가? 하긴, 이런 디저트를 매일 먹었다간 금방 살이 찔 테니까. 다이어트에는 신경써야지 응. 그리고 축제 음식이 별미라는 점은 공감이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평소보다 비싼 단가로 낮은 퀄리티의 음식을 사 먹는 거나 마찬가지지만, 축제 분위기로 들뜨면 신경 안 쓰게 되어버리고. 어쨌든, 유키가 전하려고 했던 것이 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어쩐지 알 것 같아 나기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관광객이 많이 오는 시기에 열리는 축제니까요. 이제 거의 반쯤은 마을 축제처럼 되었고, 그래서 더 그런 게 아닐까요? 윽, 도시 학교의 축제라니! 보고 싶다아☆ 카페라니! 그거 엄청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팔이 빠진 것처럼 덜렁이는 시늉을 하는 유키를 보고 웃다가 자연스럽게 크레이프를 먹었다. 음, 생크림과 바나나의 조합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니까. 마침 저쪽도 크레이프를 먹고는 축제에서 느낄 수 있다는 맛의 평을 내놓았다. 음… …음? 그건 칭찬일까?
“음~ 확실히 축제에서 먹을만한 맛…이네요☆ 언젠가 도쿄의 유명한 크레이프 가게에서 파는 것도 먹어보고 싶다☆ 분명 잊을 수 없는 맛이겠죠, 그거.”
/앗 요즘은 필사적인 느낌 아니어서 과금 잘 안한다2222... 뭔가 예전엔 지른다!하면 바로 질러버렸는데 요새는 지르고 싶지만 이것저것 생각하게 되니까... 생각하는 사이에 흥이 식어서 그냥 안 하게 되기도 하고 :3 이게 바로 어른이.. 되었다는 것인가...?(아니다
당시에는 고생한 기억뿐이라고 해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추억으로 남는다던가. 그리고 축제라면 고생만 한 건 아닐 테니 추억으로 확실히 남겠지. 고개를 끄덕이다가 도쿄 이야기에 잠시 멈췄다. 가고 싶은 곳에서 먹은 음식과, 평범한 곳에서 먹는 음식의 맛은 다르다… …분명 그렇겠지. 도쿄라. 가보고 싶다. 하지만 갈 수 없을 거야…
“……정말 가고 싶지만, 그렇네요☆ 아사기리 씨도 나기도 수험도 있고, 당장은 무리일거고… 갈 수 없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갈 수 있으면 좋겠네요. 간다면 정말 여기저기 다 다녀보고 싶다구요☆”
하지만 당장은 무리. 그리고… 앞으로도 무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조용히 삼키며 크레이프를 다시 한 입 먹었다. 뭐, 그래도 앞일은 모르는 거니까 언젠가는 가게 될지도 모르지. 한참 나중의 일이 되겠지만. 한 입, 두 입 먹다보니 크레이프는 금방 사라져버렸다. 음, 맛있었다.
“음~ 맛있었다☆ 타코야키에 크레이프까지 먹으니까 엄청 배부르네요☆ 아, 맛보기로 많이 먹었던 야키소바도 있었지 참. 이제 뭐할까요? 아사기리 씨, 뭔가 가보고 싶은 곳이나 하고 싶은 거 있나요?”
/맞아... 돈은 여유가 있어도 막상 과금에 쓰려니 애매하고 아깝고... 다른 데 쓰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때도 있고. 그렇군. 이게 어른이 된다는 것이군... 나는 아직 어른이라고 하기엔 철이 덜 들었지만 :3
갈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말에 소년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나 소년의 귀에 그녀의 말은 마치 자신은 앞으로도 도시에 갈 수 없다는 것처럼 들려왔다. 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었다. 하물며 다른 곳에 가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려운 일이겠는가. 적어도 소년은 그리 생각했다.
크레이프를 다 먹자 정말 배가 부른지 소년은 괜히 자신의 배를 손으로 통통 치면서 장난스럽게 웃었다. 이제 더는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불렀기에 아마 잠시동안은 축제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괜히 두 팔을 쭈욱 올려 기지개를 켠 후에 팔을 아래로 내렸다.
"적어도 먹을 것만 아니면 좋을 것 같아. 이 이상 먹으면 배탈이 날 것 같거든. 그래도 맛있어서 좋았어."
엄지손가락을 위로 척 올린 후, 소년은 잠시 생각을 하면서 어디로 가면 좋을지를 고민했다. 사실 어제 본 것도 있으니 어제 본 것들을 제외하고 새로 갈 곳이라면 어디가 있을까? 잠시 생각을 하다 소년은 그녀에게 물었다.
"캠프파이어. 여기서도 해? 만약 한다면 나중에 거기를 가보고 싶어."
/이미 나기주는 충분히 어른인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시점에서 충분히 어른인 것이야! 생각해보니 내가 다닌 학교의 축제는 항상 수수해서 대학교 축제밖에는 떠오르는게 없네. 물론 거기서도 주막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지만 아무래도 좋아.
“물론 하죠! 캠프파이어라면 축제 마지막 날에 해요☆ 아, 아무리 그래도 포크 댄스는 추지 않지만요.”
제법 크게 장작을 쌓아서 불을 붙이고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축제 동안 교내를 꾸몄던 시설물들의 일부를 겸사겸사 함께 처리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아무튼 캠프파이어가 보고 싶다는 건, 축제를 거의 다 즐겼다는 거겠지? 하긴, 먹을 것도 거의 다 먹었고, 즐길 것도… 오늘은 귀신의 집뿐이지만 아마 다른 날에 먼저 둘러본 것도 있을 거고. 슬슬 축제도 다 즐겼다는 거겠지. 음음.
“내일이었나…? 아마 저녁쯤 할텐데, 그럼 그때 보러 올까요? 장작에 불을 붙이는 것 뿐이지만, 불타고 있는 걸 보면 묘하게 빠져든단 말이죠 그거.”
장작과 이제는 쓰지 않을 장식들 몇 개를 태우는 것뿐인데, 멍하니 보게 되는 그런 게 있었다. 불길이 넘실대는 걸 보면 뭔가 그렇단 말이지. 보다 보면 정말로 축제의 마무리라는 느낌도 들고. 하지만 오늘은 아직 축제가 끝나지 않았으니까, 아마 내일 저녁쯤 할 것 같은데. 그때 다시 오자는 말을 꺼내며 유키를 바라봤다.
/대학 축제는 주막이 국룰 아닙니까...? 요새는 또 다른가...?(? 중학교 고등학교 축제는... 내가 다녔던 학교도 수수한 편이어서 딱히 추억이 없네 :3
자신도 그런 경험은 없다는 의미로 소년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냐는 듯이 태연하게 그렇게 얘기했다. 물론 어떤 곳에서는 추는 곳이 있을지도 모르나 자신의 학교에선 그런 경험이 없었다. 하지만 그 대신 다른 재밌는 추억거리는 있다는 듯이 소년은 웃으면서 그녀에게 얘기했다.
"포크 댄스는 춘 적이 없지만 몰래 고구마를 싸간 후에 그 안에 살짝 넣고 구워서 먹어본 적은 있어. 물론 아슬아슬하고 엄청 뜨거웠고 결국 걸려서 혼났지 뭐야. 하지만 이런 게 다 추억 아니겠어?"
바로 작년에 고구마를 구워먹다가 교사에게 걸려서 엄청 혼났던 것을 떠올리며 괜히 소년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매만지면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았다. 좋은 추억거리로 일기장에도 적혀있었기에.
"아무튼 내일 저녁에 하는구나. 좋아. 기억해둘게! 나야 같이 가면 좋긴 한데 미쿠모 양은 같이 보러 갈 약속 없어? 일단 같은 반 친구라거나, 여기에서 알고 지낸 친구라던가 말이야."
자신은 이곳 출신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온 이일 뿐이었고, 다른 이들보다 그녀를 알게 된 시간도 압도적으로 짧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다른 이와 약속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을 하나 생각해보면 캠프파이어를 굳이 약속해서 보는 것도 이상한가 생각을 하며 소년은 혼자서 팔짱을 낀 후에 생각을 하다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떴다.
"그럼 일단은 다른 곳도 조금 둘러볼까? 아무리 그래도 바로 헤어지는 건 좀 아쉽잖아? 저기에 있는 음악실에 가보자. 혹시 알아? 좋은 연주 들을 수 있을지."
/주막이 국룰이지! 진짜 어딜 가도 주막주막주막이었는걸! 가끔 다른 것도 있었긴 했었기 때문에 그런건 재밌었어. 역시 어딜 가나 중학교 고등학교는 수수하구나. 하긴 입시 시기때 축제는 즐기기 힘드니까. 아무튼 상황상 거의 막레 부분이려나? 아. 물론 더 이어도 상관없다!
“아하하☆ 역시 그렇죠? 아니이~ 가끔 여기 오는 여행객들 중에 포크 댄스는?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서요! 앗, 고구마라니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이번에 해볼까…”
그죠~ 영화나 만화 속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시골이라고 그런 걸(?) 기대하는 사람이 가끔 있다니까요~ 푸념하듯 말하다가 고구마 이야기에 눈을 번뜩(?)였다. 아니 그런 발상… 왜 난 한번도 못했지? 이번에 해봐야겠다. 그래, 스케일 크게 아예 호일 구이를 도전해볼까… 그런데 그게 혼날 짓인가? 잠시 생각에 빠졌지만 금새 이어진 질문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아~ 괜찮아요~ 다들 웬만큼 오래 지낸 사이라서, 캠프파이어도 한 두 번 같이 본 게 아니니까요. 지겹다고 그냥 집에 가는 애들도 많고, 그래서 따로 마지막 날 약속은 없어요☆”
그야 매년 마지막 캠프파이어를 보다보면 그냥 모닥불(…)정도로만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 아마 자신도 유키가 없었다면 그냥 집에 돌아가서 쉬지 않았을까. 아무튼 내일 함께 오는 것은 완전 오케이였다. 마침 들은 호일 구이를 시도해보고 싶어졌기도 하고.
“좋아요☆ 음악실이면 아마 피아노 연주가 있었던 것 같은데, 가볼까요☆”
고개를 끄덕이며 흔쾌히 승낙하고 음악실로 한 발 앞서 걸어갔다. 아마 피아노 연주를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좋은 곡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일은 캠프파이어인가... 고구마와 호일 구이 준비를 잊지 말아야지. 마음 속으로 메모 완료☆
/그럼 이걸로 일단 막레할까? 수고했어 유키주~ ㅋㅋㅋ역시 대학 축제는 주막이 국룰... 가끔 다른 것도 있지만 주막이 압도적으로 많았지 :3
나기주도 일상 수고했어! 이렇게 나기와의 약속은 회수가 되었으니 메데타시인것이야! 맞아. 주막이 진짜 많았어. 그래서 둘러보려고 해도 다 주막이라서 갈 곳도 없어서 그냥 바로 기숙사 돌아와서 자기도 하고 그랬어. 1학년 때 축제 기간때는 수업 없는 줄 알고 수업 다 빼먹었다가 나중에 아닌 줄 알고 허둥지둥했던 기억도 나네. ㅋㅋㅋㅋ 암튼 고구마는 내 친구의 경험담이야! 물론 시도했다가 무진장 혼나더라구.
수영부 지옥훈련에서 도망쳐서 아와나미로 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수영을 싫어하는 건 아니니까! 굳이 따지자면 수영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야! 40명 중에서 20명을 한다고 다갓님이 정해주기도 했는걸! 아무튼 나기도 한가하다면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구나. 앗. 카운터를 본다니. 그 타이밍을 노려서 기념품을 사러 가야한다는 이야기로군?!
나기주 포켓몬 시리즈 정말로 좋아하는구나.매번 예약구매를 할 정도면 말이야. 확실히 그래픽은 좀 많이 충격이긴 하더라. 물론 난 그래픽은 크게 신경을 안 쓰는 편이긴 한데 당연히 소드실드와 같은 그래픽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이게 뭐지 싶어서 내가 잘못 본 줄 알았어. ㅋㅋㅋㅋㅋ 젤다 꿈꾸는 섬 리메이크 떠오르더라. 평 보고 사는게 제일인 것 같아. 특히 애매한 경우에는 말야.
포켓몬 너무좋아!! 하지만 이번 그래픽은 좀 많이 아니야!! 젤다 꿈섬 리메이크 생각나긴하더라 확실히ㅋㅋㅋ 특히 그 호수 장면은... 아니 근데... 걷는 모션이나 캐릭터라던가... 꼭 그렇게 해야만한건가... 너무... 너무... 누가 굳건이 닮았다고 하던데 진짜 닮았어... 진짜 나도 몇번이나 내가 잘못본건가.. 이게 꿈인가...했다니까ㅋㅋㅋ하...아... 진짜...
굳건이. ㅋㅋㅋㅋㅋㅋㅋㅋ 아악! 진짜 닮았잖아! 어쩔거야! 나기주! 진짜 빛나라던가 그런 애들이 굳건이가 떠오르잖아! 아무튼 포켓몬 좋아한다면 이번건 좀 배신감 들 수도 있긴 하겠다. 리메이크보다는 HD화인 것 같던데. 내용까지 그대로라면 아마 아무도 안 사려고 하지 않을까 싶어지네
크크큭 나만 당할 순 없지... 유키주도 함께 굳건이의 저주에 빠지자구...(물귀신 4세대 리멬... 진짜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이런...이런걸... 하긴 리메이크보단 리마스터에 가까울지도... 오루알사랑 다르게 주인공들 디자인도 안바뀌고 그랬으니까. 내용추가도 없으먼 진짜 살 이유가 없을 것 같아. 그래픽도... 하... 차라리 도트가 낫다 이건 진짜...
역시 사람의 본능은 다 똑같은 것이다! 사실 나도 그런 적 많았어. 그리고 직후 비명소리와 함께 팔 붕붕이를 당할 뻔 했기에 빨리 빠져나왔었지만! 그리고 유키도 일상에서 잠깐 나오긴 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갑툭튀가 나오는 것엔 상당히 약해. 즉 좀비와 싸우는데 누가 다리를 잡거나 콕콕 찔러대면 비명을 지르면서 달려나가는 유키를 볼 수 있다!
안녕! 나기주! 나도 갱신할게! 저녁을 먹고 필름이 끊긴다는 것은 몸이 충분한 피로회복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나기주도 탕수육 먹었구나! 괜히 반갑네! 탕수육 맛있어! 다만 전에 엄청 맛있는 집에서 먹었는데 그게 너무 부드럽고 연하고 고기도 큼직해서 이번에 먹은 것이 상대적으로 맛이 없게 느껴지는 그런 부작용이 일어났어. 흑흑흑
유키주 헬로헬로~ 저녁먹고 눕는 버릇을 어떻게든 고쳐야겠어 :> 아고 그랬구나... 한번 맛있는거 먹으면 그러기 쉽지 응응 :3 나는 예전에 여행가서 진짜 맛있는 크로와상을 먹은 뒤로 동네에서 파는 크로와상을 못 먹는 몸이 되어버렸다구... 흑흑... 진짜 맛있었는데... 언제쯤 또 가서 먹어볼 수 있을런지...
나하고 비슷하구나. 나도 시골집 내려가다가 정말로 평 좋은 집이 운전하고 가는 길에 있어서 대체 얼마나 평이 좋길래 저런 말이 나오나 어머니가 궁금해하셔서 들렸거든. 짜장면과 탕수육으로 시켰다가 탕수육 맛이 그렇게 천상의 맛일 수 없었어. 튀김 안에 고기가 들어있는게 아니라 고기가 연하고 부드러운 튀김옷을 입고 나왔다는 느낌이고 소스도 와. 그 후로 다른 집 탕수육이 맛이 없게 느껴졌어. 안돼 (털썩) 아무튼 나기주가 있는 곳은 비가 오는구나. 하긴 오늘은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는 말도 들은 것 같아. 여긴 아직 안 오지만!
애옹이가 키보드 위에 앉았다 일어나니 어째선지 입력언어가 일어로 바뀌어있어서 한참 헤맸다...(흐릿 아무튼 그렇구나~ 나는 그.. 뭐라그러지 분명 개그만화였는데 극장판에서 이상하게 감동이나 스케일 큰 시나리오로 흘러가는거 별로 안 좋아해서(?) 오히려 그런게 없는 쪽이 좋다구 :3
넓적부리황새와 펠리컨이라. 넓적부리황새는 실제로도 본 적 있긴 한데 포스 장난 아니더라. 뭔가 저쪽에서 나에게 날아올 수 있으면 쪼기 공격을 무진장 놀릴 것 같았어. 유키는 원숭이류에 상당히 약해. 어릴때 장난치다가 원숭이에게 과자를 뺏긴 적도 있고 사납게 이빨 들이미는 모습을 본 적도 있어서 지금도 원숭이류는 되게 멀리 떨어져서 보고 그래.
글래스비치라고 해서 그게 뭐지? 하고 찾아봤다가 엄청난 것을 보고 말았다. 아무튼 그렇구나! 그렇다고 한다면 유키는 조개 껍데기 팔찌를 사갈 것 같네. 사진엽서도 조금 고민하다가 한 장 정도는 사갈지도 모르겠어! 아무튼 정말로 무난한 기념품이로구나! 의외로 사가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는걸?
역시 나기가 별 거 아니라고 하는 이유는 매번 보는 풍경이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어. 일단 유키는 되게 마음에 들어할 것 같네. 돌아가기 전에 나기가 자신의 집 주소를 알려줬다면 아마 유키가 꿈과 희망의 나라에서 파는 쥐돌이 인형을 하나 택배로 보내주지 않을까 싶어.
쥐돌이 인형을 얻기 위한 큰 그림인가?! (아님) 아무튼 생각해보면 정말로 본스레는 짧게 끝났구나라는 것이 확 느껴지네. 여름이라는 계절하에 정말 이것저것 소재는 많았는데 아쉽기도 해. 그러니까 나기 데리고 해수욕하는 유키를 보고 싶기도 하다! 물론 나기는 뭔가 느낌이 바다 안 들어갈 것 같지만!
"어떻게 하면 널 죽일 수 있어?" 미쿠모 나기: 엣☆ 그거 진심으로 묻는 건가요? 사이코패스인가요? 예비 살인범인가요? …질문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여러 방법이 있겠죠. 옥상에서 밀거나 바다에 가라앉히거나 전생☆트럭이 달려올 때 민다던가… 평범하게 사람이 죽을 만한 방법을 쓰면 되잖아요? 그런데 진짜 왜 물어보는 거죠? 전 아직은 죽기 싫은데☆
"특별히 싫어하는 맛은?" 미쿠모 나기: 신맛. 우메보시 같은 거 있잖아요? 먹으면 표정이 귀엽지 않게 된다구요. 그것도 스스로 조절할 수 없을 정도로 자동반사 레벨로!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하니까, 제일 싫어해요☆
"어떤 것을 가장 후회해?" 미쿠모 나기: …으응~ 글쎄요☆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770083
나기주가 귀엽게 생각하고 잘 돌보면 된거지. 원래 동물은 키우기 힘들다고 하잖아. 나도 옛날에 햄쥐 키운 적이 있는데 엄청 힘들더라구. 물론 그땐 어려서 아무것도 몰라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대체 내 손을 왜 그리 물어뜯는건지. 얼마나 피를 봤는지 몰라. 출근. 출근.(죽은 눈) 또 한 주 힘내자. 나기주.
손가락이 무사할 수 있는거야? (동공지진) 유키는 이미 혼자서도 수영을 마음껏 즐기고 있겠지만 다른 누군가와 바다를 가는 것도 상당히 좋아하지! 좋아 그러면 바다에서 피크닉이라도 하는 것이 어때? 꼭 수영이 아니더라도 모래찜질이라던가 그런 것도 있을 수 있으니까! 유키가 파라솔 깔아놓고 수박 가지고 와서 옆에 두고 쉬고 있을 때 나기가 근처를 지나가다가 볼 수도 있는거구!
사실 유키에게 있어서 아와나미는 처음 온 곳은 아니라서 그렇게 당황한 것이 많진 않아. 물론 처음 왔을 땐 (대충 초등학생 때) 당연히 최신 오락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없어서 급당황하고 온천으로 돌아가 보글보글하면서 불만을 표출한 적은 있어! 물론 그것도 다 일기장에 적혀있지!
나기가 반에서는 주로 어떻게 보내는지 매우 궁금한 것이다! 유키는 아무래도 방학 시즌 때 와서 나기가 반에서 어떤 느낌으로 있는지, 어떻게 친구들과 지내는진 잘 모르고 볼 수도 없을테니까! 축제 후에 둘이 같이 다니는 모습을 본 이후에 나기가 질문공세를 당하진 않았는지도 살짝 궁금하구!
반에서는 적당히 친구들도 있고~ 교우관계가 그리 나쁘진 않다는 설정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쭉 붙어다닌 친구도 있고! 바로 옆집사는 친구도 있고! 하지만 방학 때는 제각각 집안일 돕느라 학기중에 비해 자주 만나지 못한다는 슬픈 설정이 있지... 방금 만들었어(? 축제 때 유키랑 같이 다니는 걸 목격한 친구들이 질문공세를 하지 않았을리가 없죠 :> 물론 나기는 그냥 관광객 안내해준거라고 말하면서 그보다 귀신의 집 왜그렇게 무서웠냐고 하소연하면서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려버렸을 것 같은 느낌!
역시 작은 마을이라는 설정답게 어릴때부터 친하게 지낸 이들이 매우 많구나! 교우 관계가 좋다고 하니 나기는 인싸가 틀림없어! 방학 중에는 확실히 가업이 있으면 조금 힘들 수도 있겠네. 아무튼 질문공세를 당했다면 유키는 당분간 학생들을 피해다녀야겠는걸? 유키에게도 질문공세가 날아올게 분명해!
바닷가 근처에 자리한 숙박업소들은 지금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여름, 방학, 바다라는 삼박자에 맞춰 피서객이 몰려왔고, 작년처럼 올해도 많은 손님들이 찾고 머물고 있으니까. 물론 그건 나기네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정신없이 손님을 받고 안내하고 손님이 나간 방의 정리를 하고… 바쁜 부모님을 돕느라 나기도 바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바탕 손님이 나가고 오고를 반복하다 일단 오늘의 체크인은 모두 끝났다. 바쁜 것이 잠시 끝난 지금, 나기는 한숨 돌리기 위해 집을 나와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다. 바쁘게 일한 다음에는… 잠시 혼자 있고 싶은 때가 오는 법이다.
“…응? 앗! 아사기리 씨?”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을 쐬며 해변가를 걷다가, 시끌벅적하게 바다에서 노는 피서객을 찬찬히 보며 시선을 돌리던 그 때, 어쩐지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라? 온천 쪽에서 일하고 있을 줄 알았지만, 생각해보면 그도 일단은 관광객으로 온 사람이었다. 맞아, 그랬지. 그럼 바닷가를 보러 왔다고 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지. 혼자 그리 생각을 끝내고 천천히 다가가며 상대를 부른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얼굴- 아사기리 유키를 향해서.
“아핫☆ 여기서 만나다니 우연이네요☆ 아사기리 씨! 수영이라도 하러 오셨나요? 아니면 태닝?”
분명히 소년은 이곳에 일을 도와주러 내려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황금기인 방학을 온천 일로만 보내기엔 너무 아쉽다고 생각했는지 이전부터 오늘은 꼭 바다에서 놀고 싶다고 자신의 고모와 고모부에게 요청하여 하루 쉬는 날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당연히 바닷가에 왔으니 바다로 가야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생각을 하며 소년은 돗자리에 파라솔까지 구한 후에 해변가에 자리를 잡았다.
"좋아! 오늘은 마음껏 놀아볼까!"
비록 혼자뿐이라고는 하나, 분위기를 제대로 차리기 위해 소년이 가지고 온 짐은 꽤 여러가지 있었다. 가볍게 사용할 수 있는 불판에 버너, 그리고 고기 어느 정도.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수박 도시락까지. 원래는 수박을 한 통 가져오려고 했지만 꽤 무게가 무거울 것 같아 결국 잘라서 도시락처럼 만들어서 가져왔다는 사실은 외면하며 소년은 따뜻한 모래 위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태닝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왕 바다까지 왔으니 여름 햇살을 조금 즐기고 싶은 마음에 소년은 싱글벙글 웃으며 따스함을 즐겼다.
그러는 와중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에 소년은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난 곳을 바라봤고 곧 낯익은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소년은 웃으면서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안녕! 미쿠모 양! 정말로 우연인걸? 아.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바닷가에서 놀까 해서 왔어. 그래도 아와나미까지 왔는데 바다에 안 오면 좀 그렇잖아? 사실 어릴 적부터 여기에 오면 항상 바닷가는 꼭 들렸거든. 올해도 마찬가지고."
문뜩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며 소년은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지인 친구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근처에 있던 아이들과 놀았던 기억은 남아있었기에 괜히 그때를 떠올리다 소년은 가만히 자신의 옷을 털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짐이 이것저것 한가득 있는 걸 보니 정말 제대로 벼르고 온 건가 싶었다. 파라솔에 돗자리까지 있는 시점에서 이미 확정이지. 응. 고개를 끄덕이던 나기가 어릴 적부터라는 말에 고개를 살짝 기울였지만- 금새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하긴, 온천 일을 돕는 것도 친척집 일을 돕는 거였으니, 아와나미에 친척이 산다면 어릴 때부터 놀러 왔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가만히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어릴 적 추억이 꽤나 많은 모양이다.
“네 맞아요☆ 좀 전까지 엄청 바빴거든요~ 그래서 한 숨 돌릴 겸 나왔어요! 아사기리 씨도 아시죠? 손님이 엄청 왔다가 간 다음에는 뭔가… 도망쳐 나오고 싶잖아요…?”
밝게 말하다가 점점 죽은 눈이 되고 힘이 없어지는 것 같다면… 착각이 아니다. 오늘은 그야말로 손님이 몰아치는 날이었고, 부모님을 돕는 건지 중노동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 지경까지 갔다가 간신히 돌아온 것이다. 미적대다간 제대로 쉬지도 못할 것 같아 재빨리 나왔는데, 아무래도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아, 아무튼! 바닷가에서 노는 거면… 수영인가요? 수영하는 사람들도 꽤나 많네요~”
말 그대로, 지금 바다에는 사람이 그득했다. 피서객들이 신이 나서 바다에 뛰어드는 모습이 여기서도 잘 보일 정도로. 물 반, 사람 반인 상황에서도 즐겁게 물에 들어갈 수 있다면 딱히 상관은 없지만… 제대로 수영을 하고 싶다면 조금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사기리 씨가 꼭 수영을 하러 왔다는 보장은 아직 없지? 파라솔과 돗자리를 보면 그냥 쉬러 온 것 같기도 하고… 도시락도 저렇게 있으니 말이야. 그래서- 확정이 아니니 일단 떠보는 말을 던지며 바다 쪽을 바라봤다. 응, 역시 사람이 많다.
"그치? 우리 온천도 뭔가 요즘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그런지 꽤 바쁠때가 있거든. 슬슬 사람들이 찾아오는 시기야? 여기? 하기사 지금은 여름방학 시즌이니까! 그런데 미쿠모 양. 괜찮아?"
죽은 눈이 되어가고 힘이 없어지는 것 같은 그녀의 모습에 소년은 크게 당황하며 살며시 그녀의 눈 바로 앞에 손을 삭삭 흔들었다. 물론 그녀가 갑자기 정신을 잃었다거나, 혹은 의식을 잃는다거나 하는 상황은 없겠지만 그래도 자신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일단 소년은 그녀가 꽤 일에 시달리다가 여기로 나왔다는 것을 인지하며 살며시 돗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수영도 하고, 수박도 먹고, 가볍게 고기도 구워먹을까 해. 모래찜질을 해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네. 어때? 미쿠모 양도 쉬는 중이라면 여기서 쉬다가 갈래? 물론 일이 너무 바빠서 가야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야."
일단 혼자서 노는 것보다는 같이 노는 것이 좀 더 즐겁다고 생각하기에 소년은 그녀에게 같이 놀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누가 보면 여름에 현지인을 헌팅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상관없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그런 것을 두려워해서 여기서 누군가와 같이 놀 수 있을지도 모르는 기회를 저버린다면 분명히 후회할테니까. 거절당한다면 어쩔 수 없는거고, 받아들인다면 적어도 같이 놀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소년은 그녀의 답을 기다렸다.
"아. 지금 같이 논다면 수박을 잘라서 가지고 온 수박 도시락도 있어. 이렇게 먹으면 되게 맛있거든."
“예… 네… 괜찮아요… 지금은 쉬는 중이니까 괜찮아요… 내일도 일하겠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
중얼중얼, 죽은 눈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듯 대답하던 나기는 눈 바로 앞에서 흔들리는 손에 정신을 차렸다. 으윽, 아무리 일이 버겁다고는 해도 관광객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불찰이다. 조심해야지! 살짝 손을 들어서 볼을 가볍게 두드린다. 정신차리자.
“정말요? 그래도 되나요? 그럼 감사히! 아, 모래찜질 할 거면 제가 묻어드릴까요? 저 그거 잘해요☆”
자랑스럽게 말할 일인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긴 했지만, 실제로 잘 하는 걸. 어릴 때부터 많이 해봤으니 말이야. 그리고 수박 도시락까지 나왔으니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조건 아닌가! 수박은 맛있으니까! 언제 죽은 눈을 했었냐는듯 밝게 대답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앗, 역시 아사기리 씨 수영하려는 거네. 잠시 사람이 많은 바다를 보면서 물어보듯 말했다.
소년은 아직 죽은 눈을 뜬 것처럼 보이는 그녀를 바라보며 조금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물론 남 이야기를 할 처지는 아니었다. 자신만 해도 요즘 들어 온천 청소를 몇번이나 했는지 모를 일이었으니까. 온천을 깨끗하게 이용하면 참 좋을텐데 어지럽히고, 혹은 일부러 물건을 파손시키거나 갖고 나가는 이들도 허다했다. 물론 소년의 고모와 고모부는 그냥 웃어넘기는 것 같았지만, 소년은 그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아무튼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기에 소년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크게 끄적이며 괜찮다는 의미를 전달했다.
"물론 그래도 되지! 내가 먼저 권했는데. 혼자 노는 것보다는 다른 이와 같이 노는게 더 좋거든. 아. 그래? 그럼 조금 있다가 모래찜질 부탁해도 될까? 여기까지 왔으니 한번 하고 싶거든. 그보다...."
이어 소년은 수박 도시락을 꺼낸 후에 그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조각조각, 사각형 모양으로 자른 수박이 가득했다. 소형이라고는 하나 아이스박스 안에 들어있던 것이라서 그런지 상당히 시원한 냉기가 벌써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우선 수박부터 먹지 않을래? 아. 그리고 수영이야 어떻게든 공간에 들어가면 할 수 있을테니까. 조금 더 안 쪽으로 들어가면 사람이 적은 편이잖아? 대부분 아무래도 입구 부분에서 노니까."
일단 그건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며 소년은 포크 하나를 그녀에게 살며시 내밀었다.
시원한 수박을 본 순간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수박이다. 그것도 시원한 수박. 상온에 방치해 미적지근해진 수박과는 차원이 다른 수박이다! 그것도 이 바닷가에서! 아이스박스에서 막 꺼낸!! 이건 맛있을게 틀림없어!! 최고로 귀여워!! 아까와는 전혀 다르게 반짝거리는 눈으로 수박을 응시했다.
“우와아… 수박… 고마워요 아사기리 씨! 잘 먹겠습니다!!”
포크를 조심스레 받아들고 감사인사를 한 후,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는다. 입술에 가까이 가져가기만 해도 냉기가 느껴진다. 입에 넣자 그야말로 시원한 감촉이 가득 퍼지고, 그에 질세라 단맛도 따라온다. 이건… 극락이다…!
“너흐 마히써….”
입을 손으로 감싸고, 한 손에는 포크를 든 채로… 그야말로 하얗게 불타버린 것처럼 되어 중얼거렸다. 너무 맛있어… 반칙이야. 이 맛있음은… 이 시원함은 반칙이라고… 여름의 햇살을 쬐고, 업무에 쫓겨 지쳐있던 몸에 스며드는 치유감… 최고입니다…
“아, 아무튼… 으음, 그건 그렇지만… 그래요. 일단 수박도 먹고 모래찜질도 한 다음에 수영 얘기를 하도록 하죠! 근데 이 수박 진짜 맛있네요! 시원하고! 맛있어!”
그녀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소년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누군가와 나눠먹는다는 것을 상정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많이 가져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역시 맛있는 것은 누군가와 나눠먹어야 제 맛이라고 소년은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소년의 입가에선 미소가 좀처럼 사라지질 않았따.
"그렇지? 이거 완전 맛 좋다니까. 어디 그러면 나도 하나."
그녀가 하나 먹고 나서야 소년은 포크를 챙기고 수박을 하나 입에 넣었다. 시원하면서도 달콤함은 카페에서 파는 수박 주스의 달콤함과 전혀 뒤지지 않았다. 미지근하게 다 식어서 맛이 없는 수박이 아니라 시원하면서도 달콤한 과즙이 가득한 수박. 그리고 더운 날씨. 모든 것이 딱 좋은 최고의 환경이었다.
"이거 진짜 맛있네! 카페에서 파는 거 못지 않은걸? 어젯밤부터 미리 준비해서 만들길 잘했어! 아무튼 온천에 작은 아이스박스가 있었거든. 시원함을 최대한 보존하고 싶어서 빌려달라고 해서 받은거야. 그 대신에 온천에 돌아가면 이거 정리를 내가 다 해야하지만 그런 것이 두려워서야 어디 놀 수 있겠어?"
하나 더 냉큼 포크로 집어서 먹은 다음 소년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싱글벙글 웃었다. 이어 오른손을 뒤로 해서 자신의 몸을 받친 후에 소년은 그녀를 바라보며 넌지시 물었다.
"내가 이렇게 아와나미에 찾아와서 재밌게 노는 것처럼, 미쿠모 양은 도시에 오면 혹시 찾아가서 놀고 싶은 곳 있어? 있다면 어디야?"
“어제부터 준비한 건가요? 엄청 나네요, 아사기리 씨☆ 아아, 뒷정리… 좀 귀찮긴 하겠네요. 그래도 대단하네요.”
엄청 기대했던걸까, 어제부터 준비라니. 게다가 정리를 감수하고 아이스박스까지 챙겨서… 행복하게 웃는 유키를 보며 나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당사자가 좋다는데 뭐. 그리고 덕분에 자신도 이렇게 수박을 얻어먹게 되지 않았는가. 나중에 집에서 뭐라도 가지고 와야겠다. 얻어먹기만 하는 건 역시 미안하니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들린 질문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도시로 가면 찾아가서 놀고 싶은 곳…?
“그야 많죠! 유명한 곳들은 꼭 가보고 싶다구요☆ 꿈의 나라 랜드라던가, 유니버셜이라던가! 그리고 스카이 트리! 그리고 하루카스! 그리고 그리고 동물원도, 아, 아쿠아리움도 꼭! 바닷가에 살긴 하지만 그래도 가보고 싶다구요!”
지금까지 사진이나 TV에서만 봤던 곳들을 하나하나 말해본다. 도시로 나가면 꼭 가보고 싶었던 곳들… 이런 시골에는 없는 곳이 입에서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너무 많아서 이건 도저히 하루만에 가는 건 무리고, 몇 박 며칠을 묵어야 갈 수 있겠지만. 게다가 지방도 제각각이라 분명 한 번에 다 이루기는 무리겠지. 그래도 말해보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정말 가고 싶은 곳이 많구나. 사실 나도 마찬가지야. 도시에서 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곳을 다 가본 것은 아니니까. 훗카이도의 눈축제라던가 그런 곳도 가보고 싶은데 아직 가본 적이 없거든."
TV나 사진으로는 봤지만 실제로 가본 적은 없었기에 소년은 정말로 가보고 싶다는 듯이 괜히 아쉬움을 목소리에 담았다. 한편 그녀가 말하는 곳 중 자신이 갔던 곳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자신이 간 곳이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떠올리며 간 곳이 있을 때마다 절로 미소를 내비쳤다.
"꿈의 나라 랜드라면 내가 데려갈 수도 있긴 한데. 정말로 내가 사는 곳과 가까우니 말이야. 어른이 되면 한번 놀러와. 근처까지 오면 마중 나가줄테니까."
수박을 한 조각 더 먹으면서 소년은 그녀가 갈 수 있다면이라고 말을 하는 것에 살며시 의문을 품었다. 이전에도 비슷한 말이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집에서 도시에 찾아가는 것을 아예 반대하고 있는 것일까. 괜히 그런 생각을 하지만 더 묻진 않으면서 소년은 살며시 고개를 들어올려 하늘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방학도 슬슬 끝나가네.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서 조금 아쉬운걸. 이번에 가면 또 언제 아와나미에 올 수 있으려나. 최소 2년일까. 왜 나는 내년에 고3인거지?"
괜히 뚱한 표정을 지으면서 소년은 작게 혀를 찼다. 그만큼 아쉬운 모양이었다. 허나 곧 미소를 내비치면서 다시 고개를 내려 그녀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앗 맞아요! 홋카이도! 삿포로나 후라노도 가보고 싶고, 오키나와도, 큐슈도… 으으, 가보고 싶은 곳이 정말 많아서 큰일이라구요!”
앗, 생각해보니 도시 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도 가보고 싶었다. 아사기리 씨의 말대로 홋카이도 같이 먼 곳도 가보고 싶은 걸! 뒤늦게 덧붙이다가 꿈의 나라, 치바 현에 있는 모 랜드에 데려갈 수 있다는 말에 눈을 번뜩였다. 맞아! 치바! 아사기리 씨는 치바에 산다고 했지!!
“정말요?! 약속인가요?! 약속인거죠? 어기면 바늘 천 개 먹는 거라구요!”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게 된다면! 어른이 된다면 놀러갈 수 있을까. 가업을 잇는다던가, 이런 저런 장애물은 있겠지만 그래도 하루 정도 놀러가는 건… 음, 확답은 할 수 없지만 일단 약속은 해두는 걸로 하자. 손가락을 걸자고 할까? 잠시 고민하던 사이에 화제는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네요. 슬슬 방학도 끝나가고… 아, 맞다. 아사기리 씨는 좀 있으면 돌아가겠네요. 아하하☆ 어쩔 수 없잖아요. 수험이 있으니까. 음…”
최소 2년. 맞다. 눈 앞의 이 사람은 내년부터는 고3. 수험생인 것이다. 진로를 어떻게 잡았는지, 어느 대학을 갈 것인지, 그런 이야기를 나눠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수험 때문에 바빠질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뚱한 표정을 하고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유키를 보며 킥킥 웃었다.
“—당연하죠. 아사기리 씨가 언제 오더라도 저는 여기 있을 테니까요. 아, 다음에 올 땐 숙소는 저희 집으로 해도 된다구요? 바다가 제일 잘 보이는 좋은 방을 준비해둘게요!”
"바늘 천 개는 먹기 싫으니까 약속은 꼭 지킬게! 애초에 그 정도 약속은 특별히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 말해두는데 난 못 지킬 약속은 안 해."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를 하며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험생활이 아니면 마중을 나가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저 전철역에 나가고 거기서 바로 꿈의 랜드로 가면 될 일이었으니까. 물론 온다고 한다면 하룻밤을 어딘가에서 자야겠지만 그 정도야 좋은 곳을 소개해줄 순 있으니 그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도시락 통에 들어있는 수박을 한 조각 더 꺼낸 후에 사각사각 씹어먹으니 달콤함이 입 속에서 사르르 흘러내렸다. 역시 전 날, 냉장고에 수박을 넣어두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곧 들려오는 그녀의 말에 다행이라는 듯이 소년은 웃음소리를 크게 냈다.
"하하하하! 매력적인 제안이지만 그래도 고모와 고모부가 사는 곳인데 그곳에 가지 않고 미쿠모 양네 집에 가면 되게 섭섭해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마음만 받아둘게. 하지만 그 방이 어떤 방일지 궁금하니까 또 오게 되면 하루는 미쿠모 양 네 집에서 묵는것으로 하면 어떨까?"
바다가 잘 보이는 방이라면 필시 정경도 시원하고 보기 좋겠지. 아침에 일어나서 보는 느낌이 참으로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유키는 그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한가지를 더 이야기했다.
"그럼 미쿠모 양이 치바에 놀러온다면 도시 야경이 잘 보이는 방을 하나 소개해줄게. 아무리 그래도 우리 집에서 묵게 할 순 없을테니까."
앗 그것도 그렇네! 친척 분들이 좀 서운해할지도. 그러니 아사기리 씨의 제안대로 하면 딱 좋겠다. 딱 하루라도 제일 좋은 방을 준비해야겠어! 꿈의 나라를 위해!(?) 살짝 주먹을 쥐며 굳게 다짐했다. 물론 금방 시원한 수박 덕에 헤실헤실 풀어지긴 했지만. 아무튼 뭔가 상부상조하는 느낌이다. 치바에 가면 좋은 숙소를 소개해준다는 아사기리 씨의 말을 들으니 더욱 더 그런 느낌이 되었다. 뭐, 나야 좋지만! 생글생글 웃으며 나기는 수박 한 조각을 더 집어 먹었다.
“와아☆ 신난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잘 부탁할게요☆”
일단 아사기리 씨도 그렇고 자신도 수험 기간을 지난 다음의 이야기니, 제법 먼 이야기다. 아니, 그리 머지 않을지도 모른다. 시간이란 의외로 훌쩍 지나가기 마련이니 말이다. 어느 새 끝이 다가오고 있는 이 여름방학처럼. 슬쩍 시선을 바닷가로 돌려 피서객들을 봤다. 해는 여전히 뜨겁고, 바람은 여전히 후덥지근하지만… 방학의 끝은 확실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 그래도 아사기리 씨… 돌아가는 건 태풍이 지나간 다음일라나? 그게 지나간 다음에야 방학이 끝나니까요. 매번 바람에 비에 장난 아니고, 길도 가끔 막히기도 하니까 조심해야해요☆”
/유키주도 오늘 하루 수고했다구! 으으 애옹이 수발과 답레를 동시에 하는 건 제법 힘들구나...
나름대로 어떤 곳을 소개해주면 좋을지에 대해 행복한 고민을 하는 도중 태풍이라는 단어에 소년은 살짝 움찔했다. 태풍이 올라온다고? 바람에 비에 장난 아니고 길이 가끔 막히기도 해? 믿기 힘든 표정으로 멍하니 있던 소년은 하마터면 포크를 떨어뜨릴뻔 했다. 두 손을 바둥거리면서 겨우 떨어뜨리지 않게 잡은 후 소년은 난처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미쿠모 양. 내가 잘못 들은 거지? 태풍이 여기에 올라온다는거야? 그것도 상당히 강하게? 혹시 말이야. 온천...의 물 범람할 정도야?"
내부는 그렇다고 쳐도 온천에는 야외 온천도 있었다. 즉 그곳은 비를 막을 지붕이 없었고 태풍이 몰려오면 다이렉트로 직격탄을 맞을 위치였다. 태풍이 분 이후에 엉망이 되어있을 그곳을 상하는 순간, 소년의 눈빛이 순간 죽은 느낌으로 바뀌었다.
멍하니 있다가 바둥바둥, 필사적으로 포크를 사수하는 모습을 보며 킥킥 웃다가 다시 물어보는 말에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여름 끝물을 장식하는, 나름대로 계절의 풍미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취급하기엔 피해가 너무 어마무시하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오지 말라고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살짝 해탈한 듯한 웃음을 띄운 채로, 난처하게 웃는 유키를 보며 나기는 입을 떼었다.
“그야 올라오죠? 운이 좋으면 빗겨나가지만 매년 직격으로 관통해서 올라가는 일이 많아서요~ 올해는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으음, 온천… …여차하면 범람할지도 몰라요.”
범람하지 않더라도 야외 온천이라면 나뭇가지에 이파리 같은 것들이 날아와 온천욕을 즐길 가능성이 100%지만. 아, 아사기리 씨가 그걸 치워야 하는 건가? …나기는 조용히 마음 속으로 X를 연타했다. X를 눌러 조의를 표합니다.
“아니이 그건 말이죠 아사기리 씨, 그건 그 때가 되어봐야 알 것 같은데요? 뭐, 저도 태풍이 오면 할 일이 많아지니까 번거로워서 그냥 별 일 없이 지나갔으면 좋겠지만요☆ 예전엔 방에 창문이 깨지거나 간판이 날아다니거나 하는 일도 있었으니까, 올해는 조용히 넘어가면 좋겠네요.”
/그 애옹이... 잡아다 무릎 위에서 재우는 중입니다... 아냐 사실 거짓말이에요 잡아다 재우는 게 아니라 애옹님이 와서 무릎을 수탈해 갔습니다 흑흑
그녀의 말이 이어질때마다 소년의 표정이 절망스러움으로 바뀌어갔다. 결국 그것을 청소해야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물론 다른 직원이나 고모와 고모부가 도와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청소를 해야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보아하니, 대부분은 직격으로 관통하는 일이 많다고 하니, 올해라고 해서 그게 바뀔리는 없을 거라고 소년은 생각했다.
"태풍이 오기 전에 돌아가는 것오 조금 생각해봐야겠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중얼중얼거리는 모습이 소년은 크게 당황한 모양이었다. 허나 곧 정신을 차리며 두 뺨을 강하게 치면서 소년은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보단 지금은 즐거운 시간을 가득 즐겨야겠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일부러 큰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 이 즐거운 여름바다를 앞에 두고 암울한 생각에 빠지기엔 뭔가 아깝잖아? 아. 그러고 보니 미쿠모 양도 수영할거야?"
물론 수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그녀가 같이 할 지는 또 알 수 없었다. 물론 자신은 혼자 해도 별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같이 노는 것이 조금 더 재밌기에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소년은 약간의 기대를 섞은 눈빛을 보냈다.
"아. 물론 그것까지는 조금 힘들다면 힘들다고 이야기해도 괜찮아."
/애옹이 사장님의 침대가 되었구나. 무게감은 있겠지만 그래도 따뜻한 무게감일 것 같아서 뭔가 귀여워!
아, 이거 맨 처음의 나 같은데. 절망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죽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유키의 등을 나기는 천천히 토닥이려고 했다. 하하. 어쩔 수 없다구요 아사기리 씨. 자연 앞에서 인간은 언제나 무력하니까… 뭐, 그래도 금방 기운을 차린 것 같으니 다행인가.
“그것도 방법 중에 하나긴 하죠. 아무튼… 아, 바다요? 흐음~”
수영? 그러고 보니 바다에 왔으니까, 수영도 해야겠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와중에 보인 스스로의 옷차림은 아무리 봐도 수영에 적합하진 않았다. 음, 사실 이대로 들어가도 상관은 없지만, 들어가는 것 자체는 상관없지만 그 후가 문제니까… 고심 끝에 나기는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말했다.
“전혀 힘들지 않아요! 다만 준비가 필요하니까! 잠깐 집에 갔다올게요! 금방 갔다올게요!”
마침 새 수영복도 입어보고 싶었고! 괜찮겠지? 집은 바로 코 앞이니까! 금방 갔다오겠다는 말을 몇 번이고 강조한 다음 후다닥 집을 향해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가는 김에 수영복도, 다른 것도 이것저것 챙겨와야겠어!
/처음엔 그렇지만 가면 갈수록 다리에 감각이 사라져... 아무튼 이렇게 나기의 수영복 루트가 열렸군!(?
"응? 괜찮아? 미쿠모 양이 괜찮다면 얼마든지 환영이야! 천천히 갔다와도 돼. 오늘은 그냥 쭉 바다에 있을 거라서."
아와나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도 하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는 바다에서 제대로 놀기로 마음 먹었으니 소년은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이미 수영복을 옷 안에 입고 오긴 했지만 그녀가 수영복을 안에 입고 산책을 할 확률은 적을테니 수영복을 챙기기 위해선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었다.
"일단 수박은 어느 정도 남겨놓을게! 아. 이렇게 되면 미쿠모 양의 오늘 하루는 내가 다 예약하는게 되나? 그렇다면 올 예약제로 하겠어! 아. 이러면 너무 플레이보이 같은가? 아무렴 어때."
괜히 장난스럽게 웃어보이면서 소년은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선 후에, 편안하게 돗자리 위에 누웠고 그 상태로 고개만 돌린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일단 체력을 채울겸 조금만 누워있을게. 갔다오면 불러줘."
잠깐 잠이라도 자고 있을 생각인건지, 아니면 파라솔 아래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느끼고 싶은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소년은 살며시 눈을 감았다. 느긋하게 그녀를 기다릴 생각인 듯 보였다.
체력을 채울 겸 누워있겠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후다닥 향했다. 아니 근데 플레이보이 같다고 자각하면서도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아사기리 씨? 역시 도시 사람은 다르구나!(?)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서도 여러 생각이 떠오른다. 이윽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재빨리 자신의 방으로 가서 가방을 꺼내고, 일단 수영복을 입고 아까보다 가벼운 차림의 옷을 걸치고 수건을 챙겨 넣었다. 또 뭘 들고가지? 여자력을 발휘해서 도시락이라도 가져가야하나? 하지만 짧은 시간 내로 준비하긴 무리야! 그리고 수박을 먹어서 이미 배도 불러! 수영하면 금방 꺼지겠지만! 살짝 갈등하던 나기는 결국 물병에 차가운 보리차를 넣어가는 정도로 타협하기로 했다. 운동화가 아닌 샌들로 갈아신고 다시 바다로 향했다. 누가 봐도 피서객으로 볼 것 같은 차림이다.
“기다리셨죠, 아사기리 씨! 준비 다 됐어요!”
파라솔 아래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유키를 보고 깨울까 말까 잠시 고민했지만, 일단 도착한 건 알려야지 싶어 적당한 정도의 소리로 말을 건넸다. 돗자리 위에 조심스럽게 가방을 내려두고 유키가 일어나는 걸 기다렸다. 살랑거리는 바닷바람이 그새 난 땀을 식혀주고 있었다.
바람을 쐬면서 눈을 감으니 절로 잠이 솔솔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허나 잠들어버리면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소년은 어떻게든 잠을 자지 않기 위해서 꾹 버텼다. 그리고 그렇게 긴 시간이 흐르지 않은 상태에서 곧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자 소년은 눈을 뜬 후에 천천히 상반신을 들어올렸다.
"기다리긴. 그렇게 안 기다렸어! 그냥 이렇게 느긋하게 누워서 쉬면 시간이 금방 가거든. 아. 그렇다고 해서 오래 기다렸다..라던가 그런 게 아니라는 건 알지?"
가볍게 키득거리는 와중 보리차 소리가 들려오자 소년은 살며시 관심을 보였다. 물론 음료수가 있긴 했지만 보리차는 또 다른 느낌이 아니던가. 잠시 생각을 하던 소년은 한 잔 받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녀를 바라보면서 살며시 두 손을 내밀었다.
"그렇다면 한 잔 마셔도 될까? 가방에서 꺼내줄래? 따르는 건 내가 다를테니까. 아무튼 미쿠모 양. 센스가 좋은데?"
역시 이런 날씨에는 시원한 보리차가 좋다고 생각을 하며 소년은 엄지손가락을 위로 척 올렸다. 그러다가 문뜩 궁금해졌는지 소년은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미쿠모 양은 수영 잘하는 편이야?"
/그래서 방금 전에 그냥 사이다를 마시고 왔지! 냉장고에 남아있는 사이다가 있었는데 엄청 시원해!
"현지인이라고 해도 수영 못할 수도 있잖아. 도시인이라고 해서 도시를 다 좋아하는 것도 아닌 것처럼 말이지. 좋아. 그럼 나중에 수영 실력좀 볼까? 말해두는데 나도 수영부 소속이라서 수영 못하진 않거든."
물론 현지인보다는 조금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지만 굳이 그런 이야기는 꺼내지 않으면서 소년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였다. 허나 자신보다 잘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기에 얕보진 않기로 하며 소년은 물병을 받았다. 이어 종이컵에 천천히 따르고 마시니 그 시원함이 수박 못지 않아 소년은 절로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굉장히 시원한데? 수박도 있고 보리차도 있고 둘 다 시원하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네. 올해 여름 피서 최고다아아!"
괜히 그렇게 크게 소리를 지르기도 하면서 키득키득 웃어보이다 소년은 좋은 장소가 있다는 말에 관심을 보이면서 그녀를 빤히 바라보면서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였다.
"오. 그래? 그럼 고맙지! 현지인들만 아는 비밀장소 그런 거야? 아. 그러면 파라솔하고 돗자리를 옮기는게 나을 수도 잇겠다. 그 앞에 까는 것이 아무래도 좋을테니 말이야. 아. 그런데 그런 비밀장소는 마을 사람들끼리만 공유할 것 같은데 나에게 알려줘도 되는 거야?"
나중에 왜 외부인에게 알려줬냐는 말을 듣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하며 소년은 그녀를 조금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물론 아니라면 다행이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으니까.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하는 유키를 보며 씩 웃으면서 내기 이야기를 꺼냈다. 아니이~ 이렇게 놀 땐 이런 내기가 있어야 더 재미있기도 하고? 그리고 보리차 한 잔에 행복해하며 피서 최고다아아아하고 외치기까지 하는 모습에는 큭큭 웃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최고긴 하지만 그렇게 외칠 정도? 하지만 자신도 수박을 먹으며 비슷한 생각을 했었으니까 말로 꺼내진 말자.
“아~ 괜찮아요☆ 딱히 비밀로 하는 건 아니니까요! 출입금지 구역도 아니고. 단지 이… 숙소가 모여있는 이쪽 해변에 비해서 거리가 좀 있어서 그런지 여행 온 사람들은 잘 안 가더라구요. 그리고 아사기리 씨, 아와나미에 친척이 있으니까 아예 외지인도 아닌 셈이고☆”
혈연 만만세라는 거네요! 농담 삼아서 덧붙이고 까르르 웃고서는 가방을 메고 일어섰다. 파라솔이며 돗자리 정리를 할 거라면 자신도 돕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해서였다.
지난 일의 과오 및 오만함을 떠올리며 소년은 난처한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그때도 가만히 있었으면 자신의 승리였건만, 왜 굳이 기회를 한번 더 준다고 해서 그런 결과를 맞이했는지. 하지만 정말 치열한 승부였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결국엔 편안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럼 이번엔 뭘 걸거야? 또 소원권은 조금 애매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이건 운이나 그런 것으로 결정할 수 있는게 아니니까. 어느 한쪽이 압도적으로 잘해버리면 다른 쪽을 이길 기회조차 없잖아?"
물론 어느 것이라도 상관없다고 생각을 하며 소년은 다시 보리차를 마시면서 온전히 열기를 식혔다.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은 해변은 아니지만 현지인 친구와 같이 지내는 것도 소년에게 있어선 그리 나쁘지 않았다. 언젠가 돌아가야 할 그 순간이 괜히 아쉽다고 느끼면서. 태풍이 가급적이면 늦게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나 굳이 말을 하진 않으며 소년은 짐을 정리하려는지 파라솔을 접었다. 자연히 뜨거운 태양빛이 들어왔으나 그 정도는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잠깐이긴 했지만 아와나미에서 보낸 적도 있어. 그러니까 정말 어릴 때. 여섯 살? 일곱 살? 아마 그때였던 것 같은데. 부모님이 많이 바쁘셔서 일시적으로 여기서 어느 정도 있었거든. 그런 것까지 포함하면 명예 현지인 정도는 될까? 하하하하. 물론 농담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런 것은 무리라고 생각을 하며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이어 정리를 천천히 마치며 짐을 들어올리며 그녀에게 안내를 부탁했다.
“아하핫☆ 불안할 게 뭐 있나요! 사실 타코야키 때는 거의 막상막하의 운이었잖아요? 마지막 빼면요!”
라고 말해도 이번 수영 승부는 순전히 운으로만 되는 건 또 아니니까! 복불복이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는 승부다. 뭐 운도 실력이라고 하긴 하지만. 어라, 그러면 나기는 운이 좋으니까 실력도 좋다는 거? 후흥~ 이번 승부도 따놓은 당상일거라고! 혼자 그리 생각하면서 실실 웃다가 뭘 걸거냐는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으응… 뭘 걸지…
“소원권은 저번에도 걸었고, 나기도 아직 안 쓰기도 했으니까… 그래, 이번에는 간식 내기라도 하는 거 어때요? 진 사람이 카페에서 달달한 간식 사기!”
저번에 갔던 카페 음료수 맛있었는데~ 도시처럼 큰 지점은 별로 없지만, 지방의 가게는 그 지방만의 특색이 또 있는 법이다. 물론 이 지방에서 나고 자란 나기에게는 지겨운 메뉴일 뿐이지만. 아무튼 이거라면 누가 져도 크게 타격을 입진 않을 테니까. 아마도 괜찮겠지? 그렇게 제안하고 나서 명예 현지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킥킥 웃었다.
“명예 현지인이라~ 좋아요! 인정해드리죠☆ 아, 이쪽이에요!”
안내를 부탁받은 나기가 앞서서 걸어나간다. 해변을 벗어나 길가로 들어서서 야트막한 언덕길을 오르면 눈 앞에 또 다시 해변이 펼쳐진다. 다만 아까의 그 해변보다는 인적이 드물고, 좀 더 인위적인 느낌이 적은 그런 해변이었다. 확실히 사람이 적다. 여기까지 넘어오는 길이 번거로워서인지, 아니면 크게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말이다.
"그 정도라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네. 좋아! 그럼 그렇게 가자! 수영을 다 하고 돌아가는 길에 간식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면 괜찮을테니까. 아. 그러고 보니 고기도 있으니까 그것까지 먹으면 배가 부르려나. 그럼 다음에 기회가 되면 먹는 것으로 하자!"
물론 그녀가 먹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소년은 먹을 생각이었다. 그것으로 식사까지 하고 완벽하게 시간을 다 보낸 후에 온천으로 돌아간 후, 자기 전에 온천에 들어가서 몸을 데우고 나온 후에 일기를 쓰고 침대에 누우면 최고의 하루로 마무리할 수 있었으니까. 일단 그건 그때 가서 생각을 하기로 하며 소년은 그녀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해변을 벗어나 언덕길에 오른 후 조금 더 걸으니 보이는 해변은 확실히 조용하고 평화로운 느낌이었다. 외지인들은 잘 모르는 비밀명소 같은 느낌에 소년은 절로 감탄했고 짐을 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달려가며 해변가를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다.
"와. 이런 곳이 있다는 건 전혀 몰랐는데? 가르쳐줘서 고마워! 아. 여기는 SNS에 올리지 않을게. 일단은 비밀장소 같은 곳 같으니 말이야."
원래 같았으면 바로 SNS에 업로드를 했겠지만, 이런 장소는 지켜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그렇게 이야기했다. 이어 돗자리와 파라솔을 내려놓은 후에 소년은 우선 돗자리를 깔고 파라솔 설치작업에 들어갔다.
"조금 시간이 걸릴테니까 근처에서 쉬고 있어줘. 다 되면 부를테니까."
/별 건 없고 그냥 이것저것 잡다한 일이 있다보니 말이야. 하지만 내일은 쉴거다! 물론 잠깐 나가서 놀기도 한거지만!
“으음~ 올려도 상관은 없는데요? 아, 그치만 사람이 늘어나면 좀 그런가? 좋아요! 그럼 비밀장소로 하죠!!”
딱히 비밀은 아닌데, 막상 그렇게 말하고 나니 여기에 사람이 몰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아쉬워졌다. 결국 왔다갔다 하다가 비밀장소로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었다. 파라솔 설치에 돌입한 유키를 보며 도울 거라도 있을까~ 기웃거리다가 쉬고 있어달라는 말에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엣, 나기 설마.. 도움 안 되는 걸까… 뭐어, 괜히 돕는다고 갔다가 방해하면 큰일이니까. 대신 나기가 택한 것은 큼지막한 바위 뒤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는 것이었다. 안에 수영복을 입고 와서 그냥 겉에 옷만 벗으면 그만이지만 그걸 또 눈 앞에서 하기엔 애매한 기분이라…
“흐흥~ 어때요 아사기리 씨? 잘 되고 있나요?”
갈아입는 데에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옷을 잘 정리해서 가방에 넣어둔 후 다시 유키쪽을 느긋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달려가서 도울 수 있다구요!라고 주장하는 듯했지만, 글쎄. 파라솔 설치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 아마 도울 기회는 없지 않을까.
"사람이 늘어나면 여기도 수영하기 힘들어질걸? 나는 별 상관없다고 치더라도 현지인들은 별로 안 좋아하지 않을까?"
이런 조용한 명소는 자신들만의 장소로 간직하고 싶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소년은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물론 그녀는 괜찮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알 수 없었으니까. 현지인들을 위한 장소 정도로 남겨둬도 좋겠다는 쪽으로 소년은 생각을 정리했고 그녀 역시 그렇게 하자고 했으니 소년은 더 말하는 일 없이 생각을 종료했다.
파라솔을 설치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기둥을 세우는 것은 조금 힘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깊게 넣으면 나중에 넣기가 힘들고, 그렇다고 너무 얇게 하면 금방 쓰러지기 좋았으니까. 어느 정도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소년은 파라솔 기둥을 적당한 깊이로 설치했고 활짝 파라솔을 폈다. 돗자리 위에 검은 그늘이 생겨났고 소년은 괜히 뿌듯하게 웃으면서 팔로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아. 응. 이쪽도 작업 종료했어!"
그녀의 목소리에 유키는 고개를 돌려 그녀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그 순간 보이는 것은 그녀의 수영복 차람이었다. 아무런 말 없이 두 눈만 멀뚱멀뚱 깜빡이던 소년은 아무런 말 없이 엄지손가락을 위로 치켜세웠다.
파라솔을 무사히 세우고 성취감이 가득한 얼굴로 웃는 모습을 보며 나기는 저도 모르게 흐뭇하게 웃었다. 아아~ 고생했네요 아사기리 씨☆ 그리고 수영복을 귀엽다고 해주다니 역시 아사기리 씨, 보는 눈이 있네요!
“아하하하☆ 그렇죠?! 열심히 골랐다구요! 그래도 이렇게 빨리 쓸 수 있게 될 줄은 몰랐다구요. 아사기리 씨 덕분이에요☆”
프릴과 리본이 적당히 어우러진 귀여운 디자인의 투피스. 물론 학교 수영복이나 경기용 수영복에 비하면 물 속에서 저항을 받아 속도에 지장을 주겠지만(…) 뭐 어때! 귀여우면 장땡이다!! 애초에 그렇게 진지하게 승부할 생각은 별로 없기도 하고! 그냥 친한 사이에 하는 가벼운 내기니까 말이지.
“자자, 아사기리 씨도 얼른 갈아입고 오라구요! 안 그러면 저 먼저 들어갈 거라구요~”
말은 당장이라도 바다로 뛰어들어갈 것처럼 했지만, 몸은 모래사장에 서서 꼼꼼하게 스트레칭을 하는 중이었다. 그렇다. 무작정 뛰어들면 위험한 것이다. 현지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준비운동을 꼼꼼하게 해야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구! 다들 물에 들어가기 전 준비운동, 잊지 말자!(공익광고풍)
"에이. 내 덕분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내가 아니었어도 바다에서 놀 이가 충분히 있었을걸?"
애초에 여기는 바닷가고 친구들끼리 바닷가에 갈 수도 있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소년은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여름인데! 방학인데! 하는 생각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일단 투피스 수영복을 조금 더 감상하다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며 소년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나도 곧 갈아입을게. 어디보자."
이내 소년은 근처에 있는 바위를 확인하며 그 뒤로 쏘옥 들어갔다. 하늘색 트랭크스 수영복은 이미 속에 입어뒀기 때문에 그저 옷만 벗으면 될 일이었다. 소년은 웃옷을 벗고 이내 바지를 벗으면서 완전히 수영복 차림으로 돌아섰다. 누가 수영부 아니랄까봐 복부에는 꽤 탄력이 있었고 몸에도 은근히 근육이 붙어있는 것이 폼으로 수영부에 소속된 것은 아닌 듯 보였다.
이어 소년은 바위 밖으로 나섰고 그녀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좋아! 준비 다 했어! 준비운동하는 중이구나? 그렇지! 수영 전에는 준비운동을 안하면 큰일나거든! 그러니까 나도 해볼까!"
이어 소년은 천천히 그녀의 옆에 서서 몸을 풀었다. 자연히 푸른색 바다가 철썩이는 모습이 보였고 소년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가볍게 스트래칭을 마치자마자 소년은 조금 속도를 내서 물로 뛰어들어갔고 절로 첨벙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와, 근육. 과하지 않고 탄탄하게 붙은 근육. 수영부라는 거 사실이었구나! 저건 운동한 사람에게 붙는 근육이다! 평상복을 입었을 때는 알 수 없었던 모습에 살짝 멍하니 보다가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아, 아니 뭔가 멋있어서 자동적으로 그만.
“우와, 아사기리 씨… 엄청나네요! 진짜로 수영부 소속이네요!”
그에 비하면 자신은… 음… 근육은 별로 없지… 나기도 운동을 좀 해야할까? 하지만 따로 운동하기엔 너무나도 바쁜 나날이다. 뭐, 괜찮겠지.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바다! 그리고 수영! 그리고 내기!! 서로 사이좋게 스트레칭을 하고 먼저 바다로 뛰어든 유키를 따라 나기도 바다로 들어갔다. 서늘한 바닷물이 기분 좋게 몸에 휘감긴다.
“으하☆ 차갑다~ 역시 바다네요!”
첨벙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상체에 물을 적셨다. 아니, 이거 안 했다가 실려간 사람 제법 많이 봤었는걸. 조심할 건 조심해야지. 그리고 끝나자마자 이쪽도 첨벙거리며 좀 더 깊이 들어갔다. 수년간 아와나미에서 살며 다진 수영실력… 오늘 보여주겠어!
“푸하! 아아~ 시원하다~ 참, 내기는 어떻게 할까요, 아사기리 씨? 저쪽 바위까지 누가 더 빨리가나? 아니면 다른 걸로 할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수평선 쪽을 가리켰다. 그렇게 가깝진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에 있는 바위...라고 할까 암초 같은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유키를 본다.
"그럼 진짜지! 가짜겠어? 괜히 그런 것으로 거짓말을 하는 그런 도시사람은 아니야. 나!"
괜히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소년은 자신의 배를 가볍게 툭툭 손으로 치다가 손을 아래로 내렸다. 아무래도 계속 치기에는 조금 아픈 것인지 소년은 더 이상 그런 행동을 보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제 발을 적시는 차가운 바닷물을 느끼며 정말로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가볍게 물장구를 치는 것도 좋겠고 정말로 열심히 수영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도중 소년은 그녀의 말에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그녀가 가리킨 바위는 확실히 멀지 않고 가까운 것도 아니었다. 적당히 수영을 하기 딱 좋은 길이라고 생각을 하며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따.
"좋아. 그럼 저쪽으로 가자! 저 정도면 충분히 즐겁게 수영을 하고 돌아올 수 있을 것 같거든! 아. 하지만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중간에 쥐가 나고 그러면 꼭 말하기야. 알았지? 나도 그럴 참이야!"
수영을 하다가 다리에 쥐라도 나면 그건 진짜 위험한 순간이었기에 괜히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유키는 물로 뛰어들 자세를 갖췄다. 꽤 전문적인 폼을 유지하면서 소년은 그녀를 힐끗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거짓말이라는 생각은 아니고, 그냥 다시 한 번 역시 수영부!라고 생각했다고 할까. 아무튼 뭐, 아사기리 씨도 뿌듯해 보이고 됐나. 한번 어깨를 으쓱하고, 내기를 수락한 아사기리 씨를 보며 씩 웃었다. 사실 저 바위는 아와나미에서 수영으로 내기할 때마다 쓰이는 유서깊은(…) 바위니까. 나기 자신도 물론이고 아빠 엄마, 어쩌면 이장님도 어렸을 때 했던 경험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정해졌으니 이제 시작하면 되겠네!
“당연하죠! 쥐가 나거나 위험해지면 곧바로 알리기에요! 그럼, 준비…. 시작!”
수영하다 쥐가 나면 그건 진짜로 위험한 거니까. 그 외에도 위험한 상황이 오면 바로 알려야 한다고 신신당부하며 자세를 잡았다. 유키 쪽은 정말로 전문적인 폼이라 다시 한 번 수영부라는 사실을 새삼 인식하게 된다. 나기 역시 폼을 잡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전문적인 폼은 아니었다. 아무튼 나기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외치는 것과 동시에 물로 뛰어들었다. 첨벙-!하고 물 튀는 소리가 제법 크게 울렸다.
/좋아! 그럼 다이스로 승부를 정하자구! 1~100을 돌려서 더 큰 숫자가 나오는 사람이 더 빨리 도착했다는 걸로 하자! 그런고로 나기의 속도는 이거다! 가라 다이스!! .dice 1 100. = 54
나기의 스타트 신호에 맞춰 소년은 빠르게 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상당히 안정적이고 규칙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면서 숨 또한 확실하게 내쉬고 있었다. 상당히 안정적으로 나아가고 속도도 있었지만 문제는 바로 옆의 소녀의 속도였다. 전문적인 폼은 아닌 것 같았지만 어떻게 된 것이 자신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이게 현지인의 힘인가?! 순간 당황하며 소년은 빠르게 속도를 내려고 했지만 유속이나 기타 등등의 이유로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 이거 참!"
괜히 보글보글 거리는 느낌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소년은 정말 죽을 힘을 다해서 속도를 내려고 했으나 아슬아슬하게 닿을 듯 말 듯한 거리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고 결국 그녀보다 바위에 늦게 도착하고 말았다.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소년은 바위를 잡고 물 밖으로 살며시 나왔으며 그녀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하하하하. 졌네. 엄청 빠른데? 미쿠모 양. 이 정도면 우리 수영부에서도 꽤 에이스로 뽑힐수 있는 수준이야. 우리 학교로 전학온다면 바로 수영부에 오라고 하고 싶을 정도인걸? 나름대로 진짜 진지하게 했는데 지다니. 조금 아쉬운걸."
지갑의 용돈 많이 쓰게 되겠네.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하며 소년은 괜히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전혀 아쉬워하거나 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이 즐거운지 소년은 살며시 바위에 등을 대며 편하게 자세를 잡았다.
늘상 해오던 것처럼 물을 가르며 나아간다.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고, 그저 바다에서 놀다가 자연스럽게 깨우친 쪽이지만… 이 바다에 익숙해져 무의식적으로 유속의 흐름을 잘 탄 건지, 아니면 정말로 운이 좋은 건지… 어쨌든 나기가 바위에 도착했을 때 유키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렇다. 수영부 선수를 현지인이 이겨버린 것이다. 제일 당황하고 있는 것은 나기 자신이었다. 아니, 지지 않겠다고 하긴 했지만 설마 진짜로 이겨버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어안이 벙벙했던 것이다. 바위를 잡고 올라온 유키의 표정만큼, 나기의 얼굴도 난감이라는 두 글자로 가득 차 있었다.
“어… 어어… 어서오세요…?”
바위로 올라오는 유키를 향해 이렇게 얼빠진 인사를 건넬 정도로 당황하던 나기가 멋쩍게 웃었다. 이길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뭐랄까, 의외네!
“아하하… 어,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진짜 이길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뭐, 뭐어! 현지인이니까요! 익숙한 물이라 그래요! 그, 그거네요! 홈 어드벤티지! 아마 전학가서 아사기리 씨네 학교 수영부에서 하면 또 다른 결과가 나올걸요~ 아무튼 이렇게 됐으니까, 나중에 카페에서 잘 부탁드릴게요☆”
조금 당황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응, 원래 친구끼린 이런 내기도 하고 이기고 지기도 하고 그런거니까!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멀진 않다고 해도 해변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는 편이라, 바로 움직이면 엄청 지치거나 쥐가 나거나 할 수 있으니까.
“하아~ 그래도 재밌네요. 오랜만에 전력으로 수영한 느낌☆ 어릴 땐 좀 더 자주 했는데 말이죠~”
"그러게. 아니면 미쿠모 양이 수영에 재능이 있다던가. 어느 쪽이건 수영선수 노려봐도 되지 않겠어? 어드벤티지라고 해도 실력이 없으면 수영하기 힘들잖아?"
괜히 엄지손가락을 척 위로 올리면서 소년은 개운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맑고 더운 하늘이었지만 몸이 바다에 담겨져 있어서 그런지 그렇게 덥지는 않다고 생각하며 조금 더 몸을 적시던 소년은 바위 위로 오른 후에 자연히 그녀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이어 그 상태에서 고개만 살며시 돌리면서 소년은 넌지시 물었다.
"내기는 지킬게! 아무튼 두 번이나 져서 조금 아쉬운걸. 다음에 또 내기를 할 일이 있다면 꼭 이겨야겠어. 물론 그때도 미쿠모 양이 이길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어차피 소년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즐거운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지. 승패가 아니었다. 물론 진지한 승부였다면 조금 더 아쉬워할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놀이가 아니었던가. 그렇기에 전혀 표정에선 아쉬워하는 기색이 없었고 소년은 그 대신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 그럼 요즘은 안 해? 나라면 이런 곳에서 지내면 매일같이 수영하면서 놀 것 같은데. 아. 사는 곳이 바다라서 오히려 그런 것은 질리게 되고 그런 거야? 그런 거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도 살던 도시가 가끔 질릴 때가 있거든. 그래서 이런 곳이 오히려 편할 때도 있어."
괜히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소년은 다시 하늘을 가만히 바라봤다. 시원한 바람이 소년의 코 끝을 콕 찌르고 달아날 쯤에 소년은 다시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그래도 다행인걸. 여기에 내려와서 미쿠모 양처럼 좋은 이도 알게 되었고 친구가 되었으니까."
“아핫☆ 말씀은 고맙지만 선수는 무리 아닐까요? 저보다 수영 더 빠른 친구도 몇 있는데, 걔네라면 모를까~”
어렸을 때부터 쭉 함께 놀던 친구들 중 훨씬 수영을 더 잘하는 애가 있었지. 나기는 무리라도 걔라면 선수를 노려도 될지도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그 친구는 가업을 잇는 쪽으로 가버렸으니. 아무튼 손사래를 치면서 그렇지 않다고 한 후, 슬쩍 한쪽 발을 내려 물에 담갔다. 찰랑거리는 파도를 발끝으로 느끼고 있자니 내기는 지키겠다는 말이 들려 살며시 고개를 돌린다. 하나도 아쉬운 기색이 없는, 즐거워 보이는 얼굴이 눈 가득히 담긴다.
“좋아요! 나기는 다음에도 지지 않을 거지만☆ 도전정신이란 건 좋은 법이죠! 음, 요즘은… 확실히 잘 안하네요. 어렸을 때야 놀 곳이 바다 아니면 산이니까 자주 놀았는데, 몇 년을 바다에서 놀면 조금 시들해지기도 하고. 어릴 때보다 놀 시간도 적어지기도 했고… 그렇죠? …아무래도 오래 지내면 말이죠, 조금 질릴 법도 하니까.”
그렇네요. 도시도 질리는구나. 지금이야 제대로 가본 적이 없어 도시에 가면 하루하루 질리지도 않고 즐겁기만 할 것 같지만, 몇 년을 지내다보면 이 바다처럼 조금은 시들해지려나. 어쩐지 아련한 표정으로 하늘을 보는 유키를 보며 나기는 소리없이 웃었다. 뭐, 도시에 가본 적 없는 자신이 상상해도 잘 상상이 안 되네.
“아하하☆ 그러네요! 나기도 처음에 온천에 가서 말 걸었던 거, 엄청 다행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때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그냥 여행객이라고 생각하고 지나쳤을지도 모르니까요☆”
"더 빠른 애도 있어? 그러면 진짜 선수 도전해볼만 할 것 같은데. 전문적으로 트레이닝을 하고 훈련을 받으면 진짜 올림픽에 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
적어도 소년은 대충 수영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승부에서 패배해버린 것이었다. 그만큼 그녀의 수영 실력은 수준급이었는데 그보다 더 빠르다니. 현지인 파워는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순수하게 감탄하며 저도 모르게 절로 박수를 짝짝 치고 말았다.
"그렇구나. 확실히 여기에서 놀 법한 곳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자연이 있는 것은 부러워. 내가 사는 곳은 자연이 그다지 보이지 않고 아파트나 고층 건물만 가득하거든. 수영을 하려면 차 타고 한참을 달려야 하고... 그래서 수영조차도 하기 힘드니까."
물론 수영장에 가면 수영을 할 수 있고, 학교에도 수영장이 있긴 하지만 이런 곳과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한정된 공간에서 노는 것과 넓게 펼쳐진 자연이 어떻게 같을 수 있을까? 그런 아무래도 좋은 생각을 하면서 소년은 그녀의 말에 계속 귀를 기울였다.
"그러게. 내가 도시에서 안 왔으면 미쿠모 양은 나를 보러 오지도 않았을까? 그러면 내가 찾아갔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나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친구를 사귀려고 노력 중이거든. 친한 애들도 몇 있어. 남자애들도 있고, 여자애들도 있고. 물론 대부분은 그냥 잠깐 있다가 가는 이로 보는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지."
괜히 말을 그렇게 마치면서 소년은 바위에서 내려와 바다로 들어갔다. 조금 깊이가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황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다가 괜히 가볍게 물을 떠서 그녀를 향해 살며시 뿌리려고 했다.
/어서 와라! 나기주! 일요일 시간. 빨리 가는 것. 내일 월요일. 죽을 것 같은 심정이야.
“뭐어 현지인이니까요! 하지만 다들 대체로 가업을 잇는 쪽이라, 선수가 되겠다는 애들은 못 봤던 것 같아요.”
현지인이니까! 하고 으쓱했지만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음, 전문적으로 트레이닝하고 훈련이라고 해도 여기서는 뭔가 먼 세계의 이야기니까. 아사기리 씨의 말대로 자연만큼은 가득하지만 그 밖에는 딱히 없으니까. 하지만 아파트나 고층 건물로 하늘이 가려지는 건 조금 답답할 것 같기도 하다. 지금처럼 뻥 뚫린 하늘을 보지 못하는 건… 아쉬울지도.
“그건… 의외네요. 도시는 수영장도 많을 줄 알았는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니네요. 으음~ 그건 어쩔 수 없잖아요? 아사기리 씨, 여기에 계속 있는 게 아니니까. 돌아가는 건 맞잖아요~? 그래도 뭐어, 다른 여행객들에 비해서는 자주 오는 것 같지만요. 어렸을 때도 왔었다고 했잖아요? 명예 현지인 정도로.”
명예 현지인이라고 해도 방학이 지나면 돌아가니까, 아마 다들 잠깐 있다가 가는 사람으로 생각하겠지. 그것까진 어떻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이렇게 자주 만나는 일도 없을 거고, 아무리해도 거리감이 느껴지기 마련이고… 그런 생각에 빠져있다가 갑자기 얼굴에 물을 맞아 정신을 확 차린다. 아니, 이게 무슨!!
“푸핫!! 이, 이건 아사기리 씨가 먼저 했으니까 정당방위라구요? 에잇!!!”
어쩐지 안 한다 했어! 바다에서는 당연히 물을 뿌리며 놀아야 하는데! 먼저 물을 뿌린 쪽을 보며 선전포고라도 하듯이 말하면서 양손으로 물을 퍼 흩뿌린다. 눈을 질끈 감고 뿌리는 바람에 제대로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있긴 하지만 많은 곳이야 많고 솔직히 말하자면 마음껏 수영을 하려면 워터파크 쪽은 가야 하니까 많이 비싸거든."
이런 곳에서는 공짜로 수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나 워터파크나 수영장은 기본적으로 돈이 필요했다. 학교 수영장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며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특히 워터파크는 평소에 가기도 힘들고 학생들이 가기에는 돈이 부담되는 곳이었으니 더욱 그러했다.
"그야 친척이 여기에 있으니까. 그래서 다른 외부인들보다는 좀 더 이곳 지리를 알지만 그래도 이런 명소는 잘 모르거든. 그래서 알려줘서 고마워! 다음에 또 오면 여기서 수영을 해야겠어. 그땐 지금보다 조금 더 여유롭게 있고 싶어. 대학에 가게 되면 조금은 나아질까."
괜히 멀리, 저 멀리 아련한 뭔가를 보려고 하며 소년은 그런 씁쓸함을 남겼다. 물론 다음에 또 온다고 해도 얼마나 여기에 오래 있을진 알 수 없었다. 결국 사는 곳이 다르고 가까운 곳도 아니기에 오기는 힘들었으니까. 일 년 정도 휴학을 한 후에 여기로 온다고 해도 명분이 없었다.
아무튼 물을 날리자 당연히 그녀에게서도 소년에게 물을 뿌려대는 모습이 눈에 비쳤다. 공격을 받은 후 흠뻑 젖은 얼굴로 씨익 웃던 소년은 다시 두 손으로 힘껏 물을 퍼서 계속해서 뿌렸다.
"좋아! 역시 물놀이엔 이게 있어야지! 덤벼라! 미쿠모 양! 상대해주마!"
이어 소년은 숨을 참는 듯 하며 물 속으로 자신의 모습을 감췄다. 마치 공격기회를 엿보기라도 하듯, 상당히 조용한 분위기만이 흘렀다.
지지 않겠다는 듯 물을 뿌려대다가 보니 상대의 모습이 사라졌다. …아사기리 씨의 영압이… 사라졌어? 는 무슨! 물 속으로 숨었구나!! 물 속에 숨었으니 그냥 물을 뿌리는 걸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물을 뿌리던 손으로 얼굴을 한번 쓱 훔치고 이리저리 둘러본다. 물이 맑으니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물 속에 웅크린 모습을 보고 씩 웃은 나기는 바위로 올라섰다. 그리고는…
“잠수한다고 못 찾을 줄 알았나요!!! 햣하!!!”
평소의 나기에게서는 찾기 어려운, 괴성을 지르는 모습으로 펄쩍 뛰어 유키의 위로 낙하하려고 했지만… 물의 굴절률이라던가 이런저런 이유로 바로 옆에 착수하고 말았다! 철썩!하는 소리와 대량의 물거품이 걷힌 후 나기는 다시 물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큭, 실패하고 말았어…! 한 번밖에 못 쓰는 공격인데!(?)
자신의 위로 뛰어내리려고 하는 그녀의 모습에 소년은 순간 당황해서 물 속에서 움직이려고 했다. 허나 아슬아슬하게 피해간 것에 소년은 안도를 내쉬면서 물 밖으로 빠르게 튀어나와서 다시 그녀에게 물을 뿌리려는 듯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그렇게 쉽게 당할수야 없지! 그래도 수영부인데!"
그렇게 물을 여러 번 뿌리면서 ㅡ정확히는 맞는지, 안 맞는지도 신경쓰지 않으면서ㅡ 어느 정도 뿌리던 소년은 다시 물 속으로 숨었다. 그 상태에서 다시 기회를 엿보려는 듯 숨까지 참으니 거품조차 올라오지 않았다. 한편 그러는 도중 물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를 바라보며 소년은 절로 감탄했다. 되게 예쁘다. 이거 무슨 물고기이지? 라고 생각하며 소년은 물싸움 중이라는 것도 잊고 다시 얼굴을 물 밖으로 내밀었다.
"여기 물고기 진짜 예쁜데. 노란색도 있고 빨간색도 있고. 역시 예쁜 바다는 물고기도 엄청 예쁘구나. 감탄했어."
실패의 맛은 쓰디쓴 맛이었다. 한번에 성공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해서 지금 이렇게 물세례를 받고 있지 않은가. 물론 가만히 있지 않고 응전했지만 연거푸 쏟아지는 물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해서 효과는 별로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잠잠해진 틈을 타서 눈을 뜨자… 또 잠수했구나! 또 물 위에서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 거품까지 올라오지 않는 걸 보니 작정하고 숨은 모양이다. 하지만…
“그쵸? 오키나와 만큼은 못해도 스노쿨링을 해도 제법 괜찮은 바다라구요. 그리고… 빈틈 발견!!!”
갑자기 물 위로 쏙 올라와서는 물고기 얘기를 하는 유키에게 나기는 친절하게 웃으며 현지인 다운 멘트를 날렸다. 하지만 빈틈을 포착하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어쭈? 올라왔네? 넌 끝장이다. 이런 말이 들리는 것 같은 느낌으로 무자비하게 팔을 놀려 유키에게 물을 날린다. 엄지손가락까지 치켜들고 물고기 이야기를 하며 감탄하는 사람에게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싶겠지만… 뭐, 이건 방심한 쪽이 나쁘다는 걸로. 그렇게 한참 물을 뿌리다가 멈추고 당당하게 말했다.
빈틈 발견이라는 것에 소년은 그제야 자신이 방심했음을 인지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은 물싸움 중이었는데! 허나 다시 숨기에는 너무 늦었고 물이 날아왔다. 계속해서 날아오는 물 공격에 어푸어푸 소리를 내면서 물을 닦아내고 방어하려고 했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았다. 우선 그녀의 공격을 다 막아내려는 듯이 소년은 두 팔을 올려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우선 숨은 쉬어야겠다는 느낌으로 나온 방어 작용이었다.
물이 더 이상 날아오지 않자 소년은 두 팔을 내렸다. 현지인 비기 물뿌리기라는 말에 괜히 웃으면서 소년은 살며시 몸에 힘을 풀면서 자신의 몸을 바다 위에 띄웠다. 말 그대로 배영 자세였다. 그 상태에서 떠내려가지 않게 나름 조절을 하면서 소년은 하늘을 바라봤다.
"또 여기에 오고 싶은 위력이야. 그때도 미쿠모 양이라던가 친해진 다른 이들이 함께였으면 좋겠어. 진짜 돌아가더라도 여긴 안 잊을거야."
괜히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소년은 마치 해달이라도 된 것처럼 살며시 두 팔을 팔락팔락 움직이며 제 몸을 아주 가볍게 여기저기로 움직이다가 다시 몸에 힘을 줘서 물 밑으로 가라앉힌 후에 편안하게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다가섰다.
배영으로 둥둥 떠다니는 유키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또 여기에 오고 싶은 위력이라… 현지인으로서는 성공적인 위력이었다. 조금 뿌듯해진다. 돌아가더라도 잊지 않겠다는 말에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해변가로 시선을 돌렸다. 잊지 않겠다고 해도 언젠가 기억은 희미해지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할만큼 즐거운 추억을 가져간다면 뭐, 좋은 거 아닐까.
“그럴까요? 바위에서 쉬다가 갈 생각이었는데, 어쩌다보니 한바탕 해버렸네요. 하핫☆”
그러네. 원래는 바위에서 쉬다가 천천히 해변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물싸움으로 시간을 보내버렸다. 하지만 뭐 어때! 즐거웠는걸! 오랜만에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신나게 물놀이를 했으니까. 아아~ 옛날 생각나네~ 그땐 진짜 하루종일 이렇게 놀아도 체력이 남아돌았는데.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니, 무리하지 않게 천천히 수영해서 해변가로 향했다. 오늘 밤은 숙면할 수 있겠는데.
“하아- 오랜만에 바다에서 물놀이, 즐겁네요☆ 아, 보리차 드실래요 아사기리 씨?”
수건을 꺼내려고 가방을 들어 찾다가 물병을 보고 문득 생각난듯 물었다. 짠물에서 놀다 나왔으니 목을 축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즐거웠으면 된 거 아니겠냐고 이야기를 하며 소년은 해맑게 웃어보였다.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혼자서 놀면 느낄 수 없는 재미를 마음껏 즐기며 소년은 해변가로 천천히 돌아갔다. 처음에야 승부를 위해서 빠르게 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빠르게 수영을 할 필요가 없었다.
천천히,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앞으로 나아가니 해변가에 도착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철썩이는 파도가 등 뒤에서 밀어주기도 했으며, 발이 닿은 순간부터는 천천히 걸어서 나갈 수 있었기에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이 가능했다.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바닷물을 괜히 손으로 털어내며 소년은 파라솔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럴까? 그럼 한 잔 부탁해도 될까?"
즐거우면 다행이야. 그렇게 말을 덧붙이며 소년은 우선 자신의 가방에서 수건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일단 가볍게 자신의 상반신에 묻어있는 바닷물을 닦아냈다. 하반신은 조금 있다가 수영복을 벗을 때 닦아내도 되기에 아직 닦진 않으며 그녀에게 손만 내밀었다.
보리차를 따른 종이컵을 건네주고 자신도 종이컵에 보리차를 따라 마셨다. 아직 시원함이 유지되고 있는, 고소한 향이 나는 보리차가 꿀처럼 달게 느껴졌다. 역시 운동(?)한 후의 보리차는 맛있구나~ 여름엔 역시 보리차지! 다 마신 컵을 내려두고 수건을 꺼내 몸을 닦았다. 옷을 갈아입는 건 조금 있다가 할까.
“아사기리 씨가 편할 때 불러주세요☆ 나기는… 음… 바쁠 때도 있겠지만, 사실 이제 여름도 끝이 다가오고 있으니까 여유로울거에요. 아마도!”
아니면 아사기리 씨를 핑계삼아 슬쩍 도망나온다던가. 이건 말로 꺼내진 않았지만, 아마 집이 북적거릴때 약속이 잡힌다면 100% 써먹을 방법이다. 뭐 어때. 다른 때는 비교적 성실하게 카운터도 보고 일도 도우니까 이럴 땐 놀아도 된다구. 아무튼 물에 들어갔다 나오니 묘하게 나른한 느낌이 든다. 슬쩍 돗자리 위에 앉아 팔을 뒤로 해서 몸을 기댔다. 햇볕이 뜨끈하네~
그녀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하며 소년은 시원한 보리차를 입에 담았다. 물론 목이 크게 마른 것은 아니었으나 수영 후에 먹는 보리차는 또 별미였다. 여기에 수박도 있으면 좋겠지만 이미 도시락은 텅텅 빈 상태였으니 괜히 아쉽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수박이 들어있던 도시락 통을 바라보다가 그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외부인이 자기 딸 데리고 나가서 일 방해한다고 뭐라고 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여기서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낸 것이 미쿠모 양이니까 그렇게 한 번 또 부르고 싶은걸."
어차피 약속 이행을 해야했고 기념품도 사야했으니 그녀하고는 또 다시 만날 일이 많았다. 적어도 올 여름 추억은 가득 채우고 간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그녀의 앞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고 싶으면 자도 괜찮아. 적당히 시간 되면 깨워줄테니까."
수영이 끝난 후에는 어느 정도 쉬는 시간이 필요했다. 생각보다 근육을 많이 쓰고 체력을 많이 쓰는만큼 근육도 회복할 필요가 있고 체력도 채워져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아마도. 그냥 친구랑 놀러 간다고 하면 되겠지~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하면서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나기도 여행객 중에서 이렇게 친해진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돌아가고나면 조금은 쓸쓸해질지도 모른다. 아마도.
“엣☆ 아니에요! 잘 정도는 아니고 그냥 이렇게 쉬다보면 금방 나아질 거라구요☆”
바닷가에서 잠들었다간 오늘 저녁에 목욕할 때 엄청 쓰라릴 거야… 선크림을 발라도 피부가 타면 따끔따끔하게 아픈걸! 그리고 잠이 올 정도는 아니니까!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가볍게 웃었다. 그래, 이렇게 쉬다보면 금방 나아질 거야. 느긋하게 쉬면서 들려오는 말에 천천히 대답했다. 뭘 먹고 싶냐라…
“으음~ 여름이니까 역시 시원한 게 좋죠? 빙수도 좋고, 빙수가 없다면 안미츠라도… 아니면 그냥 시원한 음료도 괜찮구요☆ 아사기리 씨는요? 저만 먹을 순 없잖아요?”
"그렇다면 다행이야! 너무 체력을 많이 쓰고 그러면 졸리잖아? 나도 수영부 훈련을 좀 빡세게 한 후에 훈련을 마치고 집에 오면 얼마나 졸린지 몰라. 그래서 어떻게든 버티고 버텨서 일기를 다 쓴 후에 자거든."
다른 건 몰라도 일기를 쓰는 것만큼은 절대로 그냥 넘길 수 없다는 듯이 소년은 뿌듯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자신의 가슴팍을 가볍게 톡톡 쳤다. 물론 그것이 자랑할 것은 아닐지도 모르나 소년에게 있어서 나름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일인 모양이었다.
일단 소년은 자신의 두 팔을 등 뒤로 해서 자신의 몸을 받쳤고 가만히 그늘 속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햇살을 맞이했다. 시원하면서도 따뜻함. 적절한 온도는 나른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물론 물 속에서 그렇게 오래 수영을 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나른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허니브레드가 있으면 먹어보고 싶어. 아니면 빙수! 이 여름에는 역시 빙수가 최고니까. 딸기 시럽이 올라온 것을 먹으면.. 그것만큼 별미도 없잖아?"
괜히 침을 삼키면서 소년은 두 팔을 다시 올린 후에 빙수를 먹는 시늉을 하면서 키득키득 웃어보였다. 물론 도시의 카페만큼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여기도 나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며 소년은 그 모습을 나름대로 상상했다. 여름의 집 같은 곳일까.
“우와… 굉장하네요, 아사기리 씨는. 나기가 그랬으면 그 날은 일기 건너뛰고 바로 잤을텐데.”
꾸준히 일기를 쓴다니, 아니, 꾸준히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작은 쉬워도 꾸준히 하기란 어려운 법이니까. 뿌듯한 표정을 짓는 것도 이해가 간다. 충분히 자랑해도 좋을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감탄하는 말을 하며 슬쩍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앗, 딸기 시럽이라니. 아사기리 씨 딸기 좋아하는구나.
“딸기 맛있죠! 나기도 딸기 시럽 좋아해요☆ 허니브레드도 일단 있기는 있을 걸요? 아무리 지방이라고 해도 그런 건 당연히 있다구요~”
자주 가는 카페에 분명 있었던 것 같다. 유명한 프랜차이즈 카페보다는 덜해도 일단 있기는 있으니 분명 다음에 먹을 수 있겠지. 그나저나 먹는 시늉까지 할 정도면 얼마나 먹고 싶은 거야. 저절로 웃음이 키득키득 나와버린다. 음, 다음주. 다음주라.
"하지만 일기를 안 쓰고 자버리면 그 다음날 쓰려고 할때 기억이 안 날지도 모르잖아? 다 추억이고 언제까지나 기억하고 싶으니까 결국 쓰게 되더라구."
괜히 팔짱을 끼면서 자신은 그렇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있는 일기장만 해도 대체 몇권인지. 지금은 박스에 집어넣어서 보관중이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으며 소년은 말을 마쳤다. 물론 오늘 있는 일도 일기로 남길 생각이었다. 매일매일. 그 하루하루를 언젠가 수많은 시간이 지나면 기념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아무튼 허니브레드가 있다는 말에 소년은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어지간하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가끔 없는 곳도 있긴 했으니까. 특히 시골은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와나미가 시골이라는 것은 아니나 자신이 살던 치바와 비교하면 확실히 적은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튼 그 사실에 안심하며 유키는 괜히 기대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허니브레드! 그리고 점심을 먹고 만나는게 좋지 않겠어? 가볍게 디저트 먹는 거니까. 그리고 대충 둘러보다가 집에 가면 딱 좋을 것 같은데."
그럼 다음주 언제가 좋을까 생각을 하며 소년은 근처에 꺼내뒀던 핸드폰을 집어들었고 달력 앱을 켰다. 딱 일주일 후. 그러니까 7일 후의 날짜를 가리키며 소년은 그녀에게 그 날짜를 보여줬다.
내민 핸드폰에는 달력 어플이 켜져 있었다. 가리키는 날짜는… 응. 다행히 아무 예정 없는 날이었다. 여행객이 더 오면 바뀔 수도 있지만 어쨌든 지금은 말이다. 나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괜찮아요! 그럼 그 날 만나는 걸로 해요! 점심 먹고 나서 2시에 만나자구요! 으음, 일기… 그래도 꾸준히 쓰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니까요? 나기는 초등학교 이후로 써본 적도 없구.”
그것도 방학 마지막 날에 몰아서 한달치를 전부 쓴다던가, 그런 식이어서. 그 날 일어났던 일을 기록한다기보단 가상의 방학(…)을 만들어내서 작성했다는 느낌이다. 일기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꾸준히 하려면 역시 성실함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아사기리 씨는 엄청 성실한 사람이 분명하다! 나기랑은 반대야!
“그래도… 나중에 다시 보면서 추억을 되살릴 수 있다는 건 좋은 것 같네요. 나기도 일기 시작해볼까나☆”
하지만 분명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그만두게 되겠지!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그냥 해보는 소리에 불과했다.
“으음~ 그럼 매일은 무리라도 좋은 일이 있던 날은 쓸게요! 오늘 같은 날은 적어두고 나중에도 떠올리고 싶으니까☆”
앗, 역시 초등학교때 일기는 다들 제대로 안 쓰는구나!(?) 묘한 동질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검사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뭔가 거부감이 있으니까. 그래서 나도 방학 때 쓰기 싫어했던게 분명해. 아무튼 그런거임. 속으로 그렇게 우기며 고개를 마저 끄덕이다가, 고기라는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고기? 정말 제대로 놀러 왔군요, 아사기리 씨.
“고기요? 으음~ 나기까지 먹으면 양이 모자라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집에 가서 저녁 먹으면 되니까요!”
고기는 좋지만 두 명이 약속을 하고 만난 것이 아니라 우연히 마주쳐서 함께 놀게 된지라, 아무래도 챙겨온 고기의 양은 1인분이겠지. 그런데 거기서 눈치없게 얻어먹으면 양이 줄어서… 음 뭐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둘 모두에게 적은 양이 될 테니까. 여기서는 빠져주는 것이 예의겠지. 응. 어차피 저녁은 집에서 먹어야 하기도 하고.
“아, 취사는 가능해요. 뒷정리만 잘 하고 가면 아무도 뭐라고 하진 않을 거라구요☆”
그렇게 말하고 가방에서 옷을 꺼내 걸치기 시작했다. 햇빛에 대충 말랐으니까, 수영복 위에 입어도 되겠지. 어차피 집도 근처고. 벗을 땐 바위 뒤에서 벗었지만… 음… 뭐 입는 거니까 상관없겠지. 아, 집에 가는 김에 일단 물어나 볼까. 문득 든 생각에 유키를 보며 물었다.
“아사기리 씨, 혹시 뭐 더 필요하세요? 바비큐 할 때 말이에요. 옥수수라던가 곁들일 야채라던가? 집에 있는 거 몇 개 갖다 줄까요?”
"양이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같이 먹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서. 아무튼 그렇다고 하면 알았어."
집에 가서 저녁을 먹으면 된다고 하는 것에 소년은 굳이 토를 달지 않았다. 그녀에겐 그녀만의 사정이 있을 수도 있는 거였으니까. 무엇보다 자신을 배려하는 것이니 그 배려는 고맙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고기를 좀 더 많이 가지고 올 걸 그랬나. 그렇게 생각을 하긴 했으나 지금 와서 사는 것은 조금 그렇기에 아쉬움은 접어두기로 하며 소년은 알았다는 의미를 담아 더 말을 하진 않았다.
취사는 해도 된다는 말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소년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자신은 자신 나름대로 조금 더 이렇게 쉬었다가 고기를 구워서 먹고 온천으로 돌아가면 되겠거니 생각을 하다 곧 그녀의 물음에 소년은 그녀를 바라보면서 침묵을 지키다가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그렇게 먹으면 좋긴 하겠지만, 그건 내가 너무 미안한걸. 미쿠모 양이 같이 먹는 것도 아니니까. 그러니까 그건 언젠가 미쿠모 양과 내가 바베큐를 하게 되면 그때 받을게. 나는 고기를, 미쿠모 양이 야채를 준비하면 딱 맞을 것 같거든. 이렇게 언젠지 모를 시간도 예약하고 싶은데 괜찮을까?"
말 그대로 그건 기약없는 약속이었다. 자신이 돌아가고 나면 다시 여기로 돌아올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은 그런 기약없는 약속이라도 지금은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소년은 자고로 지키지 못할 것 같은 약속은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런 기약없는 약속을 하는 것은 조금 특이한 케이스였다.
잘 모르겠지만 일단 받아두자. 그리고 언젠가 바비큐를 하게 된다면 그때 준비해서 만나면 되는 거겠지. 태풍이 오기 전까지 못한다면 뭐… 정말로 언젠가는 하겠지. 태평하게 그렇게 생각하며 나기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문답이 오가는 사이 옷도 다 걸치고, 이제 갈 준비는 끝나 있었다.
“그럼 나기는 이만 가볼게요! 아사기리 씨 바비큐 잘 하시고, 맛있게 드시고 가세요. 중간에 필요한 거 있으면 저쪽에 나기네 집 있거든요? 와서 말하면 된다구요!”
가방을 메고, 그렇게 말하면서 저쪽, 집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뭐, 슈퍼는 아니고 그냥 숙박업소지만 그래도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빌려줄 수 있다. 뒷집 사토 아저씨네서 준 야채도 엄청 많고. 쭈욱 기지개를 켜고서는 그대로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러면 일단~ 일주일 뒤에 다시 만나요, 아사기리 씨! 오늘 즐거웠어요!”
바이바이~☆ 그렇게 덧붙이고 해변을 나가 집으로 향했다. 아직 살짝 나른한 기운이 감돌고, 귓가에는 언제나의 파도소리가. 그래도 오늘은 언제나보다 조금은 즐거운 날이었지.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걸린다. 오늘은 돌아가서 일기라도 적어볼까.
곧 야옹이 사장님이 밥 달라고 뛰어들지도 몰라. 그 모습도 귀여울 것 같지만! 아이고. 그럴 땐 물을 마시면서 푸는게 제일 좋더라. 나도 이번주는 살짝 무리했는지 오른쪽 손목 부분이 살짝 움찔거리는 느낌이야. 사실 수요일부터 그러긴 했는데 징조가 보여서 무리를 안하고 업무 속도를 줄이니까 나아지긴 하더라. 남은 업무는 다음주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엄청나게 잘 잤다고 하니 다행이야! 야숨? 젤다 말이야? 되게 오랜만에 듣는 타이틀이네! 옛날에 재밌게 한 기억이 나는걸! 아무튼 가끔 그럴 때가 있긴 하더라! 뭔가 꿈을 꿨는데 무슨 꿈인진 모르지만 아무튼 엄청난 그런 꿈! 나도 아와나미 스레를 한창 돌릴 때는 아와나미에 간 적이 있었지! 바다에 뛰어들려고 하니까 꿈에서 깨버렸어. 엉엉
덩달아 나도 슬퍼졌어... 아 아무튼... 곧 4월이네! 4월이라하면 역시 만우절이지! 스레 배경이 여름방학이니 만우절은 안 나오겠지만... 그래도 궁금하니 물어보겠다! 유키는 만우절에 한 일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이라던가 궁금하다구! 참고로 나기는 서고 다니는 친구와 교복을 바꿔입고 등교한 적이 있었다!(?
동고와 서고가 있는 시점에서 그 장난은 예상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했었구나! 유키 일기 중학교 2학년 4월 1일을 펼쳐보면 교실의 앞뒤를 바꿔버리는 장난이 적혀있어! 책상과 의자도 반대로, 교탁도 반대로, 사물함도 반대로. 물론 칠판은 못 떼니까 그건 그대로 두고. 그렇게 교실을 반대로 바꿔버렸었지. 물론 선생님께 무진장 혼났다고 적혀있어!
시골집에 내려갔을 때 이것저것 싸주는 할머니가 떠올랐어. 물론 차가 있으니까 바리바리 다 싸서 가져오긴 하지만 가끔은 배가 터질 정도로 가져가라고 해서 곤란할 때가 있었지. 나기가 겨울방학때 올 수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괜찮을 것 같아. 유키가 놀라서 어버버버하는 장면이 절로 떠올랐어.
사실 마음 같아서는 같은 캠퍼스 생활도 해보고 싶긴 하지만 이건 아무래도 겹쳐지기 정말 로또에 가까운 확률 같으니까 내가 포기하겠어. 유키가 일년 정도 휴학을 한 후에 아와나미에 와서 생활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 귀촌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년 정도 자취를 한다거나 그런 건 있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물론 현실은 또 온천 일꾼이겠지만!
어어. 유키는 일단 기본적으로 치바에 있는 대학에 다닐 예정인데 나기가 거기로 넣을 일이 있을까?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 그런데 나기는 지금까지의 모습을 보면 먼 곳에 가서 대학 생활을 하려고 하진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 하지만 어쩔 수 없는걸! 친척집이 온천을 하니까. 먹여주고 재워주고 돈까지 주는데 일해야지!
사실... 초반엔 그랬지만 지금은 뭐... '아빠가 도시에 있는 대학에 가는 걸 허락해줬어요!'라고 하면서 원서 넣으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졸업하고 도시에서 취업하는걸 꿈꿨지만 어림도 없지 아와나미로 돌아와서 그냥 가업을 이어야하고... 나기쟝은 절망하게 되는데...(???
가난한 대학생은 집을 따로 구할 수가 없는 것이에오. 일년이나 나기네 집에서 숙박할 수도 없는걸. (눈물) 앗. 그렇게 해도 괜찮다면 같은 캠버스도 괜찮을 것 같아! 물론 유키 입장에선 엄청 깜짝 놀라다 못해 당황하는 느낌이 되겠지만 그 또한 재미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 그렇게 대학 신입생으로 들어오면 도시 구경 시켜달라고 유키를 끌고 다니는 나기의 모습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지기도 하네.
ㅋㅋㅋ도시 구경! 확실히 그럴 것 같아! 도시에서 즐길 수 있는 건 전부 즐기려고 하는 나기가 분명 유키를 이리저리 끌고 다닐지도 모르겠네. 카페나 동물원이나 수족관 같은 곳도 가보고 싶어할 것 같고... 그렇게 놀러만 다니다가 어느 날은 유키한테 '레포트가 너무 어려워요!!'하면서 울상으로 도와달라고 할지도 몰라(? 그때까지 소원권을 쓰지 않고 아껴두고 있었다면 아마 소원권까지 쓰면서 도와달라고 할지도...(???
2년이나 소원권을 안 쓰고 버티다가 그제야 쓰는 나기의 무시무시함에 유키는 크게 당황할 듯 하네. 하지만 흔쾌히 도와주긴 하겠지만 말이야! 그렇다면 일단 다음 상황은 태풍을 피하는 대피소가 되려나? 장소가 제약되는만큼 아마 대화로 대부분이 이어지겠지만 그게 또 하나의 재미일테니까. 가볍게 게임 같은 것을 해볼 수도 있겠네. 진실게임이나 가위바위보나 핸드폰 멀티게임 정도밖에는 안 떠오르는 내 아이디어 뱅크가 원망스럽다..
나는... 음 그닥 좋은 하루는 아닌 것 같아... :( 고양이 중성화 시기가 와서 미리 예약하고 오늘 아침부터 병원을 갔는데 수술 전 검사에서 심장에 이상 소견이 있다고 그러길래 키트로 검사했더니 양성이 나와서 내일 심장초음파 촬영하기로 했거든. 그냥... 음... 사실 아직 실감이 안 든다고 해야하나 뭔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해야하나... 그렇네... 약간 멍한 상태야...ㅎㅎ...
물론 쉽진 않다고 생각해. 하지만 주인이 그렇게 어둡게 있으면 반려동물도 그 마음을 알아챈다고 하더라. 일단 나기주도 맛있는 거 먹고 푹 쉬면서 조금 힐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해. 아무튼 밥 달라고 호통. ㅋㅋㅋㅋㅋㅋ 뭔가 귀여운데 안쓰러워.
뭐라고 해야할까. 조제. 그걸 보러 갔다왔거든. 개인적으로 책으로 재밌게 본 이야기라서 조금 궁금하긴 하더라구. 내가 기억하는 것과 조금 다른 느낌이긴 했지만 그래도 재밌게 잘 보는데 번역이 어쩌니, 사투리가 어쩌니, 그림체가 어쩌니 하면서 앞에서 궁시렁궁시렁하다가 칼날이 어쩌고 저쩌고 이러쿵저러쿵 하면서 목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어.
당연히 나도 화나긴 했는데 그렇다고 거기서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걍 무시하면서 어떻게든 끝까지 봤지! 사실 되게 어설프게 일본어를 알고 있는 이들 같아서 뭔가 안타깝더라. 아무튼 야옹이 사장님이 상당히 시끄러운 아이로구나. 그래도 나기주의 마음은 야옹이 사장님도 잘 이해해줄거야!
하지만 그렇게 깨우면서 옆으로 파고들어서... 고륵고륵하면 자동적으로 손이 나가서 쓰다듬게되고... 그러면 따끈하고 부들부들해서 이불 밖으로 나오기가 더 어렵고.. 고륵고륵 골골송 듣다보면 또 잠이 와서 결과적으로는 알람을 미루고 더 늦게 일어나게 되니까... :3 결과적으로는 아침을 방해하는 셈이야! 이건 결코 내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다!(당당(?
마스크에 이어서 상황극에서도 거리두기를 시행하게 될지도 :3 5인 이상 집합금지라던가 2미터 간격 거리 유지처럼? 아니면 일상 중에 자연스럽게 QR체크인이랑 체온측정이 나온다던가ㅋㅋㅋ
근데 진짜... 벌써 옛날 방송들 재방 보다보면 거리에서 마스크 안 쓰고 다니는 사람들 나올때마다 기분이 묘해지더라. 어색하다고 해야하나? 뭔가 벌써부터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거에 익숙해져서 안 쓰는 쪽이 이상해보이는 느낌이야. 이러다간 정말로 캐릭터들도 마스크를 끼고 거리두기를 하는게 자연스러운 날이 올지도 모르겠어 :3
그런 상황극 싫어어! 5인 이상 집합금지라니! 아무도 이벤트를 할 수 없게 되잖아! 아와나미로 치자면 매년 있는 축제도 할 수 없어!! 근데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뭔가 마스크 안 끼는 옛날 방송을 보면 많이 어색해졌어. 뭔가 마스크를 씌워줘야 할 것 같고 그런 느낌 있잖아. 괜히 그런 생각이 들더라. 확실한건 마스크를 끼고 거리두기를 하면서 살아야한다면 유키는 진짜 엄청 답답해하고 힘들어할 것 같아.
갱신~ :> 그 뒤로 푹 쉬었더니 지금은 많이 나아젔다구! 아직 조금씩 어지러울때가 있긴한데 잠깐 그러다 마니까~ 그래도 쓰러졌을땐 진짜 무서웠어ㅋㅋㅋ 몸은 가만히 있는데 막 놀이기구 탄 것처럼 휙휙 돌아가는 느낌이고 쓰러져서 누워있는데도 안 멈추고... 다시는 겪고싶지않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멀미하는 기분이야...
퇴근하고 돌아왔다! 갱신할게! 아무튼 나기주는 그 이후로 푹 쉬었다고 하니 다행이야! 원래 몸이 안 좋으면 푹 쉬고 그래야 하는거야. 그 기분 어떤지 알 것 같아. 나도 그럴 때가 있었거든. 아이고. 이대로 죽는구나 싶은 공포감. 엄청 무섭지 않았을까 절로 걱정이 되네. 그래도 일단 푹 쉬었다고 하니 다행이고 하루 빨리 건강해지길 바라!
그럼 좋은거잖아! 푹 쉬는것이 얼마나 좋은건데! 오늘은 어린이날이라고 하지? 나기는 뭘 하면서 보낼지가 궁금해졌어! 유키 같은 경우엔 아마 자신의 사촌동생들에게 붙들려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하루가 되지 않을까 싶어. 영화관에 가서 어린이 만화도 보다가 놀이터도 데려가주고 그러다가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그런 느낌으로!
창문을 매섭게 두드리는 빗소리에 섞여 간간이 천둥 소리도 들린다. 어제부터 눅눅하게 습기를 머금은 바닷바람과 거칠어진 파도로 짐작했지만-사실 라디오나 아침의 TV 뉴스에서 지겹게 듣기도 했지만-아무래도 오늘은 하루종일 태풍이 몰려올 예정인 것 같다. 뭐라고 했더라. 크기도 크고 세기도 센데 속도가 느려서 지나가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했던가. 덧문을 닫자 빗소리가 조금 줄어들었지만 창문이 덜컹거리는 소리까진 지워지지 않았다.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 나가면 머리가 엉망이 되니까 귀엽지 않은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매년 아무 일도 없으니까 그냥 집에 있으면 안되나~ 그치만 만약이라는게 있으니까 어쩔 수 없나. 약간의 귀찮음을 섞어 투덜거리면서 1층으로 내려갔다.
조금 더 정리를 하고 갈 테니 먼저 가 있으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비옷을 걸치고 우산까지 챙겨들어, 그야말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현관을 연다. 그리고 만반의 준비가 우습다는 듯 세찬 빗줄기와 바람이… …매년 보는 거지만 이 수평으로 내리는 비(?)는 볼때마다 놀랍다니까. 뭐, 그래서 비옷을 입은 거지만. 우산은 펴봤자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그저 부러지기만 할 것 같아 그냥 접은 채로 터벅터벅 대피소를 향해 걸었다. 조금 경사진 언덕에 위치한 곳이다. 바닷물이 넘쳐도 영향을 받지 않을 만한 장소. 대피소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여러 사람들이 보인다. 비교적 태평한 얼굴, 아니면 지루하다는 얼굴을 한 사람들은 현지인이다. 매년 겪는 일이라 아마 태풍이 지나간 후의 뒷정리가 귀찮다는 생각을 하고 있겠지. 불안한 얼굴로 핸드폰을 만지거나 밖을 신경쓰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건 여행객일 확률이 높지. 이것도 늘 보던 풍경이다. 나기는 어느 쪽인가 하면 익숙해진 쪽이니까! 여유롭게 돗자리를 펴고 자리를 만들어 앉아서 가방에서 이것저것 꺼내들었다.
“음~ 트럼프가 있으니까 신경쇠약*이라도 할까.”
매년 하는 거지만 솔직히 대피소에서만 하고 평소에는 잘 안하니까, 실력은 언제나 제자리다. 기록 갱신을 목표로!하기에는 그렇게 열심히 하고 싶지는 않은데. 그저 심심풀이니까~ 일단 카드를 늘어놓고 잠시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다가… 어라, 아는 얼굴이 있다. 슬쩍 손을 흔들면서 아는 체를 해본다.
슬슬 개학이 다가오고 있고 유키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마 다음주 쯤이면 집에 가야할테니 슬슬 마을 사람들과 인사를 하는 것이 좋겠거니 생각을 하고 있었건만 날씨는 그 뜻을 전혀 이해해주지 않았다. 태풍이 올라온다더니 생각보다 빗줄기도 거세고 천둥벼락에 바람도 몰아치고 있어 유키는 순간 당황했다. 자신이 살던 치바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비바람이었다. 더 무서운건 자신의 고모와 고모부는 아 또 왔네 정도의 표정만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얼떨결에 대피소로 향하자 유키는 더욱 당황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모두 태평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이 정도 태풍은 여기선 아무 것도 아닌건가 싶어 자신이 잘못된 것인지 유키는 저도 모르게 눈동자를 흔들면서 침을 삼켰다. 오기 전에 온천을 보니 물이 범람한 것을 넘어서서 아주 난리가 났던데 정말로 괜찮은건지. 지금 이 사람들을 찍어서 SNS에 올릴까 했지만 뭔가 그 그림이 이상할 것 같아 유키는 애써 그 충동을 자제했다.
"아. 미쿠모 양."
그러는 도중 갑자기 아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자 유키는 고개를 돌려 나기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그녀도 여기에 있을 수밖에 없겠구나라고 납득을 하며 그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너무나 태연해보이는 그녀의 표정을 빤히 바라보던 유키는 난감한 웃음소리를 내며 그녀에게 물었다.
"비가 엄청 오는 정도가 아니라 왕창 아니야? 지금 이 태풍 괜찮은 거 맞아? 나중에 다 끝나고 나가면 막 집이 무너지고 물바다가 되어있고 그런 거 아니야?! 왜 다들 이렇게 태평할 수 있는거야?!"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당황하고 호들갑을 떠는 것은 유키 혼자 뿐이었다. 적어도 그가 사는 치바에선 이 정도의 비바람을 보는 일은 잘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난감한 웃음소리와 함께 호들갑이 섞인 말이 주르르륵~ 아~ 알죠~ 알아요~ 운 나쁘게 태풍이 올라오는 날과 겹쳐서 여행을 온 손님들이 자주 하는 말이니까~ 걱정이 섞인 랩(?)을 하듯 말하는 아사기리 씨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응,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그래도 지금 나기의 표정은 태평하게 웃고 있지만. 일단 아사기리 씨를 향해 진정하라며 손짓했다. 워워. 진정하라구요.
“아하하☆ 그건 그렇네요~ 바람도 많이 불어서 완전 옆으로, 수평으로 비가 내리니까요☆ 우산도 그냥 날아갈 정도고. 음, 그래도 의외로 집은 튼튼하고 물바다가 된다고 해도 발목 잠기는 정도가 최대일걸요? 그나마도 집 안까지 물이 들어차는 경우는 드물고. 그리고 다들 태평한 이유는 매년 있는 연례행사 같은 느낌이니까요?”
실은 대피소에 올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혹시 모르니까 가라고 해서 온거라구요☆ 태평한 소리를 하나 더 얹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 늘어놨던 카드를 치우고 나기의 맞은 편을 톡톡 두드리며 아사기리 씨에게 권했다. 두 명이라면 신경쇠약이 아니라 도둑잡기도 할 수 있겠어!
“아, 마침 잘 됐네요 아사기리 씨! 저 심심해서 트럼프 카드로 놀려던 참인데, 같이 하실래요?”
그렇게 권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창문으로 번쩍하는 빛이 비치고 곧바로 큰… 아니, 상당히 큰 천둥소리가 울려퍼졌다. 이야, 이거 바로 근처, 아니 아니, 바로 머리 위에 벼락이 떨어진 것 같은 큰 소리인데. 배꼽 달아나겠는걸? 귀가 조금 먹먹해질 정도였어…! 그나저나 외지인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카드놀이를 권하는데에 최악의 타이밍일 것 같다. 실제로 주변을 보면 여행객들은 다들 자기들끼리 소근소근하며 불안한듯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으니까. 반대로 나기를 비롯한 현지인들은 ‘에 또야?’같은 얼굴이고. …다들 태평하네~
“…으, 귀 먹먹해라☆ 아무튼 뭐, 너무 걱정말자구요. 이번 태풍은 속도가 좀 느리다고는 했지만, 어차피 지나갈 테니까☆ 지나간 다음의 뒷정리는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어쩔 수 없잖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만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인가 싶어 유키는 더욱 크게 당황했다. 자신이 사는 치바라면 그 정도만 해도 바로 난리가 날 것이 분명했기에 유키의 혼란은 더욱 커져가고 있었다. 이 바닷가에선 이게 일상인건지, 아니면 이 사람들이 너무 태평한 것인지 유키로서는 도저히 답을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대피소에 올 필요도 없다는 그 말에 유키는 더더욱 혼란을 느끼면서 순간 현기증을 느꼈는지 몸이 비틀했다.
"대, 대단하구나. 바닷가 사람들은. 내가 사는 도시라면 이 정도만 해도 집에서 나오지 말라고 안내방송을 하고 태풍 경보를 보낼 거야. 아무튼 트럼프?"
생각도 못한 제안에 유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천둥소리가 들리자 유키는 두 귀를 꽉 막고 얼얼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적으로 주변을 바라봤지만, 대체로 태평한 표정이었기에 유키는 애써 태평한척 하기 위해 숨을 골랐다.
"무, 무서워서 그러는건 아니야! 그냥 혼자 가만히 있으면 심심하니까 하는 거야! 알지?!"
괜히 그렇게 부정을 해보이나 과연 상대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아무튼 유키는 자리를 잡고 앉았고 그녀를 바라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치우는 게 고생이니 가급적 물이 차지 않았으면 하지만☆ 아무튼 이 정도 비와 태풍은 매년 찾아오는 거니까, 그렇게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피소로 오는 동안 몸이 젖는 게 싫어서 집에 있고 싶을 정도인데. 어쩐지 아사기리 씨의 몸이 비틀거린 것 같다. 앗, 혹시 대피소까지 길이 너무 멀어서 몸이 너무 젖었나?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인데. 여름 감기 의외로 독하고 말이지. 추워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비바람이 부는데다 대피소 안은 상대적으로 서늘하기도 하고. 가져온 가방을 뒤적여 담요 하나를 꺼냈다.
“아, 추우세요? 이거 쓰실래요? 뒤집어 쓰고 있으면 심리적 안정에도 좋을 거예요, 아마☆”
천둥소리에 귀를 막고 얼얼한 표정을 지은 것도 나기는 다 봤다구요! 하지만 아사기리 씨를 위해 이 말은 아껴두는 걸로 하자. 아무튼 순순히-아무래도 무서워서 그러는 것 같지만- 자리를 잡고 앉아준 아사기리 씨를 향해 다 안다는 뜻을 품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요, 트럼프! 엥, 아사기리 씨 신경쇠약 모르세요? 같은 짝 찾는거요. 둘이서 하면 누가 더 많이 찾나로 겨루지만 혼자서 하면 얼마나 빠르게 찾는지 기록을 갱신한다는 느낌으로 하는 거라구요. 하지만 둘이니까 다른 걸 해도 좋겠네요. 도둑잡기도 괜찮고, 포커는 어려워서 잘 모르지만…”
아사기리 씨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걸 해도 괜찮아요, 그렇게 덧붙이고 손에 쥔 카드들을 다시 섞었다. 차르륵하는 소리가 제법 좋단 말이지, 이거.
천둥소리에 놀랐다는 것을 애써 감추려는 듯이 유키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허나 담요를 완전히 포기하고 싶진 않았는지 눈길을 담요 쪽으로 살며시 돌렸다. 덮으면 조금은 나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그는 결국 일단 몸만 덮겠다고 이야기를 하며 두 손을 내밀었다. 춥진 않았으나, 그래도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심리적 안정에는 좋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알고 있긴 한데 혼자서 하는 사람은 잘 못 봤거든. 보통은 내기를 하고 둘이서 하잖아?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난 혼자서 해 본 적은 없어. 조금 신기하네."
확실히 그런 거라면 혼자서도 할 수 있겠다고 스스로 납득하며 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어차피 여기에 있어야 할 시간은 많았으니,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도 좋겠지만, 지금은 도둑잡기가 조금 더 끌렸는지 그는 도둑잡기를 제안했다.
"좋아. 그렇다면 소원권을 걸고 도둑잡기야. 이번에는 반드시 이길거야!"
물론 그녀와의 내기는 2전 2패였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라도 따내면 소원권 하나를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이래보여도 나, 포커페이스는 은근히 자신 있어서 어지간하면 도둑잡기는 안 지거든. 너는 어때? 미쿠모 양?"
“대피소에 안 오고 집에 있는 사람들도 꽤 많거든요. 제 친구들도 대체로 그렇고. 그래서 대피소에서 혼자 시간 보내려면 이런 카드게임 정도는 해야겠더라구요. 그치만 확실히 혼자서 하면 중간에 질려서 많이 안 하게 되긴 하지만… 아무튼 올해는 두 명이서 하는 게임이니 작년보다는 낫겠네요!”
아, 담요는 결국 가져가는 거군요! 담요를 건네주고 도둑잡기를 하자는 말에 카드를 파파팍 섞었다. 그나저나 또 소원권? 아사기리 씨, 소원권 두 개로는 부족했던건가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카드를 나눠 아사기리 씨 앞에, 그리고 나기 앞에 놓았다. 포커페이스에 자신있다고 주장하는 아사기리 씨, 하지만 나기도 만만치 않거든요?
“후훗☆ 나기는 포커페이스를 넘어서 나기페이스라구요! 아사기리 씨, 이번에도 각오하시는 게 좋을 거라구요? 이번에도 진다면 나기의 소원, 세 개나 들어줘야 할 걸요? 램프의 요정 급이라구요?”
덧붙여서 아직도 소원은 뭘로 할지 정하지 못했다. 아니지, 아예 세 개를 채워놓고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그렇게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기가 몇 초간, 나기는 카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시작할까요! 각오하세요, 아사기리 씨!”
나기 몫의 카드를 들어 짝이 맞는 것을 빠르게 버려갔다. 두 장, 네 장… 점점 버려지던 카드가 멈췄다. 손에는 5장의 카드가 남아 있다. 이제… 심리전 시작인가! 하지만 나기는 자신있으니까! 선심쓰듯이 카드를 든 손을 살짝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먼저 뽑아도 괜찮아요, 아사기리 씨. 자, 뽑으시죠!”
/도둑잡기니까... 카드 5장에 조커가 1장! .dice 1 5. 돌려서 1이 나오면 조커인걸로 하자! 조커가 아닌 걸 뽑으면 카드를 버리니까 주사위 눈이 점점 줄어가는거지... ...이렇게 하면 될라나?
물론 하나를 없앤다고 해도 소원권은 또 하나가 남아있지만 두 개를 들어주는 것보다 하나를 들어주는 것이 그나마 나을테고 잘하면 오히려 모두 없앨 수도 있을 거라고 유키는 계산을 끝냈다. 물론 그것이 성립할지는 지금까지 모든 내기에서 전패한 유키로서도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하나 정도는 없애기로 생각하며 유키는 게임을 제대로 신청했다.
두 사람이 하기에 카드는 생각보다 빠르게 줄어들었고 남아있는 것은 총 다섯 장의 카드. 여기서부터는 말 그대로 심리전과 운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크게 망설이면 될 것도 안되는만큼 유키는 일단 자신만만하게 한 장을 뽑아냈다.
"그렇다면 나는 이것으로 하겠어!"
물론 그게 조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건 여기서는 조커를 뽑지 않는 것이 그나마 유리한 것이었고, 빠져나갈 가능성이 큰 법이었다.
"그러고 보니 미쿠모 양. 나 말이야. 다음주에는 다시 돌아가야 해. 치바로."
슬슬 개학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야한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유키는 카드를 확인했다. 과연 이 카드는 무엇일지 그는 절로 침을 삼켰다.
/그렇게 해도 좋지 않을까 싶어! 그럼 카드 드로우! .dice 1 5. = 1 여기서 1이 걸려버리면 유키의 운은..(눈물)
당당하게 아사기리 씨가 뽑아간 카드는… 바로 조커였다! 마치 이름을 적으면 죽는 노트라도 손에 넣은 것처럼 씨익 웃었지만… 곧 들린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에, 벌써?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아니, 그렇게 됐구나. 하긴, 벌써 태풍이 올라오고 있으니. 여름이 끝나간다는 신호나 다름이 없는 거지.
“하하-! 감사합니다 아사기리 씨☆ 바로 조커를 가져가시다니, 정말로 램프의 요정이 되고 싶으신건가요☆ …흐음, 뭐어, 그렇네요. 태풍도 올라왔고, 조금 있으면 여름도 끝날테니까…”
하지만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점이었다. 뭔가… 이번 여름방학은, 이번 여름은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그래서 즐거워서, 어쩐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태풍이 오고, 여름이 끝나가고… 아사기리 씨도 이제는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으으, 나기는 갑자기 그런 말을 들으면…!
“…아아~ 다음주면 아사기리 씨랑도 이별이네요. 아쉬워라. 그러면 이번 태풍이 정말 무사히 지나가길 빌어야겠네요. 그렇게 흔하진 않은데, 몇 번인가 있긴 했거든요. 태풍 때문에 선로가 망가져서 복구하는데 몇 주 걸린다던가.”
괜히 그리 말하면서 카드를 집으려고 하는 손이 잠시 방황했다. 마음의 평정심을 잃은 건지, 치바로 돌아간다는 말이 그렇게 동요할 일이었나. 남의 일처럼 그렇게 생각하면서 카드를 집어 확인했다.
물론 말도 안되는 변명일 뿐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렇게나마 항변했다. 자신의 손에 잡혀있는 조커가 원망스럽다는 듯이 눈동자가 크게 뒤흔들렸지만 애써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하나 이미 얼굴에서는 표가 다 났을 것이다. 그러던 와중 나기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유키는 순간 당황했다.
"뭐? 선로가 망가지기라도 해? 그건 곤란한데. 다다음주에는 개학을 하니까 적어도 다음주에는 돌아가야 하는데.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부모님에게 데리러 와달라고 해야하나."
물론 고모네에게 차를 얻어타서 돌아갈 수도 있었기에 사실상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여럿 있었다. 다만 역시 선로가 끊어지거나 망가지는 것은 원치 않는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유키는 나기가 뽑는 카드를 바라봤다. 조커를 피해가고 페어를 만들어서 없애버리는 것에 괜히 아쉬움을 느끼면서 유키는 괜히 카드를 손으로 꽈악 잡았다.
"나도 아쉬워. 여기에서의 생활, 꽤 재밌었는데. 기회가 되면 또 올게. 그게 언제가 될진 지금으로서는 장담이 힘들지만 말이야. 돌아가면 입시 때문에 공부를 해야할테니까."
고3 생활이라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유키는 우선 카드를 뽑았다. 당연히 조커는 자신에게 있었으니 또 한 장을 없앨 뿐이었다. 이제 자신이 들고 있는 카드는 총 3장 뿐이었다.
/생각해보니 여기서 유키가 무난하게 한장을 뽑아가서 또 줄어들었을테니 유키는 3장, 나기는 2장이 아닐까? 조커를 빼서 카드 수는 짝수여야 하니까! 아무튼 조커는 유키에게 있으니 다이스를 돌리지 않겠어!
“네에☆ 일단은 그런 걸로 해둘게요. 음, 아주 드물게 있으니까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에요. 단지 그럴 수도 있다는 거고… 아, 그치만 이번 태풍, 강한데 속도는 느리다고 했으니까… 또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번에도 무사히 지나가지 않을까? 최근에는 매년 그랬으니 말이야. 태평한 현지인 마인드로 그렇게 생각하며 아사기리 씨의 손에 들린 3장의 카드에 집중했다. 자아, 어느 쪽이 조커일까… 어느 걸 뽑아야 할까. 왼쪽? 오른쪽? 아니, 가운데? 슬쩍 아사기리 씨의 안색을 살피지만 음, 잘 모르겠어! 그리고 입시 이야기 때문에 잠시 정신에 타격이 들어왔다. 으으, 그런 현실적인 이야기라니!
“아아, 입시… 으윽, 나기도 이제 머지 않았네요. 아사기리 씨의 입시가 끝나고 나면 나기 차례인가아… 뭐, 기회가 된다면 또 와주세요. 다음에 올 때도 온천 쪽에서 지내실 건가요? 저희 집 숙소, 생각보다 괜찮은데. 다음에 오면 한 번 이용해주세요☆ 아사기리 씨는 특별 할인 해드릴테니까… 에잇!”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다…가 잽싸게 카드 한 장을 뽑았다. 잡담하는 척하면서 뽑기! 그야말로 허를 찔러서 포커페이스를 소용없게 만드는… …아니, 생각해보니까 딱히 메리트가 없는 전법인가? 아무렴 어때. 카드만 잘 뽑으면 됐지! 그리고 그렇게 확인한 카드는…
“나, 나기가 저주하는게 아니라! 라디오랑 TV 뉴스에서 그랬다구요!! 아무튼… 이걸로 게임 끝! 나기의 승리네요!!”
잽싸게 낚아챈 카드는 조커가 아니라… 나기가 든 카드랑 페어인 카드였다! 시원하게 남아있던 카드를 홀랑 모두 버리고 두 손을 펼쳐서 팔랑팔랑 흔들었다. 이걸로 나기의 승리! 아사기리 씨는 램프의 요정 지니가 되었다! 기뻐하는 건 기뻐하는 거고, 정리는 정리지. 주섬주섬 다시 카드를 긁어모으고, 아사기리 씨가 내민 카드를 받아 들었다.
“그래서 소감은 어떠신가요, 램프의 요정 지니 씨? 아하하하☆ 아니 그치만 설마 또 나기가 이겨버릴 줄은~ 소원 생각하는 것도 일이네요 일~”
엄청나게 얄밉게 들릴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기분이 좋으니까 아무 말이나 하고 싶다! 어차피 아사기리 씨도 장난스럽게 얘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돈은 받는구나?라는 말에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런거죠. 자영업의 세계는 냉혹하다구요. 물론 농담이에요! 친구니까요! 하루 정도라면 돈은 안 받을게요. 그나저나 정말이네요. 3전 3승. 나기, 의외로 승부에 재능이 있을지도…!”
/어째선지 진짜 나기랑 유키가 내기를 하면 모두 나기가 이기고 있어... 어떻게 된거지...?ㅋㅋㅋㅋㅋㅋ
"그러게. 정말로 램프의 요정이 되어버렸네. 소원을 세 개나 들어줘야 한다니. 지니의 기분은 이제 알 것 같아."
괜히 알라딘 영화에 나은 지니 모션을 취하면서 유키는 장난스럽게 웃어보였다. 물론 소원을 세 개나 들어줘야 하는 것에는 아무런 불만도 없었다. 물론 너무 곤란한 것을 말하면 그건 조금 곤란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기가 그런 것을 바라진 않을 것 같다는 나름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그 믿음이 배신당할지, 아니면 보답받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럼 하루만 있다가 가야겠는걸? 고모네도 고모네지만, 자영업자에게 피해를 줄 순 없으니까. 하지만, 하루만 그렇게 하는 거 멋대로 정해도 되는거야? 부모님에게도 말해야 할 것 같은데?"
어쨌든 영업을 하는 것은 나기의 부모님일테니 나기가 멋대로 햇다가 나중에 한 소리 듣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하며 유키는 괜히 궁금증을 가지며 이야기를 했고 유키는 조금 더 편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녀와 이야기하고 게임을 한 덕일까. 조금 전보다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유키는 괜히 다리에 덮어놓은 담요를 더욱 꽉 눌러 자신의 다리를 가리면서 창문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그래서 소원은 뭘로 할 거야? 이제 진짜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가까워지니까 빨리 안 쓰면 날아갈지도 몰라."
괜히 쭉 아껴뒀다가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 쓴다는 선택지를 고르는 것일까. 그런 추측을 하기도 하면서 유키는 고개를 돌려 나기를 다시 바라봤다.
“괜찮아요~ 친구라고 말해두면 만사 오케이! 그리고 온천집네 친척이라고 하면 엄마아빠도 알 걸요?”
하루 묵는 걸로 피해까지야. 아무튼 문제없음! 아마! 아사기리 씨를 안심시키며 트럼프를 정리해서 넣었다. 아, 재미있게 놀았다. 노느라 빗소리도 잠시 듣지 못할 정도였어. 아사기리 씨도 아까 호들갑 떨던 때보다는 좀 안정된 것 같고. 역시 담요의 힘은 위대하다니까. 묵직하게 무게감이 있는 쪽이 좀 더 안정된다고 하지만 담요가 그렇게 무거우면 휴대하고 다니긴 어렵겠지… 잠시 다른 곳으로 새던 생각을 소원 쪽으로 되돌렸다. 맞다. 다음주에 돌아간다고 했지? 그럼 그 전까지 소원을 말해야 하는데! 으으!
“으앗!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으으~ 소원, 소원이라고 해도오… 으음…”
소원권을 얻은 건 좋은데 정작 어디에 써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지. 하지만 기한은 점점 다가오고 있고…!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지만, 으음, 음… 당장 떠오르는 거라고는…
“그럼 일단 첫 번째 소원! 나중에 다시 오면 그땐 하루 저희 집에서 묵는 거! 소원으로 확실히 해둘게요! 그리고 두 번째는… 태풍 지나가고 뒷정리 끝나고 나면 같이 카페에 가죠! 한숨 돌리자구요. 세 번째는… 아껴둘게요☆”
잠시 고민하다가 역시 킵해두기로 했다. 언젠가 아사기리 씨가 다시 올 때가 되면, 그때는 소원으로 뭘 할지 생각해두겠지? 미래의 나기, 부탁할게!
그렇게 말하며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어릴 때는 약속을 하면 꼭 하던 동작이지만 요즘은 잘 안하게 된 동작이다. 어기면 바늘 천 개 삼키기였던가, 지금 생각하면 무시무시하네! 3번째는 뭘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아껴두겠다고 했는데, 아사기리 씨의 말을 들으니 아차 싶었다. 아, 아니! 그런 의미는 아니었지만! 영원한 이별의 플래그는 더욱 아니었지만!!
“영원한 이별 플래그라니! 적어도 재회의 플래그로 해달라구요! 그래요! 그리고 혹시 모르잖아요? 아사기리 씨가 이쪽에 오지 않아도, 어느 날 나기가 갑자기 전화해서 ‘나기 지금 치바역이에요. 하루 재워주세요. 소원권 지금 쓸거에요.’ 라고 할지도 모른다구요?”
물론 농담이고 장난이지만. 나기에겐 그런 용기는 없다구요 아마~ 하지만 사람 앞 일은 모른다고,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뭐 아무튼, 영원한 이별보다는 재회의 플래그로서 이 소원권 하나를 남겨두는 걸로 하자. 애초에 영원한 이별 운운하기에는 아사기리 씨도 이쪽에 친척이 있고, 서로 사는 곳도 그렇게까지 멀리 떨어진 건 아니다. 비행기를 타고 며칠을 날아야 하는 정도도 아니고. 고개를 끄덕이는 아사기리 씨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매년 이 정도는 오니까요, 아마 내일 오전까지는 내릴 것 같네요. 후후후… 나기는 핸드폰이 없어도 지루하지 않게 트럼프라던가 챙겨왔지만요! 그치만 혼자서 하면 분명 지루했을 테니까, 아사기리 씨가 와줘서 다행이네요☆”
자랑스럽게 트럼프 카드를 들어올렸다가 다시 가방에 정리해서 넣었다. 그러다가 어쩐지 진지하게 들리는 말에 작게 웃었다. 아니이. 나중에 오면 꼭 들러달라고 말한 건 나기 쪽이긴 하지만.
“아하하☆ 엄청 진지한 느낌! 뭐어… 언제든 아사기리 씨가 편할 때 오면 된다구요. 언제든 말이예요. 자아, 그럼 재회의 약속도 했겠다. 이제 뭐 할까요? 마침 비도 오고 천둥도 치니까 무서운 이야기라도 할까요?”
/점심시간을 틈타... 답레를 놓고 갑니다... 어제 너무 피곤해서 갱신도 못했어.. ;ㅁ;
어쩌면 그녀라면 정말로 그렇게 치바로 찾아오는 일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면서 유키는 웃음소리를 내면서 그렇게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집에서 재워주기는 조금 힘들테니, 근처의 싼 숙박시설을 미리 알아두는 것은 정말로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괜히 핸드폰을 손으로 만졌다.
"매년 이 정도로 온단 말이야? 대단해. 내가 살던 곳에서 이 정도로 오면 난리가 날거야. 물론 내가 오버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내가 살던 곳에선 이렇게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일은 잘 없단 말이야."
바닷가 근처와 아닌 곳의 차이가 있는건지. 아니면 그저 자신이 잘 모르는 것인진 모르겠지만 유키는 다시 창밖을 바라봤다. 우르르쾅쾅! 정말로 강한 천둥소리에 몸을 움찔하나 그렇다고 고개를 팍 숙이지는 않았다. 역시 이런 소리에는 약한지 그는 고개를 괜히 저으면서 애써 창문에서 시선을 확 돌렸다.
"뭔가 분위기상 그렇게 말해야 할 것 같단 말이야. 재회의 플러그 찍었으니까 이런 말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아. 하지만 나 입시해야하니까 좀 많이 이후에 다시 올 것 같은데. 아무리 빨라도 입시가 끝난 이후의 겨울일까. 그럼 겨울바다를 볼 수 있겠네. 어떤 느낌일지 되게 궁금한걸. 여기는 눈 많이 와?"
하얀색 눈을 떠올리며 그는 하얀 해변가를 떠올렸다. 물론 자신의 상상과 다를지도 모르지만 상상은 자유였기에 그렇게 마음껏 상상을 하다 유키는 빤히 무서운 이야기를 거론하는 나기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괜찮겠어? 미쿠모 양. 무서운 것에 약하잖아. 전에 귀신의 집도 그렇고. 무리하는 거 아니야?"
/그렇다면 난 지금 답레를 올리겠어! 피곤할땐 하루 푹 쉬는 것도 좋은거야! 화요일이 끝났으니 또 주말이 금방 올거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르르 쾅쾅! 천둥소리가 난다. 누가 들으면 도시를 시샘해서 벼락이라도 떨어진 줄 알겠네. 이런 시끄럽고 눅눅하고 난리통인 이벤트가 별로 없다니 도시는 평화로워서 좋겠다. 이런 점에서도 도시를 동경하게 되다니, 이건 나기도 예상 못했다구!
“입시가 끝난 후의 겨울이라, 그 때면 나기가 입시 스타트인게 아닌지☆ 농담이예요! 입시 스타트라고 해도 겨울에는 여유 있을 시기니까☆ 아, 눈이요? 제법 오는 편이에요. 홋카이도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런 북쪽과 비교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지만 도시보다는 많이 오는 편이 아닐까? 그보다 유키… 유키 씨가 유키(눈)을 찾고 있어. …잠깐 그런 말장난을 떠올렸지만 이건 입 밖으로 내지 않는걸로 하자. 응.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다가 어쩐지 이쪽을 빤히 보는 시선 감지! 아사기리 씨… 왜 나기를 그렇게 빤히 보는… 설마 속마음을 읽힌건가?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다행이야.
“에이, 그때는 시각적으로 무리였잖아요? 그 녀석들, 무진장 생생하게 꾸며놓고…! 아, 아무튼 지금은 익숙한 공간(?)이고, 시각적으로도 무서운 것도 없고 괜찮다구요! 무리하는 거 아니라구요☆ 앗, 그렇지. 과자 먹으면서 할까요? 나기, 이것저것 챙겨왔다구요☆”
그렇게 말하면서 가방에서 자잘한 과자들을 꺼냈다. 혹시라도 싸우지 않게 버섯이랑 죽순도 하나씩, 와사비맛 과자, 사탕… 누가 보면 놀러 왔나 싶을 것 같은데 정답이다 연금술사! 연례행사에 간식 챙겨오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지?
“자! 이렇게 해놓고 하면 무서운 분위기도 한층 덜하겠죠!”
팔을 펼쳐서 과자를 내보이며 뿌듯하게 말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창문이 번쩍하더니 콰쾅!!하고 큰 소리가 울렸다. …이거 과자 소개가 아니라 무슨 매드사이언티스트가 실험체를 소개하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네. 나기도 이건 예상 못했어…
물론 직접 훗카이도에 간 것은 아니었으나 그곳과 비교해서 눈이 많이 오는 곳은 찾기 힘들지 않을까 유키는 추측했다. 아무튼 확실한건 눈이 많이 온다는 이야기였기에 혹시나 겨울에 또 오게 되면 그땐 다른 느낌을 받기 좋겠다고 생각하며 유키는 절로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 모습도 일기장에 꼭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와중 유키의 얼굴에 밝은 표정이 떠올랐다.
과자가 깔려지고 이런저런 분위기를 만드는 나기의 모습에 유키는 맞다는 의미를 담아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럴 때는 뭐라도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제일이었다. 다만 그렇다고 쳐도 먹을 것이 많은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으나 그만큼 그녀에게 있어선 익숙한 연례행사인 것으로 납득했다. 그 와중에 갑자기 창문이 번쩍하면서 콰쾅! 하는 소리가 울리자 유키는 순간 몸을 움찔했다.
"지, 지금도 분위기 엄청 살지 않아? 오히려 그때보다 더 분위기가 리얼리티즘인데?! 아무튼 내가 먼저 시작할게. 이런 건 먼저 하는게 좋으니까."
헛기침 소리를 내며 감정을 가라앉히면서 표정을 원래대로 돌리던 유키는 곧 이야기를 떠올리며 이야기했다.
"사실 무서운 이야기를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어디인진 모르겠지만 정말로 사이가 좋은 자매가 있었대. 얼마나 사이가 좋았는지 음식을 먹을 때도 정확히 절반으로 나누고 선물을 받아도 정확하게 절반으로 나눠가지기로 아주 우애가 좋은 자매였대. 자매끼리는 이렇게 지내야 한다고 모범적인 사례로도 소개가 되었는데 문제는 이 자매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일어났어. 글쎄. 이 자매가 똑같은 남자를 좋아하는 일이 벌어졌거든."
이야기를 나누면서 유키는 일부러 과자를 반으로 똑똑 잘라나갔다. 마치 정말로 자매가 과자를 반으로 똑똑 잘라서 나눠가지는 것처럼.
"자매는 말싸움을 하기도 하고, 서로를 미워하기도 하고, 일부러 그 좋아하는 남자를 자신이 차지하겠다는 듯이 행동하고 살벌해졌어. 하지만 그러다가 결국 자매는 생각하게 되었어. 자신들이 이렇게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아주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 있었으니까. 그래. 싸우지 않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하고 간단하고 또 간~~~단한 방법이었지."
이어 유키는 잔뜩 긴장된 표정을 지으면서 잠시 이야기를 멈추었다. 그리고 기습적으로 전기톱이 위이이이잉! 하는 소리를 입으로 내면서 기습적으로 놀래키는 것을 시도했다.
"그렇게 자매는 만족스러워하면서 결국 깨질뻔한 사이를 되찾았다는 그런 이야기? 하하하."
무서운 이야기를 그렇게 잘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유키는 말을 마치면서 난처한 웃음소리를 강하게 내뱉으면서 괜히 과자를 머금었다. 이어 유키는 나기의 반응을 살폈다.
/갱신할게! 잠깐 나갔다가 돌아오니 답레가 있어서 나도 올리겠어! 나기주가 있는 곳은 비가 많이 내리는구나. 여긴 비는 내리지 않지만 날씨가 흐릿하고 약간의 습기가 느껴져. 아마 내일 비가 주룩주룩 내리려는 징조인걸까.
천둥번개는 좀 치지만 그 정도로 호러 분위기라고 하기엔 뭔가 애매하지~? 아무튼 첫 시작은 아사기리 씨가 끊었다. 사이가 좋아서 뭐든지 반으로 나눠야 하는 자매의 이야기. 똑, 똑, 뚜둑. 과자가 반으로 나눠지는 소리가 묘하게 크게 들려 나기도 모르는 새에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앗, 과자가 맛있어 보여서는 아니다! 결코!
한참을 집중하다보니 이야기는 어느 새 클라이막스에 도달했다. 자매가 택한 간단한 방법은 그야말로 간단했던 것이다. 사이좋게 절반으로 나눠가지기. 기습적으로 들려온 위이이잉!하고 마치 전기톱을 흉내내는 듯한 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구나. 사람을 반으로 쪼개서 가지다니 어지간히 미치지 않고서야 낼 수 없는 결론! 그렇기에 괴담!
“간단하다면 간단한 방법이긴 하지만, 반토막이 난 시체를 가져봤자… 뒷맛이 찜찜한게 꽤 괜찮은 괴담이네요. 좋아! 그럼 이번엔 나기 차례네요!”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면서 슬쩍 자세를 바꿔 정좌를 하고, 슬며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의 적막함을 방해하듯 빗소리가 거세게 울린다. 이걸로 어느 정도 분위기가 잡혔으면 좋겠는데… 아무튼, 시작할까. 천천히, 나직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평소의 밝은 목소리와는 조금 다르게 낮은 톤으로.
“아사기리 씨도 아시다시피, 아와나미는 바닷가에 접한 마을이죠. 바다가 있으면 바다를 생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사람들이 있으면 으레 사고도 있기 마련이고요. 네, 아와나미에서도 생각보다 사고가 자주 일어났었대요. 요즘은 대부분 관광지에서 장사하느라 사고가 줄었지만, 과거엔 배를 타고 나갔기에 사고가 많았다고 해요. 배를 타고 나가 돌아오지 않는 사람은 바다에게 사로잡혔다고 해서, 오봉이 되어도 돌아오지 못한다. 그런 전승이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바다에게 잡힌 사람이 딱 하루, 돌아올 수 있는 날이 있대요. 그게 언제인가 하면…”
번쩍하는 빛이 가시고 몇 초 후에 울리는 굉음. 창문을 두드리는 거센 빗소리. 그것들에게 집중할 수 있게 잠시 말을 멈추고 아사기리 씨를 빤히 바라본다. 이쯤 되었겠지 싶었을 때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태풍이 오면 파도가 엄청 거칠어지고, 때로는 넘쳐서 해안가를 넘어 밀려올 때도 있어요. 바닷속에 있었던 쓰레기나 해초, 때로는 물고기도 파도를 타고 땅으로 밀려 올라오기도 하고요. 그리고… 바다에게 잡혔던 그들도, 올라오는 거예요. 아사기리 씨, 나기도 그렇고, 여기 사는 사람들이 어째서 대피소까지 오는 지 아세요? 물이 넘치면 위험하니까, 바람이 불면 위험하니까. 그런 이유라고 둘러대지만, 사실 아와나미에 지어진 집들은 대체로 바람이나 물에 대한 대책이 다 되어있다구요. 그런데도 집에 있지 않고 대피소까지 오는 이유는… 그들이 집에 찾아오기 때문이에요. 바다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던 사람들이 넘실대는 물결을 따라 뭍에 올라오는 날, 그리운 집을 찾아 돌아오는 날… 이런 태풍이 부는 날에는 확실하게 들리거든요. 거센 빗소리에 섞인…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그리고 바닥을 쿵쿵쿵! 세 번 두드리고서 아사기리 씨의 반응을 살폈다. 후후-! 나기의 괴담, 어땠을라나! 살짝 저리기 시작한 다리에 정좌를 풀고 편하게 앉아서 과자를 하나 집어들었다. 나기가 했지만 멋진 괴담이야. 특히 장소와 시기를 맞출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기도 나기에게 점수 80점은 주고 싶을 정도!
생각보다 밋밋한 반응에 유키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쓴 웃음소리를 냈다. 자신이 잘 표현하지 못한 것 뿐일테고 이런 이야기로 비명을 지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으니까. 애초에 괴담이라는 것 자체가 직접 눈으로 보여야 무서운 거지, 듣기만 하면 그런가 싶은 것이 많은 것도 원인 중 하나라고 그는 애써 생각했다.
아무튼 이번에는 나기의 차례. 아와나미의 전승 같은 것일까 생각을 하며 그는 귀를 기울였다. 확실히 아와나미는 바닷가니까 물 일을 하는 이가 많을테고 그러면 사고를 당한 이도 많을 거라는 것에는 유키도 공감했기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바다에게 사로잡혀서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돌아올수 있는 날이라는 말에 유키는 절로 침을 꿀꺽 삼켰다. 하필 그 타이밍에 굉음이 쾅쾅 울려서 유키의 몸이 순간 움찔했지만 그럼에도 호기심이 가는지 유키의 두 눈은 나기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오늘?"
태풍이 오는 날. 그것은 다름 아닌 오늘이었다. 바다에 사로잡힌 이들이 빠져나올수 있는 날이라는 말에 괜히 긴장감 어린 표정을 짓다가 대피소까지 이야기가 나오자 그 리얼리티함이 괜히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지 유키는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문을 두들기는 소리라는 말과 동시에 쿵쿵쿵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무섭다기보다는 괜히 놀랐다는 것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며 유키는 괜히 두 손으로 박수를 쳤다.
"분위기 제법 잘 사는데? 훨씬 리얼리티한 이야기야. 마지막만 아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정말로 그런 전승이나 전설이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거든. 아무튼 바다에 사로잡힌 사람이라. 수영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나라도 태풍 치는 날에 빠져나올 수 있다면 빠져나왔을거야. 물론 아무도 환영해주지 않겠지만."
이미 바다에 사로잡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면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돌아오고 싶은 사람들의 미련을 어느 정도 공감한다고 생각을 하며 그는 과자를 하나 집어서 먹은 후에 나기를 가만히 바라봤다.
"아와나미는 정말 사람들이 끈끈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사람이 적은 것도 그렇지만, 이런 시기에 이렇게 한 곳에 모여있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좋건 싫건 친분이 쌓일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괜히 부러워지는걸. 치바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이야기야."
/답레와 함께 갱신이야! 오늘도 비라니! 새벽에는 천둥벼락이 엄청 치던데 결국 낮에 또 비가 오네. 주말에는 나가서 놀고 싶단 말이에요!! 물론 수요일에는 날씨가 맑다고는 들은 것 같기도 한데.
“너무 현실같으면 너무 무섭잖아요? 특히 오늘 같은 날은 정말로 밖에서 듣고 있다가 자기 이야기인줄 알지도 모르니까, 끝은 엉성하게 맺는 편이 좋다구요☆”
농담을 섞어서 엉성한 마지막에 대한 변명을 한다. 아니 뭐, 그치만 괴담의 마무리라는건 의외로 어려운 일이고 말이야. 아무튼 어깨를 으쓱하고서는 과자 쪽으로 손을 뻗었다. 죽순 과자, 맛있어! 버섯도 좋지만 나기는 역시 죽순이 좀 더 좋다고~
“그치만 이런 날, 사납게 요동치는 바다를 보고 있으면 정말로 뭔가가 올라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긴 해요. 빨려 들어갈 것 같기도 하고. 당연히 위험하니까 가까이 가면 안 되지만요!”
그리고 수영을 아무리 좋아해도 바다에서 못 나오게 되어버리면 그건 좀 많이 곤란한 일이 아닌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과자를 우물거리느라 아무 말도 못하고 타이밍도 놓쳐버렸다. 대신 태풍이 올라온 바다를 봤던 일을 떠올리면 얘기하다가, 이쪽을 보는 아사기리 씨와 눈이 마주쳤다.
“에에… 좋건 싫건 친분이 쌓이는 거라던가, 끈끈한 거… 의외로 귀찮기도 하다구요? 건너 건너 다 아는 사이니까 비밀 같은 것도 별로 없고, 그래서 뭔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고… 나기는 적당히 거리 두고 사는 도시가 부러운데~”
/수요일은 평일이잖아! 주말에 맑은 날씨 줘어어... 유키주가 있는 곳도 비가 오는구나. 새벽에 천둥번개까지 치다니...
"파도 엄청 높지 않아? 이런 날씨엔 말이야. TV로만 봤지만 완전 크던데. 쓰나미 정도는 아니겠지만 말이야. 한번은 직접 보고 싶지만 지금 나가면 난리가 나겠지?"
호기심이 살며시 떠오르지만 아마 그랬다간 고모와 고모부에게 등짝 스매싱을 신나게 맞을 거라고 생각하며 유키는 괜히 키득키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보고 싶고 일기장에 쓰고 싶고 SNS에 올리고 싶어도 등짝 스매싱을 맞으면서까지 가고 싶진 않았다.
그 와중에 거리감에 대한 생각의 차이에 확실히 자신은 도시 사람이고 그녀는 이곳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며 유키는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다는 어투로 그 말에 대답했다.
"그래도 난 가끔 그런 것이 좋더라. 내가 사는 치바에선 오버하면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때가 많아. 솔직히 나도 내가 사는 빌라에 누가 사는지 다 아는 것이 아닌걸. 하물며 내가 사는 층에 있는 사람들 중 나와 그렇게 친한 사람도 없어서 정말 타인 그 자체야. 물론 여기에서 살다보면 나도 너처럼 생각할지도 모르겠네."
과자를 하나 더 먹으면서 유키는 고개를 돌려 대피소 안에 있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역시 아무리 봐도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신선한 풍경이라고 생각하며 그 상태에서 유키는 입을 열었다.
"이래서 도시 사람은 시골을 동경하고, 시골 사람들은 도시를 동경하나봐. 물론 아와나미가 시골인 것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곳보다 작은 규모긴 하니까. 그래도 난 이런 분위기가 좋더라. 여러 사람과 금방 친해질 수 있는 그런 분위기. 그러니까 미쿠모 양과도 친해지고 그런 거 아니겠어?"
/아니야! 수요일은 휴일이란 말이야! (눈물) 또 지금은 살짝 그치긴 했는데 아마 또 비가 오지 않을까 싶긴 해. 오늘은 계속 비가 온다고 들었거든.
“엄청 높죠. 해변가로 내려가면 위험하니까 좀 높은 지대에서 조금 떨어져서 봐야할 정도? 지금 나가면… …뭐 괜찮지 않을까요? 나기, 우비도 챙겨왔어요!”
슬쩍 주변을 둘러보고 아직 부모님도, 아사기리 씨의 친척분들도 오지 않은 걸 확인했다. 음, 나가려면 못 나가는 것도 아니긴 한데… 하지만 주변에 있는 현지인들이 나중에 슬쩍 말을 전해서 어떻게든 알려지긴 할 테니, 결국 혼나는 걸 아예 피해갈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걸 각오하고 있다면, 나기가 우비 정도는 지원해줄게요! 뭐, 고개를 저으며 웃는 걸 보니 아사기리 씨도 진짜로 하려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나기도 장난스레 말한 거지만.
“으음, 그치만 나기는 그런 게 편해 보이는 걸요. 앗, 그치만 도움이 필요할 땐 조금 곤란하려나… 으으… 서로 동경한다니. 도시에는 뭐든 있으니까, 나기는 도시가 더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러네요… …그렇네요. 그런 분위기라서 아사기리 씨랑 친해질 수 있었던 걸지도.”
생각해보니 완전 시골 사람처럼 굴었었어! 나기! 도시에서 왔다고 두근두근하면서 찾아갔었지! 완전 시골 사람이잖아! …어쩔 수 없지. 시골 사람인 건 맞으니까. 뒤늦게 찾아온 부끄러움에 잠시 고개를 푹 숙였다가 슬금슬금 다른 과자로 손을 뻗었다. 부끄러울 땐… 과자를 먹자…
“…앗, 그럼 치바에서는 대피소 안 쓰나요? 태풍… 이렇게 오는 일은 드물다고 했으니 태풍이 올 땐 안 쓰겠지만, 뭐… 지진이라던가? 그럴 때는 쓰지 않아요?”
"아하하하. 아무리 그래도 그건 사양할게. 나중에 어떻게든 전해질 것 같고 그러면 다시는 여기 못 올 것 같거든. 아니. 그건 오버일지도 모르지만 미쿠모 양도 혼날 수도 있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녀가 혼나는 상황까진 만들고 싶지 않다는 듯이 유키는 두 손을 휘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명백한 거절 의사를 보이면서 유키는 그저 창밖의 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천둥벼락이 치는 상황 속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 위험한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방금 말한대로 막상 도움을 요청하려고 해도 요청하기 힘들어. 물론 아는 사람이면 상관없는데 모르는 사람이면 딴데 가서 알아보라고 문전박대를 하는 일도 흔하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여기는 정말 대단했지. 온천에서 일하는데 굳이 구경오는 사람도 있고 말이야."
아주 살짝 나기를 겨냥하듯이 이야기를 하면서 유키는 보란듯이 키득거렸다. 물론 이후에야 내는 불평이 아니라 그저 장난스러운 어투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조금 놀란 것도 사실이었다. 도시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지진은... 대피소로 갈 정도로 크게 온 것은 그다지 본 적이 없었어. 그리고 대피소로 간다고 해도 딱히 말은 하지 않고 핸드폰만 바라보다가 끝나면 바로 돌아가니까. 주변에 말을 걸고 그런 이는 본 적이 없었어. 물론 친구들끼리 만나면 말을 하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이고 그러니까 어색함만 가득하거든."
이전에 대피소로 갔던 기억을 떠올리며 정말 아무런 말도 없이 조용했던 침묵의 공간을 체험했던 것을 떠올리며 유키는 한숨을 약하게 내쉬며 고개를 크게 저었다.
"미쿠모 양이라도 그런 분위기는 굉장히 싫을걸?"
/나기주 수요일에 일하는거야? (눈물)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거야?! 공휴일인데! 공휴일인데! 할 수 없이 내가 나기주 몫만큼 놀고 쉬어야겠어. (도주)
“으윽… 아, 알고 있어요. 나기도 알고 있다구요. 완전 촌스러운 짓이었다는거! 그치만 궁금했는걸!”
과장을 섞어서 허둥지둥대며 둘러대지만, 과장을 섞은 만큼 장난이기에 나기는 지금 웃고 있다. 그래, 웃고 있는 것이다! 절대 부끄러워서가 아니야! 장난이니까 웃는 거야! 아, 아무튼. 일부러 그렇게 말하다니 아사기리 씨도 정말…!
“흐음, 상상해보니까 정말… 음, 조용해서 좋을 것 같기도 하지만 뭔가 쓸쓸하기도 하네요. 싫다기보다는 뭔가 외로울지도…”
너무 거리가 가까운 것도 귀찮지만 너무 먼 것도 외로워서 좀 그럴지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어쩌면 나기는 도시를 동경하는 것보다는 그냥 지금 상태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사는 걸 동경했을지도 모르겠어…라고 잠깐 생각했지만, 도시에 귀여운 게 더 많은 건 사실이니까 도시를 동경하는게 맞는 것 같다. 어째 얼렁뚱땅 결론을 내려버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한 번쯤은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네요☆ 귀여운 것도 많을 거고, 아와나미에선 이웃 사이가 가까웠으니까 한 번은 좀 이웃 간의 교류가 적은 것도 체험해보고 싶다구요☆”
네가 추구하는 귀여움. 그렇게 말을 덧붙이면서 유키는 더욱 보란듯이 키득거렸다. 장난끼가 제대로 발동했는지 그 웃음소리는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허나 어떻게든 겨우겨우 멈추게 하면서 유키는 과자 하나를 집어서 입에 넣은 후에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 은근히 대피했다가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니까. 물론 나에게 있어선 그게 당연한 거였으니까 크게 뭐라고 느끼진 않았지만 여기서의 모습을 보면 그건 또 아닐지도 모르겠어. 미쿠모 양이 없다고 해도 아마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었을 것 같거든."
그냥 자신의 생각은 그렇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유키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나기에게 한 가지 방법이라면 방법일 수 있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입시를 성공해서 도시 대학으로 진학해보는 건 어때? 그러면 적어도 몇 년은 도시에서 살 수 있잖아. 대학이 그렇다고 하는데 가지 말라고 할 수도 없을 거 아니야. 그러다가 나중에 정말로 미쿠모 양이 살고 싶은 곳에서 살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물론 공부를 정말로 열심히 해야할 거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을 유키는 잊지 않았다. 아무래도 도시에 상대적으로 수준이 높은 대학이 많으니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쩜 이리 짓궂을 수가! 아주 보란듯이 키득키득, 장난끼 가득한 웃음을 흘리는 아사기리 씨를 흘겨보지만, 시작은 나기가 한 촌스러운 짓 때문이니 크게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그저 부끄러움에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기 위해 손부채질을 할 뿐이었다.
“아무튼… 그건 그렇네요. 대학이라… 그치만 나기, 공부는 자신이 없는데에…”
대학 생활을 도시에서 한다니, 제법 매력적인 제안이다!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도시에 가겠다는 일념 하나만을 가지고 훌쩍 떠나기엔 무리겠지. 대학에 합격을 해야 가든 말든 할 테니까. 하지만 도시에 있는 대학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공부를 할 수 있을까…? 이제부터라도 마음을 잡고 하면 될까? 계속 자신이 없다는 생각만을 되풀이 하고 있을 때 들려온 질문에 잠시 다른 화제로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나이스 질문, 아사기리 씨!
“아와나미에는 없고, 전철로 좀 가야 있어요. 하지만 그쪽도 전문학교지 대학은 아니고… …사실, 나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집에서 일할거라 잘 알아보진 않아서…”
갈 수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도시를 동경하면서도 여기에 쭉 머무르려고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대학인가. 오늘 아사기리 씨에게 들은 걸로 어쩌면 도시에 있는 대학을 가기 위해 준비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게 된다면 꽤나 늦은 시작이 되겠지만, 그래도…
“그치만 오늘… 아니, 내일부터 제대로 알아봐야겠네요! 조금 늦었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래도… 되면 좋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죠 뭐☆”
"아직 고등학교 1학년이잖아? 그럼 할 수 있어. 해보지 않고 그때 할 걸 그랬어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일단 해보고 실패하는 것이 그나마 낫지 않아? 시도하지 않으면 가능성은 정말로 0으로 끝나버리니까."
매사 후회없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고 싶다는 그의 지론이 살며시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물론 유키는 나기의 성적이 어떤지 아는 바가 없었다. 허나 방금 말한대로 시도를 하지 않는 것보다 차라리 시도를 하고 실패를 하는 것이 나중에 후회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에 그는 그렇게 나기에게 권유했다. 물론 그녀가 그것을 받아들일지의 여부는 자유였기에 유키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한편 대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유키는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대학은 조금 큰 지역에 가야 있는 법이니 아와나미에는 대학이 없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허나 전철로 좀 가야 있는 것조차도 전문학교 정도라면 대학에 진학하는 순간, 그녀가 아와나미를 떠나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살이었기에 그는 그녀도 이 사안에 대해서는 조금 고민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라고 판단했다. 허나 그것도 잠시. 대학에 대해서 알아보겠다는 그녀의 말에 그는 웃으면서 엄지를 척 위로 올렸다.
"그 말대로야. 되면 좋고,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가능성을 0으로 두기보단 조금이라도 높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거든. 그렇기에 나는 여기에 왔고, 미쿠모 양도 만났고 다른 친구들도 만날 수 있었어. 아. 물론 돌아가면 얼굴 보기 힘들어지겠지만 그래도 요즘은 라인이 있으니까."
그것으로 연락하면 되겠거니 생각을 하며 곧 긍정적으로 마인드를 바꾼 그는 과자를 하나 입에 넣으면서 천천히 씹었다. 비는 여전히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고, 천둥벼락도 규칙적으로 치고 있었다. 허나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이 유키도 더 이상 움찔하거나 떨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잠은 여기서 자는걸까? 대피소에서 이렇게 오래 있던 적은 없어서 모르는게 많아. 나중에 고모와 고모부와 합류해서 물어봐야겠네. 일단 내가 있는 곳은 온천이니까 물이 넘쳐서 집에 잠기지 않을까 그게 걱정인데. 문을 닫고 왔으니까 그나마 분리가 되서 나으려나. 아. 하지만 그러면 문을 열면 물이 쏴아아악하고 쏟아질 것 같아서 무서운데."
어쩌면 온천이 아니라 대형 수영장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우스개소리를 하면서 유키는 나기를 바라보면서 슬며시 제안했다.
"조만간에 온천에 한 번 더 올래? 서비스 정도는 해줄게."
/마찬가지로 좋은 주말이야! 나기주! 오늘은 날씨도 좋아서 나갔다 왔는데 기차를 타고 내리자마자 코로나 알람이 어후... 무섭더라. 볼일만 보고 빠르게 도망쳐왔어.
“그렇네요☆ 요즘은 라인이 있으니까 멀리 있어도 연락할 수 있잖아요. 영상통화도 되고. 연락할 방법이야 많으니까.”
그래도 옆에 있는 것보다는 확실히 덜하겠지만… 어쨌든 수단이야 많은 것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구☆ 이렇게 대화를 하고 과자를 집어먹는 동안에도 빗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지긋지긋하다 이제. 누군가는 이 소리를 일부러 틀어놓고 잠들기도 한다지만, 솔직히 이렇게나 많이 들으면 지긋지긋한데. 비바람도 전혀 그치질 않고,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서 자야겠는데. 그렇게 생각하기가 무섭게 아사기리 씨의 말이 들렸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전혀 그치질 않았으니까… 집에서 자는 게 좋은데에. 여기서 자고 일어나면 등이 아픈데에. 아아, 맞다. 아사기리 씨네는 온천이었죠. 큰일이겠네요. 뭐어 물이야 배수구로 빠져나가겠지만 정말 골치인 건 가지라던가 잎이라던가, 그런 것들이겠네요. 배수구를 막기라도 하면 아사기리 씨 말대로 문을 열었을 때 물이 쏴아아악…라던가☆”
어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뜰채로 이파리며 가지들을 하나하나 건져낼 걸 생각하면 너무 힘들어! 나기네 집은 온천도 노천탕도 없어서 다행이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슬쩍 아사기리 씨를 향해 힘내라는 눈빛을 보냈다. 힘내요, 아사기리 씨. 집에 돌아가기 전에 좋은 추억거리가 생겼다고 생각하면서…
“앗, 그럴까요? 그럼 서비스로 딸기우유 주는 건가요? 역시 목욕 후에는 딸기우유죠!”
/엣... 주말.. 일요일... 내 일요일은 왜 지금 시작한거지...? 잠으로 보냈더니 손해본 기분이야...
물이 배수구로 다 빠져나간다고 하더라도 필시 여러가지 쓰레기들이 있을테니 청소하기 힘들테고 물이 안 빠지면 그 물을 다 닦아내고 처리해야하니 유키로서는 그리 희망적인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매사에 충실하고 열심히 살아가고자 하는 그였으나 무조건 모든 것을 다 좋게 보긴 힘든 탓이었다. 여러모로 골치아픈 미래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괜히 싫은 표정을 지으며 유키는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보너스로 용돈 더 줬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그럴리는 없고 하루 정도 닫고 싹 청소할지도 모르겠네. 기왕이면 내가 간 후에는..무리겠지."
비가 그치자마자 바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한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하며 유키는 결국 포기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로 경건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괜히 키득키득 웃으면서 다시 편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지금 걱정해봐야 의미가 없고 힘만 빠질뿐이었기에.
"딸기우유? 그걸 원한다면 줄 수도 있긴 한데 그럼 목욕 직후에는 먹기 힘들걸? 내가 여탕으로 들어갈 수도 없잖아? 다 나온 후에라도 괜찮다면 얼마든지. 그런데 보통 우유는 목욕이 끝난 직후 먹는게 제일이지 않아?"
만약 그녀가 남자였다면 자신이 들어가서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었으나, 여탕 안으로 들어서는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그렇기에 그렇게 받아치면서 유키는 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살며시 천장을 바라봤다. 분명히 저 위에선 빗줄기가 거세게 쏟아지겠거니 생각을 하다 고개를 아래로 내린 유키는 나기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정말로 올래? 치바에. 온다면 여기저기 데려가줄게. 그렇게 보고 싶은 도시 속으로 말이야. 우리 집에서 재워주는 것은 말을 해봐야겠지만... 그래도 여기서 제일 친하게 지낸게 너니까, 나도 그 정도는 해주고 싶거든. 처음 만날 때 보여줬던 그 뽑기 기계가 있는 곳이라던가."
장난스럽게 말하는 것과는 달리 이번에 낸 목소리는 진지했다. 정말로 한번 오라는 듯이 초대를 하면서 그는 눈을 감으면서 그녀의 답을 기다렸다.
/내 일요일도 이것저것 처리하다보니 다 지나가버렸어. 에잇! 몰라! 지금부터는 완전히 쉴거야!!
그렇다고 나기에게 힘든 일을 하겠냐고 물어본다면 대답은 NO!겠지만. 남의 일이니까 이렇게 웃으며 위로를 할 수 있는 법이다. 암. 아무튼 상상하니까 정말 힘들겠네. 배수구를 치우고 넘친 물을 빼고… 넘친 물만 뺄까, 노천탕이면 아예 물을 다 빼고 치워야 할지도 모르는데. 정말 고생이겠네. 아사기리 씨가 싫은 표정을 짓는 게 정말 이해가 간다. 앗, 갑자기 경건한 표정이 되었어. 아사기리 씨… 해탈했어?!
“아사기리 씨가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앗, 그야 다 끝나고 나온 후에 달라는 얘기였다구요! 끝난 직후에 먹는 게 좋긴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일반 목욕탕과는 다를 테니까, 아마 나와서 먹어야겠지 응. 애초에 그걸 생각하고 한 말이었는데! 뭐 아무튼 목욕이 끝나고 밖으로 나와 살짝 몸을 식히면서 마시는 우유도 맛있으니까. 상상만 해도 침이 꼴깍 넘어갈 정도. 그런 상상을 하다가 치바에 올래? 라는 말에 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고개를 돌려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 아사기리 씨를 보았다. 헉, 치바에?!
“지, 진짜요? 치바에 가면 아사기리 씨가 여기저기 데려가 주는 건가요?! 도시에…”
가보고 싶다. 사진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눈으로 직접 이것저것 보고 경험해보고 싶다. 하지만 한번도 여길 떠나본 적이 없는데, 괜찮을까? 하지만 가보고 싶어 역시.. 하루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그, 그리고 나기, 대학도 생각해보기로 했으니까… 갈 수 있을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미리 한 번은 가봐야 하지 않을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결심하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갈게요. 언젠가 꼭 놀러갈테니까! 당장은 무리고,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꼭 놀러 갈게요!”
/ Q. 나기쟝 도시 가는거 꺼려하고 있지 않았나용 A.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유키쟝의 영향으로 나아지지 않았을까요... 사실 중간중간 텀이 길어지다보니 나기쟝의 아이덴티티가 실시간으로 붕괴하고 있는 중임다... :3
"알았어! 그렇다면 다 끝나고 나오면 대접해줄게! 물론 내가 그때 일이 없어야할텐데 말이야."
물론 어지간하면 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일이었다. 갑자기 배달 일이 생겨서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로 가야할지도 모를 일이었고, 손님이 많이 몰려와서 안내를 맡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다른 일하는 이에게 부탁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직접 주고 싶다고 생각을 하며 유키는 괜히 그때는 아무 일도 없길 바라면서 속으로 기도했다.
"물론 일정을 맞춰야겠지만 당연히 데려갈거야. 치바까지 왔는데 혼자 돌아다니라고 할 순 없잖아? 도시는 아무래도 여기보다는 훨씬 복잡하니까. 잘못하면 길을 잃을 수도 있고, 그러다보면 나중에 돌아갈 때 전철을 놓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밤 늦은 시간에 노숙을 해야할 수도 있고. 이것저것 다양한 것을 하고 싶긴 해도 노숙만큼은 하고 싶지 않더라.'
길거리에서 신문지를 깔고 자는 체험 따윈 정말로 하고 싶지 않은지 유키는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아무튼 확실한건 나기는 조금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라는 점이었다. 처음 만났을때도 도시에 대해서 그렇게 관심을 보이던 그녀였기에. 하지만 정말로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었기에 그는 답을 기다렸고, 곧 그녀의 입에서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자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웃음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얼마든지! 편할 때 언제든지 찾아와! 내가 학교를 졸업한 이후라면 하룻밤 정도는 방에서 재워줄 수도 있을 것 같아. 난 졸업하면 바로 방을 하나 얻어서 독립하려고 생각 중이거든."
물론 계획이 그대로 진행될진 알 수 없었으나 일단 그렇게 생각 중이라고 이야기를 하며 유키는 편한대로 하라는 듯이 그녀에게 말을 이었다. 그러다가 괜히 궁금증을 느끼면서 유키는 나기에게 물었다.
"어딜 제일 가고 싶어? 미쿠모 양은?"
/원래 캐릭터를 굴리다보면 점점 바뀌기도 하고 붕괴되기도 하고 그러더라구! 그래서 나는 그냥 편한대로 돌리고 있어. 바뀌는 것은 이 캐릭터에게는 이런 면도 있다라고 생각하면 편하더라! 아무튼 나기주도 늦잠을 잔 모양이구나! 나도 오늘은 제대로 늦잠을 잤어. 일어나니까 11시 30분이더라. 평소에는 늘 7시대에 일어나는데 다이렉트로 푹 잔 것을 보면 한 주 동안의 내 피로가 컸던 모양이야. 나기주도 피로 잘 풀길 바라!
“길을 잃는 건 확실히 걱정이네요… 도시에서 길을 잃는다니… 늦은 시간에 노숙… 그대로 나쁜 사람에게 잡혀가서 평생 양지로 나올 수 없는 삶을 살게 되는… 무서워! 도시 무서워!”
일부러 호들갑을 떨며 장난스레 말했지만, 확실히 도시에서 길을 잃으면 얼마나 막막할까. 든든한 길잡이로 아사기리 씨가 있을 테니 걱정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 혼자 가면… 도시는 멋있고 가고 싶은 곳이지만 무서운 곳이니까! 눈 뜨고 코도 베이는 곳이라고 했는 걸! 앗, 언제 가게 될지는 모른다고 했지만 그렇다면 아사기리 씨가 독립한 후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 숙박비가 굳는다!(?)
“아무래도 그때쯤 갈 것 같네요. 내년은 아사기리 씨가 수험이고, 그 다음해는 나기가 수험기간이니까. 전부 끝나고 나서 가는 쪽이 좋을 것 같고. 앗, 나기는 말이죠 꿈의 나라! 그 성이라던가 캐스트들 전부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구요! 그리고 랜드도 좋지만 씨도 가고싶고, 쿠주쿠리 해안도 가보고 싶어요! 그리고 귀여운 걸 파는 가게들도 가보고 싶고!”
전부 갈 수 있을까? 그래도 전부 가보고 싶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치바(?)니까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보고 싶다. 질문은 어딜 제일 가보고 싶냐는 것이었지만 답은 어째 가고 싶은 곳을 나열하는 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하나만 고르기엔 다 가보고 싶어서 어쩔 수 없다고!
물론 옛날에는 그런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이 시기에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유키는 확신했다. 자신이 사는 곳은 관광객들도 많이 온다면 많이 오는 곳이고, 그만큼 치안이 잘 지켜지는 곳이었으니까. 물론 가능성은 제로가 아니었기에 그녀를 혼자 돌아다니게 할 생각은 없었다. 일단 그녀를 안심시키는 것에 집중하면서 그는 그녀의 답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겠네. 고3인데 편하게 놀수만은 없으니까. 지금 말한 곳. 가능한 선에서 전부 같이 가줄게. 꿈의 나라도 좋고, 해안도 좋고, 팬시샵을 가는 곳도 좋을 것 같으니가. 물론 팬시샵은 잘 안 가서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미쿠모 양이 오기까진 어떻게든 알아볼게!"
일단 돌아가면 여러 팬시샵을 들려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유키는 자신의 집 근처, 혹은 조금 떨어졌지만 사람들이 많이 오는 광장을 떠올렸다. 알게 모르게 많았으니 하나하나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괜히 즐거움과 기대를 섞은 눈빛을 보이면서 키득키득, 즐거운 웃음소리가 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솔직히 1박 2일은 조금 힘들걸? 치바에 올 때 몇 시인지도 중요하니까. 아마 미쿠모 양이 전부 즐기려면 2박 3일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도 조금 아슬아슬하게 돌아갈 것 같긴 한데."
당장 랜드만 해도 1박은 필요할테니 유키는 절로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허나, 어느 쪽이라도 그녀의 스케쥴도 중요했기에 그는 마지막 남아있는 과자를 입에 넣으면서 이야기했다.
"너무 오래는 곤란하더라도 짧게라면 괜찮아. 일단 미쿠모 양네 부모님에게 허락부터 받아야겠네. 딸을 혼자서 도시로 보내줄지도 알 수 없으니 말이야."
/맞는 말이야! 덕분에 진짜 푹 잔 것 같아. 하지만 토요일 저녁이라는 것이 너무 슬퍼. 다음주 주말을 벌써부터 기다려야하는 처지가 되다니!
과연 부모님이 허락해주실까?까지 생각이 닿자 조금 전까지의 기운펄펄 텐션상승이 스르륵하고 거품꺼지듯이 사그라들었다. 나기 혼자 가는 거 허락해줄까…? 그, 그치만 수험 다 끝나고 나서 가는 거라면… 그때쯤엔 대학생(?)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고 잘하면 치바 쪽 대학에 갈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허락 없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마지막 과자가 사라지는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으, 응. 분명 괜찮을거야…?
“괘… 괜찮지 않을까요…? 수험도 다 끝나고… 호, 혹시 치바 쪽 대학 붙은 다음에 가게 될지도 모르니까… 으으, 그래도 허락은 받아야겠죠. 받을 수 있을까…”
약간 시무룩하면서도 손을 뻗어 뒷정리를 시작했다. 과자 봉지와 상자들을 차곡차곡 정리해서 가지고 온 비닐봉지에 담아 잘 묶고 다시 가방 안으로. 나중에 가져다 버려야지. 아무튼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이 무슨 날벼락! 아니, 날벼락은 아니지만. 분명 언젠가는 허락을 받아야 할 일이었지만…
"그야 치바가 그렇게 좁은 곳도 아니고 여기저기 제대로 돌아보려면 정말 하루하루가 부족할 정도니까. 관광온 사람들이 괜히 숙박을 하는게 아니야."
3박 4일을 거론하는 나기의 말에 유키는 정말 보고 싶은 곳이 많은가보다라고 나름 추측했다. 하긴 도시를 그렇게 꿈꾸고 좋아하는 것 같았으니 정말 제대로 돌아보려면 한달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나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지금만 해도 그녀는 허락에 대해서 조금 망설이는 모양이었으니까.
"치바 쪽 대학에 오려고? 나하고 같은 대학에 다니고 그러는 거 아니야? 설마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날진 모르겠지만, 일어난다면 그 날은 내가 꿈의 나라 하루를 쏠게."
그런 우연이 정말로 일어난다면 그 정도는 할 수 있다는 듯이 유키는 그렇게 단언하며 자신의 가슴을 툭툭 손으로 쳤다. 물론 자신이 어느 대학을 목표로 할 것인지는 가르쳐주지 않을 예정이었다. 그것을 알려주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게 될테니까.
"그래도 어린아이도 아니니까 말을 잘 하면 허락해주지 않겠어? 나만 해도 봐봐.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도 위험하다고 말린 이는 없는걸. 용기를 내! 정 무서우면 내가 같이 설득해줄게! 그래도 조금 신뢰 있지 않을까? 나?"
아와나미에 온지 그래도 한 달은 되었고 여러 사람들과 교류를 했으니, 아무리 그래도 어느 정도 신뢰를 사지 않았을까 괜히 그렇게 기대를 해보며 유키는 뻔뻔한 어투로 이야기했다. 물론 그녀가 그것을 받아들일지는 자유였다.
/오전부터 일어나서 다른 곳에 가서 볼일을 보고 놀다가 다시 돌아온 나는 이제야 답레를 주게 되네. 이번 한주도 고생 많았어! 나기주!
꿈의 나라 하루를 쏜다니! 이건 절대로, 반드시 아사기리 씨와 같은 대학을 가야해!!(?) 결의를 다지며 주먹을 꽉 쥐어보였다. 의-지! 그런데 아사기리 씨는 어느 대학을 갈 생각인거지? 나기는 어디를 목표로 하면 되는거지? 슬쩍 물어볼 생각으로 아사기리 씨를 보지만 어째 가르쳐줄 것 같진 않았다. 뭐, 뭐어… 노력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여행 허락과 마찬가지로 별로 자신은 없지만…
“…..으으, 그건… 글쎄요? 도시에서 온 남학생이 ‘따님과 함께 여행을 가고 싶습니다’라고 하면 아빠가 분명… 창고에서 손도끼를 꺼내 올 것 같은데요. 그 마음만 감사히 받을게요, 아사기리 씨.”
엄청 뻔뻔한 어투로 자신이 같이 설득하겠다고 하는 아사기리 씨를 ‘자네 대체 무슨 말을 하는겐가’라는 말을 하는 듯한 시선으로 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손도끼는 농담이라고 쳐도, 쉽게 허락이 떨어지기는커녕 앞으로의 여행을 포함한 모든 도시행이 전면금지 당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응. 아사기리 씨의 마음은 감사하지만 정말로 마음만 받는 걸로 하자.
“괜찮아요. 나기가 어떻게든 할게요! 최악의 경우에는 허락없이 강행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물론 나기가 낸 아이디어도 그리 바람직한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내려간 눈썹에 어울리지 않게 킥킥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역시 안되려나? 아무리 그래도 손도끼는 피하고 싶은데. 평화로운 바닷가마을이 아와나미 살인사건 File.1 같은 곳으로 바뀌면 안되잖아?"
모 탐정 만화풍의 OST를 입으로 내면서 유키는 장난끼를 가득 담아 이야기했다. 확실한건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상당히 아낀다는 점이었다. 나기가 저렇게 이야기를 하니 유키는 알았다는 듯이 더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히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플랜을 짜다가 나기의 허락없이 강행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 고개를 다급하게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안되지! 부모님이 얼마나 걱정하겠어! 무엇보다 우리 집에 온 것이 걸리면 그거야말로 정말로 손도끼를 들고 전철을 타고 올 것 같단 말이야."
자신의 고모와 고모부를 통해서 연락처와 사는 곳을 알아낸 후에 치바까지 쫓아올지도 모르는 그녀의 부모님을 떠올리며 그는 괜히 진땀을 빼면서 웃어보였다. 물론 진짜로 그러겠냐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녀의 도시를 향한 열정을 생각하면 정말로 일어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그는 판단했다.
괜히 고개를 올려 지붕을 바라보지만 여전히 비가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여기서 잠을 자게 될까 그렇게 생각을 하며 유키는 나기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일단 나는 슬슬 고모와 고모부에게 가볼게. 여기서 어떻게 할건지를 들어봐야 할 것 같거든. 잠을 잔다면 아무래도 같이 자야 할 것 같으니까. 미쿠모 양은 이후 어쩔거야?"
“에이 설마요. 그리고 허락없이 강행이라는 건 농담이니까☆ 실제로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아무리 나기가 도시를 동경한다고 해도 말이에요!”
다급하게 고개를 젓는 것이 꼭 나기가 진짜로 할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을 한 것 같은데… 나기도 사리분별은 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진짜처럼 들릴 농담을 한 건 사실이니까. 더 따지지 않고 그저 킥킥 웃었다. 웃음소리에 스며드는 빗소리는 여전히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아, 이건 꼼짝없이 내일까진 있어야겠는데. 엄마랑 아빠는 아직? 그런 생각을 하며 핸드폰을 만지려다 때마침 들려온 말에 다시 아사기리 씨를 보았다.
“아아, 그렇네요. 나기도 슬슬 엄마랑 아빠가 오실 것 같으니까. 잘 준비라던가 이것저것 해야겠네요. 덕분에 심심하지 않게 즐거운 시간 보냈어요. 대피소가 처음이면 잠들기 쉽지 않겠지만 힘내세요, 아사기리 씨.”
이쪽도 슬슬 준비를 할 때가 된 것 같고. 아무리 친해졌다고는 해도 같이 잠까지 잘 사이는 아니니까, 아사기리 씨는 친척 네로, 나기는 엄마아빠를 기다려야겠지. 살짝 손을 흔들면서 지루했을 뻔한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게 해준데에 대한 감사를 입에 담았다. 덧붙여 대피소에서의 첫날밤을 보낼 아사기리 씨에게의 응원도. 잠들기가 그리 쉽진 않겠지만, 분명 좋은 추억이 되겠지. …아마?
돌아가려는 듯한 아사기리 씨를 그렇게 전송하고-라고 해봤자 어차피 대피소 내부니까 고개만 쭉 빼면 보일 거리지만- 핸드폰을 들여다 보았다. 이제야 대피소로 향하고 있다는 엄마의 메세지가 와 있었다. 그리 멀지 않으니까 곧 도착하겠지. 그러면 같이 잘 준비를 하고, 집 상황도 좀 듣고... 내일은 피해갈 수 없는 대청소인가. 아아. 귀찮아라.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자리를 정돈했다.
/막레...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니 막레로 받아도 좋고 더 이어도 좋은 것입니다...?(? 길고 긴 평일이 지나고 주말이 찾아왔다! 야호! 하지만 오늘도 이것저것 일이 있어서 자주 오긴 힘들 것 같..아...(죽은눈 유키주는 좋은 주말 보내길 바라...
그냥 픽크루 그림체가 많이 좋은 것 뿐이야! 앞머리스타일은 확실히 저렇게 좀 바꿀 것 같긴 해! 그 외에는 그냥 즐겁게 대학생활을 보내는 평범한 대학생일 것 같고! 하지만 주변에 친구가 많고, 수영을 좋아하고.. 과제가 쌓이면 커피를 빨면서 표정 찡그리면서 과제하는 그런 대학생!
내 기억이 맞다면 첫번째 소원은 아와나미에 다시 왔을 때 나기네 집에서 묵는거였고 두번째 소원은 같이 카페에 가는 거였어! 그리고 남아있는 소원권이 하나가 있었지! 사실 뭐에 쓰더라도 상관없을 정도로 다 환영이야! 이렇게 말하면 나기주는 뭔가 엄청 짓궂은 것을 생각하는데에 머리를 굴릴 것 같지만 그건 유키가 알아서 할 일이겠지! (나쁜 오너)
유키의 장난기가 좀 더 돈다면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아냐고 개인정보 유출을 거론하면서 당황하는 연기를 하겠지만 거기까지 하면 나기가 진짜 울지 않을까 싶어졌어. ㅋㅋㅋㅋㅋㅋ 어느쪽이건 유키가 장난이라는 것을 밝히면서 사과하는 순간 등짝 스매싱이 날아오지 않을까 싶어지네.